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15장 21절 (인간 관계) 230321a-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15장 21절 (인간 관계) 230321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15장 11절 32절까지, 흔히 탕자 비유라고 알려진 그 대목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첫 번째 비유는 99마리 양 그리고 잃어버린 양은 두 마리가 아니고 단 하나.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오는 동전은 두 개가 아니고 동전 단 하나 잃어버렸지요. 열 개가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에요. 둘이 아니고 하나를 잃어버렸어요.

잃어버린 양의 특징은 소극적이에요. 본인이 잃어버린 줄도 몰라요. 그 잃어버린 동전도 본인이 잃어버린 동전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습니다. 첫 번째 양도 양 목자가 산 넘고 물 건너서 찾아온 거에요. 동전도 주인이 여자 주인이 일방적으로 찾았습니다. 누가복음 잃어버린 세 가지 비유 중에서 첫 번째, 두 번째는 하나에요. 하나.

하나인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11절은 아들이 하나가 아니고 둘입니다. 둘이기 때문에 둘 중에 누가 잃어버렸는가? 오늘 본문에서 어려운 점은 인간이 할 것 같은데 인간이 못 해내는 것은 잃어버린 양도 마찬가지고 동전도 마찬가지고 동전 잃어버렸다는 인식을 못하고 양도 잃어버린 인식 못하듯이 잃어버린 동전이나 양은 찾았을 때 비로소 자기가 잃어버렸다 얻었다는 것을 알잖아요.

세 번째 오늘 본문 누가복음 11장에서 탕자 비유, 두 아들이 있는데 여기 잃어버린 자는 누구냐. 바로 아버지. 아버지를 잃어버린 거에요. 아버지를. 탕자 비유에서 탕자 비유가 어려운 것은 관점이 위치가 바뀌어진다는 거에요. 처음 탕자 비유할 때 처음 관점은 뭐냐 하면은 아버지, 장차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산을 저한테 주소서 이렇게 했지요.

그럼 둘째 아들에게서 아버지의 유산을 챙길 때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살아있는 것으로 여깁니까? 죽은 걸로 여깁니까? 아버지 없어요. 아버지 없는 거에요. 아버지를 없애버렸어요. 아버지 없앤 대가에 주어진 것이 아버지 유산이거든요. 이제는 아버지의 유산을 챙겼으면 아버지 있으나마나. 그 둘째 아들에게는 아버지가 사라졌습니다. 아버지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거는 초장부터 아버지가 잃어버렸어요. 누구한테? 인간 입장에서 아버지를 잃어버린 거에요. 동전은 주인이 찾을 수 있고 잃어버린 양은 목자가 찾을 수 있지만 아버지를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아들이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애먹이던 자식이 아버지 유산 챙겨서 아버지 안 보이는 곳에 가서 사는 것, 인간으로서 할 것 같은데 잃어버린 아버지를 다시 찾아오는 것은 인간에서는 못해내지요.

아예 처음부터 못했으면 쉬울건데 인간이 충분히 할 것 같았은데 잃어버린 아버지를 살려내지를 못한다는 것은 인간이 해내지를 못해요. 아버지 제가 잘못되었습니다. 인간이 할 것 같으면 아버지 내가 잘못되었습니다. 아버지 용서해주세요. 다시 아버지 잘 모시겠습니다. 이렇게 돼야 버린 아버지를 내가 찾아왔다가 이렇게 스무스하게 연결이 되거든요.

그런데 이 탕자비유에서는 내가 회개하니까 아버지 날 용서해달라는 대목이 없습니다. 측은히 여긴 것은 누구냐? 아버지가 측은히 여겼지요. 오히려 아들은 뭐냐? 나는 아들 되기를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영원히 아버지를 잃어버림으로서 둘째 아들이 보여주는 바는 자기 자신을 영원히 잃어버린 거에요 자기 자신을. 되찾을 수도 없어요. 이게 어려운거에요.

인간이 선악과 따먹고 쫓겨났다. 아이고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대. 우리는 정신 바짝 차리고, 하나님 우리가 율법에 의해서 말씀에 의해서 잘못되었습니다. 돌아와서 회개하면 다시 아버지 받아준다. 이게 인간들이 할 것 같아요. 1번에 의하면. 그런데 탕자 비유는 그걸 못하게 만들어요. 인간 쪽에서 다시는 이런 짓 안하고 다시는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 다시 낙원을 회복해달라 인간이 회복해달라 요청하는 것은 이거는 성경에 없는 이야기에요. 인간들이 만들어 낸 종교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종교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내가 이 땅에 있다가 나만 손해보겠다. 다시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해보자. 이게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이라고 성경에 화해라는 말이 얼마나 많이 나오느냐. 회개하고 구원받자. 잘못했습니다 회개하고. 회개의 당사자는 누구? 내가 회개의 당사자고. 잘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고 언제든지 돌아오면 용서해줄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이제 아버지의 사랑을 알았습니다. 이제 정신 차리고 바르게 살겠습니다. 그게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종교적 테두리 안에서 인간들이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 이해합니다. 그 하나님 없어요. 그런 하나님은 인간들이 조작한 엉터리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이 탕자 비유가 어렵습니다. 인간이 하는 것 같은데 막혀버렸어요. 인간은 아버지를 죽였잖아요. 그걸로 끝이에요. 하나님을 죽였잖아요. 그걸로 끝입니다. 그러면 돌아온 탕자가 다시 아들의 자리를 얻는 것, 다시 자리를 얻지 않아요. 새로운 아들이 되지요. 어떻게? 둘째가 맏이를 꿰차버립니다. 그것 때문에 둘을 한 거에요. 꼭 그거 같애. 야곱과 에서 언약 같아요.

에서가 맏이죠. 언젠가 그런 설교했는데 왜 맏이냐? 에서가 왜 맏이냐? 먼저 태어났기 때문에 맏이입니다. 왜 먼저 태어났는가? 맏이 되라고 먼저 태어났습니다. 맏이 되라고 먼저 태어났습니다. 이런 설명은 먼저 태어난 자는 맏이다. 이게 인간의 한계입니다. 이게 육신의 한계예요. 먼저 태어났으니까 맏이라는 거에요.

그럼 성경에서 맏이는 뭐냐? 탕자 비유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게 어려워요. 두 번 죽어야 해요. 한번 죽으면 안돼요. 두 번 죽어야 맏이가 돼요. 두 번 죽어야. 탕자 이야기는 예수님 이야기에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마구간에 태어날 때 죄 없는 분이 죄를 가질 때 죄를 가진다는 자체가 이미 죽었다는 거에요. 왜? 죄의 결과는 사망이기 때문에. 육신을 가질 때 이미 죽었어요. 그리고 십자가 죽을 때 이미 죽었어요. 두 번 죽어요. 한번 죽어서는 맏아들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8장 29절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많은 형제들 중 맏아들 누구죠? 여기서 예수님이죠. 예수님을 옹립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어요. 누구를? 예수님. 예수님이 누구신데? 두 번 죽으신 분. 두 번 죽으신 분을 위하여 이 땅에 육신의 모든 맏이는 모가지 다 날라갔습니다. 유월절 날.

유월절 그 날 밤에 맏이라는 이유 때문에. 성질이 착하고 온순하고 필요 없어요. 단지 맏이라는 이유 때문에. 남자라는 이유 때문에 노래 나오면 안돼요. 맏이라는 이유 때문에 모가지 다 날라가는 거에요. 육신의 맏이 없으면 무엇이 연결 안 되느냐 하면은 혈통이 대를 이을 수가 없습니다. 그 다음 혈통은 뭐냐? 맏이 혈통이 아니었었다. 단절된 혈통이었다를 그 다음 혈통부터는 애굽의 모조리 다 애굽 시대 이후는 둘째 출신들이었다. 정통적인 맏이 출신은 하나님의 개입으로 작살났다. 작살난 거에요.

그럼 왜 인간의 육신의 맏이인데 왜 죽어야 되느냐? 주께서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서? 아니에요. 어린양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 애꿎은 인간들의 맏이가 모가지 다 날라가야 돼요. 다 죽어야 돼요. 피조물들이 존재하는 이유는요 예수님을 위해서 존재해요.

골로새서 1장 16절에. 모든 피조물은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이 누군가를 드러내기 위해서 누가 주님의 옹립이 되느냐? 천국과 지옥을 누가 결정내리고 누가 그걸 관리하고 확실하게 굳히게 하셨는가. 그분의 결정, 주님이 주로서의 결정을 옹립하기 위해서 피조세계, 심지어 보이지 않는 것들과 이렇게 되어있으니까 마귀까지 천사까지 예수님을 주로 옹립하게 위해서 하나님이 설계한 거에요. 하나님이 예수님을 주로 되기 위해서 설계한 겁니다.

그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은 바로 탕자비유에요. 피로 쓰지 않은 글은 무효입니다. 실효성이 없어요. 피로 적지 아니한 글은. 성경의 모든 글은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는 거에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해서.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복음,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신약이든 구약이든 전부 다 거기 다 연결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신학 강의하면서 피가 마지막 최종적으로 예수님이 죽어 마땅함으로 논리적으로 연결시켜줘야 해요. 안 그러면 도중에 지식으로 빠져버려요. 지식으로 빠져버리면 지식을 아는 자는 모가지 안날라가야 될 대상인 것처럼 착각을 하게 돼요. 나 신학에 대해서 이 정도 아는데 설마 나를 버릴까? 그 모가지 가져와야 돼요. 피로 쓰지 않은 글은 무효입니다. 하나님 안 받아줍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 양은 안 죽었어요. 동전은 잃어버리기만 했지 동전이 부서지고 깨지고 없습니다. 여기 탕자 비유는 사람이 등장해요.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고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지금부터는 아주 어렵습니다. 지금부터. 둘째 아들과 첫째 아들은 같은 편입니다. 반대쪽에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같은 쪽에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여기 등장인물을 보겠습니다. 이 본문을 미리 읽어보라고 했지요. 5분 동안. 첫째, 첫째 아들. 모가지 날라 간 첫째 아들. 두 번째, 마치 주인공처럼 보이는 둘째 아들. 이름도 탕자 비유. 세 번째, 축산업자. 돼지 키우는 사람. 이 사람 말고 한 사람 더 등장합니다. 큰 아들 입에서 나온 거에요. 네 번째, 창녀입니다. 창녀. 모두 같은 편에 있어요.

이 같은 편에 있는 것을 쉬운 말로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이걸 인간관계라고 합니다. 인간관계. 이 인간관계와 동떨어진 인간관계와 맞은편에 계신 분은 딱 한 분 밖에 없어요. 누구냐 하면은 ‘아버지’. 아버지 빼놓고 전부 다 반대쪽에 가 있습니다. 아버지 반대편에 가 있어요. 탕자 비유는 인간관계에서 4명의 인간관계를 성립하기 위해서는 여기서는 그들의 인간관계에서 의미를 획득할려면 이쪽의 아버지를 죽여놓고 의미를 획득해야 돼요.

아까 했지요. 아버지의 돈을 가져갔다는 것은 지금 이 인간관계의 대표자가 누굽니까? 제일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지금 카메라가 어딜 쫓아가고 있어요? 둘째 아들이죠. 축산업자는 조연입니다. 창녀도 조연이고요. 아버지, 둘째 아들 하면서 폐쇄적으로 자기들끼리 인간관계를 형성하잖아요. 인간관계가 의미를 추구할려면 반드시 누구를 죽여야 돼요.

아버지를 죽여야 아버지의 상속분을 갖고 있으니까 이미 아버지는 죽은 아버지에요. 이쪽 인간관계에서는. 아버지는 죽었으니까 활동 하나 안 하나 죽었으니까 인간들 앞에서 뭐냐? 아버지의 존재는 무의미해요. 하나님이 있든 없든 의미가 없다니까.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쓸데없는 철학가나 신학자들의 할 일 없는 질문이고 일상생활의 인간관계 거기에 몰입되어있어요.

가게 오는데 혹시 하나님 아십니까? 이렇게 묻지 않잖아요. 그거는 내가 주인공이고 내가 일하는데 하나님이 왜 끼어요. 일하실 때 하나님 이야기합니까? 안 하잖아요. 하나님이 거기 왜 끼어요. 하나님은 일단은 죽어야 되는데. 우리는 나한테 의미가 있어야 돼요. 나한테 의미 있는 곳에는 절대로 하나님 끼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주일날만 만나는 거에요. 돌아가셔야 돼요. 무의미한 거에요. 일주일 내내 주일날 빼놓고는 무의미한 거에요. 목사한테도 의미 없는데 뭐. 교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

이 인간관계. 이 탕자 비유가 어렵다 어렵다 말씀드린 것은 이 인간관계를 재구성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탕자 비유를 모릅니다. 자꾸 아버지 편 들고 둘째 아들 편 들 생각마세요. 아버지 재끼고 인간과 인간관계가 어떻게 됐느냐를 알아야 우리는 지금 어떤 인간관계에서 의미를 찾고 어떤 나만의 가치를 획득할라고 어떤 식으로 남과의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걸 우리가 분명히 구성을 해야 되고 구축을 해야 돼요. 적극적이니까. 잃어버린 양은 적극적이지 않았어요. 동전은 사물인데 테이블 밑에 있는데 무슨 적극적이겠어요.

그러나 그 다음에 등장하는 잃어버린 것은 탕자는 인간은 적극적 자기 의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첫째 아들도 적극적으로 자기 의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내 거의 말씀 안하시고 끝에 말씀하시고 내내 조용했던 분은 누구밖에 없어요? 아버지밖에 없어요. 인간들이 하나님 죽여야 자기 의미가 획득되니까. 인간들이 예수님을 죽인 이유를 알겠지요. 예수님과 더불어 아버지와 더불어 살 수 없어요. 둘째 아들이 노골적이고 첫째 아들은 더 못됐어. 같이 있었는데 같이 있었던 게 아니에요. 아버지 생각하고 첫째 아들 생각하고 달라도 너무 달라요. 나중에 아버지로부터 큰 아들이 지적받습니다. 너 큰아들 맞냐? 이 말이에요.

자, 그러면 지금부터 인간관계, 아버지 죄송합니다. 아버지 죽어주시고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없어야 속이 편해. 아버지 죽여놨으니까. 아버지를 죽일 때 나는 뭐가 되느냐?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죽일 때 또는 이 탕자 비유에서는 적극적으로 죽이지만 왜냐하면 아버지 죽었다 치고 돈 달라고 했으니까. 죽었다 치고 돈 주세요 이렇게 했으니까 이거는 뭐냐 하면은 죽었다 치고. 우리는 차마 내손으로 죽였다 하면 이건 너무 오바니까 이 정도. 하나님 없다고 치고 죽었다 치고 그렇게 할 때 인간관계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몇 가지 문장을 통해서 우리가 한번 파악해봅시다. 인간관계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해볼께요. 하나님을 죽일 때 나는 비로소 순수 ‘나’가 돼요. 선악과 따먹을 때 순수 ‘나’. 우린 선악과 따먹은 후손이잖아요. 육신이. 탕자도 마찬가지고. 우리 육신이 따먹고 난 뒤잖아요. 그런 나를 내가 만나고 싶은 거에요. 그럼 우리는 또다시 내가 벌리는 내 사업체나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선악과 따먹는 행동을 또다시 하면 되지요.

뭐냐 하면 하나님 없다고 치고, 다른 말로 하면 선악과 먹지 마라는 말 그런 말 아예 안 들었다 치고 살아가는 거에요.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정말 나다운 나, 나답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을 버린 그 모습의 나다운 나를 내가 발견할 수 있는 거에요. 이게 뭐냐? 자아 정립이죠. 순수한 나. 그런데 순수한 나인데 저는 이것을 뭐냐. 저는 ‘순수한 나들’이라고 하겠어요. 보통에서는 ‘나들’이라는 말은 없어요. ‘우리’라고 하지요. 그런데 우리라고 하면 순수한 나 플러스 나 같은 수 만명의 75억 명의 나 같은 나들. 시진핑도 있고 푸틴도 있어요. 김정은도 있고 있어요. 그걸 묘사하기 위해서 우리보다도 ‘나들’이라고 제가 말을 만들어봤습니다.

꼭 나같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나’와 ‘나들’의 부딪힘과 만남. 만남과 이별들. 그게 무슨 관계? 인간관계. 아주 말 참 좋지요. 인간관계. 인간관계 굉장히 친근하잖아요. 그런데 인간관계가 어떻게 되는가? 몇 가지 문장을 통해서 인간관계가 어떻게 구성되는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문장은 “뒤탈 없이 확실히 처치하라.” 살벌합니다. 살벌. 꼭 칼 들고 설치는 게 아닙니다. 은행에서 통장개설하든지 뭐든지 간에 이런 게 있어요.

두 번째 “나는 절대 너랑 못 헤어져.” 살벌합니다. 세 번째, “네가 누렸던 행복 내가 갈기갈기 다 찢어주마.” 네 번째, “너 나빠. 왜 내가 싫은데?” 여기 너, 나에다가 여러분 자녀 집어넣고 다 해보세요. 아내, 남편 다 집어넣어 보세요. 부모 집어넣고. 다섯 번째, “왜 나만 혼자인가.” 여섯 번째, “나도 피해자야. 나도 억울해.” 이 정도로 할게요.

한번 보세요. 인간관계가 어떤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이거는 꼭 이렇게 말한다가 아니라 내부에 잠복되어있는 거에요. 이 문장들이. “뒤탈 없도록 확실히 처치하라.” 살벌하지요. “나는 절대로 너와 못 헤어져.” “네가 누렸던 행복 내가 갈기갈기 다 찢어주마.” “너 나빠. 왜 내가 싫은데?” 이거는 뭐냐 하면은 내가 좋아하면 네가 같이 호응을 해주는 것이 우리가 가족이고 우리가 한 식구지. 식구라고 하는 것은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을 식구지.

아버지가 좋다는데 너는 왜 싫어. 아버지가 좋아서 같이 놀이동산 가지고 하는데 너는 왜 빠지나? 그런 이야기겠죠. 왜 나는 혼자인가? 저팔계. 왜 사람들은 나를 싫어해? 이런 거죠. 여섯 번째, “나도 피해자야 나도 억울해.” 자, 이런 대사를 어디서 뽑아왔느냐 하면은 ‘조작된 낙원’이라는 그 드라마가 있어요. 거기서 나온 대사를 빨리 적었던 거에요. 거기 나온 대사를.

이게 인간관계에요. 이게. 인간관계니까 오늘 탕자 비유에 나오는 등장인물 몇 명이라고 했습니까? 등장하는 인물 몇 명이라고 했습니까? 이쪽 같은 편에 첫째 아들, 둘째 아들, 축산업자, 세 번째는 창녀죠. 둘째 아들이 창녀하고 돈을 다 날렸으니까 창녀 나오지요. 그러면 입장을 둘째 아들하지 말고 여러분들의 시선은 어디로 가느냐? 본인을 창녀로 보고 축산업자로 보는 거에요. 자, 내가 만약에 축산업자라고 하면 이건 지금 어디 있습니까? 뭐 반대편에 있어요?

이쪽 편에 누가 홀로 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이죠. 하나님은 몇 번 죽느냐? 두 번 죽지요. 그것은 탕자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그 돈이 뭐냐 하면은 아버지가 죽었을 때나 나올 돈을 탕자가 가졌다는 말은 뭐냐? 나한테는 누가 이미 고인이다? 아버지가 이미 고인이라는 뜻이에요. 그게 뭐라고 했습니까? 순수한 나. 진짜 ‘나’는 ‘아버지하고 살 마음이 없는 나’가 진짜 나에요. 아버지가 자꾸 같이 있으니까 순수한 나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떤 본능을 절제할 수 없다? 아버지를 죽이는 그 욕구를 우리는 절제할 수 없어요.

어떤 핑계든 아버지를 죽여야 본래의 내 모습으로 되돌아오고 그 모습이 악마가 뒤집어씌운 나에게 가장 친근한 정말 나 다운 모습이에요. 아버지 없는 모습이. 그게 탕자 비유에 초반부터 시작되는 거에요. 순수한 나부터 시작하는 거에요. 그럼 그 순수한 나가 어딜 가느냐? 내가 아버지와 살던 그 세계가 지긋지긋해. 그럼 먼 나라 가지요. 먼 나라. 여기 나오지요. 먼 나라. 먼 나라는 누가 없다? 먼 나라는 누가 없고 누가 있습니까?

먼 나라에 가면 아버지는 없는데 아버지를 버린 나 같은 나들. 나의 복수요. 우리라는 표현을 안 하겠어요. 나 같은 나들만 거기에 다 몰려있지요. 그럼 나 같은 나니까 우리는 자꾸 탕자 둘째 아들을 나로 보지 말고 둘째 아들과 똑같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그 중에서 여기 탕자 비유에 등장하는 사람이 네 명인데 그 먼 나라에 간 사람은 누굽니까? 둘째 아들 갔고 그 다음에 축산업자 갔고 창녀 있지요.

그러면 여러분 축산업자라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자신이 축산업자다. 그 축산업자는 목적이 뭐냐? 하나님은 빠이빠이 했어요. 이쪽 하나님 없는 반대편이니까 빠이빠이 했고 축산업자의 목적은 뭡니까? 돼지 키워서 이윤을 남기는 거잖아요. 이게 나쁩니까?이게 나빠요? 헤어질 결심에 나온 대사같애. “내가 그렇게 나빠요?” 돼지 키우는 업자가 돼지 키우는게 나빠요? 축산업자가 순수한 나잖아요. 지금 둘째 아들을 주인공 삼지 말라니까. 그래가지고는 이 탕자 비유가 해결이 안돼요.

축산업자가 돼지 키우는 게 그게 그렇게 나쁜 짓입니까? 순수한 축산업자 순수한 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아요. 이거 해가지고 애들 공부시키고 장가보내고 자기 밥 먹고 살고 노후 대책하는데 이게 뭐가 나쁩니까? 그런데 어느 편에 있어요? 하나님을 죽이고 맞은편에서 한 통 속이라는 점에서 나쁘잖아요. 그런데 본인은 나쁜 줄을 모르는데 그 나쁜 줄을 모르는 사람 중에 누가 포함되어있다? 둘째 아들 포함되어있고 첫째 아들 포함되어있고.

첫째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서 아버지와 생각이 달라요. 아버지 생각과 공통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중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 첫째 아들이에요. 왜? 상대적 의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 재산 그렇게 탐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곁에 있었잖아. 그게 바리새인의 의에요. 지금 주님께서 바리새인까지 고려하는 거에요. 왜? 바리새인을 고려해야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죽여야 될 집단이기 때문에 그래요. 말씀대로 예수님은 죽어야 되거든요. 바리새인이 바리새인다워야 예수님이 죽을 수 있어요.

두 번 죽는다는 말은 이 땅에 죄 없는 분이 육신을 가질 때 이미 죽었고. 왜? 육신 자체가 죄를 품어있으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잖아요. 죽었고 십자가에 죽을 때 죽었고. 마구간 태어날 때 이미 죽었고 그 죽은 육체 가지고 인간의 평범한 죽음 말고 특수한 죽음. 말씀을 다 이룬 죽음을 죽기 위해서 두 개의 죽음. 이 두 개의 죽음을 주님께서는 탕자의 비유 안에 있기 때문에 탕자 비유의 거기에 나오는 서사, 이야기 진행 구조는 예수님의 가신 코스를 그 안에 담아놓은 거에요. 이 탕자 비유가. 두 번 죽었기에 나는 주가 된다는 뜻이에요.

지, 계속 축산업자 합시다. 축산업자는 자기 하는 일을 매진하고 게으르지 아니하고 그걸 뭐라고 하느냐 착실하다 하지요. 착실한데. 원래 돼지 키우면 새벽에 돼지 사료를 주기 때문에 가족들과 같이 놀러를 못가요. 돼지 키우면. 돼지가 발목 잡는 거에요. 어떤 사람은 개 키워도 놀러 못갑니다만. 호텔에 맡기고 가야돼. 돼지 키우면 가지를 못해요.

그러면 애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다른 집 애들은 아빠하고 놀이동산 가는데 왜 아빠는 왜 나하고 안 놀아주는데?! 그러면 아까 나왔던 문장요. “너 나빠. 내가 왜 싫은데?” 인간관계 문장 여섯 가지 있잖아요. 여섯 가지를 번갈아가면서 계속 섞어서 계속 인간들은 잠복되어 있다가 그걸 툭툭 드디어 참을 수 없을 때는 그게 나오는 겁니다.

또 어떤 여자가 돼지 키우는 집안의 어른 아들과 결혼을 했다. 결혼해서 와가지고 자기 신혼의 단꿈은 어떻고 해가지고 남편하고 유럽여행가자 했는데 유럽여행은 무슨 너도 와서 장화 신어라! 이래 가지고 돼지 키울 때에 그러면 이제 애 안고 몰래 야밤도주하죠. 지금 1,2년은 버틸 수 있어도 평생 이렇게는 못 산다. 나는 당신의 아들하고 연애할 때 얼마나 행복했는데. 그때 나오는 준비된 문장이 뭐냐 하면은 “네가 누렸던 행복 내가 갈기갈기 다 찢어주마” 이거 아닙니까. 딱딱 맞다니까.

그런데 가면서 그 며느리가 도망가면서 자기 이름으로 보험금 탈 때 아버지가 둘째 아들에게 “뒤탈 없도록 확실히 처리해라.” 그러면 “시아버지 너무 합니다!” 이러면 “나도 피해자야. 나도 억울해.” 이게 입에 달았어. 우리 일상생활이에요. 이게 무슨 관계라고요? 이게 인간관계에요. 왜? 모두 다 ‘순수한 자기밖에 모르는 나’니까. 하나님 죽인 자가 인간을 배제하는 건 하나님도 죽여버렸는데 뭐. 순수한 나와 가장 친근한 나를 내가 보존하기 위해서는 형제 가족 이런 것은 돌아서게 되어있어요. 이게 축산업자입니다.

축산업자한테 어떤 허망한 총각이 와가지고 취직할려고 하니까 축산업자는 뭐만 계산합니까? 안 그래도 촌에 사람 없는데 잘됐다 해서 취직시켜주고 하는데 “요새 돼지 값 내린 거 알지? 밥은 네가 알아서 나는 숙식제공 못한다. 너 아니어도 많아 싫으면 미얀마 사람도 많고 파키스탄 사람도 많으니까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으니까 싫으면 가든지.” 둘째 아들이 “있겠습니다.” 이렇게 한 거에요. 그러면 보세요. 순수한 나, 하나님마저 차버리고 진짜 나 다운 나에 대해서 어딜 가느냐? 먼 나라에 갔지요.

그 다음에 그런 ‘나’가 돼지 먹는 걸 뺏어먹어요. 이거 걸리면 안돼. 왜냐하면 네가 살 빠지는 건 괜찮은데 돼지가 살 빠지는 것은 이건 상품 가치가 떨어져 안돼요. 축협에서 안 받아줘요. 납품이 안 된다고요. 상품성이 떨어져요. 그러니까 몰래 먹는 거에요. 이 짓을 못하는 거에요. 돼지보다 더 클라스가 더 낮아요. 그럼 뭡니까? 아버지를 죽인 ‘순수한 나’가 인간들만 어울린 인간관계에서 뭐가 되느냐 하면은 내가 죽지 않고서는 내가 살 수 없는 세계가 무슨 세계다? ‘인간관계’.

내가 죽는다는 말은 인간으로서의 모든 이상은 전부 다 내가 포기하게 되면 돼지보다 더 낮은 자리가 바로 내 자리가 되죠. 그리고 거기서 회복 안 됩니다. 왜 회복 안 되는가? 이미 아버지를 죽였기 때문에. 본인으로서 몸부림 맘부림 치고 모든 노력을 다해봤자 기껏 취직한 막다른 취직이 돼지 치는 데잖아요. 돼지 치는 데 맞지요? 그러니까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요. 그걸 세 자로 딜레마라고 해요. ‘딜레마’. 우리말로 번역하면 ‘곤궁’. 쉬운 말로 곤경에 처했다. ‘곤경에 처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데 문제는 이게 영화고 드라마 특정 주인공이 그런 게 아니고 누가? 관찰하는 어떤 자가 아니라 관찰하고 있는 내가 바로 딜레마에 곤경에 빠진 거에요. 아무도 해결 못합니다. 하나 예를 들겠어요. 어떤 대학교수가 있는데 멀쩡해요. 그 대학교수가 어떤 여자하고 결혼해서 아들이 하나 있어요. 세 식구입니다. 교수 남편, 아내, 아들 하나. 곧 고등학교 졸업한 아들 하나 있는데.

이 대학교수가 미용사하는 여자하고 눈이 맞아서 바람이 났습니다. 미용사 여자가 자기가 만나는 남자가 대학교수니까 오는 손님마다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내 남편 교수라고 자랑한 거에요. 내연녀면서 내 남편 교수라고 자랑한 거에요. 교수라고 자랑했어요. 이걸 본처가 알았어요. 동네사람은 대학교수가 미용사 남편인줄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때부터 남편이 간경화에 걸려서 암인지 하여튼 이거 이식하지 않으면 죽게 돼요.

죽게 되니까 본처가 남편 이름으로 사망보험을 들어가지고 남편이 죽기를 바래요. 사별하기를 바래요. 죽기를 바랍니다. 이 미용사는 본처한테 가가지고 이혼해줘라. 내가 살려줄게. 본처는 그동안 피해보상 “네가 누렸던 행복 갈기갈기 다 찢어주마” 이거에요. 인간관계는 그래요. 죽어서 보험 타야 되서 죽을 때까지 이혼을 안 해줘요. 그럼 그 돈 받으면 뭐하냐. 돈 받아서 아들 유학 보낼라고.

그런데 아들은 때려죽여도 미국 유학가기 싫데요. 유학 안가는 방법은 뭐냐? 아버지한테 간 이식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걸 세 자로 딜레마에요. 그 다섯 명 중에서 똑바로 된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거기에 조승우 들어가서 변호사 하는 거에요. ‘신성한 이혼’. 5회, 6회. 이게 딜레마가 없을 거 같으면요 자기 선에서 적당히 해결해요. 변호사가 왜 있느냐? 이게 서로 얽혀 있어요. 인간관계가.

그래서 인간관계를 한 자로 뭐냐? 인간관계란 ‘짐’입니다. “수고하고 짐 진 자 다 내게로 오라” 어떤 인간도 똑바른 인간은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을 다 죽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죽이고 뭐만 목적입니까? 제발 순수한 나로 살게 해주세요. ‘순수한 나’. 하나님도 필요 없고. 나를 힘들게 하는 어떤 인간도 필요 없고. 내 야망대로 그냥 얽히고설킨 거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버리고 하나님 아버지 죽인 유산 가지고 내 원대로 마음껏 내 행복을 위해서 내 편한 대로 그 내편한 대로 하는 그걸 가지고 그 냇가를 속편한 냇가라고 합니다.

그냥 내 편한 대로 살고 싶어하는데 자기만 그런 게 아니고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인간관계는 나 그 다음에 나들. 다 마찬가지고 본처도 미용사도 마찬가지고 전부 다 “제발 제발 뒤탈 없도록 확실히 처리해주세요.” “나 절대 당신과 못 헤어져.” “너 나빠” 이런 거. 전부 다 나보고 나쁘데. 다 나쁜데. 이게 얽히고설킨 거에요. 저거 끊으면 나도 죽어요. 그러니까 끊지도 못해요. 끊으면 나도 죽으니까.

미용사 내연녀가 부탁합니다. “제발 이혼해주세요. 남편 살릴 테니 이혼해주세요.” “이혼 죽어도 못한다. 너희들 좋은 일 내가 왜 시키느냐.” 이 남편은 죽어가고 있잖아요. 죽어가고 있는데 그만 미련 끊고 남편 새 생활하도록 우리끼리 멀리 갈 테니 해달라. “너희들 좋은 일 왜 시키냐! 내가 너희들 좋은 일하는 희생물이냐!” 이렇게 나오죠. 맞잖아요. 나 버리고 너희끼리 잘 사는 꼴을 내가 죽어도 못 본다. “네가 누렸던 행복 갈기갈기 다 찢어주마.” 물론 이 드라마는 아닌데. 신성한 이혼 드라마는 아닌데. 어떡하면 좋아요 이 문제.

그 중에 하나 미용사에 창녀를 집어넣은 거에요. 전부 다 인간관계에요. 그 둘째 어느 집 아들인지 관계없어요. 뭐가 있어요? 돈이 있다니까 돈. 왜? 아버지 죽이고 받은 유산이 어떤 자기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갖고 있는 돈을 수단껏 빼먹어서 그 돈을 누구 돈으로 만든다? 이 남자, 둘째 아들 돈으로 만들지 않고 누구 돈으로 만든다? 창녀 내 돈으로 만드는 거에요. 내 돈으로.

그러면 축산업자는 둘째 아들 팔아서 누구 돈 챙긴다? 자기 돼지 잘 키우면 되잖아요. 왜 잘 키워야 되느냐? 내가 나한테 순수하니까. 내가 나한테 정직한 거에요. 남이 욕을 하든 뭐하든 간에 나는 나한테 정직해요. 그리고 내가 나한테는 아무 죄가 없어요. 내가 나한테는. 내가 만약에 죄가 있다면 내가 이 땅에 더 살고자 하는 죄, 그 죄 말고는 없다는 거에요. 엄마는 어떻게 둘째 아들 그렇게 돈 버리는 걸 다 줍니까 하고 이야기하면 내가 이 어미가 나쁜 것은 없다. 나쁘다면 너희 형제간에 그냥 싸우지 않고 잘 사는 것 내가 그 소원 잘 사는 것 보고 내가 눈감고 싶다. 내가 나쁘다면 그것이 나쁘다. 그게 인간관계 아닙니까. 우리는 돈 있어 보세요. 우리 애들이 돈 갖고 싸워보세요.

바로 이 세계에 누가 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거에요. 내가 살고 있으면서 뭐를 건방지게 뭘 보고 있어요? 탕자비유를 보고 있어요. 우리 언제 하나님 관심 있었어요. 없어요. 남의 이야기예요. 해석 안 됩니다. 순수한 나답게 살겠다는 그 의지와 욕망이 있는 한은 해석불가입니다. 해석할 자격도 안 되고요.

아까 했지요. 피로 쓴 글이 아니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다. 이 탕자의 비유는 예수님의 피로 쓴 책이에요. 주님과 함께 죽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이 글은 해석불가입니다. 인간은 곤궁과 곤경 속에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이 세상에 나 같은 인간이 나만 있는 줄 알았는데 왜 나 같은 인간이 왜 그리 천지삐까리. 천지삐까리. 중구난방. 천지삐까리에요. 세상에 겁이 나서 못나가요. 회사를 가든 시장을 가든 전부 다 나의 욕심을 똑같이 가진 자들이 똑같이 축산업자, 창녀 똑같은 자들이 집구석에는 큰 아들 있고 나에게 바라는 건 내 돈을 빼먹는 것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이 세상에서 돈도 지켜야 되지 나의 의도 지켜야 되지 어떻게 살아요.

10분 쉬고 합시다.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3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9,592 자유게시판 10강-스바냐 3장 1-5절(예루살렘의 완성)230412-이 근호 목사 스바냐 최고관리자 23-04-13
19,591 자유게시판 20230410b 부산강의 : [시편]57(41:9)-친구 만들기 시편 최고관리자 23-04-12
19,590 자유게시판 20230410a 부산강의 : [시편]57(41:9)-친구 만들기 시편 최고관리자 23-04-12
19,589 자유게시판 9강-디모데후서 2장 8-9절(내부간격)230409-이 근호 목사 디모데후서 최고관리자 23-04-09
19,588 자유게시판 46강-예레미야 7장 12~15절(실로라는 공간)230409 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3-04-09
19,587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지식과 지혜 / 230409 - 최고관리자 23-04-09
19,586 묻고답하기 예수님 부정 - 최고관리자 23-04-09
19,585 자유게시판 20230407b 울산강의-역대기상(19강) 17장 1절 : 개인의식과 성전 - 최고관리자 23-04-09
19,584 자유게시판 20230407a 울산강의-역대기상(19강) 17장 1절 : 개인의식과 성전 역대상 최고관리자 23-04-09
19,583 자유게시판 4월 부산 성경공부 안내 시편 최고관리자 23-04-08
19,582 자유게시판 9강-스바냐 2장 12-15절(경로변경)230406-이 근호 목사 스바냐 최고관리자 23-04-06
19,581 자유게시판 427강-YouTube강의(추억과 기억 창세기 9:16)20230404-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23-04-05
19,580 자유게시판 426강-YouTube강의(약속과 언약 출애굽기 20:6)20230404-이 근호 목사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23-04-05
19,579 강의 유튜브강의(426강, 427강) 약속과 언약, 추억과 기억 230404 - 최고관리자 23-04-04
19,578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15장 21절 (인간 관계) 230321b-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3-04-04
열람 ➜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15장 21절 (인간 관계) 230321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3-04-04
19,576 자유게시판 8강-디모데후서 2장 1-7절(뿌리 전쟁)230402-이 근호 목사 디모데후서 최고관리자 23-04-02
19,575 자유게시판 45강-예레미야 7장 8~11절(새로움)230402 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3-04-02
19,574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약함의 승리 / 230402 창세기 최고관리자 23-04-02
19,573 묻고답하기 다윗의 씨 - 최고관리자 23-04-02
19,572 자유게시판 8강-스바냐 2장 8-11절(잡류의 구원)230329-이 근호 목사 스바냐 최고관리자 23-03-30
19,571 자유게시판 대전-오전설교 핵심 20230327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23-03-29
19,570 자유게시판 대전-십자가를 아십니까(16강) 마10:20(투명성) 20230327b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23-03-29
19,569 자유게시판 대전-신명기(10강) 신5:8(마귀와 함께) 20230327a 신명기 최고관리자 23-03-29
19,568 자유게시판 안양20230316b말2장5절(함께 죽음)-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23-03-27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