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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대전-신명기(10강) 신5:8(마귀와 함께) 20230327a자유게시판신명기

대전-신명기(10강) 신5:8(마귀와 함께) 20230327a
(강의:이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

신명기 5장 7절, “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7절부터 시작해서 21절까지 십계명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 십계명에 들어가기 전에 6절에 보면,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 그러니까 십계명이란 것을 너희에게 일러줄 때 너희들은 나로 인하여, 하나님으로 인하여 다른 민족이 경험할 수 없는 특수한 경험 속에 들어와 있느니라, 이런 뜻이에요.

그게 뭐냐 하면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홍해 건너서 너희를 인도한 경험이 인위적인 인간들이 예상하고 인간들이 살기 위해서 몸부림 친 경험이 아니고 특별한 하나님에 의해서 주입된 경험이란 거예요. 그럴 때 경험은 뭐냐 하면 하나님과 인간이 공유하는 영역이겠지요. 공유하고 있는 경험이겠지요.

하나님 경험과 인간 경험 두 개를 한 장소에 합치게 되면 인간 요소도 나오고, 하나님 요소도 나올 거죠. 인간 요소는 뭐냐? 인간 요소를 압축하면 인간의 경험, 경험하지만 그 경험의 끝은 뭐냐 하면 바로 죽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경험은 뭐냐? 죽어가는 인간으로서 하나님과 공유한 경험을 느끼는 방식은 다시 살게 됨이죠.

다시 살게 됨, 이 말은 무엇과 같음이 아니냐 하면 영원히 안 죽음, 영원히 살아 있음 그것과 같은 말이 아니에요. 영원히 안 죽는다는 게 아니고 인간의 한계는 죽게 되면 그냥 죽어요. 죽음에서 다시 살게 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을 같이 함께 하는 이스라엘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함께 있으면 이스라엘은 무슨 경험을 해야 되느냐 하면 의도적으로 죽음에 내몰려야 되고 본의 아니게 그 죽음에서 되살아나는 죽었다 살아남을 반복하는 경험을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이유 때문에 그 체험이 돼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난 뒤에 이스라엘에게 준 것이 십계명이죠.

그럼 방금 이야기한 것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면 십계명이란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체험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계속 덧붙여준 추가 작업이라면 이 십계명은 인간들로 하여금 어떤 경험을 하게 하십니까? 죽음에 이르게 하지요. 죽는 데 이유가 있었다는 겁니다. 죽는 이유는 뭐냐? 죄 지어서 죽었다는 거예요.

그럼 죄가 뭐냐? 인간들이 생각하는 죄 또는 죄에 대한 벌 같은 것은 뭐로 벌충이 되고 회복이 되느냐 하면 착한 일을 하게 되면 이게 벌이 취소된다든지 착한 양이 악한 것보다 더 많아지게 되면 이거는 징벌이 취소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인간세계에서는 그게 있어요. 왜 그러냐 하면 선악체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선과 악, 그것이 한 막대기에 있거든요.

한 막대기에 있어서 마치 pH 양 계산하는 것처럼 이리로 가면 pH 마이너스, 플러스 7, 마이너스 1이 되는 것처럼 하나의 수식에 의해서 연속적으로 이동이 가능한 거예요. 마이너스, 마이너스 하다가 플러스, 플러스로 올라갈 수도 있고. 마이너스, 플러스가 한 수직선 위에서 이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선을 아는 지식이 아니고 악을 아는 지식이 아니고 어떻게 된다고요? 선과 악이 한 지평선에 같이 옆에 나란히 연속적으로 이어져있는 지식을 누가 알게 되었다? 인간이 알게 된 겁니다. 마귀도 알고 있는 거죠. 인간도 알게 된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너 그것 알면 내가 만든 인간, 그 인간 아니야.” 분명히 당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악지식이 없어야 인간인데 악마는 선악지식을 집어넣은 인간으로 전환시켰어요. 그래야 인간도 악마처럼 되니까.

선악지식을 안다는 말은, 악마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악마에 대한 심판의 기준이 뭐냐? 선악이란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혼자 죽을 순 없다는 거죠. 인질로 삼았어요. “나를 공격하면 이 아이는 죽는다.” 보통 드라마에서 아들 유괴해서 “돈 20억 주지 않으면 네 아이는 죽는다.” 그런 이야기할 때 부모가 돈을 내놓습니까, 어떻게 합니까? 보통 혼절하지요. “돈 20억이 중요합니까, 아이가 중요합니까?” 경찰 닦달내고 약속된 시간에 돈 들고 가다가 몇 바퀴 차 돌리고 그런 것 있잖아요.

하나님 방식은 간단합니다. 죽여라. 하나님은 아주 깔끔합니다. 죽여라. “죽인다?” “죽여라, 죽여.” 왜냐하면 인간은 가상이기 때문에. 모델이 아니에요. 인간 형상은 하나님께서 만든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든 건 하나님 형상이지 인간 형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 형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건 내 자식 아니다. 내 자식 따로 있다. 독생자 따로 있어요. 따라서 그게 성경의 프로젝트에요.

악마를 처단하기 위해서 인간을 인질로 하는 것을 허락하셨고, 시나리오 따라 악마는 인간을 인질로 삼았고, 하나님의 처분은 네 죄 추가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악마가 악마다웠다. 악마가 악마했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사탄이 사탄한 거예요. 죽여라. 악마 쪽에 뭐라 하겠어요? “그러면 육신을 가진 하나님 아들 없잖아. 창조한 인간이란 것, 독생자 말고 신체를 지닌 사람이란 게 내가 죽이면 없어지잖아.” “만들면 되지.” “어떻게?” “내 아들 간다.” 죄 있는 육신의 몸으로 가면 되지요.

육신의 몸으로 보내셔서 이제는 악마로 하여금 원천적으로 처단할 수 있는 근거를 하나님의 아들을 건드렸다는 이유 때문에 처단하시겠다는 겁니다. 그게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포도원 비유에요. 포도원에 농부들이 있는데 종들을 보내니까 종을 학대했습니다. 그다음에 종을 죽였습니다.

마지막 때에, 마지막입니다. 더는 시간의 흐름이 의미 없는 마지막 때에 포도원 주인이 자기 아들을 보내니까 농부들이 하는 말이, “이는 상속자니 마지막 아들 죽이면 포도원은 우리 것이 된다. 우리 손에 넘어온다.” 그렇게 할 때 주인이 어떻게 하겠는가? 진노함으로써 지옥 불에 집어넣는다. 그렇게 돼 있어요. 구약 이스라엘부터 예수님 오실 때까지의 경로를 예수님 자신의 입으로 포도원 비유로 다 설명해버린 거예요.

십계명이란 것은 바로 모든 인간은 이미 죽었지만 십계명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을 이스라엘에게만 공유하는 영역을 허락한 거예요. 죄가 죄를 더욱더 죄 되게 하시고, 영역이 하나님과 인간이 같이 있는 영역이에요. 다른 민족은 그게 허락되지 않았어요. 이스라엘만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있는 영역에서 죄를 더욱더 죄 되게 하시는 죄가 죄로 인하여 죽는다 할 때 죄 지었는데 왜 죽어야 되는가? 이유에 대해서 인간은 몰라요.

죄 지은 건 맞는데 왜 죽어야 되는가 하는……. 죄 지었으면 죽어 마땅하지, 이건 다 아는 이야기인데 왜 죽어야 되는가? 죽음 문제, 죄와 죽음이 무슨 관계있는지 거기에 대해선 인간들이 자기 몸, 신체를 가지고 형상적으로 보여주면서도 납득이 이해가 될 수 없는 거예요. 오늘 딸기 먹었다. 그런데 왜 죽어야 돼요? 딸기와 죽음을 논하라, 이렇게 문제 내면 맞출 사람 있겠습니까? 강냉이 튀긴 것과 나 죽는 것과 무슨 상관있어요? 이게 상관이 있는 겁니다.

십계명을 줌으로써 십계명을 뭐로 보느냐 하면 이걸 율법으로 보는 거예요. 율법은 인간들만 저촉을 받는 인간들만 지켜야 될 게 아니고 하나님과 인간이 공유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십계명을 줌으로써 이 영역에서 인간도 지켜야 되지만 누구도 지켜야 돼요? 함께 계신 하나님도 지켜야 되는 거예요. 함께 계신 하나님이 뭐냐?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하는 거예요.

원래 하나님은 인간이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아닙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누가 누구와 같이 상대역 했다는 것을 인정해줄 때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있는데 실례지만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묻는 것은 내가 당신을 만날 때 뭐로 부르면 됩니까, 하고 같은 뜻이거든요. 그런데 상대를 부른다는 것은 상대를 호출하는 거예요.

상대가 나를 떠나서 가게 되면 어이, 라고 불러서 내가 그 사람을 붙들어야 돼요. 붙들려면 미꾸라지도 아니면 만지면 다 빠져나가면 안 되잖아요. 그때는 뭘 붙들어서 내가 당신을 불렀다는 이 사실, 내 경험 상에서 당신을 불렀다는 내 하는 일에 의미가 있으려면 그분이 나의 호출에 반응을 나타내줘야 돼요. 모세가 바로 출애굽기 3장에서 그걸 언급한 겁니다. 하나님과 이제는 떠나기 싫다는 겁니다. 그걸 다른 말로 이름이 무엇입니까, 묻는 거예요.

그래서 남녀가 처음 만날 때는 처음부터 본명을 이야기 못해요. 사귈 사람인지 떠날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때는 옥순이, 철수 이렇게 부르지요. 영희. 나중에 저 사람과 좀 사귈 마음이 있다싶으면 제 본명은요, 하고 속삭여주지요. 라는 선보는 예능프로에서 그렇게 나와요. 그렇게 아무도 상대하기 싫다? 나는 당신을 선택하지 않겠습니다, 하면 상당히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반응을 해서 헤어지면 끝나는 거고요.

이름을 부른다는 것, 제 이름은요 알려준다는 것은 함께 하는 네 영역에 내가 뛰어들어서 너를 떠나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같이 합류할 때 하나님께서는 곱게 오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죄를 더욱더 죄 되게 하시는 요소와 더불어서 찾아오시는 거예요. 그게 뭐냐? 십계명입니다, 율법입니다.

그렇게 해서 뭐냐? 인간은 왜 꼭 죽어야 되는지를, 선악과를 네가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는데 구체적으로 그게 왜 죽어야 되는지를, 인간이란 이름이 왜 죽어야 될 이름인지를, 인간이란 존재가 죽기 위해서 태어날 이유가 뭔지를 십계명을 통해서 이제는 밝혀집니다. 그러면 방금 이야기한 것을 여러분들이 잘 이해를 하셨지요.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라기보다도 죽어가는 인간이 왜 죽어야 되는가를 그 근거를 십계명을 통해서 주시는 겁니다. 그러면 십계명을 통해서 하나님이 같이 있는, 다른 말로 하면 인간과 함께 하나님이 떨어져 있었는데 하나님이 인간의 호출에 응답해서 이름을 가지고 주의 이름으로 공유, 주의 이름만 있는 게 아니고 인간의 이름도 있지요. 인간의 이름과 주의 이름이 섞여서 함께 하는 것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은 뭐냐 하면 인간은, 처음에는 죽는다잖아요. 인간은 멸망당한다.

죽는다는 것은 개개인이 죽을 수 있지만 멸망이란 것은 한꺼번에 다 죽는 게 멸망이에요. 한꺼번에 다 죽어요. “너는 좋겠다, 살아서.” 이런 게 없어요. 다 죽어요. 심지어 여기 이스라엘과 합류된 여호와의 이름도 죽어요. 그러니까 멸망이에요.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온 것은 죽기 위해서 오신 거예요. 인간과 더불어서 이스라엘과 멸망하기 위해서 온 겁니다. 이것 정리하면 이스라엘은 멸망의 이유를 유일하게 보여주는 민족이죠.

왜 유일하게 보여줍니까? 이스라엘은 누구와 함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함께 있기 때문에 유일하게 보여주는 민족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래서 광주강의도 그렇고요. 어제 오후설교에도 그런 이야기했는데 이스라엘은 그 이름으로 멸망당한다. 이런 말을 제가 한 적이 있어요. 이스라엘 있고 이스라엘 이름 따로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이름에 합한 이스라엘이기를 원해요. 그게 율법대로 사는 이스라엘.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함께 있기 때문에 뭐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제는 우리가 안 죽고 하나님이 함께 있는 나라이기에 하나님이 멸망시키지는 않을 것 아니겠느냐, 이렇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빠져있어서 멸망하는 건 이해되는데 하나님이 함께 있다는 데 멸망해버리면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멸망한 게 되기 때문에 이거는 그런 하나님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 멸망의 이유가 죄 때문이잖아요. 그러면 하나님이 죄를 심판하시는 분이지 죄인으로 죽는 하나님은 인간의 이름으론 상상도 못하지요. 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이스라엘이 여호와와 함께 있는 것만 생각했지 여호와가 어떤 분인지를 몰랐던 거예요. 나중에 보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를 바알 신, 우상 신과 그 차이점을 발견해낼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여호와도 자기를 위한 여호와로 오해했고, 바알 신도 이방 주변의 모든 신들이 우리를 멸망 안 되기 위해서 믿는 신들이 이방 신이거든요. 우리가 안 죽기 위해서 잘 되기 위해서 믿는 신이 이방 신이에요. 이스라엘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이름으로 멸망당하는 이스라엘 되고 만 겁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멸망될 가운데서 주의 이름의 기능이 뭐냐? 아까 제가 언급했어요. 주의 이름의 기능은 멸망당한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거죠. 그렇다면 이스라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이름이 멸망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다면 그 멸망하는 하나님의 경험과 같이 느끼는 빼내주는 사람은 누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의 명맥이 이스라엘 속에서 근근이 유지가 돼줘야 되지요.

여러분 아시다시피 갈렙과 여호수아. 갈렙과 여호수아의 취지는 뭐냐? 두 사람 빼놓고 다 죽는다, 에요. 역시 죽는다. 약속의 땅에 갈 사람은 두 사람 밖에 없습니다. 두 사람 밖에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4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던 거예요. 40년 세월이 왜 필요하냐? 두 사람 빼놓고 다 잘라내기 위해 필요한 그 기간이 40년이에요. “내가 분명히 다 죽는다했지? 이스라엘답지 않은 것, 약속의 땅에 들어갈 자격도 없는 것 자른다했지? 빈말인줄 알아? 다 잘라버린다.”

그러면 여호와의 이름은 어디 있느냐? 여호와의 이름은 갈렙과 여호수아와 함께 있다고 보면 되지요. 이걸 달리 이야기하면 갈렙과 여호수아는 다 잘릴 사람과 함께 광야를 통과했다가 되는 겁니다. 사람들은 몰랐지요. 갈렙과 여호수아가 자기들과는 별종인 것을 알 수가 없었지요. 그러면 잘라낼 때 갈렙과 여호수아가 뭐가 잘났고, 뭐가 훌륭하고, 뭐가 똑똑하고, 뭐가 착해서 그들은 살아남았느냐? 이렇게 잘린 쪽에서 묻고 싶지요.

갈렙과 여호수아는 무엇을 인정했느냐 하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자기의 멸망을 그 앞에서 당연시한 겁니다. 아까 말씀에 중간이 없었어요. 몰빵이라 하지요. 갈렙과 여호수아는 자신의 처음으로 돌아갈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뭘 믿느냐? 인간은 결코 자기를 믿어서는 안 되는 존재, 이것을 갈렙과 여호수아가 알게 된 겁니다. 내가 멸망당한다고 하면 멸망당할 걸 믿으면 안 돼요. 멸망당한다고 하신 분을 믿어야 돼요. 그게 십계명 안에 들어있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십계명 안에 너무 무서운 데라서 들어가기가 힘들어요. 들어가는 조건은 이겁니다. 다시 처음의 자리, 우리 인간의 처음 자리, 그러니까 선악과를 따먹어서 마땅히 흙으로 될 수밖에 없는 고생만 실컷 하는 거예요. 딸기농사 고생 얼마나 했습니까? 죽어라고 뭔가 ……. 그냥 죽으면 뭐하니까 맛있네, 하고 죽어가는 거예요.

어차피 인간은 이러나저러나 잘나서 살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고 자기가 있는 그 죄 때문에 짓밟히고 멸망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하나님의 약속에 말씀에 근거해서 십계명에 근거해서 그걸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것을 위해서 주님께선 이스라엘은 죽음의 공간을 통과하게 만들었어요. 너를 죽이는 환경과 네가 동일하다는 것, 그럴 때 그 이스라엘 사람들 원망했잖아요. 그러나 모세가 내세운 것은, “원망하지 마라. 지금 이 환경, 구름기둥과 불기둥 있잖아. 우리만 통과 하냐? 아니잖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있잖아. 아주 초죽음 될 환경을 더운 환경을 함께 있잖아.”

그래서 오늘날 이 시대도 이런 관점에서 갈렙과 여호수아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우린 죽어 마땅함 늘 매일 새로운 세트장을 우리에게 허락해주는 거예요. 어제까지의 구태의연한 그러한 날 죽이는 세트장 말고, 오늘 아침이 되면 또 산뜻한 세트장을 마련해주는 거예요. 꽃 활짝 피고 개나리 피고요. 꽃 믿지 마라. 꽃 지듯이 너도 곧 진다. 새로운 세트장 허락한 거예요. 그 가사에 대해서는 라는 김정호 노래에 보면 거기에 잘 나와 있어요. 너무 슬퍼하지 마라.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음 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 나비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새로운 세트장을 주는데 늘 매일같이 바뀌는 세트장 속에서 또 다시 우리 자신이 죽어 마땅하다는 것을 아는 새로운 자리로 돌아가게 만드는 새로운 세트장, 이게 우리의 매일 일상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야 돼요. 처음으로 갈 때 내 선과 악으로 따지지 말고 이미 나는 선과 악을 알게 된 자체가 나를 죽이게 만든 요소인 것을 그걸 인정하는 거예요. 죽는데 또 내일 되면 무슨 세트장이 준비될까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어떤 육십 대 사람이 3층에서 뛰어내려 죽었어요. 며칠 전에 뉴스에 나왔어요. 오백만 원 벌금을 안 내서 경찰에서 찾아온 걸 알고 빌라 3층에서 뛰어내리다 죽었습니다. 그 사람이 벌금을 왜 내느냐? 부정수표단속법에 걸려서 오백만 원 됐거든요. 왜 뛰어내렸는가? 살려고 뛰어내린 거예요. 그런데 죽어버렸어요.

그 모습이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과 똑같아요. 그냥 매사가 하나님께서 우리보고 죽으라는 세트장을 줬는데 우리는 본인의 경험만 생각해서 주님이 와서 함께 하신 주님이 나를 죽인다는 생각을 못하고 자기가 자기 선택을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믿는 거예요. 믿을 건 나밖에 없다고.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하게 되면 앞으로 연상의 여인과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앞으론 잘해줘야지. 다시 만나면. 너 한 번 내고 나 한 번 내고 해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탈출은 탈출이 안 되는데 탈출이 안 된다고 주신 쑥 들어온 예수님의 육신, 죄 있는 몸으로 오실 때 주님이 주신 게 있어요. 그게 십계명이고 그 십계명의 완성이 뭐냐?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날마다 나를 심판해주는 그게 사랑이에요. “제발 너 믿지 마라. 너 언제까지 네 생각할 건데. 내가 알아서 네 생각 잘라줄 게.”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어요.

이걸 쉽게 하기 위해서 제가 옛날 1973년도 나왔던 영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인공이 스티브 맥퀸이고요. 그리고 더스틴 호프만인데 이 두 사람이 기아나 섬이라고 브라질 북쪽에 가면 지금도 있는 프랑스 령 섬에 흉악범들 탈출 못하라고 집어넣은 거예요. 영화제목은 입니다. 나비. 가슴에다 문신했는데 그 마지막 장면이 복음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 말씀드리는 겁니다.

섬에 두 사람이 있어요. 두 사람 생각이 처음엔 같았는데 달라졌어요.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이. 탈출하자. 여덟 번 탈출했는데 다 실패로 끝났거든요. 지금 아홉 번째 탈출을 시도하는 거예요. 주인공이 스티브 맥퀸이니까, 하자. 그때 어떻게 하느냐? 내가 섬에 가서 조류를 봤다는 거예요. 첫 번째 조류가 와서 그냥 머물러요. 두 번째 조류도 그냥 머물러요. 그런데 일곱 번째 조류는 들어왔다가 그것도 근처로 가면 소용없고 먼 바다로 가는 것을 유심히 관찰해서 파악을 해놨어요. 일곱입니다. 안식일이죠. 1234567, seven, 안식일마다 왔다가 나가는 거예요. 코코넛 껍질로 가마니로 짜서 두 개를 준비해놨어요. 같이 가자고.

그럴 때 마지막 장면에서 남겠다고, “내가 나이 많아서 가본들 무슨 낙을 보겠나. 나 이 섬에서 농사짓다가 죽일래.” 거긴 간수도 없어요. 그냥 죽으라, 이 말이에요. 남은 사람 이름이 드가에요(더스틴 호프만). 마지막 장면이에요. 일곱 번째 조류가 밀려오는데 이 사람이 “할 말이 있어.” 그러니까 주인공이 “나도 알아.” “정말 미안해.” “나도 알아(I know).” “자네 죽을 거야.” 그러니까 거기서 주인공 하는 말이, “Maybe” 어쩌면……. 그래서 마지막으로, “제발 그만두게.” 그러니까 아무 소리도 안 하고 껴안습니다. 친구와 헤어질 마지막에 아무 소리 안 하고 그만 못 둬, 이런 소리도 안 하고 그냥 껴안아요. 죽을 자와 산 자의 마지막 포옹이에요.

영화는 실화인데 그렇게 일곱 번째 조류대로 코코넛 껍질로 엮은 뗏목 타고 실제로 성공했어요. 1918년도인가 성공을 했습니다만 관객들 입장에선 성공할지 안 할지 아무도 몰라요. Maybe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 이 말이죠. 그래서 그 사람은 탈출 성공했어요. 그 영화의 주제가 뭐냐? 탈출이에요. 나비처럼 자유롭고, 바람 같이 자유롭게. 잉글버트 험퍼딩크(Engelbert Humperdinck)가 그 주제곡 노래를 불렀어요. 바람처럼 자유롭게(Free as the Wind)란 가사를 붙여서 노래가 나왔거든요.

갈렙과 여호수아가 정말 특이한 사람이라니까요. 이게 영화에선 앞으로 잘될 거라고 하는데 실제 우리 인생에서는 앞으로 잘될 걸 생각하면 안 되고 여기 와있는 십계명 앞에서 내가 누군지 알아야 돼요. 그게 자유에요. 십계명 그냥 준 게 아닙니다. 네 자신을 모르면 끝까지 자신을 믿게 돼요. 자기의 자유를 믿게 되고, 자기의 희망과 포부를 믿게 되고, 자기의 목적을 믿게 되고.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이 내다보면 인간이 제일 어리석은 게 뭐냐 하면 희망을 갖는 거예요. 지 주제파악이 안 됐다 이 말이거든요. 희망과 목적을 갖는 거예요. 나의 한계, 딸기농사 지을래, 이런 것 있잖아요. 안 돼. 미안해. 못하겠어. Maybe 어쩌면. ‘어쩌면’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것은 그 ‘어쩌면’을 가짜로 잘라내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약속의 땅에다가 강력한 도저히 인간으로선 불가능한 사람들, 토착민들 쫙 깔아놨잖아요.

그리고 실제로 인간의 경험은 자기 자신의 믿음에서 도저히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열두 정탐꾼을 보낸 겁니다. 가보니까 가본 사람, 갈렙과 여호수아 빼놓고 모든 사람은 자기의 경험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거예요. “역시 좋은 땅이었습니다만 실패할 거야. 그들은 우리보다 강했어. 따라서 우리가 있을 자리는 없어.” 그리고 갈렙과 여호수아에게 “제발 그만둬. 나의 선택이 당신 선택보다 위험성이 적다.”

위험성이 적다는 말은 내가 잘만 하면 죽을 때까지는 여유 있게 살 수 있잖아. 이것이 바로 주님이 규정한 멸망과 배치되는 마음가짐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자를 솎아내지요. 철저하게 이 가라지를 주께서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철저하게 가려냅니다. 뭐로? 십계명으로. 이제 십계명에 들어가도 되겠지요. 철저하게 가려내요. 희망을 갖고 신앙이란 걸 흉내 내면서 Maybe 아마도 예수 믿으면 구원되겠지, 라는 것 있잖아요. 그런 사람 부정수표방지법에 의해서 전부 다 걸러냅니다. 다 뽑아냅니다. 가짜들 다 뽑아내요.

처음으로 돌아가야 돼요. 처음으로 돌아가려면 처음의 체험을 해야 되는데 이 체험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 자살해도 안 돼요. 그런데 함께 계신 주님의 십자가 체험을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때마다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세트장을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세트장을 새롭게 매일같이 설치합니다. 이게 더불어 함께 하는 거예요.

그러면 십계명 들어가 봅시다. 들어갈 때 이 원칙만 지키면 됩니다. 자, 십계명 지키겠습니다, 이렇게 들어오면 안 되고 이렇게 해야 돼요. 마귀와 같이 십계명 지키기, 이것만 하면 됩니다. 마귀와 같이 하면 돼요. 왜? 우리는 이미 마귀에 종속된 존재기 때문에 십계명을 대할 때 어떤 안목으로 대하면 된다? 마귀가 십계명을 대하는 것처럼 같이 대하면 돼요.

이번에 여름수련회 때 갈라디아서 하거든요. 갈라디아서가 이 방식을 사용합니다. 율법과 더불어, 에요. 율법과 더불어 들어가야 그래야 십자가의 대신 죽으심이 드러나요. 십자가를 믿어서 구원받지 못합니다. 십자가가 내 대신 십자가를 믿으려는 나를 대신 죽어야 그래야 구원받아요. 우리는 십자가를 믿을 생각하고 덥석 달려들어서 십자가를 가질 생각하고 십자가 효과를 얻을 생각하지 그런 짓을 하는 십자가 이용해서 천당까지 들어가려는 내가 십자가에 의하면 죽어 마땅한 절대로 구원받지 않아야 될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로 십자가가 폭로시켜주거든요.

그래서 십계명은 뭐냐? 십계명은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이거에요. “드루와, 드루와!” (박훈정 감독, 2012)에서 황정민(정청 역)이 했던 드루와. 그냥 혼자 들어오지 말고 누구와 더불어 들어오라? 마귀와 같이 들어와. 율법 속에 들어오란 말이죠. 갈라디아서 3장에 율법 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 뭐 아래 있다? 저주 아래 있는 거예요. 그걸 저주를 저주되기 위해서 율법을 줬거든요. 십계명 줬잖아요.

그런데 거기는 인간이 혼자 들어올 생각하면 그건 잘못이에요. 너와 함께 있는 너로 하여금 목적과 미래와 희망과 살려고 애를 쓰는 그렇게 너를 그런 인간으로 만들어버린 어떤 경우라도 희망의 끝을 놓지 않으려는 그 존재, 같이 드루와, 십계명 속에 들어와 버려! 이게 십계명의 취지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이 일방적으로 줘버렸지요. 십계명을 요구한 적 없어요. 인간이 하나님 믿었으니까 법대로 지켜야 되냐 요구한 적 없어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들어올 때 인간들은 자기가 홀로 있다고 생각했지 마귀가 함께 있다고 생각 못했거든요. 모세가 떠나고 난 뒤에 그들은 자기의 본색이 나올 때 제1계명이 나와 버렸어요. 1계명과 2계명, “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라는 이 이야기가 하늘나라에 미리 준비됐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예요.

이게 슈뢰딩거의 고양이에요. 슈뢰딩거가 사고 실험할 때 고양이에서 관찰하기 전에는 고양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지만 인간의 관찰행위 자체가 고양이를 죽은 고양이냐, 산 고양이냐 확률 상 50%을 만들어버린다는 이론이 슈뢰딩거의 고양이, 양자물리학의 이론입니다. 인간은 관찰함에 의해서 결과를 본인이 조성한 결과만 다시 챙긴다는 이론이에요. 희한하죠.

관찰하기 전까지는 그게 어떻게 되는지를 모른다가 아니라 아예 그런 현상이 안 일어난다는 거죠. 우리는 이 안에 뭐가 있는지 관찰하면 알지, 이거는 양자물리학 말고 그냥 물리학이에요. 그런데 안에 뭐가 있는지 없는지는 그 결정을 안쪽에서 인간에게 요청한 거예요. 네가 보고 싶은 대로 보여줄 준비가 돼 있다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이에요.

하나님 말씀 오면 잘 지켜야지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 이전에 네가 행동에 대해서 나는 지적할 준비가 돼 있는 거예요. 네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간에. 십계명 제1계명, 2계명은 인간과 짜고 치는 고스톱 같아. 제일 첫 계명이 뭐냐? 우상 섬기지 말라는 거예요. 제삼자 관찰자 입장에서는 십계명은 그냥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탁한 걸로 돼 있고 거기에 하나님이 인간을 관찰했다는 내용은 없는데 모세를 보내고 산 밑에 있는 인간들은 어떤 짓을 했어요. 우상 만든 짓을 했다고요. 모세가 올라갔을 때 잘 들어보세요. 제 말도 어렵지만.

모세가 올라가기 전에 우상 만들었습니까, 안 만들었습니까? 우상 안 만들었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면 모세가 올라가기 전에 이미 너희는 우상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미리 예견하시고 우상 만들면 너 나와 관계 끝났어, 라는 조항의 계명을 십계명에서 미리 준비한 거예요. 그러면 이 말은 뭔 뜻이냐 하면 십계명에서 지적해서 너는 필히 꼭 멸망해야 돼, 라는 그 말씀의 취지를 드러내기 위해서 인간은 뭣도 모르는 하나님의 내용도 모르면서 멸망돼야 될 짓거리만 본인이 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이 말이죠. 재미있지 않습니까?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고양이가 인간을 놀리는 것 같아. 왜? 죽는 것 궁금해? 죽어줄게. 사는 것 궁금해? 살아있을 게. 이 결정을 관찰하는 인간이 결정하는 게 아니고 있지도 않은 고양이가 없는데 고양이가 있어. 고양이가 결정하는 거예요. 고양이는 있겠지요. 인간이 넣어놨으니까. 고양이는 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인간이 관찰하는 대로 너희 원하는 대로 까꿍 해줄게, 이런 뜻이에요. 이게 양자물리학입니다. 양자 얽힘까지 더 나가요. 뭐냐 하면 너희 뭐 보고 싶은데? 보고 싶은 대로 변신해줄게, 이거에요. 왜? 이 대자연 자체가.

그러니까 인간은 자기가 관찰한 범주 밖으로 때려죽어도 못 벗어나죠. 인간은 갇혔지요. 무엇의 관찰에? 자기 관찰. 자기 관찰에 관여하는 자가 누구다? 마귀. 인간은 마귀의 범주에서 못 벗어나는 거예요. 내가 그리워하고 내가 사랑한 사람 그 바운드 안에서만 인간의 자기 세계에요. 잊어버리면 되는데 잊어버리질 못하고 그 생각에서 하는 거예요. 아버지, 어머니, 형제. 세월호도 그렇고 이태원에서 떠밀려 죽은 애도 그 부모는 잊지를 못해. 왜? 내가 그리워하고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우크라이나 전쟁은 필요 없어요. 자기 영역 밖이에요.

바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살 때 예수님 중심으로 생각한 게 그거에요. 내 아들 어떻게 했어? 딱 하나님은 그것 밖에 몰라요. 너희들이 내 아들 어떻게 했어? “저, 착한 데요.” “착하고 뭐고 간에 내 아들 어떻게 취급했어? 너는 내 아들 안 믿으려했잖아.” “믿으려했지요.” 하지만 믿으려했던 것은 마귀가 시켜서 믿은 거잖아요. 이것도 저것도 챙기지만 예수 믿으면 나중에 구원받을 수 있다는 하나의 가능성, 목적, 미래, 기대, 희망. 예수 믿는 것이 하나의 희망이 된 거예요.

뭐냐 하면 악마가 주장하는 것은 이겁니다. 이 소리 들으면 듣지도 않겠지만 기절할 거예요. 악마가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 네가 이 세상 마지막 생존자다. 이걸 우리에게 요구하는 거예요. 교회에 요구하는 거예요. 이 세상은 다 멸망해도 교회는 살아남아야 될 이유가, “멸망하는 이 세상에 네가 마지막 생존자 역할 해야지.” 이것 왜 합니까? 마귀가 이렇게 하는 거예요.

마귀가 이런 소릴 한다는 말은 인간이 아무리 종교적으로 노력해도 마지막 골키퍼를 젖힐 수 없어요. 손흥민이도 안 돼. 악마라는 골키퍼를 젖힐 수 없어요. 인간이 어디까지 생각하든지 간에 부처 손바닥 안이에요. 마귀 손바닥 안이에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하는 것은 예수님과의 공유 경험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뭐냐 하면 우리는 이미 죽었고, 끝나버렸어요. 이미 죽었고. 또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고. ‘죽었고’ 하면 되는데 마지막 생존자가 되려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죽을 뻔한 걸 자꾸 원해요. 죽을 뻔했네, 십자가 아니면 큰일 날 뻔했다. 이런 식이에요. 이거 뭐하는 짓거리에요, 그게.

천국을 최종적으로 막는 자가 누구겠어요, 막는 마지막 보루가 누구라고? 천국을 가로막는 것, 마태복음에 나오잖아요. 이 바리새인처럼 오늘날 교회에요. 교회가 천국 문을 막지요.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을 막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멸망돼야 되는데 이스라엘의 거짓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기어이 이스라엘을 살리고자 애를 썼습니다. 성전은 망하지 않는다. 성전이즘에 그들은 미쳐버렸어요.

근데 어제 오후설교 때 예레미야는 뭐라 합니까? 이곳은 성전이 아니다. 한 번이 아니라 세 번 이야기했어요. 다짐에 다짐을 하는 거예요. 베드로가 몇 번 부인했습니까? 세 번. 닭이 몇 번 울었습니까? 세 번. 요한계시록에 저주 있다고 몇 번 합니까? 드론 띄워서 화로다, 화로다, 화로다. 확정된 것, 기대나 희망 추가해봐야 아무짝도 소용없는 것, 확정된 것은 그냥 확정된 거예요.

십자가의 죽었다는 체험을 공유하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십계명의 완성으로서 우리에게 주시는 거예요. 오늘 십계명 좀 들어가려하는 데 기껏 1계명, 2계명에 또 튕겨 나와 버렸네. 다음 시간에.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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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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