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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양20230316a말2장5절(함께 죽음)-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말라기

안양20230316a말2장5절(함께 죽음)-이 근호 목사

말라기2장1절~5절에서 읽어보면,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이리 되어있지요.

이 말씀을 우리가 보면서 어떤 압박감을 받느냐 하면, 제사장이 드리는 그 제사. 제사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다 알아야 된다는 그걸 우리한테 그런 기초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4절에 보면,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 이렇게 되어있거든요. 이것은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초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레위와 세운 언약. 너희들이 들어본 적 있었지? 그치?” 이런 뜻이다 말이죠.

그러면 이방인인 우리 입장에서 레위와 세운 언약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뭔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면 되잖아. 레위라는 말을 왜 집어넣어야 되고, 언약이라는 말이 왜 집어넣어야 되고, 생명과 평강이 들어왔다는 말은 이 언약 바깥에는 생명이 없고 평강도 없고, 그렇다는 뜻이고요.

2장2절에 보게 되면, 내가 복을 저주하리라. 너희에게 준 복을 뭐로 바꾼다는 말입니까? 복을 줬지만 복을 뭐로 바뀐다? 저주로 내가 바뀌게 하겠다. 바뀔 수 있는 계약이라면 애초에 우리가 알았던 자체에 대해서 신뢰감이 확 떨어지겠지요. “내 식대로 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나 도중에 바꿀게.” 애초부터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계약할 때에 복이 저주로 바뀐다는 그런 조항은 없었잖아요.

실컷 하나님을 믿어놨더니만 어떻게 됐습니까? 복 받은 줄 알았더니만 이게 뭐가 되었다? 저주가 되었다면 그동안 줄곧 하나님을 믿습니다. 신뢰합니다. 나는 꼭 믿습니다. 이렇게 했던 모든 우리의 각오와 결심이 허사로 끝나버리지요. 복이 저주로 바뀐다고 진작 이야기했더라면 우리도 몰빵하지 않고 어느 정도 피할 곳을 딱 내 것을 챙기고 이렇게 할 건데, 복 줄게 해서 다 투자했는데, 그 복은 저주였다. 이 시점에 와서 완전 깽판 나버리면 우리가 하나님 뭘 믿느냐, 뭘 믿을만해서 믿느냐 말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요거 하나 정리할 수 있어요. 하나님은 계약자 위주가 아니다. 하나님은 뭐 위주냐 하면, 계약이 위주다. 그러면 이 계약자. 하나님의 언약을 믿겠다고 온 사람은 계약 앞에 와서 튕겨나옴으로서 계약의 본질과 진수를 드러내겠다는 거예요. 아주 무시무시하지 않습니까.

이 전세 계약에 도장 찍으세요. 할 때, “그러면 당신과 우리는 계약 맺은 겁니다.” 딱 계약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허위 계약서, 허위 사기, “나는 당신과 계약을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철회하겠습니다. 무효로 하겠습니다.” “그럼 계약금 돌려주세요.” “못 돌려줍니다.” “왜요?” “당신이 맘에 안 들기 때문에요.” 이런 세상에. 이런 계약이 어디 있어요. 이런 계약이.

그럼 처음부터 계약을 하지 말든지. 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 해놓고는 이제 와서 딴 소리한다 말이지요. 주님께서는 계약자를 내치는 이유는 딱 이거에요. 너는 계약을 믿은 게 아니고, 계약 맺은 너는 너 자신을 믿었다. 너 자신을 믿었다. 너가 제사장으로서 제사하면서 나한테 희생제물을 가져왔는데, 나는 그걸 똥으로 여긴다. 3절에 나오지요. 나는 너를 똥으로 여긴다. 일방적인 단언이고 선언을 하는 겁니다. 나는 너를 제사를 더러워서 안 받겠다.

그러면 인간 입장에서 지금에 와서 그럼 우리는 최선인데, 우리가 할 수 있는 도리를 했는데, 여기서 더럽다, 안 받는다 해버리면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평강과 영생이 있으니까, “생명과 영생을 얻을 그러한 기회는 애초부터 우리한테 없었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나올 수 있겠지요. 하나님께서는 “없다. 처음부터 없다.”

무슨 이런 게 다 있어. 진짜 욕 나올만 하잖아요. 너는 너 자신을 믿었다. 하지만, 세상치고 지 자신 안 믿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 거예요. 너는 나를 믿을 때, 너는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 믿는 너 자신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이야기에요. 너는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을 믿는 너 자신을 니가 믿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니는 너 하나님을 믿는 너 자신을 믿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이야기하면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하나님 믿는지 안 믿는지 점검에 나서는데, 내가 늘 평가를 해야 되는데, 그 평가 없이 잘 믿었다, 못 믿었다, 를 어떤 수로 판정을 할 수 있느냐 되는 거죠.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니가 레위언약을 모른다는 거예요. 자, 레위언약. 레위언약은 뭐냐, 여기 4절에 레위언약을 세운 나의 언약은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했는데 레위 언약이 뭐였는가. 레위 언약은 이런 구덩이 하나를 만들어 놓고 그 구덩이에 레위 언약을 믿는 하나님과 레위 언약을 지시한 선지자와 백성들과 전부다 죽음 속으로 빠지는 것. 이게 언약입니다. 희생물도 빠지고요. 희생물 어린양, 소,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음 속으로 다 빠트리는 게 레위 언약이라는 거예요.

실제로 초반에 레위 언약이 진행될 때, 이 문제를 초반에 어떻게 시작했는가를 보면 여러분들이 이해하실 거예요. 어떤 두 사람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둘 다 술 먹고, 한 쪽은 운전하고 가다가 차가 가로수에 박아서 조수석에 사람이 죽던지 운전석에 사람이 죽던지 한 사람이 죽었다 칩시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죽은 사람이 편하겠습니까, 살아남은 사람이 편하겠습니까. 죽은 사람이 편해요. 치어 죽인 사람은 욕을 바가지 바가지 얻어먹습니다. 바로 레위 언약이 그렇게 시작되는 거예요. 살아남은 자의 수모. 살아남은 자의 수모를 니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레위언약은 죽은 자를 희생으로 해서 산자가 덤벅으로 얻어먹을 각오로 살아남은 자가 레위지파입니다. 그게 출애굽기 32장 26절에서 29절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이렇게 보게 되면 구원 받는다는 게 제가 계속해서 압박감을 주는 이유가 구원 받는다는 것이 이게 있을 수 없는 일을 지금 제가 강하게 강조하는 거예요. 인간이 천국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성경이 이렇게 두꺼운 거예요. 천국 간다고 여겼던 자를 계속 탈락시키는 여정이 구약성경이고, 신약성경이에요.

출애굽기32장26~28절에 보면,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자기 아들을,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형제 죽이고, 친구 죽이고, 이웃사람 죽였어요. 그래서 죽은 사람이 몇 명이냐, 삼 천명 죽었습니다.

왜 죽였느냐 하면, 그들이 모세가 떠난 그 사이에 황금송아지 만들어서 여호와라고 우상 섬겼다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징벌을 내리는 그 장면이에요. 삼천명 죽었는데. 자 이 상황이 우리들 상황에 있다고 봅시다. 삼천명이 죽었어요. 다 고생했던 사람입니다. 이 죽은 삼천 명이 놀다가 죽은 사람이 아니에요. 시내산까지 고생 고생하면서 온 사람들이고 유월절 어린양 다 바른 사람들이고 홍해 건너왔던 사람들이고 홍해 건너올 때 찬양했던 사람입니다. 만나와 물을 먹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29절에,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그래서 레위지파가 특수한 지파가 된 거예요. 이게 레위언약이에요. 하나님의 지시를 그냥 그대로 해서 적을 친 게 아니에요. 같은 형제, 같은 가족, 같은 친구, 이웃을 죽이는데 있어서 주저 없이 나섰던 것을 29절에서는 하나님 앞에 헌신했다. 그래서 그 헌신한 집단이 레위지파였습니다. 욕을 바가지 바가지 얻어먹게 되어있지요.

어떻게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을 레위지파가 거침없이 나서서 해버렸잖아요. 거침없이. 같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러한 짓거리를 아주 주저 없이 해버린 것을 여기서는 여호와께 헌신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인간을 죽이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누구한테 맡기느냐 하면, 같은 이스라엘지파인 레위지파한테 그걸 맡김으로서 레위지파가 그때부터 하나님과의 언약대상자로서 대표자가 된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간신배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지요. 간신배 역할을.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지요. 선생님이 자기 애들 때리기 싫으니까, “여기 애 때리고 싶은 사람 나와!” 그 애 보고 친구들 패라고 시켜놓고, 선생님은 팔짱 끼고 옆에서 해가지고 다 줘패니까, “오늘부터 반장해!” 그런 것처럼. 천인 공노할 간신배지요. 그 간신배인데 하나님께서 언약 상대자로 해서 이름이 무슨 언약? 레위언약.

그게 민수기에도 나와요. 민수기25장에도 나옵니다. 이방제단에 참여했던 것 때문에 하나님이 분노했고,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전체에 퍼지니까 모세가 대단한 결정을 합니다. 대표로 죽을 사람. 대표로 죽일 사람을 죽이는데 여기에 나섰던 사람이 11절에,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여기서 내 질투심, 내가 누구냐 하면 여호와 질투심이에요. 여호와의 입장에서 사태를 보는 사람이에요. 여호와의 입장에서.

‘이거 다 죽여버려야지.’ 라는 고 입장과 동일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어떻게 했는가, 그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그쳤는데 그 때까지 죽은 자가 이만사천명 죽였습니다. 이만 사천명. 적군에게 패배해서 죽은 게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복종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죽은 겁니다. 이 죽음에 있어서는 예행연습도 없었습니다. 한 번 해보고 나쁘면 안 해야지. 이런 게 없었어요.

이건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언약 계약자를 살리겠다는 게 아니고, 언약이라는 것이 이스라엘 속에서 어떻게 피어나고, 어떻게 형성되느냐를 보이는데 주께서 집중하시는 거예요. 모든 사람을 다 죽이고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홀로 부활시킨 이유는 모든 사람을 다 죽이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애초부터, 범죄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거예요.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 “다 죽어도 나는 상관없어. 내 아들만 건지면 되는 거야. 아들도 아닌데 내가 왜 건져?” 이게 하나님의 질투심이에요.

사람이 숫자가 아깝다든지, 사람이 귀하다든지, 그런 안목은 일체 없습니다. 내 아들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에 넣어주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습니다. 주님은 그 의지를 받들어서, 그 의지를 자기 것으로 가져와서, 주님이 허용했지만, 주님이기 때문에 허용했지만. 가져와가지고 자기 이름책에 기록된 사람만 살리고 나머지는 다 죽이는 거예요. 자기 이름책에.

그럼 자기 이름책에 기록된 것은 뭐냐 하면, 대신 죽으심이거든요. 그 대신 죽었다는 말은 흔히 아까 공식, 잘못된 공식 봅시다. 나는 레위지파, 레위언약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지금 이것 때문에 문제되거든요. 나는 레위지파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걸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은 레위지파에 대해서 뭔가 니가 오해하고 있으니까, “믿습니다.” 하게 되면, ‘레위지파가 나한테 해당 된다.’ 이리 생각한 거예요. 나도 멀쩡하고 레위지파도 멀쩡하다. 이런 것을 인간들은 상상하는데 실제로 레위지파는 이런 게 없다는 겁니다. 레위지파는 레위 지파의 주인공 예수님도 여기 죽음에 들어가고 희생제물도 들어가고 완전히 부대찌개 같은 거예요. 여기에 다 들어가요. 솥 안에. 솥 안에 햄 들어가고 소시지 들어가고 당면 들어가고, 라면 스프도 들어가면 더 맛있어요. 다 집어넣어야 돼요.

다시 말해서 나와 너는 죽음 속에서 만나자. 죽음 속에서. 멀쩡하게 살아서 주여, 믿습니다. 주께서는 일체 그런 것은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니와 나와의 만남은 죽음 속에서 만나자. 그러면 아까 음주운전 사고 났던 예처럼 죽은 자가 편하냐, 죽여야 될 자를 죽이는 그 자들이 편하냐, 죽은 자들이 편하겠지요.

주님께서는 레위를 살려서 자기 손으로 자기 형제 이스라엘을 죽였던 그들. 지파를 살림으로서 레위지파가 제대로 레위지파만큼 못한다면 니도 끝장난다는 것을 말라기에서 말해주는 겁니다. 이 제사장들아! 이 레위인들아! 초반에 레위언약이 어떻게 만들어졌는데. 너희들은 이제 와서 마음이 안일해가지고 배불렀다 이거지. 편안하다 이거지. 이제는 형식적인 제사 반복해서 정기적으로 조상 제사 드리듯이 날자 맞춰 제사 드리면 내가 너희들 영생 준다고 그렇게 너희들은 내 언약을 그런 식으로 그 딴 식으로 그렇게 오해했다면 이제는 너희들이 레위지파에 따라서 죽을 차례다. 너희는 영원히 죽어야 돼! 그게 말라기에요.

그렇다면 이 레위지파가 출애굽기, 민수기에서 우리가 보는 건 말라기잖아요. 그럼 그 사이에 레위지파는 잠잠하게 그냥 끽소리 안 하고 조용하게 갔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레위지파는 그렇게 곱게 흘러갈 지파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망한 이유가 레위지파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 못했고 대응하지 못해서 망했습니다. 그게 사사기 17장에 나옵니다. 상당히 복잡한 이야기가 구조로 되어있고요, 그 레위지파의 운명이 이스라엘을 결정했다는 이게 두께가 있는 아주 두꺼운 이야기지만, 알기 쉽도록 제가 이야기해볼게요.

사사기17장6절을 보면,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이리 되어있지요. 왕이 없음으로 자기 소견으로 행했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이런 뜻이에요. 레위지파 언약 또는 레위언약이라 합시다. 레위언약이 정상적으로 가동될 때 이 레위지파의 정상적으로 가동될 때 그 위에 뭐가 있느냐 하면, 왕 언약이 와요. 왕 언약은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언약은 무슨 언약이냐 하면, 다윗언약이라고 하는 겁니다. 다윗 언약.

레위지파가 실패해서 다윗 언약이 있는 게 아니고, 왕이 레위지파를 완성하는 차원에서 왕이 등장하는 거예요. 원래 인간 왕은 필요 없어요. 그럼 누구 왕이 필요하냐,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에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밑에는 이스라엘 전체가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겁니다. 제사장 나라. 여러분이 아는 거지만, 이 이야기를 진척하기 위해서는 아는 거지만 정리하고, 딱딱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임금님이 필요 없어요. 쉽게 말해서 인간이 인간을 지배할 권한이 없습니다. 자격이 안돼요. 둘 다 죄인인데, 누굴 자격을 해요. 이걸 단도직입적으로 짧게 해보면 이렇습니다. “인간아! 인간을 믿지 마라.” 인간아! 인간을 믿지 마라. 나이 한 50대 후반부터 60중반, 후반까지 나오는 부부싸움에 나오는 멘트 있지요. 인간아! 인간아~~ 인간아~~, 그런데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결혼식 할 때 자기 남편이 아내보고 이런 소리 안하지요. 으이그, 인간아. 그 때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일단 살아보고. 일단은 살아보고요. 20대 후반 살아봤는데 40년 살아보니까, 인간아~~, 이리 된 거예요. 으이구, 내가 니를 믿고 불쌍하다. 정말. 내 청춘 돌려도. 내가 또 무대한 번 쳐볼까. 무대 밑에 한번 쳐가지고 청춘 돌려달라고 한 번 해 봐! 이리 나오지요.

하나님에는 제사장 나라, 레위언약입니다. 레위언약을 통해서 인간은 인간을 믿어서는 안 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왕으로 되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게 충분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제사장 언약에 대해서 레위언약에 대해서 인간의 그 취지가 점점 더 옅어지니까, 취지에 대해서 완전히 사람의 관심이 없으니까, 다른 나라 잘사니까, 이방나라 잘사니까, 이방나라 잘사는 이유를 보니까, 다들 왕이 있네요. 그 왕이 어떤 왕이냐 하면, 영웅적인 왕이에요. 영웅적인. 영웅적인 왕은 눈에 보인다는 특색이 있어요. 특정 왕. 안중근 의사. 의사치고 최고의 의사는 안중근의사에요. 눈에 보이잖아요.

안중근 의사가 만약에 살아있으면 대통령감이지요. 그렇지요. 윤석열보다 표 더 많이 받을까싶어. 유관순누님. 살아있다면 여자 국회의원 나올법하다 말이지요. 인간은 혹하는 거예요. 아무리 우리는 이스라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도 아무리 큰소리치고 믿음 있는 척척척하지만, 이방나라의 모습이 그들의 내면의 모습이었던 겁니다.

유혹을 안 받을 수가 없지요. 자기의 본모습을 옆에서 약을 올리고 있으니까. 그 나라가 못살면 말이 없어. 그런데 더 잘살아요. 하나님 믿는 사람보다 본색대로 하는 게 더 잘살아요. 그러니까 사는 게 힘드니까, 그 나라가 힘이 세니까, 지배를 받으니까, 우리도 옆의 나라처럼 우리 편한 대로 우리 친근한 대로 우리 가는대로 합시다.

그게 뭐냐, 훌륭한 영웅을 주셔가지고 우리는 눈에 보이는 그 사람 말 따박따박 말들어가지고 다 들을 테니까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왕을 허락해주소서.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이 뭐라고 하느냐, “너그들 맛 갔다. 너그 이스라엘 아니야.” 그들은 뭐냐 하면 언약을 잊어버렸어요. 레위언약을 잊어버렸어요. 레위언약은 우리가 마땅히 죽어 마땅한 레위지파가 하나님 앞에 헌신했기 때문에 그나마 우리가 꾸역꾸역 살고 있다는 레위지파의 본래 취지 있잖아요. 출애굽기32장, 민수기25장.

그래서 인간은 무엇을 하느냐 하면, 20대후반이나 30대초반에 결혼할 때, “나는 당신만 믿을게.” 나온 거예요. “인간아!” 인간을 뭐합니까? 믿지마라. 찍지마라. 하는 건데. 멘트가. 인간은 인간을 믿어서는 안 되는데 하나님 믿는 것은 너무 멀어. 하나님이 너무 멀리 있는 거예요. 아스라이. 까마득히. 너무 모호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허구를 잡는 거 같아요. 그러나 인간을 믿는 것은 대화가 돼요. 인간은 인간을 믿는 것이 더욱 더 믿음직스러운 느낌이 확 오는 거예요. 하나님 믿는 것보다 목사 믿는 것이 더 낫듯이. 더 믿는 것처럼.

허황된 하나님보다 인간을 믿자, 라는 것이 이게 레위지파의 언약에 의하면 인간이 죽어 마땅한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뭐냐 하면, 레위언약이 계속 있는 한, 그 다음부터 계속 언약이 진행되면서 그 상황에 퍼지는 상황들은 이래서 인간은 진작 죽어야 돼! 그 상황만 이스라엘 역사 끝날 때까지 계속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언약 계약자를 믿는 게 아니고, 언약을 믿는 거예요. 언약을. 그럼 레위언약의 끝은 뭐냐, 대신 죽음입니다. 대신 죽음.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다 죽을께.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 죽고 나죽고 다 죽는데. 먼저 첫 번째 부활로 먼저 나를 부활시키면 줄줄이 소시지 있잖아요. 알알이 소시지. 예수님 부활하고 나면 예수 이름으로 다 붙어서 알알이 다 기어 나오는 거예요. 죽음에서 부활로 기어 나오는 방식이 언약의 완성입니다. 줄줄이 소시지. 우리 사촌누이 회사가 알알이 메주에요. 줄잡고 나오는 거예요. 제일 앞에는 맏이. 그래서 하나님이 맏아들이 되게 하심이라.

맏이가 천국에 걸쳐있으니까 나머지 막내까지, 어제 수요일날 방향성했지요. 크기보다 방향성이라고. 베들레헴에 태어난 그 분이 천국으로 가니까 이게 하나의 긴 객차처럼 딸려 같이 구원받는 방식인데, 그것이 레위언약의 완성입니다. 그래서 맏이 되시는 주님이 죽음에 들어갔잖아요.

따라서 그 뒤에 부활에 이르는 사람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에 걸쳐야 돼요. 이걸 세례라고 합니다. 로마서6장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줄줄이 소시지처럼 살 것이라. 그 방식을 사용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기존의 모든 한국교회 믿음은 다 엉터리입니다. 믿어라!가 아니라, 죽자! 가 되어야 돼요. 우리 죽음에서 만나자. 나는 나의 죽음에서 죽을 테니까 나의 죽는 자리에 너희 같이 죽자.

사사기17장6절에 보면,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렇게 되어있지요. 그 다음에 7절,8절에,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서 거류하였더라 그 사람이 거주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이리 되어있어요.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왕이 있는 나라를 선망하기 때문에, 선호하기 때문에 하나님 믿는 신앙이 날아가버렸어요. 날아가버리니까 뭐가 해체되느냐 하면 이 지파 자체가 이건 뿔뿔이 누가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뿔뿔히 헤어져서 지 먹을 건 지가 챙겨야 돼요. 투잡, 쓰리잡하는 목사. 챙겨주지를 않아요.

그래서 9절,10절에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 이리 되어있는데. 이 미가가 어떤 집이냐 하면요, 3절에 보면, 우상을 만든 집이에요. 드라빔이라는 우상을 만들어가지고, 그 신상에게 4절에 나오지요. 은장색을 우상을 만들어서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그 신상을 세워놓고 뭐가 필요하느냐 하면, 그 신상을 모실 제사장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때마침 떠돌이 레위인이 오니까 우리 집에서 연봉 얼마 받고, 옷주고, 거주지 줄 테니까 이제는 우리 가정에 축복을 위해서 니가 여기서 사적인 제사장 노릇 해라. 지금 이스라엘 사태가 이 지경이 되어버린 거예요. 복 빌어주는 거예요. 역할이. 병원의 원목, 군에 군목, 기독교 학교의 교목, 회사의 목사, 전부 다 같은 신세에요. 같은 처지에요. 병원에 원목으로 있으면서 이 병원 망하라. 이런 건 용납 안 되고요, 교목으로 있으면서 우리 학교 서울대학 많이 들어가지 말라. 그렇게 기도하는 목사는 학교에 버텨낼 수 없어요. 고등학교가 의대 많이 가는 고등학교가 우수한 고등학교가 아니야. 주의 영광을 위해서. 이렇게 하다가는 월, 연봉이고 뭐고 추방되지요. 목사가 그런 식으로 빌어먹고 살아야 되는 시대에요. 그 시대가.

언약을 위해서 죽겠다는 게 아니고 마땅함이 통하는 세계가 아니라, 살아 마땅함이 통하는 세계에 지금 레위인들이 떠돌이 신세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가 18장에 보게 되면 이 개인집에 연봉받고 살다가 18장에 오면 단지파가 역시 땅이 없어 돌아다니다가 누굴 만나느냐 하면 사사기18장18절, 19절에 보면, “그 다섯 사람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지고 나오매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하니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족속의 제사장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낫겠느냐 하는지라” 미가 집에 있을 때에 레위 청년이 단지파를 만났어요. “나를 고용해서 자기 제사장을 삼았느니라.” 이렇게 하니까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제부터는 니가 개인적인 제사장하지 말고, 우리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라. 18장, 19절에.

19절에,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족속의 제사장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낫겠느냐 하는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어느 것이 더 낫겠느냐. 라고 하면서 사사기에 반복해서 나오는 것이 그 당시에 왕이 없음으로 다시 말해서 무엇이 와해됨으로서, 이스라엘은 왕같은 제사장나라라는 제사장 체제가 깨어짐으로 개인의 소견대로, 그러니까 이방나라와 다를바 없이, 이방나라와 진배없이 똑같이 지 맘대로 살았던 그 시대의 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레위지파가 이렇게 나라가 망하도록 하면 그러면 레위지파도 같이 소멸 되도록 허락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이스라엘이 망하도록 만들어요. 사사기19장에 나옵니다. 사사기19장에 보면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 또 왕이 없다는 거예요. 왕이 없을 그 때에 이 사람이 베들레헴 첩을 맞이했더니만, 라고 시작해서 그 이야기는 아까운 시간 다 하지 않겠습니다. 19장25절에 보면, 그 레위인들을 옹호하지 않으니까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없지요.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없으니까 성깔대로 사는 거예요. 자기 성깔에 자기가 정의로운 거예요.

그러니까 불량배들이 레위지파의 첩을 밤늦도록 능욕하다가 나중에 능욕을 너무 심하게 해가지고 죽어버렸어요. 동틀 때 보니까 죽어버렸어요. 29절에 그 집에 가서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서 그 마디를 찍어서 열 두덩이를 나누어 이스라엘 전체에 택배로 보냅니다. 새벽탁송으로 보내요. 택배로 쫙 보내버려요. 이게 뭔 뜻이냐 하면, 레위지파는 아직도 열두지파 전체 위에 지배하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너희들이 이 레위지파를 죽였어!” 하고 레위언약의 기본이 뭡니까? 죽음의 구덩이에다가 죽여버리는 거예요.

제사는 어린양을 죽이고, 소를 죽이고, 염소를 죽이지요. 아니에요. 레위언약은 그런 식으로 죽이는 게 아니에요. 레위지파 자체가 여기서 죽음의 구덩이에 들어가야 돼요. 그리고 하나님도 같이 들어가고. 나중에 예수님도 같이 들어가고.

레위지파가 자기 첩, 자기하고 한 몸인 첩이 죽었으니까 열두 토막내가지고 이스라엘 전체의 지파에다가 죽음의 구덩이를 다 집어던져버려요. 죽음의 구덩이를 만들어버려요. 오늘날 레위지파는 언약은 이 지경되었다고 다 던져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이, “누구야? 이렇게 율법에 위반되는 자가 누구냐?” 베냐민지파였다. 불량배였다. 그래서 베냐민지파한테 그 불량배들 우리가 처리할테니 내놔라. 베냐민지파가 “우리 애는 우리가 보호한다.” 완전히 조폭이에요. 우리는 의리로 뭉쳤다. 우리가 보호한다. 못 내놓는다. 그 자체부터 이스라엘 다 깨졌지요.

그래서 사사기20장에 보게 되면 전쟁하게 됩니다. 누가 이겼느냐, 베냐민지파가 이겨요. 베냐민지파가 1차 전쟁, 2차 전쟁 이깁니다. 무슨 의미겠어요? 누구라도 이스라엘에서 정의를 논할 자는 아무도 없다. 누구라도. 아무도 “하나님, 우리편 돼주세요.” 하나님 편 삼을 만한 위인 이스라엘에 아무도 없다. 이스라엘은 열 두 지파 되지 못하고 사사기 끝날 때 열한지파로 끝내버립니다. 지파 하나가 빠져버려요.

이건 무엇에 위반되느냐, 야곱에게 복이 올 때, 열 두지파가 구성되어야 하나님의 복을 받을 그릇이 됩니다. 이빨 빠지듯이 한 개 빠져버리면 열 두지파가 아니라 열 한지파가 되어버리면 아예 하나님하고 무관한 쪽이 되어버려요. 그러니까 이 이스라엘이 진퇴양난에 빠졌지요. 베냐민 지파가 순하게 나오면 불량배만 처리하고 지파 유지를 할 수 있는데, 베냐민지파가 전체 똘똘 뭉쳐가지고 반항하니까 공격을 안 할 수도 없고, 공격하면서 처음에 공격해가지고 공격하면 군사 얼마 죽더라도 그 남아있는 베냐민 지파가 남아있으니까 그걸 이렇게 모종삼아 키우면 열 두 지파 유지가 되는데. 이 베냐민지파가 몽땅 털 때까지 싸워서 몽땅 다 털려버린 거예요. 열 두 지파 된다는 그 자체를 베냐민 지파가 격렬하게 이상하게 격렬하게 반항해가지고 지파 하나가 날아가버렸어요.

그러니까 남아있는 열한지파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어떤 근거지가 날아가 버렸어요. 남아있는 것은 뭐냐 하면 레위지파가 와해되었다는 점이 열두개를 차지하고 있는 거예요. 열두개를. 그래서 사사기 끝에 보게 되면, 이래서 레위지파 없으면 안 된다 해가지고 여자를 보쌈해가지고 억지로 베냐민지파를 근근히 대를 잇게 만들어서 억지춘향으로 레위지파를 끄집어내는데 이 와해된 이스라엘을 건져내는 것은 사사기 다음에 무슨 기 나옵니까? 룻기. 바로 외국 용병이 등장하는 겁니다. 용병.

외부인 룻이 이 썩어빠진 레위지파를 룻이 들어가서 룻을 통해서 그 뼈대, 그 혈통을 통해서 드디어 왕을 끄집어냅니다. 그럼 왕을 끄집어내면 이 다윗 왕은 레위지파 전체를 통솔할 하나님의 유일하게 권위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 왕으로 등장합니다. 왕 밑에 레위지파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전에는 하나님 밑에 레위지파가 이리 있잖아요. 여기에 인간적인 왕 하나가, 왕 자리가 하나님에게서 마련되면서 레위지파는 이 왕에게 철저하게 종속되어야 될 조건하에 다윗이 된 거예요. 그러면 레위지파가 이루어야 될 모든 의로움과 성과와 제사의 그 마무리는 왕이 대신 책임자가 되는 겁니다. 다윗이 책임자가 되는 거예요. 제사장 위의 제사장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걸 왕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레위지파, 레위지파니까 제사장이지요. 제사장과 여기 왕. 그것도 왕이 필요 없잖아요. 하나님이 그만큼 낮아졌다고 보면 돼요. 하나님이 왕이잖아요. 하나님이 왕인데, 왕이 그만큼 가까이 인간세계에 오셔서 마중을 나서면서 결합했다고 보면 돼요. 레위지파가 망쳐버린 레위언약을 왕이 책임지려면 왕이 레위지파의 약속대로 이 저주받은 레위지파에 죽음으로서 가담을 해야 돼요. 그래서 말라기는 레위지파가 저주받아 마땅한 제사장 집단으로 들추어나야 돼요. 들추어진 레위 제사장 집단에 하나의 제사장으로서 투입되는 자리가 마련되는 겁니다.

언약을 살리겠다는 거예요. 아까도 처음에 이야기했지만, ‘아! 우리를 구원하는구나!’ 우리를 구원하는 게 아니고, 언약을 살리겠다는 거예요. 언약 안에 함께 투입된 사람만 살려요. 어제 수요일날 그런 이야기했지요. 스바냐에 나오는 2장1절에서 3절의 내용, 겸손한 자는 혹시 건진다 하지만, 아무도 겸손한 자 없습니다. 예수님만 겸손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말씀을 이루어서 겸손하시고, 예수님의 영을 받은 사람에게만 합격이에요.

그래서 제자들로 하여금 처음 영이 없는 경우에 제자들의 한계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 한계는 인간이 스스로 넘어설 수 없는 한계에요. 베드로가 얼마나 예수님을 절실하게 믿고 따르고 순교할 마음 자세 다 됐잖아요. 그게 한계지요. 그게 구원받지 못한 자의 끝 지점이에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그렇게 나옵니다.

순교하겠다고 나서고, 열심을 다해서 믿겠다고 나서고, 누구는 배신해도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고 나오는 것이 불신자의 끝 모습이에요. 불신자의 끝물이지요. 끝 모습이지요. 그럼 신자는 허~ 실성하지요. 왜 실성하느냐, 이럴 수는 없습니다. 주여! 왜 저를 사랑하십니까. 이건 예측 불가고 어처구니없는 복을 받은 거예요. 어처구니없는 복.

안 줘도 되는데 왜 주십니까? 이리 나오는 거예요. 사랑 안 해줘도 되는데 왜 주십니까. 사랑의 위력이 자기에게 욕을 하는 모든 욕을 바가지 바가지 얻어먹을 때 사람이 얼마나 기분 나쁘겠습니까. 그러나 그 기분 나쁜 것보다 더 센 웃음으로 그걸 거뜬하게 강도가 세게 할 수 있는 거예요.

그 죄 많은 여자에게는 비웃음이 왔지만, 스데반 집사님한테는 돌이라는 이런 금속 재질에 단단한 돌멩이가 날아왔지요. 그걸 넘어설 수 있었던 거예요. “그들이 하는 짓이 한계에 빠졌습니다.” 이걸로 끝나버렸지요. “그들은 그들이 하는 짓을 모릅니다.”

이 레위지파의 이야기가 이스라엘 역사 이걸로 말라기까지 바로 오는 게 아니에요. 또 한 군데를 더 들려야 돼요. 어디를 들리느냐, 열왕기상17장 17절을 들려야 됩니다. 열왕기상17장은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를 찾아간 이야기에요. 제가 설교시간에 그런 이야기했지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는 이야기했지요.

강제로 떡을 뺏은 거죠. 강제로. 뺏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7장에 보면 강제로 뺏는 것도 선택됐기 때문에 빼앗지 아무나 빼앗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레위지파에 해당되는 레위지파는 영생입니다. 그리고 평안입니다. 천국입니다. 레위언약은 천국입니다. 천국이 왔을 때는 어떻게 들어가느냐 빼앗김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빼앗기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어요. 그것도 선택된 자에게 이러한 빼앗기는 혜택이 주어지지요.

17장17절에 보게 되면, 그전까지는 여러분이 아시지요. 마지막 떡을 먹고 죽으려 하다 그것마저 엘리야한테 빼앗기고 난 뒤에 통에다가 끊임없이 통에 가루가 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다. 계속 나오지요. 그래서 이 이야기가 여기서 다 끝난 줄 알았지요. 1부 이야기가 끝났지요. 2부가 남아있었어요.

2부가 17절입니다.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왜 숨이 끊어져야 됩니까. 레위 언약은 죽는 구덩이에 빠져야 돼요. 밀가루 계속 나오고 참기름 계속 나온다고 이게 복 받은 게 아니에요. 아이고~ 하나님 덕분에 우리 복 받았어. 부자 되었어. 1부 순서에요. 1부. 축구로 말하면 전반전이에요. 전반전.

이야기 끝난 거 아닙니다. 숨이 끊어져야 돼요. 안주인 난리 났습니다. 이러려고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까? 18절 이야기지요. 이러려고. 당신하고 내가 언제 봤다고? 언제 봤다고? 를 오늘 본문에서는 무슨 상관이 있기에? 이런 뜻이에요. 언제 봤다고? 우리 집에 우리 아들 죽게 하려고 오셨군요. 당신 오기 전까지는 멀쩡하게 아들이 살아있었잖아요. 당신이 와가지고 도와주는 척하는데 내 아들 잡아간 거예요. 끌고 간 거예요. 납치했지요.

그 뒤에 어떻게 됐을까? 10분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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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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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