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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15장 4절 (형식과 내용) 230307a-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15장 4절 (형식과 내용) 230307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15장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그렇게 시작하고 있지요. 예수님을 가운데 두고 포진되어 있습니다. 두 성질이 성격이 다른 두 집단이 생겨버렸어요. 예수님이 있는데 이쪽에는 세리와 죄인 그룹이고 이쪽에는 뭐냐 하면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예수님을 중심으로서 두 진영이 생겼어요. 두 진영. 한 진영이 아니고 두 진영.

두 진영이 발생될 때에 예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곳에는 반드시 두 진영으로 나뉘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이쪽 한 진영 세리와 죄인, 이 그룹은 특징이 뭐냐 하면은 우리는 잃어버린 자다. ‘우리는 잃어버린 자’라는 인식이 있어요. 이쪽은 뭐냐 하면은 우리는 자족하고 있다. 잃어버린 게 없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버림받지 않았다라는 쪽을 주장하는 사람들이에요.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쪽에 잃어버렸다/안 잃어버렸다로 나누시는 이 자체가 예수님=이 땅에서 ‘잃어버린 자’로 자기를 등장시킵니다. 잃어버린 자로. 예수님은 양쪽에서 잃어버렸어요.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잃어버린 자입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또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았어요.

그러면 예수님의 위치는 어디 있습니까? 양쪽 다 버림받았으니까 예수님이 계시는 그 위치는 하늘나라에서도 지정될 수 없고 땅에서도 지정될 수 없는 곳. 생겨날 수 없는 곳. 인간들도 합류되지 못하고 하나님께도 버림받았으니까 이거는 하나님과 인간이 거기 끼어들 수 없는 새로운 영역이 개시가 되는 겁니다. 새로운 영역이.

그 새로운 영역을 개시하면서 예수님이 잃어버린 자로 왔기 때문에 예수님의 성격과 동질, 일치될려면 이 사람들이 세리와 죄인 그룹들이 잃어버린 자라는 그러한 잘난 사람들에게 이런 평을 받아야 되죠. 세리와 죄인들이 그들은 그 사회로부터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지 하나님으로부터 짤렸다는 생각을 그들은 했을까요? 이들 사회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동등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적 지배자입니다. 정신적 지배자들.

정신적 지배자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처한 생각이 기준이 되는 거에요. 나처럼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 너희들 짤린 사람들이야 라는 그런 구조를 이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리와 죄인들은 사회에서 멸시받고 천대 받아야 될 이유가 하나님께 멸시받고 천대받은 그러한 입장이기 때문에 그거는 당연한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이들은 뭐를 주장할 수 없느냐 하면은 고상하고 건전한 괜찮은 소유할만한 나의 자리, 이것이 없는 자들 가질 수 없는 거에요. 나같은 인간이 이게 무슨 구원이 된다고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내가 내 고유의 어떤 인생을 살고 영역을 가져봤자 주변에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 도통한 사람들, 하나님에 대해서 훤히 아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너희들 팔자는 저주받은 팔자라고 규정을 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그 규정 그대로 받아들이게 돼요.

세상에서는 형식과 내용을 일치시키는 그 사회가 유대사회였습니다. 너 사는 꼴을 보니까 저주받을 내용이 합치된다. 이렇게 그것을 강요하던 사회였습니다.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떵떵거리면서 말씀을 쥐고 설교를 하고 강요를 하면서 모든 재력과 권력은 다 갖고 있어요.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누가복음 16장에 나와요. 권력과 재력을 다 갖고 있으니까 이런 형식이 있다는 말은 내용상 하나님께 복 받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렇게 보는 거에요. 복 받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복이 뭐냐? 저주가 뭐냐? 그 기준은 우리가 정한다. 이쪽이 뭐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우리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살해했고 그들이 악마의 자식이고 지옥 간다는 선입견을 일단 잠시 뺍시다. 3.5초 정도 뺍시다. 금방입니다. 빼고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갔다면 여러분은 어느 쪽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어느 쪽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사회에서 꼴 좋다는 성공했다는 소리 듣고 싶습니까? 성공했다는 소리 듣고 싶지요.

성경에서는 이 두 부류를 나눔으로써 어떤 인간도 두 그룹 중에 예외 되는 인간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사람들이 말은 아끼고 말은 조심히 하지만 내심 형식과 내용이 일치를 갖고 싶은 거에요. 가난하고 어렵게 살면서도 그래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라고 우기는 것은 얼마나 돈이 없어 답답했으면 그렇게 위로라고 받겠습니까.

어느 사회든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은 돈만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뭐냐?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에요.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거에요. 나는 괜찮은 존재인데 돈만 약간 부족하다 그것을 이 사회에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돈 없냐? 그럼 너는 사람 아니야. 이런 것에 대해서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는 겁니다. 똑같이.

오늘 본문 15장에 보면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이렇게 되어있지요. 99:1이에요. 99:1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이 두 그룹을 나누기 위해서 이 두 부류를 의식해서 이 이야기를 하신 겁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셨느냐 하면은 형식과 내용이 일치되지 않는다를 말합니다.

그리고 형식과 내용이 일치되는 이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어떤 원리를 취하느냐 하면은 동질성 또는 동일성. 이 사회는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해야 나라꼴이 되고 사람 사회 구성한다. 똑같은 생각을. 똑같은 생각이니까 특이하게 차이 나는 것은 용납해서는 안 된다를 강요하는 세계에요. 99마리 양의 특징이 뭐냐? 똑같아요. 그러면 똑같은 것이 99이나 돼요. 한 마리에 비해서 다수죠.

예수님 보시기에 인간 세상의 정신을 결정하는 다수의 의견은 동질성입니다. 특이성이 아니에요. 차이성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같은 것들의 복제품. 클론이죠. 똑같은 것들을 계속 지속적으로 이어져가는 것이 이 세상의 생리입니다. 똑같은 것들을 이렇게 이루어진다면 다른 것들이 생겨났을 때 똑같은 것들이 99이니까 다수거든요. 다수가 다른 것에 대해서 강력한 방어태세를 갖추게 되겠지요. 왜? 다른 것을 지워야 똑같은 것이 계속 다음 세대에 유지되니까요.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죄가 뭐냐? 죄란 차이를 없애는 것. 차이를 없애는 것이 죄가 돼요. 내 안에 다수의 동질만 남기고 차이 나는 것을 내쫓는 것, 이게 죄가 되지요. 그래서 같은 것들이 이렇게 있다면 이 같은 것들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사회가 어떻게 하느냐 메아리 방이죠. 메아리 방.

야호 하면 그 마지막에 야호호호호호가 계속 이어지는 겁니다. 야 호호호호호호 계속 나오면 호와 호 사이에는 뭐가 없느냐 하면은 간격이 없어요. 간격이 없겠지요. 연속적으로 이어져 가니까 파동입자가 이어져가니까 차이가 없지요. 그게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추구하는 세계였습니다. 연속적으로 이어져가는 것. 연속적으로.

끊어지게 되게 되면 이것은 동일성을 공격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이것은 뭐냐? 같은 것들끼리의 창궐. 이게 바로 옆에 있는 롯데백화점부터 해가지고 모든 소비형태, 오늘날의 소비형태인데 소비형태가 같은 것들 속에 그 메아리 방에 같이 휩쓸려서 야호 같이 하기 위해서는 과잉소비와 과잉소통을 하게 됩니다. ‘과잉’.

“너희 집에 에어프라이기 있어?” 5년 전만 해도 “에어프라이기 그거 뭔데?” “이런 게 있어.” “나 그거 구입할래.” 너희 집에 에어프라이기 기기기기기기기기 메아리치거든요. 에어프라이기기기기기기. 건조기기기기기기기기. 메아리치면 그 메아리 안에서 간격 없이 여기서 나도 대화될려면 나도 건조기 구입해야 되겠다. 요새는 세탁기 건조기 같이 해가지고 흔하게 판매를 해요. 우리하고 같은 것을 갖고 있는가를 자기편으로 끌어당기는 기준으로서 작용하고 같은 것 없으면 추방시키는 그래서 동질성 유지하는 그렇게 된 결과가 몇 마리라고요? 99마리.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이야기한 겁니다. 이게 대다수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한 마리라고 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생겨날 수가 없어요. 왜? 99는 일종의 테러라니까요. 전체 다에요 전체 다. 그래서 동질성밖에 없는 세계에 세리와 창기는 어떻게 돼요? 동질성에 어떻게 끼어듭니까? 우리처럼 가지지 못한 것을 희망하면서 너희들도 하나님의 복을 받아 가족이 되면 우리 편에 넣어줄게 라는 예비 대상이 되겠지요. ‘예비 대상’.

무슨 말이냐 하면은 99가 뭐를 지향하느냐? 99가 100을 지향하는데 방향을 보세요. 99에서 100이죠. 예수님은 1에서 99입니다. 가서 어디로 모이느냐? 1로 와요. 예수님 자신이 잃어버린 자로 왔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자진해서 잃어버릴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99 바리새인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했다고 자부합니다. 선택했다고 자부하는 것이 99예요.

그런데 15장 1절에 보면 세리와 죄인들이 왔잖아요. 바리새인 입장에서는 세리와 죄인의 국가를 세울 마음이 없어요. 깡패가 대통령되고 나쁜 사람이 장관되고 그럴 마음이 없어요. 나라를 세운다면 대다수 사람들이 동의하는 같은 동질이 주도가 되는 그 사람들 위주로 나라를 이루고 싶어요. 그래서 99이 볼 때에 1은 언젠가는 99속에 100을 채워야 될 예비 대상자가 되는 겁니다. 안됐다. 저들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우리처럼 이미 형성된 99에 동참해야 될텐데. 빨리 하나님의 자비가 있기를 원한다 이런 식으로 유대사회가 구성된 겁니다.

자, 이 문제에 대해서 해답은 간단해요. 이런 질문으로서 충분합니다. 예수님은 99쪽에 들어갑니까? 안 들어갑니까? 이런 질문. 현재 인간들이 형성해놓은 99에 예수님이 낄 의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혀 없지요. 지금 99가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거에요. 자기들이. 유대인이니까요 바리새인이니까요. 말씀을 가르쳐도 그들이 가르치잖아요.

그러면 주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그들의 선택에 대상으로서 예수님 자신을 내세웁니다. 그러면 우리가 알다시피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택했습니까? 아니면 배제했습니까? 미워서 배제해버렸잖아요. 미워서 배제했지요. 그렇다면 세리와 죄인들이 있더라도 이들이 곧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죄인이고 세리고 돈도 없는 자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구원되는 것은 아니고 예수님 뒤쪽에 서야 구원이 되는 거에요.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공통적인 본질로부터 선택 당하지 않는 자로서 새롭게 등장해야 될 자가 바로 ‘잃어버린 양’입니다. 그래서 여기 15장에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라는 말씀하신 것은 잃어버린 양이 자기가 잃어버린 양이라는 것을 선택하거나 결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이 본문을 보면서 보는 사람 ‘나 잃어버린 양 한 마리 될래. 주님 어깨에 들려서 춤추면서 오는 그런 양이 될래’ 라고 하면서 그림도 목자 있고 양 있고 그림 있지요. 누구 맘대로 주님 어깨까지 올라가요. 시건방지게. 얼마나 귀한 몸인데 거길 올라갑니까.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 내용에 넣어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형식이 깨질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유대사회의 형식부터 문제 삼는 그런 설교를 하셨거든요.

따라서 주님께서 어떻게 했느냐 완전히 예수님을 자기 사회에 넣어주지 않고 ‘죽어라 인간아’ 해가지고 죽여버렸어요. 그로 말미암아 생긴 공간이 뭐냐 하면은 갈 수 없는 그곳. 어떤 양도 어떤 사람도 하나님 믿는 사람도 갈 수 없는 그 곳이 발생됩니다. 갈 수 없는 그 곳이 어디입니까? 99마리는 절대로 가고 싶지도 않고 가고자 하지도 않고 갈 수도 없는 곳.

거기에 예수님 계셨고 그 예수님 계신 곳에서 새로운 양, 나처럼 잃어버린 나처럼 같은 신세에 잃어버린 양을 어깨에 메고 99마리 양을 심판하기 위해서 찾아오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들이 갖고 있는 기본 소양, 선택하는 소양과는 너무나 대치되는 말씀을 하셨어요. 인간이냐? 그렇다면 너는 절대로 예수님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인간이라는 이유 때문에 절대로 예수님을 선택하지 않는 그러한 선택되지 않는 대상으로서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을 지금 이 비유로 말씀하시는 거에요. 99이니까. 숫자가 99배나 많아요. 대다수라고 하는 것은 공통된 생각을 공통되게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하신 말씀이에요. 어느 누구도.

지금까지는 굉장히 쉬웠고요 지금부터 어렵습니다. 뭐부터 출발하느냐 하면은 형식과 내용.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7일 만에 창조했죠. 창조. 형식입니다. 내용은 뭐냐? 내용은 휴식입니다. ‘휴식’. 성경에 나오는 단어로서는 뭡니까? 안식이었습니다. 보기 심히 좋았다고 휴식하는 겁니다. 휴식은 하나님 쪽의 만족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형식 안에 내용으로 차지하는 것이 하나님께 휴식이라면 하나님을 휴식케 하는 그 핵심은 뭐냐? 앞에 있는 모든 창조, 창조했지만 빛이 있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땅이 있다는 것으로 충만하지 않고 뭐가 보충되고 뭐가 보충되어서 마지막에 뭐가 딱 되었을 때 주님께서 됐어! 휴식, 휴식에 들어가시느냐. 마지막 결정적인 게 뭐냐?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 형상’. 하나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지요.

자, 인간은 형식이죠. 인간의 실체는 형식입니다. 내용은 뭐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이 되야 돼요. 창세기 1장에서는 몰라요. 하나님의 형상이 뭔지를. 그런데 골로새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이 나옵니다. 누구냐 하면은 바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내용이 실현될 때 영원한 하나님의 휴식, 안식에 들어가게 됩니다.

주님께서 7일 동안 창조하시고 휴식에 들어갔다는 것은 그 휴식에 들어간 그 기간이 단 하루에요. 1,2,3,4,5,6,7. 그 다음부터 휴식한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창조가 어떤 범위 안에 갇혀있느냐 하면은 시간이라는 그 테두리 안에 갇혀있는 거에요. 시간은 계속 흘러가니까. 그러면 언제 완성되느냐? 시간이 stop될 때는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면 시간은 언제 멈추느냐? 하나님의 형상이 예수님으로 드러날 때 모든 시간은 stop이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 이걸 왜 언급해야 하느냐 하면은 바로 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인간들이 99예요. 인간을 100으로 본다면 인간은 전부 다 바리새인, 사두개인으로 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모든 걸 다 같이 공유하고 있다고 보면 돼요. 그러면 그들이 문제점은 뭘 잃어버렸는가를 몰라요. 뭘 잃어버렸습니까? 예수님을 잃어버렸죠. 예수님, 하나님의 형상이니까. 예수님의 형상에 들어있지 않는 자, 나는 그것을 완전히 멸망시킴으로서 하나님은 영원한 휴식에 들어가는 겁니다.

어떤 분이 미국에서 메일로 저한테 질문을 했어요. 제가 답변을 드렸습니다. 교회 내에서 사주팔자 보는 것 비슷하게 이렇게 이렇게 하니까 진짜 소원대로 다 풀렸다 하나님 믿으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사니까 우리가 원하는 복 많이 받았다는 것이 미국 교회 내에 많이 퍼져있는데 옛날부터 많이 퍼져있는 거 같아요. 하도 고생들을 하니까. 거기에 대해서 목사님은 그걸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이었어요.

그래서 답변을 그렇게 했지요. 하나님하고 연결하지 말고 예수님이 어떻게 살았는가 주목하라 했어요. 내가 하나님께 이런 복을 받았다 하나님하고 나하고 연결시키지 말고 중간에 예수님을 집어넣어서 예수님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란 말이죠. 예수님은 어떻게 살았느냐? 예수님은 기존의 인간들 속에서 살았어요. 살았는데 미움 되게 받았죠. 미움 많이 받았어요.

그것은 인간은 악마의 인형이니까, 아바타죠. 인간은 악마의 인형. 형태는 인간인데 내용은 악마의 정신이 들어가있는 겁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하나님 잘 믿는지 안 믿는지 내 안에 있는 내가 원하는 것 선택하고 결정한 것이 얼마나 속속들이 그때그때마다 잘 응답이 됐는지 그걸로 측정하겠습니다.’ 이게 바로 악마의 인형들이 하는 주장입니다.

교회 와서 말씀 들으나 마나 그건 신경 쓰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인가 그걸 바자회하듯이 물건 내놓듯이 그걸 책상에 떠벌려놓고 김권사는 무슨 복을 받았어요? 나는 이런 복을 받았습니다. 김집사는 어떤 복을 받았어요? 쭉 펼쳐놓고 그걸로서 하나님께 복 받은 것을 분별하고 구별하겠다는 식이에요. 예수님 어디 갔지요? 그래가지고 하나님 휴식 들어가시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형상이 깨지는 조건을 갖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등장하는 거에요. 인간과 바꿔치기하면서 하나님이 등장하는 겁니다. 인간 세상에서 잃어버렸다는 것. 인간들이 하나님 믿는 자로부터 잃어버린 자의 모습으로 진짜 하나님의 형상, 참된 인간이신 주님이 이 땅에 출현하십니다. 99이니까 거의 모든 인간은 예수님 편에 설 사람 아무도 없지요.

그럼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은 어디 있느냐? 자진해서 예수님 찾아왔습니까? 여기 보면 찾아갔습니까? 누가 누굴 찾아가요? 잃어버린 양은 잃어버린 양인 줄도 몰라요. 돈가스 집을 이렇게 와야 될 걸 반대쪽으로 가버리면 길을 잃어버려요 여기는. 왼쪽에 있다고 생각하고 틀어버리면 저쪽 길로 가버려요. 이쪽 길로 와야 가는데 갔다가 다시 왔어요. 2분 더 추가됐어요. 방향감각을 잃어버렸어요.

형식과 내용은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든 하나님께서 그 인간을 거의 100이에요. 배척하고 포기하는 식으로 숨겨놓은 하나님의 자기 양이 따로 있어요. 그것 때문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주장들이 꼭 필요했던 겁니다. 그리고 99마리 양이 꼭 필요했던 거에요. 그 99 대다수의 의견이 예수님 하나를 추방하는 속성과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구약에도 이런 예를 들 수 있는데요. 예를 들면 여러분 에스더 알지요. 별. 에스더. 에스더가 사촌오빠가 모르드개인데 모르드개가 에스더보고 이런 이야기합니다. “네가 왕비 된 것은 이때를 위함이라” 그때 에스더는 생각했어요. 내가 왕비가 됐다는 말은 그런데 이 왕비는 무엇과 교체해야 진정한 왕비라는 자리를 주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왕비를 죽음의 자리로 바꿔치기 해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죽으면 죽으리라. “죽으면 죽으리라.”

왕비 그 자리가 어떻게 보면 자기가 미녀 콘테스트 출전했으니까 자기가 자기 선택이죠.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곳에 가기 위해서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 뭐냐? 왕비 되는 거에요. 왕비 되고 난 뒤에 하나님 개입하게 되면 내가 죽어도 선택하지 않을 것이 등장해요. 뭐냐 하면은 내가 죽어야 된다는 그 선택은 인간은 하지 않습니다. 내가 사회로부터 낙오자가 되겠다는 선택을 인간에게는 나올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가난하고 치매 걸려가지고 빌빌 거리면서 거지꼴로 돌아다니는 아줌마 보고 ‘네가 거지가 된 것은 이때를 위함이다’ 이렇게 하면 그렇지 않아도 먹을 거 없어서 곧 죽을라 하는데 잘됐다. 주의 뜻이구나 하고 죽을 수 있는데 지금 왕비는 풍부해요. 남편의 사랑을 받고 풍부하고 많은 백성들이 부러워하고 얼마나 부러워합니까. 이건희. 부러워하고 좋아하는데 당신이 대통령 영부인된 것은 경상도 사람의 선택이 아니고 당신이 선택한 것은 딱 하나 밖에 없다.

그 자리를 내놓는 정도가 아니고 죽음 직전의 자리가 왕비의 자리였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죽어야 산다고 해도 죽음 직전에서 돌아설 인간이 인간입니다. 곧 죽어도 영생 얻을 거 알지만 그래도 식겁해가지고 돌아서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어떤 자도 순교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강제로 죽이는 겁니다. 주님의 선택에 인계해야 돼요. 내 선택을 주님의 선택에 인계해야 돼요.

그러면 그 사람이 한 달 수입이 2천이 넘고 호화로운 저택에 산다고 할지라고 그 사람은 주님의 선택이 가득한 그야말로 매일같이 고급차 타고 매일같이 골프치고 다니면서 매일같이 그렇게 힘든 운동을 하면서 골프 치면서 죽으면 죽으리라! “딱! 나이스 샷!” 이렇게 사는 거에요. 일 년에 두 번 크루즈여행하면서도 ‘아 나 이렇게 죽어야해.’ ‘오늘 지중해 저녁노을 보면서 죽어야해. 나 죽는 순간 너무 아름다운 거 같아’ 이렇게 해야 돼요.

형식도 주님이 만들어 놓고 그 형식에 부합되는 내용도 우리가 채우는 게 아니고 주님이 채우는 겁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동의 안 할 수밖에 없는 글을 쓰겠습니다. 초콜릿색은 초콜릿이 아니다. 맞지요? 그렇지요? 초콜릿 색깔은 초콜릿이 아니에요. 그건 환상입니다.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 초콜릿 색깔. 빗방울 그려진 그 가로등불 아래 보라색 물감으로”

자, 물감이에요. 비 오는 날 수채화를 그리는 거에요. 그림은 아주 우아한데 뒤에 만져보니까 그냥 캔버스에요. “그대 숨소리 살아있는 듯 느껴지면 깨끗한 붓 하나를 숨기듯 지니고 나와 거리에 투명하게 색칠을 하지” 신촌 블루스 노래. 창조로 만들어진 인간이 계속 인생 사는 것은 그냥 색깔이지 초콜릿이 아닙니다. 초콜릿 색깔을 낼 뿐이에요. 그럴싸하게 보이죠. 이게 종교고 교회 모습이죠. 그냥 색채에요. 색채. 안에 내용은 인간이 그 내용을 채워줄 수가 없습니다.

또 한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므비보셋. 므비보셋이라는 사람이 다윗에게 혜택 입은 이야기를 했지요. 다윗 윗대 어른들 친분 입어가지고 혜택 입은 것. 중요한 것은 므비보셋이 5살 때부터 절름발이 되었다는 것.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자기 집에 들어닥친 심판이죠. 사울 집에 심판의 흔적을 므비보셋은 계속 살아있으면서 반복해서 절뚝발이로 그걸 보여주는 겁니다.

그 사람이 다윗에게 얼마나 혜택을 입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고 다른 사람 보기에는 장애인이죠. “너희 집에 무슨 일 있었어?” “심판받았어.” 심판 받았어 라는 말을 혜택 입은 상태에서 말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다윗 언약 속에 다윗의 혜택을 사울 집안 므비보셋에게 제공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세리와 죄인들 이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자력으로 거지 되서 구원받는 거 아니에요. 거지 됨, 세리 됨, 죄인 됨이 어디서부터 도출되느냐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죄인일 수밖에 없을 때 그 사람 속에는 평생 따라다니는 것이 뭐냐 하면은 나는 잃어버린 자다. 나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을 때 이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입니다. 형제입니다. 왜? 주님의 새 언약이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나오기 때문에.

그 사람 수입이 2천만이 되든 재산이 20억이 되든 상관없어요. 이거는 하나의 초콜릿 색깔이니까. 색깔치고는 돈이 좀 된다마는. 색깔이니까 안의 내용은 형식은 부자냐 가난하냐 이 형식은 부자든 가난하든 그건 의미 없어요.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을 통해서 내가 잃어버린 자 맞다 는 인식을 갖고 있는 거에요.

자, 죄인은 죄+사람입니다. 죄는 뭐냐? 죄는 그냥 인간끼리 동질성 추구가 죄가 됩니다. 어떤 차이를 없애는 것. 99의 그 사고방식을 공유하는 것이 바로 죄가 되는 겁니다. 인간은 형식에다가 인위적으로 내용을 거기에다가 덮어씌우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누가복음 15장에 5절에 보면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잃어버린 양을 찾았다. 우리 목자 되신 주님이 기뻐하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어깨에 메여서 같이 보조 맞춰가면서 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 그러한 즐거움과 기쁨을 유지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 선택을 개무시해버리는 거죠. 이 땅에서. 우리의 선택이라는 것은 다수에 못 휩쓸려서 환장해가지고 과잉소비에 미친 듯이 달려가는 것, 세상이 하는 이야기에 같이 끼어들어서 왕왕거리는 메아리 방에서 우리가 살 때 우리는 괜찮은 인간이라는 안심을 우리가 느끼고 싶은 나의 너무나 인간적인 선택성. 그걸 주님께서 그런 잃어버린 자를 데리고 보조를 맞추는 거에요.

그러면 그런 생각을 우리가 지울 수 없어요. 왜? 타고난 본성이니까. 부자 되고 싶고 남한테 부러움 사고 싶고 남한테 자랑거리 있고 싶고 다 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데 같이 함께 있는 주님이 나의 선택 나의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이 돼야 되죠. 그걸 세 자로 이야기해서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미쳤다’

자, 그렇다면 그 작업을 주님은 어떻게 하는가? 어떤 식으로 하는가. 십계명. 십계명이 율법의 대표입니다. 돌판에 썼었으니까요. 십계명이 일종의 뭐냐 하면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 없다. 하나님의 형상보다 마귀의 형상으로 무장되어있다. 그걸 지적하기 위해서 일종의 엑스레이 사진을 찍는 거에요. 엑스레이 사진을 찍는데 숨 들이쉬시고 이쪽 찍고 하는데 엑스레이 사진을 딱 찍고 의사가 딱 보더니 갈빗대 부러진 건 없네요. 부러진 건 없는데 더 세세하게 보기 위해서 초음파를 해야 합니다. 초음파 하기 위해서 잠시 대기하세요. 초음파를 또 찍습니다.

초음파는 뭔가 찐득찐득한 것을 묻히고 이쪽 아픕니까? 이쪽입니까? 해요. 초음파를 봐도 갈빗대에 미세한 금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건 뭐냐? 갈빗대가 기스났습니다. 이렇게 판정을 내려요. 의사가 왜 그래야 합니까? 아프다는 형식을 만들고 내용은 주님의 율법으로서 그 내용을 채워서 기어이 모든 인간들과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너 잃어버린 자 맞아” 라는 것을 매일같이 반복해서 자각시키는 거에요. 자각시키는 거에요.

매일같이 사도 바울 말씀부터 해서 구약의 십계명부터 해서 총동원해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들이미는 거에요. 그러면 이 십계명, 율법에 의해서 두 민족이 계속해서 나눠집니다. 하나는 뭐냐 하면은 이방민족이죠. 이방민족의 특징은 율법에 의하면 저주받아야 되잖아요. 율법에 의해서. 이들은 율법을 모르면서 저주받아요. 많이 억울해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율법에 의해서 이스라엘도 목이 굳은 백성이고 신명기 9장에 나옵니다. 저주받아야 되는데 무엇이 끼어들어서? 율법의 제사법에 의해서 이 저주받을 자를 뭐로 바꿉니까? 복 받고. 이스라엘은 똑같이 저주받을 건데 복 받고 이방인들은 그냥 저주받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주의 이름이 너를 선택했다는 하나님의 선택을 여기에 집어넣는 거에요.

그래서 이 세상은 뭐냐 하면은 이렇게 보면 됩니다. 회전초밥이에요. 회전초밥. 회전초밥 쭉 갈 때 손님이 와가지고 “계란말이 이거 할까?” 딱 끄집어내면 다른 접시들이 쭉 가는데 나는 왜 선택 안 해. “그냥 가세요. 패스, 통과.” 지옥 가는 거에요. 전부 다 똑같은 접시에다가 쭉 가면서 “이거 너! 이거 너!” 하면 그거 말고는 너는 그냥 가세요. 지옥으로 가세요.

인간은 이래 사나 저래 사나 저주로 확정되었습니다. 왜냐 하면은 파괴돼야 될 형식이기 때문에. 그러면 잃어버린 양을 기쁘다는 말은 주님이 기뻐하는 덩실덩실 춤추는 어깨에 오르락내리락 같이 기뻐해야 돼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십계명을 품은 어린양.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십계명을 품는 거에요. 품은 분과 같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같이 그 코스를 가야됩니다.

그걸 뭐라고 하느냐. 동기도 이런 동기가 있어요. 물리 치료방 동기. 두 사람 들어가거든요. 두 사람 들어갈 때 물리 치료할 때 40-50분 동안에 동기생입니다. 왜? 아픔에 동반되서. 아픔에. 물리 치료받는 아픔의 동반. 치료중이라는 말은 곧 치료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주님과 함께 더불어 웃고 같이 즐거워하는 사람의 인생사입니다.

이걸 세 자로 하면 뭐라고요? ‘미쳤다’ 완전 미친 거에요. 왜? 99의 의견을 나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주께서 99의 의견을 내 안에서는 그것을 채택을 안 해주니까요. 내 뜻대로 안 해주니까요. 그 뜻대로 안 해주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요. ‘형식과 내용은 주님이 알아서 채우는 것이지 너희들이 선택해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자,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것은 뭐냐? 이걸 제목으로 삼고 싶은데요. ‘갈 수 없는 먼 곳’ ‘주님이 가신 그곳’ 갈 수 없는 먼 곳. 너무 멀어서 아무도 못가는 곳. 그곳은 이 세상의 메아리 방에서 하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시시하게 보죠. 저거 복제품이잖아. 인간들은 전부 다 정신적으로 클론 됐어요. 복제인간 됐어요. ‘클론’. 클론 아시죠.

이러한 세상 유행적인 것이 성도가 가만 있어도 그들이 공격을 해댑니다. 마치 예수님을 그 당시 사람들이 공격하듯이. 똑같은 예수님이 가신 그 인생 절차가 놀랍게도 성도로 하여금 똑같이 그곳에 가게 하십니다. 99의 양으로부터 모독 받고 미움 받고 놀림을 당하는 그 길. 그것을 인위적으로 자기 선택으로 잃어버린 양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주님이 다 중간에 탈락 다 시킵니다. ‘주님이 찾아갖고 주님이 선택해야지 네 선택은 내 앞에 통하지 않는다’

첫째 시간 끝으로 그러면 선택하지 않으면 그러면 성도는 내 선택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돼야 되는가? 마태복음 28장 29절 여러분 잘 아시죠. “보라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노래 가사 가지고 대신하겠습니다.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내가 그대 곁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요” 김장훈 노래입니다. 제목은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세상이 너를 속일지라도 내가 그대 곁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성도의 특징이 뭐냐? 속일지라도. 이거에요. 악마는 애초부터 뭐했다? 속였다는 사실. 악마는 애초부터 속였고 그 속임이 인간 세계에 통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그 똑똑한 바리새인 사두개인들도 못 벗어난다면 어줍잖은 우리는 마땅히 이 세상 속임수에 다 넘어갑니다. 요즘의 보이스피싱은 인공지능을 동원해서 내 딸하고 아들하고 내 아버지 엄마의 음성을 똑같이 해요. “엄마~~” “아이고 딸아!” “오 아들아!” “엄마 다쳤어. 돈 보내줘.” 인공지능을 똑같이 하는 거에요. 그것은 보이스피싱이 나를 속였다 생각하지 말고 내가 평소에 얼마나 나를 99 되기 위해서 속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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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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