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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서울의존강의20230216a 베드로후서 3장 13절(새 땅의 중심)-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베드로후서

서울의존강의20230216a 베드로후서 3장 13절(새 땅의 중심)-이 근호 목사

베드로후서 3장 12, 13절,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지금 있는 하늘과 땅, 그냥 이대로 사용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왜 이거 다 걷어내야 되죠? 왜 새 하늘과 새 땅이 따로 필요하냐는 거죠. 기존의 것을 수리해서 하면 되는데. 기존의 하늘과 땅을 수리하면 되잖아요. 깨끗하게 처리하면 되지 않습니까.

여기서 두 가지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첫째, 구약의 무대장치는 그 용도가 끝났다. 구약의 무대장치인 기존의 땅, 기존의 하늘, 그 구약에 있는 하늘과 땅으로 만들어낸 모든 무대장치는 용도가 이제 마감이 된 겁니다.

‘구약의 무대장치’에서 구약은 첫 번째 만들어진 창조세계,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첫 번째 만든 그것이 나중 신약에서 보니까 이게 무대장치였다는 거예요. 인간들은 그걸 몰랐죠.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하늘과 땅이 예수님이 활동하는 자기 활동 무대장치였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현재 팔레스타인 있잖아요, 이스라엘 땅 그 땅에 계속 개기면 된다고 생각해요. 거기서 기거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눈에 보이는 시공간은 활용도가 이제 다 끝났어요.

그 근거는 사도행전 1장에 나옵니다 (행 1:9). 예수님께서 구름 타고 어디로 가느냐 하면 하늘로 가버려요. 땅의 세계와의 바이바이. 그럼 하늘로 가버리면 하늘은 있어야 되지 않느냐. 땅은 폐기하더라도 하늘은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예수님 가신 하늘이 어떤 곳이냐 하면, 이게 아버지의 처소입니다. 아버지의 처소로 돌아가요. 아버지의 처소라는 것이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이것은 언약이 완성되면 나타나는 거예요. 언약이 완성되면 나타나는 곳이 아버지의 세계에요, 아버지의 처소.

이것이 요한복음 14장에 나오죠. 아들과 아버지와 성령과 너희가 하나가 되는 그 처소. 기존의 하늘은 그걸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이에요. 기존의 하늘과 땅이 왜 무너져야 되는가? 기존에 있는 하늘과 땅에 모두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가 끝까지 사무쳤던 거예요.

새 하늘과 새 땅이 되어야 될 두 번째 이유는 언약과 관련되어 있는데, 기존의 땅과 하늘은 사람들이 살던 곳이에요. 사람들이란 아담의 후손들이에요. 아담의 후손들이 살던 곳은 더러워서 안 살아요. 아담의 후손들의 거주지이고 아담의 후손들이 보았던 하늘, 그 하늘의 일월성신, 하늘의 별 등을 통해서 신(神), 우상이죠, 가짜 신을 이미지화시켰던 겁니다. 그런 걸 다 없애버리는 거예요.

둘 다 구약을 배경으로 합니다. 신약에 오게 되면 이 구약 배경 전체를 한마디로 이렇게 했습니다. ‘어두움’이라고 얘기해요. 이 어두움이 있으니까 신약에 와서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두움의 반대말인 뭐가 되죠? ‘빛’의 세계가 되는 겁니다.

빛의 세계이니까 기존의 하늘에 있는 달, 별, 해 그 빛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건 다 어두움에 속하니까. 햇빛도 어두움이고 달빛도 어두움이고 별빛도 어두움이에요. 그럼 빛은 어디서 나오는가? 빛은 예수님 자체에서 나오는 거예요. 예수님 자체에서 빛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새 하늘, 새 땅은 뭐냐? 간단히 줄여버리면 ‘예수님의 자기 공간의 확대 재생산’이에요. 예수님의 몸, 몸을 두기 위한 자기 공간의 재생산입니다. 확산된 재생산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하느냐? 예수님 몸이 되면 되죠. 예수님 몸의 일부가 되면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움으로 구성된 세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야고보, 베드로, 요한 세 사람을 제자 중에 뽑아서 3대 3으로 만나게 해주죠. 땅에 있는 대표자 3명. 그리고 하늘에 속한 3명,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 이게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면 빛의 영광에 차이가 나는 겁니다.

그때가 낮이죠. 물론 태양이 있었죠. 그러나 예수님 자체에서 발광되는 그 빛은 태양 빛이 아니에요. 태양 빛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자체에서 해같이 빛난다 했으니까 이건 예수님이 태양 빛을 반사 받아서 눈부시게 한 게 아닙니다.

인간이 보는 모든 빛은 파장으로만 인간에게 나타난다고 과학적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어요. 빛의 내막을 알기 위해 프리즘을 통과시키면 스펙트럼이 나타나요, 빛이. 빛의 스펙트럼이 줄로 쭉 되어 있어요. 쉽게 말해서 무지개가 나오는 거죠. 그걸 조사해서 빛이 보여주는, 빛에 반사된 원소의 성분을 알아내게 됩니다. 과학 쪽에서 별까지의 거리나 그런 것들을 알아내는 방법은 빛의 스펙트럼 띠가 있는데 그 띠를 조사해서 이건 수소가 몇 %이고 헬륨이 몇 %인지 이렇게 알아내는 거예요.

이것은 무엇에서 나왔습니까? 기존의 인간이 살던 무대, 인간이 살던 거주지에 제한된 빛이에요. 그래서 구약 성경은 예수님의 활동무대라 했지요. 활동무대를 통해서 해와 달과 별과 인간의 관계는 뭐냐? 인간과 모든 만물은 해와 달과 별이 없으면 못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빛의 발광체 없으면 인간은 살 수 없다.’ 그렇게 연관시키도록 한 것이 구약 이스라엘 역사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부지런히 또 따라오셔야 돼요. 역대하 36장 21절,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아까 말씀드린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드리겠습니다. 구약은, 구약에서 기존의 땅과 하늘은 구약적인 그 언약을 보여주기 위한 무대장치라 했죠. 무대장치라는 것이 얼마나 모형적으로 알기 쉬운 모형으로 했는지, 애굽 나라 따로 있고 홍해도 있고 요단강 있고 약속의 땅이 이렇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수평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죠.

그러면 구약을 그 수평 표면을 기어 다니는 개미군단 같은 걸로 보면 돼요. 앤트맨, 개미. 개미군단 같이 평면을 기어 다닙니다. 평면이 올라가면 올라가지고 내려가면 내려가지는 거예요. 곡률에 바짝 붙어서 기어가는 개미처럼 2차원적인 인간 모습을 드러내면서, 거기 애굽에서 가나안 땅까지 550km에요. 부산서 서울보다 조금 더 멀죠. 그걸 40년 동안 헤맸습니다.

40년 동안 헤매면서 그들에겐 어떤 목적지가 있는데 아까 역대하 36장 21절에, 그 땅을 무슨 땅이라 부르냐 하면 ‘안식의 땅’이라고 불러요. 그러니까 약속의 땅=안식의 땅. 그러면 그 안식의 땅에 도달하지 못하면 고난의 땅이 되고 나그네 땅이 되고 안정적이지 못한 땅이 되겠죠.

그러면 애굽에서 나왔던 그들은 어떤 민족이냐 하면 땅 없는 민족이에요. 그냥 아무 데나 눌러 앉으면 안돼요. 그들은 약속의 땅을 찾아서 수평적으로 나아가는 개미군단. 개미 알죠? 주식에 투자하는 개미. 꼼지락거리면서 계속 가는 거예요. 하늘로 날지를 못해요. 그냥 수평을 기어가면서 그들이 기어가는 그 행적, 그리고 그들의 좌표가 하나님의 언약 구조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안식이라는 땅을 따로 만들었다는 거예요. 안식의 땅을 따로 만들었어요. 이것에 대해 설명이 좀 더 필요하겠죠. 창세기 1장에서 창조가 끝나고 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안식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안식했다, 창세기 2장에 (창 2:3). 하나님이 공간적으로 안식했다. 안식했고 시간적으로 하나님이 특별한 시간을 만들었어요. 안식일을 만들었어요.

그럼 하나님의 안식을 설명하는 두 가지 요건으로 공간적 안식과 시간적 안식을 합치면 안식이 설명되겠죠. 공간적 안식은 뭐냐? 안식의 땅이에요. 시간적으로 안식은 안식일의 반복. 안식일을 되풀이하는 곳, 그곳이 어디겠습니까, 구약에서는? 바로 가나안 땅이 되겠죠. 가나안 땅. 안식일이라 하는 것은 율법에 되어 있고 땅은 약속의 땅이니까요.

하나님이 안식을 설명하는 특정 공간, 가나안 땅이라는 특정 공간을 설정하고 거기서 하나님의 안식의 취지를 나타내려고 하는 거예요. 그럼 이 말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그다음에… 자, 오늘 첫 번째 중요한 것 나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땅과 하늘을 만드시고 창조했잖아요. 여기서 질문 나갑니다. 하나님이 만든 땅과 하늘의 중앙지 또는 중심지는 어디겠습니까?

왜 중심지를 묻느냐 하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중심지가 있어야 돼요. 중심지에서 분출하듯이 나오는 거예요. 마그마가 화산 중앙에서 분출되죠. 마그마, 용암이. 그래서 용암이 밖으로 나오면 그게 화성암이 되잖아요. 마그마가 굳어진 암석, 화성암. 바깥 지표면으로 펼쳐지듯이 흘러나와서.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떻게 만드는가? 그것은 중앙지를 쳐다보면 돼요. 중심지점을 찾으면 돼요. 중심이 뭐냐? 그것은 기존의 하늘과 땅, ‘구약에 있는 기존의 하늘과 땅의 중심지가 뭐냐?’와 동일한 중심지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했다. 누가 했다고? 하나님이. 이걸 과학에서는 인정 안 해요. 자연은 저절로 되는 것이지, 누가 만든 게 아니라고 보는 거죠, 과학에서는.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 하늘과 땅을 누가 만들었다는 거예요. 누가? 하나님이. 증거 대라. 증거를 뭐로 댈 겁니까? 이 하늘과 땅의 증거, 그 중심지.

옛날 중세 때는 그걸 지구라 했어요. 지구라고 했다가 완전히 우사 당했죠. 갈릴레오 갈릴레이한테 걸려가지고. 지구는 돈다. 지구가 중심이 아니고 태양이 중심이라고 반박하고 들이대니까 교회에서 할 말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교황이 나서서 잘못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거예요.

기존에 눈에 보이는 이 땅의 중심지가 어디냐는 거예요, 중심지가. 성경에 나오잖아요. 중심지가 어디입니까? 하나님이 어느 지점에서 인간을 만났느냐와 같은 질문이에요. 하나님이 어디서 만났어요? 약속의 땅에서 만났죠. 약속의 땅 어디? 가나안 땅 넓은데 그중에 어디냔 말이죠. 예루살렘. 예루살렘 중에서도 어디? 예루살렘이 다 너희 집이야? 이렇게 나와요. 예루살렘의 어디? 성전. 성전의 어디? 성전 가운데서 성소, 제단, 지성소 어딥니까? 지성소.

이 새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자가 세상을 아주 떠난 것이 아니고 친히 약속의 땅, 성전의 지성소에서 이 땅의 중심이 있는데 그 중심에 그냥 가만 앉아있는, 취미가 고독을 즐기는 하나님이었습니까, 아니면 거기서 무슨 활동을 했습니까, 그 중심지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중심지에 있으면서 뭘 했죠.

신명기 12장 잠시 한번 보겠습니다. 신명기 12장 5절, 6절에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이렇게 되어 있죠.

자,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는가? 자기 백성과 만난다. 그러면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 뭐가 있다는 말이에요? 자기 백성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백성이 아니고 하나님 백성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는 거예요. 그 따로 있는 사람을 뭐라고 합니까? 이스라엘이라고 하죠. 이스라엘.

이게 신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그냥 혼자 노시지. 아니에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만나고자 하는 일을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만날 때, 보통 여러분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날 때, 반갑다 할 때는 뭐를 내밉니까? 손을 내밀죠. 그걸 악수라 하죠. 손을 내밀 때, 한쪽은 내미는데 한쪽은 안 내밀면 이거 곤란하죠. 내가 손을 내밀면 저쪽도 손을 내밀어야 되잖아요. 그렇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하고 만날 때 그냥 빈손으로 오지 말고 뭘 내미느냐? 하나님의 번제, 이걸 내죠. 하나님 백성이 손을 내밀 듯이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 쪽에서도 희생의 손을 내밀고 있다는 뜻이에요. 주님이 내미는 그 손의 본질과 거기에 반응해서 인간이 악수할 때 내미는 손의 본질 사이에 통하는 게 있어야 됩니다. 그 통하는 것이 뭐냐? 희생이에요. 희생. 희생입니다.

희생은 다른 말로 죽음의 가현체죠. 이걸 줄여버리면 하나님 쪽에서 뭘 제시한다? 죽음을 제시하고 거기에 대응해서 인간은 뭐를 내놔야 된다? 자기 죽음을 내놔야 되죠, 자기 죽음을. 그게 하나님 만나는 방법이에요.

그 모션,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구약은 하나님의 옛 하늘과 옛 땅이라는 장치들을 통해서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땅과 이 하늘 장치를 통해서 주님께서는 자신의 중심지에 와 있고 어떤 식으로 자기 백성을 만난다고 하는 사실을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서 서술하고 있는 거예요. 알려주고 있는 거예요.

참 신기하죠. 용산에 있는 대통령실 거기서 만나는 게 아니에요. 특정 자리에서 만나긴 만나지만 그 특정 자리에 그냥 산 채로 만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이름을 만날 때 산 채로 만나면 안 돼요. 자신의 죽음을 갖고 들어가야 돼요.

자기의 죽음을 갖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기가 죽으면 못 움직이니까 안 되죠. 살아있는 채로 자기 죽음을 갖고 하나님을 만나려면, 자기 죽음을 위해서 대신 죽었던 죽음을 갖고 들어가면 되는 거예요. 그게 희생제물입니다. 희생제물. 뭐 돈 들고 들어가고 부자 됐다고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그 점에 대해서 고린도후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안양 공부에서 어떤 분이 이야기하셔서 제가 깜짝 놀랐는데요. 고린도후서 4장 10절-11절. 성도는 홀로 있는 게 아니죠. 자, 성도라 하는 것을 아까 제가 강의한 내용대로 정리해봅시다.

성도는 뭐다? 이 기존의 하늘과 땅 사이에, 눈에 보이는 세상 사이에 하나님께서 오셨는데 오셔서 한 일이 뭐냐? 자기 백성을 만나고 또 데리고 가는 일을 하시는데 그때 어떤 자를 자기 백성으로 하느냐를 설명해드렸고 구약에서 신명기 12장에서는 자기 백성 만날 때 번제물을 데리고 온다 했죠.

그런데 신약에 오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고린도후서 4장 10절,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이게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성도의 모양새입니다, 신약에서.

고린도후서 4장 14절에 보면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이렇게 되어 있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은 뭐냐? 자기 백성을 살려주기는 하는데 조건이 뭐냐 하면 내 아들과 함께 죽는다는 조건 하에 살려주는 거예요. 이 말은 곧 조건을 살리는 거예요. 예수님이 행했던 그 조건을 살리는 거예요.

주님의 몸 된 성도, 성도를 위해서 주께서 하신 일을 살린다는 말은 뭐냐 하면 ‘우리는 날마다 죽이고 날마다 죽임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의 조건을 날마다 하나님이 살리는 방식으로 우리를 살린다’ 이렇게 보면 되는 거예요.

우리는 날마다 죽이고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은 날마다 살리는 식으로 우리를 살려내시는 거예요. 그냥 우리를 살려주면 안됩니까? 그렇게 되어버리면 하나님은 안 만나죠. 우리를 안 만나요. 대신 죽은 자를 살리기 때문에 우리를 만나게 해주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을 앞장세우기 때문에 우리를 살리는 거란 말이죠. 우리가 뭔가 드린 것 때문에 살리는 게 아니고, 우리와 함께 계신 분이 우리를 살리는 유일한 조건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여러분 고민하지 말고 뭐를 기뻐해야 되느냐 하면, ‘아! 하나님이 살리시는구나.’ 그것 하나만 챙겨도 남는 장사에요. 아,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는구나. 살리는데 어떻게 살리느냐. ‘늙어 죽이는 방법으로 살리시는구나. 우리가 늙어 죽는 것이 이게 사는 길이구나. 사는 유일한 모습이 우리가 죽는 거구나.’ 이걸 받아들여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4장 14절에, 살려서 뭐할 건데요?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자, 이것과 새 하늘과 새 땅을 연관시켜봅시다. 새 하늘, 새 땅은 구약의 옛 하늘과 옛 땅 가지고 설명되었던 그 모든 하나님의 뜻이 이미 완성이 된 상태가 새 하늘과 새 땅이죠.

아까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에 대해서는 제가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의 본체에서 나오는 빛의 영광, 그걸로 가득 찬. 그래서 요한계시록 21장에는 해도 필요 없고 달도 필요 없어요. 이제 햇빛, 달빛 필요 없어요. 예수님의 빛으로만 충만한 나라가 새 하늘과 새 땅이에요.

그럼 그건 그렇게 됐고 그 땅에 들어가 사는 백성들은 어떻게 되는가? 백성들은 어떤 식으로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 아까 신명기에 보면 뭘 갖고 들어간다 했습니까? 제사 드리고 번제 드리고 이런다 했죠.

시편 51편 16절 한번 보겠습니다. 시편 51편 16절, 17절,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께서는 상한 심령을 받으신다’라는 말 이전에 무엇을 안 받는다고 먼저 전제하죠. 뭘 안 받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번제를 받지 않는다는 거예요. 상한 심령이 뭐에요? 상한 심령은, 더는 내가 살 수 있는 자격과 권한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상태를 상한 심령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백성은 고물 또는 쓰레기. 하나님께서는 쓰레기를 받으시는 거예요. 뭐 쓰레기가 제사해도 소용없고 십일조 해도 소용없겠죠. 하나님께선 우리의 쓰레기 같은 심령을 받으시는 겁니다. 재활용 확실하게 하죠.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상당히 건방지지 않습니까? 앞에서는 하나님이 제사와 번제를 바치라 했는데, 자기가 뭔데 받지 않는다고 장담해가지고 흘러서 내려오는 그 모든 일관성 있는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무슨 자격으로 완전히 차단시키고 ‘그게 아니고 이겁니다’라고 하는 이유가 뭐냐?

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누구죠? 바로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합했으면 그 대표자가 등장하는데 그게 왕이에요. 그러면 모세 언약, 제사 드리라 하는 것은 모세에게 준 율법이잖아요. 모세에게 준 율법이 신약 쪽으로 가까이 오면 올수록 점점 더 그 윤곽이 뚜렷해지고 실상에 진리에 가깝게 확실하게 드러나는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모든 율법은……, 모세 율법이 백성한테 준 거죠. 백성한테 주면서 백성에서 뭐가 등장하는가? 제사장만 있는 게 아니고 백성이 있는데 여기서 다윗 이전에 왕의 자리가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왕의 자리가 드러나고, 백성들을 제치고 백성들의 대표자로서 왕의 자리가 등장하고, 이 왕의 자리가 율법과 1대 1 매치를 해서 왕이 완성을 했을 경우에는 이 왕에 예속되었다는 이유 때문에, 이 백성은 왕에게 예속된 백성입니다, 이 이유 때문에 왕이 율법을 이루면 그들은 구원을 받는 거예요.

‘백성이란 왕에게 예속된다. 그럼 왕이 율법을 다 이루면 백성은 다 이룬 혜택 안에 들어있다.’ 이렇게 되죠. 혜택 안에 들어있어요. 그러면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해서 ‘모든 사람은 제사를 드리고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라’ 이렇게 했는데 왕의 등장으로 율법을 다 지킨 셈이 된다면 이 말은 율법 안에 뭐가 등장하는가, 점선으로? 스스로 율법 자체가 완성으로 응축이 되어버리면 율법 안에 왕의 자리가 (점선으로) 있다 이 말이죠.

율법 안에 왕의 자리가 있고 여기 이스라엘의 대표자가 다윗이죠. 다윗 언약이니까. 다윗이 나올 때 다윗은 자기를 상한 심령으로 본 거예요. 왕이 몇 명입니까? 눈에 보이는 왕(다윗)이 있고 여기 눈에 보이지 않는 (율법 안에 점선으로 된) 왕이 있죠.

이 다윗은 자기가 왕 됨을 믿었습니까, 아니면 자기는 상한 심령의 대표자로서 자기가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었어요? 어느 쪽이에요? 자기만 상한 심령이 아니고 모든 인간은 상한 심령이에요. 왜냐하면 죄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출발이. 그러니까 다윗은 원점인 동시에 종점이 되는 거예요. 원점인 동시에 종점.

제가 부산 강의에서 솔로몬 이야기할 때 부산 강의 제목이 뭐였죠? 이죠. 솔로몬이 쓴 전도서에 보면 1장 2절부터 나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 허무한 강을 솔로몬은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어요. 그 강을 건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도 바람의 일부이고 강물의 일부거든요. 강물이 순환하는 것처럼 이 세상은 허무가 순환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솔로몬이 알아요. 그 허무의 강을 넘어설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부산 강의에서, 허무한 다윗의 확대죠. 다윗 정신의 확대입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이니까. 다윗 취지의 확대에요. 진도만 빨리 나간다고 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시편 39편 6절, 부산 강의에 있던 본문인데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4절부터, 평소에 안하는 짓 해봅시다. 다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평소에 안 하는 거예요.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아, 다윗이 자기를 뭐라고 합니까? 나의 담대함과 대담함과 신앙 좋음을 알게 하소서, 이게 아니죠. 하나님이여, 제 신앙이 이 정도입니다, 라고 그걸 지금 하나님 앞에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자기의 연약함이죠.

5절 봅시다.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손바닥이죠. 손바닥은 펼치면 있는 것 같지만 손바닥을 다시 접으면 없잖아요. 손바닥이 가리워져서 없는 거예요. 인간은 손바닥 곡률 따라 움직이는 개미 같은 거예요. 인생이라는 그 곡률(공간의 표면)을 따라 살다가 나중에 몰락해버리면 화장터에 가서 죽으면 없죠.

내가 지난 화요일에 장례식장 가서 화장터 찍어왔어요. 찍는데 어떤 사람이 찍지 마라 하는 거예요. 화장터를 왜 찍지 마라 해? 그래서 봤어요. ‘찍지 마세요’ 그런 거 없어요. 음식물 반입하지 말라는 그런 건 있는데 화장터를 왜 찍지 마라 했지? 자기 마지막 모습이 부끄러운가? 없어요.

장례식 치른 사람 나이가 78이거든요. 목사님이신데. 78년 동안 살았다 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기억에 있죠. 그 78년 동안 산 사람 어디 갔습니까? 없어요. 한줌의 재가 돼서 날아가 버렸는데. 부활 동산인가 가서 뿌려져버렸는데. 없다니까요! 78년 살았는데 없어요. 송해가 96년 살아도 없어요. 그러니까 인간은 뭐냐? 애초부터 없어요. 인간은 없는 거예요. 왜? 없기 위해서 태어났으니까. 사라지기 위해서 태어났으니까.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아까 고린도후서 4장 이야기했잖아요, 주님과 함께 살아야 돼요. 왜? 주님은 없는 분이니까. 주님이 없어졌잖아요. 주님은 기존의 시공간에서 없어졌으니까요. 새 하늘과 새 땅에 계시죠. 아버지의 처소에 있잖아요. 그럼 우리의 신분은 뭐냐? 기존의 땅과 하늘에서 놀 군번들이 아니에요, 지금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놀 사람들이라고요.

자기가 없어진다는 것을 알려줄 그런 자들과 함께 사세요. 그러니까 거기서 뭐가 탈락이냐 하면 개는 탈락이에요. 고양이 50마리 이런 건 다 탈락. 없어진 주님, 사라진 주님의 말씀과 함께 사시라 이 말입니다.

그다음 봅시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뭐뿐이다? “허사뿐이니이다” 허사라는 말은 헛것이다. 헛발질, 헛수고했다는 말이죠. 산다는 것 자체가 없어지기 위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애 키우고 공부하고 돈 벌고 하는 모든 것이 몸부림, 맘부림 치면서 점점 더 인간은 그 에너지에 의해서 닳아지는 겁니다. 사라지는 거예요.

6절,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그림자라는 것은 실체가 없는 거예요. 뭔가 실체가 없어요.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자기 죽어버렸는데 뭐. 주인이 없는데 주인이 사라져버렸는데 뭐.

이게 바로 율법이 소개하는 왕에 대해서, (율법) 안에 왕이 있다는 것을 비치기 위해서 하나님은 다윗 언약을 마련하신 거예요. “다윗, 이리 와. 너 왕 해. 왕 해.” “왜요?” “네가 대표로 내가 상한 심령인 것을, 그리고 인생이란 헛방이라는 것을 네가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이야기해.”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럼 다윗에게 백성이 있겠죠. 다윗에게 백성이 있다는 말은, 다윗이 헛되다는 말은 백성들도 헛되다는 거죠.

그럼 이스라엘은 다윗을 통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다윗 언약을 통해서 구원받는 거예요. 언약을 통해서 구원받게 되면 여기 다윗 율법 안에 왕이 있어요. 다윗 같은 왕의 지위가 있다고요. 왕이 있다는 말은 곧 왕이 하는 일에 의해 백성이 있겠죠. 주님의 뜻은 바로 ‘하나님의 율법이 완성된 왕에 의해서 백성 만들기’ 그게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면 그 만나는 장소는 어디냐? 만나는 장소는 신약에 오면 어딥니까? 우리 왕 되시는 주님이 하늘로 올라갔잖아요. 그럼 만나는 장소는 뭡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이죠.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오잖아요. 나오는데 그때 하늘에서 뭐가 내려와요. 만남의 장소가 내려와요. 자, 만남의 장소가 뭐라 했습니까? 아까 그 가나안 땅, 약속의 땅이 전부 너네 집이야? 군에 가면 이렇게 이상한 소리 하는데, 가나안 땅 중에서 만남의 장소가 어디입니까? 예루살렘이 위에서 내려옵니다. 시온 성이 내려와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죠. 농사짓습니다. 바다에 가면 어부들이 고기 잡습니다. 공장에 가면 일하죠. 이거 신기합니까, 신기하지 않습니까? 전혀 신기하지 않아요. 그리고 일 하다가 농사짓다가 아이고, 허리야, 하다가 나중엔 결국 늙어 죽죠. 신기합니까, 신기하지 않습니까? 신기하지 않습니다. 으레 수천 년 동안 해왔던 인간 세상입니다.

그럼 뭐가 신기합니까? 하나님의 상한 심령을, 하나님 앞에 자기가 상한 심령임을 안다는 자의 출현, 출몰. 이게 얼마나 신기한 일이에요. 농사를 짓든 고기를 잡든 직장 일을 하든 회사를 하든 파이브 잡을 하든 그게 신기한 게 아니고 뭐가 신기하냐 하면 내가 이 세상 삶을 통해서 내가 헛되고 헛된 일을 한다는 것으로 내가 확인된다는 사실이에요. 이것은 어떤 마음이냐 하면 다윗이 갖고 있던, 다윗에게 있던 그 마음이잖아요.

다윗의 그 마음은 누구를 만나서 그래요? 성령을 만나서 율법 안에 나 같은 왕이 따로 있다는 걸, 나 말고 진짜 왕이 따로 있다는 걸 아는 거예요. 그래서 아까 시편 39편에 보면 나와요. 나의 소망은 장차 오실 여호와께 있다는 거예요.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 39:7) 여호와께서 왕이 되시는 방법입니다.

전체적으로 한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보이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기존에 옛 하늘과 옛 땅에서는 세상에서는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는 게 인생사야. 그럼 골치 아플 게 없어.’ 우리는 휘리릭 남들 그렇게 사니까 그냥 대충 넘어가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어요.

그러나 성경에 보니까 이스라엘 보니까 기존에 그냥 우리가 보고 있는 해와 달과 별, 땅, 그냥 평범한 이 세계 안에서 하나님이 거기에 이름을 가지고 자기 백성을 만나는 희한한 소식이 성경에 구약에 들어있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그걸 놓쳐서야 되겠어요? 그게 안식이에요, 안식. 안식의 땅이에요, 그게. 하나님의 땅. 편히 쉬는 땅. 너무 만족해서 편히 쉬는 땅을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 안식의 땅, 약속의 땅으로 설정한 거예요.

그리고 헉헉거리면서 애굽에서 나왔던 히브리인들이 하나님의 언약 따라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따라서 550km를 헉헉거리면서 죽을 동 살 동, 많이 죽었죠, 어디를 가고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습니까? 자기들 생각 같으면 어디에 살면 되잖아요. 그런데 그들이 어디를 향하고 있다는 거예요. 어떤 특정 방향을 향해서.

어디로 갑니까? 누굴 만나러 가는 거예요? 모세가 인도하면서 이야기하듯이 “가자!” “누구? 누구 만나러?” “하나님 만나러 가자.” “어떤 하나님?”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만나러 가자.” 그게 모세가 율법을 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당기는 동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움직이게 한 동기였어요.

히브리서 4장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4장 1절,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3절에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5절에 보면 “또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안식에 못 들어가는 사람이 있고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이 말은 결론적으로 안식이라는 게 있고 거기서 하나님과 자기 백성의 상봉이 분명히 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갖든 관계없이, 판사가 됐든 의사가 됐든 관계없이 안식에 하나님 만날 사람이 있다는 이것을 구약에서 벌써 언급했고 신약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뭐 때문에 살죠? 왜 존재합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드러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보고 뭐 하라고 닦달 내는 게 아니고. 그런 것은 이미 구약 때 해서 실패로 끝난 걸 다 아시죠? 인간이 나서서 된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왜냐하면 인간 중에 어떤 위대한 신앙인을 뽑아봤자 다윗이라는 경계를 못 넘어요. 다윗이 상한 심령이라면 어떤 인간도 상한 심령 아닌 자가 없습니다. 상한 심령 주제에 이미 상해버린……. 상했다는 말은 음식을 냉장고에 안 넣어놨어. 다 썩은 거예요. 부패한 거예요. 곰팡이 핀 거예요. 곰팡이를 하나님이 먹을 수 있겠어요? 안 먹죠.

하나님은 곰팡이 핀 것을 원하긴 하지만 먹진 않아요. 그 곰팡이 핀 것과 그리고 하나님의 자기 아들이 결합되면 예수님의 죽음 안에서 우리의 죽음이 해소가 돼버려요. 우리의 목숨은 죽은 걸로 간주가 되고 날라가버리고 예수님의 목숨이 우리 목숨을 대체해버립니다. 그러면 그 주님의 목숨, 주님의 생명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빛의 세계, 새 하늘과 새 땅, 안식의 땅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럼 이제 두 번째 시간 하겠는데 두 번째 시간에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겠다고 준비한 그 안식의 땅에서 주의 이름이 있는 곳에서 왜 인간들은, 예수님 빼놓고 말이죠, 자기 힘으로는 왜 그 주님을 만날 수가 없느냐? 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 없느냐? 그 점에 대해서 두 번째 시간에 우리가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 수치스러워서 그래요. 더러워서 그래요. 새 하늘과 새 땅의 그 뉘앙스가 뭐냐? 맑고 깨끗함이에요. ‘맑고 깨끗한’ 그게 노래 가사에 있어요.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눈처럼 깨끗한 나만의 당신
겨울에 태어난 사랑스런 당신은
눈처럼 맑은 나만의 당신
하지만 봄 여름과 가을 겨울
언제나 맑고 깨끗해

맑고 깨끗해. 맑고 깨끗한 뉘앙스 보세요. 뭐가 없습니까? 티끌이 없고 깔-끔하죠. 마치 눈이 확 온 거기에 어린 아이가 뛰놀게 되면 그것도 12월 생일을 가진 애가 뛰어놀면 뭐가 됩니까? 겨울아이 되죠. 맑고 깨끗해. 물론 12월에 태어났다고 다 맑고 깨끗하겠습니까만.

맑고 깨끗하다는 이 말은 기존에 주님이 주신 이 세계가 안식의 세계가 인간들로 인하여 추잡하고 더럽고 지저분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냄새나는 인간들이 놀던 그 땅과 하늘, 나는 거기서 놀기 싫다고 그걸 폐기처분 해버리는 거예요.

폐기처분할 때는 이유가 있어요. 그것이 뭐냐? 율법이고 율법의 정신은 우상이죠. 다른 신을 섬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른 신을 섬긴다는 게 뭐냐? 이것 하고 10분 쉽시다. 다른 신의 특징은 언약이 없어요.

언약이 없다는 말은 뭐냐 하면 하나님 쪽에서 악수할 때 내민 희생이 없단 말입니다. 하나님 쪽이요. 인간의 희생 말고, 인간이 자기 목숨 바치는 것 말고 하나님 쪽의 희생이 없는 것, 어린 양의 피가 없는 것이 바로 다른 신의 특징이에요.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 희생만 하지, 하나님의 희생은 왜 거부하느냐? 하나님이 희생했다는 말은 이건 자기 희생과 자기 의를 하나님께서 안 받는다는 뜻이기 때문에 이게 인간의 자존심을 건드려버린 거예요. 인간은 분노하는 거예요. 그래서 복음 전해도 인간은 분노하기 때문에 안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분노하는가? 10분 쉬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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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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