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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30213a 부산강의 : [시편]55(39:5)-허무의 강자유게시판시편

20230213a 부산강의 : [시편]55(39:5)-허무의 강
(강의:이근호 목사)

시편 39편입니다. [다윗의 시]라고 돼 있지요. 다윗으로부터 나라가 둘로 나눠져요. 물론 솔로몬도 나눠지지만. 다윗에서 그다음에 솔로몬 하면서 나라가 둘로, 이쪽을 북이스라엘이라고 이야기하고 남쪽을 유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이 둘로 깨어졌어요. 당구에서 당구공 하나 탁 치면 같이 묶여있던 두 개가 튕겨져 나가지요.

둘로 나눠졌다는 것은 나쁘다는 뜻이에요. 원래 하나님의 원했던 이스라엘이 안 되었다, 그것이 파괴되었다는 이스라엘의 파괴를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이 파괴될 때는 다윗과 솔로몬으로 넘어오면서 여기에 하나님의 언약이 제대로 개선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언약이 다윗에서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파괴됩니다.

B.C.721년에 파괴되고, B.C.586년에 파괴돼요. 둘 다 멸망합니다. 이렇게 멸망하게 되면 다윗언약은 이 땅에서 멸망의 형식으로 완성이 되는 겁니다. 다윗언약이 멸망했다는 말은 이런 뜻이에요. 하늘과 땅 사이에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매개로 하는 거예요. 매개 또는 매체. 여기서 건너갈 수 없고 중간에 다리 역할 하는 게 있어줘야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거예요.

이거는 야곱에서 사다리 역할을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야곱언약에 있어서 아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야곱의 꿈속에 나타나는 사다리 있잖아요. 그 사다리에 오르락내리락했던 것이 사람이었던가요, 사람이 아니었던가요? 천사들이지요. 야곱이 있는 여기와 하늘의 문이 열렸어요. 벧엘이라고 합니다.

하늘의 열릴 때 사다리가 있는데 이 사다리에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고 천사가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천사들이 왕래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사람은 아니올시다, 란 뜻이에요. 사람은 매개체, 연결체에서 사람은 끼어들 자격이 없다. 이것은 바로 창세기 3장 24절에서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추방시키고 난 뒤에 일관된 취지입니다. 인간은 들락거릴 수 없고, 인간은 이곳에 올 수도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지시받는 천사들이 야곱에게 왔다는 말은, 야곱에게 언약의 본질의 하중을 가한다, 언약의 본질이 무게로 내려찍고 내리누르는 거죠. 그러면 야곱이란 인간이 우리 보기에는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야곱의 자리는 뭐냐 하면 공백의 자리, 빈자리가 되는 거예요. 언약은 천사들만 왕래하잖아요. 언약이란 매개는 천사만 거기에 뛰어들 수 있어요.

유월절 어린양 할 때 히브리인들이 애굽 사람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칼 들고 맏이를 죽인 게 아니죠. 유월절 밤에 히브리인들 뭐하고 있었습니까? 자고 있던지 너무 무서워서 잠이 안 왔던지 그냥 있었지요. 그냥 가만히 있었던 거예요. 인간이 끼어들 자리가 아닌 거예요. 이걸 신약에서 단순화시키면 하나님의 일은 인간이 끼어들 자리가 있다, 없다? 없다. 이걸 두 자로 ‘믿음’이라 하는 거죠.

믿음이란 로마서에서 행함의 반대입니다. 로마서에서 행함이란 주체자가 하나님이 아니고 인간의 행함을 행함이라 해요. 인간의 행함과 반대되는 것이 뭐냐 하면 믿음이에요. 그리고 믿음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로마서에서 은혜라고 이야기하고, 그 믿음은 인간이 아무것도 안 했는데 뭔가 일이 생겨버렸어요. 무슨 일이 생겼느냐 하면 하나님의 의가 발생되고, 그걸로 영생을 얻고, 그걸로 인하여 부활의 사람이 되고 천국을 가게 된 이야기가 로마서입니다.

교회 왔으면 천국은 확실하게 가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야 남는 장사가 될 것. 교회 와놓고 천국 못 가면 보통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러면 교회 다녔으면 남들에게 천국은 확실히 간다, 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되겠지요. 확실히 간다 할 때 로마서의 뜻도 모르고 그냥 믿음으로 간다, 이렇게 돼버리면 믿음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 포함이 되어 상대방에게 오해의 소지가 굉장히 강해요.

“너는 행하지 말고 믿어라.” “믿지, 뭐.” 믿음도 인간이 평소에 해왔던 거잖아요. 남편은 아내 믿고, 부모는 자식을 믿고, 자식은 부모 믿고. 전부 다 믿음관계가 형성돼 있는 이 세상, 인간이 어떤 단어를 사용할 때 그 단어에는 믿음이 뒷받침돼 있어요. 떡볶이 주세요, 했는데 호떡 내놓으면 믿음이 형성 안 되잖아요. 떡볶이라는 것은 이야기하는 사람이나 가게주인이나 전부 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믿음이 형성돼 있어요. 이 땅에서는.

이 땅에 있는 그 믿음이, 믿음을 훼방하는 것, 믿음을 방해하는 것 뭘까요? 그게 바로 믿음이에요. 믿음이 믿음을 방해하는, 이미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안다고 여기기 때문에 믿음을 방해해버립니다. 하나님의 믿음은 뭘 경유해야 되느냐 하면 인간의 행함은 안 된다는 것을 경유를 해야 될 텐데 인간의 행함은 안 된다는 걸 경유하지 않고 믿으려고 하니까 믿음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의 항목 중에 하나가 되어 덥석 믿는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덥석 물자, 이렇게 되겠지요.

십자가를 물던지, 예수님의 피를 물던지 물면 그것이 영생을 얻는다, 이렇게 돼버리면 하나님의 일에, 분명히 야곱의 사다리에 사람은 들어갈 수 없잖아요. 사다리 할 때 야곱은 자고 있었어요. 자고 있던 야곱마저 하나님이 야곱에게 계속 언약 일을 하니까 야곱의 자리가 뭐가 됐다 했습니까? 공백, 빈자리. 그럼 야곱이란 존재는 뭘 해야 하느냐 하면 여기 내가 없습니다, 나는 여기서 꺼졌어요, 지진 나서 완전히 묻혔어요. 여기는 내가 없다는 말을 표시하는 용도로 본인이 서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여기 있는 내가 아무것도 한 적이 없습니다, 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보초 서는 거예요. 빚쟁이들이 왔을 때 주인이 빚쟁이 피해서 도망치면서 아르바이트 학생을 집 앞에 세워놨어요. 세워놓은 이유가 뭡니까? “여기 주인 어디 갔어?” “주인 없습니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시급 받고 그 집 앞에 서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할 게 뭐 있어요, 없어요? 있기는 있는데 굉장히 쉽지요. 안 쉬워요? 성도가? 이놈의 전도, 선교, 예배 다 하려하니까 힘든 거예요. 헌금까지. 기도에다가 성경공부까지. 이것 하려하니까 거기다가 시부모까지 모셔야 되고 자식 키워야 되고. 아르바이트나 직업까지 가지려하니 도대체 하나님은 저를 왜 힘들게 합니까? 뭘 힘들게 해요?

간단한 문제입니다. 여기에 나 있는 곳에는 인간이 의미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인간이 뭘 해봐야 그거는 하나님 일과 아무 상관없는 일을 합니다, 라는 일을 하기 위해서 그 현장에 하나님께서 꽂아준 거예요.

이번에 터키에 지진 보면서 제가 느낀 게 있어요. 그 낯선 동네에 왜 사람은 그렇게 많이 사는지, 그게 이상했어요. 아하, 어디 가도 인간들은 있구나, 라는 사실. 물론 이슬람 쪽에 아이를 많이 낳으니까 다 분산 못 시켜서 모여 사니까 그런데 어딜 가도 땅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산다는 겁니다. 살만한 곳에 인간이 다 모여 있어요. 마치 소돔과 고모라 같이.

그런데 인간들이 모여 있다는 그 점을 하나님께서는 노리고 있지요. 그 모인 장소가 지진이 일어났지요. 지진이 일어나면 건물 잔해만 남고 사람은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안 보이지요.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에서 누가 나오느냐 하면 이스라엘이 나오는 겁니다. 뭘 통해서? 야곱을 통해서 이스라엘 나오지요.

이스라엘은 예수님입니다. 야곱언약의 본래 매개체, 본래 야곱언약의 수행자가 등장해요. 담당자가 야곱언약의 완성자가 야곱으로부터 등장합니다. 등장하면서 야곱은 등장했다는 표시를 본인이 갖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김대중처럼 저는 것, 지팡이 집고 일본 가서 안기부에 당해서 문제 있었어요.

야곱이 졸지에 태어나서는 장애인이 아니었는데 하나님 만나고 뭐 됐어요? 장애인이 됐어요. 강남강의에 의하면 그게 멀쩡하지 않은 거예요. 하나님께서 일부러 처음부터 장애인으로 태어난 게 아니고 처음부터 멀쩡하게 태어나서 하나님 만난 티를 뭐로 보여준다? 장애로 보여주는 겁니다. “나 온전치 않아.” 온전치 않은 존재가 됨으로써 자신의 출처 자체가 온전치 않다는 것을 나중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언약사람으로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우리들 생각에는 참 야곱이 안 됐다, 불쌍하다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여러분, 나중에 요양병원 가면 모든 사람이 장애인이에요. 장애가 신체적 장애만 장애가 아닙니다. 나중에 정신, 시냅스, 신경전달물질 날아가 버리면 점점 더 정신적인, 치매 현상이라 하잖아요. 장애 오지요. 그러면 그 사람은 나이 많아서 장애인 됐습니까? 아닙니다. 출처, 출생부터 그런 요소가 뒤늦게 연세 많아서 발현된 겁니다. 인간은.

그러면 젊어서 정신 바짝 차린 게 정신 바짝 차린 게 아니에요. 정신 바짝 차려봐야 마귀 생각밖에 더 나옵니까? 정신 바짝 차렸는데 마귀 생각이에요. 그럼 주님께 감사하지요. 내가 찾아내지 못하는 나의 원형을 요양병원 가서 치매 걸려서 우리는 하나의 흙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의 언약은 매개인데 이 매개에 인간은 관여됩니까? 인간은 일체 관여되지 않습니다. 야곱을 자고 있었을 때에 천사가 하늘 문을, 하늘 문이 있어요. 분명히 하늘나라 천국이 있습니다. 하지만 있으면 뭐합니까, 야곱은 자고 있는데요. 야곱은 거기에 사다리 지가 오르락내리락 지가 배달의 기수도 아니고, 짜장면 시키신 분, 해서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아니에요. 천사가 다 해요.

이걸 뭐라 했습니까? 믿음이라 하지요. 더 확실하게 믿음의 내용을 꽂아주기 위해서 가만있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야곱의 환도 뼈를 쳐버리죠. 그러니까 이제 뭐 할 건더기도 없게 만들어버리죠. 믿음 곱하기 믿음, 믿음의 제곱, 말로는 난 아무것도 못합니다, 라고 말로 때울 게 아니지요. 완전히 하나님이 야곱에게 실증적이에요. 실증적 또는 실제적으로 아예 너는 믿는 자라는 티를 굳히기 위해서 야곱으로 하여금 멀쩡하지 못하고 장애인으로 만들어버려요.

오늘 시편 39편 이야기가 다윗을 뭐로 만든다? 다윗을 장애자로 만들어버려요. 다윗을 장애자로 만듦으로 말미암아 오늘 핵심, 어렵겠지만 쉽게 하기 위해서 미리 이야기합니다. [다윗에게 건너갈 다음 세계는 없다.] 이게 아까 야곱에서 이야기한 하나님의 언약의 일관성, 언약에 부합되는 믿음의 일관성이에요. 다음 세계가 없어요. 다음 세계는 기대하는 것은 인간의 종교적인 아이디어에 의한 발상입니다. 거기서 나온 거예요.

다음 세계가 없다는 이것이 신약에 오면 세례요한을 통해서 나타나는 데 이걸 한 마디로 구약에도 나옵니다만 이렇게 이야기해요. 세례. 특히 예수님 당시에 물세례가 있었거든요. 세례요한의 물세례. 물세례를 두 자로 하면 ‘익사’하는 거예요. 물에 빠져 죽는 거예요. 어디를 다음 세계, 천국을 넘봐? 죽어.

어떤 매개가 있을 때 그 매개에 대해서 우리가 그걸 기대하거나 요청하거나 건너갈 권리를 우리 인간 쪽에서 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됩니다. 이 세계에 살지만 다음 세계에 산다는 그 상상조차마저 주께서는 물에다가 익사시켜야 돼요. 내가 하나님 믿으면 다음 세계, 하늘나라에 살 것이라는 그 생각, 그 발상마저 제거해야 돼요. 이것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금 하나님을 농락하고 속이는 거예요.

아까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믿음을 방해하는 건 뭐라고요? 믿음이죠. 믿음을 방해하는 건 믿음이에요. 진짜 하나님의 믿음은 인간들은 천사가 와서 발생시키는 결과물이 믿음이기 때문에 진짜 믿음은 하나님에 속한 하나님의 일이에요. 인간이 끼어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일을 마중 나오면서 인간들이 뭘 준비하느냐 하면 인간이 나름대로 본인의 의사가 종합된 믿음을 미리 준비했어요.

그러니까 아직 인간세계에 나타나지 않은 진짜 믿음은 인간세계에 나타나지 않았어요. 순간순간 나타나지요. 믿음은 어디에 방해받습니까? 인간들의 아주 경건하고 성스럽고 거룩하고 아주 순결하기 짝이 없는 그 믿음에 방해받고 있는 거예요. “기다렸습니다, 메시아를.” 뭐 이런 식으로. “어서 오시옵소서.” 그런 식으로. “학수고대했습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학수고대하는 것처럼. “우린 메시아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뿐만 아니고 모든 인간들은 오신 메시아를 어떻게 처리했습니까? 죽였잖아요.

어제 오전 설교에 이런 것 했어요. 성령이 오셔서 하는 일은 우리 모든 인간을 어디 보내느냐 하면 유일무이한 대체불가 살인사건으로 인도해요. 이천 년 전의 그 살인사건이 무슨 사건입니까? 십자가 사건. 이거는 거기서 헬라인이나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관계없어요. 그게 고린도전서 1장에 나옵니다.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관계없이 인간이냐? 그렇다면 너희들은 전부 다 어디로 소집당하느냐 하면 십자가 앞으로 소집시키는 것이 성령의 역할입니다.

이 성령의 일을 위해서 성령께서 먼저 누구한테 오셨느냐? 사람에게 오기 전에 일반인에게 오기 전에 특별한 사람 예수님에게 먼저 왔어요. 세례요한 할 때. 그러니까 세례요한의 물세례는 예수님이 받은 성령세례와 비교시켜서 물세례의 한계를 보여주는 겁니다. 예수님은 성령 받고 요단강에서, 다른 사람들은 물에 빠져 익사하고. 끼어들 자리가 아니란 말이죠.

예수님 단독으로 하는 일이 인간들이 거기에 편들거나 응원하거나 끼어들 자리가 아닌 거예요. 인간은 주님의 일에 응원할 역할을 맡은 게 아니에요. 응원하지 말아야 돼요. 응원하는 사람은 상당히 수상한 사람입니다. 호응한 사람은 수상한 사람이에요. 세례요한도 이야기했어요. 주님은 흥해야 되고 나는 쇠해야 된다. 같이 흥하면 왜 안 되지요? 세례요한도 같이 흥하면 왜 안 되는 겁니까? 같이 흥하게 되면 본인이 하는 일에 십자가가 방해된다니까요.

십자가는 어떤 성과를 이루는 게 아니고 모든 인간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음을 확실하게 하는 거예요. 확실하게 하는 대체불가 사건입니다. 확정된 사건, 최종 사건이에요. 인간에게 성도의 기쁨이 있다면 기쁨은 뭐냐 하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거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호하고 애매하고 애매모호한 게 아니고 성도의 기쁨은 이미 모든 게 확정 났다는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내가 하는 일에 내 구원과 전혀 별개라는 걸 확정지었어요. 내가 하는 일 또는 내게 일어나는 일, 애가 이태원에 가서 까불다가 죽었다든지 밀려서 죽었다든지 네팔에 놀러갔다가 부자간에 비행기 사고로 죽는다든지, 내게 일어난 어떤 일도 그거는 나의 구원과 상관이 없다는 말이고 그걸 더 압축해버리면 나에게 일어난 어떤 일도 장차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 벌어진 거예요,

그런데 인간의 믿음은 꾸준히 자기 위주로 믿음을 구축하고 자기를 지키고 보호하고 자기를 살리기 위한 그런 의미체제를 갖추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일이 하나 일어나게 되면, 애가 뭐 이번에 수능이 좋았다, 이걸 자기가 형성한 단단한 견고한 믿음체제에 보탬이 될 거냐, 손해가 될 거냐 이걸 따지면서 집어넣고 있어요. 이 믿음이 진짜 믿음을 훼방한다니까요.

이게 지난 번 여러 번 여기서 이야기했습니다만 그건 뭐냐 하면 의미체계입니다. 내가 있고 내 의미를 만드는 게 아니고 의미체계에서 나를 새롭게 뽑아내요. 그래서 의미체계가 무너지면 뭐도 수정에 들어갑니까? 내가 누구냐도 수정 들어가는 거예요. 드라마에 그런 내용 많잖아요.

아버지, 엄마가 재벌이고 재벌 집 아들의 의미체계는 뭐냐? 나는 재벌 2세다. 또는 재벌 3세다. 있었는데 나중에 이북에서 내려온 진짜 아들이 있어서 그 재벌 우리 아버지고, 우리 할머니다 하니까 졸지에 그동안 재벌 3세라고 자아성을 구축하고 있던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의미체제가 무너지니까 내가 알던 내가 아니었던 겁니다. 환경이 떠나서 내가 알던 내가 아니었어요. 그러니 이건 뭐냐? 자아는 수시로 바뀐다. 자아는 환경 따라서 그때그때 달라요.

만약에 여러분들이, 만약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실제로 비유로 든 건데 누가복음 16장, 거지 나사로가 있을 때 모든 사람은 거지 나사로를 보면서 거기서 천국을 뽑아낼 수가 없었어요. 모든 인간들은. 왜냐하면 환경이 인간이 이미 믿음체제로 운영되는 환경이기 때문에 저주받은 걸로 여기고 참 안 됐다. 심지어 개까지 와서 안 됐다고 아픈 거지 나사로를 핥을 정도로 측은하게 여겼어요. 누가 누굴 동정하는지 분간이 안 되는 거예요.

만약에 어떤 사람이 거지를 보고 뭐라고 하느냐? “참 하나님도 너무하시지. 저 거지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억울한 삶을 사는가.” 어렵고 힘들고 아픈, 그러니까 거지가 삼종세트에요. 인간들이 제일 듣기 싫은 게 뭐냐 하면 돈 없는 거잖아요. 돈이 없다는 것은 힘이 없다는 뜻이니까.

첫 번째, 돈이 없지요. 두 번째, 돈 없는 것에서 멈추는 게 아니고 (목탁소리까지 신경 쓰지 마세요) 돈 없지요. 그다음에 건강 잃었지요. 세 번째, 결정적인 것이 뭐냐 하면 타인을 잃었어요. 남을 잃었어요. 그걸 사회적 죽음이라 하는데 인간이 진짜 죽는 것은 아무도 나에게 전화 한 통 없을 때 죽은 거예요. 살아도 의미 없습니다.

저 목탁소리라도 들리면 괜찮지요. 목탁소리도 안 들리고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그 빈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개 키웁니다. 고양이 키우죠. 처음엔 한 마리 키우다 두 마리 키우고, 나중엔 고양이 오십 마리 키운다고. 그만큼 빈자리가 커지니까 허하니까 허한 것을 숫자로 그냥 계속 메우는 거예요. 개 한 마리니까 “너 나처럼 외롭구나. 한 마리 더 키우자.” 이렇게 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개 키우고 고양이도 키우지만 어떤 사람은 사람 키우는 것도 있어요. 아이 열두 명 키운 사람도 있어요. 어쨌든 간에 그거는 그만큼 허한 겁니다. 삼종세트에요. 다 잊어버렸지요. 첫째, 뭐 잃었다? 돈 없고, 두 번째는 돈 없으면 힘들어 노동할 수 있는 여력 없어요. 시급도 안 되니까 아픈데 누굴 써줘요? 너는 없는 채로 계속 줄곧 가라 이 말이죠.

그다음에 세 번째로 뭐 없다? 타인을 잃어버린 거예요. 돈 없고 아프니까 누가 찾습니까? 아무도 찾지 않지요. 주위에 아무도 없어요. 그럼 누가 누구의 동정의 대상이 되고, 인생 망가진 대상이 됩니까? 이게 기존의 의미체제에서는 왜 주님께서는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드느냐 하면 거지 나사로의 모습이 율법과 선지자의 완성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누가복음 16장에 나와요.

“지금 너희들이 제대로 율법과 선지자를 해석했어, 해석 안 했어?” “우리는 해석했어.” “해석했으면 내가 비유 이야기할 테니까 들어봐.” 이렇게 된 거예요. 율법과 선지자에서 그 당시 바리새인 이야기가 그 앞에 나와요. 바리새인은 돈을 더 좋아한다고 나오기 때문에 바로 이야기 나오거든요. 율법과 선지자를 해석하면서 어떤 식으로 뽑아냈는지 묻는 거예요.

어떤 예수님, 어떤 메시아를 뽑아냈느냐고 묻는 겁니다. 예수님을 말합니다. 이 율법과 선지자에서 내가 뽑아낸 메시아는 바로 이런 메시아라고 해서 거지 나사로를 내세운 거예요. 그럼 거지 나사로는 누구의 신세와 동일합니까? 예수님의 신세와 동일한 거죠. 이게 상당히 무서운 이야기인데…….

이게 뭐냐 하면 메시아가 구원자 아닙니까. 언약의 매개체입니다. 이거는 사람이 관여치 못하고 누구만 한다? 천사만 하지요. 신약에 와서 사람은 못하고 누구만 한다? 예수님만 다 하시는 거예요. 다른 이름으로 구원 받을 이름을 준 적이 없어요. 예수님이 혼자 다 하신 거예요. 예수 이름으로.

예수님이 구원자로 오실 때에 율법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그걸 옛날에 그리스도라 했으니까 ‘예수님=그리스도’에서 ‘=’을 찾아낼 수가 없었단 이 말이죠. 왜 그런가, 이 말이에요. 왜 그런가? 예수님이 오실 메시아 맞습니다, 라고 인간들은 찾아낼 수가 없었어요. 그것은 바로 오늘 본문 다윗이 건너갈 다른 세계가 없다는 것과 관련돼 있어요.

다윗이 다윗1과 다윗2로 나눠집니다. 다윗1과 2로 나눠지면서 나라가 둘로 북이스라엘과 유다로 나눠져요. 남쪽 유다는 다윗이 들어가는 게 아니고 다윗언약이 들어가요. 북이스라엘은 다윗이 갖고 있던 인간적인 면이 이리로 빠져요. 다윗이 갖고 있던 인간적인 면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 다윗의 육체에서 난 자식이 누구냐 하면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대단히 화려했어요.

대단히 화려한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뭐라 합니까?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뭔가 건너가야 될 강이 있는데 그 강을 건너지 못하고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강 하나도 건너가지 못할 허무의 강이죠. 허무의 강을 건너지 못할 정도로 이 정도밖에 내가 안 됐구나.

부귀영화 모든 것, 내가 아는 지식, 책도 많이 쓰고 책도 많이 읽었던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던, 전도서에 나와요. 모든 걸 알고 있는 나, 스스로 자기를 지혜자로 불러요. 솔 지혜자. 솔 씨 가문의 솔 지혜자. 나는 지혜자다. 자기를 소개할 때 솔로몬이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윗의 아들이죠. 다윗의 자손, 솔로몬이 말하기를, 잠언도 마찬가지고요. 다윗의 대변자에요. 다윗의 연속체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하죠.

다윗의 연속체가 자기가 하나님의 그다음 체제, 다윗언약을 연속되는 그다음 내용에 대면했을 때 자기는 비로소 건너지 못한 존재인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다윗언약을 줬다는 사실이에요. 다윗언약을 줘놓고는 받은 당사자 다윗은 건너가지 못한 존재로 발각시켜놓고 그다음에 언약의 진짜 수행자, 실행자, 성취자는 누굽니까? 다윗언약을 따라 딴 분이 오셔야 되는 거예요.

그것을 솔로몬의 엄청난 부귀영화가 지진이 나더니 와르르 무너집니다. 야곱이 형을 제치고 자기가 복을 받아냈잖아요. 그 복 받은 야곱이 얍복 강에서 어떻게 됩니까? 아까 했지요. 공백으로 와르르 무너져버리죠. 내가 사라진 거예요. 물건이 사라지고 내 자식이 사라진 게 아니고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던 당사자, 꿈속에서 천사가 왕래했던 당사자, 언약의 주인공 내가 무슨 역할 한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올시다.”라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오늘 시편 39편에 다윗이, 4절 봅시다. 누가 읽어볼까요? “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그다음에 주의 앞에는 뭡니까? 없다, 있다 공간적 연관성이에요. 생성과 소멸은 시간적 연관성입니다. 공간적 연관성에서 나는 현재 있어도 없다고 규정되는 이유는, 시간성으로 보게 되면 결국은 없어진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언약 안에 내용이 뭐냐? 시편 39편도 하나님의 계시니까요. 하나님의 예언이잖아요. 그 계시 안에 뭐가 반드시 포함돼요? 나는 있어도 없는 거다, 라는 내용이 포함돼야 그게 언약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언약을 우리가 지키는 게 아니고 언약의 적용을 받게 돼 있지요. 언약의 적용을 받게 된 상황은 그게 실제적으로 실증적으로 우리에게 덮쳐서 우리 일생의 길이를 통해서 나타내게 돼 있지요.

그러니까 성령 받아 믿음 있는 신앙인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범사에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의 언약을 언약대로 이루시는 거기에 참여된 것을 굉장히 감사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지요. 지는 거진데, 지는 거지 나사로인데. 나중에 거지 나사로의 환경이 바뀌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에 의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니까 누가 걱정 대상이 되느냐 하면 앞집의 부자가 자기 동생이 다섯 명이에요. 나는 이미 버린 몸이고 아직 진짜 율법과 선지자의 모든 결과는 천국과 지옥으로 구분되는 데 그렇다면 이 세상의 삶은 뭐냐? 속임수였던 거예요. 그게 야곱의 속임수였잖아요.

에서가 자기가 형이라고 했지만 그게 역전되는 경우는 무엇이 개입됐습니까? 야곱으로 준 거짓말이 개입되어 역전됐지요. 주님의 거짓말의 대상이 되는 것이 자기로 인하여 거짓말치고 있는 거짓말이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이 주님의 거짓말과 부딪치게 될 대상이 되는 겁니다. 거짓말로 구원하시는 주님이에요.

이게 야곱언약에 준한 주님의 일관성 있는 활동이에요. 야곱이 괜히 거짓말하는 게 아니에요. 주께서 거짓말하셔야 되는 거예요. 거짓에는 뭐로 대결한다? 거짓으로 대결하는 거죠. 인간의 거짓말은 뭡니까? “나는 구원 받아야 되겠다.” 이게 거짓말이거든요. 창세기 3장에서 추방되어 놓고 추방된 자기 입장을 애써 거부하는 거예요. 이 교회는 그런 교인들 없겠지만 교회 나오는 교인들이 상투적으로 하는 거짓말을 써보겠습니다. 긴장하지 마세요. 여러분한테는 해당 안 되니까.

“하나님 보시옵소서. 내가 자력으로 얼마나 큰 성공을 이루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자, 물어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 존재를 인정합니까, 인정하지 않습니까? 인정하지요. 인정하는 데 하나님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자기는 뭘 해야 된다? 무슨 힘으로? 자력으로. 이 자력속에 기도도 포함되지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끄집어서 하나님 보시기에 그럴싸한 신앙인으로 살겠습니다. 이게 교회가 만들어낸 거짓말입니다. 이 거짓말에 말려들면 안 되겠지요. 큰일 나지요.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뭐라고 이야기했습니까? 하나님이여,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이렇게 만들었지요. 나로 하여금 있어도 없는 자. 없는 자는 그다음 건너갈 새로운 자기의 나라를 생각할 자격조차 같이 없는 거예요. 없는 자가 있는 세계를 구현해요. 그걸 왜 기대합니까. 없으면 그런 것도 없는 거지요.

아까 처음에 이야기했잖아요. 다윗은 이 매개를 넘어서서 다른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에 멈춰있다. 들어갈 수 없는 거예요. 그 다윗의 자손이 솔로몬이에요. 솔로몬이 허무하다. 전도서 마지막에 보면 솔로몬이 허무한 허무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기껏 거기서 이야기하는 게 뭐냐 하면 바로 심판을 이야기해요. “청년들아, 마지막에 심판 때 오기 전에 똑바로 살아라.” 이게 솔로몬이 할 수 있는 전부에요.

그러면 다윗은 건너갈 수 없다 이 말이죠. 다윗은 건너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열왕기상으로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솔로몬 이야기로 끝나는 게 아니죠. 열왕기상 8~11장 솔로몬 이야기에요. 12장 넘어오면 르호보암 나오고, 13장에 여로보암 북쪽 왕 이야기 나오는데 성경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죠. 지금 신약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그럼 그 사이에 뭐로 메워질까요?

자, 지금 다윗이 아파요. 여기 39편, 제일 마지막에 보세요.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13절) 다윗이 지금 아픕니다. 아픈 것도 다윗의 예언이에요. 아프다는 말은 내가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자생적으로 내게 있다, 없다? 없는 거예요. 아픈데 내가 못 고친다는 말은 아픔조차도 뭐가 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언약의 일관성 속에 언약에 의해서 절차 속에 포함이 된 내용입니다. 아픈 것조차.

그러면 이게 예수님입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입니다. 자손이란 말은 이어졌다는 말이거든요. 다윗과 예수님 사이에 점선이 있는데 이 점선은 뭐로 이어졌느냐 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선지자에요. 선지자 계열이고, 솔로몬 계열은 뭐냐 하면 국가 왕 계열이에요.

그래서 열왕기상 13장 들어가면서 부딪치는 것은 무엇과 무슨 계열이 부딪치는가? 국가 왕, 힘의 융합체, 힘의 결집, 국가라는 것, 국가와 선지자 계열이 충돌합니다. 선지자 계열의 공통점이 있어요. 뭐냐 하면 사람 만나지 말라. 사람을 만나면 힘이 생겨요. 국가의 특징이에요. 내가 지목한 사람만 만나라.

그 예를 보겠습니다. 보기 전에 먼저 아셔요. 다윗에게 고난이 임했잖아요. 지금 아프고 싶어서 환장한 것 아니잖아요. 다윗의 고난으로 인하여 다윗은 자기가 무능력한 것을 발견한 거죠. 아파 죽어가니까 나의 마지막 끝장은 주께서 나를 아까 무슨 넓이만큼? 손 한 뼘만큼 살고 고만 죽어. 그것도 하나님이 다윗에게 준 계시니까요. 아파? 네가 죽으면 돼. 하나님의 계시가 그거에요.

그런데 현재 다윗은 왕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왕이죠. 왕인데 왕의 역할이 뭐라고요? 그냥 죽어, 이 말이에요. 왕의 역할이 그냥 죽는 거예요. 그거는 왕에게 힘이 완전히 빠졌을 때나 일어날 일이거든요. 국가와 선지자에 있어서 두 계열이 어떻게 나눠지는가? 누가복음 4장 24절에 그게 나옵니다.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여기 엘리야 이야기 나오는 데 다윗에게 이미 언약을 줘버린 상태에서 최초의 선지자는 엘리야입니다. 그전에 선지자 대표자는 모세입니다. 그래서 모세와 엘리야와 그다음에 예수님이 어디에 나타났느냐? 마태복음 17장 변화산에 구약을 대표해서 모세와 그다음에 엘리야가 등장합니다. 율법의 대표자 모세, 선지자 대표자 엘리야.

그 선지자가 엘리야가 뭐라고 돼 있느냐 하면, 그전에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고향이란 기본 토대지요. 존재의 토대에서 출생지를 말합니다. 고향은. 출생지 성장했던 자기 자아가 형성됐던 토대에서부터 선지자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은 거기서 하나님께서 계열을 강제로 이탈시켰다. 그럼 남아 있는 건 뭡니까? 기존의 고향의 집단적 힘을 고수하겠지요. 그게 커지면 국가가 되는 거예요.

여기는(선지자) 국가에 속하지 않는 게 아니라 국가에서 내침을 당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나중에 예수님에게 만나요. 국가는 예수님을 힘으로 치고 예수님은 여기서 죽었다가 선지자로 살아나올 예정이죠. 여기서 어떻게 구분하느냐, 구분 이야기를 제가 하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누가복음 4장 24절 하는데, 그때에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뭐가 들었습니까? 큰 흉년이 들었지요.

그 뒤에 보세요.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과부가 한두 명이 아니었어요.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그다음에 ( )에 뭐라고 돼 있습니까? 그다음의 글자? ‘않고’ 부정성이죠. 그러니까 사람을 만나지 말라는 것은 기존의 모든 사람을 부정하되 내가 찾아간다는 것은 엘리야가 찾아간 그 인간으로 인하여 기존의 모든 부정성은 더욱더 강조되는 거예요.

그림을 그리는 데 그냥 백지는, 백지라는 표현이 덜 돼요. 그런데 거기서 점 하나 딱 찍고 미완성으로, 점 하나 찍으니까 그림이겠어요? 아니지요. 그림은 미완성이죠. 미완성의 의미가 강조된 것이 하나의 백지로 등장하는 거예요. 그냥 백지가 아니고 나는 그림을 여기서 그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점 하나 찍은 거예요. 그 점에 해당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지목한 사람에게 찾아가는 거예요.

그럼 지목한 과부는 누구 신세와 동일해요? 그 시대의 그 공간의 그 시간의 선지자와 똑같은 신세가 되는 겁니다. 이 노선이 누구한테 이어진다고요? 예수님에게 이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의 일은 인간이 끼어들 게 아니다, 라는 것을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더욱더 강화되고 강조가 되는 겁니다.

다윗은 나는 이 땅에 없는 자가 되고 구원? 없는 자가 무슨 구원을 기대해요. 안 되지요. 그래서 주께서 많은 과부들, 주께서 과부들 구제 사업하시려 오신 게 아니에요. 과부되어 죽으나 멀쩡하게 남편 있어 죽으나 그거는 하늘나라 의미 없어요. 의미 있으려면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에게 갔을 때 이게 선택 개념이거든요. 과부에 딱 갔을 때 그 과부는, 나는 구원 받았다는 이야기하면 안 돼요. “내가 구원 받을 쨉이 아니구나.”를 알면 돼요.

그게 바로 엘리야 증인되는 거예요. 그 과부는. 나한테 안 찾아와도 되는데 찾아왔다는 겁니다. 실제로 과부한테 찾아왔을 때 과부가 엘리야를 곱게 대했습니까, 반항했습니까? 반항했지요. “일부러 아들 죽였잖아요. 왜 우리 집에 와서 아들까지 죽이느냐. 누가 도와 달라 했어?” 이런 식으로 반항했는데 나중에 아들 살리지요. 그럴 때 그 과부의 변화가 뭡니까? 이거는 내가 선지자 오라고 도와 달라고 요청할 입장이 못 되는 이 세대 저주받아 마땅한 세대를 대표해서 그 과부는 구원 받은 겁니다. 엘리야에게.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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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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