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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30203a 울산강의-역대기상(17강) 16장 16절 : 말려든 자자유게시판-

20230203a 울산강의-역대기상(17강) 16장 16절 : 말려든 자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역대상 16장부터 하겠습니다. 역대상 16장의 보면 하나님의 궤가 나옵니다. 궤는 상자인데 하나님의 상자, 그냥 궤짝이죠. 이 궤짝에 사무엘상 6장 19절, 20절에 보면,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고로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인을 죽이신지라” 돼 있어요. 언약궤란 상자를 봤는데 하나님께서 70명을 죽였습니다.

그러면 이 말은 뭐냐 하면 상자 바깥과 상자의 안의 세계가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너는 상자 밖에 있고 하나님은 어디 안에 있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 거예요. 상자 바깥에 있는 인간이 상자 안의 세계를 마치 자기 세계인 양 호기심을 갖고 들여다본다면 그것은 뭐냐 하면 곧 죽음이에요. 사람이 있고 여기 상자 안에 하나님 있잖아요. 여기 뭐가 설치돼 있단 말입니까? 죽음이 설치돼 있는 거예요, 죽음이.

이게 창세기 3장 24절의 말씀이에요. 하나님께서 생명이 있는 에덴동산에서 내쫓아내버리고 그다음에 다시 들어오면 죽어요. 생명나무가 있는데 이 생명나무에서 인간들이 추방되었어요. 쫓아내고 여기에 두루 도는 화염검, 천사들이 불 칼로 여기에 못 들어오게 했단 말이죠. 만약에 이쪽에 발을 들여놓으면 뭐가 된다? 죽는다는 이야기거든요. 죽어요.

그렇다면 머리가 뛰어난 여러분은 생각할 거예요. 그러면 인간들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생명나무 바깥에 살고 있지요. 이 바깥의 세계가 무슨 세계냐? 바로 죽음의 세계지요. 죽음이 무엇인가를 드러내기 위해서 굳이 태어나서 살아야 될 세상이 우리 이 세상인 겁니다.

어린아이들, 어릴 때 동화책을 많이 본 소녀 같은 경우에는 공주가 되고 남자아이들은 왕자가 되겠지요. 어릴 때 공주, 왕자로 시작해요. 공주처럼, 왕자처럼. 그런데 좀 크면 여자는 자기를 여자로 봐요. 그리고 남자는 자기를 남성으로 본다고요. 여자는 자기를 여성으로 봐도 되지만 성은 대표자가 남자기 때문에 남성과 여자, 여자로 본다고요. 처음에는 공주에서 많이 양보한 거예요.

그런데 결혼해서 살다보면 여자가 떨어져나가요. 뭐가 되느냐 하면 사람이 돼요. 남자, 여자 관계없이 나는 그냥 사람이구나. 사람에서 좀 더 나가면 나이 들면 내가 괴물이 돼요. 또는 괴수가 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뭐가 되느냐 하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전부 다 흙이 됩니다.

여자 나이 육십 쯤 되게 되면 여자로 안 봐요. 사람으로 봐요. “저기 사람 가네.” 젊은 사람들은, “여자가 가네.” 여자의 시절이 끝나면 사람이 되고 나중에 팔십 되고 요양원에 가면 괴물이 돼요. 나중에 요양병원 졸업하게 되면 뭡니까? 하나의 흙이 되죠. 이게 무슨 세계라 했습니까? 죽음의 세계에요.

이게 하나의 교리입니까, 이게 신학이에요? 우리는 지금 교리를 연구하는 거예요, 신학이란 지식을 우리가 공부하는 겁니까? 아니지요. 우리 사는 이 세상 자체를 제대로 보는 것은, 이건 좀 어려운 이야기인데요. 우리 인간이 그동안 자기를 제대로 보질 못한 이유가 저쪽 세계에서 누가 건너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흙이 된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지만 흙 다음에 무엇이냐,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과학이나 철학도 아무 주장을 내세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이나 철학을 내세우려면 이 세상에 있는 세상 끝나고 난 뒤에 어떤 세계냐를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세상 끝나기 전에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증명해야 돼요. 그게 논문입니다.

논문이란 어디서 나왔느냐? 논문의 모든 소스는 이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추려내야 돼요. 세상 바깥에 있는 그것으로 이 세상은 이게 진리라고 주장하면 이 세상에선 안 받아줍니다. 그러니까 이 자체가 모순되지요. 죽음이 무엇이냐의 증거는 죽어봐야 아는 것이지 살아 있으면 죽음이 무엇이라고 해봐야 그건 가설이죠.

따라서 인간을 이렇게 죽음으로 내보낸 그쪽 세계에서 누가 건너와야 돼요. 인간을 이렇게 죽음의 세계로 만든 의지를 가지고, 좀 죽어줘, 라고 확실하게 죽음의 세계를 형성하도록 해준 그쪽에서 누가 건너와야 우리가 이 세상에 내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다는 걸 비로소 아는 겁니다.

우리가 공주로 시작해서 남자나 여자로, 그다음에 사람으로, 괴물로, 흙으로 죽는다는 이게 섭섭합니까, 아니면 기분 즐겁습니까? 어떻습니까? 이걸 우리 자신이 밝히면 기분이 섭섭하구먼, 이렇게 되겠는데 어떤 분이 오셔서 이걸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내가 이렇게 된다는 것이 그게 섭섭한 게 아니고 어떤 분이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굳이 해주셨다는 그 사실 자체가 기뻐야 돼요.

내가 이 세상에서 뭘 알겠어요? 전혀 모르고 있는 무지 상태의 나를 하나님께서 일괄해서 일괄적으로 다 아시는 분이, 세상은 이렇게 돼야 마땅한 거야. 네 조상이 원래 에덴동산에서 살았는데 추방되어서 후손이 대대로 전부 다 죽음의 세계에 태어나서 죽음의 세계로 사라지는 거야, 라고 누가 이렇게 친절하게 우리 마음속에 알려주는 것, 그 자체가 여러분 즐겁지 않습니까, 기쁘지 않습니까?

사람이 꼭 내가 죽음의 세계에서 태어나서 결국은 죽는다는 사실, 이것이 섭섭해 하지 마시고요. 왜 그래야 되는지를 알 때는 그게 기쁨으로 변해요. 왜 그래야 되느냐 하면 우리 세계로 건너오신 그분은 여러분 아시다시피 그분은 죽었지요. 죽었는데 우리는 죽으면 흙이 되면 끝이잖아요. 그분은 점점점 3일 뒤에 어떻게 됐어요? 죽었는데 3일 뒤에 빈 무덤 됐지요. 빈 무덤이란 말은 뭡니까? 시신이 도난당한 게 아니고 그 당사자가 시체 찾으러 온 막달라 마리아 보고, 누굴 찾느냐고 이야기했어요. 크게 써보겠어요.

너는 지금 누굴 찾는가, 또는 누굴 찾느냐? 이렇게 물었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막달라 마리아 뭐라고 했느냐 하면, “조금 전까지 죽으신 분을 찾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조금 전까지 죽었던 분을 찾는다는 말은, 막달라 마리아가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것은 막달라 마리아의 모든 언어와 모든 행동과 마음속은 어디에 갇혀있단 말입니까? 죽음 바깥에 있는 게 아니고 죽음 안에서 뺑뺑이 돌고 있지요.

죽어서 아는 것 말고 살아 있을 때 눈으로 확인될 수 있는 그 범주 내에서 판단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거예요. 죽음 바깥 말고 안쪽의 범주 내에서 시신이 있었는데 여기 없습니다, 라고 이야기했을 때에 예수님 하신 말씀이, “네가 누구를 찾느냐?” “죽었던 분을 찾습니다.” 예수님이 뭐라 했습니까? “내가 말씀대로 이렇게 살아났잖아.” 말씀대로.

“내가 너한테 한 말이 헛된 말이고 그냥 부질없는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아무것도 아닌 말이었던가. 나는 내가 한 말 그대로 여기서 살아났느니라.” 내가 바로 죽었던 네가 찾고 있는 그 시체의 주인공은 현재 어떻게 됐다? 약속대로 이렇게 살아 있잖아, 하는 순간 막달라 마리아의 생각의 범위는 어떻게 되겠어요? 죽음의 세계에 있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어떻게 됩니까? 죽음 이후로 확대됐지요. 이번 수련회 9강 초반에 했잖아요. 죽음 이후로 확대된 거예요.

죽음 이후로 확대된 막달라 마리아 보고, “아이고, 아줌마. 이 땅에 죽음의 세계에 태어나서 고생 많이 했고 참 슬프지요. 죽음의 세계에 태어나서 공주로 왔다가 나중에 흙으로 돌아가는 게 섭섭하지 않습니까? 이거 섭섭하구먼, 그런 생각 들지 않습니까?” 할 때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 만나고 난 뒤에 무슨 생각하겠습니까? “나한테 그걸 알려줬던 이제야 내가 죽음 이후까지 확장되어 알게 된 그 기쁨에 나는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이걸 내가 알게 되다니.”

세상 사람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 그냥 짐작만 하고, 그냥 그럴 수도 있겠지. 종교도 하나의 이론이니까 머릿속에서 나왔으니까 그러면 좋겠지, 가 아니라 이건 뭐 다른 소리, 군소리 못하게 만들었잖아요. 너 누구를 찾느냐고 되묻는 그분이 지금 살아 있잖아요. 살아 있는 분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그 말을 약속을 했다고 할 때 막달라 마리아 속에 뭐가 들어왔습니까? 약속이 들어온 거예요.

주의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말씀이 내뱉고 다시 거둬들인 그 관계에서 누가 끌려 들어온 거예요, 말려든 거예요? 막달라 마리아가 같이 끌려 들어온 거예요. 그러면 막달라 마리아 속에 뭐냐 하면 막달라 마리아의 기술, 공부한 것, 지식, 학식, 덕식 이런 게 있는 게 아니고 주의 말씀이 들어있는 거예요. 주의 말씀이 주도권을 쥐고 들어있는 겁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좋아서 어쩔 줄 몰랐지요. 제자들한테 가서 “나, 그분 봤다. 그분의 약속은 죽었다 살아난 것뿐 아니고 나머지 모든 말씀도 그게 바로 현실이고 그게 바로 진실이었다. 다른 진실은 나한테 필요 없다.” 3x5=15, 그런 진실은 진실도 아니에요. 그건 진실도 아닙니다. 지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하는 것 진실이다. 그런 진실도 짜증나. 그런 진실은 진실도 아니에요.

저 태평양 건너가면 미국이란 나라 있다. 그건 진실이야. 그 진실은 무슨 의미 있는 데요? 그건 눈에 보이는 죽음의 세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 정도밖에 안 되잖아요. 그 정도 알고 여러분 평생 죽을 때까지 시간 허비하면서 사실래요? 기껏 고정도 아는 것, 신문 보고 AI한테 물어보면 다 아는 고정도 가지고 여러분 인생, 목숨 걸렵니까? 아니잖아요.

방금 이야기한 것이 요한복음 20장에 나오는 그 말씀,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지만 오늘 역대상 16장입니다. 역대상 16장에서 하나님의 궤, 상자가 있는데 그 궤에는 하나님이 그 상자 안에 들어있는 거예요. 그리고 인간은 어디 있는가? 상자 밖에 있지요. 이걸 글로 표현하면 이렇게 됩니다. “너는 거기에 있지만 나는 여기에 있다.” 언약궤를 가운데 두고.

그래서 사무엘상 6장에서 언약궤 만지다가 죽었잖아요. 죽으니까 여기 사람들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백성들이 애곡하더라. 그다음에 20절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가로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이 즐거워야 되는데 즐거움이 아니고 공포스럽게 된 거예요. 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너는 거기 있지만 나는 여기 있다는 거예요. 함께 있지를 못하는 거예요.

인간은 죽음의 세계에 있고 주님은 생명의 세계에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걸 언약궤란 공간을 동원해서 도구를 동원해서 같은 인간의 세상에 하나님이 함께 있으면 인간들이 발발 떨게 만드는 겁니다. 이 세상에 어떤 버뮤다 삼각지라 해서 들어가면 죽는다고 하잖아요. 하나님께서 이 땅에다 생명나무 있는 장소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땅에서 이동시켜버린 거예요.

이동시키니까 인간들은 어디에도 다 갈 수 있지만 그곳에 가면 인간은 죽는다. 그러면 그곳이 저 멀리 눈에 띄지 않는 먼 곳에 있다면 나중에 죽으면 갈게요. 그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가면 죽는다는 장소를 이스라엘 나라한테는 그게 공존하게 만들었어요. 같은 땅에 약속의 땅에 함께 있게 됐다 이 말입니다. 그게 굉장히 신기하고도 두려울 수밖에 없는 그러한 상황이 된 거예요.
그게 이스라엘의 독특한 점이에요. 다른 민족과 다른 점이에요. 다른 민족은 높은 산에 제사 드리면 돼요. 이스라엘은 그게 아니에요. 하늘이여 받으소서. 옛날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 왕이 제사장 복장으로 비 오라고 기도했잖아요. 그때 특정 제단 세워놓고 했는데 이스라엘은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미리 와버렸어요. 너는 죽고 나는 살았다는 그 상황을 같이 공유하게 만든 거예요. 같이 있게 만든 거예요. 인간들만 사는 세계에 하나님이 들어와 버린 겁니다. 누구한테? 이스라엘 나라한테는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역대상 16장 봅시다. 여호와 궤를 메고 올 때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다윗이 이제는 아무나에게 언약궤를 맡기지 않습니다. 아무나가 아니고 여기 4절에 보면 누구한테 맡기지요? 레위지파에요. 레위지파는 언약궤를 들여다보면 안 되지만 하여튼 왜 운반할 수 있는 만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가? 제사장과 레위지파 사람들은 하나님께선 살아 있지만 이미 죽은 걸로 간주하는 표시를 했어요. 제사들한테.

멀쩡히 살아 있는데 일단 좀 죽자. “너는 죽은 거야. 너는 산 것 아니야.” 라는 표시를 제사들한테 한 거예요. 레위지파에서 제사장들 나왔으니까. 그러니까 죽은 자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운반할 수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올 때에 그들의 양심을 봤습니까, 도덕을 봤습니까, 인격을 봤습니까? 그들은 뭘 보고 애굽을 나왔습니까? 이게 복음이죠.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복음 압니까, 모릅니까? 딱 결정지을 수 있는 그 내용을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올 때 인격이나 품위나 부모 효도, 양심, 착한 것 그것 보고 하나님께서 내보냈습니까? 뭘 보고 내보냈습니까? 방금 언급했잖아요. 너희들은 일단 죽었다고 본 거예요. 그래서 죽어버린 이스라엘은 어디에 싣느냐 하면 죽은 어린양 안에 이스라엘을 품어버립니다.

바깥의 어린양에다 이스라엘을 품으니까 이미 어린양은 죽었잖아요. 피 바랐으니까.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미 죽은 걸 넘어가는 걸 뭐라고 합니까? 유월(절), passover라 하는데 그냥 넘어가는 거예요. “죽었다. 넘어가자.” 이미 죽었으니까 두 번 다시 거기에 대한 죄 문제라든지 거기에 대한 책임을 일체 묻지 않는 거예요. 이걸 복음 안이라 해요. 네가 교회 몇 번 다니고 봉사하고 그런 것 안 묻습니다. 묻지를 않아요.

목사 대접한다고 고기 사줬나, 그런 것 묻지를 않아요. 그냥 뭐냐 하면 너 지금 누구 안에 들어있어? 죽은 어린양 안에 들어있습니다. 이걸 죽은 어린양이 세상 죄를 어린양이라 해서 신약에서 십자가 안이라 해요. 갈라디아서 6장에 나옵니다. 나는 십자가 안에 있다. 십자가 있는데 내가 그 안에 들어있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사도 바울이 움직일 때 뭐가 움직이는 거예요? 십자가 안에 사도 바울 들어있으니까 사도 바울이 움직인다는 말은 뭐가 움직인다? 십자가가 움직이는 겁니다.

부엌 바닥에 가만있는 냄비가 움직인다? 그러면 그 냄비가 움직이겠어요. 냄비 확 들춰보세요. 그 안에 생쥐 들어있지. 생쥐 들어있으면 생쥐 가면 바깥의 냄비가 그냥 움직이는 게 보이잖아요. 주님께서 이 땅에 복음만이 움직이길 원해요. 인간이여 좀 나대지 마라. 인간이 설치면 안 돼. 복음의 갑옷을 입고, 그게 에베소서 6장에 나옵니다. 전신갑주를 입고(13절).

복음의 갑옷을 입고 움직이게 되면 여기서 마귀가 화살을 쏘고, “네가 부모한테 효도를 했어? 네가 착실히 살았어?” 백날 율법으로 화살을 쏘고, “네가 완전해, 완벽해? 너는 하자 없어, 실수 없어? 너는 제대로 인생 살았어?” 하고 화살을 막 쏴 대죠. 마치 임진왜란 때 거북선 가는데 일본 배에서 화살 쏘잖아요. 그게 먹혀들어갑니까? 안 먹혀들어가죠. 거북선은 지붕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거북선은 세계 최초로 지붕 있는, 세계 최초는 아니에요. 왜? 노아방주가 있기 때문에^^

거북선은 지붕이 있는 배에요. 일본과 해전을 벌이는 일본 배는 다 노출돼 있어요. 거북선에서 불화살 쏘니까 일본 배가 불타고 노량해전에서 침몰하잖아요. 제가 이야기하는 게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옵니다. 누가 너를 쏘리오. 누가 너를 험담할 수 있느냐? 로마서 8장에 누가 너를 정죄하리요. 파출소장, 교도소? 필요 없어요. 주께서 이미 주님의 판단을 거친 사람이에요. 어린양 속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주님에게 올 수 있는 지옥의 모든 거주는 다 커버가 돼요.

우리 인생 살아도 그리 한 번 살아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실은 비겁한데 비겁한 것 알아요. 얍삽한 것 알아요. 중요한 것은 누구를 증거한다는 것, 십자가 지신 분을 증거한다는 이것이 하나님이 원했던 하나님 백성입니다. 그 십자가 들춰보면 가관이에요. 어떤 건 세리, 어떤 건 창녀, 어떤 것은 도둑놈, 어떤 것은 강도, 어떤 것은 절뚝발이, 어떤 것은 소경, 온갖 사회에서 지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바가지를 하나 썼는데 전부 다 십자가로 바가지를 쓰니까 그 죄를 물을 수가 없네요. 왜? 이미 죽은 자로 간주되기 때문에, 이미 저주받은 자로 간주되기 때문에. 이게 바로 복음입니다.

교회에서 세례 줄 때 하나님 믿습니까, 이러면 안 되고 복음에 대해서 물어서 세례 줘야 돼요. 이 말이 굉장히 수월한 것 같지만 이게 자기 의를 포기할 때만 해당되거든요. 자기 의로움, 나 잘났다 이것 포기 안 하면 우리는 십자가 갑갑해서 지가 벗겨버려요. 나는 잘났는데 그딴 거죽 떼기를 굳이 써야 돼? 나 누구 못지않게 잘났어. 나 그 재미로 사는 거야, 라고 이렇게 큰소리치는 사람에게 십자가 들이밀면 답답하다고 던져버리지요. 이딴 복음 나한텐 필요 없다. 끝까지 난 잘나고 싶어, 이런 거예요.

그러면 왜 하나님은 언약궤를 보내셨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 이스라엘에게 왜 언약궤를 보내셨는가? 그것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주인을 찾아가기 때문에. 주인을 찾아가게 만든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도 사건이고요. 애들이 태어난 것도 사건이고, 그리고 이 세상에 일어나는 교통사고부터 모든 일들은 하나의 사건이에요. 그 사건을 일으킨 주인이 따로 있어요.

이 땅에 일어나는 사건의 주인은 따로 있습니다. 모든 사건의 주인을 뭐라고 하느냐? 이걸 기원, 또는 원천, 다른 쉬운 말로 본래의 모습, 본래의 나. 결국 언약궤를 보냈다는 말은 내가 모르는 진짜 나, 내가 처음 출발했던 진짜 나로 하나님께서 데려가기 위해서 언약궤를 이스라엘 속에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줬습니다. 언약궤를 통해서.

강의를 처음부터 다시 해봅시다. 신기한 일이 뭐냐 하면 상자 하나 들여다봤다고 70명이 죽은 것, 참 신기해요. 그게 뭐라고. 그냥 아카시아나무에다 금박 입힌 건데 그게 뭔데 죽느냐 이 말이죠. 그러니까 상자 만졌는데 사람 죽였다. 이 말은 이 세상 어떤 공장에서 만들었단 말입니까, 이 세상에서 안 만들었단 말입니까? 이 세상에서 만들 수가 없지요. 언약궤는 인간이 만들었지요.

그러나 언약궤 속에 있는 걸 만들고 집어넣더라도 그 언약궤를 들여다보면 죽는다는 말은, 언약궤를 만들게 하신 분이 인간에게 만들라 해놓고 거기에 하나님이 자기 거처로 삼았다는 뜻이거든요. 이게 하나님이 인간과 더불어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참 신기한 일입니까? 참 신기한 일이죠.

그다음에 모든 사건의 주인을 찾아간다는 말은, 사건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지요. 일어난 일은 꼭 일어날 이유가 있잖아요. 사건에 주인이 있다는 말은 그 사건의 이유를 내 쪽에서 대지 마세요.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갈 이유를 내 쪽에서 굳이 이유를 대지 마세요. 내가 이렇게 살아야 될 이유는 내가 훌륭하기 때문에 자꾸 내 쪽에서 만들어내지 마세요. 왜냐하면 그 이유는 주인이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말씀으로.

너는 이것 때문에 이 땅에 태어나야 했었어, 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이유를 알려줘요. 하나님 쪽에서 이유를 이미 확정지어서 준다는 말은, 내 쪽에서 나한테 일어나는 이유를 내가 굳이 만들 이유가 없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이걸 더 추려보면 뭐냐 하면 이렇게 돼요. 여섯 자입니다.

“이유 없이 살라.” 이유 없이 사세요. 일곱 자로 하면, 이유 없이 살아라. 그냥 이유 없이 살아야 돼요. 사람이 왜 사는 게 힘든 줄 알아요? 이유를 대기 때문에 힘들어요. 우리는 아무 이유가 없는데 자꾸 내 쪽에서 이유를 만들려고 억지를 부리니까 일어난 사건도 힘들고 그걸 정당화하고 변명한다고 그것도 힘들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역이고 지옥인 이유가, 왜 지옥이냐? 자꾸 이유를 만들려니까 지옥이 되는 거예요.

자기 집에 남자 아이가 있으면 “아들 이리와. 내가 오늘 옷 하나 사준 이유를 알아야 돼. 따뜻하게 해서 공부 많이 해라.” 자꾸 엄마가 아들자식 사랑한다고 이유를 대니까 아이는 부담이 되는 거예요. 아마 그 애가 복음을 들었으면 “엄마, 우리가 이유 대면 안 된데. 복음 아는 분이 그러는데 이유 없이 산데.” 이유 없이 사는 게 제일 편해요.

왜 이유 없이 사느냐, 묻거든 이렇게 하세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이 책임을 지려고 하거나 나한테 이유를 대려고 하는 그것이 우리는 당연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진짜 사건의 주인이 와서 이야기하는 것이 뭐라고 하냐 하면 네 죄를 내가 용서한다. 그게 이유거든요. 우리가 이 땅에서 우리 식대로, 마이웨이죠.

우리 방식대로 산다는 그것이 다른 분한테는 이게 정상이지만 저쪽 세계에서 이 땅에 오신 분이 이야기하기를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나는 오늘부로 네 죄를 지금 이 순간 너의 죄를 내가 사하기 위해서 용서하기 위해서 왔다는 그 순간부터 뭐가 죄가 돼버렸어요? 우리가 굳이 우리 인생에 대해서 이유를 대는 그것이 바로 죄라는 사실을 예수님이 죄 용서란 말을 함으로써 거기서 마중 나가면서 우리가 죄인인 걸 아는 거예요.

내가 죄 지어놓고 이게 죄라 하는 것은 그건 죄가 아니에요. 그건 기껏 내 양심상 반성하려고 “이건 죄 맞습니다. 맞아도 쌉니다. 고생해도 당연하지요. 지은 죄가 커서.” 맨날 그런 이야기하는데 여러분들 연세 많은 어머니가 그런 이야기하잖아요. 네 꼬라지 보니까, 가슴을 치면서, “내가 못났어. 내가 잘못이지. 내가 죽어야 돼.” 이러잖아요. 진짜 엄마 죽던가요? 그거는 정신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는 거예요, 자식한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이야기에 많이 속아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여러분들. 내가 못났다? 절대로 안 못났어요. 엄마는 지금 수고했다고 자찬하고 자랑하고 있는 거예요. 부흥회 가서 “주여, 내가 이런 죄인입니다.” 그건 죄 아닙니다. 죄라는 것은 지 죄를 알아서 용서받는 게 아니고 죄 용서받는 그 순간 그제야 아는 것이 뭐냐? 내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죄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요.

그러니까 이 땅에 살면서 내가 책임질 내 일은 없고 전부다 누구 일이냐 하면 주님의 일이에요. 죄 용서도 주님의 일이고, 이유 대지 말라는 것은 주께서 당부하신 거고 모두 그렇게 하신 거예요. 저쪽 세계에서 건너온 것도 우리보고 오라고 한 게 아니고 주께서 알아서 오셨고요.

아까 했던 문장을 다시 써보겠습니다. 너는 거기에 있고 나는(하나님) 여기에 있다. 그러면 거기는 어디고, 여기는 어디냐? 거기는 사람들이 현실이라고 또는 이걸 세상이란 곳에 있어요.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하나님은 말씀 안에 계셔요. 그러니까 말씀세계와 현실세계가 하나님이 안 오시면 이 세상에 둘로 안 나누는데 오셨기 때문에 말씀세계 따로 있고 그냥 인간들이 태어나면서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 따로 있는 거예요.

현실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현실세계에서 어디로 들어온 거예요? 말씀세계 안으로 들어온 겁니다. 아까 같이 거북선 안으로 들어온 거예요. 또는 십자가 안으로 들어온 거예요. 또는 어린양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그 보호막 안으로 들어온 거예요. 그 안의 세계는 말씀으로 시작해서 말씀으로 마감되고 완료되고 완성된 말씀의 세계가 여기 있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에 현실세계에 있는 사람의 특징은 뭐냐 하면 말씀세계에 들어오지 못하고 현실세계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이게 있어요. 승자와 패자, 또는 패배자의 세계입니다. 말씀 밖의 세계는 승자와 패배자 둘로 나눠져요. 언제? 매일, 매일같이. 물론 집에서 게임하는 사람은 게임할 때마다 늘 느끼지만.

실제로 게임 안 하고 일상 출근하고 퇴근해도 항상 느끼는 것은 뭐냐 하면 내가 저 사람한테 말발로 이겼느냐 졌느냐? 내가 직장에서 동료와 만날 때 이 타이밍에 이긴 순간이었어, 안 그러면 내가 굴욕적인 순간이었어? 늘 따지게 되는 것이 현실세계입니다. 늘 이기면 좋겠지요. 그러나 이겼다가 졌다가, 이겼다가 졌다가 지게 되면 이긴 기쁨은 다 날아가고 졌다는 굴욕감, 좌절감 인생 살기 싫네, 이런 것 있잖아요.

회사에서 이야기합니다. 이번 달 이 과에 있는 사람들 보너스 백만 원 드리겠습니다, 할 때 총무과라면 그 과에 있는 직원들은 와~하고 환호성을 지르겠지요. 자, 우리가 방금 생각했습니다. 현실세계에서는 뭐가 있다했습니까? 승자와 패자만 구분돼요. 그렇다면 총무과가 백만 원 받았다면 사장이 총무과 수고했어. 특별히 백만 원 보너스 쏜다, 할 때 왜 그들이 기쁩니까? 다른 과에는 뭐가 없어요? 백만 원 보너스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백만 원 보너스 없는 것과 백만 원 보너스 있는 내가 어떻게 돼요? 내가 승자가 되지요. 그러니까 기쁜 거예요.

또 하나 예를 들면 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내 친구는 저쪽 단지 아파트를 샀고, 그 시기에 나는 이쪽 단지 아파트를 샀어요. 복덕방 말 들어보니까 내 쪽 단지가 오천만 원 올랐다는 거예요. 시세가. 그런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내 친구 아파트는 사억 내려갔답니다. 내 쪽 아파트 값은 보합세고 저쪽은 사억 내려갔데요. 기분 좋아요, 기분 안 좋아요? 기분 째지지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은 뭐만 있다고요? 승자와 패자만 있어요. 드라마 보는데 진짜 내가 싫어하는 배우가 캐스팅 돼서 그 드라마 볼 때마다 꼴 보기 싫은 것 계속 보게 됐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배우가 캐스팅되기 전에 이혼했데. 그 순간 기뻐요, 안 기뻐요? 정치적 발언하면 안 되는데 특히 울산, 대구, 경북에서 이재명 돈 받아먹었다는 소리 들을 때 조국이란 사람이 징역 2년 선고 받았다고 할 때 여러분한테 누가 돈 챙겨주던가요?

돈 안 챙겨주더라도, 이거는 절대로 전라도 이야기하는 것 아닙니다. 내가 못된 경상도 사람에게만 이야기하는 겁니다. 인상 보이지요. 좌파 싫어하는 사람이 좌파 쪽 사람이 징역 살면 갑자기 기분 좋지요. 안 좋은 척하지 마세요. 다 아는 이야기 아닙니까. 이게 뭐냐 하면 현실세계에요.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면서 자기 삶의 아픔을 그런 식으로 해소하려 하는 거예요.

자, 궁금한 것은 뭐냐? 현실세계는 승자와 패자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보너스 받고 복도로 나왔는데 다른 과도 와~하거든요. 왜 좋아하는데? 보너스 받았대. 그때 궁금한 거예요. 얼마 받았는데? 이백만 원 받았대. 아까 좋아했던 것 다 날아갔어요. 왜? 누가 승자입니까? 이백만 원이 승자에요. 우리는 그 굴곡에 살아요. 매일같이 그 굴곡이에요. 그게 사건이에요. 그 사건 주인 누굽니까? 우리 주님이 그렇게 만든 거예요. 내 성공에 웃고, 내 실패에 울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 못되면 기뻐하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 잘되면 또 울고. 이게 현실세계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알건 뭡니까? 말씀세계는 뭐로 나눠지느냐? 궁금하지 않습니까. 알려드려야 될 책임이 저한테 있지요. 말씀세계는 승자와 패자가 아니고 사랑받은 자와 버림받은 자, 이 차이점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2007년)이란 영화가 있어요. 그 주인공이 누구죠? 전도연(신애 역).

그 사람은 아들이 죽었을 때 너무 패배에요. 그대로 적용시킵니다. 사랑하는 아들과 밀양까지 와서 피아노 레슨하며 사는데 애가 납치되었다 죽었어요. 이건 패배지요. 그러나 패배지만 약간이나마 위로가 되는 것이 유괴해서 죽인을 범인 잡혔어요. 사형선고 받았어요. 약간, 정말 약간 되겠지요. 범인이 잡혔으니까 백 퍼센트 가운데 1%라고 합시다. 그런데 전도연은 99% 이 아픔을 뭐로 채웠습니까? 교회에서 부흥회하다 은혜 받았지요. 주여, 제가 죄인입니다. 이젠 제가 천국 갑니다. 은혜 받았지요.

은혜 받고 난 뒤에 교회에서 봉사하는데 교도소 죄수들 위로해주고 복음 전하는 봉사를 하면서 같이 가게 되었어요. 그때 전도연이 패자겠습니까, 승자겠습니까? 승자지요. 또 누굴 만났느냐? 자기 아들을 죽인 죄수를 만났어요. 여전히 그는 의기양양 승자에요. 그래서 손양원 목사, 자기 아들 죽인 사람을 양자로 삼았다는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처럼 자기도 대단한 신앙인인 것을 티내기 위해서 내가 승리자란 것을 티내기 위해서 그 범인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당신 같은 천하의 살인자도 나 같이 어진 천사 같은 엄마가 있어서 당신한테 복음을 전하니까 내가 전한 복음을 받아들여서 구원 받으세요, 이렇게 하니까 그 죄수가 하는 말이, “아줌마가 이야기 안 해도 나는 교도소에서 복음 받아서 이미 구원 받았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자기는 승자로 행세하고 싶은데 갑자기 뭐가 됐어요? 패배자가 됐지요.

그러면 전도연이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는 건 결국 뭡니까? 이 땅에서 자기에서 나온 패배감을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걸 메워서 이제는 패배자 아니고 승리자로 군림하려는 자기욕망의 화신이 된 겁니다. 세상에서 망해버린 내 인생 교회의 목사, 장로 되어 그걸 보상받으려는 심보, 그건 말씀세계입니까, 현실세계입니까? 현실세계에요. 그걸 아셔야 돼요.

이 말씀세계에서는 사랑받은 자와 버림받은 자, 두 종류밖에 없어요. 왜? 이 말씀세계에서는 나는 여기 있다는 말은 말씀세계 바깥에 있는 자는 전부 다 똑같은 사람이에요. 다 어떤 사람입니까, 산 자에요 죽은 자에요? 죽은 자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죽은 자에요. 우리 예수님 시체 어디 있지? 그때 주님이 하신 말씀이, “마리아야 너 누굴 찾는데? 왜 산 자를 죽은 자에서 찾느냐?” 이렇게 이야기했거든요.

아하, 진짜 막달라 마리아는 진짜 사랑받은 사람이에요. 주님의 말씀세계가 덮쳐서 이제는 막달라 마리아는 주의 말씀이 들어올 거예요. 들어왔을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는 말은 누가와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이죠. 그거는 말씀세계가 아니에요. 이미 죽은 자를 예수님 본인처럼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난 것처럼 이미 죽은 자를 생명을 줘서 살려내기 위해서 주께서 일부러 찾아왔잖아요. 찾아와서 너의 죄를 사한다 했거든요.

그 말은 우리가 이 땅에서 패배자 되지 않고 승자로 군림해서 죽을 때까지 우러러 보는 그런 대상이 되겠다는 그 자체가 네가 죽어야 될 이유라고 내가 너한테 일러주마. 그런 뜻이에요. 니가 살아간 이유는 예수님이 일방적으로 줘야 돼요. 내가 내 이유를 변명하면 안 돼요. 주께서 주신 이유는 죄 사함의 원칙에 의해서 주기 때문에 너는 이런 죄 때문에 너는 죽을 수밖에 없어. 네가 그동안 네 죄를 몰랐어. 왜? 죄 사함을 안 받았기 때문에 죄를 몰랐던 거예요.

죄를 누가 고릅니까? 내가 고르는 거예요. 내가 골라서 내가 의인이 되면 뭐가 된다? 내가 의인 되면 졸지에 뭐가 돼요? 내가 의인 되면 어떻게 됩니까? 나는 말씀세계에서 패배자가 아니고 승자로 군림하려는 자기 본성이 그대로 살아 있는 거예요. 이것은 말씀세계 아닙니다. 이거는 현실 종교의 세계에요. 하나님 하신 것 빨아 당겨서 지가 전에는 패배였지만 지금 승리자로 군림하겠다는 그 의욕, 그 본심 이건 큰일 날 이야기입니다. 가짜에요. 신앙 아닙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이런 짓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에요. 인간의 육신은 이런 짓을 하게 돼 있는데 이런 짓 나올 때마다 아하 이게 바로 주께서 살려고 가는 죄의 리스트에 해당되는 이야기군요. 그걸 우리가 기쁨으로 받아들이면 돼요. 이거 또 죄 지었군요, 제가. 남한테 지기 싫은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내 자존심.

여러분 부부싸움 할 때 이유가 뭐예요? 여러분은 부부싸움 해본 적 없어서 잘 모를 거예요. 부부싸움을 왜 하는 줄 알아요? 여러분 말고 다른 쪽에. 자존심 때문에 하잖아요. 자존심이 뭡니까? 패배자가 되지 않고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 까이기 전에 까는 거예요. 이 본심, 이것 죽을 때까지 지워질까요, 안 지워질까요? 이게 우리 본성인데 안 지워지지요.

안 지워져도 괜찮아요. 왜? 이게 바로 죄 사함 때문에 비로소 내가 몰랐던 뭐가 됩니까? 내가 죄가 되는 겁니다. 내 죄를 나의 기원, 원천, 나의 본질 이걸 안다는 것 이게 섭섭한 일이 아니고 너무나 기쁜 일입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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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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