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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출 20:18-21 (하나님의 무서움)우리교회출애굽기

하나님의 무서움2005년 2월 20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20:18-21
20:18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20: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20: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20:21 백성은 멀리 섰고 모세는 하나님의 계신 암흑으로 가까이 가니라
세상 자체가 하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두 다 말씀을 위하여, 말씀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말씀에 의해서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지 보잘 것 없는 우리의 노력으로 인해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무서움으로 다가옵니다. 백성들은 죽음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 무서움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그것은 말씀 자체에서 나옵니다. 즉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면 지옥이며 말씀대로 살면 축복이여 천국입니다.
지난 시간동안 우리는 십계명을 보았습니다. 이 십계명을 우리가 듣게 되었어도 우리는 늘 상 듣는 잔소리 정도로 취급할 수가 있습니다. 즉 "또 그 소리야? 알아서요. 정말 귀찮아"라고 가볍게 짜증내면서 그냥 넘겨 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국과 지옥을 결정짓기 때문에 이 십계명대로 다 지키지 아니하면 지옥에 가는 것은 마땅합니다. 인간이란 결코 인간 스스로의 존엄성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위엄을 나타내보이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만약 그 십계명의 완성을 내보이지 못하는 사람은 차라리 칠판에다 '지옥 갈 자'라고 써놓은 것과 같습니다.
그 이유는, 말씀대로 못살면 말씀이 요구하대로 저주를 받아야 참으로 말씀의 무서운 권위가 살게 됩니다. 여기에는 추호의 예외라는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십계명 말씀과 더불어 나타난 하나님에게 큰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점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기 계시다'라는 사실이 결코 인간과 '원만한 관계로 계시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저기 계신 것을 안다고해도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무서움으로 거기 계시기에 인간이 자력으로 그 무서움을 돌파할 수 없다는 현실만 뚜렷이 보여줄 뿐입니다.이미 인간은 악에 묻혀 삽니다. 인간이 자기 운명을 어떻게 결정할 수 없습니다. 악에 의해서 지시받고 명령받는 입장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참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공격받은 자에 국한됩니다.
그 공격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게 됩니다. 즉 하나님은 한시라도 악에 대해서 양보하시거나 질 마음이 전혀 없으시고 그 대신 사정없이 악이 있는 것이라면 그 어느 것이라고 공격하고야 마는 분임을 명백히 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기이한 현상을 하나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세 만큼은, 그 무서움 암흑 속으로 사라지더라는 겁니다. 즉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죽음과 저주가 되기에 그 어떤 인간도 그 저주의 어두움을 헤치고 하나님과 대면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가능한 일이 모세에게는 가능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이상하고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까! 모세는 분명 우리와 동일한 사람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특별한 사람도 아니요 같이 육에서 출생된 분입니다. 그럼에도 그 분은 저주를 뜷고 하나님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무서움 속에서도 삶이 보장되는 줄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모세가 인류를 위해서 공장을 세운다든지 놀라운 과학적 업적을 남긴 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많은 빈민들을 구제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에 의해서 부름받아 홀로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있는 자의 위상을 보여준 사람일 뿐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모세의 재주나 지혜나 살아남는 처세술을 찾고자 해서는 아니됩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그 어떤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무서움 속을 돌파할 수 있었느냐를 봐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모세 한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해서 지탱하는 나라입니다. 모세 말을 듣는 사람들에 한해서 그들이 구원되고 그렇지 아니하면 당연히 저주 세계로 떨어져 나가야 되는 나라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모세 언약'이라고 합니다.
모세 언약을 알아야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해명이 됩니다. 즉 모세 언약이란, 모세의 존재로 인해 구원이 성사되는 것처럼, 예수님의 행하는 모든 일은 예수님의 새언약에 의해서 예수님 덕분이 구원이 되는 장치입니다.
만약 이 '언약'이라는 틀을 모르면 어떻게 될까요? '언약'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사람들은 예수님도 믿어야 하고 성경의 모든 말씀을 다 지켜야 구원받는 것으로 곡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신 것도 결국 모세와 하나님 사이에 무슨 언약이 체결되었는가에 관심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갈라디아서 3:10에 보면,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인간은 율법이 먼저 찾아온 것이 아니라 죄가 먼저 찾아들었습니다.
따라서 과연 이 죄에서 인간들이 임의로 벗어날 수 있는가 없는가는 그 뒤에 찾아든 율법을 과연 제대로 지켜낼 수 있는지 없는지로 판정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말합니다. 율법으로 인해 구원이 되겠다는 것은 율법의 준 취지를 모른다고 말입니다.
율법을 준 취지는 바로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저주 아해 두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 언약'을 통해서 '피흘림만이 죄사함'이 되는 원칙을 수립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 제사법에 의해서 양이나 소나 제물을 가져올 때에 '왜 우리가 꼭 피를 내는 제사가 필요한지'는 십계명이 율법에 둘러싸여야 가능하기 마련이다.
이 점에 예수님의 산상설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 그런 것이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듣고서 우리는 매우 두렵고 엄숙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오늘날도 24시간 생계에 몰두하며 삽니다. 우리 입장에서 우리는 당연히 저주받아야 마땅한 자들입니다.
만약에 언약을 모르게 되면, 예수 믿는 것도 다 소용없이 되어버립니다. 왜냐하면 산상설교를 항상 다 지켜내지 못하면 여전히 저주의 대상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세언약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다른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했습니다.
오늘날의 예수님도 이와같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항상 하나님 말씀 앞에서 왜 예수님의 피흘려야만 했는지를 생각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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