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005년 2월 20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22:23-33
Re..마 22:22-33 (부 활)
이름 : 이근호(IP:)
부활
2005년 2월 20일본문 말씀: 마태복음 22:23-33
22: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22: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찌니라 하였나이다
22: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 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22:26 그 둘째와 세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2: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2:28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22:31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찐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22: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부활만큼 크게 오해되는 개념도 또 없을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 부활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성경에는 인간을 위한 그 어떤 복음도 없습니다. 사람이란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고들 있지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은 인간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 아예 없습니다. 인간들은 정사상 자신의 죄 때문에 수시로 마음고생을 합니다. 밤잠을 설치면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점에 우리 예수님도 익히 아십니다.
하지만 성경만 들치면 우리의 상식이나 일반적인 정서와는 확연하게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너의 죄를 내가 다 가져간다"는 소식이 그것입니다. 늘 죄를 짓고 사는 우리들이 흔히 갖는 마음가짐하고는 너무나도 판이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받아드린다는 것은 하나님 쪽에서 오는 특별한 능력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합니다.
만약 하나님 쪽에서 오는 성령의 능력을 못 받은 자들이 단지 하나님의 법만을 펼쳐놓고 성경을 이해한다는 어떤 식으로 이해될까요? 바로 그것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두개인들이 대표적으로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부활이 없다는 겁니다. 이 말은 곧 '부활이 구태여 필요치 않다'는 겁니다. 만약 부활이 있게 되면 거룩한 하나님 말씀과 모순이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 자체 내에서 모순이나 충돌되는 법이 없기에 하나님의 말씀과 모순되는 부활이라는 이론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만약이 부활이 있게 되면 어떤 모순되는 것이 발생된다고 그들은 주장합니까? 그들이 든 예가 바로 '시형제 결혼법'이라는 겁니다. 이 법은, 형이 자식이 없이 죽고 형수만 혼자 남아 있을 때, 밑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시동생들이 있다면 그 시동생은 딴 데 장가가지 못하고 형수하고 혼인해야 된다는 법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7형제가 다 죽었고, 그 형수도 죽었다면 천국이 시끄러워질 것이 뻔하다는 겁니다. 과연 이 천국에서 형수의 진정한 남편은 누가 되느냐 하는 겁니다. 따라서 인간이 준수해야 될 거룩한 법이 있는 이상 구태여 '부활'이라는 아이디어는 구원에 동원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사두개인들의 주장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부활의 세계와 현재 인간들의 사고방식과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는 겁니다. 즉 '율법을 지켜서 구원'이라는 개념으로는 '부활의 나라'와 전혀 맞지 않는 원칙이라는 겁니다.
인간의 모든 세상사는 '죽음'이라는 것으로 종결되고 무효화된다는 겁니다. '무효'라는 무효말은 이 세상에 있었던 모든 일들은 있으나 마나 하는 일이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즉 이 땅에서 열심히 교회를 위하여 혹은 주를 위하여 일해서 구원받겠다고 나선다면 그것은 그렇게 하나 아니면 태만이 하나 상관없이 주님 앞에서 소용없는 짓을 한 것이 불과합니다.
마치 수학시험을 실컷 치고 난 뒤 시험지 두면서 선생님이 모든 학생들의 시험지를 하나씩 두 찢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될 때는 학생들은 깜짝 놀라겠지요. 그동안 자기네들이 수고하고 고생한 모든 것이 헛사로 돌아가니 자신들이 평소에 어떤 식으로 하나님과 세상에서 살아왔는가를 돌아보게 합니다.
사실 인간에게 있어 죽음이란, 일어나고 싶지 않는 섭섭한 일이 되겠지만 실상은 인간들은 처음부터 죽어있었던 자였습니다. 죽음이란 단지 이 사실을 들추어지는 순간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법은 인간들로 하여금 죽음 속에 가두어 기능을 하기 위해 인간들 코 앞에 등장한 것입니다.
부활의 나라는 이 지상에의 인간 생활 양식과는 영속성이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부활의 나라에서 인간은 시집도 아니가고 장가도 아니갑니다. 오직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지상에서 하나님께서는 시동생들에게 죽은 형을 대신해서 형수와 혼인하라고 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자기를 워한 부활'이나 '자기를 위한 구원'이나 '자기를 구원한 율법'이라는 것이 인간에게는 아예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즉 인간이 자기 자신을 구원되어야 될 대상자로 결정하고 그 대상자의 구원을 굳히기 위해 열심히 하나님의 법을 준수했봤자. 그런 식으로는 구원이 안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구원됩니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즉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 준수나 부활의 능력은 하나님 자신의 능력 발휘로만 가능한 일이라는 겁니다. 그 예로서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경우를 듭니다.
여러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그들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자신을 구원의 나라로 집어넣은 사람입니까? 결코 그렇지 아니합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을 다루시는 하나님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삭을 손수 다루지 아니하면 그 축복이 야곱이 아니라 엉뚱한 에서로 갈 뻔했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뀐 것도 본인의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즉 장차 자기 백성을 천사 다루듯이 다루시는 하나님께서 미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다루셔서 그들로 하여금 처음부터 산 자로 취급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죽은 다음에 2차 작업으로 그들을 부활케 하시는 분이 아니라 이미 살아있을 때부터 그들에게 부활의 능력으로 인도하시고 관리해 오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시형제 결혼법'이른 율법 속에도 이러한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형의 죽음은 분명한 죽음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율법을 내려다 주셔서 그 안에서 죽은 형의 자식을 출현하도록 능력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럴 경우에 죽은 형의 하나님은 '살아있는 형의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성도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입니다. 누가 이 맏이를 계속 살아있는 것으로 만듭니까? 그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그 율법 안에는 죽음조차 극복케 하는 생명 되시는 주님이 그 율법을 성취해 나가시는 겁니다. 제발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대로 살지 말고 성경 안에서 낯설게 하시는 예수님의 약속이 이제는 우리 속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을 익숙해진 세상살이로 판단하지 말게 하시고, 예수님의 견해와 해석만이 참된 현실인 것을 우리가 인정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