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강의20221230a 마태복음9장 17절(정해진 길)-이 근호 목사
광주강의20221230a 마태복음9장 17절(정해진 길)-이 근호 목사
p.232, 여기 느부갓네살 왕이 등장하죠. 이스라엘 이야기가 바벨론 이야기로 전환됩니다. 그런데 왜 전환되느냐? 이스라엘이 원래 애굽에서 나왔거든요. 애굽이란 나라가 있고 애굽이란 나라에 이스라엘이 있으리라고 생각 못하죠. 애굽 나라 전체가 있으니까.
한번 적어볼게요. 애굽 나라=전체, 애굽 나라가 전체입니다. 전체인데 여기서 이스라엘이 나왔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애굽 나라가 전체 맞습니까? 애굽 나라가 전체 같으면 애굽 나라로 완결되어야 되겠죠. 애굽 나라로 완결되어야 되는데 여기서 이스라엘이 나왔다는 말은 애굽 나라에 플러스할 거냐, 마이너스할 거냐?
플러스해도 문제고 마이너스해도 문제죠. 이스라엘을 플러스해버리면 이것은 전체가 안 되게 되어있고, 전체+a여야 되는데 a가 아니고 이 [전체+a]가 전체가 되는 거예요. 그럼 앞에 있는 애굽 나라가 전체라는 말은 틀린 말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애굽 나라는 전체 맞아요. 그러면 여기서 이스라엘이 나왔단 말이죠. 그러면 이 이스라엘은 뭐냐 하면 이것도 전체에요. 그러니까 애굽 나라가 봤을 땐, 이스라엘이 어? 없는데 왜 나왔지? 애굽 나라 입장에서는 이 이스라엘을 비(非)-전체라 하는 겁니다.
우리한테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소속이 안 되는 거예요. 대한민국 사람인데 소속되었다고 생각해서 주민등록을 줬는데 다니엘 세 친구는 그 바벨론 사람이 아니란 말이죠. 소속은 아니면서 같이 사는 것을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포함되었다.
집에 바퀴벌레 나오십니까? 바퀴벌레 안 나오죠. 그럼 바퀴벌레가 집에 기어다니면 바퀴벌레는 집사님 소속이에요, 포함이에요? 포함이죠. 인간 세계에는 애굽 나라뿐이에요. 이스라엘 이것은 아주 특이한 겁니다. 이스라엘은 특이한 사항이에요.
빌립보서 3장 20절에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했잖아요. 성도 자체가 특이한 사항이에요, 특이한 사항. 성도, 이스라엘 이것을 ‘코르크 마개’라고 저는 표현하고 싶네요. 코르크 마개. 포도주 병을 코르크 마개로 막잖아요. 막으니까 포도주를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코르크 마개까지 포함해서 돈 주고 사는 게 되죠. 그런데 포도주 마실 때는 코르크 마개를 먹는 게 아니고 그걸 떼버리잖아요. 떼야 안에 있는 포도주가 밖으로 나올 겁니다.
떼버리면 이 세상이 봉합되었던 것이 노출돼버려요. 코르크 마개가 막혀있다=봉합되었다, 코르크 마개가 떼졌다=노출되어있는 거예요. 그 노출된 구멍을 통해서 벌레가 들어올 수도 있고 눈이 올수도 있고 비가 올수도 있고 여러 가지 잡스러운 다른 액체가 들어올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노출된 거예요. 좋게 말해서 개방되었다 하는데 그건 좋게 말한 거고 나쁘게 말할 수밖에 없어요. 이건 노출된 거예요. 어떤 악한 요소가 안에 들어올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여기 p.232부터 p.233까지 나오는 것은 느부갓네살 이야기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전체에 해당돼요. 아까 이야기 다시 해봅시다. 애굽 나라에서 이스라엘 나왔죠. 이스라엘이 어디로 가느냐? 지금 다니엘에 의하면 바벨론 나라에 들어가요. 바벨론 나라가 애굽 나라와 동일하게 인간이 구상할 수 있는 전체 나라가 돼요, 전체. 최종적으로 인간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가 돼요.
이것은 인간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다니엘 2장이나 다니엘 3장이나 다니엘 4장에 보면 그게 나옵니다. 다니엘 4장 10절에 “내가 침상에서 나의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이 이러하니라 내가 본즉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데 고(높이)가 높더니”
높이가 굉장히 높았다, 라고 느부갓네살이 두 번째 꿈을 꿀 때는 자기가 뭘 꿈꾸었는가 알아요. 해석을 못해서 그래요. 첫 번째는 꿈을 잊어버리고 덩달아 해석도 못하고 이런 형편이었고 그건 다니엘 2장이고. 다니엘 4장에 보면 꿈을 꾸었고 꿈이 어떤 내용인가는 아는데 해석을 할 자가 없어서 답답해서 다니엘을 부른 거예요,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꿨는데 본인이 꾼 꿈을 자기가 알아요. 해석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해석을 신하들에게 물었는데 신하들이 답변을 못하니까 다니엘을 부른 겁니다.
그 꿈의 내용이 뭐냐? 다니엘 4장 10절에 “내가 본즉 땅의 중앙에” 나무가 몇 개입니까? 땅의 중앙에 한 나무죠. 땅의 중앙. 그러니까 통합이에요, 통합. 모든 것을 통합되게 보는 거예요. 많은 나라들이 있고 많은 제국들이 있더라도 이걸 느부갓네살 하나로 바벨론 나라로 통합을 시킨 겁니다. 통합을 시켰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이 바벨론 뒤에 아무리 많은 나라가 나와도 이 덩치, 바벨론 덩치의 확대에 불과한 거예요. 바벨론 덩치의 확대.
이솝 이야기에 이런 게 있어요. 늑대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까 답답해서 해질녘에 바깥에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나가보니까 자기 그림자도 해질녘에 같이 나간 거예요. 벽에 진 그림자를 보니까 자기 덩치가 너무 큰 거예요. 해질녘이니까. 빛의 각도가 비스듬하게 비추니까 그림자 덩치가 커졌겠죠. 커지니까 ‘내가 이렇게 덩치가 커졌구나.’ 하고 오해해가지고 평소에 자기를 괴롭히는 사자한테 시비 걸어서 맞아죽었다는 이야기에요.
하나님께서 키우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나라가 있더라도 그걸 하나로 통합하는 겁니다. 왜 통합해야 되느냐. 통합을 해야 그걸 전체로 만들어야 비-전체가 나오기 때문에 그래요.
인간이 생각하고 끄집어낼 수 있는 모든 지혜가 한곳으로 집결되어야 돼요. 느부갓네살이 꿈을 자꾸 두 가지나 꾸는 것은 인간이 끄집어낼 수 있는 모든 지혜는 왕 앞에, 왕이 꿈을 꾸니까요, 왕의 꿈을 인간이 해석해야 된다는 그러한 목적 하에 소위 똑똑하고 지혜 있는 자들은 다 집결하게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요.
밤에 불빛 피워놓고 그 동네 나방은 다 끌어 모으듯이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바벨론 느부갓네살에게 난데없이 꿈을 꾸게 한 거예요. 그러면 ‘그 바벨론 왕 지가 뭔데 자기 꿈은 대단하고 남의 꿈은 그럼 아무것도 아니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바벨론 느부갓네살에게 준 꿈은 하나로 모든 것을 집결시키고 통합시키는 꿈을 꾸게 한 거예요.
무슨 말인가 하면 인간은 자기 사정만 알잖아요, 자기 사정만. 인간은 자기 사정만 알죠. 그럼 공부를 더 많이 한 사람, 특히 엘리트, 소위 공부를 많이 한 법률가들, 법률가들은 어떻습니까? 남들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겠죠. 남들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 그래서 그 분야에서 많이 아는 것을 세 자로 뭐라고 부릅니까? 대통령이죠. 아까 무슨 대통령이라 했습니까? 개 대통령.
대통령이라 하는 것은 통합의 자리에요. 그 통합이 그냥 통합이 아니고 투표해서 뽑는 게 아니라 그 시대에는 인간들이 사다리를 밟고 밟아서 오르는 최고 지혜의 결정체, 그 시대에 인간이 모든 지혜를 하나로 압축시켜서 구현된 것이 뭐냐 하면 느부갓네살 왕이에요.
그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의 계시, 꿈과 만나는 겁니다. 이걸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계시로 느부갓네살에게 새롭게 주어진 지혜에 모든 인간들이 그것을 궁금해 하도록 주께서 유도했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자, 왕이나 대통령은 명령하는 자죠. 왕이라 합시다. 이 논리는 별로 어려운 논리가 아니니까 여러분이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명령, 지시하는 자는 범주가 세상 보는 범위가 명령받는 사람보다 넓어야 돼요. 넓다는 말은 네 분야의 전공분야보다 내가 더 많은, 네가 전공분야 때문에 몰랐던 그 분야까지 내가 통합해서 다 알고 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럼 명령과 지시가 주어지면 이것은 법이 되죠. 누가 이렇게 말을 한다는 것, 부모가 자식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법을 내린다는 뜻이에요. 법을 내리는 이유는 법을 받는 자아를 법이 죽인다는 뜻이에요. 인간의 몸을 죽인다는 게 아니라 자아를 죽인다는 거예요, 인간의 자아를.
학생들끼리 자기 반에서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이렇게 떠들잖아요. 떠들 때 쉬는 시간인데 갑자기 선생님께서 문을 드르륵하고 열게 되면 애들이 어떻게 합니까? 교실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렇게 되죠. 잠잠할지어다. 갑자기 잠잠해지죠. 이게 뭐냐 하면 각각 하나하나의 애를 선생이라는 법이 죽이는 겁니다. 자아를 죽이는 거예요. 칼 들고 사람 신체를 죽인다는 말이 아니고 자아를 죽이는 겁니다, 법이.
실제로 느부갓네살 왕이 첫 번째는 꿈을 모르고 4장가서는 꿈을 해석 못한 자는 다 죽인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다 죽여버려요. 그 말은 뭐냐 하면, 이건 아까 얘기한 귀속입니다, 귀속. 귀속된다는 말은 독자적으로 자기의 의미가 종결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내가 여기 존재하는 이유는 나 때문에가 성립하지 않는 구조다 이 말입니다, 이 체제가.
전에 얘기했잖아요. 이순신 장군이 전쟁에 나간 이유는? 거북선을 만든 이유는? 사람들은 답변할 때 정답을 못 말해요. 뭐라고 하느냐 하면 우리 조선을 위해서라고. 이건 뭐가 잘못되었어요. 조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임금을 위해서에요. 조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백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왕을 위해서에요. 백성이 죽든 말든 왕이 있어야 돼요. 그게 바로 옛날 봉건주의 사회라 하는 거예요.
현대인들은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거예요. 임금은 우리를 위해서 봉사한다, 이것은 근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나 생긴 그러한 이념이에요. 그걸 이데올로기라 하는데 사상이에요, 사상. 사상이지, 옛날에는 그런 게 없어요. 임금이 먼저 있고 그 임금을 위해서 귀속된 채 내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 사무엘상 8장에 그게 나와요. 임금? 너희들이 임금을 원해? 그러면 임금이 너희들의 딸과 아들 다 가질 거고 밭뙈기 다 가질 건데 오케이? 좋아? 좋습니다. 그래서 임금 삼은 거예요.
그래서 임금 삼아서 이익이 뭐냐? 지금 옛날 사고방식은 이익을 따지는 게 아닙니다. 이걸 최근에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밝힌 사람이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에요. 프로이트가 밝힌 게 아버지의 이름이에요. 인류의 역사를 이 하나로 다 결론지었습니다. 아버지의 자리를 위해서 아들이 있다는 거예요. 정답입니다.
아버지의 자리. 그러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셨잖아요. 그럼 그 아들의 아버지가 사라졌겠습니까, 있겠습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아버지의 자리가 있어요. 그 돌아가신 아버지 보란 듯이 내가 열심히 살아가는 그것이 존재의 이유가 되는 거예요. 존재의 이유, 아시죠? 존재의 이유. 존재의 이유가 현대인들에게는 민주주의 때문에 그게 아니고 기본적으로 인간 속에 있어요.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네가 있기 때문이다, 그건 현대 젊은 이데올로기 때문에 그런 거고 실제로는 우리 안에 아버지가 있어요.
육신적인 아버지가 있지만 어떤 때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자리에 있는 경우도 있고. 어쨌든 아버지의 자리는 굳이 남성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게 국가일 수도 있고 그리고 민족일 수도 있어요.
그 민족이 뭐냐 하면 바로 안중근 의사에요. 이라는 영화에 나와요. 설교시간에 했던 거 여기서 또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손가락 끊었단 이야기, 자작나무 숲에서 눈 오는데 한 이야기는 안하겠어요. ‘대한독립’ 걸어놓고 피 흘려가며 대한국인 찍었다는 이야기는 안합니다. 괜히 해서 시간 아깝게......
아버지가 없으면 인간에게는 살 이유가 없습니다. 살 이유가 없어요. 그래서 자식하고 부모는 친구 되면 안돼요. 반드시 교육은 아버지가 되어야 돼요. 만약에 친구가 되어버리면 자식들은 아버지가 없는 인간돼서 정신병자 됩니다, 나중에. 반드시 뭔가 꽂아주는 게 있어야 돼요.
바닷가에서 건물 지을 때 어떻게 합니까? 갯벌에 건물 지을 때 어떻게 합니까? 기초가 안 되죠. 어떻게 하는지는 현대 중공업에서 잘 알죠. 정주영 회사에서 이명박 회사에서 쇠말뚝을 바다 깊숙이 바다 밑 바위가 나올 때까지 완전히 박아버리죠, 말뚝을. 말뚝을 박아버려요.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흔들림이 없는 거예요. 반석이죠. 그걸 꽂아놔야 거기다 기초를 꽂아놓고 그다음에 뭐가 와도 담기게 되고 쌓이게 되는 거예요.
제주도에 비가 많이 와요. 그런데 제주도 가면 맨날 가물대요. 그건 왜 그러냐? 현무암, 제주도의 바위가 숭숭숭 구멍이 나있어요. 비가 오니 뭐합니까? 다 빠져버리는데. 다 빠져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가족이라는 게 그만큼 중요한 거예요. 미우나 고우나 가족이 있다는 말은 결국 마지막 자기가 죽기 전에 찾아갈 마음의 고향 같은 게 있어요, 마음의 고향.
그런데 마음의 고향이 없으면 인간의 마음 모습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그림을 이렇게 그릴 수 있어요. 동그라미가 인간의 마음이라면 이 마음속이 시커멓게 돼요, 블랙홀처럼. 사랑을 줘도 빠져버리고 미움을 줘도 빠져버리고 복음을 줘도 빠져버리고. 고이지를 않아요. 쌓이지를 않아요. 시커멓게 되어서... 이걸 가지고 무저갱, 바닥이 없는 우물. 악마가 인간의 마음을 이렇게 만들었어요. 아무리 줘도 숭숭숭숭 다 빠져버리게 해요. 숭숭숭숭 빠져버리는 거예요.
그럼 인간은 이렇게 빠져버리면 허탈해서 못살아요. 허망해서 못살아요. 사는 이유를 몰라요. 다 빠져버리니까. 마치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 같아요. 마셔도 마셔도 그 마신 물 다 어디 갔는지... 그 안으로 다 빠져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프로이트의 연구에 의하면 인류의 역사라 하는 것은 마음이 너무 시커먼 심연(深淵), 깊은 바닥, 끝을 모르는 바닥인데 그 심연 위를 석쇠 같이 걸쳐 놓아서 그 우물을 막는 이것이 바로 육신의 아버지에요. 육신의 아버지가 그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는 거예요.
뭐 애굽이고 바벨론이고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 가정에서의 육신의 아버지는 가정에서는 큰소리치죠. 제사 지낼 때 안 입던 한복 두루마기 입고 아버지의 위세, 권위를 주장하는데 그러나 그 아버지가 자기 집에서는 대빵인데 주민자치센터만 가도 큰소리 못 쳐요. 아이고, 통장님 나오십니까? 이러고 있더란 말이죠.
아버지보다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버지. 애가 커가면서 아버지가 최고였는데 그 아버지가 굽실한 사람이 있다면 아버지 갈아타기. 그럼 뭡니까?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의 회장님이죠. 교회가면 목사님 되겠죠. 특히 아들한테, 너 커서 뭐 될래? 그럼 애 입에서 툭 튀어나오는 것은 적어도 아버지보다 더 나은, 아버지 같은 아버지를 원하는 거예요. 손흥민, 방탄소년단. 그 말은 우리 아버지는 그만큼 돈이 없다는 뜻이에요. 대중들에게 인기가 없는 아버지다. 우리 집에서는 큰소리쳐도 밖에 나가면 알아주는 사람 아무도 없다는 뜻이에요.
그럼 네 소원은 뭐냐? 일단은 아버지는 콜하고 일단은 받아요. 일단 아버지가 있어야 심연에 안 빠지니까 아버지로 받치고 아버지보다 더 뛰어난 아버지로 내가 그 자리에 가겠다. 그게 뭐냐 하면 대통령이에요. 개 대통령, 그다음 농구 대통령 허재. 남을 가르치는 사람, 남에게 존경받는 사람, 남에게 인기 있는 사람. 내가 장차 뭐 되겠다는 그 꿈, 꿈이 있을 때 그가 하는 모든 학교 수업이라든지 친구 만남에 비로소 의미가 생기는 겁니다.
자, 의미는 어디서 옵니까? 의미는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아버지로부터 의미가 주어지는 거예요. 아버지로부터 의미가 주어지면 자기가 꿈꾸는 그 꿈에 일찍부터 그 아이는 그 의미에 귀속되는 거예요. 의미에 귀속되게 되면 만약에 꾸는 꿈이 손흥민, 요새 조규성도 또 유명한데 두 골 넣어서, 축구선수 황희찬 이런 선수가 된다면 걔가 크면서 그 아버지, 손흥민 같은 존재가 되는데 불필요한 지식과 지혜는 본인이 알아서 의미에서 삭제해나가요. 삭제해나갑니다. 그러면 이건 선택 또는 결단이 되겠죠.
결단을 예로 들 테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얘기해보세요. 스스로 법을 잘 지킨다고 자부하고 법은 꼭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새벽 한 3시쯤 됐는데 우연히 새벽 3시에 어디 뭐 볼일 때문에 가까운 데를 가고자 하는데 길에 횡단보도가 있어요. 그러면 밤중이라도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빨간 불, 파란 불 켜 있잖아요. 그런데 딱 보니까 술을 먹었는지 횡단보도 건너에 누구 하나가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차도에 퍽 엎어져서 쓰러져 있어요. 물론 새벽이라서 차는 별로 없지만 저 뒤에서 차들이 오고 있어요. 그런데 보니까 횡단보도가 빨간 불이라. 그래서 법을 지키는 사람은 그 사람도 구하고 내 법도 어기지 않았다는 두 가지를 다 지키려 하는데 하필 그 밤에 횡단보도 신호등이 고장 났어요.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횡단보도 법 어기고 빨간 불에 건너가서, 뭐 차들이야 새벽에 잘 안 오니까, 그 사람을 인도로 옮겨서 구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 법을 지킬 겁니까? 어느 쪽 할 겁니까? 어느 쪽 할 거예요? 이거 뭐에요, 이거? 결단. 이거 뭡니까? 선택해야 되겠죠. 결단, 선택해야 되겠죠.
인간이 결단, 선택할 때 자기 의 빠집니까, 안 빠집니까? 안 빠지죠. 이 결단과 인간의 선택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것을 ‘행함’이라고 하는 거예요, 행함. 지금 아버지 이름부터 해서 귀속 이야기했죠. 아버지 이름의 체계 이야기했죠. 그리고 인간이 사는 이유 이야기했죠. 이 전체가 모여서 뭐가 된다? 성경에서 말하는 행함이 되는 거예요.
오늘 이솝 이야기 여러 개 준비했는데 이솝 이야기 또 해보겠습니다. 어떤 우유 짜는 소녀가 우유 통을 가득 채웠어요. 오늘이 장날이라 우유를 팔려고 하는데 우유 통이 가득하니까 신이 났어요. 그래서 마음속에 장날에 가서 우유를 팔기로 선택하고 결단을 했어요. 결정을 했어요.
자기가 생각하는 거예요. 우유를 그냥 파는 것보다도 집에서 우유를 버터로 만들면 값어치가 열 배 이상 더 되니까 집에서 이 우유를 가지고 버터를 만들고 버터를 만들어서 시장에 가서 암탉을 사게 되면 암탉이 알을 낳을 게 아니겠습니까. 알을 낳고 알이 커서 병아리가 되고 그 병아리가 크면 닭이 되죠. 그 닭을 팔아가지고 예쁜 드레스를 사는 거예요. 드레스를 입으면 드레스가 예쁘다고 많은 남자들이 자기와 혼인하자고 하니까 자기는 이제 한평생 불행, 고생 끝 행복 시작.
이런 생각을 하니까 기분 좋은 거예요. 기분 좋아서 우유 통 들고 일어나다가 우유 다 쏟아버렸어요. 우유, 버터, 암탉, 알, 병아리, 닭, 예쁜 드레스, 남자와 결혼. 일어서다가 넘어지고 엎어져서 다 쏟아져버렸어요. 다 끝나버렸어요. 이게 이솝 이야기에 나오는 겁니다.
이 선택과 결단, 여기에 대해서 선택과 결단은 행함인데요. 행함이니까 방금 인간의 아버지의 이름, 의미, 귀속, 체제, 구조, 무슨 뜻인지 다 이해되죠. 결단, 결심. 이게 뭐냐 하면 행함이라 하는 말은 인간은 행함의 체제에 갇혀있다는 거예요. 인간은 행함의 체제에 갇혀있어요.
아까 블랙홀 이야기 계속 해보겠습니다. 시커먼 블랙홀, 심연. 악마가 인간에게 준 것은 끝도 없는 우물이에요. 그냥 집어넣으면 그때뿐이고 이게 어디로 갔는지 다...... 우물 물은 출렁, 뭐 물소리라도 나지, 이건 물소리도 안 나요. 그냥 가버려요.
뭔가 나에게 의미되는 석쇠를 그 위에 깔아야 돼요. 석쇠하면 또 빠지니까 그럼 베니어판, 베니어판을 깔아서 모아야 되거든요. 모을 때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인간은 뭘 동원했다? 전체를 행함으로, 결단, 선택 다 포함됩니다, 행함으로 이걸 다 받아내요. 행함으로. 저는 이걸 이성의 판때기라 해요. 인간의 이성의 판때기.
이성의 판때기는 윤리와 도덕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아까 인간은 행함에 뭐가 있다고 했습니까? 자기 의. 자기 의라 해도 되고 아까 설명대로 하면 자기 의미. 자기 의미를 좀더 설명하게 되면, 아버지여 보시옵소서. 아버지여 보시옵소서. 제가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제가 모든 이성적인 결단과 판단과 윤리, 도덕으로 지금 잘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보시옵소서.
그러니까 아버지여 나와 함께 계시옵소서. 야 이거, 중요하다. “아버지여, 나와 함께 하소서.”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문구 아닙니까? 이거 어디에 나와요? 바로 기독교에서 나오죠. 불교하고 목사하고 젊은 신부하고 세 명이 나와서 예능프로를 하는데 종교의 화합이라는 이름으로 예능프로 나와서 노래도 같이 부르고 뭐 그러고 있어요. 그래서 유재석이 질문해요. “도대체 천국이 무엇입니까?” 노골적으로 물을 때 목사하고 신부가 말하기를,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이거 뭐가 문제죠?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소위 교회 다니고 기독교 신자라고 자부하고 신학 꽤나 했고 복음 꽤나 들었고 수십 년 성경 공부했다는 사람, 저 말이 진리인지 한번 비판해보라 하면 비판을 못해요. 여러분 어떻게 비판하겠어요? 그 목사와 신부가 둘이 짝짜꿍이 돼가지고 완전히 2대 1로 불교를 조지는데, “나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바로 참된 진리이고 이것이 우리 기독교나 천주교 성당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라고 할 때 뭐가 문제입니까? 5초 드리겠습니다.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수십 년 복음 듣고 오십 년 공부해도 응용문제 나오니까 못 풀잖아요. 수능 영어시험을 미국 대학교 학생 중에서 푸는 사람이 얼마 안돼요, 너무 어려워서.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부터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생들도 우리나라 수능 영어를 못 풀어요, 너무 어려워서. 우리나라 성인들이 수능 국어를 못 풀어요, 어려워서. 그 안에 철학이 들어있어요. 철학이 들어가서 그래요. 뭐 단어, 띄어쓰기 그건 아니잖아요. 철학이 들어있기 때문에. 이게 무슨 뜻이냐가 아닙니다. 그 문맥이 무슨 뜻인지를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나와 함께하신다.’ 상당히 신비적이고 영성이 가득해보이죠. 뭐가 문제냐? 이게 문제입니다. 이 블랙홀 입구에 베니어판, 이성적 판때기, 윤리적 판때기를 걸쳐놓은 여기서 이 이성적 판때기를 빼버리면 안에 뭐가 들어있어요? 악마가 마련해준 무저갱. 끝없는 심연. 허망하기 짝이 없는 나의 바닥. 우물. 구멍이죠. 깊은 구멍, 검은 구멍. 깊은 구멍이 있어요. 돈을 집어넣어도 빠지고.
인간이 깊은 구멍 옆에 서서 자기 자신을 세워놓고 보는 거예요. 아버지와 함께 하는데 예를 들어 인간 앞에 초가집이 있다 합시다. 초가집 지붕이 이발 돼서 이뻐요. 광주에 눈이 40cm 왔다면서요. 눈이 초가지붕에 수북이 쌓였겠지요. 이 눈덩어리가 있으니까 인간이 뭘 쳐다보느냐 하면 저 하얗게 보이는 좋아 보이는 눈을 쳐다보는 거예요.
이게 문제에요. 내가 이미 아버지와 함께 있기를,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내가 함께 있는 게 천국입니다.’ 라는 마음 태세를 갖추고 하나님의 눈치를 보는 거예요. 이 정도 하면 하나님 앞에 사랑받을 만하죠? 이게 나의 결단이고 나의 선택이고 결정입니다, 라고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쳐다볼 때 왜 쳐다보느냐 하면, 오직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해 쳐다보는 거예요. 인간은 자기부인이 안됩니다. 결정타에요. 결정타입니다.
그런데 눈이 막 떼구르르 굴러 와서 블랙홀 위를 막고 있는 이성의 판때기, 인간의 여기다가 그냥 눈이 와서 덮쳐버려요. 인간의 행함을 덮치는 걸 ‘사랑’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사랑은 뭐가 끼어들지 않습니까, 사랑은? 아버지의 이름 날아가버리죠. 윤리 도덕 다 날아가버리죠. 법 다 날아가버리죠. 그리고 마음준비, 마음결심, 결단, 선택 다 어떻게 됩니까? 완전히 개무시해버리는 거예요.
내가 예수 믿는 것, 굴러 떨어진 사랑의 눈덩어리가 나의 예수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예수님 존경합니다, 예수님 소망합니다, 를 완전히 다 뭉개버리죠. 그러면 이 판때기는 찌그러지는 거죠. 이 판때기는 찌그러져서 블랙홀 밑으로 빠져버리고 사랑으로 이 입구를 완전히 봉쇄해버리죠. 주님의 사랑으로.
행함의 반대말은 뭐라고 했습니까? 행함의 반대가 사랑이에요. 이성의 반대가 사랑이죠. 자기 결심의 반대가 사랑이고요. 인간이 법을 싫어하면서도 법을 지키고자 하는 것은 아버지의 이름 때문이에요. 아버지가 거기 계셔서 아버지한테 인정받지 아니하면 내가 아니에요. 내가 여기 존재하는 이유는 내가 나라는 인생을 사는 이유는 오직 뭐 때문에? 나보다 위대한 나보다 월등한 내가 사모하는 아버지가 거기 있기 때문에.
있죠. 그걸 종교라고 하는 거예요. 그걸 종교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거기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이걸 종교라고 하는 거예요. 그걸 마귀가 그렇게 하는 거예요, 마귀가. 그래서 그 예능프로에 나왔던 목사, 신부, 여자 중, 그 세 명의 문제점이 뭐냐? 본인들이 하는 이야기가 그게 죄라는 사실을 몰라요. 자기 자신을 커버하기 위한 이성의 판때기에서 나온 거예요.
정말 그들이 사랑을 받았으면 그 방송에 나와서 이렇게 해야 돼요.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과 함께 있음입니다.” 라고 이야기하고 “이게 바로 십자가 앞에서 죄라는 겁니다.” 왜? 고린도후서 5장 15절에,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는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자기를 대신하여 살았다가 죽은 예수님을 위하여 살게 하심이라. 나에서 뭐로 바뀌는 겁니까? 나에서 예수님으로 바뀌는 거예요. 나에서 아버지로 바뀌는 게 아니고 예수님으로 바뀌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하나님의 아들 자격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자격을 묻는 거예요, 자격을. 권한을 물은 거예요.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인간은 아버지가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인간에게 아들을 통해서 구원하는 겁니다. 이삭이 아버지를 구원하죠, 이삭이.
물리는 거예요, 물리는 거. 일곱 인 끄트머리에 일곱 나팔 나오죠. 일곱 나팔 끄트머리에는 뭡니까? 일곱 대접이 나오죠. 뭔가 끄트머리가 물려서 나와요, 물려서. 끊어지지 않고 물려서 나온다고요. 여자가 있는데 여자의 끄트머리에는 뭐가 나옵니까? 여자의 후손이 나오는 거예요. 뭔가 물려서. 그러니까 끝에 나오는 분이 나를 거꾸로 물어서 구원받는 거예요. 그러면 과거로부터 시간이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성도한테는 미래가 앞당겨서 앞에 있는 현재, 과거를 삼켜버리는 식으로 가는 거예요. 삼켜버리는 식으로.
성경에서 삼킨다 할 때 이거 하나 아시면 다 아는 거죠. 요나+물고기. 요나가 고등어 먹을 줄 알아요. 요나가 갈치, 제주도 갈치 먹을 줄 압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물고기가 요나를 삼킨 거예요. 사자가 남쪽 선지자를 찢여 죽였지만 안 먹는 거 보세요. 안 먹고 지켜보기만 하죠, 열왕기상 13장에서. 참 희한하죠. 이걸 우연이라고 합니다. 우발성, 우연.
인간은 여러 가지 이성의 판때기에서는 원인과 결과의 필연이 있어요. 우연이 아니고 필연적으로 따지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하면 그 결과가 나를 위해서가 되어야 되니까. 자, 그런 인간의 아버지 이름의 집대성이...... 크리스마스 트리 제일 꼭대기에 보면 뭐가 있습니까? 별이 있죠. 그 별 같은 존재가 느부갓네살이에요.
인간이 아무리 이후에 역사를 많이 하더라도 느부갓네살로 이미 모든 구조는 확정됐어요. 결정 났습니다. 느부갓네살을 넘어설 수가 없어요. 그게 인간의 한도이고 한계입니다, 한계. 인간 지혜의 한계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꿈을 준 것은 인간의 지혜가 어디까지인가를 보게 한 거예요.
p.233 위에서 6번째 줄에 보면 “기존의 주체성으로” 그다음에 무슨 말 나오죠? “해독이 안 되어” 해독이 안 되는 거예요. 그 꿈의 해독이 안 되는 거예요. 어떤 똑똑한 인간, 법을 많이 아는 인간, 그 당시에도 최고 관료자들은 공부를 많이 해서 남보다 세상을 더 많이 알아야 되고 역사도 알아야 되고 다 알아야 돼요. 다른 나라 문자도 알아야 되고 남보다 더 뛰어나게 아는 범위가 더 넓어야 돼요. 그런 인간들이 다 집결하는 장소가 왕의 장소에요. 그 왕의 장소에서 그다음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질 때 인간의 통합된, 무지의 통합성이 드러나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인간은 아무것도 모른다’ 에요. 인간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냥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기의 희망과 꿈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열심히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이게 막혀버렸는데요? 막혀버렸어요, 하수구 막히듯이. 그 마개 역할을 누가 하는가? 그 마개 역할이 다니엘이에요. 다니엘이 뻥! 하고 마개를 뽑아줘야 돼요.
그러니까 이것은 인간의 모든 지혜와 모든 결정과 판단은 다니엘에게 종속되었다고 보면 돼요. 다니엘에게 종속된 거예요. 느부갓네살이냐, 다니엘이냐? 다니엘에게 철저히 종속된 거예요. 귀속된 겁니다. 다니엘이 계시를 풀어주지 아니하면 인간의 대표자 느부갓네살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에요. 그래서 얼마나 답답했으면 신하들을 다 죽이려고 생각했죠.
제가 지난 수요일에 뭐라고 했습니까? 범죄의 이유가 뭐라 했습니까? 범죄의 이유가 자기 속에 끓어오르는 분노와 그 울분과 울화통이 타인을 향해 터져 나오면...... 라면 물 끓일 때 물이 끓잖아요. 그러면 뚜껑조차도 막 들썩일 정도로 수증기가 뚜껑에 항거하지 않습니까. 안중근 의사처럼 막 항거해서 뚜껑도 들썩들썩하잖아요. 도저히 본인이 감당할 수 없어 터져 나와버리면 이게 범죄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도 힘 있는 자가 남을 죽이지, 왕이니까 죽이잖아요. 만약에 지가 왕이 아니고 힘이 없다. 그럼 그 분노는 내부로 향하겠죠. 그러면 그 결과가 뭐에요? 자살이죠. 자살이에요. 자살할 때 그냥 자살하지 않습니다. 고양이하고 껴안기, 개하고 껴안기. 나를 진정 사랑해주는 이는 너밖에 없었었었었었다, 해가지고 과거완료 팍팍.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 봅시다. 아까 빨리 했으니까 한번 복습해봅시다. 애굽 나라는 그 당시에 전체였다. 아무것도 안 나와요. 아무리 해도 애굽이 다 정복했으니까 오직 한 나라, 애굽 나라에요.
애굽 나라에서 이스라엘 나라 끄집어낼 때, 누가 여기서 압제합니까? 누굽니까? 바로 왕이죠. 모세가 와서 히브리인 빼내겠다 하니까 바로 왕이, 지금 내가 최고인데 지금 내 권력에 대해서 네가 뭔데 전체 말고 전체 외의 외재적 요소, 너무 어려우니까 그냥 외(外), 권력 외 권력을 여기서 네가 추가적으로 여분의 것으로 네가 따지느냐. 이 바로 왕의 권력을 네가 오해한 모양이다. 네가 오해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권력을 키워서 내 권한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것을 도로 더 심하게 압제하게 되죠. 그게 바로 전체 왕이 하는 이야기에요. 쉽게 말해서 바로 왕이 모세한테, “네가 나한테 시비 안 걸었으면 현재 네 히브리인들 이만큼 고생 안했어. 네가 나의 코털을 뽑았잖아. 건드렸잖아. 이거는 나의 권세가 전체라는, 전체 범주를 다 장악하고 있다는 그걸 네가 지금 몰라서 그래. 한번 보여줘? 내 권세가 어느 정도인지. 짚을 주지 말고 벽돌 수 그대로 다 채워.” 이거였던 거예요. 괘씸죄에 걸린 거예요.
그러니까 그 히브리인들이 모세보고 어떻게 했습니까? 모세 짱, 이렇게 했습니까, 어떻게 했습니까? 누굴 원망합니까? 되레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세, 아론 죽으라고 그렇게 했죠. 그렇다면 그 히브리인들은 어느 권세 아래 있습니까? 바로 권세 아래 있는 거예요, 바로 권세.
여러분들이 오해하지 말아야 될 것은요. 여러분들이 그걸 아셔야 돼요. 바로 왕이 좋다는 말이 아니에요.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가 산다는 말은 아버지가 마음에 든다, 아버지 취미가 내 취미야, 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버지를 존경하는 게 아니에요. 아니, 사람이 개를 키울 때 개를 존경해서 키웁니까? 나한테 의미를 주기 때문에 키우는 거예요, 의미를 주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드는 아내가 있다. 마음에 안 드는 남편이 있다. 왜 같이 삽니까? 지금 막 같이 산다고 나무라는 것 같다. 왜 같이 살아요? 너무 이뻐서? 사랑스러워서? 존경해서? 아니죠. 나의 의미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자식도 마찬가지고. 나 아버지 안 좋아, 가출해도 다시 집구석 들어오는 이유가 뭡니까? 탕자가 다시 아버지에게 돌아오는 이유? 그건 내가 아버지의 의미의 일부로서 자식이기 때문에 그래요. 남편의 아내라는 그 자리가 내 의미가 돼서 그런 거예요.
그럼 이것저것 다 떼면 안 되나? 떼버리면 이성적 판이 날라가서 허망하기 짝이 없죠. 허망하기 짝이 없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남편하고 못 살겠다고 변호사 찾아왔어요. 변호사를 찾아와서 재산 분배 어떻게 하면 되고 나 얼마 받겠습니까? 이혼 서류 뭡니까, 이러고 난 뒤에 끝나고 나서 그 변호사 사무실 맞은 편, 맞은 편 건물에 5층인가 6층에 결혼 정보회사 가요.
남자가 그렇게 지긋지긋하면 남자를 안 만나야 되는데 또 가는 거예요. 자기에게 남자가 있어야 자기 의미가 충족되기 때문에 그래요. 아버지를 미워해도 아버지 같은 사람 만나고 싶고. 이게 왜 그러느냐 하면 엄마를 미워해도 엄마 같은 사람 만나는 이유가 이미 내가 내 마음대로 결정된 사항이 아닙니다, 내 의미라는 것은.
히브리인들이 그렇게 모세, 아론을 되레 원망하죠. 왜? 양육 받았으니까. 눈에 보이는 이 바로 왕의 세계에서 양육 받았으니까. 이 이야기하고 10분 쉽시다. 그 바로 왕에게 뭐가 주어집니까? 열 가지의 재앙이 주어지는 거예요. 그게 패는 하나님, 때리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10분 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