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려 하는 자
디모데전서 6:9-10 부하려 하는 자
돈과 악이 무슨 관계가 있기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될까요? 부자가 왜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겁니까? 그것은 이 세상이 추구하는 목표가‘돈’이라는 것으로 최종 단일화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하나님 섬김의 라이벌로 돈이 등장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거론하면서 통용되어야 마땅한 세계망이 돈이 들어가서 관계망을 대체해서 형성하면서 유지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자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돈을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쉬운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자기를 소개하면서 길게 자랑을 늘어놓으니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아주 단출하게 정리됩니다.
“돈 많이 벌겠다” 이것은 곧 돈을 매개로 해서만 타인과의 관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돈을 얼마나 쥐고 있느냐에 따라 상대가 달라진다는 겁니다.
문제는 이런 정신이 비-현실적인 삶의 방식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이용해서 이 세상을 단일 현실체로 만드시는 중이십니다.
그 결과가 요한계시록 18:16-18 보면,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그러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돈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단일 세계로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조성하고 계십니다. 이는 그 어떤 인간도 돈의 유혹에서 벗어나 하나님에게 돌아올 수 없는 자가 없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 사는 의미나 보람, 그리고 거기서 형성된 자신의 자존심, 이 모든 것들이 돈 바탕 위에서 수립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교화마저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