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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13장 33절 (유령) 221206b-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13장 33절 (유령) 221206b-이근호 목사

자,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아까 누가복음 13장에서요 32절에 보면 이런 말씀 있어요.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 다음 33절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이렇게 되어있지요.

시간 카운트가 인간 세계의 카운트가 달라요. 인간 카운트는 태어날 때부터 출발하는 거에요. 태어날 때부터 한 살 두 살 세 살. 그런데 예수님의 카운트 이 땅에 오셨으니까 시간이 있을 거 아닙니까. 예수님의 카운트는 방향이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위해서 원 투 쓰리로 마감이 되어버립니다. 하나, 둘, 셋.

인간은 태어난 것부터 카운트해서 모든 시간 내가 태어나서 여기 존재한다 여기 있다를 강조하는 식의 자기 기억 속에 있는 시간, 나이. 그런 나이를 토대로 해서 살아가는 반면에 주님은 빨리 돌아가는 시간이 아직 남아있는 것을 오히려 안타깝게 여기는 거에요. 왜냐하면 죽어야 완전함이 되니까.

예수님이 죽어야 완전하게 된다는 말은 모든 인간 세계에 있는 모든 인간들은 이미 죽었다는 그 사실이 예수님이 죽을 때 일거에 전부 다 확연하게 폭로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은 죽은 자를 활용해요. 죽은 자이기 때문에 다루어지는 겁니다. 죽은 자이기 때문에.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와서 방향을 태어날 때부터 태어났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시간보다 저런 인간은 왜 안 죽어 빨리 죽지 라고 하는 그런 인간들도 있겠지요. 그게 마태복음 21장 31절에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아멘.

하늘나라가 뒤쪽에 있지요. 뒤쪽에. 첫째아들이 아닙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돼요. 왜 주님께서 그 말씀을 왜 언급을 하시느냐 하면은 바로 인간들이 가치 설정이 자기가 존재하는 것이 가치 설정의 기준이 되면 안 된다는 거에요. 죽어야 될 자가 죽는 것부터 가치 설정이 카운트돼야 된다는 거에요. 저는 마땅히 죽어야 됩니다 라고 해당되는 자가 누구냐? 세리와 창기와 도둑들이에요. 강도들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죽음을 기정사실화시켜서 모든 인간이 죽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시킨 그 내용을 가지고 말씀하실 때 그게 다 담겨있는 거에요. 만약에 오늘날 어떤 과학자가 성령 받았다. 과학자인데 성령 받을 이유가 별로 없겠지만 하여튼 과학자가 성령 받았다 하게 되면 이건 뭐냐 하면 과학자의 행위 자체가 내가 이것이 죽어 마땅함을 이야기하면서 왜 죽어 마땅한가를 알기 위해서 과학 작업을 하는 자이어야 한다 이 말이죠. 그래야 성령 받은 사람이에요.

자기가 죽어 마땅함을 자기 일을 통해서 그걸 파악해내는 사람. 그것이 직업이 얼마나 다양하든 상관없어요. 어부가 되든 농부가 되든. 뭘 하든 뭘 하든 간에 이 일이 결코 나를 구원하지 못하고 생명주지 못하고 나를 의롭게 하는 게 아니고 반대로 내가 왜 꼭 죽어야 될 지금 죽어도 마땅한 인간인 것을 드러내는 그 업무로 주께서 주신 거에요. 물론 땅 투기도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그들이 기존의 자기 존재가 마땅히 존재해야 된다는 것을 근거로 한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런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는 주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지요. 같은 인간 말을 사용하는데. 그 인간의 모든 말 속에는 인간은 존재해야 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시키는데 그걸 반대로 죽어 마땅함으로 내용을 채워서 대화를 하니까 똑같은 단어인데 단어가 먹히지를 않는 거에요. 대화가 안되는 거에요.

말씀이 그 사람 속에 없으니까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인간들이 예수님 추방시킬려고 하지요. 결국 죽일 수밖에 없게 한다 이 말이죠.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그 세리와 창기들은 뭐냐 하면은 주위에서 아이고 너 빨리 제발 안 죽냐? 라고 아주 악을 쓰는 사람들 그런 사람의 예를 들은 거에요.

사람들은 뭐 종교가 뭡니까 라고 묻잖아요. 그럼 사람들은 나는 종교가 없습니다. 옛날에 교회 다녔는데. 시시해서 안 다닙니다 이러잖아요. 사람들은 자기 종교를 버린 적이 없어요. 그 종교가 뭐냐 하면은 자신의 과거를 믿습니다. 이 종교에서 벗어난 인간은 아무도 없어요. 자기 과거를 믿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왔다는 자기 추억을 믿어요. 믿는 게 있어요. 그래서 인간은 악착같이 힘들어도 인생을 사는 거에요. 왜?

자기가 살아온 과거가 너무 아까워서. 그게 너무 아까워서. 이제껏 산다고 얼마나 용을 썼습니까. 낑낑 거리면서. 15층 벽을 기어올랐는데 지금 떨어져버리면 15층이 완전히 무효가 되잖아요. 그럼 자기가 자기 불쌍해서 못 살아요. 그게 우울증이라고 하는 거에요. 자기가 자기 불쌍해서 못 살아요. 내가 그동안 살아온 것이 아까워서라도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악착같이 12층 올라가고 13층 더 올라가는데 중요한 것은 어렵지요.

자기를 믿는 유명한 노래가 있는데 그 가사를 한번 보겠습니다. ‘지난날에 내 모든 문제들이 저 멀리 있는 것 같았는데 이제 그랬듯이 여기 머물려하는 것 같이 오 나는 지난날을 믿었는데. Yesterday all my troubles seemed so far away. 지난날에 내 모든 문제들이 저 멀리 있는 것 같았는데. Oh I believe in yesterday. 나는 지난날을 믿었는데. Suddenly 갑자기. I'm not half the man I used to be 나는 예전에 반도 안 되는 그런 졸장부같은 느낌이 들었다. There's a shadow hanging over me. 내 머리 위에 그림자가 드리웠고. Oh yesterday came suddenly 지난날이 갑자기 떠올랐어. Why she had to go 왜 그녀는 갑자기 떠나려 했던가. I don't know she wouldn't say 모르겠어 그녀가 왜 말도 해주지 않았어. I said something wrong now I long for yesterday 이제 지난날이 그리워져’

내 지난날이 계속 그리워지는 거에요. 자기가 믿는 종교가 있어요. 지난날. Yesterday. 인간의 지난날. 그거만 믿어요. 교회 다녔어요? 아니죠. 지난 날 다닌 교회죠. 충성했던 젊을 때 성가대 봉사하고 주일학교 봉사했던 그 지난날이죠. 청년부하면서 서로서로 죽자 살자 새벽부터 봉사했던 그 지난날. 그 괜찮았던 교회에 열심이었던 그 나를 신봉하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난날을 인간에게 그 지난날이 결코 올수 없는 주님만의 시간 원 투 쓰리가 있습니다. 그게 어디냐?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다. 창조한다. 그 공간이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 지금부터 예루살렘 이야기하겠습니다. 오늘 누가복음 13장 본문 한번 봅시다. 13장 33절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오늘, 어제 1,2,3에서 완성이 됩니다. 1,2,3 인데 3의 시간을 완성하는 장소가 나와있어요. 예루살렘. 그 장소에서 일어난 일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 일이 뭡니까? 죽는 것. 예수님의 죽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이름은 죽은 이름이다. 죽은 이름이란 유령이다 이 말이죠. 죽은 이름은 죽은 얼굴이기 때문에. 왜냐하면 갈수록 늙어가니까. 죽은 얼굴이에요. 하얗게 창백해지는 얼굴들을 돌 지난 애도 갖고 있어요. 그 안에 잠복되어있어요.

지금까지 여러분 강의 들으면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종교라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종교라는 것 안 됩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인간이 가능한 거거든요. 인간이 가능한 것 하나님 나라에 안 받습니다. 인간이 가능하니까 하고 가능하니까 예배드리고 순서 정하고 하잖아요. 인간이 가능한 것은 안 받습니다.

인간의 모든 가능한 것은 인간의 자기 존재 의미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안돼요. 어떻게 하면 살아볼까 해서 교회 다니는 겁니다. 우리 가정 박살내볼까 해서 교회 다니는 것 없어요. 어떻게 해서든 교회 가서 우리 가정 하나는 내가 가장의 이름으로 살려보자. 기도해서라도 빡쎄게 기도해서라도 우리 애는 간암에서 낫게 해보자 뭐 이런 거요. 살려고 교회 가잖아요. 살려고. 그게 종교라는 거에요. 그게 유대교고요. 그 열심이 사두개인과 서기관과 바리새인이고요.

그들의 마음 속에는 뭐가 없다? 주의 말씀이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종교 해놓고 하는 말이 제가 주를 위해서 뭘 했습니다. 주의 말씀이 나 너 모르겠다. 나 너 모르겠다. 주님은 자기가 아는 사람만 알아요. 그 외에는 사람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내 말이 꽂힌 사람만 자기 사람이에요. 말씀이 없는데 주의 사람이라고 우겨봤자 주님에게는 통하지를 않습니다. 너는 너 사람이겠지 너 사람. 내 사람이 아니고 너 사람이겠지.

자,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1,2,3이라고 하는 예루살렘, 이 죽은 얼굴 이 세 가지를 결합시켜보겠습니다. 이 결합시킨 게 어디냐 하면은 마태복음 2장에 나옵니다. 마태복음 2장에 보면 1절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이렇게 되어있지요.

자, 예수님 태어난 곳은 베들레헴이에요. 그런데 동방박사가 어디에 도착했습니까? 베들레헴에 바로 직통하도록 별들이 이동하지 않았어요. 무빙스타가 베들레헴에 오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사라졌어요? 예루살렘에서 사라졌어요. 그러면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서 곱게 태어나서 곱게 사시다가 곱게 돌아가시는 그런 법은 없습니다. 반드시 예루살렘에 있는 인사 그와 예수님께 말씀을 두고 분쟁이 일어나줘야 됩니다.

아까 이야기한 것 기억하십니까? 예수님 오실 때 층이 있는데 기성세대의 권력층 또는 지배층이죠. 층이 무슨 층이냐? 지배층이죠. 어떤 인간도 기성세대 권력층을 뚫고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어떤 것도. 세례 요한이 잔소리 해가지고 목 잘려 죽었잖아요. 이런 거 한번 생각해보세요. 세례 요한이 헤롯 안티파스에게 한 소리를 했는데 그걸 보고 헤롯이 감동해가지고 세례 요한보고 “야 네가 정말 선지자구나 나와 같이 손잡고 이 유대나라를 네가 시킨 대로 할 테니까 멋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보세.” 이렇게 하게 되면 세례 요한은 소리가 아니에요.

하나의 뭐가 되느냐? 메시아가 되는 겁니다. 소리든 메시아든 간에 인간 세계 자체가 이미 주께서 버린 세계, 지옥이라는 사실을 알려줘야 돼요. 그런데 세례 요한도 물론 소리로서 알려줬잖아요. 튕겨나가니까 죽음으로서. 그 다음에 오실 분도 예수님도 이 세상 권력이 하나님을 죽이는 그런 세력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거에요. 그 다음 차례는 오늘 우리 성도 차례죠, 성도들이 그 일을 하도록 주께서 부추겨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본문이 어려운 것은 왜 별이 멈췄느냐 하는 거에요. 바로 가면 되는데, 뭐 네비게이션 고장 났어요? 네비게이션이 그만 고장 나가지고 예루살렘에 왔는데 베들레헴에서 작동을 안 하네, 별 네비게이션이. 어쩔 수 없이 누굴 만날 수밖에 없는가? 그 당시의 권력층을, 권력층이 있잖아요. 요 밑에 태어났는데, 이걸 피해서 올 수가 없어요, 동방박사도. 동방박사도 그렇고 세례 요한도 그렇고 선지자도 구약 성도들도 이걸 피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이게 두꺼운 층이거든요.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이 세상을 이게 자력으로 떠날 수 없게 꽉 만들어놓은 그 단단한 층이기 때문에 빠져나올 수가 없어요. 빈 틈이 없어요.

그래서 이 층이 헤롯이에요 헤롯. 그 때 헤롯 대왕. 헤롯 대왕도 마찬가지고. 헤롯 대왕은 하는 일이 있었어요. 뭐냐 하면은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아래 아이들 다 죽였습니다. 애는 다 죽였어요. 뭐 뒤에서 떠밀려서 죽은 거 아니에요 이태원에서. 그냥 인위적으로 다 죽였어요. 세월호 물에 빠져서 죽은 게 아닙니다. 그냥 죽였어요 그냥.

그러니까 헤롯이 그냥 죽이면 죽을 수 있는 백성들이 있다는 말은 이 백성들은 살아있으나 산 목숨이 아니고 언제든지 명령만 하면 죽으면 죽을 목숨인 거에요. 푸틴에게 있는 러시아의 20세 이상의 남성들 그 산 목숨들입니까? 지금 살아있죠? 근데 전쟁 동원령 내려가지고 와버리면 뭐가 되느냐, 총알받이 되죠? 총알받이 안 가겠다고 요트 타고 빠져나와 우리나라 포항에 오면 살려줍니까? 안 받아줘요.

이 세상에 어떤 나라도 여권 없이 하면 안 받아줘요. 혼자 나 어느 나라 살래, 내 마음대로 정한다? 내 마음대로라는 게 이 세상엔 없어요. 형성되어있지 않습니다. 내 마음대로가 없어요. 정확하게 말해서 돈 있어야 약간은 선택권이 있어요. 돈이 없는 자는 선택권도 없어요. 이 세상에 무슨 자유의지, 자유의지라는 게 없어요. 자유의지 있으면 골치 아파요. 외로워요.

하필이면 동방박사를 좀 살리지 동방박사가 여기 내부로 들어옵니다. 딱 들어오니까 헤롯이랑 딱 마주치지요.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메시아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이렇게 이야기하겠지요. 메시아가 태어났어? 어디서 태어났나 물어보니까 베들레헴이에요. 베들레헴. 그렇다면 거쳤지요. 거치고 난 뒤에 다시 별이 떠올랐어요.

뭔가 중간에 별의 이동경로에서 끊어진 지점이 있어요. 끊어진 지점. 베들레헴에 왔습니다. 경배했습니다. 동방박사 몇 명인지 안 나와있지만 보통 세 명이라고 하면 왔습니다. 왔을 때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뭐냐 하면은 천사가 와서 예수님을 봤던 동방박사를 이제는 더 이상 헤롯의 권력층에 하지 않고 딴 길로 빼돌립니다. 딴 길로. 딴 길로 빼돌리죠.

자, 왜 빼돌립니까? 동방박사는 몰랐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뭡니까? 동방박사를 누가 죽인다? 헤롯이 동방박사를 죽일려고 했지요. 그러면 동방박사는 부활한 사람이에요.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이 세상 권력 자체가 함께 동반해서 이미 죽은 공동묘지에요. 이거는 하나의 무덤 속에 같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지금. 무덤 속에서. 예수님의 무덤은 무슨 무덤입니까?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이에요. 지금 우리는 살아도 무덤이고 죽어도 무덤이고 함께 있어요. 빠져 나갈 생각도 없고 빠져 나갈 마음도 없어요.

왜? 고3이기 때문에. 일단은 국제학교 가보고 고3 대학은 보내고 죽어야지. 아직 딸이 결혼을 안했어 35살인데. 이러면서 우리는 나올 생각을 안 하고 있어요. 우리는 성경에서 배웠습니다. 천국이 더 좋다는 것. 죽기 싫어요. 천국이 좋아도 아직은 죽기 싫어요. 아직 크루즈여행을 안 해봤어. 그거 하고 죽을래 이런다고요. 돈 이거 쓰고 죽어야지. 손주 보고 죽어야지 이렇게 되는 거에요.

그 의식 자체가 어떤 의식과 다르냐 하면 동방박사 의식하고 달라요. 우리는 적응하자는 거에요. 우리가 탈출할 수 없으면 굴복해서 최선을 다하여 약간은 양보를 하더라도 숨만 쉬면 그나마도 행복은 그 안에서 소박한 행복은 챙길 수 있다고 우리는 자꾸 변명하고 있는 거에요. 왜? 존재가 우리를 안 놔주기 때문에. 그리고 그 존재가 내가 의롭기 때문에. 나의 의가 나를 안 놔줘요. 우리는 죄인 되기 싫어요. 죽는다는 것은 망해도 싸다는 뜻이거든요. 그런 대우를 평가를 받기 싫어요. 왜 내가 뭘 잘못해서 지금 내가 망해야 돼. 우리는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는 하나님의 의해서 죽었는데 살았어요. 뭐를 알았기 때문에? 아기 예수를 봤기 때문에. 누가복음 2장에 시므온이라는 선지자가 아기 예수보고 한 유명한 말이 있어요. 그런 것 좀 액자 좀 해놓으면 좋아요. “이제 종을 편안히 놔주시는군요” 이제 종을. 예수님을 봤다는 것은 이 죽음에서 벗어난 생명과 연계된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아기 예수님을 봤다는 건. 그 근거를 위해서 이제는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어디로 가느냐? 예루살렘으로 쳐들어가는 겁니다.

카운트가 1,2,3 가 돼요. 오늘, 내일, 그 다음날. 지금 3일 후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주님께서는 3 밖에 몰라요. 오늘 해도 예수님은 하나, 둘, 셋. 내일 되도 하나, 둘, 셋. 죽는 그 날 되도 하나, 둘, 셋. 1,2,3. 3이 되면 1,2 가 다 무효가 되면서 3일에 완성하거든요. 십자가 죽고 난 뒤에 삼일 만에 완성하잖아요. 그러니까 주님의 시간은 뭐냐? 주님의 자신의 죽음과 자신의 부활 사이의 이 시간, 시간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 시간을 새롭게 이 존재의 세계에 집어넣은 거에요.

이 시간을 어디다 집어넣는가? 구원 받아야 될 자기 택한 백성의 시간으로 교체해서 집어넣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시간은 타인의 시간이에요. 남자가 30 되기 전까지는 네가 취직은 해야 된다. 이거 타인의 시간. 우리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지인들의 아는 일가친척들의 욕망이 거기 담겨있어요. 그러나 1,2,3. 제발 죽여줘 그리고 제발 3일 만에 살아다오. 왜? 내가 확정된 내가 이 땅에 꼭 필요한 시간의 간격을 주님이 친히 만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시간을 적용시키면 뭐가 나오느냐? 지옥 갈 인간들 시간도 자기들 시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지옥 갈 때 1,2,3 지옥 갑니다. 갇혀있는 시간이에요. 1-3까지 갇혀 있는 그때 잠시 잠깐 그들은 세상 낙을 누리지만 주님 십자가 죽게 되면 그걸로 그들은 몽땅 그들의 이름은 이미 죽은 시체에 붙인 이름으로 완전히 까발려져버립니다. 그렇게 돼요.

그러니까 강의 처음에 이야기했지요.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인간들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으로만 작용합니다.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는 말씀들만 해요. 제자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들은 모릅니다. 그냥 열심을 다할 뿐이지. 그들은 아는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 중에서 딱 하나 아는 자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7절에 나옵니다. 베드로겠습니까? 누구겠습니까?

13장 27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가룟 유다가 있습니다. 여기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은 사탄이 들어 있죠. 그러면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이 지시를 내리지요. 지시를 내린다는 말은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고 안에 들어있는 누구 보고? 사탄 보고 지시를 내리는 거에요. 악마도 예수님의 부리는 영이에요. 악마도.

구약에 사탄이 여러 번 나오지요. 욥기 1장에도 나오잖아요. 스가랴 4장인가 거기도 나오고. 그럴 때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꼴 보기 싫어! 사탄아 저리 가! 이랬습니까?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악마한테 의도적으로 말을 걸었습니까? 어땠습니까? 의도적으로 말을 걸었지요. “악마야 네가 세상에 나가보니까 욥 만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더냐?” “없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요즘 월드컵 식으로 이야기하면 “악마야 너 가가지고 메시 만한 선수 있더냐?” 하고 똑같은 거에요. 그러니까 인정하지요. “없었습니다. 인간들 가운데 없었습니다.”

악마가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의 가진 것을 뺏으면 그가 하나님에게 원망하고 믿음이 없어질 겁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 때문에 생긴 믿음입니다 라고 악마가 이야기하지요. 악마의 거짓말입니다. 그건 악마가 의도적으로 거짓말한 거에요. 악마가 왜 그런 거짓말 하느냐 하면은 하나님을 속이기 위해서 거짓말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은 안 속는 거 알아요. 하나님 외 모든 인간들 속이기 위해서 그렇게 한 거에요.

그 속임수 때문에 인간은 뭔가 가질 때 다시 뭐로 돌아오느냐. 뭔가 소유가 있을 때는 ‘나’가 붙어요. ‘내 것’이라고 여겨요. 뭔가 소유가 있을 때는. 집이 한 4채 있고 자동차 5대 있고 토지 있고 수입 많을 때 성령 받아버리면 뭡니까? ‘이거 다 주의 것이야 내 것 아니야. 나는 그냥 사용하는 사람이고 하나의 일꾼이야.’ 이렇게 이야기한단 말이죠. 그런데 거기서 악마가 벤츠 두 대를 보태주네. 저 벤츠 두 대는 내 것이지. 이렇게 나오면 안 된단 말이죠.

그래서 주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우리 죄를 다룰 때 성도를 다룰 때 매일같이 더 주고 후딱 죄인의 자리에 오라고 더 줘버려요. 자꾸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후딱후딱 다시 옛날 이거 내꺼야 나 신앙 좋으니까 주신거야 나 기도 응답받아서 주신거야 라고 다시 그 소유와 나를 결탁시키는 죄를 죄인으로 다시 자리를 옮기게 만들어요 주께서.

마귀가 그 일을 잘해요. 시험 들게 만들죠. 해놓고 주께서 다시 작용을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어떤 경우도 본인을 본인의 정신 상태와 신앙을 본인이 지킬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어제 대구강의에서 그런 이야기했지요. 일은 하나님이 했는데 네가 왜 책임져? 일은 하나님이 벌려놨는데 네가 왜 책임질려고 하느냐. 왜 네가. 내가 들어가잖아요 내가. 아 이번 일은 내가 실수했어. 아니 네가 실수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일을 일으킨 거에요.

그런데 인간의 육신의 본심은 본인이 그 일을 수습해가지고 신앙인답게 살려고 하는 거에요. 그게 마귀가 그렇게 만든 거에요. 마귀가. 그래서 욥도 그러잖아요 욥도. 나중에 친구들 얼마나 꾸중하는지요. 1,2,3 라는 말은 이 시간은 인간이 아는 그런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은 방향성을 갖고 있어요. 어떤 방향성? 우리는 죽어 마땅하고 이미 죽어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쪽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고 가고 있다는 거에요. 왜 그래야 돼요? 주님마저 이 땅에 와서 살아가신 경로가 바로 그 경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한테 물어보겠습니다. 사람이 화가 날 때 언제 화가 나던가요? 내 것임을 확인시킬 때 화가 나요. 무슨 일 하다가 모르고 열심히 일한다 합시다. 그런데 보니까 어떤 사람이 이거 주인 없다고 그냥 가져갈 때 그때 내거야 라고 하지 않고 내꺼야!!! 라고 하지요. 화를 내지요. 내꺼야 내꺼야 화를 내지요. 평소에 내 것인지 네 것인지 모르고 다른 일에 몰두하다가 뭔가 건드리면 제일 먼저 하는데 저것이 내거냐 네거냐 먼저 따지게 되어있어요 인간은.

이게 인간의 의거든요. 내가 잘났느냐 못났느냐 따지는 이유가 내가 잘났으면 더 살 가치가 있다고 자부하고 못났으면 반성해서라도 살라고 이야기할 거고 우리의 잠복되어있는 우리의 육신의 본심들이 그런 거에요. 그러니까 이것이 신앙생활해서 제대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성립이 안 됩니다. 우리는 영적인 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제자들하고 똑같아요.

그러나 가룟 유다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가룟 유다로 하여금 사탄이 들어있는 가룟 유다에게 너 할 일을 해라 했어요. 네 할 일을 하라고 했잖아요. 할 때 이것이 뭐냐 하면은 여기에 12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가 한 제자지요. 한 제자의 중심에 12제자가 다 휘말리게 되어있습니다. 11제자가 너 가룟 유다 너 그렇게 주님 팔아먹으면 안되지 라는 말 안했어요. 왜? 기존정치세력과 가룟 유다가 결탁되어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룟 유다의 하는 일에 대해서 다른 제자들이 반대 못한다는 것은 인간들은 기성세계의 지배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걸 보여주는 겁니다. 기성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은 이들이 주동해서 예수님을 죽였다면 나머지야 말할 것도 못되죠.

자, 헤롯 이야기 계속 해보겠습니다. 헤롯이 동방박사 죽일려고 했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헤롯대왕이 죽고 난 뒤에 그 다음에 헤롯 안티파스가 갈릴리 분봉왕으로 있습니다. 갈릴리 분봉왕으로. 예루살렘은 그때는 다른 사람들 없었어요. 그냥 로마가 직접 통치하는 식으로 그런 식으로 있었고 가이사랴 빌립보 저쪽에는 빌립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헤롯에 대해서 또 한 사람 더 있지요. 어쨌든 간에 갈릴리 분봉왕으로 있는 헤롯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뭐냐. 여우라고 하는 그 사람이에요.

그렇다면 이게 결합되는데 어떻게 결합되느냐 하면은 예루살렘에서 선지자와 결합돼야 하는데, 예루살렘을 누가 쥐고 있는가? 헤롯이 쥐고 있다 이렇게 보시면 돼요. 예루살렘을 그 당시 헤롯이 쥐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악한 여우같은 것이 권세를 갖고 있으면 하나님의 의는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하는 거에요. 그 인간의 권력을 갖고 있는 그것들이 모든 인간들을 장악하고 있어서 그 다음에 하나님 되시는 예수님과 만남에서 그들이 죄를 극한으로 다 보여줘야 돼요. 그래야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겁니다.

그 내력에 대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 누구도 나를 벌할 수 없다 이게 뭐냐 하면은 나의 의입니다. 나의 의. 그 누구도 나를 벌할 수 없다. 여러분 벌 받을 때 아이고 고맙습니다 이럽니까? 아니지요. 네가 뭔데 벌해? 하지만 네가 힘이 세니까 내가 어쩔 수 없이 받는다 이렇게 되는 거에요. 멀쩡하게 집에 있는 청년들 군에서 오라. 어디 놀러 갑니까? 김밥 싸들고. 머리 깎고 오라. 놀러가는데 무슨 머리를 깍아요.

하지만 거기에 거역 못하는 이유가 뭡니까? 뭐가 없기 때문에? 힘이 없기 때문이죠. 느그 아브지 뭐하시노? 우리 아브지 육군대장인데요. 그럼 좋은데 빼줄게 이러면 몰라도 아무 빽도 뭐도 없는 인간들은 어떻게 됩니까? 굴복하지요. 굴복할 때 뭘 느끼느냐 하면은 그 가정단위의 자괴감을 느끼는 겁니다.

특히 집에서 오냐오냐 키워가지고 하나하나 다 해줬던 그 애가 군에 갔다 할 때 본인이 너무 실망스러워서 갑자기 군에 가기 전에 친구 모아놓고 마지막 파티 연다고 술을 엄청 먹고 온갖 탈선을 다하지요. 마지막 그 잔을 들어라 건배! 나훈아 노래 그런 게 있어요. 그리고 그 다음날 이등병 열차타고 저 언덕 넘어 우리 집 보일까 처량하게 이등병 편지 하지요. 이등병 편지가 아주 신나는 노래입니까? 즐거운 노래입니까? 내 이 한 몸 국가에 충성해서 아주 기쁩니다 이런 노래입니까? 이래서 내 청춘은 여기서 끝나는구나. 아이고 딸로 태어나지 이게 무슨 짓이고. 딸로 태어나는 건데. 이게 뭐에요? 자기 인생을 스스로 슬픔을 보고 자기 인생의 약점을 본다고요 자기가.

이게 뭐냐? 군에는 끌려가는 것이고요 어쩔 수 없는 거에요. 모병제 하지 말고 차라리 자기는 취직하는 군대 회사 만들어가지고 500만원 주고 가라고 하면 전부 다 갈 사람들 갈 거에요. 미국처럼. 나라에서 주는 혜택 많고. 그러나 강제는 어쩔 수 없는 거에요. 어쩔 수 없는 것. 이것은 뭐냐 하면은 내 의가 이 세상에 먹히지 않는다. 절대 조커 같은, 에서 같은 그러한 기능을 못한다. 내 의가.

그러면 군에 갔다 오면 철 들죠. 뭘 하느냐? 타인에게 양보하는 법을 배우는 겁니다. 권력의 맛에 알아서 힘 쎈 자에게 고개 숙일 줄 아는 사람. 철이 많이 들어서. 철 든 사람. 회사 가면 고분고분 할 줄 알고 그러면 뭘 포기입니까? 자기 의 포기입니까? 자기 의를 가지되 협상하고 타협하는 겁니다. 이게 뭐냐면 best doing, 나는 최선을 다한 것을 의라고 쳐주세요 이런 겁니다. 그러나 율법에 그런 게 됩니까? 안됩니까?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알면 어디 간다 했어요? 지옥 갑니다. 오른손이 한 걸 왼손이 알면 지옥가요. 일점 일획이라도 다 지키지 아니하면 다 색출해가지고 지옥 보냅니다. 구원? 남의 이야기에요. 뭐가 있는 한? 남의 이야기입니까? 자기 의가 있는 한, 남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루살렘에서 하신 일이 뭐에요? 너희들에게는 일체 너의 의가 없음을 보여주는 사건을 일으킵니다. 그게 1,2,3 무슨 사건입니까? 십자가 사건.

그 십자가에서 옆에 달린 세 명 중에서, 유일하게 구원받은 사람 누굽니까? 강도. 강도잖아요. 강도가 지금 뭐하는 중입니까? 십자가 죽을 때 뭐했죠? 안에서부터 예수님 보고 무슨 공부하고 있었습니까? 어떻게 했어요? 실습도 그런 쌩 절실한 실습이, 성한 실습이에요. 성경 보고 이렇게 적는 게 아니에요. “자 한 팔 이리 대고, 한 팔 여기 붙여야지” ‘나는 강도다. 나는 이정재다’ 이거 있잖아요, 종로3가에서 옛날에, 나는 깡패다 죽어 마땅하다 그런 거 있었어요. 5.16 때. 참 옛날 이야기입니다. 진짜 종로 바닥에 이름 써가지고 다녔어요. 해놓고 사형시켰어요. 국민 뉴우스 보세요. 나와요.

이게 뭐냐 하면은 거기에 예수님 십자가 보지 말고, 강도의 십자가 보세요. 그 강도가 우리에요. 우리가 죽어 마땅한데 그 강도가 구원받은 것은 바로 예수님과 통하는 게 있기 때문에 구원받은 거에요. 예수님 사건의 일환으로 참여된 조건하에 구원받은 겁니다. 예수님은 의인이고 철천지 원수는 누굽니까? 그 강도고. 죄인과 의인의 하나의 커플, 짝을 이루어서 거기서 다 이루었다가 성립된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제물이고 우리는 그 대신해서 죽어야 될 죄 많은 제물. 항상 그 자리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후딱 오게 만들어요. 후딱 오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일에 종사하던지 우리의 기능은 뭐여야 됩니까? 내 죄를, 내가 죄를 아는 기회로 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이 땅에 다양한 직장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유가 되는 겁니다. 그 다음에 계속 봅시다. 누가복음 13장 한번 봅시다. 34절 봅시다. 오늘 마지막 부분 다 하겠습니다. 13장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그 다음에 뭡니까? “죽이고”

예루살렘은 인간에게는 어떤 것도 날 때리지 마세요 라고 우길 자격자는 한 명도 없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예루살렘 사건은. 어떤 인간도 ‘난 안 맞아야돼요 날 때리면 안되죠’ 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이태원에 깔려죽든지 어떻게 죽든지 간에 그거는 하나님께 원망하면 안 되겠죠. 유령은 이미 죽은 거니까, 우리는 이미 죽은 자잖아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잖아요. 유령이 자기를 내세우면 안 되죠.

그러니까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이제부터는 우리의 의를 내세우지 않겠습니다.’ ‘누가요?’ ‘내가요.’ 또 내가 또 들어간다고요. 나는 내 의를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들어가면 다시 한번, 주께서 대기 상태라는 거에요. 이거 또 맞아야 돼. 자꾸 내가 들어가는 거에요. 내가. 주와 함께 주님과 함께 있는 겁니다. 혼자 있는 게 아니고. 그 점은 유투브 강의에 했으니까요. 유투브 강의의 제목이 뭡니까? 두 번째는 ‘그릇’이고 첫 번째는 ‘존재의 뒤편’이죠. 그걸 한번 보시면 거기 나옵니다.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자, 여기서 마지막으로 어려운 단어 하나 나왔습니다. 시간에 대한 분사 ‘~~까지’ 이거는 아무리 설명해도 그게 더 어려운거 같애. ~~까지. 현재 분사가 나와요. 현재 분사하고 과거가 다르다고 했죠. 다시 말씀 드리면 과거라 하는 것은 옛날에 이런 게 있었었다. 이게 과거고요. 옛날에 이렇게 했던 것이 지금 여기 있네? 요거는 현재 분사형. 현재 분사.

주님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주님의 현재 분사로, 주님의 지체로서 현재 분사로 사랑하는 거에요. 나는 이러한 죄를 지었고 내 의로 인하여 주님 대신 돌아가셨다 라고 이야기하는 네가 여기 있네? 라고 해주는 거에요. 끊임없이. ‘~~까지’라고 하는 것은 ‘떼내지 않으마’ 이런 뜻이에요. ‘너를 떼내지 않으마. 같이 데리고 갈께.’라는 것.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자, 여기서 ‘주의 이름’이 오세요. 주의 이름 앞에서 주의 이름 앞에서 주의 이름은 사람들에게 죽은 이름이기 때문에 주의 이름이 만약에 주의 이름이 살아 있다면 주의 이름을 죽였던 모든 이름은 무슨 이름이냐? 죽은 이름이 되요. 죽은 이름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죽은 자기 이름으로 구원받는 경우는 없어요. 내 의로 구원받는 경우도 없고 내 열심히 내 행함으로 구원받는 경우는 없고, 내 이름으로 행했던 거 있잖아요. 내 이름으로. 너 말고 내 이름, 너 헌금 말고 내가 드린 헌금, 네 기도 말고 내가 한 기도, 그런 기도는 없습니다.

모든 기도는 뭐냐 하면은 무슨 기도? 주의 이름이죠. 그러면 전에 성령이 와서 기도했잖아요. 그러면 주의 이름이 성령으로 기도케 했다는 말은 성령으로 했던 기도, 성도를 언제까지 주의 오실 때까지 떼내버리지 않고 현재분사로 이끄신다는 뜻이에요.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35절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해” 라는 말을 이걸 믿지 않는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불신자죠.

왜? 35절의 말씀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요. 근데 성령이 와서 13장 35절을 우리에게 쏙 집어넣어버리면 그 사람은 주어진 성령 때문에 주의 말씀 때문에 누가복음 35절 그 말씀이 계속 우리 안에서 유효한 거에요. 내 속에 그동안 내가 의식하는 타인들이 있는 게 아니고 내 속에 주님의 이름이 나의 타인으로 타인 자리에 쑥 들어와버리면, 나는 그분에 의해서 인도받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에 합류할 수 있는 주의 이름의 사람이 되는 거에요. 주의 이름으로. 그러면 십자가 강도는 강도의 이름으로 구원받는 거에요? 주의 이름으로 구원받는 겁니까? 문제 너무 쉽죠? 주의 이름으로 구원 받는 겁니다.

끝으로 성경 한 구절 하고 마치겠습니다. 에베소서 1장 17-19절, 제가 읽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자, 묻습니다. 주기 전까지는 알았어요? 몰랐어요? 모릅니다. 줬습니다. 줬어요. 우리 속에 없는 것을 주신 거에요.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자, 성령이 오지 않으면 우리의 눈은 어둡습니다. 밝질 못해요.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아까 말한 ‘~~까지’죠.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여기에 풍성이라는 단어 나오죠. 풍성합니다.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해요. 예상 밖으로 풍성해요.

19절 “그의 힘의” 그 다음에 뭡니까? “강력함으로” 그 다음에 “역사하심, 일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함이라”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은 주의 의, 나의 의 말고 내가 꼬불쳐놓은 나의 의 말고 그딴 거 말고 주의 의가 와버리면 우리가 이 땅에서 소소한 모든 걱정거리와 고민과 염려, 마음의 갈등과 건강, 여러 가지 우울증 문제 이런 모든 문제가 그 강력한 크심에 의해서 다 묻히는 거에요.

여름철에 골목에 모기약 뿌리잖아요. 보건소에서. 모기약 뿌릴 때 댁의 손자들 어딨습니까?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웽~ 하고 뿌리면, 기생충이라는 영화에 나오잖아요. 뿌리면 그 뒤에 가가지고 우리 아이들 하나도 안 보이죠. 소소한 모든 문제가 강력한 하나님의 의 안에서 그딴 건 문제거리도 안 되는 것으로 전부 다 이게 안 개 속에, 안개 하니까 또 헤어질 결심 생각 나네. 안개 속에 다 자욱히 묻혀버리는 거에요.

왜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하고 화가 납니까? 복음의 능력이 안 오니까 걱정하고 있는 거에요. 그건 문제거리도 아닌데, 아니 유령이 밥 맛 없다고 라면 안 먹고. 유령이 주는 대로 먹으세요. 컵라면이건, 진라면이건. 이 땅에 우리는 16강, 8강 안 되도 괜찮아요. 그 유령들 축구 하는데, 해봐야 우승해봐야 헛되고 헛된 겁니다. 우리 출세해봐야 허무만 찾아와요. 주의 강력함 복음의 강력함, 하나님의 의, 우리 보고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이거는 주님의 의의 타자가 우리의 그동안 내가 남들 눈에 비치는 의롭게 될라고 하는 그것을 대체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믿는 것이 우리의 과거였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소망을 믿게 하시고 다 이루심을 믿게 하시고 주님의 성령께서 주신 복음의 풍성함과 그 강력한 능력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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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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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