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21212a 부산강의 : [시편]54(38:11)-3자 관계자유게시판시편

20221212a 부산강의 : [시편]54(38:11)-3자 관계
(강의:이근호 목사)

시편 38편 1~3절, “여호와여 주의 노로 나를 책하지 마시고 분노로 나를 징계치 마소서 주의 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다윗에게 일어난 일이에요. 구체적 일이죠. 이걸 구체적 공간이라 하겠습니다. 구체적 공간과 대비되는 것은 상상적 공간이 되겠지요. 다윗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것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이런 구체적 상황이 벌어지는 거예요.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데 이게 왜 구체적이냐? 신체에 상처가 발생되는 되었다.

상처란 말이 어디 나오느냐 하면 11절에 보면 나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와 나의 친구들이 나의 상처를 멀리하고 나의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나의 상처라고 돼 있지요. 상처가 있음으로써 여기서 상상적 공간과 구체적 공간이 가름되는 갈라지는 기준이 됩니다. 친구들, 그리고 평소에 사랑했던 사람들, 가족도 포함됐지요. 가족이 11절에 보면 상처로 인하여 어떻게 된다 했습니까? 상처로 인하여 멀리한다 했지요.

멀리한다니까 이거는 공간의 분리가 되겠습니다. 같이 있을 때 친한 사이, 사랑하는 사이 함께 있을 때 부부가 그렇게 같이 다니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럴 때 같은 공간이라 생각하지요. 그런데 한쪽이 상처가 생길 때는 늘 붙어있다고 생각했는데 갈라지는 현상이 벌어지지요. 분리된 공간, 이럴 때 그게 뭐냐? 같이 있으면서 구체적 공간의 발생으로 말미암아 떨어진 사람은 상상적 공간에 속했다는 것이 규명되고 드러나는 겁니다.

그런데 상처 받는 자가 누구냐 하면 바로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있는 사람입니다. 특수한 사람이죠. 다윗은 어떤 사람이다? 특수한 사람이에요. 특수하다는 말은 인간세계에서 인간들의 생각에 의해서 규정될 수 없는 사람, 그게 특수한 사람이에요. 자, 인간들의 생각에 의해서 규정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인간들이 평소에 생각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가? 그걸 일단 여러분들이 아셔야 돼요.

인간들의 생각은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나에게 의미가 되고자 방사한 공간이 돼요. ‘방사’란 사방을 향하여 쏘는 걸 말합니다. 스파이더맨 생각하면 돼요. 거미 생각하면 쭉쭉 뻗어나가는 거예요. 인간의 생각은, 이 말은 나에게 의미가 되는 것. 인간의 생각을 다른 말로 하면, “나는 결코 무의미한 존재가 되기 싫다” 이게 인간입니다. 이게 인간세계에 모두 다 동일하지요.

이거는 뭐냐 하면 특수한 게 아니고 보편적인 거예요. 또는 일반적이다. 모든 인간은 각자 자기 의미를 수집하는 식으로 거미가 거미줄을 쏘는 것처럼 나한테 내가 가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줄 사람만 찾아다니면서 관계와 만남을 이어가는 겁니다. 지금 여기 다윗은 뭡니까? 일반적이 아니고 반대말로 특별한 사람이죠. 특별한 사람이니까 다윗에게 일어난 그 일로 인하여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은 그다음에 뭐했다? 멀리하게 된 거예요. 왜 멀리합니까? 다윗에게 일어난 그 특수한 상황은 본인들이 구축하고자 하는 나에게 의미가 있는 나만의 공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보탬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멀리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한 걸 정리해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언약적 사람, 특수한 사람 다윗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사람들은 어떤 현상이 발생됐다? 하나님의 언약이 주어진 그 특수한 사람으로부터 내빼는 데 급급하고 있다. 도망치는 데 급급하고 있는 거예요. 도망치지 않고 멀리하지 않으면 무엇이 다치기 때문에? 나의 의미 구조가 망가지기 때문에. 내가 무의미가 되는 것은 인간이 참을 수 없는 겁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인가 그런 말씀 나오지요. 나를 따르고자 하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가 자체 내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인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 무덤을 지는 거예요. 자기의 관을 지고 나를 따라오라 했습니다. 따라간 사람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특수한 분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유발한 현상이 뭐냐? 나를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 오신 거예요. 예수님 빠져버린 세계를 인간들은 상상하고 있었던 겁니다. 자, 예수님이 빠져버린 세계를 두 자로 하게 되면 그걸 ‘지옥’이라고 해요. 주의 나라, 아들의 나라와 무관한 세계, 예수님과 무관한 세계를 지옥이라 하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단번에 언약에 의한 지옥과 인간에 의한 지옥 개념 차이가 나지요. 지옥1, 지옥2라면 언약에 의하면 지옥이란 뭐냐? 예수님이 빠져버린 세계를 지옥이라 합니다. 세상의 지옥은 뭐냐? 내가 빠져버린 세계를 지옥이라 해요. 자기가 빠져버린 세계. 이게 지옥이죠. 그래서 인간들은 자기가 빠져버릴 때 외부로부터 자기가 무가치하고 무의미하게 될 때 외부를 향하여 복수의 칼날을 갑니다. “너 때문에 내 인생 조졌다. 너 때문에 오늘 하루 일과 기분 나쁘기 시작했다.” 이런 거죠.

이것은 뭐냐 하면 인간들이 생각하는 나의 의미의 세계에서 인간은 상처를 싫어하는 이유가 내 세계에 나한테 흠집이 나기 때문에 그래요. 내 인생에 흠집이 나는 것은 우리한테는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은 내가 누구를 용서하고 말고는 내가 결정한다는 뜻이 담겨있어요.

그렇게 본인이 용서하고 말고를 결정한다면 그런 자가 주님의 용서하심이 그 속에 받아들이겠습니까? 못 받아들이죠. 용서를 받고 안 받고를 내가 결정하는 데 네가 뭔데 일방적으로 나를 용서하니 마니 하는 결정권을 그쪽이 갖고 있느냐 말이죠. 용서함과 안 함을 그쪽이 가져가버리면 나는 졸지에 나의 용서함과 안 함, 용서받음과 안 받음의 그 결정 의미가 나한테는 무의미가 돼버려요. 내가 무슨 일을 해도 아무런 소용없는 짓이 된다는 것, 이거는 본인한테 뭐가 되느냐 하면 지옥 같은 존재에요.

그래서 주님께서 오신 것은 두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주님이 지옥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 없는 곳이고,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은 자기가 다치는 것을 지옥이라 보는 거예요. 자기 인생이 다치는 곳. 그런데 여러분 알다시피 신약에 와서 인간들이 합세해서 우르르 마음 뜻을 모아서, 창세기 11장에 인간의 뜻을 모아서 뭐했습니까? 바벨탑 세웠지요. 신약에서 인간의 뜻을 모아서 누굴 추방했습니까? 특수한 분 예수님을 추방을 했잖아요. 그렇게 함으로써 자동적으로 이 세상은 지옥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 오신 것은 이 세상이 지옥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오신 겁니다. 지옥은 대장이 있어요. 누가 대장입니까? 악마가 대장이죠. 그걸 성경에선 악령이라 표현하는데, 악령이 자기 하수인 모든 인간에게 악령의 마음을 다 부여해서 부추겼습니다. 메시아를 죽이라고 부추겼고 인간은 악마와 한 통속이 되어서 악마가 시키는 대로 부지런히 움직였고, 거기에 대한 대가로서 인간들은 자기 자신에게 의미가 있고 선택과 결정권이 있다고 하는 그것에 대해서 뿌듯함을 본인들이 갖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한 마디로 말해서 나는 예수 없이 살란다. 예수님 거부하고 살란다, 이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나라는 메시아 없이 하나님 믿는 척하고 있는 동우회를 결성한 거예요. 가상공간이에요. 상상의 공간, 예수님 오기 전에는 유일한 실제적 공간이라 여겼지요.

시편 38편 다윗 시대잖아요. 다윗 당시에도 멀리한 현상이 발생되도록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신체적 상처를 준 겁니다. 그러니까 다윗에게 신체적 상처가 오기 전까지 그들은 다윗과 함께 사랑하던 친구였던 자들이 다윗에게 특수한 상처가 주어지니까 그들은 어떻게 했다? 11절에 다윗을 버리고 멀리 떠나버린 거예요. 가버린 거예요. 이것이 언약의 효과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특수한 효과에요.

그래서 다윗이 상처 받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다윗과 그들이 같이 있는 걸로 여기겠지요. 그것 착각이었습니다. 상처 없는 예수, 우리에게 부활의 사랑을 주는 예수 이거는 착각이죠. 부활을 이야기해버리면 뭐가 빠집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가 빠져버려요. 주님의 상처에 동참하는 그 삶이 빠져버려요. 자기의 무의미가 빠져버려요.

계속 십자가를 건너 뛰어버리고 그냥 통과해버리면 십자가를 놔두고 도망치듯이 빠져나와서 부활의 세계에, 자기 상상의 세계에 말려들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중간에서 뭐가 누락되느냐 하면 나는 무의미하다는 것이 누락돼버리는 겁니다. 내가 뭘 해도 나는 하나님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게 발각되지 않고 있어요.

이 동우회, 예수 안 믿으면서 믿는 척하는 동우회 이걸 오늘날 두 자로 ‘교회’라고 해요. 그런 현상을 교회에서 보세요. 여러분들이 발견해야 됩니다. 믿는 것과 믿는 척하는 차이점은 자기가 여전히 자기 세계가 따로 있고 그게 의미 있고 여기서 나를 지적하지 말고 손대지 말라. 흠집내지 말라고 강력하게 반발하는 성향을 보일 때 그 사람은 자기 부인이 그 안에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 그래도 드러나지요. 지옥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지옥이라 해도 지옥이 마냥 좋은데 어떻게 합니까? 김세환이 불렀던 노래 있어요. 예수님이 없는 게 더 좋은데요. 예수 없이 나 혼자 따로 사는 게 더 좋은데 어떻게 할 거예요. 교회 와서 믿는 척은 하는데 믿는 척만 할 뿐이고. 나는 내 의미를 자랑질하는 게 그렇게 재밌는데 어떻게 합니까.

여기 16절에 보면,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망자존대할까 하였나이다” ‘망자존대’라는 문자, 아주 어려운 말이 나오지요. 망자존대란 뜻은 앞뒤 생각도 없이 함부로 잘난 척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특수한 다윗에게 상처가 나지 않았으면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무 문제없는 걸로 여깁니다. 쉽게 말해서 자기를 모른다. 자기 자신이 누군지 모르고 있는 거예요.

지옥의 특징은 개인을 다루지 않는다. 이거는 천국도 마찬가지고. 개인을 다루지 않고 공간으로 다뤄요. 개인을 묻는 게 아닙니다. 너는 어디에 속했느냐고 묻는 거예요. 이게 구약 자체의 원칙을 한 마디로 끄집어내라고 하면 이겁니다. ‘출애굽’이에요. 이스라엘의 출현이 뭡니까? 출애굽 사건이 없었으면 이스라엘이 나타나지 않았지요. 출애굽할 때 개개인이 실력이 있고 능력이 있어서 그렇습니까? 아니지요. 주님께서 인간 개개인의 하자나 문제 삼지 않습니다.

그 공간 자체가 그들은 통제하고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춰내지요. 아까 이야기한 공간을 다시 나눠볼까요. 공간은 두 종류가 있지요. 특수한 공간과 반대말이 상상된 공간. 특수한 공간을 구체적 공간. 어느 정도로 구체적이냐? 신체에 상처 생길 정도로 구체화된 공간. 다윗에게 이게 어느 정도로 구체적이냐 하면 너 죄 졌구나, 이게 아니라 다윗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박혀버린 문신처럼 새겨버린 상처가 있는 거예요. 얼마나 구체적이에요. 신체에다 아예 주님께서 상처를 박아 넣은 겁니다.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 사도 바울이 이런 말합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성경에 이렇게 이해하기 힘들고 놀라운 사실은 이겁니다. 특수한 개인적인 상처가 뭘 나았냐 하면 새로운 넓은 공간을 형성한다는 사실이에요. 이게 신구약에서 굉장히 놀라운 사실입니다. 출애굽 때 어린양이 죽었지요. 그때 나타난 것이 어린양이 지배하는 특수한 공간의 발생입니다. 그게 이스라엘 공간이에요. 그래서 그 공간에서는 아침저녁마다 뭘 드리느냐? 어린양의 희생제사가 상번제란 이름으로 드려지는 거예요.

지금까지 한 걸 다시 요약해볼까요. 하나님께서 언약이 오게 되면 이 땅에 구체적인 공간이 생기고, 그 구체적 공간 이전에 특수한 개인에게 상처가 생기면서 그때부터 눈에 보이는 이 세계, 인간들이 상상하는 하나님이 함께 있는 세계가 전부라고 여겼는데 그 인간들이 보편화되고 일반적으로 생각한 하나님이 그 하나님이 아니었고 그 하나님은 언약과 계약관계에 있는 언약과 맺은 인간에게 특수한, 구체적인 증표를 남기는 식으로 하나님의 일이 개입되니까 여기서 뭐가 있느냐 하면 공간의 분리가 발생되는 현상이에요.

처음에 모두 다 함께 있다고 여겼는데 함께 있는 것이 아니고 11절에, “나의 사랑하는 자와 나의 친구들이 나의 상처를” 보고서 그다음에 멀리 떠나서 따로 새로운 공간을 형성하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제가 마태복음 16장 언급했잖아요. 특수한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그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발언은 뭐였습니까? 나와 함께 하는 새로운 공간이 형성되려면 조건이 있지요.

어떤 조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러니까 자신의 무의미를 받아들이라 이 말이죠. 자신이 의미 없다는 것은 사적인 행동 하나하나가 의미 없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천국이나 지옥이나 둘 다 공간 문제지 개인의 역량에 따라서 본인이 선택하거나 본인이 거기서 있겠느냐, 말겠느냐, 빠져나오겠느냐 하는 그런 사적인 영향력은 천국, 지옥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바르게 사느냐가 나를 구원하는 게 아니에요. 어제 주일하교에서 그런 설교했습니다만 내가 찔찔 운다고 죄인이 의인 되는 것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찔찔 짜는 게 전혀 자기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나 말고 특수한 언약적 관계에 있는 그 한 분에게 일어난 일이에요. 한 분에게 일어난 일이 하나님 앞에 의미가 있다면 그 외에 나는 의미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의미가 없는 거죠.

교회가 예수 안 믿고 예수 믿는 척하고 있는 것은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자기가 자기 믿음의 내용에 발을 못 빼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내 개인적인 행위가 내 인생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자기를 무의미하게 내버려두지 않고 자꾸 내 결정과 내 믿음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사적으로 시작되는 나만의 공간을 우리는 그게 참 편하고 좋은 걸 어떡해, 이러고 있단 말이죠. 사적인 공간을. 그러나 언약은 다윗에게 찾아와서 특수한 공간이에요. 그로 인하여 다윗과 함께 있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하는 다윗을 떠나버리는 멀리 가버리는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도마가 나옵니다. 도마가 제시한 조건은 이래요. 자신이 보고 믿겠다는 자기의 의미 있는 결정을 본인은 유지하고 싶었던 거예요. 흔히 말해서 불신앙이라 하는데 그런 상투적인 말을 하지 말고 내가 눈으로 보고 결정한 것을 나는 그걸 진리로 인정하겠다. 왜? 내 눈이 의미 있는 눈이고, 내 결정도 나는 의미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게 도마의 사전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도마 앞에 예수님이 등장했잖아요. 예수님이 여기 있네, 이렇게 해서 도마에게 자기 부인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님 보니까 예수님 부활한 것 맞구나, 이렇게 되면 그거는 세상에서 가짜로 이야기하는 부활의 세계지 내가 부인되는 천국의 세계는 아니에요. 나의 의미와 가치도 살아 있고 그런 조건 하에 주님도 같이 의미 있게 한 통속이 되었다. 이거는 인간들이 구상하고 있는 상상적 세계에요. 그런 천국은 없습니다.

주께서 제시한 것은 뭐였습니까? “나 여기 있는 것 보이지?” “보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 구원 받은 거야.” 주님께서 이렇게 했습니까? 주님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는 방법은 뭐였던 거예요? 나 여기 있잖아, 가 아닙니다. 뭐였습니까? 주님이 받았던 상처 난 자국을 보여주지요. 그 상처 날 때 열두 제자 다 어디 갔습니까? 한 제자는 팔아먹고, 열한 제자 다 어디 갔어요? 아무도 없었지요. 관람했지 그 현장에 같이 십자가 달리고 그런 것 없지요. 아무도 없었습니다.

시편 38편에 내가 상처 받을 때 그들은 떠났다는 말씀이 누구에게만 그 말씀을 누가 책임진 거예요? 제자들이 책임진 거예요, 예수님만 책임진 거예요? 예수님만 책임진 거예요. 예수님만 그것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그 38편 말씀을 왜 인용 못했습니까? 그들이 자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들은 다른 공간에 있기 때문에 그래요.

다른 공간, 모든 일반인이라면 다 같이 공유하는 공간 있잖아요. 납득되는 공간, 눈에 보이는 공간, 각자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는 여기 오늘 38편의 내용대로 망자존대하는 그러한 공간, 각자 지 주먹 흔들고 만나서는 동우회 결성하면 되는 공간, 누구도 그걸 탓할 수 없는 공간, 나는 내 인생 산다고 의연히 그리고 뿌듯하게 주장할 수 있는 그것이 용납되고 허락되는 공간 그들의 집단이 뭐냐? 열두 제자 집단이었어요.

말씀에 대해서 하나도 지키지 못하면서 죽어서 주님 따라서 좋은 천국에 가려고 시도하는 그러한 공간에 속한 인간들이 유의미, 가치 있다고 보는 그 세계. 주께서 제시한 것은 상처뿐이었습니다. 내 못 박힌 손을 만져봐라. 그리고 찔린 창 자국을 봐라. 이 말은 쉽게 말해서, “도마야 네 옷 올려봐. 네 손 한 번 내밀어보자. 네 손에 뭐 있냐?” “없나이다.” “네 손에 창 박힌 적 있나?” “없나이다.” “그럼 아니네. 그러면 아닌 거야. 네가 보고 믿겠다는 그 결정은 의미 없는 거야.”

의미 없는 거죠. “도마야 새로 시작하자.” 어디부터 새로 시작하는가? 상처부터 새로 시작하는 겁니다. 도마에게 놀라운 현상은 도마가 복을 받아서 상처 보고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게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내가 너를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한다는. 아마 도마가 도망치면 끝까지 상처 보여줬을 거예요.

상처만 보고 오라. 딴 거 보지 말고, 멀쩡한 네 몸 보지 말고, 거울 앞에 선 네 몸 보지 말고 상처 난, 너한테 난 상처 말고 나한테 난 상처 오직 한 분, 언약을 다 이루신 예수님의 살과 피, 그분의 상처만 바라보고 떠나지 말고 합류하라. 날 버리지 말고 합류하라 이 말이죠. 그러면 그건 하나님의 한 식구입니다.

주께서 열두 제자에게 성령을 보낸 이유가 이겁니다. 결사적 내 식구 지옥에서 빼내라, 건져내라. 이게 사도에게 준 임무입니다. 멀쩡한 사람 말해서 알아들어서 빼내질 못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뭐냐? 이 공간 자체가 멀쩡한 인간들이 없어요. 지옥이기 때문에 멀쩡한 게 없습니다. 지옥엔 누가 살고 있다고 했습니까? 오야봉 악마가 살고 있는데 지옥에서 슬금슬금 빠지도록 악마가 그냥 놔두질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가? 지옥에서 차사고 나게 만든 거예요. 차사고 난 지옥에서 탑승객이 멀쩡하게 걸어서 나오겠습니까, 죽은 시체로 나오겠습니까? 죽은 시체로 나오겠지요. 시체란 죽은 자는 더 이상 자기 결정권, 자기 존재 의미 없습니다. 다 지난날의 이야기에요. 끝났어요. 시체가 무슨 자기 결정, 자기 기도, 헌금, 선교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예배에 충실하심, 누구 섬김 뭐 의미가 있겠어요. 시체가 회개하는 것 봤어요? 없어요. 끝난 문제에요. 시체가 찬양한다고 주께 좋아하질 않잖아요.

한 번 물어볼게요. 주님께서 손에 못 자국, 배에 창 자국 했을 때에 객관식입니다. ①주님이 죽을 뻔했다. ②죽었다. 몇 번입니까? 어느 쪽입니까? 아슬아슬하게 죽을 뻔했습니까, 죽었습니까? 죽었지요. 다른 공간입니다. 죽은 자의 공간이에요. 인간이 건너갈 수 없는 공간, 인간이 노력해서 참여할 수 없는 공간. 그 참여할 수 없는 공간에 주님께서는 시편 38편 말씀의 성취에 의해서 그 세계, 그 새로운 공간에 자기 백성을 끌어당긴다는 말은 더는 제자들로 하여금 자기만의 공간은 빠이빠이가 되는 거예요. 아아, 옛날이여~ 다 옛날이야기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 안에 온 사람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뭐가 보이느냐 하면 자기가 떠나온 세계가 보이는 거예요. 출애굽입니다. 아아, 죽어서 가는 곳이 지옥이 아니라 살아서 줄곧 온 그곳이 지옥이었구나. 왜? 자기 의미에 치중, 몰입하다보니까 예수 없는 세계를 어찌 그리 좋아했는지 예수 없는 세계를 어떻게 그걸 선망했고 경쟁적으로 그 세계를 붙들려고 했는지 어떻게 인간으로 태어나서 지옥을 그렇게 좋아할 수밖에 없는 도대체 내 심령이 얼마나 마귀로부터 푹 스펀지에 물젖듯이 젖었으면 천국 놔두고 지옥을 좋아하는 거예요.

티비만 틀면 전부 다 지옥이에요. 에스비에스 지옥, 케이비에스 지옥, 엠비씨 지옥, 지금 카타르는 월드컵 지옥하고 있어. 전부 다 의미가 있어. 손흥민, 희찬이부터 해서 전부 다 인간에겐 의미가 있고요. 거기 같이 뛰어놀면서 같이 흥분하고, 대~한민국 하면 자동적으로 짝짝짝 짝짝. 치킨 먹어가면서 밤새도록 쳐다보면서 사는 재미를 느끼는 것, 그것이 예수님 없더라도 나는 좋아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심령 자체가 거기에 맛 들여져있고 길들여져 있고 치킨에 맥주에 맛 들여져있듯이 지옥에 흠뻑 취해서 교회 오면 예수 마치 믿는 척하면서 동우회 결성하는 이 세계…….

이 문제를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은 결코 지옥에서 빠져나올 낌새가 전혀 없다는 사실. 왜? 상처 받은 자와 멀리하기 때문에. 나를 무의미하다고 여기게 만든 그 공간으로부터 우리는 후딱 내빼기 바쁘지요. 내 소박한 기쁨을 네가 뭔데 빼앗아 가느냐는 식이죠. 그런데 이렇게 내뺄수록 주께선 성령 받은 성도로, 사도로 하여금 저돌적으로 결사적으로 내 식구 지옥에서 빼내라, 이게 오늘날 성령 받은 성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임무입니다. 빼내라.

뭐로 빼냈게요? 증인 노릇하면서 빼내라. 내 안에 상처 있다, 그걸로 빼내라는 거예요. 빼내려면 crash 차사고 나야 돼요. 차사고 날 때 죽은 자로서 기어 나오는 거예요. 죽은 자로서 기어 나와서 비로소 눈이 열리죠. 에베소서 1장 잠깐 찾아보겠습니다. 1장 1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여기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했지요. 사도 바울이 사도되기 전에 본인은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했습니까,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사도되기 전에 예수님 만나기 전에 본인은? 알아도 보통 안 게 아니라 철저하게 알지요. 그런데 성령을 받아보니까 내가 안 것은 이건 하나님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진짜 교회는 뭐냐? 여러분들이 태생적으로 나면서 알고 있는 유치원 애들이 뭔지도 모르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 하나님이 그게 하나님이 아니었고 악마였어요, 마귀였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가짜 하나님은 나에게 의미를 주지만 진짜 하나님은 나에 대한 생각을 끊어버리고 누구만 생각하게 만들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하신 일만 생각하는 거예요.

나의 하는 일은 뭘 했든 간에 이거는 의미가 없는 거예요. 존재의 가벼움이죠. 아주 가벼움이죠. 내가 이 땅에 어떻게 뭘 하며 살았는지 일체 묻질 않아요. 전과가 몇 범인지 일체 묻질 않아요. 내 구원에 내가 영향력이 전혀 없음을 계시의 영이 밝혀질 때 비로소 발견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가 죄인 중의 괴수라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거예요. 괴수 보고 괴수라 하는데 그게 뭐가 나쁘냐 말이죠. 누가 너는 자존심도 없냐 하는데 자존심 같은 소리하고 있네. 자기는 이미 죽었고 그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있는데 내가 내놓을 수 있는 기능적인 이야기는 예수님의 기능이죠.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그 기능 외에는 더 이상 나한테는 자랑할 게 없지요.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게 없어요. 교회 자랑? 미쳤어요. 그걸 왜 자랑해요. 동우회를 왜 자랑합니까, 계모임을. 요샌 계모임 되지도 않아. 돈을 내야 계모임이지 곗돈도 안 내는데.

다시 말씀드려서 구약의 원칙은 출애굽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고 계속 강조하는 것은 애굽에서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각하기를 애굽에서 나왔잖아. 아니 그들은 애굽에서 나왔다고 해서 나온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그들 자체가 자기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한, 다시 말해서 어린양의 희생을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는 한 그들은 그들이 있는 이스라엘이 애굽입니다.

그래서 물 없다고 원망하고 양식 없다고 원망했습니다. 애굽 사람 욕할 수가 없어요. 애굽에서 빠져나온 것이 본인들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어린양이 빠져나왔지요. 어린양이 나올 때 그냥 빠져나온 게 아니고 애굽에 있는 모든 장자를 작살내고 빠져나왔지요.

장자 없는 족보는 족보가 아닙니다. 맏딸 안 돼요. 둘째 아들 안 됩니다. 큰아들 죽이는 거예요. 이거는 너희들 인생 육적인 그러한 후손들이 있더라도 이미 하나님에 의해서 살해당한 족보, 하나님에게 저주받은 족보에요. 족보 같지 않은 족보. 이어져봐야 하나님과 결별될 상태인 것을 확인해줄 족보, 육적인 족보일 뿐이에요.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의 차이점은 애굽 사람에게는 어린양이 없고 이스라엘에게는 어린양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스라엘은 본인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본인들이 존재한단 말이에요. 본인들이 존재하는 건 의미 없어요. 그래서 어린양이 없는 곳을 우상이라고 하고요 어린양이 있는 곳을 언약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이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이스라엘이 뭘 버리느냐? 그 어린양의 의미를 버려버리죠. 그 빈자리에 우상이 들어오죠. 우상의 특징은 뭐냐 하면 애굽이에요. 내가 가치 있다고 계속 인정해주는 가상의 공간, 가짜 공간이에요. 그냥 신이 모호해요. 구체적이지 않아요. 신이 거기 계시겠지. 오겡끼 데스까, 거기 잘 계십니까? 마치 유치원 애들 믿는 신.

하나님은 거기 계시고 나는 지상에 여기 있으니까 나중에 죽어서 만납시다. 기독교 장례식에 흔히 나오는 이야기 있잖아요. 곧 가서 아버지 있는데 만납시다. 아버지 어디 간지도 모르지요. 무슨 교회 동우회 회원들 어디 천국에 넣어줍니까. 그런 것 없어요. 예수 없기를 소원한 사람들이 예수 있는 곳에 간다고요? 말 같지도 않은 되지도 않은 그런 망상이 어디 있어요? 예수 없는 삶이 소원인 자가 주께서 예수 있는 곳에 집어넣는다고요? 네 소원대로 될지어다. 예수 없는 지옥으로 보내버려요.

예수가 없기 때문에 자기 의미 지키는 방법만 고안하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내 인생 망친 자 다 죽어버리라는 사적인 복수가 가정이든 교회든 어디든 그냥 복수하는 일념 외에는 남는 게 없습니다. 커피 드시겠습니까? 툭 던지는, 이게 복수에요. 너 보기만 해도 짜증나. 내가 신자니까 참는다, 이런 거요. 그건 복수 아닌가요? 난 용서가 안 돼. 누가 누굴 용서하고 자시고 그럴 권한이 있습니까, 우리가? 없어요. 너는 나를 쪼다로 만들었어? 그렇게 분노할 권한 있습니까?

쪼다로 만들든지 뭘 만들든지 그거는 나는 상처 나지 않겠다, 나는 흠 잡히지 않겠다, 난 내 신체나 내 인생에 대해서 흠이 없는 걸 목표로 살아가고 있어요, 모든 인간들은. 악마가 지배하는 이 지옥의 인간들의 문제점은 본래의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걸 봉쇄된 공간, 또는 다른 말로 하면 악마로부터 점령당한 공간, 또 다른 말로 하면 폐쇄된 공간.

폐쇄된 공간의 인간들 성격의 특징은 뭐냐? 자폐증. 이소룡 영화 마지막 장면에 거울 방이 있어요. 적 오야봉이 자기 정체를 거울 속에 숨기면서 이소룡을 공격합니다. 거울은 뭐냐 하면 아무리 성경을 연구하고 들어도 반영돼 나오는 것이 자기 의미 있음만 되돌려 받는 거예요. 이게 말씀으로 된 교회고 사방이 말씀으로 되도 보는 자가 자기의 의미만 되돌려 받는 식으로 해석이 되니까 이게 바로 봉쇄된 공간이고 악마와 함께 있는 자폐증 사회지요.

이것을 뭐라 하느냐 하면 2자 관계라 합니다. 오늘 시편 38편은 2자 관계가 아니고 뭐로 바뀌느냐 하면 3자 관계에요. 3자 관계는 삼각형 꼭짓점이 세 개잖아요. 지금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다윗이 자기 죄로 인하여 상처 받고 있던 구체적 공간이에요. 구체적 공간에서 뭐가 없느냐? 꼭짓점 두 개가 비어있어요. 그러면 상처 받은 것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신약으로 말하면 뭐냐? 모든 시작을 십자가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왜? 나머지 관계는 상상적 공간이니까. 실제 하지 않는 공간이고 거짓된 공간이기 때문에. 폐쇄되고 자폐증 공간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2자 관계, 자기 얼굴을 되비추는 공간이거든요. 나 여기 있으면 타인이 있잖아요. 남이라 볼 때 이건 마치 무슨 효과냐? 거울효과에요. 그 사람이 누구냐, 관심 없어요. 그 사람이 날 어떻게 보느냐? 관심 있어요. 하나의 거울로 사용하는 거예요, 타인을.

부부사이에서 여자가 외출할 때 남편은 꼭 필요해요. 왜? 거울역할 해야 돼요. “이 옷 어때? 둘 중에 어느 게 어울려?” 남자는 귀찮아서, “둘 다 다 돼.” “머리 어때?” “괜찮아. 다 돼.” “제발 빨리 나가줘.” 그 밑바닥에는. “목걸이 어때?” “괜찮아, 괜찮아.” “십 년 젊어 보여?” “괜찮아, 괜찮아.” 본인도 거울 보잖아요. 그 거울이 확장되는 거예요. 본인은 마음에 드는데 남편 보기에 어떻게 보이는지 확장해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데 집에서 옷 고를 때 남편에게 이 옷 어떠냐고 하는 그 마음이 동창회 갔을 때 연말연시 모임에 갔을 때 그 마음 달라질까요, 안 달라질까요? 안 달라져요. 인간은 변하지 않거든요. 이 옷 어때, 왜 합니까? 나의 모든 관심사는 나에게 상처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상처 없기를 바라는데 상처 있는 분과 같이 할 마음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내빼지요. 도망치는 거예요. 도망칠 때 인간은 비로소 내가 아는 나가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로써 밝혀지는 나의 적나라한 내 모습이 노출되는 순간입니다. 복음 전하니까 도망쳐버리는, 숨어버리고 도망치고.

숨어버린다는 것은 자폐증 현상이죠. 그리고 도망 못 칠 것 같으면 극구 방어하고 저항하고. 그 저항이 주님으로부터 더욱더 상처를 깊게 만들죠. 상처 너만 받아라. 나는 상처 받기 싫다. 그런 관계라면, 예수님 보고 너는 천국 가라, 나는 너 없는 곳에 가고 싶다. 그게 반대편, 그게 지옥이잖아요.

자처해서 지옥을 선택하는 인간의 그 의지, 마귀가 준 선물입니다. 주님보다 악마가 더 좋은 이유가 거기 있어요. 악마는 뭐 입지요, 명품? 프라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어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관리에 꼼짝 마라, 라고 지금도 차분하게 운영되고 있는 세계, 애굽이고 지옥입니다. 성도는 사도로 하여금 저돌적으로 차를 박아서 충돌해서라도 그 인간을 죽여서라도 거기서 시체로 질질 꺼내듯이 끄집어내라.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에요. 10분 쉽시다.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70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9,417 자유게시판 9강-하박국 2장 12-14절(귀신들의 고백)221214-이 근호 목사 하박국 최고관리자 22-12-15
19,416 자유게시판 20221212b 부산강의 : [시편]54(38:11)-3자 관계 시편 최고관리자 22-12-14
열람 ➜ 자유게시판 20221212a 부산강의 : [시편]54(38:11)-3자 관계 시편 최고관리자 22-12-14
19,414 자유게시판 29강-예레미야 5장 1~5절(존재와 기능)221211 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2-12-11
19,413 자유게시판 22강-디모데전서 5장 17-25절(부득불)221211 - 이 근호 목사 디모데전서 최고관리자 22-12-11
19,412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빈 무덤 / 221211 - 최고관리자 22-12-11
19,411 묻고답하기 상전 - 최고관리자 22-12-11
19,410 자유게시판 12월(22년 마지막) 부산 성경공부 안내 시편 최고관리자 22-12-10
19,409 자유게시판 안양20221117b말1장2절(선지자의 이중성)-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22-12-10
19,408 자유게시판 안양20221117a말1장2절(선지자의 이중성)-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22-12-10
19,407 자유게시판 8강-하박국 2장 9-11절(말씀과 공유)221207-이 근호 목사 하박국 최고관리자 22-12-08
19,406 묻고답하기 목사님 예수님의 부활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 최고관리자 22-12-07
19,405 자유게시판 415강-YouTube강의(그릇 신명기 28:5)20221206-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22-12-07
19,404 자유게시판 414강-YouTube강의(존재의 뒤편 출애굽기 4:17)20221206-이 근호 목사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22-12-07
19,403 강의 유튜브강의(414강, 415강) 존재의 뒤편, 그릇 221206 - 최고관리자 22-12-06
19,402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13장 25절 (말씀의 온전함) 221122b-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2-12-05
19,401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13장 25절 (말씀의 온전함) 221122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2-12-05
19,400 자유게시판 20221202b 울산강의-역대기상(16강) 13장 11절 : 언약궤의 최종성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22-12-05
19,399 자유게시판 20221202a 울산강의-역대기상(16강) 13장 11절 : 언약궤의 최종성 - 최고관리자 22-12-05
19,398 자유게시판 21강-디모데전서 5장 3-16절(과부의 혁명)221204 - 이 근호 목사 디모데전서 최고관리자 22-12-04
19,397 자유게시판 28강-예레미야 4장 29~31절(초신성)221204 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2-12-04
19,396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가짜 인간 / 221204 로마서 최고관리자 22-12-04
19,395 묻고답하기 바른 장로 - 최고관리자 22-12-04
19,394 자유게시판 수련회 교재(수정판) - 최고관리자 22-12-03
19,393 자유게시판 7강-하박국 2장 5-8절(본질과 모형)221130-이 근호 목사 하박국 최고관리자 22-12-01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