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설교 / 빈 무덤 / 221211
빈 무덤 221211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우리 아기 첫 성경 이야기가 다 되어갑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얘기하기 전에 먼저 이것부터 이 그림부터 다시 한 번 기억을 회상시킵니다. 죽음이라는 바다 속을 사람들이 통과하고 있지요. 그러면 이거는 터널을 통과하는 거예요. 이거는 가당치도 않는 거예요. 주님께서 다른 길이 있어요. 다른 길이 있는데 의도적으로 물속으로 들어가게 함으로써 물속에 들어갈 때 인간들은 입을 다물어야 돼요. 죽음 속에 죽음을 통과했으면 이거는 사람으로서 생각도 못한 겁니다. 사람의 생각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만 생각해요.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인간들은 모르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모겠다고 일관해요.
그런데 그들은 그 모르겠다 하는 그것을 미리 알아버린 거예요. 죽음을 통과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구약의 사람들은 뭐냐? 이렇게 백성들은 미리 죽음을 통과했잖아요. 그러면 구약 사람들은 뭐를 모르느냐 하면은 왜 이렇게 우리가 물속에 들어가야 되느냐? 왜 굳이 죽음 속에 미리 죽음을 경험해야 되느냐, 그 이유에 대해서 구약 사람들은 몰랐던 겁니다.
그런데 오늘 시작하는 이 본문, 이거 오늘 이거 합니다. 예수님이 살아났어요. 아까 봤던 그 그림 있죠. 이거 물속에 통과하는 거 물속에 통과하는 그 죽음에 대한 체험, 왜 우리로 하여금 멀쩡한 길 놔두고 아스팔트 길 놔두고 왜 우리가 죽음 속 물속에까지 일부러 기어 들어가느냐? 물고기도 아닌데 왜 들어가야 되는가? 그것은 너를 구원함이 아니고 너를 살림이 아니에요. 장차 오실 우리의 새로운 조상,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 것을 알리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속으로 들어가야 되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왜 군에 가야 되느냐? 군대가 이 세상이 얼마나 지옥인가를 집약해놓은 것이 군대거든요. 그걸 의도적으로 겪어봐야 되는 거예요. 그 속에서 우리가 살았구나가 아니라 우리가 죽어 마땅하구나를 느끼는 거예요. 우리가 살았다가 아니라 우리가 죽어 마땅함을 경험케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우리 예수님이 인간이 있던 죄 속으로 들어오시는 겁니다. 죄속에 오셔가지고 계속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과 공통점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다 마찰이고 충돌이죠. 그래서 이사야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싫어버린 바 되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거예요. 왜 사람들이 예수님을 싫어하느냐 하면은 예수님이 계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본인이 만들지를 않았어요. 수능 본인이 출제했습니까? 아니지요. 내 인생을 내가 출제해서 내가 끌고 갑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그때그때 주어지는 상황 따라서 적응할 뿐이죠. 적응할 뿐이죠.
코끼리한테 물어보세요. 당신은 왜 코가 깁니까? 물어보면 코끼리가 내가 살아온 환경과 DNA가 이 코가 길게 해서 그렇다. 그래서 이건 내가 코가 긴 것은 내 탓이 아니고 환경과 조상에서 물려받은 그 유전자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내 탓이 아니에요. 앞으로 여러분 탓 하지 마세요. 오늘 부로 절대 내 탓 하지 마세요. 이거는 누구를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죄 속에 들어와서 시련을 수모를 당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 성도들로 하여금 이런 인생 고생을 겪게 하시는 거예요. 영광인 줄 알아라 이 단어, 그때 적당한 단어가 영광인 줄 아셔야 돼요.
죄 속에 들어왔을 때에, 다시 말씀드립니다. 인간들은 자기가 계시를 만들지 않았어요. 계시를 만들지 않으니까 입만 띠고 행동하는 건 사기입니다. 전부 다. 왜? 진리가 아니니까 사기 아닙니까? 거짓말한 이유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진리는 예수님이 진리예요. 인간은 진리를 모릅니다. 진리를 모르는 행동, 진리를 모르는 태도, 코에서 콧물 나와도 진리를 모르는 콧물, 안경 써도 진리를 모르는 안경, 인간의 과학과 철학과 이 모든 사회를 움직이는 그러한 사회적인 사고방식과 기성세대에 서니깐 전부 다 진리가 아니에요. 이 땅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진리가 없는데 진리를 계속 유포시켰지요.
중국 남쪽에 보면 식당에 수타면이 그렇게 유명하답니다. 수타면. 계속 갈라지고 갈라지고. 인생 인간 세계는 수타면 같아요. 한번 칠 때마다 그 거짓말이 거짓말을 새끼를 치고 새끼를 치고 계속 새끼를 치는 거 나오는 거예요. 수학에서 이야기합니다. 7 곱하기 5는 35라고. 거짓말입니다. 7 곱하기 5가 35 하는 그 사실이 예수님을 죽이게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게 진리가 아닌데 그게 진리라고 또 집어넣어요. 그 집어넣은 진리라고 옳다고 동의하고 다들 동의하지? 그지? 이걸 수학에서 공리라 합니다. 다 집어넣고 그 집어넣은 것이 집합체가 뭐냐? 인간의 문명의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겁니다. 그 원동력에 예수님이 방해된다고 죽여 버린 거예요.
인간이 예수님의 죽음에 관여되지 않은 인간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죽였던 양아치, 오야봉은 아니고 양아치. 오야봉은 악마가 오야봉. 예수님께서는 기어이 또는 다른 말로 마침내 죽었습니다. 마침내. 마침내 죽었습니다. 여기 울고 있잖아요. 사람들 우는데, 울면 안 돼요. 울 자격이 없어요. 인간들은 지금 자기가 운다는 것은 아직도 자기한테 미련이 있다는 거예요. 울 자격도 없어요. 예수님이 그냥 죽은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죄인이 운다고 의인 되는 게 아닙니다. 인간 세계에서는 잘못했으니까 울면, 그래 용서해 줄 게, 있잖아요.
하늘나라에는 하늘나라의 용서라는 것은 예수님이 아버지한테 아버지로부터 저주에서 풀려난 그것이 용서로 주어지는 거예요. 잘못했다는 고백을 근거해서 용서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과 아버지의 계약에 의해서 나는 너를 버렸지만 너를 버린 너를 다시 건져내겠다는 것이 용서 안에 내용 그 온전한 100% 그것만 다 그것만 완전히 꽉 들어서 우리에게 사함으로 오는 거예요. 왜 그래야 되느냐? 그래야 우리가 악마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죽고 부활했잖아요. 이거에 대해서는 악마가 거기에 대해서는 악마가 영향력을 행사 못해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죽음에서 건져냈다는 것은 악마의 영향력에서 벗어났다는 거예요. 더 이상 악마가 어떻게 손댈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잘못됐습니다. 훌쩍거리고 죽어버리면 우리가 잘못됐다고 용서를 빌면 용서 비는 이것은 뭐냐 하면 어디 영향력 안에 있느냐 하면 악마의
지배 안에 있는 행동이에요. 악마의 지배 하는 행동은 악마가 용서해줘요. 그래 내가 너희를 사하노라 이래가지고. 그러면 또 기분 좋아가지고 난 구원받았어. 이러고 있다고. 악마는 놀고 있네. 니 그래도 내 품에서 못 벗어났어. 이렇게 되는 겁니다.
온전한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심 말고 일체 인간의 요소가 단 하나도 들어가면 안 돼요. 그래서 이 철저함, 철저함 때문에 예수님은 죽은 척을 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죽어버렸어요. 죽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한번 보세요. 예수님이 죽어서 이제 무덤에 들어갑니다. 들어갔을 때에 이까지 예수님이 무덤에 들어간 요기까지가 인간이 따라올 수 있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이 있는 그게 여기 죽음까지예요. 죽고 무덤을 만들었잖아요. 예수님이 죽고 아리마데 요셉의 무덤에다가 묻히는 거, 이거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끝입니다. 그다음부터는 인간은 손 못 댑니다. 이 말은 어떤 인간도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 미리 예상하거나 기대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의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뭔가 노리면 안 돼요. 그거는 내가 우리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죽고 난 뒤의 처분은 우리 소관이 아니에요. 저도 여러분 마찬가지예요. 죽고 난 뒤에.
그러면 죽기 전에 미리 어떻게 하면 안 되겠습니까? 죽기 전에는 이미 우리가 아직 안 죽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안 받습니다. 그럼 어쩌라고? 그러면! 죽기 전에 하는 것은 안 받고 죽고 난 뒤에 처분 받고 그러면 그 걱정은 혼자 옴팡 내가 다 지는데. 죽고 난 뒤에 지옥 가면 걱정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되지요. 걱정은 혼자 다 하고 죽고 난 뒤에 걱정된다고 뭐 하려고 하면 하지 마라 하고. 그럼 죽은 난 뒤에 진짜 지옥 가버리면 나만 손해고. 그럼 이거 뭐 어쩌라고?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그 다음에 이야기가 됩니다. 예수님 무덤을 군사 두 명이 지켰습니다. 레고 같이 두 명이 지켰는데 이게 지킨 게 이게 허수아비 같은 거예요. 아무 소용이 없어요. 왜냐하면 살아 있잖아. 살아있는 인간은 예수님의 죽음 그 이후에 조치에 대해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 못해요. 인간이 귀신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귀신을 천사나 귀신을 진공청소기 가지고 빨아 당기지 못해요. 고스트 바스트가 안 됩니다. 옛날에 그런 영화가 있었어요. 코스트 바스트 음악 나오면서. 귀신 잡을 때 고스트 바스트 막 나오면서 막 돌아 다니고. 이게 안 됩니다.
가보니까 다만 인간은 뭘 할 뿐인가? 인간이 뭘 할 것인가? 인간은 주님은 없다. 주님은 더 이상 무덤 속에 있지 않다. 이걸 증거하는 능력이 성령을 받은 사람 특징입니다. 예수님은 인간과 같지 않았다. 예수님은 나랑 같지 않았다. 내 생각 같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게 되면 예수님의 활동 살아 있는 것은 인간의 권한 밖에 있습니다. 권한 밖에 있는 그분이 주님이 우리에게 영을 보내주면 성령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인간의 같은 인간의 권한 밖에 존재하는 성령의 지배에 의해서 그 사람도 똑같이 예수님처럼 자유를 얻게 됩니다. 사람들의 법이라든지 평가라든지 거기에서 거기서 평가 대상에 빠져버립니다. 안 됩니다. 마치 이미 죽은 것처럼. 성령 받은 사람은 이미 죽은 거예요. 그래서 또 군에 가 또 까불다가 다치지 말고. 성령 받은 사람은 인간의 어떤 평가와 관계없이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야! 나는 자유다.” 하죠. 자유가 아닙니다. 왜? 종입니다. 사람의 평가는 안 받지만 날마다 주님이 하시는 일에 따라가야 될, 그 증인들의 삶을 살게 돼요. 그러니까 인간은 구원 받기 전이나 후나 인간의 독자적인 자유는 없습니다. 이게 오늘 이야기예요. 예수님의 종 된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감사하는 거, 이게 이미 시작 벌써 시작된 천국 생활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는 내 스스로 내가 주인 노릇 하지 말고 주님이 주인이라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