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설교 / 잃어버린 양 / 221120
잃어버린 양 221120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우리 아기 첫 성경 이야기. 여러분 아기가 된다 했지요.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고 했지요. 오늘 이야기는 우리 아기들에게 저도 아기이고 아기들에게 함께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 잃어버린 양 한 마리.
잃어버린 양 한 마리는 오늘날 이 세상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굉장히 필요한 거예요. 자본주의 세상에는 많은 것이 진리고 큰 것이 진리고 그런 것이 진리로 통하는데 이 잃어버린 양 한 마리라는 것은 백 마리 가운데서 기껏 딱 한 마리 양을 잃어버렸어요. 백 마리 양 중에서 먼저 여러분께 묻고 싶은 것은 백 마리 양 중에서 99마리에 여러분 속하고 싶어요, 아니면 잃어버린 한 마리에 속하고 싶습니까? 이 세상에서는 다수가 진리이기 때문에 한 마리 양이 되기 싫어요. 구십 아홉 마리라는 그 군중 안에서 내가 다수가 진리이기 때문에 다수가 많은 사람이 인정하는 게 진리이기 때문에 그게 여론이거든요. 그게 다수결 민주주의 투표의 원리입니다. 다수결로 해서 투표해서 대통령 뽑는 거예요. 다수가 옳은 쪽이라고 바른 쪽이라고 생각하고 소수는 틀린 쪽으로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속한다면 여러분들이 양이 99 마리 있고 한 마리가 있다면 “니 골라봐. 골라봐. 니 어느 쪽이야?” 하면 한 마리에 갈 사람 없어요. 구십 아홉 마리에 가가지고 나도 같이 있고 싶었었어 해가지고 쓱 끼는 거예요. 저 한 마리 완전 왕따인데 왕따를 누가 좋아합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럴 줄 알았어요. 인간 세계가 그렇게 나갈 줄 알았다는 거예요. 인간 세계는 뭐냐? 인간들끼리 지혜를 모아서 살아가는 세계, 이게 인간의 세계예요. 인간들끼리.
하나님을 생각해도 인간들끼리 생각하는 하나님을 집대성해서 그걸 모아서 “그래. 그걸 하나님으로 생각하자.”라고 정해버린 겁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하면 자비로운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우수한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진리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전부 다 사람들은 진짜 하나님이라고 다 알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그 인간들이 그런 하나님을 알고 있는 인간들을 위해서 잃어버린 하나님, 오히려 배척받은 하나님, 밉상 받은 하나님, 쫓겨난 하나님, 그 인간들 속에 죽어버린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라면 여러분 어느 쪽에 속합니까? 99 쪽에 속하겠어요, 한 마리에 속하겠습니까?
이것은 아동들 초등학교 아동들한테 한번 생각해보면 돼요. 학교 선생님들이 한 오십 명 되는데 선생님들이 운동장에 나와 있어요. 근데 49명의 선생님은 저쪽에 있고 한 선생님은 벌벌 떨면서 불쌍한 모습으로 한 선생님은 저 외진 데 있어요. 학생들을 불러가지고 “야 너 49 명이 있는 선생님들 하고 같이 갈래, 한 마리 불쌍하게 떨고 있는 저 선생님들 갈래?” 하면 어느 쪽애 갑니까? 사십 아홉 명이 있는 선생님들한테 죽 가겠지요. 그러면 “아이고. 내가 오늘 잘 키워 줄게.” 하겠지요. 그러면 만약에 한 사람의 선생님 자리에 오게 되면 “니가 무슨 정신으로 니한테 오냐? 니 왜 와? 니 나한테 오면 니 큰일 나. 니 밉상 받아.” 이러한 세상인 것을 우리 하나님은 뻔히 다 아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겁니다. 끄집어냈는데 양을 치는데 그러나 목자 생각은 뭐냐 하면은 목자 입장에서는 분명히 양이 백 마리인데 양 이쁘죠. 토실토실하게 이쁜데 양이 한 마리가 없어요. 없으니까 이 목자 입장에서는 99마리는 안중에도 없어요. 99마리 있었나 기억도 안 나고 오로지 뭐 하나 내 양이 잃어버렸다는 것만 생각하는 거예요.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양이죠.
그러면 여기서 뭐냐? 이 목자가 예수님인데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이냐? 멀쩡한 양은 찾지도 않는 분.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 잃어버린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강조하는 목자. “너 잃어버렸어. 너 힘으로 돌아오지를 못했어. 너 힘으로 천국 갈 수 없었어. 그런 양이었었어. 내가 잃어버린 걸 알고 내가 너를 찾아내지 아니하면 너는 지옥에 가야 했었어.” 그 점을 강조하고 그걸 계속 남기고 싶은 그러한 목자.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상상도 못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인간들은 하나님에게 잃어버리기 싫어요.
양은 잃어버렸지만 잃어버린 양을 찾아야 되는데 인간은 안 잃어버리고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나오고 싶은 거예요. 잃어버린 잃어버렸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해서 못 견디는 거예요. 인간은. 뭐든지 내가 알아서 내가 잘합니다. 이러고 싶은 거지 잃어버리는 걸 싫어하는 거예요. 시험을 치는데 낙제 낙제 낙제 너 낙제야 했다 이 말이에요. 다른 사람은 나는 합격이다. 패스 이랬다 말이죠. 니는 낙제야. 선생님이 낙제라고 딱 해놓고 너는 빵점, 낙제. 끝났어. 짐싸가지고 집에 가. 이 학교 못 다녀. 해놓고 집에 가니까 집에 가 있거라. 내가 다시 갈게. 그래서 선생님은 “나는 실은 잃어버린 것만 전문으로 뽑아내는 선생님이거든. 낙제생만 뽑아내는 선생님. 니가 낙제된 것을 이 시점에서 니가 좋아, 싫어?” “좋아.” “좋아? 됐어.” 그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잃어버린 거, 구십 아홉 마리를 놔두고 오직 목자 생각은 잃어버린 걸 찾아야 돼. 잃어버린 걸 찾아야 돼. 무조건 잃어버린 걸 찾아야 돼. 지옥에 가서라도 내가 끄집어낼 거야. 내 피를 흘려서라도 잃어버린 걸 찾아 낼 거야. 그래서 가자.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그래서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오죠. 산 넘고 물 건너서 바다 건너서. 보세요. 산 넘잖아요.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서 지금 99마리 양이 뭐 하고 있는지 그런 건 생각도 안 해. 왜? 그들은 잃어버리지 않았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을 성취하러 오신 목자는 건너서 보니까 저기 양이 한 마리 있네요. 이거 여기서 지금 안고 있는데 이 그림은. 실제로 성경에 보면 안고 있는 것이 아니고 어깨에 메고 등 태운다 하죠. 어깨에 메고 자랑스러워서 어깨에 메고 오는 거예요.
누구 보여주려고? 잃어버린 적이 없는 구십 아홉 마리 양에게 목자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해서 새겨주기 위해서 잃어버린 양을 어깨에 메고 오는 거예요. 그러면 잃어버린 양은 혼자 살아요? 누구 어깨 위에 있습니까? 주님 목자의 어깨에 함께 있는 거예요. 잃어버린 양이 “아이고. 예수님 힘들죠? 이제부터 제가 알아서 혼자 갈게요.” 이런 거 없어요. 잃어버린 양은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있어줘야 그 잃어버림의 그 가치가 살아나는 거예요.
구약의 이 목자에 대해서 구약 성경의 시편 23편을 제가 설명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시편 23편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예요. 내 자체로서는 부족함이 있다 없다 따지지 마라. 너를 인도하는 목자가 부족함이 없으면 너도 부족함이 없는 거예요. 너도. 낙제를 하든 뭘 하든 우리 목자를 보고 나의 가치가 정해지는 것이지 나 자체를 두고 가치가 정해지는 게 아닙니다. 목자를 보고 정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목자 떨어지면 안 돼요.
그리고 그분이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데 그 다음이 중요해요. 그 다음이 우리가 생각하는 목자와는 달라요. 뭐냐 하면 내 영혼을 소생시켜주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한다. 이것은 뭐냐 하면 이 잃어버린 양이 진짜 하나님이 받으시는 의라는 걸 도통 몰라요. 그리고 하나님이 누군지도 몰라요. 다만 목자가 와서 나를 안아주니까 목자 가는 대로 가는데 그 가는 가운데서 우리는 뭐를 포기해야 되느냐? 내 이름을 포기해야 됩니다. 나를 위해 내 명예를 위해서 나의 우수함을 위해서 내가 대단함을 위해서 하는 그것을 죽 가면서 주님의 목자에 대단함 우리 주님의 대단함으로 바뀌어져야 돼요. 바뀌는데 잘 바뀔까요, 안 바뀔까요? 안 바뀌죠.
그래서 4절에 나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의 지팡이 막대기 가지고 적들을 치는 막대기도 되지만 자기 양을 “어이! 일로와! 이리 와!” 주께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목자가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니까 그 다음에 뭐가 보이느냐? 목자가 와서 우리를 인도하니까 뭔가 친구들하고 떨어져 가고 친구하고 헤어지고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거예요. 보니까 그들이 뭐냐? 주님의 원수들이었어요.
그래서 그 뒤에 5절에 보면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큰 잔칫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를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더 안 주셔도 되는데 이런 뜻이죠. 아이고 이거 너무 과한데요. 주님. 과하게 느껴지는 거 그런데 그걸 뭐냐? 원수들 목자 없는 인간들의 삭막함과 대비해서 이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들은 자기 혼자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인데 우리는 목자의 힘으로 늘 이렇게 이끄심을 받으니까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 잔이 어디까지 넘치는가? 마지막에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어떤 한순간 11월 20일 11월 21일 11월 20일 카타르 월드컵 하든 말든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지하심이 어디 가나 항상 함께 있으니 골인 지점 마지막 골인 지점이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목자가 자기 집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거예요. 자기 집으로.
여러분 친한 친구가 친한 친구의 엄마가 제일 기분 좋은 말이 뭐냐? “얘야. 니 내 아들 친구잖아. 그러면 그냥 가지 말고 내가 저녁 차려줄 테니까 우리 집에 와서 저녁 먹을래?” 그럴 때 벌써 그 부모한테 인정받는 거예요. 나중에 여러분들이 나이에 많아가지고 만약에 남자나 여자 이렇게 새로운 친구 할 때에 “저 아가씨 누군데 함부로 우리 집에?” 이거 하고 “얘 누구고? 니 좋아하는 여자 아가씨가? 하여튼 들어오라 해. 니 오늘 우리 집에서 저녁 먹고 가라.” 하면 아들 입장에서는 아빠 엄마가 날 인정해주는구나 이렇게 하잖아요.
주께서 목자를 보고 우리를 인도하니까 지 잘난 척 하지 말고 우리 목자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우리를 거칠더라도 목자와 함께라면 두려워하지 마시고 이 길로 가야 영생의 길이 있구나 알아서 우리를 인도하시는구나 그렇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혼자 살지 말고 목자가 곁에 있어서 우리를 잃어버린 양으로 취급해 준 그 자체가 행운이고 기적인 것을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