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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21104a 울산강의-역대기상(15강) 13장 2절 : 도래와 미래자유게시판역대상

20221104a 울산강의-역대기상(15강) 13장 2절 : 도래와 미래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역대상 15장 1절, “다윗이 다윗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궐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위하여 장막을 치고 가로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를 택하사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영원히 저를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하고 이스라엘 온 무리를 예루살렘으로 모으고 여호와의 궤를 그 예비한 곳으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아론 자손과 레위 사람을 모으니 그핫 자손 중에 족장 우리엘과 그 형제 일백 이십인이요” 1절부터 5절까지 나와 있지요.

다윗이 본인이 해야 될 일이 무엇인가 분명히 합니다. 그것은 모든 백성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이에요. 모으기 위해서는 택한 자리가 마련돼 있어야 되고, 그 택한 자리는 2절에 보면, 하나님의 궤를 모신 곳에 모든 사람을 다 모읍니다. 언약궤지요. 언약궤의 단일성. 단일성이란 오직 하나. 단일성에 이스라엘의 전부가 여기에 종속되게 하는 게 다윗이 자기의 사명이라 돼 있습니다. 언약궤 하나의 단일성입니다. 언약궤 하나에 다 모든 사람을 종속되게 하는 거예요.

이렇게 되게 되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은 동일한 처지에 있다. 어느 앞에서? 언약궤 앞에서 언약궤가 완성되는 건 십자가지요. 십자가 앞에서 모든 사람은 동일한 처지에 있다. 동일한 처지에 있다는 말은 무엇을 용납하지 않느냐? 비교, 경쟁 이것을 일체 용납 안 합니다. 언약궤가. 동일한 처지에 있기 때문에 너는 나보다 낫고 나는 너보다 낫다는 게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비교, 경쟁이 없으면 여기서 뭐가 없어지느냐 하면 행복과 불행이 없어져요. 왜냐하면 행복과 불행은 어디서 비롯되느냐 하면 승자냐, 패배자냐 이걸로 승자 되면 행복이고 패배자는 불행이 되거든요. 그러나 승자, 패자 되려면 모든 사람은 경쟁을 해줘야 되잖아요. 한쪽은 이기고 한쪽은 지고가 되는데 모든 사람은 언약궤 앞에서 동일한 처지에 있지요. 동일한 처지에 있다면 누가 누구를 부러워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부러워할 필요가 없지요. 모든 부럽다는 것은 환상에서 나왔고요. 이 환상은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거예요.

이태원에 십만 명 모인 젊은 사람들, 압사 직전까지 광란의 파티를 즐겼습니다. 광란의 파티를 즐길 때 그들은 뭘 느꼈느냐 하면 행복을 느꼈지요. 행복이 죽 갈 줄 알았지요. 행복, 행복, 행복 다음에 행복, 행복 다음에 행복, 행복할 줄 알았지요. 압사되고 난 뒤에 완전히 엉망 되었습니다. 인간이 왜 행복하냐? 또 이야기할게요. 돌아서질 말아야 되는데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니까.

행복한 것은 승자의 기분에 도취돼 있어요. 나, 얼추 이 정도 됐으니까 나는 승자라고 스스로 자기 위로해도 되지, 라는 승자의 기쁨에 빠져있는 거예요. 패배자는 승자의 맛을 보기 위해서라도, 불행한 자가 왜 불행하냐 하면 불행에서 벗어나려 하기 때문에 불행한 거예요. 이게 무슨 이상한 소리 같지만 맞는 말입니다. 자기가 불행한 이유가 불행해서 불행이 아니고 행복했던 그 시절과 비교가 되기 때문에 불행한 거예요. 아프리카는 추리닝만 입어도 중산층이에요. 추리닝만 입어도 중산층이라니까요.

지금 성경을 시간 가기 전에, 우리 인생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것부터 알려드릴게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내 인생을 내가 처리하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뭐냐? 내 인생을 내가 처리하는 거예요. 내 인생을 내가 처리하니까 여기서 뭐가 생기느냐 하면 잘되든 못 되든 불안해요. 계속 불안해요. 불안하니까 누굴 찾느냐 하면 주님 찾습니다. 주님을 찾는데 불안해서 주님을 찾으면 이게 우상이에요.

출발점을 내 인생을 내가 처리하는 것은 이걸 근원적으로 이렇게 살지 않으려고 해서가 아니라 내 인생을 내가 처리하는 것을 유지하면서 도와달라고 주님을 찾아요. 그러면 이거는 우상이 되는 겁니다. 근본 문제가 뭐냐 하면 내 인생을 내가 처리한다. 여기 ‘내가’ 몇 개 들어가요? 내 인생을, 그다음에 뭡니까? 내가 처리하려고 하지요.

그중에 결정적으로 사단 난 게 뭐냐 하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겁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따먹을 때 기걸 들어서 따먹었습니까? 먹을 게 없어서 배가 고파서 환장해서 선악과 과일을 따먹었어요? “아이고, 배고파라. 먹을 것 없나?” 이래서 선악과 따먹었습니까? 선악과 따먹을 때 유혹받아서 따먹었어요. 그 유혹자가 누구냐 하면 뱀입니다.

주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따먹지 말라는 말은, 인간아 너는 뱀이 아니란 뜻이에요. 너는 마귀가 아니란 뜻이에요. 인간은 인간다워야 되지 뱀다우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뱀이, 뱀 속의 마귀가 인간으로 하여금 불안을 조성하는 거예요. 네가 신이 아니잖아. 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왜 놓쳐, 이렇게 된 거예요. 그래서 따먹은 거예요.

그 핼러윈 축제할 때 배고파서 했습니까? 어디 빵 주워 먹으려고 그런 것 했습니까? 아니지요. 배불러서 했지요. 배고파서 축제 간 게 아니고 배불러서 갔지요. 거기 갈 만 한, 술 먹을 만 한 돈 있고 가면 뒤집어쓸 만 한 돈 있어서 한 거예요. 그러니까 뭔가 여유 있고 살만 하다는 것이 결코 행복이 아닙니다. 그 자체가 유혹이에요.

가장 큰 유혹은 뭐냐? 내가 승자로 승리자로 자처하는 거예요. 이게 악마가 아담에게 유혹한 게 그거에요. 내가 승리자로 자처하고 싶은 이유가, 내 인생을 내가 처리하고 싶은데 목표가 있어요. 목표가 뭐냐 하면 나 말고 모든 것, 나 말고 모든 것 하면 인간도, 짐승도 포함되지만 궁극적으로 누구도 포함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대상으로 하나님마저 이기려하는 거예요. 내가 최고의 승리가 되기 위해서 인간은 자기를 처리하려고 하는 겁니다. 매 순간이 불안하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제시한 게 뭐냐 하면 여러분 답변해보세요. 오늘 역대상 15장에서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이 제시한 건 뭡니까? 언약궤지요. 언약궤의 근본적인 것은 이거에요. 이 세상에 나 있잖아요. 이 세상에 나 말도 또 있는 게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아침에 눈만 뜨면 내 인생을 내가 처리하려고 거기에 완전히 빠져있는데 성경은 뭐냐? 너 말고, 너 말고 따로 있는 게 있다는 겁니다. 그게 언약궤라는 겁니다.

내가 있어버리면 나는 나한테 종속돼요. 그런데 언약궤가 있어버리면, 아까 언약궤 앞에서 모든 인간은 어떤 처지에 있다고 했어요? 동일하지요. 동일한 처지라면 경쟁이라든지 승부라든지 이게 없다 했지요. 동일한 처지니까. 승부가 없고 경쟁이 없으면 뭐가 없습니까? 나는 승자, 패배자가 성립이 안 되지요. 그러면 나는 행복하다, 불행하다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니까요. 저는 불행하고 나는 행복하다 이게 안 돼요. 비교할 이유가 없다고요. 동일한 처지니까.

여름 지나고 이 계절이 뭐가 되지요? 가을이 되지요. 누가 가을 오라고 고사지낸 적 있습니까, 가을 오라고 뇌물 준 적이 있습니까? 가을은 그냥 왔지요. 언약궤도 그냥 온 거예요. 가을이 오는 것을 우리가 광화문 데모한다고 가을이 안 오는 게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주신 언약궤가 우리가 데모한다고, 언약궤 저리 가, 언약궤 없어져 한다고 언약궤 물러가지 않습니다. 가을단풍 보겠다고 팔공산으로 차가 그렇게 밀리면서 언약궤 듣고 싶다고 오진 않아요.

이런 노래가 있어요. 찬바람이 불면. 들어본 적 있어요? 안 들어봤으면 제가 한 소절 불러드릴까요? 찬바람이 누가 불라고 했습니까? 찬바람이 사람 말 들어요, 안 들어요? 일체 사람 말 안 듣지요. 하나님이 제시한 언약궤는 우리 인간에게 위기가 되는 이유가 뭐냐? 우리의 정신은 내 인생을 내가 처리하는 데 모든 정신을 거기에 다 쏠리는 데 내가 몰두하는 그 바깥으로 그냥 쳐들어온 거예요, 언약궤가.

그럼 결국 뭐와 경쟁 되겠어요? 언약궤가 나타났다와 내가 괜찮은 나로 나타나겠다는 것, 언약궤의 등장과 나의 등장이 성경 안에서 치열하게 다투게 되고 싸우게 되고 경쟁하게 되는 겁니다. 나는 나만 생각하고 싶은데 하나님께는 언약궤를 제시하면서 언약궤 앞에 다 모여, 이렇게 되는 거예요. 나는 내 거울 앞에 서고 싶은데 주님께서 거울 치워버리고 언약궤 앞에 서라는 거예요.

설 때에 마치 우리가 찬바람 앞에 서야 되고 찾아온 가을 앞에 우리의 결심과 선택과 결단 아무 상관없이 그냥 가을이 우리를 덮쳐버리죠. 어느새 가을 속에 우리가 놓여있어요. 이스라엘은 어느새 하나님의 언약궤 속에 놓여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시답지 않게 염려하고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근심해하는 것, 언약궤 앞에서 그게 과연 바른 태도인가 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언약궤가 없으면 내 인생을 내가 처리한다면 우리는 불안해서 교회 가서 기도하고 말씀 보고 주님 찾는다고 부산을 떨지요. “이 난관을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내 인생을 어떻게 수습하면 좋겠습니까?” 그걸 가을에게 찬바람에게 물어보지요. 그걸 찬바람에게 물으면 찬바람이 뭐라 하겠습니까? 너는 자연스럽질 못해. 찬바람은 자연스럽고 가을은 자연스러워.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 자연의 일부거든요. 자연의 일부라면 자연스럽게 휩쓸려야 마땅한데 우리는 뭐라고 독단적으로 자연 따로 자기 따로 떨어져 나와서 떨어져 나온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 땅에 유일한 마귀한테 더러운 성질 받아서 내가 최후의 승자가 되리라, 이런 자기만의 전쟁을 벌이고 있고요.

그래놓고는 “아이고, 힘들다. 스트레스 받는다.”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거예요. 뭔가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거예요. 그걸 비현실적인 것을 환상이라 하는 거예요. 나의 욕망이 악마적 욕망이 나로 하여금 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적 꿈속에 헤매고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겁니다.

자, 그러면 언약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하지요. 언약궤 안에 죽음이 들어있습니다. 죽음이 들어있는 이유는,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죽음이 승자가 된다는 뜻이에요. 우리는 안 죽으려고 어쨌든 살아남으려고 애쓰잖아요. 그 자체가 강력한 죽음 앞에서는 쓸데없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이 차이점을 여러분 아셔야 돼요.

미래와 도래의 차이점. 미래라 하는 것은 현재 여기에 아직 있지 않은 것, 미지의 것을 미래라 합니다. 미래는 아무도 구경 못했어요. 왜? 아직 현재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구경 못한 거예요. 미래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현재뿐이니까. 현재 그다음에 오는 것을 미래라 합니다. 맞지요? 이미 지나간 것을 뭐라 하지요? 과거지요.

그런데 도래라 하는 것은 미래가 미리 현재에 와버린 것을 도래라 합니다. 나중에 올 게 미리 와서 현재와 같이 섞이고 중첩된 거예요. 그러니까 도래가 하는 것은 미래가 현재에 개입되는 걸 말합니다. 삽입되는 것, 스며들어가는 것, 개입된 거예요. 도래의 대표적 경우가 성령. 성령을 보증금이라 이야기하죠. 여러분 아파트 살 때 보증금 주지요. 성령으로 보증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1장에 나옵니다(22절).

성령이 왔다는 것은 미래가 현재에, 내 인생을 내가 처리하려고 항상 불안에 떨면서 발작하고 있는데 미래에 이미 확정된 운명이 현재에 들어온 거예요. 어떻게 들어왔어요? 쑥 들어온 거예요. 확정된 미래가, 미래의 우리의 운명이 미래 가기도 전에 먼저 마중 오듯이 쑥 들어온 거예요. 일종에 지금의 나에 대한, 아까 나는 뭐한다 했습니까? 아침에 눈만 뜨면 내 인생을 내가 처리하는 것, 일종의 나에 대한 폭력이죠. 또는 전쟁선포, 쑥 들어온 거예요. 확정된 것.

우리는 미래에 뭐가 되려고 하잖아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남편이 미국 가있어서 겸사겸사 남편도 만나고 놀러가려고 짐 싸고 있는데 남편이 쑥, 방금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집에 온다고 그냥 쑥 온 거예요. 그러니까 아내가 하는 말이, “당신 이 시간에 여기 있으면 안 돼. 미국 가 있어. 내가 찾아갈게.” 왜? 당신 만난다는 핑계대고 놀러가게. 그랜드개년이나 놀러가게. 그런데 당신이 먼저 와버리면 무슨 꿈이 좌절되고 깨져버리니까? 내가 단단히 적금 들어서 미국 가려고 한 모든 것이 전부 다 아무짝도 소용없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은 뭐냐? 내 인생을 내가 하는데 나를 아무짝도 소용없는 존재로 만들어요. 왜 그러냐 하면 내 인생은 내가 처리하는 데 내 영, 영이란 내 마음입니다. 내 마음으로 그렇게 내 인생을 괜찮게 승리자로 절대자로 최고의 행복한 자로 만들도록 계획하고 싶은 내 마음이 있는데 확정된 미래의 주님의 마음이 내 마음을 아무짝도 소용없는 마음으로 처리해버린 거예요. 우리의 마음 씀씀이, 정성, 완벽에 이르는 태도, 내가 흠 없는 자로 살고 싶은 그러한 욕구 이걸 아무짝도 소용없게 만드는 거예요. 쓸데없이 그런 짓 왜 하느냐?

사도행전의 이방인들이 율법을 몰라요.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열심히 율법을 가르쳤어요. 우리 하는 대로 해야 메시아 만날 수 있다고. 유대인들은 율법에 제시하는 게 두 가지였습니다. 할례 행하고 안식일 지키고. 두 가지 핵심은 기본으로 하고 그다음에 율법의 조항들을 여호와 섬기라고 열심히 했는데 그들에게 도리어 누가 도래했느냐 하면 성령이 와버렸어요.

성령 오면 성령 주시는 분이 계실 게 아니겠습니까? 누가 나한테 뭐가 왔다는 것은, 택배가 왔다는 것은 보낸 자가 있을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성령은 현재 내가 계획한 것과는 완전히 생각도 못한 거예요. 현재 우리가 계획한 것은 미래 계획이지 도래 계획이 아닙니다. 내가 현재 이러니까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미래에 행복할 것이라는 그걸 현재에 계획한다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라 하는 것은 현재와 연속돼 있어요. 끊어지지 않고 연속돼 있다고요. 그런데 성령이 와버리면, 성령은 무슨 영이냐 하면 예수님의 영이고요,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환대 받고 돌아가셨습니까, 밉상 받고 돌아가셨어요? 저리 가, 하고 밀쳐서 돌아가셨잖아요. 모든 인간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서 돌아가셨거든요. 그 모든 인간 속에 누가 포함돼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포함돼 있잖아요.

모든 상대와 끊어진 상태, 거기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그냥 쑥 우리한테 도래한 거예요. 미래가 아니고. 미래가 쑥 들어와 버리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뭐야 이 기분? 여기서 내 인생이 기분 좋게 끝장나네.” 끝장나는 데 기분이 아주 좋게 끝장나는 거예요. 시험 치고 있는데 “시험 치는 것 그만, 스톱. 합격자 발표하겠습니다.” 이것과 똑같은 거예요. 이름 쓰고 있는데 벌써 합격자 발표나 버렸어요. 이런 황당?

그래서 복음은 들을 귀 있는 자만 듣는 거예요. 성령 받은 자만 복음이 납득이 돼요. 성령 안 받은 사람이 도래가 없고 미래가 있어요. 이렇게 신앙생활 잘 하고 바르게 하면 천국 넣어줄 것이라는 보험 서너 개 들어서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나 성령이 쓱 하고 와버리면 내 마음은 아무짝도 쓸데없다는 그런 큰 환희와 감격과 기쁨이 우리 안에 넘칩니다. 네가 이 세상에서 어디서 뭘 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일체 거기에 대해서는 묻지를 않겠다.

지금 제가 손가락으로 입을 막았지만 사실은 여러분 입을 다 막고 싶어. “쉿! 네 인생 조져놨으니까 쉿, 가만있어.” 조져놨다는 것은 내가 불행하다는 뜻이고, 불행은 뭐 했다? 패배했다는 뜻이거든요. 남한테만 패배한 게 아니에요. 내 계획대로 안 됐기 때문에 내가 나한테 패배한 거예요. 남한테 패배하면 희망이 있지만 나한테 패배하면 이건 좌절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러한 계획이 완전히 무산되는 거예요. 그건 쓸데없었던 시절에 있었던 한낱 추억이 돼버린 겁니다. 내가 노력해서 잘 되고자 한 것이 한낱 추억이에요. 주님의 것이 들어와 버렸습니다. 마치 찬바람이 불듯이, 마치 가을이 쓱 우리 한 가운데 낙엽지면서 가을이란 계절이 찾아오듯이 주님의 세계, 하늘나라가 우리한테 쓱 온 거예요.

세례요한이 물세례 주면서 언급한 게 뭐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와있다. 옆에 와있다. 어떻게 맞이합니까? 일단 물속에 들어가자. 물속에 들어가고 죽고 다시 태어나야 된다. 그게 물로써 죽고 다시 태어난다는 물로 이야기한 게 세례요한지만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죽고 천국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성령의 일을 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 외에는 불로써 완전히 지옥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 받지 않은 사람은, 세례요한은 아직도 미래요소가 강해요. 왜? 세례요한은 메시아가 아니라서 미래요소가 강한데 세례요한이 누구와 접점, 만나요. 세례요한이 누구와 만나느냐 물세례에서 누구와 만납니까? 예수님을 만나지요. 예수님은 미래가 아니고 그 미래가 현재가 돼버린 도래하신 분이에요. 메시아가 이미 왔어요.

이걸 수요일인가, 주일 낮에 설교를 한 것 같은데요. 세례요한이 엘리야로 왔잖아요. 사람들이 오실 미래의 엘리야를 주님은 뭐로 바꾸느냐 하면 미래의 엘리야는 세례요한이다. 하지만 지금의 엘리야는 누구냐? 예수님 본인입니다. 왜냐하면 미래의 엘리야는 물세례는 진짜 엘리야, 말라기의 엘리야는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로, 자식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두 가지 기능을 완수하시는 분은 진짜 엘리야인데 그 엘리야는 예수님 자신, 본인을 두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지금 이 순간 이미 와버렸어요. 방금 성령세례 이야기했잖아요. 예수님은 성령세례와 더불어 또 불세례를 주는 거예요. 그러면 성령세례 받아서 도래해서 이미 미래가 확정된 사람이 있는 반면에 성령세례 받지 않고 이미 불세례 받은 사람 있어요. 이미 성령세례 받은 사람도 있고 이미 불세례 받은 사람도 있어요.

이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 이 인간들은 지옥에 맞춰 살기 위해서 안간 힘을 쓰는 사람, 이게 특징이에요. 지옥에 맞춰 살기 위해서, 왜냐하면 불세례가 지옥이거든요. 어떻게 하든 지옥 가는 사람에 맞춰 살기 위해서 그냥 힘입니까, 어떤 힘입니까? 안간 힘을 쓰는 거예요.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거예요. 주일에 교회 오지 않고 어떻게 내 인생이 패배자 아니고, 불행한 자 아니고 내가 설정한 내 인생을 내가 처리하는 데 있어서 얼추 내 계획대로 맞춰보려고 안간 힘을 쓰는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한테는 세례라는 것은 관심도 없어요. 다시 말해서 내 인생 잘 풀리는 미래에는 관심 있는데 도래에는 전혀 관심 없어요. 도래를 전혀 몰라요. 이미 왔다는 사실을 몰라요. 이렇게 교회 다니고 예수 믿고 바르게 살면 천당 가겠지, 그렇게 미래만 생각하는 겁니다. 성령세례, 물세례로 인간은 두 종류로 나뉘잖아요.

세례요한의 물세례, 예수님의 성령세례, 불세례 이건 뭔 뜻이냐 하면 너는 예수님 앞에서 동일한 처지에 놓여있다 이 말입니다. 인간과 인간끼리 서로 실력을 겨루는 게 아니에요.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모든 것이고, 인간은 그 모든 것에 포함된 일부에 해당돼요. 모든 것은 예수님이 모든 것이에요. 모든 것에서 성령세례 받은 사람 나오고 그 나머지는 뭘 받습니까? 불세례 받고.

불세례 받은 특징이 뭐냐 하면 지옥인데, 그들은 지옥을 인정 안 하니까 그들이 말하는 세상살이죠. 세상살이에 맞춰 살려고 어떤 힘을 쓴다고요? 안간 힘을 써요. 왜? 눈에 보이는 세상이 자기에게 전부기 때문에. 더 쉽게 말해서 인간은 내가 전부에요. 그러나 성경은 누가 전부다? 예수님이 전부에요.

오늘 본몬 역대상 15장에선 뭐가 전부다? 언약궤가 전부에요. 하나님이 언약궤를 쑥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밀었고, 모든 사람은 언약궤 있는 장소에 다 모여서 동일한 처지에 입장에 놓여있는 겁니다.

그러면 성도는 동일한 처지에 있으니까 성도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모든 것에서 성령 받았기 때문에 성도는 모든 것의 일부가 돼요. 모든 것에서 삐져나온 모든 것을 이루는 하나의 개체가 되고 모든 것의 부속품이 된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머리가 있잖아요. 머리에는 머리카락 있잖아요. 그럼 뭐냐? 나는 머리카락 하나다 이 말이죠.

머리카락 하나기 때문에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머리카락이 어디에 종속된 속해 있는 머리카락입니까? 내 몸 전체에 속해 있는 거니까 내 몸이 만약에 전부라면 머리카락 하나도 뭐가 되느냐? 전부가 되는 거예요. 전부를 보여주는 일부가 돼요. 그렇다면 성도한테는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 성도의 목표가 뭐냐, 목적이 뭐냐, 성도는 왜 사는가? 이 모든 것은 미래가 아니고 도래에 의해서 확정됐습니다. 그거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으로 확정됐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고린도후서 5장, 이건 강의할 때마다 너무 이야기해서 식상하다 하면 어떠냐 하는 그런 생각 드는데 천 번을 불러 봐도 성도가 어떻게 사는가, 이 구절만큼 확실한 게 없어서 하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5장 15절에 보면,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벌써 성도의 삶의 이유, 목적, 확정됐지요. 제가 도래는 뭐라 했습니까? 이미 확정된 걸 주신다 했지요. 그러면 성도는 방금 고린도후서 5장 15절처럼 살려고 애써야 됩니까, 말아야 됩니까? 5초 후에 답변하겠습니다. 성도는 이제는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자기 위해서 죽었다 사신 주님을 위해서 살게 하심이라, 이 말씀을 실천에 옮겨야 됩니까, 말아야 됩니까? 1초, 2초, 3초, 4초, 5초. 이 말씀대로 살 필요가 없어요.

왜? 우리는 이 말씀이란 전부에 일부기 때문에. 말씀이 우리를 그렇게 기어이 만들어내십니다. 내가 사는 것을 작살나게 만들어버려요.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실생활 가운데서 늘 순간순간 느끼게 만들어요. 내가 나를 위해서 좀 살아볼까, 나의 잘남과 우수함을 자랑해볼까 해도 도래기 때문에 이미 주의 힘이 왔기 때문에 그런 나를 그냥 방치하지 않으시고 아주 작살을 내버리는 거예요.

작살을 내는 방법은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을 작살내는데 어떤 식으로 작살내는가? 너는 이미 죽었어, 라는 말로써 작살내요. 죽은 자가 죽은 너를 위해서 살 이유는 더는 없다는 겁니다. 이미 죽었잖아요. 네가 산 것은 주를 위해서 산다는 도래의 완전성에 입각해서 살고 있는 것이지 너를 위해서 살 것 같으면 주께서 너에게 찾아오지도 않았다는 거예요.

인간이 자기를 위해서 살려면 결국 이건 뭐냐 하면 주님이 찾아오지도 않은 거예요. 성령세례 받지도 않았거든요. 그럼 성령세례 안 받았으면 나머지 뭐예요? 불세례지요. 불세례 받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떻게 산다 했어요? 이 인간들은 지옥에 맞춰 살게 돼 있어요. 왜? 지옥에 가야 되니까. 지옥 사람 되려면 어쨌든 간에 지옥 가려고 안간 힘을 다 쓰는 사람이에요. 행복해야 되지요, 남한테 이겨야 되지요, 광란의 파티에 가야 되지요.

파티 가서 죽었다고 또 온 전체가 일주일 동안 애도기간 갖고. 이게 지옥이 아니고 뭡니까? 제가 설교 시간에 했지만 죽은 자가 죽은 자답게 한 거예요. 벌써 죽은 자가 그때 죽은 거예요. 무슨 사람에 존엄성이 있어요. 인간은 존엄성 없어요. 둘 중에 하나에요(성령세례 받은 자 또는 불세례 받은 자). 무슨 존엄성이 있어요.

인간은 자체적으로 전부 다가 될 수 없어요. 예수님이 전부 다지요. 인간 꼴에 같은 인간이라고 서로 협력해서 뭘 해보겠다고요? 미래에? 도래는 그게 아닙니다. 인간의 미래를 작살내버리고 도래에 오실 분은 뭐가 전부냐? 언약궤가 전부입니다. 가을이 오면~ 보세요, 가을이 오잖아요. 찬바람이 불면, 찬바람 불잖아요. 이게 인간들이 오라 해서 온 가을입니까, 불라 서 분 찬바람이에요? 그냥 오는 거예요.

가을이 오는 것을 말릴 수 없듯이 언약궤가 들어오는 것은 어느 인간도 말릴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은 언약궤는 실패하는 경우는 없다. 이 말은 뭔 뜻이냐 하면 압사로 죽이든지 연탄 캐서 죽이든지 결국은 다 죽이는데 실패함이 없다 또는 다 심판하는데 실패함이 없다. 이 사실을 미래가 아니고 미리 당겨서 알려주고 찾아오신 그것이 바로 성령세례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언약궤가 있는 그 내용이 미리 그들에게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좀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 같으면 제가 이렇게 했으니까 성경에 깊이 사고하는 사람은 그 모순과 갈등을 어떻게 나름대로 해결하도록 해봐야 돼요. 뭐냐 하면 십계명이 있잖아요. 십계명은 하라, 하지 말라는 명령, 지시조지요. 십계명 지켜야 됩니까, 언약궤 믿어야 됩니까? 어느 것이 우선입니까, 라는 질문, 그 질문이 의미 있게 다가와야 돼요.

십계명만 지키면 안 됩니까? 혹시 언약궤만 믿으면 안 됩니까? 언약궤도 믿고 십계명도 믿고 둘 다를 해야 됩니까? 둘 다를 한다는 것이 성립이 안 되지요. 하나님 쪽에서는 십계명과 언약궤를 같이 하나로 만들었거든요. 십계명이 언약궤 속에 들어있어요. 그냥 들어있는 게 아니고 인간의 죄로 인하여 깨진 채로 들어가 있어요.

물론 깨진 것 대신에 멀쩡한 것 만들어졌지만 깨졌다는 것, 이게 첫 번째 원판이 아니고 깨진 적이 있었다는 그러한 증거를 품은 그 돌 판이 언약궤 안에 들어옵니다. 왜냐하면 언약궤 뚜껑에 속죄의 피와 매치하기 위해서 만나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그 만나게 하는 것, 죄와 피의 만남에서 죄를 유발해야 되니까 죄를 유발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십계명.

그래서 십계명을 온전히 지킨다는 말은 십계명을 봐선 안 되고 십계명과 언약궤에 있는 그 피와 결합된 앞에 동일한 처지에서 설 때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더욱더 죄인 되게 하시는군요. 그 언약궤 뚜껑에 뿌려지는 피를 바라보면서 피 앞에서 율법을 다시금 해석해야 돼요. 하나님 주신 명령을 재해석해야 되는 거예요.

아하, 우리로 하여금 죄인 되게 하는 그 기능과 그걸 용서하는 기능과 이어지게 하는 그런 식으로 주께서는 그 일을 하시는구나. 그 일을 하시는 분의 이름을 하나님의 이름이라 하고요 언약궤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계시는 거예요. 언약궤라는 눈에 보이는 상자, 거기서 이뤄지는 제사 기능, 그리고 그 기능이 그 현장에 있으면서도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 그 현장에 계시는 거예요. 그분이 하나님의 이름이란 분이 그 현장에 같이 게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뭐가 보이느냐? 그냥 언약궤만 보이는 거예요.

보통 공장에서 물건 만들어내면 도매상에 가죠. 도매 다음에 소매상으로 가죠. 그런데 언약궤는 뭐냐 하면 소매로 시작해서 도매로 갑니다. 소매는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 도매는 이것이 레위인들, 그리고 어디로 가느냐? 공장으로 가요. 원천, 하나님의 이름이 계신 곳으로 가는 겁니다. 죄인들에게 죄를 수집해서 우리 하나님이 하셨던 일, 속죄, 사죄의 피 흘리는 장소까지 언약궤가 자기 백성을 당기고 있는 거예요. 언약궤는 뭐냐? 자석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9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그렇게 돼 있지요. 위에서 보면 언약궤가 뭐냐? 등대에요. 어두운 지옥 같은 캄캄한 세계, 하늘나라의 등대, 언약궤가 등대 쪽으로 자석으로 잡아당기는 거예요. 자기 백성을 쇠붙이를 자석으로 강하게 잡아당기듯이 언약궤로 잡아당겨서 언약궤가 있는 그 천국으로 인도하는 거예요. 이게 등대에요.

제가 노래 가사를 하나 적어왔는데 이것이 언약궤의 등대 기능과 어떤 유사성이 있는지 보세요.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비치면
한 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은희가 불렀던 노래가 건전가요에 해당되지요.

얼어붙은 달그림자, 이게 뭡니까? 이 세상 아닙니까. 은희가 들으면 웃겠다만 하여튼 내 마음대로 해석하면 되니까. 등대가 있는 이유가 거센 파도치고 방향을 잡지 못할 때에 뭔가 하나 반복적으로 회전하면서 유일하게 어두운 가운데서 불 비추는 것, 그게 뭐냐? 그게 언약궤가 있는 그 장소,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러니까 등대라면 성도는 뭐가 되겠어요? 등대지기.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언약궤라는 등대를 위해서 사는 확정된 사명과 임무를 받은 것을 감축 드립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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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7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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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