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양20221013a슥14장20절(죽음의 노예)-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스가랴

안양20221013a슥14장20절(죽음의 노예)-이 근호 목사

오늘은 스가랴 제일 마지막에 마지막 시간으로 합시다. 스가랴14장12절부터 보면,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은(이렇게 되어있지요. 이방민족입니다.)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들의 살이 썩으며 그들의 눈동자가 눈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들의 혀가 입 속에서 썩을 것이요” 그들이 잘못 건드렸다. 뭔가 그들이 들어서지 말아야 될 곳에 들어섰다. 그렇게 보시면 되는 겁니다. 의 영화에 보게 되면 고대인들이 보물을 영원히 감추고 보존하기 위해서 온갖 함정들을 다 파놓잖아요. 그것도 모르고 탐욕이 많은 고고학자나 그런 군인들이 함부로 들어서다가는 고대인들의 저주 위에 휘말려서 졸지에 해골이 되고,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거룩하지도 않은 게 왜 함부로 거룩한 곳에 들어섰느냐, 그렇게 되지요. 14장20절에 보면,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이렇게 스가랴가 끝납니다. 거룩이 거룩만 남는다. 거룩만 남고 속된 것은 하나님께서 존재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뜻인 겁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그 거룩 속에와 같은 성질의 거룩, 동질의 거룩이 안에 같이 공유될 때만 하나님과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민족은 뭐냐, 이방민족은 세속이지요. 더럽다. 이방인들은 더럽다로 규명되는데 이방인들은 자기가 더럽다는 사실을 전혀 인정 안 하고 있어요. 인정 못하겠다고 이리 나오는 겁니다.

어떤 어린애가 태어나면서 “엄마 나, 더러워”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 없지요. 더럽다, 깨끗하다, 하는 것은 그건 어릴 때는 부모가 교육해서 이야기해주는 겁니다. 손 흙 털고, 머리 감아야지. 손 씻고 밥 먹어야지. 일종의 어머니가 그 가정의 제사장이 되는 겁니다. 거룩함과 더러운 것. 거룩함과 더러움을 이야기함으로서 우리 가정에서는 흙 만진 손이랑 씻지 않은 신체가지고서는 우리 가정에서는 살 수 없다,를 계속해서 애한테 각인시키는 겁니다.

이 집안에서 살려면 깨끗해야 된다. 그 집안 나름대로 뭐가 되겠어요. 거룩이 되겠지요. 그런데 어린 애가 손을 안 씻었다. 어디 놀다가 초등학교2학년 애가 골목에서 놀다가 그냥 손도 안 씻고 밥을 먹었다. 그랬더니만 그 밥 먹는 순간 그 아이의 살이 썩으며, 눈동자가 눈구멍 속에서 썩으며, 혀가 입 속에서 썩으며, 그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안 일어나지요. 그러니까 부모가 애들한테 이야기한 거룩은 가짜다. 한계 있는 겁니다. 잘못된 거룩이에요. 옳지 않은 거룩이다. 가짜 거룩이지요. 온전하게 인간문제를 다 처리 못한 가짜인 겁니다.

자, 그 이유가 뭐냐, 공간문제에요. 땅 자체가 거룩한 땅인데 인간 더럽다. 그러니까 이 땅이 일시적으로서는 이방민족을 용납을 해가지고 멀쩡하게 살도록 해주지만 땅의 새로운 요소가 가미됩니다. 절기 요소가 가미되어버리면 땅 자체가 그 인간을 해골로 만들지요. 살이 썩으며 그들의 눈동자가 썩으며, 혀가 썩을 것이요, 이렇게 만드는 일이 작업이 움직이게 되어있습니다.

절기를 가지고 스가랴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절기가 뭐냐, 19절에 나옵니다. 누가 한 번 읽어볼까요. “애굽 사람이나 이방 나라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가 받을 벌이 그러하니라”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18절에 보면,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이리 되어있어요.

원래 초막절은 이스라엘 사람들만 알고 있는 절기인데, 그 절기를 이방민족들이 안 지켰다고 드디어 그 최후의 날이 다가오는 거예요. 그럼 스가랴에서 말하는 그 최후의 날, 사람들이 멸망해야 되고 썩어야 될 이유는 뭐냐, 딱 하나지요. 초막절 지켰느냐, 이걸 묻는 겁니다. 초막절을 안 지키면 저주 받게 되어있다는. 이건 이방민족한테는 상당히 황당하지요. 황당한 일입니다.

그 동시에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전달하는 바가 돼요. 이건 중요하니까 크게 써볼게요. ‘내 목숨과 바꿀만한 말이 아니거든 듣지 말라.’ 이걸 우리 현장에 적용하면, 내 목숨을 바꿀만한 말로 안 들리거든 성경 공부 참석하지 말라. 와 똑같아요. 취미나 오락이 되어서는 안돼요. 성경공부가. 학원의 수강생 같은 자세 같아서는 곤란합니다. 몰랐는데 하나 배웠다. 그 배운 거 왜 배웁니까? 내 목숨을 건재하기 위해서, 지켜내기 위해서.

그건 지금 나의 최후를 여전히 모르고 무지상태가 지속되는 거예요. 무지 상태가 지속되는 것밖에 안 돼요. 내 목숨을 내놔도 괜찮은 말을 들어야 이게 진정한 복이 아닙니까. 이게 자유거든요. 이게 자유다. 예를 들면 어느 것이 진정 나를 자유케하는가, 1번, 남편이 멀리서 돈 벌어온다. 2번, 주식 대박 났다. 3번, 애가 취직해가지고 곧 결혼해가지고 내 집에서 뺄 것 같다. 드디어 독립할 것 같다. 이거 무지 기쁜 소식이지요. 지가 돈 벌어서 결혼해서 이제는 자식이 부모 섬기게 되어 있다. 4번, 초막절을 알았다. 어느 것이 자유입니까.

주님께서 초막절을 들이대는 것은 초막절 안에 뭐가 있느냐 하면, 거룩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니가 진짜 거룩의 맛을 봤나?” 지금 이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초막절은 뭐냐, 초막절의 내용이 뭐길래 우리의 목숨 내놔라 할 그 정도로 자신감을 갖고 있느냐, “니 목숨 내. 가져 와! 가져 와! 내가 바꿔줄게. 니 목숨 가지고 있으면 나중에 썩어버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외칠 수 있는 내용이 그 초막절 안에 들어있거든요.

초막절 안에는 뭐가 들어있느냐 하면, 거룩과 함께 머물기. 거룩과 함께!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거룩한 땅과 함께 머물기! 거룩한 땅, 대지, 토지, sio2, 이 지면의 땅의 성분과 함께 머물기. 거룩한 장소 안에 들어와서 살기. 그렇게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초막절하는 행사가 딴 게 아니에요. 집 떠나서 텐트 생활하는 거예요. 집 떠나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갈 때에 이등병의 편지인가 그렇죠. 김광석 노래에 나오지요. 남자들은 그거 들으면 막 웁니다. 훈련받을 때 혹시 저 산등성 넘으면 고향 집이 보일까. 몸은 군에 왔는데 마음은 고향 집이 그리워서 발꿈치 들고 보는 거예요. 보초 서면서 언제 집에 가느냐, 달력에 가위표 마구 그어놓고 이렇게 하지요.

집 떠나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간다. 이건 죽음이에요. 왜냐하면 집은 단순히 내가 거주하는 곳이 아니고, 나의 나 됨을 형성시키는 장소거든요. 집이라는 게. 그 집에 누가 있는가, 아빠가 있고, 엄마가 있었다. 아빠가 있고, 엄마가 있는 것이 왜 나냐, 아빠 엄마의 훈계, 가르침, 아무것도 할 줄 모르게 내민 그분들의 돌봐주심. 빨래해줘, 밥해줘, 그래서 지금의 내가 됐다는 것. 그 뿌리, 나의 뿌리지요. 나의 뿌리와 결별, 이별한다는 것은 곧 나의 죽음을 의미하는 겁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 되고 난 뒤에 경험 해야 될 것은 자기와의 죽음이에요. 왜냐 아브람의 이름은 나는 집안의 어른이니까. 이 집안의 어른으로부터 자기가 돌아가셔야 돼요. 이 집안의 어른이 되어버리면 그건 약속이 아닙니다. 그건 육이지요. 혈육이에요. 혈육에서 영이 되려면 여기에 제3의 요소가 투입되어야 되는데 그게 약속이고, 그 약속을 위해서 천사3명이 찾아 방문했습니다.

내년 때 자식 생긴다, 거기까지만 이야기했지요. 아직 아브람은 살아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22장에서 그 자식을 나한테 바쳐라. 니 아들은 아브람 너를 고향으로 보지 않고, 니가 고향이 아니라 다른 데서 왔다는 것을 니가 표현해라. 니 아들을. 그럼 고향이 어디냐, 도로 가야지요. 자기 집으로. 자기 집이 어디인지, 하나님의 아들이지요. 이삭이.

그럼 아내 사라가 임신 안 한 상태에서 임신이 잠시 풀렸다가 임신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나를 철저하게 이용한 거죠. 거룩이 속됨을 경유해야 속됨을 심판할 수 있는 거룩으로 전환되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가 우리의 기존의 목숨도 그냥 목숨도 내놓을만한 이야기가 되는 거예요. 내 실존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합니까, 라는 마음 자세로서 성경 공부를 왔는데 주님께서 너의 그 더러움을 경유해서, 더러운 너 자신과 하나님이 준비한 그러한 너 자신의 결별을 언급하거든요.

이삭이 아버지와 헤어집니다. 헤어지게 되면 그 짧은 순간에 헤어지게 되면 아브람은 자기 육으로 남고, 이삭만 덜렁 약속으로 가지요. 그런데 그 남아있는 아버지마저 이삭 따라가려면 아브람이 이삭의 빈자리를 채워줄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새로운 제물을 하나님 쪽에서 제시해버립니다. 그게 양인데, 그 양의 내용은 사실은 양이 아니지요. 아들 이삭이지요. 방금 이삭이 있었던 자리에 양이 죽으니까. 바꿔치기한 두 개의 대상을 한 반석위에서 둘 다 다 보게 하는 거예요.

아들이다. 양이다, 양이다. 아들이다. 둘 다 동일하게 동일한 하나의 기표로서 기호로서 이 세상에 등장할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다. 그 하나로 말미암아 그 어린양 되신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거예요. “너야? 나야?” 묻는 거예요. 양단간의 각오를 묻는 겁니다. “계속 니로 실존 유지할래? 아니면 나로 갈아탈래?” 이리 묻는 거예요. “바꿔치기 할래?” 이리 묻는 겁니다. 그걸 로마서6장 같으면, “죄의 종이 될래? 의의 종이 될래?” 묻는 거와 똑같은 거예요. 그 뒤에 나오는 사도바울의 모든 복음적 표현들이 전부 다 같은 거예요. 전부 다. 기본 자체가.

절기는 뭐냐 하면, 절기는 땅과의 만남이에요. 절기가 유월절, 맥추절, 그 다음에 마지막 절기가 초막절이에요. 수장절이라 할 수 있고. 초막절이라 할 수 있는데. 수장절이라 하는 것은, “주님의 거져 주신 열매를 마음껏 만족스럽게 추수했습니다.” 라는 것을 수장절의 의미라면, 똑같은 날인데 그 수장절이 뭐냐 그 초막절이 되어버리면, “우리는 개털이었습니다.” 라는 뜻이에요. “우리가 과연 내가 이 땅에 거주 집을 나를 위한 거주 집을 살 자격이 안 됩니다.” 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이 텐트의 특징은 개인용이 아니고, 집단용 텐트라는 사실이에요. 집단용이에요. 이걸 잘 보여주는 성경 대목이 뭐냐,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 지금부터 여호수아를 해야 돼요. 절기를 지키는 것은 할 수 있어요.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절기 지키라고 해서 유월절 지키고, 맥추절 지키고, 텐트생활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지금도 유대인들이 할 때는 초막절 지켜요. 심지어 뉴저지에도 초막절 지키는 교회를 안다니까요. 가스펠로우쉽 교회. 하여튼 교회가 무슨 절기 지키겠다는 것은, ‘전부 다 교회가 돈이 많이 아쉽구나!’ 라고 보시면 해석이 끝나는 거예요. 특별 이벤트를 통해서 필요한 헌금을 확보하는 그런 방편이 되거든요. 원래 이벤트가 그런 거예요. 마트 이벤트도 마찬가지고.

초막절 지키는데 지금은 들판에 못가니까 도시니까 옥상에다가 텐트해놓고 대나무나 종려나무로 해가지고 베어오든지 빌려오든지 해가지고 걸쳐놓고 옛날에 광야 때 했던 우리가 약속의 땅에 오기 전에 고생, 고생했던 거 기념하자. 성경 말씀 읽으시고. 우리를 이렇게 함께하셔서 이제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천국에 오게 한 거 감사합니다. 이렇게 초막절 지키는 거예요. 초막절 지키면서 그 때 오면서 했던 겨우 겨우 먹던 끼니밖에 안 되는 음식들을 낮은 마음으로 서로 나누고 먹고 그렇게 지키는 거예요. 심지어 일주일 동안에는.

그러니까 일주일 뒤에 저희 집에 후딱 가면 되거든요. 저희 집에 가가지고 히타 틀어놓고 TV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절기 지켰다는 거죠. 하나의 하나님의 계시가 지금의 내 목숨과 바꿀만한 게 아니라, 내 목숨을 살찌울 만한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나의 더러움을 성경 지식이 와가지고 조금씩 조금씩 그것을 거룩으로 이렇게 변모시키기 위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된 게 절기가 되어버린 겁니다.

그런데 이 절기라는 것. 절기라는 것을 쉽게 말씀드리면, 이건 하나의 계절이거든요. 계절. 계절, 돈으로 살 수 있습니까? 안 되지요. 시장가서 이 가을 5Kg주세요. 가을 5Kg 얼마 합니까? 질문 자체가 안 되지요. 인간이 뭐든지 질문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은 질문 자체가 안 돼요. 왜 질문 자체가 안 되느냐 하면, 계절이 인간보다 범위가 더 크기 때문에 그래요. 인간이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은 그 돈으로 사는 물건이 인간의 의식보다 작고 부분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돈으로 구입이 가능한 거예요. 사가지고 내가 지금 마련되어있는 내 세계 속에 담아낼 수 있는데. 가을, 겨울, 봄, 여름 이 계절은 인간의 집에다가 바깥에는 눈이 오고 있는데, 봄으로 만들 수 있어요? 봄이다! 하고 반팔입고 돌아다니는 것은 그건 보일러 탓이지요. 보일러 온도 높여 놓아서 반팔입고 돌아다니는 거예요. 실제로 바깥에 나가면 겨울이지요.

계절 자체를 포괄적으로 변모를 못 시키잖아요. 그게 운명입니다. 그래서 내가 지난 낮 설교에 그런 거 했지요. 나보다 먼저 있음을 아는 것이 집사라고요. 나보다 먼저 누가 계신 것을 먼저 아는 것. 이건 돈으로 헌금으로, 전도, 선교로서, 그 분을 내 소유로 만들 수 없는 거예요. 그걸 아는 걸 뭐라고 했다고요? 집사. 집사님들! 이 자랑스러운 명칭을 한 번 여기서 또 감격스러운 마음을 억누르면서 불러봅니다. 집사님들!

나보다 먼저 선제하시는 분.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 그 말씀이 나보다 선제하기 때문에 말씀이 나를 만드는 거예요. 주님이 나를 필요로 한 겁니다. 그게 절기에요. 주님이 나를 필요로 했지, 내가 주님을 필요로 한 게 아니에요. 내가 주님을 필요로 하게 되면 그건 교회가 되고, 그건 종교가 돼요. 내게 필요한 예수, 삼위일체, 그건 하나의 종교가 돼요. 종교. 하나의 오락이 된다고요. 내게 필요하니까.

남편들 가운데서 이런 남편 드물어요. “아내가 필요해서 내가 당신의 남편 됐어.” 이런 사람 별로 없고. “니는 내가 필요해서 니는 내 아내 됐잖아. 나가씨~ 예수 믿는 거 꼴보기 싫어.” 자기가 먼저라는 거예요. 한 푼도 안 준다. 그냥 나가! 여러분! 경상도 말로 단디 해야 됩니다. 단디. 단단히 해야 돼요. 집 명의 누가 됐는지 단단히 해야 됩니다. 지가 알아서 나가주면 고맙고.

나보다 먼저 계신 분의 세계를 거룩한 세계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땅은 그냥 땅인데 이 땅이 최종 땅이 추구해야 될 최종적인 목표 내용을 계절, 절기지요. 이스라엘의 절기. 절기가 와서 마지막 만남의 장이 되어버리면 그게 절기 가운데 유월절, 맥추절, 마지막 절기가 1년에 초막절, 초막절 되면 모든 역사는 끝나버립니다. 모든 역사는. 드디어 땅이 제구실을 제기능을 작동하는 그 때가 되어버린 거예요. 그게 초막절이에요.

절기의 본 취지와 땅의 만남. 그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 때 자기 집에 안 살고 어디 산다 했습니까? 텐트에 살지요. 텐트 주변은 어떻게 됩니까? 텐트 주변은 사막이지요. 그렇지요. 텐트 주변이 사막이라면 아무것도 없이 사막이고 인간으로서는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사막이라면 텐트에 있는 사람은 이건 죽음 안에 있다. 이렇게 표현되는 겁니다.

텐트 생활한다는 것은, “나 죽었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 죽음 안에 다 모여! 죽음 안에 다 모여!” 그런데 그냥 죽어버리면 자살되는데. 텐트 안에 모여 죽으라는 그 지시와 명령이 이게 초막절이라면, 절기라면, 이 절기 안에 지시하던 초막절을 명령한 그 분도 이 텐트 안에 함께 기거하게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기가 원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원한다. 맞는 말이에요. 그러나 더 정확한 말은 하나님은 자기 자신만을 원한다,가 더 정확한 말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는 말이 아니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는 말은 나중에 끝나고 나서 소급해서 보면 그렇게 되는데, 더 정확한 말은요, 내가 거룩하니 내가 거룩하다. 내 안에 거룩하다. 이리 되는 겁니다. 거룩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거룩을 적용시켜 버려요. 거룩을 그냥 할당하고 배당해 버리는 겁니다. 거룩을 제공해 주는 겁니다. 절기 안에 들어온 사람. 텐트 안에 들어온 사람. 그것도 죽음의 텐트 안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는 겁니다. 그게 요한복음 6장에서는 내 살과 내피를 마시지 않고서는 너희에게는 영생이 없다고 되어있지요.

영생이 없다는 말이, 내 살과 내 피를 마시면 영생을 준다는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이에요. 왜그러느냐 하면, 공간 문제 때문에. 공간문제거든요. 내 살과 내 피가 있는 곳 외에는 영생이 없다는 말은 더 간단하게 축약하면 영생은 이 땅에는 없다가 돼요. 내가 주지 않는 한 영생은 없다가 돼요. 절기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거룩은 없다가 됩니다. 이거 아니면 없다는 말은 더 두 자로 줄이면, 그냥 없다! 에요. 이 땅에 생명도 없고, 거룩도 없고, 그냥 없는 거예요.

그러니 이방인들은 절기 밖에 있는, 텐트 밖에 있는 이방인들은 뭐가 되느냐, 12절, 그들의 살이 썩으며 그들의 눈동자가 눈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들의 혀가 입 속에서 썩을 것이라, 뭐 아쉽습니까? 이거 뭐 섭섭합니까? 섭섭해 하지 마세요. 이게 우리의 본 모습이에요.

이 땅을 우리가 내 땅이라고 함부로 부동산 등기 내 땅이라고 등기 함부로 한 거예요. 땅이 내 말 듣는 게 아니고, 땅은 절기 말 듣고, 초막절 말 듣고, 주님 말 들어요. 땅이 자기의 본성을 드러냅니다. 땅위에 살면서 썩어버릴 때 이건 텐트 밖의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서 땅이 자기의 본질을 가동시켜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땅은 주님이 시키는 대로 가동했지요. 초막절을 모르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을지어다. 땅이 “예, 알겠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저주!” 그러니 그 땅에 살았던 이방민족은 살이 썩고, 눈동자가 썩고, 혀가 썩고, 오늘 제목은 ‘썩고’. 다 썩고.

결국은 이렇게 썩거든요. 리마인드. 거꾸로 돌려봅시다. 전까지 썩어버린 그 사람이 하루 전에는 저희 사무실에서 김마담한테 쌍화차 시켜가지고 먹고 있다니까. 한달 전에는 골프치고 있어요. 1년전에는 벤츠타고 돌아다니고. 3년전에는 지 딸 결혼식에서 허허 웃고 있고. 그러면 이 초막절 아는 사람은 3년전 그 사람 딸 결혼식에 갈 때 촬영할 때 어떻게 촬영합니까. “자, 썩은 것 보자. 자, 썩은 것 찍어보자. 썩은 이빨, 썩은 눈동자, 썩은 눈동자. 웃기! 옳지. 좋습니다. 가족들 모이세요.” 가족들 20명 모였으면 썩은 해골 20명에 집단 촬영이 되는 거예요.

가게 문 열고 “어서 오세요. 썩은 눈동자” 아이구, 참 내가 말을 너무 선급하게 이야기했다. 썩은 눈동자, 괜히 했고, 안 들으신 걸로 하고. 뭘 원하십니까? 바지 드릴까요. 이 썩은 눈동자. 아이구, 또 말 나오네. 썩은 눈동자 보약 하나 지어드릴까요. 이게 진실입니다. 이게 진실이에요. 교회에 500명 나오면 전부 썩은 해골 500명 온 거예요. 장로라고 장로석에 앉으면 썩은 장로들 앉아 있고.

프랜시스 베이컨. 그 베이컨이라는 20세기의 화가가 그린 그림이 있어요. 교황이 의자에 앉아 있는데 살점이 촛물처럼 녹아내리면서 눈은 빈 동굴처럼 그린 그림이 있어요. 그 사람 그림은 요새 팔면 천억 넘어요. 세계적인 유명한 화가인데. 그 사람은 인간을 그릴 때 정육점의 고기 있잖아요. 고기처럼 하는 겁니다. 그건 뭐냐 하면 외부는 보이는 것들은 속지 말고, 인간의 내부가 어떤 모습으로 되어있는지를 내부를 살펴서 그린 그림입니다. 인간이 갖고 있던 권위, 명예, 체면, 돈, 재력, 다 흘러내리게 되어있어요.

하나님이 원하는 초막절은, 거룩하지 않고 속된 것, 그 속된 것이 무엇이었던가, 속된 것은 거룩이 와야 속된 것을 알거든요. 이 더럽다, 라고 하는 규정은 거룩이 와야 더럽다가 규정이 돼요. 20절을 보게 되면, “그 날에는 말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보게 되면 뭐냐 하면 절기의 순환의 연속이에요. 순환. 뱅뱅 도는 것. 순환의 연속이 이스라엘 역사였다는 겁니다. 역사를 볼 때 인간이 공간과 시간을 인간이 측정하기 때문에 지나간 것은 순환이라는 개념이 없고, 지나간 것은 그냥 지나갈 뿐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의 절기,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은 “이건 작년에 했나?” “했습니다.” “그럼 오늘 안 해도 되겠네.” 이게 아니라 1년을 주기로 해가지고 계속 순환하는 거예요. 순환한다는 말은 인간이 생각하고 있는 시간 개념은 결코 그런 개념가지고는 거룩에 이룰 수 없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인간들은 땅에 살면서 땅이 지향하는 바와 땅위에 사는 본인이 지향하는 바와 공간과 시간 개념이 이게 서로 차이가 난다는 겁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의 과거의 역사를 이어간다 이 말이지요.

역사 이어가는 거, 어제 수요설교 언급하면 이렇습니다. 아브람의 연속과 아브라함의 연속이 다릅니다. 아브람의 연속은 그냥 자기의 내가 이 집안에 니보다는 아들보다는 내가 선조다. 그러니까 이건 종족 보존이지요. 종족 보존. 종족 보존에 치중하는 것이 아브람의 연속이라면. 아브라함의 연속은 여기에 뭐가 개입되느냐 하면 부산강의에서 할례가 주어지게 되어있고요, 어제 설교에서는 멜기세덱과 관련되어있어요.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에요.

할례와 멜기세덱의 공통점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가 없는 거예요. 이 땅에 족보가 없어요. 이 땅의 시간 개념을 순환 개념으로 바꾸어서 이해해야 한다는 거예요. 바꾸어서. 거룩이 세속을 거쳐서 도로 거룩으로 순환하는 그 순환고리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그 안에 합류하도록 초대한 겁니다. 일종의 거룩의 놀이동산에 아브라함은 올라 탄 거예요.

그러면 아브라함은 육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세속적이지요. 세속적이라는 말은 나쁜 일만 한다는 뜻이 아니고 시간개념과 공간개념이 자기의 존재를 유지하고 지탱하고 실존을 생계를 유지하는 거기에 마지막 최종 몰두를 거기에 다 쏟아부었다 이 말이지요. 자기 가정에서는 자기가 왕이니까. 이게 세속적이에요. 인간들 입장에서는 나쁜 일이 아니에요. 이건 마땅히 해야 될 일이에요. 밥 먹고 사는 게요. 그런데 그 마땅히 하는 일. 마땅히 하는 일로 자기 정신이 완전히 무장되고 장착돼 있잖아요. 그게 광야에 무슨 소용이 있었습니까?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까. 물이 있습니까. 양식이 있습니까.

광야의 생활은 그냥 텐트 생활이지요. 광야의 텐트 생활을 압축한 게 절기거든요. 초막절이라 말이죠. 그런데 그들이 광야에서 다른 개념의 시간, 공간개념을 갖출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주님이 우리를 도와준다는 겁니다. 주님이. 주님을 도와주면서 우리가 얼마나 세속적이고, 광야에서는 그걸 세속적이라고 하지 않고 다른 말로 애굽적이라 하지요. 애굽적. 다른 말로 하면 우상적이다.

우리는 애굽에서 애굽의 신을 섬겼으니까요. 애굽의 종교를 믿었다. 이 말은 애굽의 문화를 따랐다. 문화를 따른 거예요. 문화, 문명 같이 보면 됩니다. 같은 뜻으로. 문명이라 하는 것은 나의 속마음을 표현할 때, 표현의 수단이 문명이고 문화라는 겁니다. 표현의 수단이에요. 제가 설교할 때 유행가 하잖아요. 심수봉의 노래 가사 하잖아요.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과 함께 내일은 행복하겠지. 할 때 그 유행가 가사에 대해서 그게 뭡니까. 이 시대의 문화와 문명이에요. 이 시대에. 왜 하느냐, 그게 표현되어있거든요. 인간의 속마음이 표현되어있어요.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 게 대화입니다. 대화. 세상 대화는 뭐냐, 사라질 것들의 대화에요. 안녕하세요? 밥 먹었어요? 모두 사라질 너도 사라지고, 나도 사라지고, 너도 시커먼 구멍, 눈구멍, 모두 사라질 것들의 대화에요. 백날 해봐야 거룩에 이르지를 못합니다. 거룩에 이르는 대화는 들을 때 내 목숨과 바꿔치기할 만한 내용이 올 때 그게 바로 거룩한 대화지요.

아브람이 연속될 때는 시간과 공간개념이 연속 개념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할례하고 멜기세덱은 이게 뭐냐 하면 순환구조니까 이 자체가 시간을 절단시키는 겁니다. 시간을 절단시켜서 이건 시간과 무관한 질서 체제. 그게 하나님의 절기에 관한 율법이지요. 반복하는 거예요. 되풀이하는 것. 반복하고 되풀이하면서 그 깊이를 더하기 위해 속된 속성을 이스라엘에서 빼낸다. 이게 하나님의 전략입니다.

다시 이야기할게요. 하나님은 자기를 찾아요. 하나님은 자기를 찾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원하는 자는 하나님 본인밖에 없기 때문에. 거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끌려 들어간 거예요. 끌려 들어갔으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에 집중해야 돼요? 우리가 필요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필요해서 우리를 뽑아 세웠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굉장히 긍정적이지요.

그러나 실제로 역할은 긍정적이 아니고 부정적이에요. 죄인 하나 건져서 하나님 자신이 죄인을 의인되게 하는 거룩한 분이라는 사실을 거룩이라는 개념을 죄인을 두고 의로 바꾸면서 거룩 개념을 실현시켰다고 스스로 하나님이 그것을 원했던 겁니다. 그게 거룩의 완성이에요. 그게 십자가이기도 하고요. 안 그러면 주께서 택한 백성을 그냥 하늘에서 그냥 낚시대로 꿰어서 끌어가면 되지 자기 백성을 위해서 대신 희생할 이유는 없어요. 십자가에 희생했다는 말은 죄인을 경유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거룩과 의가 하나님의 만족스러운 거룩과 의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죄는 뭐냐, 시간과 공간을 잘못 이해한 것이 죄지요. 시간과 공간을. 하나님은 순환하는데 인간은 순환이 아니고 계속 자기의 종족 보존에 앞서는 거예요. 할례가 뭐냐, 할례는 여성이 아니에요. 남성의 생식기 끝을 잘라버리는 거예요. 자르는 이유가 뭐냐, 더럽다고요. 더럽다고. 인간의 혈육, 아담의 혈육 자체가 더러운 거예요. 더럽다는 것을 이스라엘에게만 유일하게 할례 언약으로서 거기서 자기 자신을 제시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할례 언약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할례 언약에 합당한 자를 이삭을 태어나게 합니다. 그러면 태어나면서 제일 먼저 이삭이 한 것이 할례 언약을 제일 먼저 했습니다. 태어난지 7일이 아니고 8일만에 할례를 행해버려요. 그러면 이삭은 뭐냐, 할례 언약의 결실물이 되지요. 열매가 되지요. 더러운 것은 죽는다. 그냥 죽는 게 아니고 저주받아 죽는다. 그렇다면 이게 주의 저주성. 더러운 것은 죽는다를 남성의 생식기 끝에다가 표시를 해놓게 되면 더러운 자는 반드시 죽는다.를 운반자로서 이스라엘이 구원받는 겁니다.

십자가 알고 장착하고 부활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를 늘 갖고 있어야 구원되는 거예요. 십자가 후딱 알고 됐고, 이제는 부활만 남아있다. 이게 구원되는 자가 아니에요. 늘 십자가의 반복성, 되풀이가 되는 거예요. 왜? 십자가가 있어 줘야 더 깊이 있게 우리의 죄를 주께서 십자가 지신 취지를 평생 살아가면서 온갖 경우를 다 만나게 하지요. 경우에 경우들을 다 만나게 해서. 이건 깨끗하고 이건 더럽다가 아니라 어느 것 하나 안 더러운 것이 없음을 더 깊은 안목을 가지고 발견할 때, 그 때 터져 나오는 것이 뭐냐 하면 감사와 고마움이에요. 모든 일에 감사와 고마움이에요.

16절을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이리 되어있지요. 이방인 중에서도 초막절에 초대받은 자들이 생긴다 이 말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뭘 지키면 구원받습니까?” 가 아니라, 하나님은 자신만을 구원해요. 문제는 그 구원하는 장소가 어디냐, 초막절이 이루어지는 곳. 시기는 언제냐, 초막절날. 이리 되는 거예요. 초막절이 절기의 마지막이니까요. 지상의 마지막이에요. 초막절이 왜 절기의 마지막이냐, 거기는 그냥 맨땅에 텐트치고 사니까요. 맨 땅에 텐트 친다는 말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인간의 문명과 문화 그런 것은 개나 줘 버려라 이 말입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거대한 뮤직 홀, 화려한 미술 전시관, 국회의사당, 링컨 센터, 개나 줘버려라. 개한테나 거기서 살라고 하라. 나는 가장 땅과 밀착해서 살겠다. 땅 그 자체로 남아있다는 그것이 왠 떡이냐, 라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냥 땅의 날것, 생 날것 그대로 살아가는 거예요. 그 절기가 바로 초막절입니다.

그 초막절날 텐트생활하면서 내가 나를 지키고 사수할 수 있는 요소는 있다? 없다? 전혀 없는 거예요. 없어요. 그냥 땅에서 와서 그냥 아무것도 없이 위에는 별, 아래는 땅. 영어로 하면 솔리트리맨 고독한 사람. 솔리트리맨 유명한 팝송이 있었어요. 외로운 사람. 세 자로 하면 외톨이. 어느 정도 외톨이냐, 나로부터 헤어진 외톨이. 나로부터도 바이 바이 한 외톨이. 전에는 내 것으로 살았던 내가 이제는 내 것마저 내 것이 아니고 나를 떠나버리고 남아있는 그 외톨이. 그게 바로 지요. 집 떠나 열차타고 훈련소로 갈 때, 어느 장정도 훈련소에서 친구 만나야지. 이런 사람 없습니다. 훈련소에서 친구 많이 사귀어야지. 말뚝 박을까, 이런 사람 없어요. 그건 아주 특별한 사람이고. 군대놀이 좋아해가지고 너무 좋아서 자발적으로 간사람 말고.

보통 끌려간 사람들은 언제 제대해서 돌아가서 복귀할 생각만 해요. 훈련소에서 친구 만나야지. 나 너무 설레. 이런 거 없어요. 나 머리 깎는 거 너무 설레. 이런 거 없어요. 그 전에 머리 깎는다고 그걸 다 홀라당 깎았으니까 얼마나 섭섭했겠어요. 나의 흥미와도 바이바이야. 나의 모든 취미, 오락, 흥미까지도 바이바이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었느냐는 말이지요. 내 목숨과도 안녕입니다. 내 목숨과도 안녕.

이제는 하나님의 절기에다가 절기 속으로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들어가면 이건 이게 되지요. 뭐냐 하면 이 단어, 디스코 팡팡!! 인천에 있다는 놀이동산. 둥그런데 있어가지고 마구 흔들 때, 붙들고 안 떨어지려고, 다리 들썩 들썩하고, 디스코 팡팡!! 음악은 들리는데 이건 가만히 있지 않고 팡팡 돌지요. 그런데 디스코 팡팡!!의 특징이 그 공간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순환구조를 아무리 뛰고 해도 그리스도 안에서 있다는 것. 온갖 우사는 다 당하지요. 뒹굴고 엎어지고 체면이고 위신이고 다 날아갔는데 나중에 휴~, 음악 끝나고 난 뒤에는 땀 흘리면서 ‘아~, 이 안이 이런 세계였구나!’ 주님 가신 길 좁은 길, 체험하는 겁니다. 10분 쉽시다.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73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9,342 자유게시판 15강-디모데전서 4장 1-2절(귀신의 가르침)221023 - 이 근호 목사 디모데전서 최고관리자 22-10-23
19,341 자유게시판 22강-예레미야 4장 5~9절(죽음의 위력)221023 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2-10-23
19,340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제자 뽑은 이유 / 221023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22-10-23
19,339 묻고답하기 위선자들 - 최고관리자 22-10-23
19,338 자유게시판 안양20221013b슥14장20절(죽음의 노예)-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22-10-23
열람 ➜ 자유게시판 안양20221013a슥14장20절(죽음의 노예)-이 근호 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22-10-23
19,336 자유게시판 1강-하박국 1장 1-4절(영광의 말씀)221019-이 근호 목사 하박국 최고관리자 22-10-20
19,335 자유게시판 409강-YouTube강의(돈 누가복음 16:13)20221018-이 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2-10-19
19,334 자유게시판 408강-YouTube강의(대화 아가 6:3)20221018-이 근호 목사 아가 최고관리자 22-10-19
19,333 강의 유튜브강의(408강, 409강) 대화, 돈 221018 아가 최고관리자 22-10-18
19,332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13장 1절 (예상 못함) 221004b-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2-10-17
19,331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13장 1절 (예상 못함) 221004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2-10-17
19,330 자유게시판 21강-예레미야 4장 3~4절(물품보관소)221016 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2-10-16
19,329 자유게시판 14강-디모데전서 3장 14-16절(죽음 떠안음)221016 - 이 근호 목사 디모데전서 최고관리자 22-10-16
19,328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세례 만드심 / 221016 - 최고관리자 22-10-16
19,327 묻고답하기 귀신의 가르침 - 최고관리자 22-10-16
19,326 자유게시판 서울의존강의20221013b 베드로후서 3장 6절(주님과의 일체성)-이 근호 목사 베드로후서 최고관리자 22-10-16
19,325 자유게시판 서울의존강의20221013a 베드로후서 3장 6절(주님과의 일체성)-이 근호 목사 베드로후서 최고관리자 22-10-16
19,324 자유게시판 자기부인 - 최고관리자 22-10-13
19,323 자유게시판 12강-나훔 3장 18-19절(환상의 왕)221012-이 근호 목사 나훔 최고관리자 22-10-13
19,322 자유게시판 20221010b 부산강의 : [시편]52(36:1)-말씀의 환경 시편 최고관리자 22-10-12
19,321 자유게시판 20221010a 부산강의 : [시편]52(36:1)-말씀의 환경 시편 최고관리자 22-10-12
19,320 자유게시판 20221007b 울산강의-역대기상(14강) 12장 8절 : 시험전쟁 창세기 최고관리자 22-10-10
19,319 자유게시판 20221007a 울산강의-역대기상(14강) 12장 8절 : 시험전쟁 - 최고관리자 22-10-10
19,318 자유게시판 20강-예레미야 4장 1~2절(자랑)221009 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2-10-09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