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7b 울산강의-역대기상(14강) 12장 8절 : 시험전쟁
20221007b 울산강의-역대기상(14강) 12장 8절 : 시험전쟁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강의 시작하겠습니다.
모든 인간은 왜 태어나느냐 하면 이 땅에 버림받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다른 가능성을 자꾸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인간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 하나님 마음을 증명하듯이 인간들 만들어서 태어난 족족 다 죽여 버렸습니다. 이게 창세기 5장에 나오지요. 아담이 누굴 낳고 죽고, 또 태어난 자가 누굴 낳고 죽고. 그러니까 아담이 자식에게 준 게 뭐냐, 상속한 게 뭐냐? 죽음을 상속한 거예요.
“목숨 미련 갖지 마라. 나는 너에게 죽음을 준 거야.” 이건 병을 준 거죠. 죽음의 병, 죽음에 이르는 병을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준 겁니다. 그리고 그 최초의 부모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너는 정녕 죽으리라를 아담에게 맡겼고요. 이게 인간의 운명이에요. 요지부동입니다. 어떤 지위에 있든 얼마나 돈을 벌었든지 아무리 부자가 된다, 될지라도 이 죽음이라는 운명을 변경할 수가 없어요. 심지어 예수 믿더라도 이 운명은 바뀌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라는 의식은 죽을 때까지만 유효함, 같은 말로 죽음은 나를 겨냥한다. 빨리 와, 빨리 와. 내가 이렇게 출세했습니다, 하면 무대 뒤에서 “빨리 와.”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 되었습니다.” 뒤에서 “빨리 와, 빨리 와. 죽어 이 녀석아.” 지금도 죽음이 우리를 부르고 있고 우리는 그 부름에 호출당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죽음이란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다는 뜻이거든요. 인간은 버림받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거예요. 모두 제거돼야 될 대상이 됩니다. 그 제거되는 방법은 죽음으로 제거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에 특별한 예외가 있어요. 그래야만 천국 백성이 성립되니까요. 이 예외가 이스라엘이죠. 이스라엘 글자 색깔이 뭡니까? 빨갛지요.
어린양이 피가 이스라엘에게 흠뻑 적신 것처럼 주님께 매일 드리는 피가 이스라엘을 흠뻑 적시지 아니하면, 흠뻑 적셨다는 말은, 인간은 죽을 때 죽는다. 이게 인간입니다. 인간은 죽음이 오라 해서, 이리 와 죽을 때 죽지요. 이스라엘은 하나님 안에서, 또는 하나님 말씀에 의해서 미리 죽었다. 이게 이스라엘의 특징입니다. 이미 죽은 거예요. 누가? ‘나’가. 나가 하나님 앞에서 장차 죽을 죽음을 이스라엘 안에선 앞당깁니다. 주님의 심판대까지 갈 것도 없이 심판대가 먼저 와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푸틴이 장병들을 모집할 때 개인물품을 가지고 오라 하지 않고, 동네마다 뭘 만드느냐 하면 징집사무소를 만들었지요. 군에 가기 전에 군복 하나 주고 명패 하나씩 주고. 징집사무소가 마을마다 있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의 끝장, 우리의 마지막을 미리 보게 하는 거예요. 만약에 그것 없이 그냥 가게 되면 죽는 건 맞는데 왜 죽는지는 몰라요. 그런데 말씀이 미리 마중 와서 우리를 낚아채버리면 죽는 것은 기본이고요 죽는 이유까지 알게 돼요.
“아하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과 의가 없어 죽어 마땅하구나.” 죽어 마땅함을 고백할 때 마태복음 9장에 내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 자기 백성을 미리 징집하려 온 거예요. 자기 백성의 특징은 뭐냐 하면 자기가 죽기 전부터 이미 죄인인 것을 아는 사람, 그게 예외적인 단체, 곧 예수님의 피로 호출 받은 이스라엘 되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역대상 이야기가 이스라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죽는 이유, 왜 죽어야 되는지를 미리 알리기 위해서 구약성경 말씀을 주신 거예요. 율법을 주신 거예요. 그래서 말씀과 같이 있다는 것은 인생 끝까지, 끝장까지 안 가 봐도 알아요. 송해처럼 96살까지 안 살아봐도 정말 성령 받은 사람은 열두 살이라도, 천재지요. 부모의 죄 때문에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열두 살이라도 알 수 있지요. 성령께서 오시면. 그런 천재는 드물지만.
나이 들어서 할 일 없으면 요양병원 가서 예수 믿지, 그런 계산하지 마세요. 그거는 죽음을 대비하는 거고요. 죽음을 대비해서 가는 게 아니고 미리 죽는 자에게만 천국 가는 거예요. 대비하는 사람, 그건 생명보험 들 때나 하는 소리고. 이미 죽은 거예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소급해서 어릴 때부터 만약에 오십 대에 자기가 죽는 이유를 안다면 오십 년 동안 돌아보면서 그것이 인간이 죽어야 될 이유들의 길로 또는 경로로 재해석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자신의 지난 과거를.
죽음의 흔적을 질질 흘리고 돌아다녔구나. 서울, 부산, 대전 살다 찍고 목포 살고, 어디 살더라도 죽음의 흔적이. 서울 살다 부산 가신 분도 계시겠고. 지나온 과거가 죽음의 흔적이에요. 그 과거 동안에 얼마나 성경연구 많이 했게요. 그 성경연구가 죽으려고 악을 쓴 거란 사실을 뒤돌아보면 소급해보면 알지요. 교회 헌금 얼마나 많이 했게요. 그 헌금이 날 죽이려고 헌금한 거예요. 선교한 것도.
인간이 죽으려면 무슨 짓인들 못해, 그 짓한 거예요. 왜 그 짓이냐? 내가 했거든요. 자아가 사라져야 되는데 그 일 하고 자아가 안 사라졌어요. 여기 피아노 있잖아요. 분명히 이 교회에 피아노 기증하신 분이 있을 거예요. 교회가 샀습니까, 누가 기증했습니까? (중고로 샀습니다.) 그럼 소용없다. 만약에 이 나무를 누가 기증했다면 기능하고 난 뒤에,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이런 이야기 안 하지요. 그다음부터는 이 나무만 쳐다봐요.
제 머리를 아내가 손질하거든요. 제 아내가 고백했어요. 시험 들어 안 되겠다. 이제는 설교 듣는 게 아니고 머리 손질 잘했나 본다고 이발소에서 깎아라, 해서 남성이발소 블루클럽 깎았어요. 내가 한 짓을 자아를 없애는 게 아니고 돋보이게 만들었어요. 그것이 바로 죄라는 겁니다. 주님은 이미 나를 죽은 자로 간주했는데 내 쪽에서 극렬하게 저항하는 거예요.
“내가 왜 죽어. 내가 이렇게 교회를 위해서 충성, 봉사하는데 이렇게 착하고 남한테 욕 한 번 안 했는데(구라지요) 내가 도적질 안 했는데(이것도 거짓말이고요) 이렇게 깨끗하게 살았는데 천국 가도 나부터 먼저 가야 돼.” 이러고 있단 말이죠. 그거는 진실이 아닙니다. 거짓입니다. 이 거짓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외조치로서 이스라엘을 제사를 통해 어린양의 피로서 피가 계속 작동하는 한 살아가는 희한한 민족으로 만드는 거예요. 피 흘린 제사가 계속 생기면 그 이스라엘은 살고, 그것 없으면 이스라엘은 끝나는 완전히 이건 엔진에다 기름 넣는 게 아니라 피를 넣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하나님의 피로 계속 수혈할 때만 안에서 쿵덕쿵덕 생명이 뛰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장이 되는 겁니다. 쿵덕쿵덕 소리 난다는 것은 피가 계속 거기서 순환하고 있고 활동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피를 일주일 단위로 크게 피 흘리는 날을 무슨 날이냐 하면 안식일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은 안식일 계약을 맺는 거예요. 네가 안식일 소홀히 한다면 너는 내 백성 아니다.
이 피를 위해서, 인간의 피는 어떻게 돼요? 거부돼야 되겠지요. 인간의 행함, 인간의 피, 혈통 거부돼야 되겠지요. 왜냐? 지금 함께 계신 하나님의 피가 그들을 살린다면 인간의 피는 거부돼야 되겠지요. 거부되는 이 제도가 할례언약입니다. 십보라가 죽은 남편을 뭐로 살렸습니까? 돈으로 살렸습니까, 안 그러면 마사지해서 살렸습니까? 피로 살렸어요. 그래서 당신은 피 남편이라 하는 거예요. 아들의 할례로 흘리는 피, 언약적 피가 죽은 남편을 살린 거예요. 출애굽기 4장에.
이런 제 이야기에 교회 와서 이렇게 하세요, 이런 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도 없지요. 그것 다 빼야 돼요. 그런 게 있으면 자아가 죽질 않아요. 자아는 자기 행한 것이 있으면 자꾸 남과 비교한다고요. 저 사람 기도 몇 시간하는지, 헌금 얼마 하는지, 전도 몇 명 했는지, 다른 교회 교인 몇 명인지 자꾸 비교하게 돼요. 이거는 자기중심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그런 식으로 구원한 적 없습니다. 이거는 기존 교회가 사람을 바보, 등신 만들어놓은 거예요.
교회는 뭐냐 하면 교회는 날마다 우리의 목을 치는 거예요. 메두사란 그리스에 괴물이 있는데 여자 괴물인데 옛날에는 미모로 예뻤어요. 특히 뭐가 장점이냐? 머리카락이 고왔던 여자가 있었는데 벌을 받아서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뱀이 된 거예요. 그게 메두사라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요. 우리 인간이 괴물이에요. 메두사 같아요. 교회에서 매일같이 자아를 쳐도 또 다음 주 되면 또 올라가 있고, 또 쳐도 또 올라가 있고 메두사가 따로 없어. 완전히.
이건 도대체 머리카락이 몇 개야, 목이 몇 개야. 계속 목 치면 또 올라오고 목 치면 또 올라오고 죽지도 않아, 이 괴물은요. 그 괴물은 어디서 왔는가? 세상에 나가면 온통 시험 들 일만 다가왔거든요. 그 일을 만날 때 자기 자아를 본인이 새롭게 만들었어요. 나는 안 죽는다, 이런 식으로. “나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내가 너한테 질까 보냐.” 하나님께서는 늘 말씀으로 한 주 동안 자라온 이 자아를 댕강 쳐버리죠. 여러분 괴물 또 올라왔습니다. 또 쳐버리고.
그렇게 해서 치는 이유가 모든 사람은 버림받았는데 단 한 분만은 버림받지 않았어요.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분. 그분이 누구냐?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육신 속에 예수님만 남기기 위해서 자아를 댕강, 댕강 말씀으로 쳐주는 겁니다. 잡초를 쳐내는 거예요. 네가 먹고 마시는 것 다 주님이 주신 선물이다. “어젯밤에 잠 잘 잤나?” “일곱 시간 푹 잤습니다.” “선물인 줄 알아라.”
여러분들이 어떤 근심걱정이 있어서 밤새 잠을 못 자고 한 시간도 제대로 못 잤다, 잠 안 온다 할 때 대책이 뭡니까? 어떻게 하면 잠을 이룰까 하지요. 저의 대책은 간단합니다. 잠 안 오거든 자지 마세요. 주께서 안 오게 했는데 잠 안 옴을 감사함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게 메두사의 자아가 날아간 상태에요. 주께서 오늘 잠자지 마라, 나하고 할 일 있어 잠자지 말라고 하셨다면 순종해야지요. 잠 안 자기 순종, 참 쉽지요.
이건 뭐 어찌하다 양 한 마리, 두 마리 아침까지 양 사만 오천이백오십 마리 세다가 잠도 못 자고. 멍하게 화만 나고 그렇지요. 하나님의 뜻은 우리 안에서 예수님 하신 일만 남기기,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이 거저주신 선물만 남기기. 여러분 머리카락 뱀 되기 전에 미리 알아서 선물로 보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안 감아서 뻑뻑하니 뱀처럼 되는 수가 있어요.
그렇게 예수님만 남았을 때 특징이 뭐냐? 예수님만 남았는지 나만 남았는지 어떻게 분간하느냐? 특징이 뭐냐 하면 아까 이런 말했지요. 다시 보겠습니다. ①천국을 기웃거리면서 구경하는 자와 ②이미 천국에 들어온 사람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천국을 기웃거리는 사람은 시간, 또는 시간의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부가 오후 다섯 시쯤 백화점에 가서 신상 나왔는지 기웃거리다가 저녁 할 때 됐네, 하고 집에 가잖아요. 그럼 그 사람은 백화점 직원이 아니고 자기 소속이 따로 있어요. 가정주부에요. 곧 저녁 해야 돼요. 천국을 기웃거리는 사람은 내 시간, 내 관리 시간 따로 있는 겁니다. 시간 속에 여전히 있는 사람은 천국을 기웃거리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천국에 들어온 사람은 시간을 능가한 묵시세계에 들어온 거예요. 묵시세계에서 시간은 주님이 관리해요. “어, 저녁 할 시간이네” 누가 알려줬습니까? 주님이 저녁 할 시간이네, 쌀 불릴 시간됐네, 이런 것. 나중에 우리 육신이 쇠퇴해 죽을 때 되면 쌀 불릴 시간도 잊어버리고 저녁 할 시간도 다 잊어버리죠. 그걸 치매 현상이라고 하는 거예요. 주님께서 “네가 시간 속에서 많이 놀았다. 이젠 그만 가자.” 이게 밥 땐지 저녁땐지 구분도 못하고 자식인지 딸인지 구분도 못하면 “가자, 가자. 가자 집으로” 이런 것. 할 수 없지요. 주님께서 치매 걸리게 하시면 치매 걸려야지.
내 시간이 아니고 주께서 허락한 시간, 허용한 시간 속에서 주님의 종으로써 다뤄지고 지시받고 명령받고 있는 사람이에요. 이런 관계를 이스라엘 언약에 의하면 이것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 합니다. 자, 성경에서 아들이란 뭐냐? 숨겨진 아버지의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자가 아들이에요. 아들이 아니면 아버지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있지요. 요한복음 10장에도 나오고. 나를 본 자가 아버지를 보았거늘 왜 자꾸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아버지의 방법은 아들을 통해서만 나타난다. 이것이 다윗에게 준 특수한 관계입니다. 다윗언약이에요.
사무엘하 7장에 나온 이야기인데 보겠습니다. 7장 14절에,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게 다윗언약이에요.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은 노아 때는 방주였고, 모세 때는 율법이었지만, 다윗언약에 오게 되면 율법이 아니고 아들을 통해서 주어지는 거예요. “율법 지켰으니까 천국 보내주세요.” 안 됩니다.
내 아들을 믿지 아니하면 내 아들을 섬기지 아니하면 아버지를 섬기지 아니한 걸로 되는 거예요. 요한복음 5장에서. 어떻게 나를 공경하지 않고 아버지를 공경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 예수님이 이야기하신 거예요. 아버지의 모든 뜻은 아들에게 다 넘겼어요. 아들 따로 있고 아버지도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진짜 그게 이단이죠.
여러분 삼위일체가 이단 같아요. 왜냐하면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이유가 뭐냐? 아들을 통해서 아버지 뜻을 다 모른다는 게 담겨있거든요. 그러니까 삼위일체 주장하면 이단이지요. 이건 반대로 삼위일체 주장 안 하면 이단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삼위일체 자체가 이단 같아요. 아들을 통해서 다 보여줬잖아요. 끝났잖아요.
무슨 성부, 성자, 성령 시아버지 세 명 섬긴다고 바쁘냐 말이죠. 섬길 수도 없고요. 인간은 두 개를 동시에 못 섬기게 돼 있어요. 인간은 두 주인을 못 섬기게 돼 있어요. 심리적 논리가. 예수님도 그런 말씀 하셨지만. 아들 섬기면 끝이에요. 끝난 거예요. 무슨 삼위일체가 왜 필요한데? 이단 안 되려하다가 이단으로 티가 나버리죠.
아들을 통해서 아버지를 드러내기 때문에, 다른 말로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이 드러내셨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600명부터 해서 나중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은 누구만 쳐다보느냐? 다윗 한 사람만 쳐다보면서 버림받든 말든 버림받은 다윗에게 합류하면서 돌아오는 그 이야기가 오늘 본문 역대상 12장 내용이에요.
그 내용 중에서 역대상 12장 8절을 보겠습니다. “갓 사람 중에서 거친 땅 견고한 곳에 이르러 다윗에게 돌아온 자가 있었으니 다 용사요 싸움에 익숙하여 방패와 창을 능히 쓰는 자라 그 얼굴은 사자 같고 빠르기는 산의 사슴 같으니” 이게 무슨 지파라고요? 갓 지파에서 돌아온 사람에게 성경이 이렇게 언급하는 것은, 신명기 33장 20절, 거기는 모세가 자기는 약속의 땅에 못 가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야 될 후손들을 예언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걸 지파 별로 예언을 해요.
이 말은 하나에서 내려온 축복이 열두 개로 가지를 뻗었다고 보시면 돼요. 문어 다리가 몇 개입니까? 여덟 개지요. 오징어 다리는 몇 개지요? 열 개. 오징어 다리 없거든 누가 하나 먹었다고 보시면 돼요. 중간 상인이. 다리가 열두 개에요. 이게 이스라엘 하나이면서 열둘이 되는 이유가, 그게 고린도전서 12장에 성령이 아니고서야 예수님을 주라고 할 수 없다고 해놓고 교회를 소개할 때에 눈이 발더러 쓸데없다는 소리 못한다는 말이 뭔 뜻이냐 하면 인간 대 인간의 세계와의 차이점을 두기 위해서, 인간은 인간과 비교하잖아요.
그 비교 안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지요? 중심이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다른 곳에 하나의 중심이 따로 설정되면 되는 거예요. 다윗을 쳐다보면 되는 겁니다. 이 말은 굉장히 쉬운 데요. 민수기에서 모세를 원망하다 불 뱀이 와서 사람들이 죽었잖아요. 그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제시한 것은 뭐냐? 놋뱀을 만들어서 쳐다보라고 했어요. 그것 참 쉽지요. 누구든지 쳐다보면 구원을 얻으리라. 참 쉽잖아요.
안 쳐다본 사람들이 있다는 말은 뭔 뜻입니까? 자아라는 메두사, 그 괴물의 장벽을 지가 넘어서질 못한 거예요. 나 아니고, 가 안 된 거예요. 나는 아닙니다. 왜? 나의 어떤 노력과 나의 어떤 행함도 아닙니다. 이거는 구원과 상관없습니다. 나는 쓰레기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게 말로는 흉내 내어 할 수 있지만 진심으로 그걸 넘어설 수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십자가를 안 보는 거예요. 하나를 안 보는 거예요.
놋 뱀, 십자가를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이유가, 자아가 자기를 가로막고 있었던 겁니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데, 내가 그동안 얼마나 착실하게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이게 왜 무의미해, 무가치해.” 자꾸 이런 식이에요. 천국을 기웃거리는 사람들, 교회 와서 천국 구경하는 사람들, 남 따라 하면서 천당 가려고 기대하는 사람들.
인간의 가장 큰 기쁨은 무의미함이 주는 기쁨이에요. 이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습니다. 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 때 만사가 가벼워져요. 세상에 어떤 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왜? 내가 무의미하니까, 천하의 죄인이니까 못할 게 없어요. 하나님의 전쟁은 그 이스라엘로 하여금 다윗만 쳐다보는 나라 만드는 것, 그게 하나님의 전쟁의 목표입니다. 왜? 그 당시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고자하는 것이 그 시대에는 다윗을 통해서 다 드러내시기 때문에.
그게 바로 사무엘하에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두신 거예요. 전에 출애굽기 4장에서 이스라엘이 아들이거든요. 다윗 땐 누가 아들이냐? 이스라엘 왕이 아들이에요. 전차 열두 개를 쳐다보다가 열둘이 서로 경쟁하다가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열둘에서, 열둘에서, 열둘에서 뭐로 초점이 맺힙니까? 하나로 모이는 거예요.
그 하나에서 열둘이 하나님과 이어지도록 하는 그 중간 지점에 하나가 있습니다. 그걸 매개라 합니다. 매개체, 또는 매개. 더 쉬운 말로 중보, 중보자 이런 뜻이에요. 여자들 머리카락 많잖아요. 일할 때 거치적거리니까 어떻게 합니까? 고무줄로 하나로 매듭짓죠. 매듭짓는 그 부분이 중보자에요. 매듭을 통과해서 우리가 된 겁니다. 매듭 없이 된 게 아니고, 스트레이트 파마해서 된 그게 아니고 딱 묶은 머리한 거예요. 예수님한테 묶인 거예요.
그래서 기도해도 주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내 이름으로 기도 못한다는 뜻이에요. 주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게 네 소원 안 들어준다는 뜻이에요. 그렇게 쉬운 뜻이 있어요.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게 뭐냐고 묻는 분들이 많이 있었거든요. 당신 소원 끝났다 그런 뜻이에요. 예수님의 소원만 받지 당신 소원 안 받는다는 뜻이에요.
예수님이 하나로 묶인 분으로서 사울에게 버림받은 겁니다. 사울은 그 당시에 인간세계를 대표해요. 무당을 비롯해서 그 인간세계로부터 버림받은 것, 그게 다윗의 모습이 장차오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신 모습을 그 시대에 세팅된 무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지금 다윗이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뭘 이야기하느냐? 우리들도 마찬가지 되겠지요.
신명기 33장 20절 보겠습니다. “갓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갓을 광대케 하시는 자에게 찬송을 부를찌어다 갓이 암사자 같이 엎드리고 팔과 정수리를 찢는도다 그가 자기를 위하여 먼저 기업을 택하였으니 곧 법 세운 자의 분깃으로 예비 된 것이로다” 여기 보면 갓 지파를 짐승에 비유했지요. 갓을 암사자 같이, 이렇게 돼 있지요. 그러면 아까 봤던 역대상 12장 8절에 그 얼굴은 뭐와 같다? 사자 같다.
신명기에서 축복 자체가 모세 예언한 거죠. 모세가 예언한 것을 바턴을 누가 이어받아요? 다윗이 이어받지요. 완전히 400미터 계주하는 것처럼 바턴 떨어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받는 거예요. 여러분들 교회 올 때 목사님의 말씀만 받는 거예요. 바턴을 받는 거예요. 왜? 그게 나의 팔자고 운명이고 미래고 이미 정하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한 자를 하늘의 영광스런 천사 같이 만드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 말씀을 하게 되면 예를 들어서 우리가 어떤 동화나 만화를 생각해봅시다. 말씀을 받을 때는 말씀이었는데 손에 쥐면서 갑자기 여기서 광채가 난다고 봅시다. 만화로 그릴 수 있어요. 손 주위가 훤해. 이쪽에만 광채가 나기 때문에. 이쪽에 광채가 나게 되면 나머지 내 엉덩이, 발목, 발, 다리, 어깨, 무릎, 팔 이건 뭐가 돼요? 상대적으로 어떻게 됩니까? 시커멓게 되겠지요. 쓰레기잖아요. 그래서 쓰레기에요. 말씀만 광채가 나니까 내 육신은 빛이 없지요.
만약에 내가 벤츠를 새로 샀는데 목사님으로부터 복음의 말씀을 들었다. 그럼 벤츠가 빛이 나겠습니까, 말씀이 빛이 나겠습니까? 묻는 내가, 물음 자체가 되는지 의심스러워요. 답변해보세요. 어느 것이 빛이 납니까? 말씀이 나야 되겠지요, 나야 되겠지요. “아이고, 목사님 말씀 너무 좋았어.” 그런데 “집사님 벤츠 누가 긁고 갔더군요.” 말씀으로 내가 죄인 되고 쓰레기 되어서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범사에 감사한다고 자신만만했는데, “내 벤츠 누가 긁었어?” 벤츠 안 타보니 아나, 그 기분을. 얼마나 우리가 이율배반적입니까, 얼마나 우리가 거짓말쟁이에요.
여기서 더 나가봅시다. 하나님은 다윗을 제거합니다. 그게 역대상 끝부분에 보면 나옵니다. 역대상 21장 1절 누가 읽어보세요.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보세요, 참. 하나님이 다윗 후반기의 다윗마저 제거해버립니다. “네 시대에 너 할 것 다했다. 수고했어.” 다윗을 제거하면서 다윗은 의인으로 드러날까요, 죄인으로 드러날까요? 죄인으로 드러나죠. 다윗이 훌륭해서 이스라엘 됐다는 이야기를 하나님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습니다.
사탄을 다윗에게 보냈습니다. 자, 그다음 질문. 다윗이 사탄한테 이겼을까요, 졌을까요? 졌지요. 사탄을 누가 이깁니까? 아담의 자손인데 아담 자체가 사탄에게 져버렸는데 그 후손 내리 사탄에게 지는 건 마땅한 거죠. 사탄을 누가 이겨요? 못 이기죠.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사탄을 이기지 못한다는 조건 하에 있는 인물로 다윗언약을 세웠다 이 말이죠. 그러면 다윗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다윗 속에 계신 분이 아들이 되겠지요.
그럼 사탄에 져버린 다윗을 통해서 뭘 뽑아내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뽑아내겠지요. 그 아들이 뭐냐? 다윗은 그 아들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아라우나 타작마당에다 다윗이 제사장으로 제사를 드리지요. 양을 잡고 소를 잡고. 나 아닙니다. 장차오실 분이 이 다윗의 죄를 위해서 이렇게 대신 죽으실 분이 오실 겁니다, 라는 것을 증거 하는 거죠.
이게 오늘날 성도가 해야 될 일이에요. 성도는 결코 사탄을 이기지 못합니다. 사탄을 이긴 요소가 성도 안에 있기에 성도는 구원 받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자아로부터 자아가 늘 댕강, 댕강 떨어져나가야 되는 거예요. 주님에 의해서 움직이는데 뭔가 일이 잘 풀린다 싶으면 내가 했다는 쪽이 본능적으로 튀어나와버려요.
이렇게 제가 이야기하면, 나한테 예수님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시는 분이 있는데 차마 그런 말을 안 하지요. 사람은 없으면 입을 다물고 있어요. 있는 것처럼 하기 위해서 입 다물고 있지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하는 것은 너무 도발적이고 용감한 사람이죠. 그런데 아까 제가 그런 사람한테 이렇게 묻고 싶어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그런 노래 있지요. ‘사랑받기’ 괄호에다 당신은 (버림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당신은 당신뿐만 아니고 모든 인간이 버림받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특혜를 준 거예요. 예외적인 조치를 준 거예요. 아까 이야기했지요. 이스라엘은 예외적인 조치라고. 일종의 편애지요. 하나님의 편애, 일방적 사랑이죠. 내가 주님을 사랑한 게 아니고 일방적 사랑이에요.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우정입니다. 결혼이라 하는 것은 한평생 해야 될 대화지요. 그게 결혼이에요. 사람이 결혼하는 것은 대화하기 위해서 결혼한 거예요. 사람들은 그걸 사랑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인간에게 사랑이 안 나옵니다. 남을 이용하겠다는 마음이 항상 먼저 나오기 때문에 이건 본인이 그걸 조절을 못해요. 막을 수가 없어요. 주체를 못해요.
남편, 이용감이에요. 아내, 내 이용감입니다. 이용하기 위해서 내 곁에 두고 이혼하지 않는 거예요. 이용가치 없으면 서서히 정리할까, 되겠지요. 헤어지지 뭐, 할 때 물렸다 이런 이야기하지요. 된통 너한테 물렸다. 네가 그런 고집도 있는 것을 사전에 이야기했어야지. 네 인생 때문에 같이 말려들어서 내 인생, 내 청춘 다 날렸다.
그래서 아픈 배우자가 죽을 때 남아있는 배우자가 많이 울지요. 서러워서. 너 때문에 내 인생 조진 것 아까워서 그렇게 많이 울어요. 무슨 재수 없는 일이 벌어져서. 인간은 손해 보는 짓은 안 합니다. 남을 이용만 했지 이용당하긴 싫어해요. 그래서 부부는 우정관계입니다. 우정의 무대에요.
사랑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사랑한 것만 사랑이에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16장에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22절) 할 때 그 사랑은 수입품입니다. 내가 예상해서 달라고 온 게 아니에요. 그냥 일방적으로 주님께서 십자가로 하나님이 자기 사랑을 집어넣고 사랑을 자기가 뽑아가는 식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겁니다. 우리는 그 낚싯바늘에 걸려서 덩달아 구원된 거예요. 주님의 자기 사랑에 말려들어서 구원 받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자기를 부인해야 돼요. 주님의 사랑에 우리가 끌려들었으면, 니가 왜 거기에 딸려오지, 자기를 늘 부인해야 돼요. 주께서 사랑하셨잖아요, 일방적으로. 이렇게 하면서 딸려가야 되는 겁니다. 저도 사랑했잖아요. 그러면 안 돼요. 말실수한 거예요. 그 실수가 본심일 수가 있는데.
주님께선 철저하게 다윗 속에 있는 그리스도 나올 때까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게 ‘까지’에요. 천국을 이스라엘을 통하면서 언약을 통해서 운반시키는데 그 운반용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자기 것만 뽑아내요. 내가 준 피만 뽑아내요. 그 피를 뽑아내다보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뭐가 되느냐? 그 십자가 앞에서 강도가 되고 세리가 되고 창기가 되고 죄인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해요. 삭개오 집인데 외부인이 자기 집처럼 일방적으로 쳐들어온 거예요. 쳐들어올 때 뭘 느끼느냐? 비로소 구원이 천국이 내 안에 이뤄진 거예요. 나는 장소 제공했을 뿐이에요. 내 안이 천국이 되면서 삭개오는 자아로부터 이별합니다. “내가 네 배나 갚겠나이다.” 이거는 남을 이용하겠다, 남한테 지지 않겠다는 것을 나는 철회하겠습니다. 내 자체가 쓰레기인데 뭘 남을 이용하겠습니까.
바로 하나가 열둘로 퍼졌을 때 이스라엘이잖아요. 하나가 열두 지파로 퍼졌을 때에 예수님 하나에 열두 사도, 열두 제자가 있을 때에 그 하나와 열둘의 관계가 이런 관계에요. 십자가로 부르시고 거기에 딸려가면서 비로소 자기가 진짜 죄인인 것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는 겁니다. 거기에 필요한 예언이에요. 갓 예언이 들어붓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 오늘 본문 역대상 12장 22절, “그 때에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 이것 설명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라 하는 것은 원래 창세기 32장에 나오는 마하나임이에요. 야곱이 잠들고 있을 때에 하늘나라는 분주했습니다. 사다리가 세워지고 사다리에 왔다갔다, 왔다갔다 되게 바빠.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것 누구였어요? 천사지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무슨 기능? 하늘의 천사의 기능입니다. 인간 속에선 천사의 기능이 없지요. 왜? 인간은 버림받았으니까 이미 단절돼 있는 거예요. 하늘나라와 인간은 끊어져있기 때문에 천사의 기능은 없어요. 그러면 이 이스라엘이 그때는 야곱이죠. 얍복 강가에서 야곱에게 누가 와야 됩니까? 천사가 와서 야곱 속으로 들어와야 되죠. 야곱 속에 들어온 그 천사, 오실 하늘에서 존재 이름이 뭐냐 하면 이스라엘이 되는 거예요. 야곱을 뚫고 온 이스라엘.
강남강의 혹시 들어보신 분계십니까? 강남강의 끝부분에 제가 인간을 뭐라고 표현했습니까? 인간을 두 자로, 일본말로? 스무고개 할까요, 부산에서 많이 나는 것? 오뎅, 어묵. 인간은 어묵이라 표현했어요. 다 달라 보이지만 전체로 보면 어묵이 어묵이지 뭐 별난 어묵 있습니까? 그런데 어묵의 특징이 뭐냐? 똑같은 어묵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뭐가 달라도 달라요. 어묵이 다 다른데 그 다른 것을 어묵 사는 사람이 그걸 계산합니까? 다르다고 보지 않고 똑같이 취급해서 40개에 얼맙니까, 하지요.
야곱이 어묵이라면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관통하지요. 그러면 관통 난 어묵은 뭐로 표현하느냐? 구멍 난 어묵, 구멍 난 오뎅. 안에 관통해버린 거예요. 하나님의 언약이 내 자아를 형성하는 중심부를 관통하는 거예요. 관통 안 하면 심리학이 되고, 관통되면 성도가 돼버리죠. 심리연구, 정신분석 연구하는 사람들은 맨날 자기 지키기 위해서 우울증 치료하려면 뭘 하지, 이런 거예요.
뚫고 지나가면 우울증이고 뭐고 간에 지킬 게 있어야 우울증이지 날아가 버렸는데, 내 게 관통돼버렸는데.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육체만 껍데기만 빌려줬지 안에는 뭐가 들어있다? 이미 주님 것으로 천사가 와서 관통했잖아요. 천사의 언약, 이스라엘 요소가 관통해버렸으니까 그게 바로 겉모습은 야곱이지만 안의 내용은 이스라엘로 바뀐 것, 이게 바로 야곱언약입니다. 야곱언약 열두 지파가 확대될 때 그게 이스라엘이고, 그 이스라엘언약에서 마지막 때 왕이, 아들이 직접 와요.
그 아들은 바로 다윗이 겪었던 것처럼 이스라엘 위해서 제사장이 돼요. 다윗이 사탄에 빠져서 인구 조사했잖아요. 그 죄 때문에 많은 사람 죽었잖아요. 그럴 때 마지막 다윗의 모습이 뭐냐? 바로 죄를 씻어주는 제사장의 모습, 그 과정 다윗이 겪었던 과정을 예수님이 그대로 밟았기 때문에 다윗의 자손으로 메시아가 오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 너무나 우리가 하는 일과 차원이 다른 것을 저희들이 깨닫게 해주시고 내 일에 주의 일이 가로막히거나 답답해하거나 갑갑해하지 않고 도리어 주의 일이 드러나서 내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