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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강의20220923b 민수기6장 5절(나에게 속기)-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민수기

광주강의20220923b 민수기6장 5절(나에게 속기)-이 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창세기 48장 15절에서 요셉이 지금 겸손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있는 사실 그대로입니다.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태어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이라 해서 하나님을 주체로 내세워버렸죠. 그러면 자기는 주체가 아니죠. 자기는 극단적인, 그냥 피동적으로 움직이는 피조물에 해당되기 때문에.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그다음에 쭉 나오는데 15,16절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형들에게도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동일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더 쉽게 말해서, 형들 지금 땡잡았어요. 내가 알던 하나님이 이젠 당신들에게 사함의 실효성을 줬다, 혜택을 줬다 이 말입니다. 누굴 보내서? 나 요셉을 보내서. 이게 선지자의 모습이에요. 나한테 주어졌던 혜택이 나로 머물지 않고 형들에게 그대로 전수되었습니다.

그러면 형한테 찾아온 것이나 나한테 찾아온 것이나 우리 둘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느냐? 내가 극단적인 피동성을 보이는 것처럼 형들도 나 못지않게 극단적인 피동성을 보여줬어요. 왜냐하면 형들은 동생 미워하는데 열심을 다 했잖아요.

그런데 돌아온 혜택은 뭡니까? 형들은 양식 굶은 것 외에는 별 고생 안했죠? 형들이 옥에 갇히고 뭐 꿈꾸고 안했죠? 그런데 혜택은 어떻게 돌아옵니까? 혜택은 똑같이 돌아왔잖아요. 고생은 직사하게 요셉이 하고 혜택은 형들이 받고.

그럼 형들은 자기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선악체계를 발휘할 필요가 있습니까, 아니면 없습니까? 이 둘 중에 하나에요. 굉장히 쉬워요. 있습니까, 없습니까? 자체적으로 선악체계를 발휘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없으니까 선악체계로 구성된 게 자아인데 자아의 생각과 지혜를 자기의 논리와 자기의 능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으니까 자아는 여기서 필요치 않다는 결과가 나오는 거예요. 역시 형들도 극단적인 피동성의 영향력 안에 잠식되고 말았던 겁니다.

그래도 형들은 굉장히 미안해해요. 나중에 보면 나옵니다. 미안해가지고 쟤가 아버지 죽고 우리 또 괴롭힐까봐 걱정하지만 (창50:15) 그건 아직까지 옛날 습성이 남아있어서 그런 것이고, 그것은 옛날 잔상이 남아있는 거죠. 자기를 위해서 살았던 선악체계의 잔상이 남아서 그런 것이고 실제 돌아가는 모든 형편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요셉이 했던 수고의 혜택을 형들이 다 받아버려요.

그럼 형들은 요셉을 팔아먹었잖아요. 죽으라고 웅덩이에 넣다가 르우벤 맏이가 빼내줘가지고 팔아먹었잖아요. 형들은 단체로 죄인이 되죠. 누구 앞에서? 요셉 앞에서 죄인이 되는 겁니다. 요셉 앞에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요셉 앞에서 죄인 된 그 경우를 거쳐서 그들은 죄에서 사하심을 받는 실효성을 얻게 된 거예요.

그렇다면 이 사실이 언약 사건이거든요.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으로만 일하신다는 것. 흔히 누구나 다 안다고 자부하는 그 이야기 있잖아요. 하나님은 언약을 앞장세워서 일하신다. 하나님은 언약가지고 일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언약가지고 일하시는데 방금 제가 이야기한 것은 창세기입니다. 방금 창세기거든요. 요셉과 요셉 형. 창세기. 그런데 신약에 오게 되면 이 요셉과 요셉의 형들이 결합되어서 점차 율법이라는 그물을 타고 율법 안에서 이것이 계속 전달되게 되어있어요.

수요일에 제가 언급한 중에서 극히 난해한 이야기를 했었어요. 율법은 인간과 하나님이 결합되어 있다는 식의 언급을 했었어요. 율법은 인간과 하나님이 결합되어있어요. 이 세상은 이 세상 모든 일은 나의 일이 없어요. 인간과 인간들이 결합된 일들이 인간의 일이에요, 모든 일은.

예를 들면, 수요일에도 했고 강남강의에서도 했는데, 아이가 “아빠, 나 이거 하고 싶어.” 할 때 “너 왜 그거 하고 싶은데?” “누가 어떤 사람이 그거 하는 게 참 보기 좋았어.” 그게 뭡니까? 이미 기존 기성세대에 어린 아이가 탐낼만한 것이 이미 구성되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 세상은 어떤 일에 실패했다, 성공했다 하는 것은 이미 그 일을 미리 해본 사람들이 이미 있는 거예요. 미리 그 일을 해본 사람이 있다고요. 어떤 사람이 문방구해서 성공했다 하면 나도 문방구 할래, 하면 문방구한 사람이 먼저 있잖아요. 문방구했던 사람이 먼저 있으니까 그 사람 한 일을 나도 그렇게 하면 되겠다 싶어서 했으니까 인간세계는 단독적인 일이 아니고 전부다 개인과 개인, 인간들이 결합된 일이에요.

따라서 한쪽이 망하면 와장창 다 망하게 되어있어요. 한쪽이 망하면. 그리고 내가 실패했다는 게 성립 안돼요. 내가 실패했다는 말은 이 인간세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뜻이고 인간 전체 세상에 문제성이 있다는 겁니다. 이걸 어렵게 해서 나는 타자와 같이 결합되어 있다고 해요. 떨어져 나갈 수가 없어요. 나와 남은 한통속이 되어서 움직입니다. 이것은 내가 누구 탓이라고 할 수가 없게 되어있어요, 인간은. 그 나물에 그 밥이에요. 똑같아요.

주일 낮 설교할 때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둘이 주먹질하는데 서부영화에서 주먹질하면서 천하의 원수처럼 이렇게 싸울 때 옆에 있는 여자가 보기에 “내가 보기엔 둘 다 똑같다. 어느 반푼이가 아니고서야 둘이 사랑하는 걸 누가 모를까? 어느 바보라도 다 알아. 너희 둘이 너무 좋아한다는 거.”

왜? 다른 사람은 상대하지 않고 그 사람을 상대해서 자꾸 붙고 이야기하는 거 보니까 서로 좋아한다는 거예요. 물어뜯고 뒷담화 하고...... 그게 나는 너를 잊을 수 없다는 일종의 사랑고백 같은 거예요. 욕을 하면서도 싸우면서도 친구 되는 거예요. 싸우면서 친구 되고 그 싸우는 사람 없으면 내 인생이 구성이 안 되는. 내 구성이 심심해져버려요. 미나리도 들어가고 다시마도 들어가고 상추도 들어가고 소고기도 들어간 전주 비빔밥처럼 뭔가 자꾸 섞여서 맛있는 음식이 되듯이 인간세상은 하나입니다.

그런데 율법은 하나님과 인간이 같이 섞여있어요. 물론 인간이라 하는 것은 기존의 인간이 아니고 구원될 자에요. 장차 구원될 자. 백성과 하나님이 하나가 되어서 율법이 주어지죠. 그 율법 속에 있는 나가 세상에 있는 나를 공격합니다.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를 공격하죠. “너 속고 있어, 인간아!” 이렇게 내가 나를 질책하는 거예요. 내가 나를 꾸짖는 거예요. 어디 안에서? 율법 안에서 율법의 소리로서 예언의 소리로서.

요셉과 형들은 둘 다 인간이고 똑같아요. 똑같은데 요셉은 이미 하나님의 죄 사함의 혜택, 예언 안에 말씀 안에 있기 때문에 요셉이 형들을 희생하면서 꾸짖고 있는 거죠. 꾸짖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죠. 나를 보낸 것은 하나님이지, 내가 아닙니다. 당신들 복수하려고 내가 온 게 아닙니다. 고개를 드세요, 당당하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단 말이죠. 하나님께서 당신들 구원하기 위해서 나를 형들보다 앞서 보냈습니다. (창45:5,7)

그게 선악구조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내용이에요, 선악구조에서는. 선악구조는 본인이 신이기 때문에 나의 미래 운명은 내 하기 나름이에요.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서 내 운명이 결정된다, 이게 선악구조에요.

그러나 언약에서는 아까 형들이 자기 솜씨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전부다 차단시켜버리죠. 형들이 요셉에게 사과했기 때문에 용서받았습니까? 아니에요. 내 죄를 알고 나는 사과한다, 이전에 죄 사함이 먼저였어요. 형들이 용서를 구한 것보다.

나중에 형들이 요셉에게 미안해하죠. 하지만 그 미안해하는 것, ‘용서해줘’라는 이야기조차도 그래서 용서받는 게 아니고 죄 사함의 효과입니다. 죄 사함. 이미 구원받았기에 요셉 앞에서 자기 자신이 시시한 존재임을 알게 된 거예요.

시시한 존재라는 말은 아까 첫째 시간에 이야기했죠. 그동안 내가 대단한 존재인 줄 알았다. 다시 말해서 그동안 나는 나에게 속아왔다. 마치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선악체계가 다른 대안이 없는 이게 마지막 전부인 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지금 요셉과 요셉 형들의 관계로 제가 창세기 이야기를 했는데 점점 더 율법을 통해서 신약에 가까이 가면서 집중을 어디에 하느냐 하면, 이게 사실은 오늘의 본내용입니다. 여기 본내용부터 봅시다. p.227 보면,【예언의 일관성은, 인간의 신체성이 뿜어내고 있는 원초적 생존의 욕망과 그 육적으로 주변을 해석하는 해석 성향으로, 바깥으로 드러내게 만드는 것과 관련 있다. 인간들에게 있어 해석불가란 없다. 그것은 신체 자체가 ‘표현해 낼 수밖에 없는’ 신체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인간은 시작을 항상 자기 신체로부터 출발한다는 겁니다. 그 전까지 인간은 자아로부터 출발한다 했잖아요. 더 가보자는 거예요. 자아 말고. 자아가 어디서 나왔나 추적해보니까 인간의 육신 자체였다는 거예요, 몸 자체. 아담의 몸이거든요. 아담으로부터 주어진 몸이잖아요.

몸은 어디서 나왔는가? 이것은 주일 낮 설교까지 기다리셔야 돼요. 주일 낮 설교에 이보다 더 깊이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여자가 해산해야 구원받는다는 그 내용이거든요. 인간의 신체로 있기 때문에 그 신체 자체가 바깥 환경과 연결되면서 자아가 발생되는 거예요.

신체를 몸이라 합시다. 몸과 신체를 어떤 사람은 구분하는데 그냥 신체라 하고 신체가 무엇과 만나느냐 하면 땅 또는 땅의 환경과 만납니다. 인간의 몸은 땅의 환경과 만나는데 창세기 3장에 보면 땅은 인간에게 무엇을 제공합니까? 저주를 제공하죠. 여기에 맞대응해서 인간의 몸은 저주를 물리치려 해요. 여기서 땀이 흐르죠. 땀이 흐르는데 결국은 땅의 저주를 버텨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무너집니다. 이게 뭐냐 하면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 (창3:17-19)

인간을 그렇게 만드는 이유가 하나님의 땅에 내려진 저주의 실효성 때문에 그래요. 저주가 말로만 저주가 아니라 실제로 저주다워야 그게 저주거든요. 인간이 어떻게 버티기를 해도 저주한테는 못 이기는 거예요. 이게 인간의 현모습입니다. 이게 우리 자신의 모습이에요.

그런데 인간의 몸에서 선악체계, 몸이 선악지식을 만나니까 여기서 자아가 생긴 거예요. ‘나’가 생긴 거예요, 나. 나가 생기니까 몸은 죽지만 나는 불멸성을 가지고 견디겠다는 거예요. 여기서 종교성이 나와요, 종교성. 여기서 종교성이 나온다고요.

육신아 바이바이, 나는 천당 간다, 이게 종교성이에요. 종교적이기 때문에 종교라 하는 것은 신을 인정하고요, 신. 절대자를 인정하고 절대자에게 내 자아가 성의를 표하는 거예요. 성의, 정성을 표하면 선악체계이니까, 선악체계인 걸 감안하세요, 신이 알고 있는 선과 내가 알고 있는 선이 일치되고 신이 알고 있는 악과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악이 일치되기 때문에 그런 공통선이 있기 때문에 그 공통선의 라인을 타고 같은 것은 같은 것끼리 결국은 만난다는 그 아이디어에 근거해서 내가 제사 드리고 희생하는 이런 선한 행위를 주께서 매몰차게 “저리 지옥으로 꺼져!”라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제사 드리는 거예요.

성경에 나와서 최초로 제사 드린 사람이 누구입니까? 가인이죠. 아벨이 아닙니다. 가인이 먼저 제사 드렸어요. 가인이 제사 왜 드립니까? 구원받으려고 드리는 거예요. 구원받으려고. 왜? 땅의 저주가 너무 혹독하니까. 특히 가인은 목축하는 사람이 아니고 농사짓는 사람이잖아요. 농사지어보면 알잖아요. 복숭아 농사지어보면 알거 아닙니까. 얼마나 힘든지. 지금 KBS 에서 복숭아 농사짓는 거 나오거든요. 효녀. 얼마나 효녀인데...... 전에는 이런 거 나이 60 넘어야 본다 했는데 요새는 내가 보고 있어요.

가인이 신이 주신 추수감사제를 하는데 신이 주신 중에서 일부를 누구한테 바칩니까? 제사는? 하나님께 바친 거예요. 바쳤는데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안 받은 겁니다. 안 받은 거예요. 아까 그 과부 이야기했죠?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지만 딱 한 사람에게만 찾아갔다고요. 그렇게 하는 이유를 여러분 잊어버렸죠? 왜 그렇게 합니까? 내가 과부이기 때문에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인간들의 선악체계에 준한, 불쌍하게 여기는 것은 착한 것이고 착한 것은 선한 것이다, 하는 선악체계에 준해서 신이 방문해야 된다는 선악체계의 지식을 아무짝도 쓸모없게 만들었어요.

창세기 4장부터 나오잖아요. 가인의 제사를 안 받았다. 가인은 그때까지 섭섭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제사를 드렸거든요. 동생의 제사는 받네요. 여기에 돌아버린 거예요, 여기에. 왜냐하면 자기의 선악체계 자체가, 선악체계 갖고 있는 내가 나한테 속는 것을 내가 용납을 못하는 거예요. ‘내가 속았다.’ 하면 끝날 문제를 ‘이 잘난 내가 왜 나한테 속아? 지금껏 나는 나한테 문제 있다고 생각한 적 없어.’ 그럼 그 문제없음을 견지하려면 동생을 죽여버려야 나는 여전히 나의 판단과 나의 해석은 옳았다, 가 계속 유지가 되기 때문에 죽여버린 거예요.

이것을 인간세계에서나 성경에서 같이 이야기합니다. 이걸 질투라 하죠, 질투. 일방적으로 한쪽을 좋아하거나 한쪽을 미워하는 게 질투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쓰는 질투를 누구한테 씁니까? 본인에게 합니다. 나도 일방적으로 좋아하고 나도 일방적으로 미워한다. 이유 대지마. 이유 없어. 왜 저 사람을 좋아할까? 말 걸지 마. 너희들에게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서 한다. 그게 내 사랑이니까.

질투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하듯이 질투 없는 사랑, 질투를 유발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편애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모든 사랑은 항상 편애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내요. 그래야 우리에게 숨겨져 있는 선악체제가 본색을 드러내고 발작을 일으키기 때문에.

내가 생각한 선악기준과 하나님의 선악기준이 다르군요. 다르군요. “하나님 당신의 선악기준과 내 선악기준, 하나님이 생각하는 선악기준과 인간이 생각하는 선악기준은 다르군요.”할 때 “다르군요.”하고 웃는가, 웃는 이모티콘처럼 웃으면 성도. “다르군요.” 인상 찡그리며 나오면 이건 지옥.

“달라서 너무 감사해요.” 이건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에요. “다르군요.”하고 인상 찡그리면 이건 이미 지옥에 예약된 사람이에요. 양쪽 다, 화낸 쪽은 “나의 선악체계를 무시해서 나, 자아가 화내고 있는 게 지금 안 보이십니까?” 이렇게 되는데 웃는 쪽은 “나 같은 건 무시해줘서 감사합니다.” 이쪽은 감사가 나와요. 감사는 성령의 일이고 화내는 것은 악령의 일입니다.

계속 진도 나가봅시다. 신체가 있고 자아가 있어서 자아가 신을 향합니다. 이건 뭐 모든 인간이 다 그래요. 무신론자, 불교신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신에게 나아갑니다. 나아갈 때 그 원동력은 뭐라 했습니까? 무슨 체계? 선악체계. 나도 양심은 있다 이 말이에요. 나도 선과 악, 그 정도는 안다 이 말이거든요. 기본 양심은 공자나 맹자 말대로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량하다, 인(仁)은 있다, 이게 동양철학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어떻게 했습니까? 자아가 신으로 가는 이것 말고 다른 계통으로 찾아와버렸죠. 다른 계통으로 찾아올 때 여기 등장한 신체는 뭐냐? 선지자. 선지자 신체가 돼요. 왜 선지자라 하지 않고 선지자 신체라 하느냐? 이 선지자 신체가 좀 특이해요. 이게 율법화된 신체에요. 율법화된 신체는 여기 뒤에 나옵니다.

p.227 중간에 보면【내부와 외부를 소통시키는 교환원리】라 되어있고【이렇게 해서 자꾸만 자신의 몸을 구조화시키고 구성화시키는 그 구조를 해체하는 구조로서 작용한다고 보았다. 즉 그녀(장문정, 본문의 앞에 언급한 논문의 저자)는 신체를 통과하는 주름들은 안과 바깥의 이중성으로 표상되며 그래서 우리는 신체나 살의 주름들을 의식이라고 칭하기도 하며 타자나 사물이라고 칭하기도 했지만 이것들은 주름의 안과 바깥이 그러하듯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 뒤에 보면【이러한 바깥의 새로운 안을 구성하는 깊은 습곡을 신체에 끌어들이는 것에 불과한 것인데,】이것은 바깥쪽이 안으로 들어오고 안쪽이 바깥으로 뒤집어져서 나오는 거예요. 바깥쪽이 안쪽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안쪽에 있는 것이 바깥쪽으로 내밀어지는 계기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율법이 신체화 되었다는 말은, 거룩한 것이 들어오게 되면, 율법 자체가 거룩한 말씀이죠, 거룩한 말씀이 들어오게 되면 우리의 신체는 어떻게 됩니까? 거룩합니까, 더럽습니까? 더러운 것이 바깥에 나오는 그 신체화를 노리고 율법을 준 거예요.

그게 민수기 5장에 나오는데 민수기 5장에 보면 아주 신기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 의심법이라 하는 민수기 5장 11절에 보면 나오는데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의 아내가 실행하여 남편에게 범죄하여 타인과 정교를 하였으나 그 남편의 눈에 숨겨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그 여자의 더러워진 일에 증인도 없고 그가 잡히지도 아니하였어도”

자, 이 여인이 남편에게 범죄한 사실은 아무도 모릅니다. 모르는데 15절에 보면 그 아내를 데리고 어디로 갑니까? 제사장에게로 가죠. “그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 에바 십분지 일을 예물로 드리되 그것에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 이는 의심의 소제요 생각하게 하는 소제니 곧 죄악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니라”하고 16절부터 기니까 다 읽지는 않겠습니다.

16절부터 31절까지 쭉 나오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21절 한번 보겠어요. 그 소제물을 여자의 넓적다리에 붓습니다. 부으면 “여호와께서 네 넓적다리로 떨어지고 네 배로 부어서 너로 네 백성 중에 저줏거리, 맹셋거리가 되게 하실찌라 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물이 네 창자에 들어가서 네 배로 붓게 하고 네 넓적다리로 떨어지게 하리라 할 것이요 여인은 아멘 아멘할찌니라”

또 24절에, “여인으로 그 저주가 되게 하는 쓴 물을 마시게 할찌니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27절에 보면 그 마신 물이 “그의 속에 들어가서 쓰게 되어 그 배가 부으며 그 넓적다리가 떨어지리니 그 여인이 그 백성 중에서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 그러나 여인이 더럽힌 일이 없고 정결하면 해를 받지 않고 잉태하리라 이는 의심의 법이니”

이 이야기, 주일 낮 설교에 나올 수도 있어요. 30절, “또는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그 아내를 의심할 때에” 의심한다는 것은 가능성이 두 개에요, 남편입장에서는. 그러니까 제사장한테 가니까 제사장이 거기다 뭘 줘요? 이상하게 마술도 아니고 신기한 어떤 율법대로 하니까 여자가 진짜 바람피우면 다리가 퉁퉁 붓고 진짜 아무 일 없으면 말끔해진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현대인들이 들었으면 코웃음 치면서 코가 막 튀어나올 정도에요. 이러니까 내가 성경을 안 믿는 거야, 이렇게 나올 거예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간음한 여인이 퉁퉁 부은 게 아니고 주님이 퉁퉁 부은 거예요, 주님이! 주님이 십자가에서 죄 없는 주님이 퉁퉁 부은 거예요.

신체의 율법화를 시도한 겁니다. 여기에는 어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신체도 주님 것이고 율법도 주님 것이니까. 율법 안에 주님과 성도 다 들어있죠. 주님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서 주께서 스스로 아무런 효과 없는 데에서 실효성이 나타나게 하는 거예요. 오늘 강의의 핵심입니다.

예수님 피를 믿으면 죄 용서받는다고. 그게 실효성 있는 이야기입니까? 말 더듬거리면서 “내가 예수 피 믿는다.”하고는 천당 가고 이렇습니까? 왜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였는지 이유를 알겠죠? 전혀 실효성 없어 보이기 때문에. 내 살과 내 피를 마신 자는 영생을 얻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 받는다, 가 전혀 먹히지를 않는 거예요. 이게 선지자의 운명입니다. 말 안했으면 안 죽었어요. 그런 말하고 돌아다니니까 죽은 거예요.

아무런 효과 없는 데에서 실효성이 나타나게 한다는 이걸 누가 믿어요, 이걸? 한번 해볼까요? 퉁퉁 부으면 뭐라고 하느냐 하면 간 때문이야~ 차두리처럼 간이 안 좋아서 그렇다는 거예요. 의사들 불러서 해보세요. 간이 안 좋아서 그렇다 하죠.

율법의 이런 효과를 드러내게 된다면 이건 이스라엘의 특수성입니다. 이스라엘의 특수성이에요. 이 비슷한 이야기 있잖아요. 자식인데, 자식이 나이 들고 했는데 무심코 놔둬버리고 할례를 안 행했어요. 모세가 애굽에 가서 일하려고 하는데 어땠습니까?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고 할 때 이 실효성, 이걸 누가 믿겠습니까? 아무도 안 믿죠.

초반부터 창세기 4장부터 가인은 이걸 안 믿었어요. 왜냐하면 자기의 선악체계에 하자있다고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에. 자기는 일체 그런 하자 없다 이 말입니다. 내가 들였잖아요, 정성을. 그것도 정성을 들였다고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선악에 대해서 다 서로 통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럼 내가 정성껏 들였다 이 말이에요, 성의를 다하여. 받아야죠.

안 받았다는 말은 지금 하나님체계하고 가인체계하고 안 맞는 게 아니고 인간체계하고 안 맞는 걸로 생각했어요. 왜? 자기는 인간이니까. 자기 옆에 친구들도, 친구들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친구들도 다 마찬가지 인간이니까.

그런데 왜? Why? Why 왜 아벨은 받느냐 이 말입니다. 아벨은 받아버리면 나의 체계 있잖아요, 나의 선악체계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친구 인간체계 다 깨집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다 이건 인정하지 못해요. 차라리 아벨 하나 없애는 게 나아요. 예수님 하나 죽여서 입 다무는 게 나아요. 다른 사람들처럼 정상이게. 이딴 거 안 믿는 정상이게.

그래서 오늘날 성도에게도 이 율법화가 되어있죠. 예수님의 피를 내가 거부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죄 사함 받은 게 아니고 먼저 죄 사함에 의해서 만들어진 작품이거든요, 성도가.

죄 사함이 딱 되니까 더 이상 내가 나에게 선악체계를 일체 모든 것에 적용 안 하게 되는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만 거예요. 그러니까 다른 식구들이나 일가친척이나 가족들한테 어떻게 돼요? 욕바가지, 바가지로 얻어먹어요. 너 인생 그렇게 살아도 되나? 뭐 이런 식으로. 이런 수모를 당해도 아벨인줄 알고 감사히 받으시기 바랍니다. 내 복음과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을 때 기뻐하라. 아까 선지자 이야기 아닙니까? 선지자도 이와 같이 당했느니라.

선지자가 왜 그렇게 당했겠어요? 인간 신체 내에 율법이 들어왔죠. 그러면 하나님의 거룩이 들어왔잖아요. 거룩이 들어왔으면 안에서 뭐가 나옵니까? 거꾸로 죄가 나오는 거예요, 죄가. 죄의 종류가 나오는 게 아니고 죄의 질이 나오는 거죠.

주여, 나는 나한테 안 속아 넘어가려고 애썼습니다. 나는 그럴싸한 존재로 살고 싶었습니다. 시답잖은 죄인으로 살기 싫어했습니다. 이런 고백이 환한 보름달 같은 이모티콘처럼 웃으면서 환하게 웃으면서...... 세상에, 주께서 손을 안 대면 누가 손을 대겠습니까? 나를 내가 손댄다고 이런 결과 나오는 게 아닌 거잖아요. 주께서 손대니까 이런 결과가 나왔죠, 손대니까.

자, 그렇다면 계속 진도 나가봅시다. 계속 어려운 거지만 여러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밀어붙입니다. 창세기 3장 다시 해보겠습니다. 아담의 몸은 신체, 신체는 저주를 감당 못해서 저주한테 지죠.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죠. 땅은요? 땅은 뭐가 작동한다? 저주가 작동하죠. 이 땅과 인간을 하나님께서 응축해서, 요약해서 이스라엘로 만들었어요. 율법화시켜서 이스라엘로 만들었어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모든 계명은 인간에게 준 게 아니에요. 땅한테 준 겁니다. 땅의 거룩을 말한 겁니다. 이 한 마디로 율법해석 끝났어요. 왜 땅을 더럽혔느냐고 인간 조지는 거예요. 왜 땅을 더럽혀서는 안 되는가? 거룩한 하나님이 임재할 땅이고 방문할 땅이고 거기서 살 자기 집이기 때문에 그래요. 이 땅이. 하나님과 인간이 임마누엘, 함께 살 땅이기 때문에 거룩을 몰고 오신 거예요, 거룩을 몰고.

내 땅에서 피 흘리지 말라는 이유가 거기 있어요. 다윗이 성전 지으려 하니까 내 땅을 더럽혔잖아, 너 피흘려가지고. 전쟁 끝나고 지어라. 그래서 솔로몬한테 성전 짓게 했습니다. 내 땅에서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가 없게 하라. 왜? 내 땅이니까. 율법으로 다시 말해서 거룩으로 지배당할 땅이기 때문에요. 그래서 그 땅을 더럽히면 이스라엘이라도 나가! 내보내버리죠.

창세기는 땅이 저주받았다 되어있죠. 그것이 좀더 구체적으로 나가버리면 그 땅에 거룩한 하나님이 오시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면, 신명기 28장에 이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면 나가도 저주받고 들어와도 저주받고. (신28:14-19) 저주의 원천, 저주의 근거지가 하나님의 율법에 있었고 율법의 근거지는 바로 주님에게 있었고 주님의 언약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한 거예요.

그러면 요셉을 애굽 사람들이 왜 못 건드렸습니까? 건드리면 그들이 저주받는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의, 선악체계가 아닌 다른 체계, 생명체계가 요셉에게 있기 때문에 요셉은 그 환란에서 거뜬하게 벗어날 수 있었고 그 가뭄이라는 땅의 저주, 땅이 저주받아서 든 가뭄에서 요셉의 형들은 요셉한테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혜택을 입은 겁니다.

그다음에 민수기 6장 봅시다. 민수기 6장에 넘어가면 인간의 신체와 율법화가 들어오는 율법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합체가 되어버려요, 6장에 보면. 그걸 나실인이라 합니다, 나실인. 나실인 외울 때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나실 제 괴로움~, 이렇게 보면 됩니다. 여기 민수기 6장 18절에 보면 “자기 몸을 구별한 나실인은 회막 문에서 그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찌며”

머리카락을 어떻게 합니까? 쓰레기통에 갖다버리는 게 아니고 먼지에 날려보내는 게 아니고 어디에 합류한다? 화목제물 밑에 들어가는 거예요. 화목제물은요, 인간이 더럽기 때문에 인간은 끼어들지 말고 그 대신 화목제물로 따로, 흠 없는 제물로 따로 마련해서 드리는 게 화목제물이에요.

그런데 유일하게 예외가 뭐냐 하면 인간인 나실인이 정한 기한 내에 하나님이 지시, 서원 지시한 것을 온전히 드릴 때...... 온전히 드렸다 안 드렸다를 뭐로 아는가? 체온계로 아는 게 아니고 머리카락이 째깍째깍째깍 자라요.

자라난 기간 내에 하나님이 시킨 것, 장례식 가지 말고 포도와 관련된 모든 것을 먹지 말고, 머리카락 깎지 말고 이 세 가지죠. 머리카락 깎지 말고 포도주와 독주, 술을 멀리하고 또 포도나무 열매를 먹지 말고. 건포도 같은 거 먹지 말고, 미제 건포도 이런 거 먹지 말고요, 캘리포니아산 이런 거 먹지 말고, 죽은 시체와 가까이 있지 말고. 이런 걸 지켰을 때 째깍째깍째깍 머리카락이 자라잖아요.

딱 서원이 끝났을 때 머리카락 잘라서 화목 제물 밑에 집어넣는 거예요. 이건 철저하게 율법은 그냥 우리한테 오는 게 아니고 특정하게 바쳐진 희생 제물화된 특수한 인간을 나실인이라 하는데 나실인처럼 모든 걸 바친 자에게는 율법이 하나로 결합된다 이 말이죠.

마지막 바친 사람이 누구죠? 예수님이죠. 예수님에게 모든 율법은 완성이 되면서 제가 강남강의에서 했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고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다. (요일5:12) 이게 바로 선악체계가 아니고 바로 생명체계입니다. 아들에 의해서 확인된 것은 바로 죄 사함의 실효성이에요. 죄 사함의 실효성.

하나님은 율법을 어기면 저주합니다. 율법을 어기면 저주하거든요. 모든 율법을 지켜야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죽음과 더불어서 죽으신 분도 예수님이고 죽었었는데 다시 살아난 분도 예수님이죠. 부활하신 분도 예수님이죠. 죽음과 부활이 예수님 안에 다 들어있는 거예요.

그럼 성령께서는 죽음과 부활을 우리 죄인에게 줄 때, 죽음과 부활 이게 뭐냐 하면 죄 사함의 실제성, 실효성이에요. 죄 사함은 이미 예수님 안에서 종료, 완료가 되었어요. 완료가 된 것을 그냥 선물로, 선악체계가 아니고 그냥 선물로, 행함으로 받는 게 아니고 오직 선물로서...... 선물은 다른 말로 은혜라 하고 은혜를 가지고 두 자로 믿음이라 했죠. 이제 믿음이 이해됩니까? 믿음은 극단적인 피동성, 그냥 부여받는 거예요. 그걸 다른 말로 하늘에서 생성된 거예요. 땅에서 내가 만든 게 아니고 생성되는 것.

그래서 로마서 4장에서 믿음의 반대말은 뭡니까? 불신앙이라 하지 않고 믿음의 반대말을 행함이라 하잖아요. 불신앙이라 하지 않고 행함. 이걸 그대로 죄 사함의 효과를 여기서 적용시키는 거예요. 요셉에게 일어난 그것을 요셉 형들에게 그대로 넘겨주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뭔데 예수님한테 이런 죄 사함을 받습니까? 이걸 한꺼번에 말해서 언약체계라 합니다. 언약체계.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사시면 되는데 아브라함을 왜 부릅니까? 언약을 이루기위해서 아브라함을 불렀고 이삭을 부른 이유도 언약을 이루기위해서 불렀고 야곱도 언약을 이루기위해서 부른 것처럼 하나님께서 누굴 찾아요. 그래야 언약이 이루어지거든요.

하나님께서 주님을 언약체결자로 삼아서 하나님이 주님한테 한 것을 이제는 주님이 하나님의 언약적인 일을 했던 자리가 오른쪽이에요, 오른쪽의 자리에 누가 앉는가? 하나님이 계신 게 아니고 우리 주님이 오른쪽의 자리에 앉아버리면 옛날에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했던 그 일을 주님이 행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 택한 자를 구원한 것처럼 주님도 자기 택한 백성을 고를 수 있어요.

골랐다 안 골랐다, 를 어떻게 아느냐? 성령이 임하면 돼요. 성령이 임했다 안 임했다, 를 어떻게 아느냐? 죄 사함의 효과를 받으면 됩니다. 죄 사함의 효과를 받았다 안 받았다, 를 어떻게 아느냐? 내가 나한테 깜빡 속았다는 것을 아는 순간이죠 뭐. 그동안 나는 내 선악체계를 고집하면서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이렇게 되죠.

왜 언약이냐? 그것은 함께 살고 싶어서에요. 그게 임마누엘이에요. 하나님 계신 곳에 하나님의 백성도 함께 살고 싶은 겁니다. 살고 싶기 때문에 선지서에서의 표현은 ‘나의 신부’라고 이야기해요. 나의 신부. 그리고 최종적인 만남을 ‘혼인잔치’. 아가서에서는 ‘나의 사랑하는 여인이여 오라. 내 오른팔로 내가 안아주마.’ 그럼 여자도 가만 있으면 안돼요. 호응해야 되죠. 내가 님의 품에 안겼으니 이리 보아도 님의 얼굴이고 저리 보아도 님의 오른팔이고. 나는 당신의 품 안에 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땅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있을 때 이게 온전한 이스라엘의 완성이고 그 땅이 거룩한 땅이고 그 땅이 바로 천국입니다. 일관성 있는 하나님의 계획에 선지자가 또는 저와 여러분들이 말려들었습니다.

여기 p.227 밑에서 두 번째 줄에 봅시다. 【보편화된 의사소통 세계 형성을 위해 처분 가능한 의미작용의 법칙이 확립되는 데, 여기서 인간은 ‘수동적 자율성’을 발휘하게 된다.】수동적 자율성이란 표현을 했죠. 수동적 자율성, 이 상황에서 반대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수동적 자율성이라는 것은 본인이 뭘 했다,가 아니라 의미의 그물망, 의미체계라 하면 어려우니까 의미 그물망이 우리로 하여금 자율성을 허용한다. 그런데 이 자율성은 무슨 자율성? 수동적 자율성.

모기장 같은 데, 아주 약한 모기장은 안 되고 탄탄한 모기장에 애들이 놀게 되면 모기장이 흔들리는데도 애들은 신나게 놀죠. 애들 키즈카페 같은 거 보면 그물망 같은 거 있잖아요. 마음껏 뛰어놀아도 괜찮은, 트램폴린 비슷하게 있는 그것처럼 그물망이 움직이면 같이 움직이는 거예요.

아인슈타인이 바로 일반 상대성원리에서 이걸 발견한 거예요. 인간의 질량이라 하는 것은 중력의 그물망에 의해서 생성된 것이다. 지구가 동그란 철공이라면 지구 밑에 휘어진(지구의 무거운 질량에 의해 움푹 들어가 휘어진) 고무판이 중력이고, 전자파는 중력에 의해서 축 내려가는 거예요. 빛도 똑바로 못가고 축 내려간 판을 따라서 간다. 따라서 아프리카에 가서 한번 조사해봐라. 진짜 빛의 경로가 바뀔 것이다. 일식, 해가 먹히는 현상을 조사해보니까 진짜 빛이 직진하지 않고 휘어졌어요. 그때부터 아인슈타인을 알아줬죠. 이야, 천재다.

세상 모든 것은 불교 화엄경 비슷하게 인드라망, 관계망 또는 인연의 망, 전부다 출렁이는 인연의 망에 의해서 이것 일어나면 이게 지고 이것 지면 이게 일어나고 서로 얽히고 설켜 있다. 그 아이디어하고 좀 비슷한 아이디어처럼 되죠.

세상은 말씀의 망입니다. 꽃은 피면 지지만 꽃이 피고 져야 될 이유가 지지 않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에요. 그것이 바로 이사야 40장에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사40:8)

그다음에 p.228 봅시다.【(인간의) 신체는 새로운 언어】 의미니까 말씀이죠. 【언어(말씀)의 힘을 구사하는 중력장으로 행세한다.】 말씀의 힘을 구사하는 중력장으로 자기 신체가 새롭게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적인 선악체계는 빠져버리니까 언약에 의해서 움직이거든요. 그럼 이 그물망을 형성시킨,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에 근거지, 그 출처가 어디입니까? 바로 에베소서에 나오죠. 모든 것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에서 나와요. 이게 창세 전부터 감추어놓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비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것, 모든 것이 주로 통일되는 것.

가운데 봉이 있으면 봉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큰 그물망이 춤추고 있고 여기에 성도들이 걸려든 거예요. 성도뿐만 아니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이 예수님 안에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를 위해서 그들은 태어났다가 죽었다가 까불다가 또는 미국 가서 욕도 하고 오고 하죠. 전부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합니다.

푸틴이 원자폭탄가지고 우크라이나를 치겠다 할 때 우리는 기뻐하고 찬양해야 돼요. 못 먹는 감 찔러나보자는 식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차피 세상은 가짜잖아요. 그동안 진짜라고 행세한 것이 역겨웠다 이 말입니다. 가짜인데 의미도 없는 걸 의미 있다고 고집하는 그 꼬락서니가 성도 눈에는 얼마나 꼴 보기 싫었어요. 시시하기 짝이 없는데 뭐 심각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거 보면 같잖죠.

상담하는 것, 상담이 왜 필요하죠? 물어보살 보면 어떤 아가씨가 나하고 사귄지 4개월 만에 명품 다 빼먹고 도망갔는데 저 어떻게 하면 좋아요, 보살님? 지 딴에는 심각한 거예요. 율법이 심각하다는 생각은 못하고.

선지자는 이미 혼절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가 임했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계시가 있어서 자기가 쇼크를 받아야 주의 전쟁 이야기를 거침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거예요. 이제는 사도 바울처럼 거침없이 거리끼지 않고 이야기를 뱉어내야 됩니다. 내가 최후의 순간이었다. 내가 경계선이었다. 내가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에게 속고 있기 때문에 내가 보여주는 매일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지금 안 믿고 있습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우리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그냥 두시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죄 사함의 실효성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자율성이 주님의 십자가에 의한 수동적 자율성인 것을 늘 모든 범사에서 고마워하고 감사하고 웃을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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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