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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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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강-YouTube강의(빛과 어두움 )20220906-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요한복음

403강-YouTube강의(빛과 어두움 )20220906-이 근호 목사

제 403강 제목은 빛과 어두움입니다.
빛과 어두움에 대해서 성경에서 말하는 빛과 어두움은
인간들이 아는 물리적인 빛과 어두움하고 다릅니다. 자연에서 우리가 관찰해서 아는 빛과 어두움하고 달라요. 성경에서 빛과 어두움은 어떤 점에서 다르냐, 그 점은 요한복음 3장 19절부터 21절까지 나옵니다. 제가 한번 후딱 읽어볼게요.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후딱 읽어서 이게 무슨 뜻인지를 모르게 돼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빛과 어두움은 우리가 아는 상식에 의하면 인간의 개입 없이 빛을 발하는 발광체가 있으면 그건 빛이고, 그 발광체가 없는 장소는 그냥 어두움이라고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 요한복음 3장에서는 빛과 어두움이 빛이 빛 되기 위해서는 어떤 인물과 연관성이 있어야 빛이 되고 어두움은 그냥 어두운 게 아니고 어떤 인물들과 연관성을 가질 때 어두움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 인간들이 아는 일상생활에서는 이게 굉장히 이해하기가 힘들죠. 보통 한결같이 검은 옷을 입었을 때 ‘아, 너무 색깔이 어둡다.’ 이러잖아요. 어둡다. 옷 색깔만 이야기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마음속을 결부해서 ‘역시 마음속이나 옷이나 색깔이 똑같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이 말이죠.

그런데 이 성경에서 말하는 이 빛과 어두움은 빛과 어두움 자체 둘 다를 결과로 보는 겁니다. 이 말은 빛이 뭔지를 인간은 처음부터 모르고 있고 뿐만 아니고 어두움이 뭔지를 인간들은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어둡다.’ 에 인간은 동의 못하고 있고 ‘하나님이 빛이다.’ 라는 것에 어느 인간도 거기에 동의할 인간들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같으면 ‘너 죄 졌으니까 똑바로 해’ 이러면 될 텐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어떻게 좋게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어두움을 어두움으로 드러내는데 인간을 내가 사용하겠다는 뜻이 주의 뜻 이예요. 어두움은 어두움답게 드러나도록 인간을 사용하겠다는 겁니다.

그 이유가 뭐냐 우리가 주님한테 물어보면 빛을 빛답게 드러나는데 있어서 어떤 인간도 거기에 기초가 될 수 없고 바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강조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빛이, 빛이 되는 것은 예수님 빼놓고 어떤 인간도 거들 인간은 아무도 없다. 그 이유가 뭐냐 모든 인간은 어두움에 속하기 때문에. 또 달리하면 어두움을 생산해내기 때문에. 인간에게 나타난 게 어두움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면 아까 우리가 인간이 주님 앞에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똑같이 해보는 거예요. 그러면 인간에게 ‘어두움을 나타내지 말고 똑바로 하고 똑바로 살아. 말씀대로 살아. 그러면 네가 빛이 되는 거야.’ 이렇게 좀 잔소리하고 나무라면 되지 않습니까? 라고 우리가 주님 앞에 되물을 수 있거든요. 주님의 관심사가 우리가 훌륭하게 되고 빛이 되는 게 관심사가 아니라 빛이 되신 분이 따로 계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 피조물을 활용하고 있고 이용하고 있고 사용하고 있다는데 우리가 그런 관점을 갖고 성경을 봐야 돼요.

어두움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빛이 돼서 기분 좋다. 이게 성경의 목적이 아니에요. 왜 예수님만이 빛인가를 드러내기 위해서 성경이 있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훌륭하다 하면 되지, 예수님을 빛이라 하느냐, 그것은 빛의 특징이 자체적으로 빛을 알아 볼 수 있는 자질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어두움이라고 하는 거예요. 어두움. 어두움 자체는 지독한 어두움이라서 그 어두움이 자발적으로 알아서 빛으로 올 수 없는 그런 요소로 굳어져야 그게 하나님께서 얻고자 하는 어두움 자체에요.

아까 말 잘못한 거 아닌 가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튼 다시 말씀드리면 이렇죠. 어두움은 절대로 빛이 되면 안 돼요. 어두움이 어두움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중에 어느 하나도 예수님을 알아볼 자가 하나도 없게 만드시는 겁니다. 왜 세상을 하나님은 어둡게 만드는 것을 그렇게 원하느냐, 그것은 오직 주님만이 빛이라는 것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 주의 목적이기 때문에 그래요. 주의 목적은 예수님에 대한 편애입니다. 예수님만 사랑해요. 그겁니다.

그러면 인간의 용도는 뭐냐 빛과 어두움이라는 대치되는 이 상황을 주께서 미리 계획을 했다면 인간의 용도는 뭐냐, 인간의 행위와 모든 용도는 빛은 빛의 능력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두움에 속한 자들은 어떤 몸부림을 어떤 시도 열심히 인생을 바르게 살아도 어두움의 권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라는 사실을 그런 시료적으로 또는 재료로서 소재로서 보여주기 위해서 인간이 만들어진 겁니다. 빛이 뭐냐, 어두움이냐를 둘이 대치되는 그 상황을 증거 하기 위해서 인간을 만든 거예요.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의 특징은 뭐냐, 인간이 노력한다고 해서 그 어두움에 속한 자가 빛으로 오지 못합니다. 이렇게 돼 있죠. 어두움에 속한 자는 19절에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예수님이 빛으로 오신 이유는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거예요. 어느 누구도! 왜냐 하면 예수님만 빛이기 때문에. 나머지는 자동적으로 악해야만 마땅합니다. 악해야 되고 어두워야만 마땅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절대로 예수님이어서는 안 돼요. 예수님 빼놓고 다 사랑해요. 어두움에 속한 자들은. 그래서 인간 세계에서는 되게 사랑이 많아요. 예수님 빼놓고 다 사랑해요. 자식도 사랑하고 남편 사랑하고 아내도 사랑하고 목사님도 사랑하고 교회도 사랑하고 심지어 주님도 사랑하고요. 하나님도 사랑하고 다 해요. 그러나 그 모든 사랑이 뭐로 드러난다? 악한 짓으로, 어두움 자체로만 드러내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그걸 분명히 말씀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거예요.

예수님 오실 때 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하나님의 믿는 빛의 자녀로 우뚝 서기 위해서 그들은 얼마나 거룩하고 성스러운 많은 것을 고안해 냈고 제도와 그런 율례들을 제정했잖아요. 왜 그걸 제정합니까? 율법을 더 정확하게 지키기 위해서 하잖아요. 왜 율법을 지키려고 했죠? 자기가 빛의 자녀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한 거예요. 구제하고 십일조하고 금식하고 저 세리와 같이 악한 일 하지 않고 바르게살기운동 벌이고, 왜 그렇게 합니까? 빛의 자녀기 되기 위해서 한 거예요.

그런데 막상 빛이 되신 예수님이 오니까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이 예수님을 아무도 안 믿으니까 20절에 보면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예수님만이 빛인데 왜 예수님께 오지 않는가, 그거는 자기가 빛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런데 그 빛이라고 여기는 그 자체가 비로소 끝장까지 본 그게 악의 결정체였다 이 말입니다. 성경 요한복음 3장20절에.

성경은 일방 적이에요. 예수님을 표준으로 끝이에요.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 하면 끝이에요. 인간을 두둔하고 인간 편에 서는 거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하나님은 예수님만 편애해요. 편애. 모든 해석이 그래요. ‘거봐, 예수님 모르잖아.’ 왜 그렇게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조장합니까? 그들이 하는 거룩하게 하고 빛의 자녀가 되려 하는 모든 시도가 그게 바로 악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왜 빛 된 생활한다고 빛으로 오질 안 해요.

그런데 예수님 오시고 난 뒤에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을 모르는 게 당연한데 예수님을 빛으로 알아먹고 그분 앞에 오는 자들이 있어요. 아, 그 사람은 착한이구나. 아니요. 요한복음 3장 21절 그게 아니라 그게 착한 게 아니라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는 이유가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특별히 예수님하고 만나게 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요한복음 6장에 보면 나와요. “누구든지 아버지께서 내게 오게 하지 아니하면” 그 뒤에 말, everybody 다 같이 해보세요. 내게 올 수 없다. 아버지께서 내게 오게 하지 아니하면 예수님께로 올 수 없다. 예수님께서 오지 않고 하나님께 가는 사람은 다 지옥 가는 사람입니다. 쓰임 막대가 와야, 이게 내가 착해서 예수 믿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내 의도와 관계없이 주님의 의도로 예수 믿으라고 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인간을 아주 개 무시 하는 여기에서 성도는 최고의 희열과 기쁨과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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