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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20902a 울산강의-역대기상(13강) 11장 5절 : 인간에서 장소로자유게시판역대상

20220902a 울산강의-역대기상(13강) 11장 5절 : 인간에서 장소로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역대상 11장부터 하겠습니다.

11장 1절에,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여 다윗을 보고 가로되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 전일 곧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한 자가 왕이시었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그다음에 3절부터 나오는 것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니 다윗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매 저희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니 여호와께서 사무엘로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 이렇게 되었어요. 말씀대로 되었다는 말은 사람이 한 게 없다, 그런 뜻이죠. 모든 것이 주께서 하신 일입니다, 라는 뜻이에요.

언약이란 게 뭐냐 하면 그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에요. 이번에 일이 성사된 것은 당신이 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한 것도 아니고 주께서 하셨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주님이 그냥 계신 게 아니고, 주께서 계십니다가 아니라 주께서 하셨습니다. 주님이 계십니다(X). 주님이 하셨습니다(O). 이렇게 되는 거예요.

주님이 계셔버리면 이건 그냥 존재 있음이 돼요. 존재가 있음이 되면 하나님 여기 계시고 너 여기 있고 나 여기 있다고 한다면 그냥 하나님, 너 달랑 이렇게 뚝뚝 떨어져서 존재하게 되는 거죠. 하셨습니다, 로 돼버리면 내가 주님을 하도록 하지 않았고, 너도 주님을 하도록 시키지 않았고 주께서 나 일하게 했고, 주께서 너 있다가 돼버려요.

그러면 여기서 주님이 계십니다, 라고 보면 주님도 계시지만 나도 있다. 이렇게 되겠지요. 하나님 계시고, 인간 여기 있고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이 하셨습니다, 라고 돼버리면 이거는 인간에서 뭐로 나가느냐 하면 이게 장소로 나가요.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장소 자체가 주께서 일하는 작업 터가 된다 이 말입니다. 장소 자체가.

그렇다면 평소에 우리가 만약에 주님이 계신다고 보면 이게 그냥 인간에서 장소로 나가는 게 아니고 내가 여기 있으면 내 장소 따로 있는데 내가 일을 해서 주님을 내 장소에 들어오도록, 거기서 내 인생에 구원 받는데 도움이 되도록 내 쪽에서 내가 일한 바가 돼버려요. 그게 그대로 살아있다 이 말이죠.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일을 하면 주님의 일이 가려집니다. 그런 뜻이에요. 주께서 하셔야 되는데 주께서 하신 게 떠오르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가 일한 것만 생각나면 그 내가 일한 것이 뭐를 가로막느냐 하면 주께서만 일했음을 내가 방해물이 되는 거예요. 그걸 가려버리는 거예요.

주님이 계시다. 이걸 믿음이라 하면 안 됩니다. 제가 지난 오후 설교 때 그런 이야기했지요.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어요. 하나님을 믿는데 인정하는데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아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내가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그래, 내가 활동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활동하는 것을 내가 알아채요. 내가 의식을 하고 있어요.

그게 뭐가 문제냐? 열심히 주를 위해서 섬기면 되잖아, 열심히 하면 되잖아, 자꾸 이렇게 나오는데 내가 일함으로써 주의 일에 방해물이 된다는 생각을 우리가 해야 됩니다. 주께서 하는 것을 커버해버려요. 덮어버려요. 우리가 하는 일이. 그러면 우리가 하는 일에 여러분 일해 보면 아시겠지만 썩 마음에 듭니까, 아니면 뭔가 결핍을 느낍니까, 불만이 생깁니까? 어떻습니까? 내가 하는 일에 세상이 안 따라줄 때 불평불만이 생기겠지요. 그러면 그 원망을 누구한테 하겠어요? 결국 하나님한테 해대는 거예요.

그런 사람의 대표자가 있었지요. 신약에 예수님 제자 가운데 누구냐? 가룟 유다였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삼십 냥에 팔아먹었는데 팔아먹을 만한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요. 불만을 갖고 있었던 거예요. 성에 안 차는 겁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을 때는 주님이 내 인생에 대해서 방해했다는 혐의를 갖고 있었던 겁니다. 내가 모든 것을 바쳐서 주님을 삼 년 동안 따라다녔지만 내가 원하는 성과를 주님이 나한테 제공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 거예요. 이게 가룟 유다입니다.

왜 자꾸 가룟 유다를 배포하느냐 하면 가룟 유다 자리에 그게 우립니다, 라는 말을 제가 하고 싶은데 실례될까봐 못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우리에요. 그동안 오십 년, 사십 년 교회 다녔는데 예수 믿고 하나님 믿고 썩 성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차마 말은 못하고 그냥 불만을 터뜨리는데 그걸 노골적으로 하면 벌 받을까 싶어서 기도형식으로 바꾸는 겁니다. 간절한 기도로. 간절한 기도가 뭐예요? 그만큼 할 말이 많다는 뜻이에요. 불만이 많다는 뜻입니다, 주님 앞에. 지금 가룟 유다는 본인이 본인을 수습하려고 하는 거예요. 본인 인생이니까.

아까 그림 다시 그려봅시다. 하나님을 존재 본다면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라고 보지 않고 주님이 계십니다, 이렇게 봐버리면 주님 여기 계시고 나 여기 있고 너 여기 있다, 이렇거든요. 그러면 내가 있을 때 내가 가만있습니까? 일하잖아요. 일하게 되면 여기에 뭔가 성과가 나타나지요. 이게 뭐냐? 내가 일한 이게 누구의 자리냐 하면 그게 나의 자리가 돼요. 아까 약간 언급했지요.

그리고 우리는 뭘 인정했느냐 하면 네가 노력한 것은 뭐로 인정해주느냐? 부채꼴로 해서 너의 자리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주님께서 존재를 인정해버리면 뭐가 되느냐 하면 주님은 주님의 자리가 또 따로 있는 거예요. 따로 노는 거예요. 따로 놀아서 내 쪽에서 주님께 간절히 헌신하고 충성하고 기도하고 봉사해서 주님의 성과를 내 자리를 빛내기 위해서 여기다 끌어당기기 위해서 굉장한 많은 노력을 다하는 거예요. 주님 덕 좀 봅시다.

이게 나의 자리라 하니까 내 가정의 자리라 할 수 있어요. 내 사업체 자리, 내 직장의 자리, 내 가문의 자리, 내 교회의 자리라 할 수 있어요. 내 교회의 자리에 주님이 하신 일이 와서 덕 좀 보자는 겁니다. 기도했으면 얻을 게 있어야 될 게 아니겠습니까. 근데 주님의 뜻은 뭐냐 하면 이런 의식 자체가 주의 일하심을 훼방하고 있다는 거예요. 마귀가 따로 없다는 겁니다. 네가 마귀 노릇하고 있다는 거예요.

인간이 자기 자리를 고집하는 이유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자기가 좀 정상적이고 싶은 거예요. 제대로 된 인간이고 싶어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시다시피 성경에 인간이 선악과 따먹었잖아요. 따먹을 때에 하나님의 벌칙은 뭐였습니까? 정녕 죽으리라 했지요. 그러면 죽을 인간은 정상적인 인간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죽을 인간 만든 게 아니니까 이건 비정상이잖아요.

인간은 본인이 비정상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것을 자꾸 놓쳐버리고 잊어버려요. 자기가 정상이고 멀쩡하다고 여기는 겁니다. 정상적인 내가 정상적인 하나님께 덕 좀 보자는데 하나님은 왜 안 도와줍니까,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하나님은, 네가 뭘 보고 정상이야. 너는 죄인이야, 이렇게 나온다고요.

그러면 인간은 가만있지 않아요. 내가 뭐 죄인입니까? 내가 무슨 나쁜 짓했습니까, 하면 하나님께서 네가 네 하는 일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그 일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네가 철저하게 커버하고 방해하고 막고 있고 감추고 있고 가리고 그걸 덮고 있으니까 너는 나의 방해물이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정상이 아니고 비정상이란 뜻이에요.

인간들은 뭘 해도 안 망가지려고 애를 써요. 이런 사고방식이 정상이 아닙니다. 망가지라고 인간을 만들어놨는데 그게 안 망가지겠다는 것은 배후에 악마가 조종하고 있는 게 분명해요. 하나님의 뜻은 뭐냐 하면 우리가 인간 자체가 정상이 아니니까 정상이 아니고 망하는 그것이 정상적인 네 자리다, 이걸 통보하고 그렇게 되도록 주께서 일을 하시는 거예요.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괜찮은 존재 안 되게 하기 위해서 오늘도 주께선 열심히 여러분에게 일을 하셨습니다. 제발 좀 망가져줘. 제발 좀 무너져줘. 무너져버려라. 왜? 그게 너한테 맞으니까. 네 본색에 맞으니까 제발 무너져줘. 자꾸 성공하려고 하지 말고 인생 그럴싸하게 살려하지 말고. 정상도 아닌 게 왜 자꾸 정상인 체 해. 지금 답답해서 주께서 일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제가 이 정도만 해도 한국교회가 왜 이단인 줄 아시겠지요. 한국교회 이단입니다. 멀쩡하지도 않은 인간이 멀쩡하다고 설쳐대는 게 교회잖아요. 기도했으니까 덕 좀 보자고 억압하는 게 교회잖아요. 교회 안 다니는 인간도 정상이 아니고 교회 다니는 인간도 정상이 아니에요. 전부 다. 그야말로 마귀한테 미쳤어요.

그런 사람을 성경에서는 부각을 시킵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 사울이에요. 역대상 12장 23절에 “싸움을 예비한 군대 장관들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로 나아와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를 저에게 돌리고자 하였으니” 사울의 나라를 저에게, 저가 누구냐 하면 다윗이거든요. 사울과 다윗의 차이가 뭐냐 하면 사울 왕은 자꾸 하나님 생각하고 사무엘 생각하면서 생각하는 게 뭐냐 하면 자기가 하나님께 속았다는 겁니다. 자기가 사무엘에게 속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에 대비해서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를 속였다는 생각이 안 듭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때 “하나님이여, 저 골리앗을 이기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도와주면 날 안 속인 거고 하나님이 안 도와주면 저를 속인 겁니다.” 소년 다윗이 그렇게 해서 골리앗을 이겼습니까? 제가 묻는 거예요. 아닙니다. 시킨 대로 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이렇게 합니다. 이 전쟁은 내게 속한 전쟁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속한 전쟁이라고 사무엘상 17장에서 분명히 이야기했어요. 이 전쟁은 너 떼고 나 떼고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라고 돼 있어요.

사무엘상 17장 47절에,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칼과 창은 누가 쥐고 있습니까? 지금 칼과 창을 쥐고 있는 것은 골리앗 쪽이고 사울 군대 쪽이죠. 지금 유일하게 칼과 창이 없는 사람은 누굽니까? 소년 다윗밖에 없어요. 이 전쟁은 칼과 창으로 하는 전쟁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연히 맞닥뜨리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주께서 하신 거예요. 주께서 하신 것을 내가 받아들여서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 있고 내 존재 있고 네 존재 있고, 존재로 보면 안 돼요. 인간이 아니고 이 설명을 지금 하겠는데 사울 왕이 뭐가 문제냐 하면 이스라엘 속에 사울 왕이 있거든요. 그런데 사울 왕은 이스라엘을 나의 나라, 자기의 나라로 본 거예요. 자기의 장소로 본 겁니다. 사울 왕을 담는 장소로 이스라엘을 생각한 거예요.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고 장소로 설명하거든요. 주께서 하시게 되면 주님의 장소 안에 인간 사울도 들어있고 다윗도 들어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안에. 주께서 하시는 일 안에 불신자도 들어있고 신자도 들어있는 거예요. 지옥 백성도 들어있고 천국 백성도 함께 들어있는 겁니다. 지금 우리는 구약을 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같은 경우에 이스라엘 내부 요소가 사울적 요소도 들어있고 다윗적 요소도 들어있는 거예요.

그런데 사울의 특징이 뭐냐 하면 자기가, 주님이 계신 건 인정해요. 그러나 신뢰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신뢰하는 것은 누구를 신뢰하느냐 하면 내가 행한 것만 신뢰해요. 내가 기획하고 내가 생각한 것만 신뢰해요. 누가요? 사울이요. 그럼 신약에 누가요? 가룟 유다가요.

다윗이 지은 시편에 보면 시편이 전부 기도잖아요. 그 기도의 핵심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하나님이여, 나의 행한 것을 제거해 달라는 거예요. 특히 시편 51편 같은 경우는 대표적이요. 하나님께서 나의 제사도 원치 않고 나의 번제도 원치 않고 주께서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원하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 대 인간 나와 나 사이에 내가 얼마나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얼마나 바치면 되겠습니까? 이 문제가 아니고 현재 내가 있는 이 곳이 하나에 주께서 일하심의 결과로 나타난 어떤 장소 안에 있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어려우면 신약에 쉽게 ‘예수 안’으로 보면 됩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이 내가 예수 믿어서 구원 받는 게 아니고 예수 안에서 구원 받아요. 예수 안이란 장소 안에서 그 공간 안에서 그 자리 안에서 구원 받는 거예요. 인간은 떼세요. 자리가 중요한 거예요. 자리 안에서.

그 자리 안에서 은혜가 오고 그 자리 안에서 용서가 있고요 그 자리 안에서 하나님의 의로움이 작동하고요. 그 자리 안에는 예수님의 피가 작동해서 그게 새 언약에서 내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새 언약 안에서 장소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 장소 안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냐? 가룟 유다 같은 존재고 사울 같은 존재에요. 죄인입니다.

우리가 나는 사울 되기 싫어 다윗 될래.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버리고 다윗을 구원했으니까 나는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 될래. 이렇게 생각하시는 데 그거는 너무나 나 존재 중심으로 내가 뭘 하면 뭔가 될 거라는 성경 자체를 지금 출발을 잘못되게 해석하는 겁니다. 제가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우리는 분명히 선악과 따먹었기 때문에 우리 자체가 정상이 아니고 비정상이에요.

이게 어느 정도 비정상이냐 하면 비정상이면서도 자꾸 자기를 정상으로 보는 비정상을 또 발휘해요. 이걸 고칠 수가 없어요. 우리가 비정상 같으면 군소리 안 합니다. 강도처럼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세리와 창기처럼 죽어 마땅합니다, 이렇게 되겠는데 자꾸 정상으로 생각하니까 주님 저 어때요,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저 독자적으로 괜찮은 존재 맞잖아요, 이렇게 우기는 거예요. 그런데 왜 내가 노력한 만큼 어떤 결과를 안 주십니까, 이렇게 나온다 이 말이죠. 이게 존재 중심이 되니까 그런 거예요.

그게 아니고 내가 도대체 이 동네가 어떤 동네가 이 동네가 얼마나 거룩한 동넨데 시건방지게 더러운 내가 이 장소에 있어도 되나,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야 되는 거예요. “정상도 아닌데 내가 왜 이 장소까지 언약 안까지 누가 집어서 들어왔지? 주께서 하셨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역대상 11장에 사울 왕 이야기, 다윗 왕 이야기할 때 이게 보통 필수적인 이야기가 아니에요. 진짜 필수적인 이야기입니다. 어느 정도 필수적인 이야기인지 지금부터 설명해드리겠어요.

다윗은 주께서 하셨습니다, 로 이끄는 장소 안에 있는데 이걸 뭐냐 하면 아까 했지요. 역대상 11장 3절, 언약 안이라는, 다윗은 장소 안에 언약 안에 있어요. 그런데 사울은 따로 자기 안에 이스라엘을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습니다, 하고 있어요. 전쟁할 때 하나님께 제사 드려야 한다고 우기거든요. 하나님의 존재를 믿습니다.

사울은 또 사무엘도 믿어요. 어려운 것 있으면 누구한테 찾아가야 된다? 사무엘에게 찾아가야 된다. 왜 찾아가야 되는데? 나만의 장소가 멀쩡하기 위해서 건사되기 위해서 지켜내기 위해서 나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목적이 뭡니까? 결국 목표점이 어디에요? 아무리 하나님 찾고, 목사님 찾고, 사무엘 찾고 선지자 찾아도 최종 목적은 뭡니까? 나지요. 왜? 본인은 정상이라고 보기 때문에, 멀쩡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이 사울이 뭐냐 하면 이스라엘의 요소, 요건으로서 들어가 있다는 거예요. 이게 어렵다. 이스라엘은 뭐로 돼 있느냐? 사울과 다윗으로 중첩돼 있다는 거예요. 이스라엘은 사울 요소와 다윗 요소로 중첩돼 있다. 중첩돼 있으니까 하나님께선 사울 왕 시대에는 다윗이 부하니까 누가 권력이 있고 누가 위세가 세요? 사울이 세지요. 다윗은 골리앗 이겼지만 쫓겨 다니기 때문에 백성들도 권력적으로 다윗은 사울에게 졌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복속됐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누가요? 백성들이.

백성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사울 왕의 이스라엘을 그걸 유일한 이스라엘로 정당성으로 인정해줬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중첩된 것을 누가 푸시는가? 하나님께서 풀어버려요. 푸시면 사울 왕 제거되고 차기 왕이 다윗으로 바뀌는 겁니다. 중첩된 것이 일렬종대로 나란히 된 거예요. 풀려서. 사울 왕 그다음에 다윗이 있는데 이 다윗이 그냥 있는 게 아니고 다윗이 누굴 친다? 사울 왕 소유로 돼 있던 이스라엘을 치는 방식으로 다윗이 왕이 되게 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어느 정도 어려우냐 하면 이렇게 어렵습니다. 내가 여기 있잖아요. 내가 여기 있을 때 나는 정상도 아니면서 정상이라고 우기는 이게 사울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도한데는 성도가 내 인생 내가 알아서 구원해야 되고 나는 반드시 천국 가야 된다고 우기는 게 사울이란 말이죠. 왜? 하나님을 믿으니까. 하나님의 하심은 안 믿어요. 하나님을 믿어요. 하나님이 하신 내용을 믿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활동을 믿지 않아요. 사울 왕과 똑같아요.

그런데 주께서 어떻게 하시느냐 하면 나를 뭐로 바꾸느냐? 가룟 유다, 사울 왕으로 바꿔버립니다. 바꾸는 동시에 내 안에 중첩돼 있던 누구를 끄집어내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끄집어내요. 예수님을 내 속에서 끄집어내버린다고요. 그러면 예수님 입장에서 다윗 입장에서 사울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이스라엘을 누구 나라로 봤다? 자기 개인 소유 나라로 봤지요.

그러면 신약에 와서 이 몸뚱이, 여러분 육체 남자, 여자 몸뚱이를 그동안 누구 것으로 봤던 거예요? 내 것으로 봤지요. 그게 바로 하나님을 욕되게 했던 그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중첩된 예수님이 풀리면서 우리에게 역으로 지적해주시는 거예요. 이 몸이 내 몸 같으면 인생 한 평생 살아온 것 고생 누가 했겠어요? 내가 했지 누가 했겠어요.

사오십 대 여자분들 애들 두고 하는 이야기가 그거 아닙니까. 이제 이야기한다만 내가 시집와서 너희 할머니한테 얼마나 구박받았는지, 하고 이야기 시작되잖아요. 그래야 이야기가 두 시간 반 동안 이어지지 않습니까. 내가 시집와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얼마나 구박하고 시아버지 아플 때 똥 기저귀 다 갈고, 나오잖아요. 그것 누가 하셨습니까? 위대하신 본인이 하신 거예요. 그 이야기 왜 합니까? 나는 정상이라는 거예요. 나는 하자 없는 인간이라는 겁니다. 난 남보다 밑지지 않는 존재라는 거예요. 존재에요, 존재. 너란 존재보다 월등하다는 겁니다. 아이 셋 낳아서 내 손으로 다 키웠다는 겁니다. 왜 그런 소리합니까? 나 정상이라는 거예요.

그게 가룟 유다처럼 마귀 들려서 하는 이야기라는 걸 세상 사람들 상상도 못해요. 주께서 지금 우리가 하나, 안 하나 업적을 말하는 게 아니고 내가 했다는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주께서 하셨다는 것을 아주 개 무시하고 짓밟아버리는 그런 마귀 짓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거예요. 나라는 존재가 이만큼 되려고 인생 이만큼이라고 밥이라도 먹고 집 하나 마련해서 사는데 내가 죽을 등 살 등 고생 얼마나 했는지 지금 허리디스크 다 나갔잖아. 너희들 밥 먹이려고 이렇게 고생했다.

특히 아직까지 남편 있을 경우는 덜 하지만 젊었을 때 남편 사별하고 아이 셋 키웠을 때 그런 혼자서 아이 다 키운 아주머니들이 늘 앞에 나오는 말이 있어요. “너희 아버지 세상 버리고 …….” 너희 아버지 세상 버리고 내가 식모부터 식당 안 한 일이 없다, 이렇게 나오지요. 거기서 여러분 감정이입 되지요. “아이고, 저 아줌마도 고생 되게 했구나.” 이런 생각 들지요. 둘 다 사울이에요, 사울.

교회 왜 다녔어요? 교회 다닌 이유가 뭐예요? 나 알아달라고 교회 다닌 거예요? 자꾸 본인이 본인을 수습하려고 하지 마세요. 수습을 한다는 것은 자기가 그다지 나쁜 인간 안 되려고 악을 쓰고 있는 모습이에요. 요한복음 13장 27절에 보면, 이번 수련회 때 이 대목을 언급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떡을 나눠줍니다. 여기서 생각해봅시다. 이스라엘은 인류의 대표에요. 이스라엘이 인류의 대표라는 말은 하나님과 유일하게 접속이 된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대표자가 뭐냐? 그 당시에 지도층에 있는 사람이죠. 장로, 또는 선지자, 제사장, 왕 이런 사람이죠. 그 이스라엘 지파가 열두 지파에요. 그럼 예수님께서 제자를 뽑을 때 일부러 숫자를 열둘을 뽑았어요. 뽑고 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10장에 나옵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왔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새롭게 구성하겠다고 선언하시고 열두 제자를 뽑은 겁니다. 그런데 그 열두 제자가 이스라엘이 인류의 대표인 것처럼 예수님께서 뽑은 열두 사도가 인류의 대표로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직접 같이 동행하고 있는 중이에요.

그런데 그 중에 하나가 누구라고요? 그 중의 하나가 가룟 유다에요. 그러면 가룟 유다는 인류의 대표자의 하나의 요소로서 조건으로 요건으로서 거기에 들어가 있는 겁니다. 가룟 유다 하나지요. 그럼 나머지 제자는 몇 명이죠? 11. 11의 의견이 예수님을 지켜줍니까, 하나의 의견이 예수님을 지켜줬던가요? 어느 쪽입니까? 하나가 셉니까, 열한 명이 셉니까? 하나가 센 거예요. 가룟 유다 하나가 열한 명의 예수님의 지킴을 허사로 만들어버린 겁니다.

이 말은 가룟 유다의 그 태도와 마음가짐을 이해 못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천국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런 뜻이에요. 가룟 유다를 넘어서야 돼요. 그런데 열한 사도는 가룟 유다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가룟 유다 넘어서서 예수님 제가 지켜 드릴게요, 한 제자가 한 명도 없어요. 가룟 유다가 예수님 팔아먹을 때 나머지 제자들 다 도망갔습니다. 전부 다 가룟 유다보다 못해요.

왜? 가룟 유다 속에는 뭐가 들어있기 때문에? 여기 요한복음 13장 27절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떡 조각 하나를 주니까 사단이 악마가 그 속에 들어간지라.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 보고, 유다야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부터 해서 어떤 인간도 가룟 유다를 넘어서서 자진해서 구원 받을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음을 가룟 유다로 하여금 턱을 만들어버린 거예요.

다윗이 아무리 골리앗을 이겨도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을 통해서 다윗이 쫓겨 다니는 볼품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어떤 사람도 사울을 넘어설 수 있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이게 인간의 한계입니다. 하나님 잘 믿고 싶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지요. 그러나 가룟 유다의 요소, 사울의 요소가 아주 세요. 우리가 우리 힘으로 그 선을 넘어설 수가 없습니다.

다시 역대상 11장으로 가봅시다. 11장 3절 끝에, “저희와 언약을 세우매 저희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니 여호와께서 사무엘로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 주께서 일하실 때 말씀대로 일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백성들이 다윗이 괜찮다 해서 다윗을 옹립해서 사울을 이기질 않았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이 개입되지 않으면 어떤 경우라도 다윗이 차기 왕이 될 수 없어요. 그만큼 사울은 견고하고 단단해요.

인간들은 사울 왕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사울 왕이 통치하는 방식에 대해서 모든 백성들이 찬동했다는 그 뜻입니다. 동의한 거예요. 다윗 방식이 아니고 사울 방식에 대해서 그들은 본능적으로 거기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본능들을 갖고 있어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면 그 말씀대로 이야기한 그 대목을 찾아봐야 되겠지요.

사무엘상 16장에 보게 되면 이렇게 돼 있어요.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이게 하나님과 사무엘만 알고 있지 다른 사람은 몰라요. 다른 사람이 알면 다 죽어요. 심지어 사울이 사무엘도 죽이려고 했으니까. 그래서 사무엘이 도망가고 그랬어요. 하여튼 이 나라는 이스라엘은 누구 소유냐 하면 사울 왕 소유에요.

내 것 건드리면 인간은 분노합니다. 흔히 남자들이 여자들은 화 안 낸다 하지만 여자들의 눈물이 분노에요. 여자들은 화날 때 울어버립니다. 질질 짜면서, “당신이 나한테 그럴 수가 있나?” 울 때는 분노하고 있는 중이에요. 눈물도 무기가 되니까. 내 것 지키기 위한 최후의 무기가 눈물이니까. 물론 그것도 이삼 대 말이지 사십 넘으면 프라이팬 들고 설치겠지만. 젊은 때 나름 자기가 순박하다고 여길 때 눈물 흘리면서 호소하는 방법으로 내 것 지키지요.

사울 왕은 지금 이스라엘을 지키려고 합니다. 왜? 자기 나라거든요. 자기가 왕이잖아요. 여러분 인생에서 여러분이 왕이잖아요. 내 것 건드리면 분노하지요. 그런데 내 것 건드리는 그것이 주님께선 뭐냐? 네가 내 것을 유지하기 때문에 너는 자꾸 나를 들이박고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울 왕이 말하기를, “제가 언제 들이박았습니까?” “다윗을 들이박는 것이 날 들이박는 거야.” 우리는 매일같이 내 것 지킨다고 주님을 차로 들이박아서 주님 골병들 판이에요, 지금.

그래서 하나님께서 몰래 가야 돼요. 알면 사무엘이 죽어요. 몰래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거짓말해요. 내가 어디 가서 제사 지낸다고 거짓말하고 몰래 와서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집에 와서 몰래 하는데 뭐라고 돼 있느냐 하면 1절 끝에 보면,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예선전 알지요. 네 아들 중에서 예선하였다고 돼 있어요. 그러니까 이건 누가 왕으로 간택될 줄은 사무엘도 모르는 겁니다. 사무엘이 모른다는 말은, 이걸 아셔야 돼요. 이것 참 어려운 이야기다.

누가 왕인지 사무엘이 모른다는 말은, 인간이 생물학적 존재보다 더 한 게 있다. 생물학적 삶을 넘어서는 삶이 있다는 거예요, 인간에게는. 그저 몸뚱이 밥 잘 먹고 놀러 다니고 나중에 나이 들어서 게이트볼이나 치고 그게 인생이 아니고 그건 눈에 보이는 생물학적 인생이잖아요. 그것에 가려져서 또는 그것에 짓밟혀서 지금 발휘하지 못한 뭔가 더 한 게 있다는 거예요.

그 더 한 게 뭐냐? 이게 언약의 삶이고요 언약에 살면 그 안에 오직 주님만이 관여해요. 주님만이 작업해야 언약의 삶이 되는 겁니다. 인간이 있으면 인간의 개인적 삶은 눈에 보이는 육체적으로 있다, 이게 전부잖아요. 그러나 더 한 삶은 네가 어디에 속해 있다. 신약에는 예수 안이죠. 그리고 구약에는 언약 안이고. 언약이란 장소 안에 네가 속해 있다는 거예요. 이게 더 한 삶이에요.

주변을 돌아보세요. 내 인생 말고 주께서 더 주신 것 있을 거예요. 평소에 그걸 왜 못 느끼는가? 자꾸 내 인생만 생각하다보니까 모르지요. 여기 손에 들여다보니까 빨간색, 파란색 있는데 이것보다 더 한 게 있어요. 까만 것 있어요. 더 한 게 있다고요. 예수님이 해주신 게 있다고요. 그러나 우리는 하루하루 삶이 너무나 빡빡하게 내가 뭘 해야 내가 무슨 결과를 얻는다. 여기에 완전히 굳어져버리니까 동맥경화증도 그런 경화증 없어요.

완전히 거기에 딱딱하게 굳어져버리니까 뭘 다 잊어버리느냐 하면 내가 한 것 말고 주께서 하신 널널한 공간의 혜택을 놓쳐버리고 잊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맨날 삶이 내 한 것만 생각하니까 하루 스물네 시간 짜증만 내고 분노만 불평만 하는 거예요. 왜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돌아갑니까, 이런 식이에요. 많이 줬는데. 뭘 많이 줬어요, 없는데. 맨날 이런 식이에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평소에 우리에게 흔들기를 합니다. 일종의 삶의 투쟁, 삶의 전쟁인 흔들기를 하게 되면 갑자기 내가 당황스럽고 난처한 일이 생기면 거기서 뭐가 생기느냐 하면 나의 의식이 발견돼요. 평소에는 나라는 걸 생각 안 합니다. 잘났는데 굳이 생각할 게 뭐가 있어요. 첫 번째는 내 뜻대로 안 되는 당황스런 일이 있을 때 갑자기 뭐가 확 올라오느냐 하면 나는요, 내가 왜요, 하필이면 납니까, 이런 질문이 나오면서 이 뒤에 공통점이 있어요.

나는 의롭잖습니까? 물음이에요. 나는 의로운 자였잖아요. 나를 왜 이렇게 수치스럽게 만듭니까? 왜 나로 하여금 얼굴 못 들게 만드십니까, 라고 할 때 뭐가 부각된다고요? 갑자기 평소에 안 하던 나. 내가 나를 무의식적으로 어떻게 생각했는가가 티가 확 나게 만들어버려요. 누가 뭐래도 나는 전혀 문제 될 게 없는 인간으로 그 바탕 위에서 내가 살아왔다는 것을 티가 나게 만들어버려요. 당황스럽지요. 주께서 흔들기에 나서면.

그러면 두 번째, 주께서 나를 힘들게 했으면 그다음에 인간들의 반응은 뭐냐 하면 도피, 도망, 숨기에 들어갑니다. 숨을 때 그냥 숨지 않아요. 이렇게 숨어요. 그래도 나는 이것만큼은 선하고 의롭잖아, 라는 그런 업적을 품에 안고 깊은 밑에 자기만의 동굴로 도피해버립니다. 그게 인간이 스스로 위로하는 방법이에요. “이 시점에 내가 망가졌지만 아주 망가진 건 아니야.”

그 도피의 끝은 뭐냐 하면 가룟 유다지요. 장렬하게 자살하는 거예요. 자살까지 안 가지만 일단 도피해요. 누가 나보고 하기만 해봐, 이런 식이에요. 갑자기 감사는 어디 갔는지 없고 자기에 대한 더 단단한 집약이죠. 이게 뭐냐 하면 다윗을 쫓아다닐 때의 사울 왕의 마음이었어요. 이제 여러분들이 왜 자꾸 사울과 다윗으로 이스라엘 역사를 주께서 꾸미시는 이유를 알겠지요.

이스라엘은 사울이 왕이에요. 사울이 대표자가 되는 거예요. 왕은 대표자니까. 그 사울이 대표자일 때 백성들도 다 따랐고 동의했었어요. 왕이 그저 우리 밥이나 잘 먹이면 되는 거지 당신 나라 되던 우리야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야, 동의했지요. 백성들도 자기 육신만 생각해요. 여분의 생물학적 말고 다른 언약의 혜택 같은 그런 것 생각 안 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 생각 안 해요. “내가 원하는 것만 제 때 챙겨주면 우리는 하나님 잘 섬기고 믿습니다, 바칠 것 바치겠습니다.” 이런 쪽이에요.

그런데 지금 사울을 딱딱하게 돌이 되어서 어딜 공격하느냐? 다윗을 공격합니다. 세 번째, 다윗을 공격해요. 공격이란 말은 최선의 방어가 공격이거든요. 내 의를 지키기 위해서 내 인생 망친 것은 저 인간이다. 저 인간한테 속아서 사업자금 다 날렸다. 내 인생이 그렇게 부도날 인생이 아닌데 저 인간이 나를 꼬셔서 저렇게 했고, 그리고 네가 우리 집 며느리로 들어와서 우리 집안 되는 일이 없어. 전부 다 남 탓이에요.

왜? 그래야 자기가 의로워지니까. 의로움이라고 마지막 남아있으니까요. 그런데 공격할 때 사울은 누굴 공격합니까? 다윗을 공격하지요. 다윗에게 누가 있느냐? 다윗은 주님과 함께 일해요. 여기서 주님의 상처, 다윗이 받았던 시편에 나오는 모든 상처는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원수가 공격을 해댔기 때문에 발생된 거예요.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이 이래도 나 다윗 될래, 하겠습니까 아니면 사울이 우리 모습입니다 하겠습니까? 어느 쪽입니까? 이스라엘 역사가 말씀의 역사에요.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에요. 왜 사울을 이스라엘 왕이 되게 했습니까? 다윗이 예수님이라면 사울은 우리 모습이에요.

우리가 내 것 지킨다고 내 하는 일로 인하여 주께서 하신 일을 이렇게 우리는 들이박고 있고 구박하고 있고 핍박하고 있고 괴롭히고 있는 거예요. 내 것 지키기 위해서. 내 수고가 헛수고 안 되기 위해서. 왜? 나는 정상이니까 나는 의로우니까 나는 남한테 지기 싫어하니까. 이게 사울과 다윗이 같이 이렇게 이스라엘에 중첩돼 있었던 겁니다. 이게 풀릴 거예요. 푸는 방법은 어떻게 푸는가, 그건 10분 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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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7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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