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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12장 14절 (구원의 진실) 220705b-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12장 14절 (구원의 진실) 220705b-이근호 목사

첫째 시간에 제가 그런 이야기했지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가 떠났다는 게 그렇게 중요해요. 예수님이 오셨다가 떠남으로 말미암아 구원시켜주시는 분은 이 세상을 빠이빠이 떠나버리고 이 세상에 남아있는 여호와 뭐 어떤 신은 구원이 안 되는 신만 남아있어요.

그 구원이 안 되는 신이 인간에게 뭘 줬는가? 그것은 뭐 대표적으로 라캉과 네비나스를 통해서 언급했지만 그들도 구원이 안 되는 자들이거든요. 그들도 구원이 안 되는 자들이에요. 구원이 안 되는 자들에게 그들은 무엇까지 자기 지혜를 총동원해가지고 인간이 그동안 공부했던 것 다 해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바로 아까 라캉 같은 경우에는 거울 단계를 이야기한 겁니다.

어른 되서 거울을 본다는 뜻이 아니고 처음 자아가 시작되는 시점에 있었던 그 계기가 죽을 때까지 그게 표준으로 하나의 범주로서 계속 유지한다는 뜻이에요 그게. ‘왜 인간은 남을 의식하며 살아가는가?’ 그것은 라캉이 이야기한 거에요. ‘타인이 없으면 내가 없다’ 에요.

네비나스는 무가 없으면, 없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으면 나도 없다. ‘나’가 없는 상태에서 ‘나’가 어디서 나오는가? 그냥 통제되지 않는 육신. 통제되지 않는 육신의 흔적, 그것은 어른이 되도 불면증으로 계속 살아있는 거에요. 불면증으로. 불면증이 하나의 예거든요. 육신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예 중에 하나가 불면증이에요.

잠 안자면 그만이지 이건 불면증 아니에요. 그게 아니고 자야 되는데 자야 되는데 하면서 새벽 4시반까지 5시까지 자야 되는데 하다가 벌써 날 다 새버렸어요. 자야 되는데 하다가. 그래서 제가 어떤 분에게 몸이 아프시다는데 혹시 잠 잘 주무십니까? 이렇게 물으면 몸은 아파도 잠은 잘 자요. 그러면 됐어요. 그러면.

그냥 누우면 잡니다. 그러면 됐어요 그러면 됐어요. 아무 이상 없는데 잠이 안와요. 이거 심각한 거에요. 자기 육신을 통제할게 없다는 뜻이거든요. 이 육신이 어디로 튈지를 알지를 못해요. 어디로 튈지를. 꽉 잡아줘야 되는데. 육신이라는 이 생물학적 이 살덩어리를 잡아줘야 되는데 잡아주는 게 없으니까 잠 오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못하는 거죠.

그래서 네비나스 같은 경우에는 어릴 때 생각하지 말고 어릴 때뿐만 아니고 모든 인간은 육신에 통제되기 위해서 자아가 생겼다 그런 이야기하지요. 그런데 이 인간들 철학자 배후에 누가 있습니까? 마귀가 있지요. 마귀의 특징은 자아를 긍정한다는 거에요. 나를 긍정하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심판의 하나님이에요. 아까 이야기했지요. 이스라엘 구원의 하나님 나타나가지고 이스라엘 뭐로 만들었다? 구원의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이스라엘 심판하는 심판의 하나님으로 전환시켜버렸지요.

이 구원의 하나님에 있어서는 이 자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자아를 심판하는 게 아니고 육신을 심판해요. 육신을 심판한다고요. 그게 왜 그러느냐 하면은 이 자아라는 게 이미지거든요. 육신이 있지 자아는 없잖아요. 자아는 육신에서 나왔으니까. 이 육신을 누가 장난치고 있어요. 누가 다루고 있단 말이죠.

그거 설명할려고 아까 원자 구조를 이야기한 거에요. 이 세상에 보이지 않는 이 세상의 어떤 에너지 장이 있는데 그게 에너지 장이 아니고 뭐냐 하면은 악마의 장, 선악체계 악마의 권세가 이 세상을 꽉 잡고 있습니다. 이 권세에서 나오는 게 뭐냐? 이게 바로 자아라는 거에요. ‘자아’. 이게 주의 뜻이에요. “귀신아 나오너라” 할 때 그게 그 뜻입니다.

자아라고 하는 것은 육신이 통제 못하고 육신이 함부로 통제 못하는 이유는 배후에 시키는 대로 움직여요. 시키는 대로. 자아라는 게. 라캉처럼 남이 있어서 내가 의식해서 하는 게 아니고 남도 마찬가지고 나도 마찬가지고 악마가 제시하는 대로 악마가 움직이라는 대로 움직이게 되어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은 죄의 종이 된다는 거에요. 죄의 종대로 하는데 그게 인간의 선악체제에 따라서 인간은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선악체제.

그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겠습니까?” 지금 이 부자 청년이 그런 이야기할 때 그렇게 이야기하는 자아가 자기를 부정하고 있습니까? 아니지요. 희망을 갖고 있지요. 기대를 갖고 있지요. 긍정하고 있지요. 이것은 나한테 문제가 없다는 거에요.

지난 낮 설교에도 제목을 악마의 고통이라고 제목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는데 악마가 어떤 분통을 터트리고 신에게 대드는 이유는 왜 내가 독자적인 내 의사 결정을 왜 못하게 하느냐고 대드는 거에요. 피조물이 됐다는 이 운명, 서글픈 운명에 대해서 신에게 대드는 겁니다.

저 예수라는 하나님의 아들은 심판주가 됐는데 왜 나는 나를 심판할 권한이 없습니까? 이렇게 되는 거에요. 그럼 선악체계를 알아버리면 내가 나를 평가할 수 있고 심판할 수 있고 어떤 진리냐 진리 아니냐를 단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우리에게도 달라는 거에요.

이게 악마가 이걸 달라고 해도 안 주지요. 안 주는 것에 대해서 반항끼로 인간을 볼모잡은 겁니다 악마가. 인간은 그냥 악마의 볼모잡힌 거기 때문에 인간에게 기대하지 마세요. 그거는 뒤에 대장이 시키는 대로 하기 때문에 그래요.

집주인이 자기 가구 배치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 집 주인은 악마고 그 집안에 갇혀있는 가재도구에요. 가재도구가 해방되는 길은 누가 담 타서 와가지고 그 악마를 묶어버리고 가재도구를 탈취해갈 때나 가재도구가 그때 해방을 얻고 자유를 얻는 겁니다. 지금 이 상태에서는 악마의 그 에너지 장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이 세상 자체가 선악체계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선악체계가 안개로 자욱하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서 이구동성으로 달려들어서 누구든지 예수님에 대해서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했는가? 마태복음 3장 2절에 보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되어있어요. 이게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를 아셔야 돼요.

자, 인간은 뭐를 못 이긴다 했습니까? 자연을 못 이긴다 했지요. 그 예가 갈릴리 풍랑 있는 예를 들었지요. 인간은 자연을 못 이겨요. 인간은 자연을 못 이기니까 자연에다가 자연을 힘들게 해버리니까 고통을 줘버리니까 덩달아 인간도 자연이기 때문에 이 대자연의 고통가운데 같이 신음하는 중입니다. 신음하는 중이니까 이게 고통스럽잖아요.

고통스러우니까 고통을 해소하는 아이디어를 내는 거에요. 아이디어가 뭐냐? 이 자아를 나를 이 고통의 세계 속에서 면해서 고통이 없는 세계, 유토피아, 천국으로 데려가기를 위해서 이 자아들이 모여서 뭘 만드느냐 하면은 종교를 만들어요. 종교를 만들고 거기에다가 종교의 율법을 만들고 그 종교에다가 내세, 구원론, 종말론 다 만들어요. 조직신학적으로 모든 걸 다 갖춰 놨다 이 말이죠.

구원의 서정이라는 게 있거든요. ‘구원의 서정’. 미리 아시고 부르시고 소명 ,중생, 그 다음에 믿음, 믿음 되면 거룩한 성화, 마지막에 영광스러운 뭐 이렇게 있는 거에요. 이 구원의 서정을 이야기할 때 누구나 이거는 뭐냐 하면은 인간의 자아가 어떤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겁니다. 주께서 나를 구원하셔서 미리 아신 자를 부르시고 믿음 주시고 어떻게 어떻게 하게 되면 나중에 영광스러움이 있다.

이 스케줄을 내가 꼬깃꼬깃 간직하는데 이걸 어디다 간직합니까? 나에게 간직하지요. 나에게. 나에게 간직하지요. 이거는 신음하는 이 고통에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는 거에요. 그런데 이 천국이라는 게 누가 만들었느냐 하면은 이게 에너지 장, 악마의 장에서 악마가 만든 아이디어에요. 천국이라는 게 종교라는데. 기독교, 불교 전부 다 마귀가 만든 거에요. 조직신학 모두 다. 철학부터 해서 모두 다.

그러면 하나님은 뭐하시노? 하나님은 심판하시죠. 심판. 마태복음 3장 1절에 “하나님 나라 곧 심판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가까이 왔다. 마태복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그러면 천국이 가까이 왔을 때에 인간들의 지금 선악체계에서 자기들이 만든 종교에서 자기들 생각하기에 누가 천국에서 탈락하고 누가 천국에 합격하겠어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서기관들은 천국에 내신하고 수능 점수가 좋아서 넉넉하게 되고 세리와 창기 도둑놈 강도 이것들은 땡 탈락되겠지요. 돈 좋아하는 세리와 남 죽인 살인강도 그리고 창기 이런 것들은 더러운 거니까 이런 자는 탈락하겠지요. 이 구조 자체를 주님께서 심판 하신다면 심판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뒤집기. 여기 이만기가 나와야 돼. 이만기가.

뒤집기를 하는 거에요. 뒤집기를 하면서 세리 창기가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니고 뒤집기를 한다는 자체가 이거는 구조 자체가 이미 거꾸로 된 구조라는 것을 그들을 통해서 보여주는 거에요. 옛날 유대인들은요 율법에 준해서 소경되고 절뚝발이 병든 자, 귀머거리, 고아와 과부 이런 것은 조상의 죄가 저주가 누적이 되어서 그게 후손까지 미쳐져가지고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제자들도 그렇게 생각했잖아요.

저 사람이 소경된 것은 본인의 죄 때문에 소경되었습니까? 아니면 조상의 죄 때문에 소경 되었습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출애굽기 20장에서 내 십계명을 어기면 3,4대까지 저주받는다 했으니까 그 말씀 그대로 저 윗대에서 잘못된 저주가 아래까지 내려오니까 이것이 태어날 때부터 소경되었다. 이것이 출애굽기 십계명 해석과 일치되는 딱 아구가 맞는 해석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던 거에요.

그런 연구를 누가 합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서기관들이 하는 거죠. 소위 요새 신학자들이 하는 거에요. 지도자들이 하는 겁니다. 인간의 아이디어는 그것뿐이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일에 두 번씩 기도하고 금식하고 간음한 적도 없고 십일조하는 그 바리새인을 뭐라고 했습니까? 짤라버리죠.

오히려 죄인이라고 하는 세리를 뭐라고 합니까? 의인이라고 하는 거에요. ‘네가 의롭다’고 해버리죠. 의롭다고. 뒤집어진 시각. 이 세상을 뒤집어진 시각을 가지고 이게 회개. 회개. 이게 지금 구원의 날이 아니고 제대로 세상을 평가한다면 구원은 없고 오직 제대로 된 하나님이라면 오직 심판만 주어지는 것이 제대로 된 하나님이라는 안목을 가진 자가 이게 기존 세상과는 다른 악마의 세상이 뒤집어진 거에요.

그러면 세례 요한은 뒤집어질려면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죽어야지요. 어디 가서 죽을까요? 물속에 들어가라.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모형입니다. 물속에 들어간다고 죽는 시늉은 맞지만 아예 숨 끊어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물속에 집어넣어서 10초 20초 30초 이렇게 죽이는 건 아니거든요.

물속에 들어가라 이 말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자체가 오는 세계의 입장에서 보면 모조리 다 죽을 세상에 잠기는 것이 합당하다는 뜻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그 물세례가 또 모형이 되가지고 실체는 뒤에 나옵니다. 성령세례와 불세례. 불 받아 마땅하다는 뜻의 불세례. 그리고 성령은 이거는 하나님 나라의 회개하라는 그 말씀의 자체의 작용 때문에 그래요.

자아의 작용이 아니고 그 말씀자체의 작용. 물세례 받는 것은 본인의 작용이지만 성령세례는요 아무도 예수님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영이 임할 때 마치 물이 임해서 덮치는 것처럼 성령이 예수님의 마음이 덮쳐버리면 내가 이 세상에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타인을 의식하는 시선이 주님의 시선으로 회까닥 이게 완전히 뒤집어져버리는 거에요.

그러면 어느 정도 뒤집느냐 하면은 기가 찰 정도로 뒤집어져버려요. 나는 이미 죽었다 그리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 이 정도 나올 정도로 뒤집어버려요. 너희 눈에 내가 산 걸로 보이냐? 뭐 이렇게. 나는 주님이 살아있지 내가 살아있는 게 아니야. 이거는 대화가 통할 수도 없는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진 그러한 고백들이 튀어나오게 만들어버려요. 성령이 임하면.

왜냐하면 성령은 선악체계를 제거해버립니다. 선악체계는 이미 선악체계 지식을 알고 있는 악마의 마음이거든요. 악마의 마음이 우리에게 왔잖아요. 그게 우리 자아 속에 들어왔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속에는 우리는 바보 등신 같고 배후에 악마가 선악체계를 가지고 계속해서 우리를 고소하고 정죄하고 있었던 겁니다.

율법에 이렇게 되어있잖아. 성경에 이렇게 되어있잖아. 왜 안 지켜! 막 밀어붙이는 거에요. 이거 안 지키면 네가 예수 믿어도 너 지옥 가는 거야. 자꾸 흠을 끄집어내고 틈을 만들어내가지고 더더더 완전히 음주운전 측정기를 갖다 대면서 계속해서 더더더더 더 개선하고 발전하고 성화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에요. 성화하기를 독촉하고 있는 거에요. 오늘날 교회 목사들이 교인들 그렇게 들볶듯이.

바보 등신 같은 인간은 모르지요. 길들여졌으니까. 가스라이팅 당했으니까 길들여졌으니까 모르는 거에요. 가만 있어봐. 어떤 게 이익이지? 맨날 이익만 생각해. 선악체계 자체가 날라가버리면 우리는 죽어 마땅함이 되기 때문에 피만 보여요. ‘피’. 피는 죄인이 돼야 피가 보이거든요. 잘난 내가 있으면 피가 안보입니다. 나를 인정해주는 공동체가 보여요. 공동체가. 교회가 보인다고요. 교회가. 날 이뻐해주는 교회가 보여요.

지금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동생은 자기는 자기를 못 봐요 동생은. 자기 가정 이야기하고 있다고요. 옛날 참 우리 가정이 이만큼 좋았는데 이 유산 문제 때문에 이 사단 났습니다. 빨리 해결해가지고 다시 형하고 잘 살기 바랍니다. 지금 이런 자세로 왔다고요. 살아서 뭐하는데? 그게 사는 게 아닌데. 이 찾아온 동생은 자기가 죽어있다는 것을 몰라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뭐냐? 생명은 그 소유에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다. 이런 말씀을 듣고 동생이 취할 태도는 1. 유산을 포기했다. 2. 아 주님도 안 되네 하고 그냥 갔다. 내 뜻은 안 되는구나. 주님도 안 되네. 억지로 참고 견뎌야지 어떻게 하겠어. 무슨 짓을 해도 그 사람한테는 생명이 없습니다. 어떤 짓을 해도. 옛날 살던 그 삶 그대로 이어져갈 뿐이에요. 생명 없습니다.

오늘 강의에 제일 어려운 부분이 도착했습니다. 도착하기 전에 쉽게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지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할 때 오신 것은 천국이 아니고 누가 왔어요? 예수님이 오셨지요. 이 땅의 인간의 천국은 가짜입니다. 천국은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와버렸어요. 예수님 오면서 세례 요한이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가까이 왔다는 말은 뭐냐? 손에 있다는 뜻이에요. 손에 잡혔다는 뜻이에요. 그럼 이 팔, 손은 뭡니까? 육신과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한 통이에요. 같은 몸에 있습니다. 같은 몸에 삐죽 삐져나온 거죠. 그럼 같이 있는 거죠. 누가 누가복음 17장 21절 한번 읽어보세요.

17장 21절. 제일 중요한 부분이고 제일 어려운 부분이에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고 했지요. 너희 안에. 지금 이 세상에 천국 어디 있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이 세상 떠나서 있다고 보지요. 내가 죽어서 좋은 처소 간다고 하는 거에요. 장례식 때.

그러나 천국은 떠나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 여기 같이 있는 거에요. 같이 있으면서 천국이 천국 값을 못 받고 밉상 받고 미움 받지요. 교회 내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인 걸 인정을 안 해요.

자아 자체가 나 자체가 악마이기 때문에 악마는 반성을 할지라도 잘못했습니다 할지라도 잘못했습니다 그 자체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우기는 게 악마에요. 왜? 선악체계에서 반성하는 것은 선에 해당되기 때문에. 악에 해당되다가 선에 해당되다가 어느 쪽을 해당 되도 그건 선악체계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저주 받아 마땅하게 되는 겁니다.

아침 드라마에 나올 이야기인데 그냥 제가 지어보았습니다. 어떤 가정에 애가 없어가지고 고민하다가 조금 어질게 보이는 어떤 이쁜 딸이 있어가지고 어린 갓난 딸을 입양했다 합시다. 입양하고 난 뒤에 그 부모가 본전을 뽑아야 될게 아닙니까. 계속해서 이야기합니다. 공부 똑바로 해 공부 잘해 이번에 전교 1등해. 전교 10등이 뭐야?! 1등으로 끌어올려.

그러면 1등으로 끌어올리면 그 애가 그 부모의 친자식 됩니까? 안되지요. 계속 닦달하는 거에요. 네가 의사가 되든지 네가 사법고시 합격을 하든지 그렇게 해야 지지리 궁상 우리 집안 너 때문에 덕 좀 보자. 이런 심보를 가지고 애를 앵벌이 시키듯이 공부를 시키는 거에요.

나 너 때문에 고생 많이 했다. 이제 너 덕 좀 보자! 그런 식으로 나올 때 그 아이가 공부 잘 한다고 해가지고 그게 친자식 아니지요. 이미 이 세상 자체가 선악과를 심어놨을 때는 악마의 마음으로 계속 조종하기 때문에 주님은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요. 그 자체를.

열심히 해라. 율법 줬잖아. 숙제 줬잖아. 똑바로 해. 이게 아니에요. 너희들이 아무리 율법을 지켜봤자 율법이 너의 진짜 본질, 악마의 자식이라는 것 이 공중권세 잡은 너희 아비는 악마라는 사실을 그걸 들추어내는데 율법이 주어질 뿐이에요. 아니야 내 자식 아니야. 내 자식 따로 있어. 그걸 증거하는 데 주님께서 율법을 주신 거에요.

천국이 너희 안에 있다는 말은 그 말에 대해서 그들은 아이고 반갑습니다 이러지를 않아요. 인간들은 함께 있으면 우리가 천국은 죽어서 갈 필요 없고 함께 있으면 들어가면 되겠네 라는 생각을 하고 싶어도 못해요. 왜냐? 자아가 자아를 부정 못해서 그래요. 자아가 근본적으로 이건 가짜고 없어져야 되는 죄인이라는 생각을 도저히 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들이 생각하는 천국은 내가 잘 되는 천국이에요. 내가 가고 싶어서 만든 이미지가 천국이라니까 내가.

그래서 나한테 돈 떼어 먹은 놈은 천국 오면 안돼요. “짜증나 이씨.” 내 마음에 맞는 친구들 있잖아요. 내 자식들. 이런 사람들만 천국가야 돼요. 내 아들 왕따 시키는 그 집안 천국 가면 안돼요. 그 집안이 대표기도하면 놀고 있네. 저것도 신자라고. 너 천국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선악체계는 인간이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라캉 말대로 남들 들었던 윤리체계를 다 동원해요. 얼추 이 세상에서 대부분이 인정해주면 그걸 진리라고 여기는 거에요. 왜? 타인의 욕망이니까. 타인의 욕망에 우리는 놀아나면서 맹목적으로 왜 사는 줄도 모르고 남 따라가듯이 그냥 따라가게 되면 얼추 맞는 인생 괜찮은 인생이라고 인정해주겠지 그게 넓은 길이에요. 그게 좁은 길이 아니고 넓은 길입니다.

넓은 길 가게 되면 벨기에 만화 스머프처럼 딴따단딴딴따 하면서 가잖아요. 전부 다 절벽에 다 떨어져. 앞에 떨어지는데 바로 뒤에는 몰라요. 절벽인줄 몰라요. 쭉 가다가 다 떨어져요. 차례차례. 뒤에서 떠밀고 난리에요. 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거에요. 넓은 길.

좁은 길은 찾는 사람은 없어요. 좁은 길은요 이 자아 자체가 잘못된 길로 가는 정도가 아니고요 내 자체가 잘못되었어요. 내 자체가. 내가 태어난 자체가 이게 문제 있다고 여기는 사람, 그것은 주님의 마음이 뒷덜미를 딱 잡아요. 딱 와서 이걸 일방적으로 채가듯이 가버려요. 채가듯이. 채가듯이 가버리니까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세리와 창기 강도 그냥 채가듯이 가버리니까 처녀임에도 임신한 사람 누구에요? 마리아.

도대체 성령이 올 기미가 없었는데 성령이 와버린 거에요. 임신할 기미가 없었는데 임신을 해버린 거에요. 38년 된 병자가 병 날 기미가 안보였는데 나았고 소경된 자가 기미도 없이 눈 떴고 마르다 마리아 오빠는 죽은 지 나흘 되서 이미 게임오버 끝났어요. 끝났는데 다시 살아났어요. 그걸 제가 어느 설교에서 참 주님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고 난처하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할 말을 잃어버리게 만들어요. 뭐에요 이거 주여. 주여 뭡니까 이게. 왜 구원받아야 돼요?!

자기가 구원받았다는 데에 대해서 본인이 생소하고 본인이 의아해하는 겁니다.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그걸 가지고 성령께서는 날마다 자아를 제거해버립니다. 자아를 키우는 게 아니고요. 격려하고 독려하는 것이 아니고 자아를 제거해버립니다. 왜 저는 아직도 오늘도 살아 있으니까. 오늘 몇 일이야. 왜 아직도 살았지? 이런 거.

자아를 제거해버리지요. 자아를 제거해버리고 전에 악마의 에너지 장이 있던 자리에 성령의 에너지 주님의 십자가의 에너지 장으로 이걸 교체했음을 날마다 확인케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먹던지 마시던지 너는 선물이다. 먹던지 마시던지 선물이다. 하루를 살더라도 그 나라와 의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 네가 한 달을 살아도 너 가는 길은 넓은 길이 아니고 좁은 길이다. 네가 좁은 길을 선택한 적은 없다.

그런데 주님의 좁은 길이 영생의 길이기 때문에 그 영생 가는 그 에너지가 덮쳐버리니까 덮쳐진 상황을 확인하다 보니까 마태복음 7장 눈에 뜨였고 그게 바로 사람들 가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 사람들 그 큰 길 가는 사람들 다 자아들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자아들이 있다는 것은 자아들이 판단을 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평소에 우리는 직장생활 모두 판단해요. 판단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내 판단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결과가 이 몸을 통해서 이게 나온다는 거에요. 내 판단을 완전히 개무시하고 다른 결과들이 그런 고백들이 나와버린다는 거에요. 당신은 그걸 어떻게 판단합니까?

고맙게도 마귀가 이 땅에 교회를 만들어놨어요. 공동체를 만들어가지고 그 공동체가 뭐냐 하면은 자아를 긍정해주고 잘했다 칭찬하는 단체들이 있는데 그런 그 교회에서 목사가 여러분들은 구원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은 희망 있습니다 설교하는 그것이 얼마나 그게 역겨운 우웩! 토하고 싶은지 그게. 라면 먹고 그 교회 가지 마세요. 갑자기 실례하는 수가 있습니다.

막 생전 안하던 욕이 막 나오고요. 그것도 모르고 옆에 있는 사람은 우리 목사님 설교 잘 하지요? 우리 목사님 설교에 뭐 문제 있습니까? 하면 죽여버리고 싶어!! 설교에 문제 있는 정도가 아니고 죽여버리고 싶은 거에요. 왜 진리는 이야기 안 하고 왜 사람을 좋게 하느냐 왜! 너는 백날 해도 네가 지옥가야 될 인간이야. 왜 그런 자아라고 왜 제대로 이야기를 안 해주냐 이 말이죠.

물론 죽이는 것은 우리가 죽일 필요 없어요. 주님이 알아서, 안 죽입니다. 왜? 다 쓸모가 있어요. 그런 게 있어줘야 가짜가 범람할 게 아닙니까. 선악체계에 근거해서 설교를 해버려요. 율법을 해석해버린다고요. 모든 성경을 해석해버려요. 그런데 그걸 보면 아 저게 역겨워지고 구토 나올 때 주여 왜 저것이 구토가 나게 하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까?

주님 말씀이 내가 저들에게 당했거든. 내가 저런 가짜한테 당했거든. 악마의 논리에 당했거든요. 똑같은 마음이 들어왔기 때문에 같은 구토증을 느끼는 거에요. 잘 되야 되고 번창해야 되고 건강해야 되고 오래 살아야 되고 행복해야 되고 구원받아야 되고 이 전부 다 가짜거든요.

이미 내 속에 뭐가 박혔습니까? 하나님 나라가 박혀버렸어요. 생명이 선악체계 섞이지 않은 생명이 그냥 너와 함께 있느니라 박아버렸다 이 말이죠. 박아버렸으니까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은 전부 다 이거는 공짜로 얻은 거에요. 내가 안 아프고 건강해서 직장생활하고 뭐 이렇게 여러 가지 일하고 성경보고 나중에 눈이 좀 보여야 성경을 보지.

나중에 눈이 어두우면 성경 안 보고 그냥 듣기나 할랍니다. 아직 그것까지는 아니지요. 그것 까지는 아니지요. 아들 딸 구분 못하고 아직 그것까지는 아니란 말이죠. 아직까지 주님의 생명을 증거하라고 하는 거에요. 생명을 증거하라고.

그래서 이게 뭐냐 하면은 불가능함입니다. 오늘 본문 다시 봅시다. 12장. 불가능함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예수님은 모든 걸 가능해요. 예수님은 모든 게 가능한데 이것은 인간들이 일체 가능하다고 여기는 하나님이 아닌 조건하에 하나님은 모든 게 가능해요.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모든 게 가능할거야 라는 것에 대해서 전혀 그것은 주께서 거부합니다.

그래서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했어요. 탐심은요 물리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의 육신은 악마가 갖고 있기 때문에 악마 자체가 탐심이고 악마 자체가 우상이거든요. 우리는 그걸 섬기는 우상숭배고요. 탐심은 우상숭배니까. 우리는 할 수 없어요.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사람의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 직장생활하지 말라가 아니라 이미 생명을 얻은 이상 직장을 다니든 백수든 그 모든 것이 무엇이냐? 생명의 에너지장이에요. 아 나로 하여금 죄인 되지 아니하면 피가 안 보이니까 죄인 되라고 더 하루하루 살게 하시고 이왕 사는 게 그냥 살지 말고 고생 좀 하고 너 육신이 얼마나 평소에 육신이 더러운 것을 알리기 위해서 직장생활하게 만드는 겁니다. 할 줄도 모르는 거짓말 안 할 수밖에 없지요. 아이고 이거 남는 거 없습니다. 남는 거 없지요. 20% 빼놓고 남는 거 없지요. 20% 기본으로 가져가고 남는 거 없지요 뭐.

에너지 장, 왜 제가 자꾸 물리적 용어를 제가 사용하는 이유는 어느 집 마당에 빈 집이라고 다 소문났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마당에 보니까 빨래가 널려있어요. 무슨 뜻입니까? 빨래만 봤지만 지금 안에 누가 살고 있다? 어떤 사람이 살고 있다가 드러나지요. 빨랫감으로 성도를 주께서는 성도로 하여금 이 세상을 살게 하는 겁니다.

멀쩡하게 잘 먹고 잘 살면서도 맨날 죄인이래요. 전부 다 죄인인데 주께서 생명으로 다 은혜를 주신거야. 이런 식으로 하니까 도대체 남하고 의사소통이 될 수가 없지요. “너 앞으로 얼마나 발전하는데?” “발전해야지. 죄 더 짓는데 발전할거야. 아 이런 죄도 있었네. 발전할거야.” 그게 무슨 말이 돼요 이게.

16-21절까지 이것만 이야기하면 딱 정리됩니다. ‘악마성’. 악마성은 육신성이죠. 다시 이야기합니다. 악마는 본인을 부정을 못해요. ‘내가 왜 피조물이야’ 대들기 바빠요. 자기를 항상 긍정해요. 그게 육신으로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심지어 반성해도 반성하는 내가 그렇게 대견하고 이뻐 보이죠. 그러니까 불가능성이에요. 인간은 개과천선해서 예수님 믿는 게 아니에요. 불가능해요.

육신성의 특징은 뭐냐? 발전입니다. 악에서부터 더 좋은 쪽으로 더 발전하는 것. 악에서 발전하는 것. 이게 뭐냐? 시간성. 시간성에 관한 문제에요. 악마는 시간을 가지고 인간을 장난칩니다. 지금은 이래도 나중에 잘 될거야. 자꾸 시간을 끌어보는 거에요. 뭔가 일이 될 거야 한방에 언젠가 한방이 될 거야. 뭐 터질 거야. 계속 끄는 거에요. 계속 시간을.

그 끄는 것이 어디 나오지요. 악마가 인간에게 희망을 주면서 너 지금은 이래도 나중에는 너같이 괜찮은 사람은 나중에 틀림없이 성공하게 되어 있어. 푸쉬킨이라는 시인이 있어요. 러시아 시인. 시인인데 이 사람 시에 ‘인생이 삶이 너를 속일지라도 네가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지금은 슬프지만 나중에 기쁨의 날이 오리니. 우리의 마음은 미래에 있고 지금은 괴로운 것. 하지만 모든 것은 사라지더라도 언젠가는 사라진 것을 그리워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이런 내용의 시에요.

그러니까 조금만 참으면 좋은날 온다 그 이야기입니다. 그게 시간성이에요. 그 시를 사람들은 굉장히 좋아합니다. 청소년 때 그런걸 전부 벽에다가 붙이지요. 그걸 보면서 스스로 용기를 하면서 1년만 고생하면 좋은 대학 간다는 그 일념으로 열심히 다들 공부 다 했지요? 좀 참고 열심히 공부하면 뭐 되겠지. 전부 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거에요.

그 시간성. 그 시간성인데 좀 어려운 이야기는 여기 15절 다시 봅시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이 탐심이 시간성을 내포하고 있고 소유가 인간의 시간성을 내포하고 있는 거에요.

아예 거지대로 살란 말이 아니고 주께서 주목하는 것은 소유가 아니고 탐심이 아니고 그 안에 있는 시간성에다가 하나님께서는 주목을 하고 예수님 주목을 하면서 그걸 거부해 버리는 거에요. 왜 거부하느냐? 너의 인생의 끝은 나로 인하여 이미 확정됐다. 이미 결정 났다는 거에요.

죽기 위해서 태어났는데 무슨 되지도 않는 희망을 갖느냐 이 인간아. 지금 소유가 넉넉하니까 앞으로 몇 년은 더 살 것같이 생각하잖아요. 그러나 주님은 뭐냐? 반대에요. 죽게 되어 있고 지금은 뭐냐? 예수님을 통해서 지옥체험을 보여주는 거에요.

지옥이라는 것은 아버지로부터 버림받는 것, 저주받은 체험.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자 비유 이야기하는 것은 이 부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 자기가 이미 농사 잘 됐고 창고에 곡식이 가득한 이상 그걸 놔두고 자기가 부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인간이 그래 나 오늘 부자 됐으니까 죽어야겠다 이런 인간은 없습니다.

사람이 아직 못 죽고 있는 것은 부자 안 돼 봐서 못 죽는 거에요. 부자 되고 난 뒤에는 죽을려고 하지 않고 부자를 계속해서 시간성을 끌어서 계속해서 더더더 더 부자 유지하던지 더 부자 되고 싶은 거에요. 어떤 사람이 자살을 했는데 아내 죽이고 애도 둘 다 다 죽였어요. 몇 년 전에 있던 사건인데.

그런데 자기도 죽을려고 했지요. 죽을려고 했는데 자살미수 되서 체포됐어요. 그래서 물었어요. 왜 죽을려고 하느냐? 그 많던 재산 다 날리고 5억이 남아있다는 거에요. 5억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겁니다. 얼마나 잘 살았는데 5억, 에게 이게 뭐야. 그래서 죽고 싶다는 거에요. 5억 남느니 차라리 우리 다 같이 죽자 이렇게 나오는 거에요. 이거 미친 거 아니에요?!

그 자체가 지옥입니다. 주님이 떠나버린 남는 세계에서 악마가 인간을 어떤 식으로 악마의 자기의 심보를 얼마나 그대로 복사, ctrl v 아예 복제를 해가지고 오는 인간마다 전부 다 악마의 마음으로 변해가지고 그들로 하여금 신에게 보이지 않는 신에게 내 인생 이렇게 조져놨다고 항의조로 나서든지 전부 다 한 통속 한 패로 다 만들어놨어요. 그중에 교회가 같이 거들고 있어요. 교회가.

그 다음에 20절에 봅시다. 탐심이나 소유성이란 반드시 거기에 뭐가 들어갈 때? 시간성이 들어가면 안돼요. 시간성이 빠져버리면 뭡니까? 범사에 감사하고 주신 것도 감사하고 내일 염려는 내일 염려 오늘에 감사하는 거죠. 시간성이 빠지니까. 그 나라와 의가 주어지니까. 이거는 소유를 감사하는 게 아니고 그 나라 의만 바라보니까 그 나라 의를 바라볼 수 있도록 주께서 필요한 소유만 허락한 거에요. 필요한 소유.

한 달에 2천만원 정도 필요한 소유만 허락하신 거에요. 2천만원 있던 2억이 있던 그거는 상관없지요. 그냥 그 나라 의로. 왜 자꾸 주시는지 모르겠어 이런 식으로. 손님 오지 말라는데 왜 자꾸 오는지 모르겠어. 귀찮아 죽겠어 정말.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고객님. 왜 자꾸 오는지 모르겠다.

20절에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여기 “자기를 위하여” 라는 말이 나오지요. ‘어리석은 자, 자기를 위하여’. 이 말씀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오늘 공부한 것 복습한다고 봅시다.

예수님, 수풀 속에 양이죠. 수풀 속에 양이 누굴 대신했습니까? 이삭을 대신했지요. 그러면 이삭은 누굴 대신하는 인생이냐 하면은 어린 양을 대신하는 삶을 사는 겁니다. 대신한다. 누굴 위하여? 그러니까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죽으시니까 이삭도 예수님을 대신하니까 여기서 이삭이 자기를 위해서가 성립이 됩니까? 안됩니까? 안되지요.

악마의 마음은 악마가 최종적인 거에요. 악마는 악마가 여기 있음 자체를 스스로 긍정하는 게 최후입니다. 마지막 의미에요. 인간의 마지막 욕망도 탐심도 내가 나답게 되는 게 마지막 욕망의 종착점이에요. 아무도 없어요. 하늘에 태양이 두 개가 될 수 없어요. 마지막은 내가 되야 돼요. 내가. 그 ‘나’라는 것은 육신이 있는 그 장에 악마의 정신으로 완전히 에너지 장을 덮어놨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육신은 누구 것입니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는다” 그동안 얼마나 악마가 얼마나 거짓말했습니까. 주께서 그동안 살려주신 거에요. 비유지만 실제로 생각하고 그동안 우리를 살려주신 겁니다. 그래서 대구강의 때 내 목숨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내 목숨은 나의 것이 아니에요.

나의 것이 아닌데 예수님을 증거하는 용도에서 굉장히 귀한 목숨이기 때문에 함부로 관리하면 안돼요.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내 처분을 하면 안돼요. 자살 물론 하면 안되지요. 그런데 하면 안 되는데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것은 생명의 장이 아니고 자살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가 자살하는 이유가 인간은 이익이 아니면 행동하지 않습니다.

자살하는 것이 이 우사스러움과 이 부끄러움에서 유일하게 해방될 수 있는 길이라고 나한테 이익이 된다고 자살해버려요. 예를 들어서 만약에 저한테 빚이 1억이 있다. 그 빚을 누가 주셨습니까? 주님이 주신 거죠. 그러면 빚쟁이가 돈 달라고 하면 간단하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요. 줄 돈이 없다 이러면 되는 거에요. 문제해결 쉽지요?

그걸 보통 내 배 째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 배 째라 나올 거 같으면 돈이 한 이천억 있더라도 우리 평소의 삶은 내 배 째라 식으로 살아야 돼요. 이천억이 하루아침에 다 날라갈 수 있기 때문에 내 배 째라로 살면 돼요. 항상 주님께 영혼을 맡기면 돼요. 이게 이사야 2장 22절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이렇게 나오지요. 너희는 너희를 의지하지 말라 그런 뜻이에요. 너는 너 자아를 의지하지 말라. 의지한다고 네 것 되지 않는다 뜻이에요.

내가 나 붙든다고 나 붙드는 거 아니에요. 호흡이 코에 있다 이 말은 호흡이 정기적으로 숨 내쉬잖아요. 이거 나의 힘이 아니에요. 주께서 그렇게 하셔서 숨을 쉬는 거에요. 호흡은 코에 있다는 말은 코는 내 소관에 있는 게 아니다 이 말이죠.

따라서 호흡도 내 소관이 아니고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자아는 뭐냐? 가치도 없다. 가치도 없다는 말은 제로로 생각하고 아예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라. 그러면 주님이 보이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피가 보이고 그런 것이죠. 그 피를 증거하라고 우리가 대신 살라고 지금까지 우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21절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둔다는 것 이게 어리석은 자의 표본이고 탐심 있는 자의 표본이죠. 이걸 보면서 또 교회에서 그러니까 집에 있는 재산을 교회에 다 바치고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 그렇게 하는데 이제는 우웩! 그것은 집에 수천억이 그냥 있더라도 호흡은 내 목숨은 주님 것이다 이렇게 하면 그거는 돈 보기를 돈 보듯이 하면 되지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이 우리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을 이제는 지식으로 하지 말고 살아가면서 체험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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