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강-YouTube강의(종속 이사야 45:8)20220621-이 근호 목사
396강-YouTube강의(종속 이사야 45:8)20220621-이 근호 목사
제396강, ‘종속’. 어디에의 예속. 무엇의 종이 된다, 그걸 종속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종속의 반대말은 대등 또는 평등. 우열을 논할 수 있으면서 각각 자기 자리를 따로 갖고 있을 때는 종속이란 게 없어요.
서로 독립적인 개체로서 자리를 갖게 되면 자기 고유의 가치와 의미는 본인이 챙기기 때문에 남한테 구걸하거나 할 필요 없어요. 나는 나로 인하여 충족된다, 그걸 자충(自充)이라 하거든요. 스스로 나는 나로 내 것으로 가득 차있다.
거기에 대한 반대말은 종속입니다. 비(非)독립적이에요. 그분 없으면 내가 없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이다.’ 이렇게 말하잖아요. 그건 잘못된 말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아니에요. 인간은 누구누구의 종이 되는 것이 아니에요. 어떤 인격의 종이 되는 게 아닙니다.
로마서를 보게 되면 ‘하나님의 종’이라 되어있는 게 아니고 로마서 6장 16절에 보면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죄의 종과 의의 종입니다. 벌써 뉘앙스가 다르죠. 하나님의 종은 엄밀하게 말해서 예수님뿐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사랑하는 내 종. 그것은 이사야 44장에서 이스라엘은 내 종이라 할 때 그 이스라엘이 나중에 응축이 되어버리면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이스라엘이 됩니다. 인자 위에 사다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땅에서 하나님 일의 중심부, 핵심부, 센터 그쪽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뿐이에요.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활동합니다. 지금 탁자가 둥그런데 가운데가 시커멓잖아요. 좋은 탁자에요. 이 중심부를 예수님이 차지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파급될 때 여기서 의의 종이 생겨나는 거예요. 의의 종은 성도를 의의 종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종은 예수님이고 우리는 의의 종이에요. 어떤 인격체의 종이 아니고 의(義)라는 관계의 종입니다.
구약성경 이사야서 45장 7절, 8절에서는 이러한 난해한 개념이 어떻게 정립되는지 나와요. 이사야 45장 7절에 보면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그렇게 되어있어요.
빛을 짓고 어두움도 창조했다면 이 땅에서 무엇이 빛이고 이 땅에서 무엇이 어두움이냐 하는 것에 대해 그다음에 반드시 이야기가 나와야 됩니다. 그 이야기가 7절 다음에 8절에 나옵니다.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 같이 듣게 할찌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 내릴찌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찌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그다음 결정적인 것이 9절에 나옵니다.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찐저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리켜 그는 손이 없다 할 수 있겠느뇨” 그렇게 되어있어요.
그러니까 결국 인간은 토기입니다. 토기인데 토기의 용도가 뭐를 담는 거예요. 토기 입장에서 물건이나 과일 등을 담기 위해서 토기를 만들었다면 토기만큼 종속된 상태를 더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어요. 토기. 토기의 특징은 공간이 비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도가 구원받는다는 것은 다 긁어내는 거예요. 다 긁어내고 거기다가 이사야 45장 7절, 8절의 말씀처럼 하늘에서 의를 부어주게 되면 의가 이렇게 고스란히 남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의를 담는 토기. 이게 로마서 9장 21절에 보면 유명한 말씀 나오죠. 내가 긍휼의 그릇과 진노의 그릇. 이것이 바로 이사야에서 언급된 걸 그대로 인용한 거예요.
지금까지 한 걸 요약하면 개인구원은 없습니다. 나라는 게 있고 내가 구원을 받는 방식은 없습니다. ‘나’라는 인격자는 뭐로 전환되어야 하느냐면 토기로 전환되어야 돼요. 왜 그렇게 되어야 되나? 종속이 안 될 경우에는 너하고 나하고 독립적이에요. 독립적이라는 말은, 같은 말을 되풀이합니다만, 고유의 자기 의미와 가치를 본인이 갖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건드리지 마라. 나 이런 사람이야.’ 이건 종속이 아니에요. 안이 텅텅 비어있는 게 아닙니다. 나 이 정도야, 할 때는 오히려 내가 독자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자기가 필요한 것을 자기가 줄곧 끌어 모은 거예요. 이것은 ‘나는 내가 창조했다’가 됩니다.
이게 현재 현대사회에서 교과과정이에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모든 교과과정의 특징이 바로 오직 이 정신입니다. 너라는 존재는 네가 만들어야지.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서 너답게 만드는 방법은 네가 너 원하는 대로 만드는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열심히 지혜를 끌어 모으고 실력을 갖추고 몸도 튼튼히 하란 말이야, 이런 뜻이거든요.
개별적인 시민정신을 함양하는 게 교육의 목적입니다, 현대인의 국가 교육은 하나의 국민으로서 하나의 시민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할 때 각자 자기의 재주 있는 역할, 전문분야를 할 때 전체적으로 국가가 산다, 발전한다, 이 모토입니다. 개인의 독자적인 의식이 모여서 결국 우리나라라는 단독 국가의 가치와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 그들은 하나의 국가공동체로 모인 겁니다.
그래서 집안에서도 많은 형제들 가운데 다른 형제들은 다 취직해서 열심히 아침에 출근하는데 나이 느지막이 사십 넘어서 백수 돼가지고 빈둥거리고 낮 12시에 일어나서 점심 비빔밥에 고추장 쳐서 자기 혼자 먹으면 그 아버지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 하고 막 뭐라 하겠죠? 드라마 제목 비슷한 거 나왔습니다만. “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 네 나이에 너 혼자 논다는 게 뭐냐? 왜 너는 네 역할을 못해? 집 나가라.” 이렇게 되겠죠.
그러니까 은연중에 우리가 자꾸 사람이라고 생각을 할 때는 독자적인 의미를 함유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거예요. 성경은 그런 인간을 만든 적이 없습니다. “의를 담을래? 악마가 준 악마의 정신을 담고 운반할래?” 지금 그것만 성경에서 언급하는 겁니다.
주님의 성과가 의라면 그 의를 담는 자가 성도가 되고요. 주님의 성과가 없는 자는 저주받은 그릇이 되는 거예요. 이사야 45장 9절,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찐저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왜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네가 왜 대드느냐 이 말이죠. 10절에 보면 “아비에게 묻기를” ‘아비가 뭔데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이게 말이 되냐? 라고 이사야가 되묻고 있습니다. 아버지보고 ‘왜 저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할 수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만들고 성도 만든 것은 빛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만들어진 빛을 저장하고 그 저장된 토기를 자기 나라로 해서 영원히 하나님의 창조의 성과를 보기 위함이고 지옥은 어두움을 창조했기 때문에 그 어두움을 담을 그릇을 지옥을 만들어서 거기에 배치하려고 주께서는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의 비어있는 토기인데 그 내용은 누가 채운다? 주님이 날마다 매일같이 채운다, 그렇게 생각하셔서 내 것으로 나를 채우지 않길 바랍니다. 주께서 다 비워내게 하고 다 긁어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