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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서울의존강의20220616a 베드로후서 2장 9절(반박해보자)-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베드로후서

서울의존강의20220616a 베드로후서 2장 9절(반박해보자)-이 근호 목사

베드로후서 2장 9절,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그렇게 되어있죠. 이 세상에 대해서 우리 하나님이 하신 조치가 있어요. 조치를 간단히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구성적 세계 체제. 이게 좀 어려우면 ‘세계’를 없애버리고 구성적 체제. 구성적 체제 또는 체계를 세상의 프레임(frame)으로 덮어씌운 겁니다. 이 세상의 프레임으로.

지구가 이렇게 있다면 지구를 철창 안에 가두어두는 것처럼. 동물원 철창 안에 고릴라 같은 것을 집어넣잖아요. 그럼 고릴라는 동물원 안에서 아주 자유롭습니다. 철창 안에서 자기 우리 안에서 너무너무 자유롭죠. 그런데 그 고릴라가 철창 안에 있으면 자유로운데 밖에 나가려면 철창을 만납니다.

그래서 ‘철창 안에서 자유로운 고릴라가 될래 아니면 철장 밖에 있는 인간이 될래?’ 이렇게 묻는 것 자체가 잘못이겠죠. 고릴라는 그 제한된 공간 안에 갇혀있지만 인간은 그것을 구경하면서 자신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그때 인간들은 고릴라보고 ‘아이고, 이 어리석고 미련한 고릴라야. 넌 어쩌다 그렇게 잡혔냐?’ 라고 그렇게 측은해할 수가 있어요. ‘고릴라 네가 인간만큼 뛰어났다면 똑똑하다면 인간에게 사로잡혀서 그냥 인간이 주는 바나나 이런 거나 먹고 평생을 거기서 살다 늙어죽지는 않았을 텐데. 두뇌가 좀 크든지 안 그러면 스마트하든지 해서 네가 인간이 되었으면 참 좋았겠다.’ 하는 그런 생각도 들 수가 있어요. 어린아이 같은 경우에는 그 고릴라를 보고 ‘엄마, 고릴라 너무 불쌍한 것 같아.’ 그럴 수가 있는 거예요. ‘너무 불쌍해, 고릴라가. 덩치는 인간보다 큰데 갇혀 사니까 너무 안됐어.’라고 그렇게 생각하겠죠. 그 안목, 고릴라를 바라보는 인간의 안목이나 우리 하나님이 인간을 보는 안목이나 만만치 않습니다.

9절에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갑자기 고릴라 튀어나왔죠, 여기에. 심판 날까지 어떻게 하신다? 형벌 아래 둔다는 말은 저주 아래 가두어둔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오늘 강의에서 여러분들이 먼저 생각해야 될 것은 체제, 이 체제가 이미 확정 났다는 겁니다. 이 체제가. 지구를 둘러싼 이 체제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확정적이에요. 이것을 뭐라 하느냐 하면 ‘굳어졌다’. 이미 굳어진 거예요. 냉장고 세팅 다 된 것처럼. 이미 굳어진 거예요. 뭐가? 이 지구를 가둬두는 체제가 이미 굳어진 겁니다.

불신자한테는 이 체제가 보이지를 않아요. 확정적, 확정 나버린 그 프레임, 틀, 원리원칙, 주님께서 세우신 결정적이고 이미 종결시킨 원리원칙이 보이질 않는 겁니다. 이 체제가 철조망이 쇠창살이 보이지를 않는 거예요. 그냥 지구만 덜렁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프레임이 보이지 않는 이게 불신자죠.

베드로후서 2장 끝까지 가게 되면 불신자의 특징을 뭐라고 규정할 수 있느냐 하면 미련한 자에요, 미련한 자. 확정된 것, 결정난 것을 보지 못하고 그냥 갈 때까지 한번 가보자는 식으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뭐 손에 잡히는 건 없고 갈 때까지 가보자. 갈 때까지 가볼까~ 말 타고 가자. 강남 스타일에서. 갈 때까지 가보자. 모든 인류의 미래는 이미 결정 났다고 함부로 감히 말할 사람은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없지 아니하냐. 그런 식으로 세상은 그렇게 외치고 있고 불신자들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게 미련한 자죠.

미련한 자의 증거가 베드로후서 2장 22절에 나옵니다.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것은 잠언서 26장 11절에 보면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여기 베드로후서 2장 22절에는 미련한 자가 없어요. 없는데 잠언서 26장 11절에는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거듭 행한다는 뜻은 갇혀있다. 자기가 활동하는 그 구역, 나와바리, 구역이 제한적이에요. 놀던 가락이 뻔해요.

그래서 베드로후서 2장 9절을 다시 보게 되면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형벌 아래 둔 것은 가두어진 거죠.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그렇게 되어 있죠. 그럼 심판 날까지 형벌 아래 가두어졌으니까 10절에 보면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뭣도 모르고 마음껏 자유를 행사하고 있는 거예요. 앞뒤가 뭔지를 모르는 거예요. 뭐를 모른다 했습니까? 체제. 하나님이 확정지은 그 프레임, 틀 그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겁니다. 알아야 될 것은 안 알고 엉뚱한 것만 알고 있다니까요. 이집트하고 축구 몇 대 몇이고 그런 거. 그거 뭐 4대1로 이긴 거.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고 그런 거예요. 이집트랑 축구할 때 손흥민이 한 골도 못 넣은 거. 굳이 그걸...... 한 골 넣고 안 넣고 그건 큰 문제가 아니거든요.

왜 사람들이 주님이 확정지은 틀에 대해 관심이 없느냐 하면 자기가 자기를 키우기 위한 체계, 틀을 자기가 만들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도소 철장 안에 구치소 안에 있으면서 거기서 자기 집 짓고 있는 거예요. 나름대로 교도소 철창 안에 있으면서 거기서 자기를 보호할 구역을 따로 또 만들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되니까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이 뭘 만들어내냐’가 아니라 ‘주께서 뭐로 모든 체제를 확정지었느냐’ 그게 중요하다는 것이 여러분 와 닿죠. 그러면 주께서 만드신 체제가 제일 먼저 적용되는 대상이 2장 4절에 나옵니다. 거기 보면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참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여기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는? 객관식으로 해볼게요. 다음 중 가장 무서운 이야기는? ①번-호랭이 나온다. 호랑이도 아니에요. 호랭이. 어흥. 호랭이 나온다. ②번-곶감 안 준다. 야, 이거 무서운 이야기에요. 곶감 안 준다. ③번-용돈 없다. 젊은 자식들한테 이제부터 용돈 너 알아서 써라. 다음 달에 나이 서른 되는데 서른 되거든 독립해라. 얼마나 당사자들은 무섭겠어요. 엄마, 대출 좀 받을까? 대출 7프로다. 올라가지고 은행 대출 7프로다. 영끌해도 영혼까지 다 끌어 모아도 너 안 돼.

맛있는 거 안준다. 호랭이 나와서 너 잡아먹는다. 다 무서운 이야기죠. 용돈 없다. 독립해라. 나가라. 나가버려. 이것도 무서운 이야기죠. ④번이 뭐냐 하면, 용서 없다. 몇 번입니까? 용서 없다. 같은 말로 속죄 없다. 속죄 안 해준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말이 속죄 없다, 용서 안 해준다는 거예요.

판사로부터, 행한대로 처벌할 거야. 자비는 없다. 네 행한대로 처벌할 거야. 이게 요한계시록 20장 마지막에 보면 행함책에 대해서는 그 특징이 뭐냐. 행함책 명단에 기록된 사람의 특징은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는 용서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속죄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2절,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그럼 평생 그들은 도대체 뭐하고 살았어요? 재벌이 되고 뭐 위대한 대통령이 되고 어떻게 많은 재산을 가져도 그딴 것이 그런 권력과 재산이 내 죄를 용서해줍니까?

부자가 천국에 못 들어가는 거죠. 뭐 못 들어가죠. 어렵다 정도가 아니고 아예 못 들어가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 못하는 것과 똑같이 부자는 천국에 못 갑니다. 그럼 부자가 살 빼가지고 돈을 남한테 다 주고 가난한 사람 되면 낙타가 홀~쭉한 낙타가 돼서 바늘구멍 통과될 수 있습니까? 그 말은 어떤 경우라도, 이 김포공항을 옮기든지 말든지, 인간은 어떤 경우라도 천국에 못 간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프레임 자체, 하나님이 만든 체계 자체가 속죄될 자와 속죄 안 될 자와 관련된 체계이기 때문에. 속죄가 되는 체제를 주께서 이 세상에 프레임으로 틀로서 이미 설치를 해놨어요. 인간이 사는 세상에다 지구보다 더 큰 구조로 체제를 만들어 놨다 이 말이죠.

그래서 신자는 이 세상에서 돈 자랑, 주먹 자랑, 사람 자랑, 인물 자랑 그런 거 안 해요. 벌교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고 순천에 가서 인물 자랑하지 말라는 그런 말 있죠. 그 전라도에서 돈 자랑하지 말라는 그런 말 있어요. 목포 그런 곳에 일제시대 때 돈 좀 있으니까 깡패들이 많이 있었죠. 주먹 휘두르면서 휙휙 이 소리는 내 입에서 나온 소리가 아닙니다.

그냥 행동 하나하나 생각 하나하나가 오직 자기를 지키기 위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자기 체제의 그 나뭇가지들, 재료들 그거 끌어 모으는 데에 평생을 다 바치잖아요. 끌어 모아도 좀 새 거 아니고 순 고물들 이런 거 끌어 모으죠. 마치 새가 나뭇가지 해가지고 새끼 보호한다고 보금자리 꾸미는 것처럼 인간도 나름대로 꾸며요. 그 체계와 구성을 본인을 위해서 본인한테 향하도록 나 하나 안전하기 위해서 그 작업에 몰두하고 거기다가 전심전력을 다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더 큰 체제, 지금보다 더 큰 체제. 그것도 인간은 그냥 시도할 뿐이죠. 현재진형이잖아요.

그런데 주님의 체제는 확정 났고 끝나버렸어요. 이미 체제가 완성이 되어버렸다 이 말이죠. 누구 하나 봐주세요. 우리 아들은 복음 안 믿어도 어떻게 천국으로 빠질 수 없습니까? 제가 빽 써서 안 됩니까? 이러한 다른 경우의 수는 없습니다.

여기 2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이 말은 여기서 범죄한 천사들을 지옥에 던져 넣는 그 체제가 뭐냐? 그 체제에 대해서 2장 4절에 나온다는 거예요. 그 체제가 뭡니까? ‘자비는 없다. 일체 속죄는 없다.’라는 체제. 그래서 불신자에게는 속죄와 자비와 은혜가 없는 체제를 주님께서 이미 설치해놨습니다. 확정지어놨습니다.

그리고 4절 끝에 보면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이렇게 되어있어요. 이 한 마디 한 마디, ‘심판 때까지’ ‘지킨다’ 이 한 마디 한 마디가 아무리 지혜가 있고 권력이 있고 못하는 것이 없는 악한 천사라도...... 여러분 악한 천사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잖아요. 인간을 꼬시기까지 했으니까. 그 악한 천사라도 그 체제에서 탈출이 가능하다, 가능하지 않다? 악한 천사가 가능하지 않죠. 악한 천사라도 가능하지 않아요, 그게. 그게 뭐냐? 체제이고 그 체제는 변동이 있다, 없다? 이미 변동이 없어요. 확정되었어요. 이미 정답 나와버린 거예요. 정답이 나온 거예요.

악한 천사를 잡아가두었던 그 체제가 그대로 이 지구상의 인간들에게 적용되어버리면 똑같이 인간들에게 가동되어버리면 이 세상에서 속죄의 대상이 아닌 자에게는 악한 천사에게 적용시켰던 그 체제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 적용되는 체제의 본질, 핵심은 뭐라 했습니까? 용서치 아니하시고. 용서치 아니하시는 것, ④번이 제일 무서운 거예요.

늦은 분을 위해서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는? ①호랭이 나온다. ②곶감 안 준다. ③용돈 없다. 나가라. ④용서 없다. 몇 번입니까? 너에게 줄 자비는 없다. 에서가 자기 아버지보고 “아버지, 저에게 올 복은 없습니까?” “없다.” “진짜 없습니까?” “없다.” 전혀 없는 거예요. 네 동생한테 줄 거지, 너한테 줄 게 아니라는 거예요.

자, 이 체제, 용서가 없다는 체제가 있으면 어떤 체제가 또 신자한테 가동되겠죠. 용서가 없다는 체제의 반대말을 하면 되죠. 뭐겠습니까, 그 체제는? 용서 없는 이건 불신자한테 하는 거고 신자한테는 뭡니까? ‘용서가 있다’가 되겠죠. 그럼 이 문제, ‘다음 중 가장 무서운 이야기는?’ 이건 불신자한테 해당되는 거고

신자한테는, 다음 중 가장 즐거운 소식은? 또는 기쁜 소식은? 아무리 해도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 소식은 무엇인가? 분노가 나지 않는 소식은? ①번-호랭이 나오다가 죽었다. ②번-곶감 한 포대기 준다. ③번-용돈 무한대로 줄게. ④번-용서 있다. 몇 번입니까? ‘용서 있다’죠. 용서 있다. 결국 이것은 용서받았거든 모든 걸 상실해도 너는 분노하지 마라. 너는 즐거워할 수 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것은 이미 확정된 체제다. 확정 난 결론이다. 이건 변동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2장 4절과 2장 9절을 보면서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했잖아요. 이 천사가 영물(靈物)이란 말이죠. 천사는 인간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천사죠. 천사인데 범죄한 천사죠. 자, 천사는 눈에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안 보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대로라면 하나님의 일 진행이 이렇게 돼요.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에게 가동시킨,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을 가두어두었던 데에 가동시킨 체제가 그대로 인간에게 적용된다는 이야기를 베드로후서 2장 1절부터 22절까지 계속 쭉 나열하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이 시험에 들고 불신자들이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 하는 것은 악한 천사에게 적용시켰던 그 체제가 체제답게 하기 위해서 그들은 그런 일을 해야만 하는 거예요. 하기 싫더라도 육체에 따라, 하기 싫더라도 그들은 육체에 따라 살아야 돼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월요일에 퇴근하고 소주 먹고 화요일에 퇴근해서 맥주 먹고 수요일에 퇴근해서 빼갈 먹고 목요일에 퇴근해서 위스키 먹고 금요일에 퇴근해서 또 소주 먹고. 토요일은 하루 종일 막걸리 먹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 있겠죠? 그 사람에게 너 생활패턴 바꿔라. 생활패턴 바꾸면 어떻게 바꾸겠어요? 월요일에 소주 먹던 걸 막걸리 먹고 화요일에 소주 먹고. 그럼 바꾼 겁니까? 안 바뀔 거예요. 왜?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불신자한테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육체의 쾌락 말고 다른 대안이 없어요. 그럼 너 교회 나가라. 교회 나가죠. 주일에 교회 나가고 월요일은 교회 안 나가니까 월요일에 소주 먹고. 그다음에 맥주 먹고 수요일은 교회 가는 날이니까 교회 갔다 와서 빼갈 먹고. 다른 대안 없어요.

10절에 보면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이 하나하나가 그들이 이런 짓을 안 하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그러한 힘이 능력이 악한 천사를 가두어두는 그 체제 안에서는 항상 진행되고 있다는 거예요. 항상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보고 “그거 나쁜 짓이야. 그 짓 하지 마.” 라는 것이 아무짝도 소용없습니다. 그 인간을 둘러싼 체제 자체가 악마를 잡아두었던 체제가 그대로 인간에게 넘쳐났기 때문에 그래요.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실은 굉장히 궁금해야 되고 정말 궁금해야 될 내용이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서 말을 안 하고 있습니다. 말을 아끼는 게 아니에요. 뭔가 몰라요. 어떤 걸 모르느냐 하면 성경에 나오는 모든 내용이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악마를 잡아 가두는 내용들입니다. 영적 내용이에요. 그래서 오늘 2장 4절에 범죄한 천사 나오죠.

그런데 여러분들이 뭘 궁금해야 되느냐 하면 이 범죄한 천사한테 적용한 그 원리원칙을 9절에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둔다는데 여기에 불의한 자는 천사가 아니에요. 사람이잖아요. 어떻게 천사한테 적용되는 그 원칙이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 가능하냐? 그게 신기하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인간을 화나게 하는 욕을 타인에게 한다. 그럼 그 욕을 듣는 사람은 화가 나겠죠. 그런데 인간에게 한 그 욕을 지나가는 강가의 갈대보고 했다. 그러자 갈대들은 기분 나빠서 시들시들 시들더니 그 다음날 다 죽었다. 이게 신기한 일입니까, 아닙니까? 굉장히 신기하죠. 어? 사람 차원에게 적용되던 것이 어떻게 갈대라는 식물체에게도 적용이 되네. 이게 신기한 거예요.

어린 아기 임신했을 때 임신 7주부터인가 벌써 인간의 시냅스 두뇌 세포가 증가하면서 안정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것이 태교에 도움 된다. 처녀 때 클래식이라면 도망가던 그런 사람도 애 임신하고 난 뒤에는 갑자기 뭐 클래식 듣고 드뷔시 노래나 아주 장엄한 바흐 음악을 인간에게 도움 되라고 듣는다 이 말이죠. 그런데 인간에게 도움 되는 클래식 음악을 장미를 재배하는 화원에서 틀어주면 어떤 효과가 날까요? 장미가 그냥 장미다. 아니다. 장미가 방긋방긋 웃는다. 어떻게 될까요? 옛날에 제가 시골 교회에 있을 때 그 근처 화원들이 많았어요. 화원 주인들이 하는 말이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게 되면 이게 잘 자란다는 거예요. 개 키울 때도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면 감정적으로 개가 온순해지고 하드 락 틀어주면 성질 아주 더럽게 된다는 겁니다.

그게 근거 있는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예를 들면 그런 것처럼 인간에게 적용되는 걸 갈대에게 하게 되면 똑같은 결과 나오는 것이 참 신기하죠. 그러면 차원이 높은 영적 차원의 악마한테 한 그것이 과연 인간에게도 적용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따져봐야 돼요. 인간에게 적용되느냐. 왜 그걸 따져야 되느냐 하면 ‘주의 말씀이 현실적으로 실효적이냐?’ 하는 이 문제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의 말씀이 그냥 잔소리에 지나지 않는가, 아니면 주의 말씀이 실제적으로 우리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느냐 하는 그 문제입니다.

실효적이라는 말을 아시겠죠? 독도는 실효적으로 현재 한국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실증적으로’ 그런 뜻이에요. 현실적으로 실효적으로 주의 말씀이 실제로 우리에게 적용이 되냐? 가만히 보면 적용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사람 대 사람 관계에서는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되면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듣기 싫어하기 때문에.

성경말씀 이것이 하나의 책이잖아요. 책 중에서 제일 많이 팔린 책은 성경책. 그 말은 뭐냐? 그냥 책이에요. 두 번째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런 거 있잖아요, 햄릿 같은 거. 그게 많이 팔렸다는 거예요. 그럼 이 성경책은 그냥 책이죠. 봐도 되고 안 봐도 되는 그런 책이에요. 무슨 말씀이 실효적입니까? 만화책 보면서 만화책 이건 실제로 살아있는 말씀이다, 그런 말 안 하죠? 그럼 만화책과 성경책이 다른 점이 뭔데요? 똑같은 것 아닙니까? 인간의 활자로 되어 있는데.

그래서 ‘성경을 많이 보세요.’ 하면 그걸 어떻게 듣느냐 하면 ‘성경을 많이 읽으세요. 많이 들으세요.’ 그걸 어떻게 이해하느냐? ‘잔소리 많이 들으세요.’ 잔소리의 특징이 뭐냐 하면 듣는 건 듣지만 행동 결정은 나한테 있다는 거예요. 그럼 말씀이 나한테 실효적인 게 아니고 나한테 현실적으로 즉각적인 반응을 제공하는 것은 내 결심이지, 성경책이 아니라는 거예요. 말씀은 소용없는 거죠.

악마한테 말씀이 진짜 효과가 있는 것처럼 이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효과가 있느냐? 있다면 그 근거가 뭐냐? 이걸 한번 따져봅시다. 이 말씀이 어떻게 인간에게 적용되는가. 정답은 이거에요. 인간이기 때문에 그래요. 이 인간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인간이 있고 하나님이 생각하신 인간이 있죠. 이 세상 인구가 78억이라면 인간이 생각하는 78억 인간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인간이 같겠어요, 다르겠어요? 같을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쓰레기통에 있는 쓰레기를 비우기 위해서 쓰레기통을 산다고 생각해봅시다. 쓰레기통에 있는 쓰레기를 따로 비워내기 위해서 따로 또 쓰레기통을 산다면 둘 다 쓰레기인 것은 마찬가지죠, 둘 다. 둘 다 쓰레기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자체가 이미 쓰레기라면 인간이 생각하는 인권 같은 고상한 걸 아무리 내세워도 그 대상 역시 쓰레기가 되는 겁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인간은 바로 포유류라는 거예요, 포유류. 자식 놓을 때 젖을 먹이고 하는 소위 박쥐나 고래처럼 포유류의 일종이라고 누가 이야기합니까? 성경이 이야기하던가요? 누가 이야기합니까? 인간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거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인간은 아무리 연구를 해도 출발점이 자기로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자기로부터. 자기 바깥으로 벗어나지를 못해요. 자기 바깥에서 인간을 보는 그런 안목이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나오는 것이 뭐냐 하면 신학 그리고 과학, 철학, 예술, 문학, 경제 뭐 이런 거거든요. 그런 것은 전부다 쓰레기가 되는 거예요.

제가 지난 수요일에 이야기했습니다. 선지자가 외쳐도 안 듣는 이유가 뭐라고 했던가요? 그들에게 뭐가 없다고 했습니까? 귀가 없어요, 뭐가 없어요? 귀는 쓰레기인데 뭐요. 그러니까 들을 귀가 없는 거예요. 인간이 귀 있다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인간이 ‘나는 귀 있다’를 주께서는 인정을 안 해준다니까요. 주께서는 들을 귀가 있어야 귀라 인정해요, 들을 귀가 있어야.

공부를 많이 못한 촌의 할머니께서 뉴스를 보는데 경제 관련 용어들이 막 등장하고 금리를 0.75% 인상하는, 미국에서 그런 결정을 했다는 뉴스가 톱뉴스로 나왔을 때 할머니가 “야야, 그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 볼륨 좀 높여봐라.” 할 때 그게 볼륨 높인다고 들립니까? 큰 소리한다고 그게 들리겠어요? 일타 강사 와서 강의 해봐야 알아듣는가. 못 알아듣잖아요. 전문 용어를 기본으로 알아야 되니까.

들을 귀 없는 인간에게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인간에게 들을 귀 없다는 말은 인간에게 달려있는 것은 못 들을 귀다. 못 들을 귀. 이런 용어 나도 처음 써봤는데, 듣지 못하는 귀. 듣지 못하는 귀의 특징은 인간에서부터 나와서 자기 인간 이익 위주로 생각하는 게 듣지 못하는 거예요.

사람이 분노가 이는 이유는 간단해요. 자기를 믿기 때문에 분노하는 거예요. 자기 자신을 믿기 때문에. 믿습니다. 누구? 나. 왜 믿는데? 무조건. 무조건 나를 믿어요. 나에게서 출발했기 때문에 마감도 나에게로 돌아오는 거예요. 나 밖으로 따로 떨어져나간 적이 없어요. 이게 인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규정할 때 말씀대로 만든 것이 인간이라 해요, 말씀대로.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인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말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선과 악을 아는 그 과일은 따먹지 말라는 그 말씀 있잖아요, 그 말씀이 인간과 결합이 되면 그 말씀대로 말씀을 위반해서 선악과 따먹게 되면 어떤 실효적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네가 정녕 죽으리라’가 나와요. 죽으리라.

그러니까 보세요. 말씀이 인간보다 먼저 있죠. 중간 자리에 인간이 있고 말씀에 두 가지 결론이 났습니다. 말씀이 인간과 실효적, 실제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증거로서 첫째 현상과 둘째 현상의 서로 상반된 현상으로 일어납니다. 하나는 ‘생명을 얻으리라’와 또 하나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 이 ‘죽으리라’와 ‘생명을 얻으리라’로 봐서 인간이 어떻게 되느냐는 관심 없고 말씀이 말씀대로 실제적으로 인간보다 더 우선해서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가 된다, 그걸 보여주는 거예요. 매개체로 인간을 동원해서. 인간을 동원해서 그렇게 해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은 일종의 시험 쥐에요, 시험 쥐. 실험실의 생쥐 같은 거. 자, 새로 개발한 이 약품이 어느 정도 센지 독성이 있는지 한번 실험해보겠습니다. 쥐 가져와. 하얀 쥐, 하얀 마우스 가져와. 거기다가 5mg을 한번 넣어보겠습니다. 어? 픽 죽어버렸어요. 아, 이거 너무 세구나. 이번에는 2mg하니까 살아있거든요. 5는 너무 불안전하고 2는 괜찮습니다. 그러면 그 옆에 있던 생쥐들이 파업을 하는 거예요. 이제 우리는 시험 쥐는 그만한다! 하더라도 밤에는 하지마라! 화물연대처럼. 밤늦게는 운행 못 한다.

그게 돼요, 안 돼요? 어디 피조물 주제에 독자적인 독자 노선을 고집해. 도대체 독자 노선을 하게 된 그 배후에 뭐가 들었어? 보니까 인간은 껍데기였고요. 그 안에 인간은 영물이었어요, 영물. 2장 4절에 “범죄한 천사”를 그다음에 용서치 아니했죠. 이 말은 용서받지 못할 범죄한 천사, 악마죠, 용서받지 못할 천사와 인간이 결탁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에게 용서가 없는 것은 당연한 거고 마땅한 거죠.

이게 인간입니다. 인간은 영물이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보이는 식으로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인간은 만들어졌다.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이건 곧 말씀의 구체화가 되죠, 말씀의 구체화. 제일 먼저 영적 문제가 현실 속에서 말씀이 구체화된 시범대상이 누구냐 하면 바로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이스라엘 역사 중에서도 한 예를 들게 되면 그들이 광야를 통과했잖아요. 광야를 통과하면서 그들은 애굽에서 기뻐했던 것을 교체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무엇으로 교체해야 되느냐 하면 ‘양식과 물은 당연히 제공되겠지.’ 하면서 양식과 물이 있는 것은 기쁨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양식도 끊어버리고 기본적인 물도 끊어버렸습니다. 바닥부터 기쁨의 대상을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었던 거였죠.

물을 주는데 탱크채로 주는 게 아니고 양식을 줘도 저장하기 위해서 주는 게 아니라 하루 단위로 주는 거예요, 하루 단위로 양식을. 특히 만나 같은 경우에는. 그런데 영적 말씀의 역사 속에 구체화가 만나라는 형식으로 등장합니다. 매일의 만나. 하루치만 주는 거예요, 그냥. 하루치만.

그럼 그들은 애굽에서의 기쁨은 이제 잊어야 돼요. 하루치만 만나를 줬잖아요. 그럼 그들은 매일 신비로움과 기적의 반복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겁니다. 이틀 치를 살려준 기쁨이 아니고 오직 하루치만 그다음날도 하루치만 그다음날도 하루만 살려주시는 데에서 오는 그 기쁨. 그 기쁨이 나중에 우리 예수님이 가르치신 주기도문 안에 들어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그걸 약간 번역하면 우리에게 하루치만 주셔도 됩니다. 하루치만 주시고.

그러니까 주기도문할 때 ‘일주일치 주세요.’ 그렇게 한다면 그 사람은 일주일에 한번만 주기도문할 거예요. 일주일치 다 벌어놨는데 뭐 하러 또 일용할 양식을 달라 하겠어요?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그 다음날 되면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그 다음날 되면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느냐 하면 나는 나로 인하여 살아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그것을 깨우치라는 겁니다. 나는 나보다 우선되는 그분 때문에 후차적으로 있지, 내가 우선적으로 나 잘되라고 하나님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광야를 통해서 가르치는 거예요.

인간의 창조는 말씀에 있다 했잖아요. 그 말씀이 어디에 나오느냐. 그 말씀이 나오는 데를 찾아봅시다. 요한복음 1장 1절. 여러분 다 아시지만 다시 한번 1장 1절을 그런 생각을 가지고 봅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제가 해설하면 태초에 나는 없었느니라.

태초에 나는 없었어요. 나는 없을 때가 있었어요. 그러나 말씀은 없을 때가 없었습니다. 어느 것이 더 선재하는 겁니까? 어느 것이 큰 체제에요? 내 중심에서 나온 내 체제가 나를 지킵니까, 아니면 나 없을 때 만들어진 확정된 체제가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는 거예요? 어느 쪽이에요? 바로 예수님이 만들어놓은 그 확정된 체제, 이미 결정 난 종결된 체제, 그 종결된 체제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안전빵으로 살아갑시다. 흔들리지 말고. 호들갑떨지 말고. 우왕좌왕하지 말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도 그 안정성의 안정됨을 드러내기 위해서 일어나야만 하는 일들이에요. 아무리 분주해도 변화되어도 끄떡없이 존재하고 이미 굳어져버린 체제. 그것은 용서할 자를 용서하고 용서할 수 없는 자에게는 용서가 가지 않는 체제. 그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뭐냐 하면 십자가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 십자가 믿는 자에게는 용서. 십자가 믿지 않는 자에게는 죄가 죄 그대로 있고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께 죄인이 의인이 되는 거예요. 그게 확정된 체제입니다. 그것을 우리 인간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이미 하나님께서 하셨어요.

그래서 요한복음 1장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우리는 없는 거예요. 우리는 일단 빠지세요. 우리는 거기에 끼어들지 마세요.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 말씀에 의해서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썽꾸러기 남편, 말썽꾸러기 자식 그거 누가 만들었어요? 말씀이 만든 거예요, 말씀이.

우리가 언제까지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따라 살아가는 존재인지, 아니면 용서의 프레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거기에 따라서 주께서 우리를 이끌고 계시는 그런 대상자인지 그걸 우리가 봐야 돼요. 주님의 용서 프레임 속에 있는 사람은 내가 이 용서 프레임을 수긍하기 전에 주님이 먼저 수긍하셔서 그 수긍이 나에게 주입되는 방식으로 동의하게 만들어요. 주님이 하신 조치에 대해서 동의하게 만듭니다. 아, 이 일이 일어나야 용서의 실효성이 항상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아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기 2장 9절에 보면 그 말씀이 어려운데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시험이라는 말이 바로 프레임이에요. 불의한 자를 가두기 위한 그 체제에서 경건한 자는 거기서 따로 빼내주시는 겁니다. 특혜죠. 편애이고 특혜고 일방적인 혜택이고. 그래서 우리는 차별대우 받아서 구원되는 겁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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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8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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