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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양20220414a슥11장13절(사라지는 매개자)-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

안양20220414a슥11장13절(사라지는 매개자)-이 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 스가랴11장. 스가랴 11장 전체 내용은 진짜 목자는 어떤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는가. 거기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진짜 목자가 오게 되면 세상은 끝나는 거예요. 그럼 진짜 목자 이전에 누가 있겠어요? 제대로 된 목자가 아닌 어설픈 목자, 가짜 목자, 그런 자들이 있겠지요. 그럼 가짜 목자들이 실효성 있게 양들을 돌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목자들이 양들을 돌본다는 요게 ‘목자 시스템’이에요. 목자 시스템. 요걸 흔히 목양이라고 하지요. 큰 교회 가면 전부다 당회장실을 목양실이라 해요. 목양실. 그러고 보니 구역질이 나네. 뭔가 구역질이 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비위가 좀 약한 모양이에요.

목자 시스템의 특징은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 요청됩니다. 우선 양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양이라는 게 없어요. 목자도 역시 없습니다. 목자가 나타나야 그 때 양이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이건 목자 우선입니까, 양이 우선입니까, 가 아니라 시스템 우선이에요. 시스템. 목자, 양 시스템이 우선이지요. 닭이 먼저 나왔습니까, 달걀이 먼저 나왔습니까, 정답은 말씀이 먼저지요. 말씀이 먼저에요. 닭이나 달걀은 말씀에 종속되는 거예요. 말씀의 시스템에 종속되는 거예요. 그 말씀이 요한복음 1장에서는 누구냐 하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닭이 있어야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계란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베드로가 계란후라이 먹었습니까, 닭소리 들었습니까? 어느 쪽이지요. 베드로가 들은 게 뭐냐 하면 닭소리였습니까? 주의 말씀이었습니까? 주의 말씀이지요.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과 베드로하고 한 이야기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그 흔하디 흔한 닭소리 듣고 왜 우느냐, 이렇게 멋도 모르는 그러한 경솔한 견해를 내놓을 거예요. 우리집 바로 밑에도 닭장이 있어가지고 뭐 새벽마다 닭 우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울어야 됩니까. 닭을 잡아야 됩니까? 시끄러우면 닭을 잡아야되겠지요.

길에 가다 강도 만난 사람이 있다. 이 이야기가 예수님 이야기에요? 아니면 착하게 살으라는 이야기입니까? 예수님 이야기에요.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이 땅에 니만 살고 있는 게 아니고 제대로 사는 분은 니가 아니고 너는 일시적으로만 짧게 살고, 영원히 사시는 분이 따로 너와 함께 살고 있다를 어떻게든 우리에게 그 낌새를 알려 주려고 말씀을 주신 거예요. 그 낌새를. 다 한시적이고 일시적이거든요.

올림픽 열어봐야 조금 있으면 한 달 되면 끝나는 거죠. 한시적, 일시적이에요. 선거되어봐야 한달 동안 바짝 하고 그다음 아무 소리 없잖아요. 이 세상에서는 그냥 롤러코스트 타기에요. 그냥 전체를 모르는 거예요. 전체를. 전체를 모르고 부분도 치는 파도, 밀물 썰물 오면 허겁지겁, 밀려가면 나는 또 행복하다, 또 오면 나는 불행하다. 맨날 이런 식이에요. 도대체 그 작동되는 원리, 원칙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요. 인간은.

누구한테 묻습니까. 물을 사람도 없고요. 그래서 지금 목자가 나타나야 양이 나타나는데 이게 목자 시스템인데 그동안 인간이 목자 노릇을 했다 말이지요. 양이 인간 노릇을 한 거예요. 그러니 서로가 인간이 되다 보니까 인간이 아주 수상한 요소가 되어가지고 딱 인간이 끼어들어 목자가 되고, 인간이 양이 되는 순간 양은 자기의 잘못은 모르고 괜찮은 목자 나타나가지고 모든 서비스를 다해주기를 바라는 거예요.

목자가 똑바로 목자 값을 해야지. 이런 식이에요. 그러니 교인들이 자기 잘못은 모르고 목사보고 제대로 목회하라고 하는 거예요. 목회하라고 요청하는 거와 똑같아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아휴, 우리 교회 목사님은요, 얼마나 훌륭한 목사님인지 월급을 줬는데 세상에 월급을 반을 도로 내어놓으면서 이렇게 어려운 여건에서 다 받을 수 없다. 나는 이 반을 내놓겠습니다. 나는 주님이 가신 그 아슬 아슬한 희생의 길을 내가 먼저 시범조로 보여주는 것이 저는 목자로서 목사로서 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반 내놓은 사람 있어요. 그거 100% 이단입니다. 딱 볼 것도 없어요.

왜냐하면 그 목자는 주님으로 충분해요. 다른 사람은 목자하면 안 돼요. 다른 사람은 주님이 하신 목자를 하면 안 되고 다른 사람들은 목자하는 어설픈 죄인의 모습이지요. 목자 코스프레. 목자 비슷하게 닮아가려고 연극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수요일에 했어요. 알파요, 오메가. 나는 목사다. 나의 목적은 뭐냐, 주님 같은 목자가 나의 희망이다. 이게 자기 나름대로의 알파와 오메가잖아요. 알파와 오메가. 그리고 뭘 요구하느냐, 내가 이렇게 하면 양들이 따라 와 줘야 된다. 니 시다바리도 아니고 왜 니 하는 거 다 따라가야 돼요? 왜 그런 거예요? 이런 잘못을 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주기철목사에요. 복음을 알 리가 없지요. 이런 사람들이.

자기가 만든 자기 이상아에 이상자아라고 하는데 자기가 홀려버렸어요. 본인이 본인을 홀리는 괴물이 되어버렸어요. 아주 이상적이고 겸손하기 짝이 없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 목자를 그대로 빼다 박은 그 목자상을 본인의 이상향으로 설치한 순간 그 사람은 괴물입니다. 목사가 교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양이라고 하면서 양값을 할 수 없는, 양이라 할 수 없는, 그런 죄악된 양임을 그걸 시범조로 보여주는 게 목사의 할 일이에요. “나도 양이 아닐뿐더러 여러분들도 양이 아닙니다.” 라고 죄인 됨을 알려주는 거예요.

왜냐하면 양은 진짜 목자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손수 만들어내기 때문에 거기에 인간이 거들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 목사가 목회랍시고 해가지고 특히 돈 좀 되는 교인들에게 유달리 이렇게 신경 쓰면서 수시로 심방하고 수시로 갔는데 그 사람이 십일조 많이 내고 헌금 많이 낸 사람이 “목사님 참 안됐지만 제가 다음달부터는 서울에 전근가게 되어가지고 서울에 있는 전에 교향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할 때 그 목사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지요. 그만큼 공들였는데 후딱 대구에서 서울로 가버렸다. 내 돈! 내 돈! 내 돈! 내 돈! 그걸 가지고 점점 더 멀어져가네. 그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 목숨! 내 목숨! 내 목숨이에요.

나는 더 살 이유 없음을 진짜 목자 되신 주님께서 목사한테 이걸 매일같이 이걸 주지시키는 관계를 가질 때 그 사람이 주님과 함께 있는, 주님을 드러내는, 조건하에 한시적으로 목자가 되는 겁니다. 그럼 이렇게 될 때 양은 없어요. 원래 주님을 목자로 알아보는 양은 단 한 마리도 없었어요. 따라서 이런 목사가 있다면 이 사람은 목사의 교인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목자시스템을 가동시키게 되면 이 목사와 주님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려면 양이 주와 함께 있는 양이 이 목사를 진짜 목사로 알아볼 때에 그 때 목자 시스템이 살아나는 거예요. 목자 시스템이. 그러니까 양은 껍데기고 목사도 껍데기고 안에 누가 들어있다? 주님이 들어있는 그 시스템. 그게 목자, 양 시스템이에요.

스가랴11장은 그런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어떤 일을 먼저 실시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 이스라엘이라는 목자 시스템을 먼저 안겨주고 그게 어떻게 붕괴하는가를 붕괴해줘야 돼요. 붕괴하면서 장차 진짜 목자와 진짜 양의 등장하는 목자 시스템과 대조되게 만듭니다. 마지막에 완성되는 목자시스템과 지금 이스라엘을 통한 목자시스템이 왜 이것이 같아서는 안 되는가, 같을 수가 없는가를 이스라엘을 통해서 시범조로 그걸 보여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아까 양 입장에서는 목자가 희생적이기를 바라지요. 마찬가지로 목자가 인간이 끼어든 목자입장에서는 양들이 목자한테 고분, 고분 했으면 참 좋겠다. 자, 어느 정도로 고분, 고분한지를 전에도 잠시 한 거 같은데요. 에스겔34장1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이리 되어있지요. 예언이지요. 그러니까 잘못을 지적하는 게 아니고, 너희들이 이렇게 엉터리 목자가 꼭 필히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예수님만이 목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요.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영 아님을 나타내서 ‘아, 나는 영~ 아니구나! 내가 천국 간다는 것은 말도 안 돼’ 라는 것이 예언의 실현이에요. 이게. 왜냐하면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에. 인간이 자발적으로 자기가 죄인 될 사람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주님의 뜻에 의해서 자기가 죄인 맞다라는 그러한 능력은 주님의 예언의 능력이 와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아는 눈이 활짝 열리는 거예요. ‘아이구~ 내가 양이라는 값도 할 것도 없고, 목자라 할 것도 없고, 나는 화가 적당해야 되고 하나님의 분노가 저주가 적절하구나’ 라는 사실을 말씀에 의해서 되는 거예요.

어제 수요 설교 때, 타일 이야기했잖아요. 마지막에 이야기한 것이 짧게 했는데 나전칠기 이야기했어요. 자개농. 자개농 할 때 일단은 바닥에 홈 해놓고요, 조개 같은 걸 붙이잖아요. 붙이고 그 바로 옆에 인접해가지고 또 다른 조개 문양에 맞춰 바닥 긁어내고 붙이고, 그래서 자개농은 전체가 전부 다 완전히 자개로 딱 덮여있듯이 하나님은 자기 사람을 예언의 말씀으로 완전히 빡빡하게 완전히 덮이게 하시는 거예요. 어디를 쑤셔도 말씀 아닌 게 없도록 그게 남은 자의 특징입니다.

콩기름가지고 광낸다는 것은 실제로 자개농 광낼 때 콩기름으로 해요. 반짝 반짝 빛이 나지요. 그러면 그 사람은 뭐냐, 빛이 아니고 빛을 담는 등경이 되는 겁니다. “저 봐! 내 솜씨를 봐!” 주님께서 우리를 들고 하시는 것은 니가 잘났다가 아니라 예수님의 자신의 솜씨를 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빛이 아니고 빛됨이에요. 빛됨.

빛이 아니고 빛됨. 이게 맞아요. 빛은 우리가 그 존재성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을 우리가 소지하거나 파악할 수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주님으로 빛이 들어있는 등경들, 빛됨을 발견하지요. 성도들마다 다 빛이 들어있고 자체에 대해서는 우리가 볼 수 없습니다. 가까이 할 수 없는 빛이라고 되어있으니까. 디모데전서에 나와요. 그 분은 가까이 할 수 없는 빛이 있어요. 디모데전서6장16절,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 다만 우리가 만나는 것은 그 빛이 들어있는 등경, 그런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그런 입장에 있지요. 내 안에 빛이 있다는 것이 말씀의 완성이 있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자부심을 우리한테 안겨줍니다. 나한테는 목숨이 있는 게 아니고 주님의 생명이 있다. 주님이 살아계시다 그런 뜻이지요.

다시 에스겔34장4절을 보게 되면, 목자들에게 화가 있는데, 그 이유가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학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4절에 나오는 이것을 지금 이 말씀을 들었다고 해서 이걸 백번 천번 들었다고 해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포학으로 다스릴 수 밖에 없는 본심을 어떤 인간이 목사가 돼도 똑같이 그런 짓을 해요.

사람이 여유가 있을 때는 남을 도와주는 척이라도 해요. 그러나 다급할 때는 자기 다급한 것부터 먼저 챙기고 내가 나를 지켜왔던 원칙을 이걸 우선적으로 그걸 작동시켜 버려요. 맨날 언니한테 동생이 언니는 사는 게 편한데 이 여동생이 시집가서는 말썽꾸러기에요. 너무나 말썽꾸러기에요. 꼭 이은* 같아. 가평계곡에 있는. 말썽꾸러기에요. 맨날 언니한테 줘. 줘. 그럼 언니가 “아이구, 저 불쌍한 내 혈육인데 내가 안 도와주면 누가 도와주나. 아직까지는 내가 밥 정도는 먹을 여력이 있기 때문에 도와줄 때 도와줘야지.” 도와 주면서 또 다시는 이러지 말라. 니 힘으로 살아라. 잘 살아야 돼. 하지만 애가 얻어먹는 게 버릇이 되어가지고 자꾸 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언니가 사기를 당해가지고 낭패를 당했을 때 도와줄까요? 안 도와줄까요? 안 도와주지요. 그동안 도와준 건 뭡니까. 일단은 내 명예와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조건하에 나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조건하에 도와준 거예요. 그러나 나의 가치가 뭔가 훼손될지 싶으면 동생이고 자식이고 부모고 그건 싸그리 나부터 살아야겠다. 니 도와줄 힘없어. 그게 뭐냐 그게 인간의 비로소 자기의 본심을 직시한 거예요. 진짜 객관적인 나를 망할 때 붕괴 될 때 발견하는 거예요.

다시 스가랴11장 봅시다. 스가랴11장1,2절을 보게 되면,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쓰러졌음이로다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아 곡할지어다 무성한 숲이 엎드러졌도다” 이게 어디냐 하면 이스라엘 북쪽입니다. 이 레바논 지역이. 지금도 레바논 수도가 뭡니까? 베이루트지요. 지중해에 있다면 이쪽에 갈릴리 사해바다 있고, 이쪽이 레바논이에요.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있고. 요새 요르단 죽을 지경이에요. 왜냐하면 이 요르단이 이스라엘에 오는 관광객 덕으로 많이 먹고 사는데 코로나 때문에 오지를 못해가지고 나라꼴이 엉망이에요. 그렇잖아도 나라가 가난한데 아주 살기 힘들어요. 레바논도 세계적으로 못사는 나라로 유명하고요. 맨날 싸우는데. 이 레바논 지역. 이스라엘 지역에 바산이 있어요. 이 바산의 암소들아, 이사야에 나오는 말씀인데. 시리아. 시리아 위에는 터키, 이라크. 아브라함이 저 하란까지 갔다 하는 것은 저 터키 북쪽까지 갔다가 내려온 걸 말하고요.

어쨌던 레바논에 뭐가 많으냐 하면 그 당시에는 이스라엘의 통치에 있었으니까. 레바논에 울창한 전나무가 많았던 거예요. 백향목이라 해서 전나무에 속하는데. 굉장히 값어치 많이 나가는 나무들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불을 내버려요. 불을 낸다는 말은 이 레바논이 갖고 있는 막대한 버틸 수 있는 그 모든 기본을 주님께서 싸그리 없애버립니다. 그러면 여기에 나오는 풀들도 불타버리면 양들이 그 풀을 먹어야 되는데 목자가 있으면 뭐합니까. 양들을 먹일 풀이 없는데요.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3절에 보면, “목자들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들의 영화로운 것이 쓰러졌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쓰러졌음이로다” 이 요단강 이 요단에 불이 전부 다 풀을 다 살라버리면 양들이 풀을 먹을 꼴이 없기 때문에 목자 입장에서는 양 축산업이 되지를 않지요. 자,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진짜 목자는 폭력적이다, 라는 사실이에요. 진짜 목자는 폭력적이에요.

이 기독교 교회간에 성경 좀 본 사람은 전부 다 목자를 뭐로 보느냐 하면 어질고 어진 선한 목자로 봐요. 기독교 가정에 액자를 해가지고 시편23편에 목가적인 풍경에다가 앞에 목자. 베드윈 복장에다가 지팡이 하나 들고 양들이 몇 있고, 밑에는 시편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런 액자 봤지요? 양을 품에 안고 있는 그런 모습. 목자가 양을 품고 있는 모습은 마치 김일성이가 유치원 아이 안고 있는 거 같은. 아주 아찔한, 살벌한 느낌이 들어요. 진짜 목자는 폭력적이에요. 너희들은 불쌍히 여김을 받을 가치도 없다. 진짜 목자는 어떤 목자냐, 심판하시는 목자. 깽판 놓는 목자. 이것은 바로 인간이 개입된 목자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하는 겁니다. 인간이 개입된. 인간은 그러면서도 자기 주체성을 포기를 못하는데.

인간의 주체성이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를 적어볼게요. 어려운 문장이지만 적어볼게요. 인간의 나라는 모습은 뭐냐, ‘내적인 궁핍함을 자신의 숭고한 구조로 떠받들고 있는 것’ 내가 나를 나의 구조를 떠받들고 있는 것이 이게 자아에요. 자아. 인간의 자아는 이렇게 구성되어있습니다. 안쪽에 뭐가 있다고요? 내적인 궁핍함. 뭔가 충족되지 않는. 욕심은 하늘까지인데, 영~ 성에 안 차. 욕심은 거대한 댐인데, 비가 안 왔는지 물은 바닥이라. 그런데 그걸 애써 타인에게는 감춰야 될 게 아니겠습니까. 감추는데 그냥 감추면 안 되고 어떤 구조입니까? 아주 거룩하고 숭고한 구조. 숭고한 구조로서 그러한 자신을 본인이 본인을 떠받들지 않으면 누가 떠받들겠어요. 스스로 자기를 위대한 존재로 떠받들고 있는 양상으로 인간의 자아는 존재하게 됩니다.

이것이 무너지는 계기는 바로 역사적 재앙이에요. 역사적 재앙.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거. 러시아 전쟁 같은 거. 전쟁 속에서 이 숭고한 구조는 군복 입는 순간 달아나 버리고 이게 달아나니까 껍질이 벗겨지니까 안에 뭐가 남습니까? 맹목적인 궁핍함 그야말로 지독한 짐승성이에요. 짐승성. 지독한 짐승의 성질. 이것이 바로 전쟁을 치르는 전쟁 중에 군대 내에 이것이 만연해 있습니다. 남자가 되어서 군에 가야 될 이유가 괴물이 다른 데 있는 게 아니고 내가 평소에 괴물이었음을 군에 가서 비로소 자기의 정체가 노출되지요. 왜? 다 같이 괴물이기 때문에 그 때는 마음 놓고 정체를 드러냅니다. 나중에 제대해서 예비군 군복 입을 때 짐승 속성이 드러나지요.

역사적 재앙을 통해서 이 숭고한 구조를 주께서는 깨뜨려 버리지요. 이 재앙이 뭐냐 하면 AD70년경에 티투스라는 나중에 로마 황제된 사람입니다. 티투스라는 황제가 이 사람이 전쟁을 이르는데 이 사람은 좀 난처한 입장에 있어요. 대충 죽이고 항복 받으려 했는데, 이상하게 유대민족이 자꾸 무모하게 달려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로마 군대 입장에서는 달려드는데 멈출 수는 없고 명령이기 때문에 황제 명령 때문에 치기는 치는데 그들을 그야말로 무기도 변변치 않는 그들이 뭐 여호와 이름을 부르면서 사탄아! 물러가라. 하면서 전쟁에 오는데 그걸 하나 쳐내다 보니까 얼마 죽였느냐, 150만명 죽였어요. 거의 몰살했어요. 그러니 티투스 왕도 난처한 입장이었어요. 본인이 나서서 죽여버릴까 해서 죽이면 나쁜 놈이 되는데 가만히 있는데 마치 바위에 와서 부딪히는 거 같아. 이게 뭐냐 하면 바로 스가랴11장 말씀의 성취에요. 날파리들이 알아서 바위에 부딪혀서 집단 자살을 반복하는데 그 절벽 역할 한 게 티투스 장군이에요.

그 맛사가 전쟁할 때는요, 사정을 했어요. 아, 제발 죽이기 싫다. 좀 알아서 기어주면 당신들 다 행복하게 해줄게. 그러나 거기에 있는 결사 항쟁하는 사람들이 너죽고 나죽자 해가지고 결국 애들 300명 빼놓고 다 죽었어요. 자기 신념과 자기 명분에 도취되어가지고 지가 뭐 천사라도 된 양 다 죽은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관여하는 것은 Please입니다. 제발! 니 괴물인 것을 인정하라. 제발 천사되지 말고. 훌륭하게 살 생각하지 말고. 이 괴물아! 최 괴물, 박 괴물, 김 괴물아! 괴물아! 괴물처럼 괴물로서 제발 행세해둬. 구원은 내 십자가 피로 해줄테니까. 제발! 괴물이 되어다오. 이걸 부탁하는데 인간들이 괴물이 되기 싫어가지고 지가 숭고하다고 지가 바치니까 전부 다 지옥 가는 겁니다.

뭐 과거에 개척교회 몇 군데 했고, 되지도 않는 소리.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내가 뭐 교회 장로고, 집사고, 아이고, 됐고. 그건 됐고. 제발 가미가제, 여러분 가미가제(神風)돌격대 알지요. 지 명분에 지가 도취되어가지고 가는 기름만 넣고 오는 기름은 넣지를 않았어요. 일부러 주지를 않았어요. 자살특공대에요. 자살특공대. 뭐 조국을..., 덴노 헤이카 반자이 일본 천황 만세를 부르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아니 인간 내 자체가 의미가 없어요. 예수님이 의미가 있지 나는 아예 의미가 없는데, 의미 없는 것에 왜 그렇게 그걸 신앙하느냐 이 말입니다. 그걸 믿느냐 이 말입니다.

인간은요, 믿음 없다 하지 마세요. 이미 인간은 믿을 대상이 있어요. 그게 뭐냐 현실. 현실을 이미 신봉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신이 갖춰져 있어요. 신은 이 세상 자체가 신이에요. 특히 과학자한테는. 거기에 대한 믿음은 철석같아요. 심지어 유치원 때부터 배웁니다. 믿을 것은 이 세상뿐이라고. 유치원 때부터 반복해서 그걸 가르치지요. 그러니까 요령부린다고 유치원부터 학교가서는 세상의 과학과 이 세상의 진리라는 것을 배우고 그것가지고 좀 모자른다 싶으니까 교회 와서 예수 믿고. 그게 한 파레트에 같이 나란히. 파레트 보면 홈이 파여있고 빨강색, 파란색 짜가지고 있잖아요. 빈칸에 교회다니기 만들어서 거기다 짜넣는 거예요. 옛날에 보면 통지표에 국어, 수학, 영어 있다면 그 뒤에 칸에다가 종교 신앙 칸이 있어가지고 수우미양가 매기는 거와 똑같이 이게 같이 겸하여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스스로 자기 조정에 나서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뭘 얻겠다는 겁니까. 자신만의 숭고한 구조를 자기가 계속 떠받들고 살아보겠다. 내 가치 있다는 그 보람에 계속 살아보겠다는 겁니다. 거기서 주님께서는 참 답답해 가지고 Please. 제발! 이런 짓한다는 자체가 이게 하나님께서 받지를 않아요. 얼마나 훌륭하냐가 아니라 주께서는 아예 받지를 않아요. 나름대로 훌륭했는데 안 받는다? 그럼 제품 하자 있는 거죠. 하청업체가 물건 만들었는데 안 받으면 그건 끝난 거예요. 성분이 100% 주님의 예수님의 피와 살, 주님이 하신 성분이 되어야 돼요.

한의원에서 보약 만들 때, 공진당 보면 오만원부터 오십만원짜리까지 있어요. 열 배 차이 난다고요. 왜 그럴까요? 왜 이렇게 가격 차이가 많이 날까요? 오만원짜리는 중국산일 가능성이 높고, 오십만원짜리도 역시 중국산인데 이게 오십만원하면 진짜로 착각을 해서 만들 가능성도 아주 농후하지요. 비싸면 진짜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그런 풍조에 역으로 노리는 사업 발상 일 수도 있다 말이죠. 어쨌든 간에 그 성분이 제대로된 성분이 혼합도가 유지하면서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께서 받으시는 것은 오직 사도바울이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알기를 원하지 않는다. 주님의 것만 담긴다는 것은 제발 너의 것은 행함은 좀 빠져줄래. 좀 빠져라 이 말이지요. 빠져라. 그럼 그 빠지는 기간이 뭐냐, 우리의 일평생이지요. 우리의 한평생. 나이 96,97살 하면서 전국노래자랑 보는 송해가 만약에 복음을 안다면 한평생 내가 활동한 것은 전부 다 꺼져줄래! 에 해당되는 일들이에요. 전부 다 꺼져줄래. 아무것도 거기다가 의미를 붙일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의미를 안 붙이면 되는데 십자가를 안 믿기 때문에 심심하니까 의미 붙일 것이 나의 행함밖에 없으니까 나의 전력이나 나이 화려한 역사에 숭고한 구조로 이 궁핍함을 대충 얼기설기 조작해가지고 자기가 자기를 떠받들기 위해서 집어넣는 거예요. 주께서는 모를 리가 없지요. 그래서 티투스를 해가지고 역사적 재앙을 발효시켰습니다. 150만 죽으면서 예수님 말씀하신대로 이스라엘은 끝! 끝났어요.

그래서 여기서 주님께서 당부한 게 있어요. 마태복음24장16절,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이게 AD70년경에 티투스가 와가지고 이스라엘을 완전히 다 소거한다. 다 없애버리는 거예요. 마치 산불나서 다 모든 나무를 다 태우듯이. 스가랴 예언대로 했을 때에 예수님께서 미리 팁을 이야기해요. 그렇게 해라. 그게 16절입니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뭐하라? 산으로 도망가는 사람은 살았어요. 그러니까 “나는 여호와의 전사다! 군대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주의 이름으로 승리하리라. 여리고성을 이겼잖아. 아이성도 이겼잖아. 다윗이 여호와의 깃발로 이기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성이요, 우리의 피난처시오.” 시편에 많이 나오지요. 그거 믿고 한 사람 다 죽었어요. 여기 산으로 도망간다는 것은 배신자요, 비겁자지요. 그리 살아라 이 말이지요. 그리 살아라는 말이지요. 그게 니 하는 행세에 딱 합당하다 이 말입니다.

창세기19장에 보면 롯이 나옵니다. 롯이 일과가 있을 때 천사가 롯에게 니가 이 사회를 개조하라. 이 사회의 정의를 회복하라. 촛불들고 집회하라. 이리 했습니까? 뭐라고 했습니까? 도망치라 했지요. 도망치되 어떻게 도망친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엑셀 밟고 그냥 달려! 다시는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고 못 볼 걸 봤다는 것, 과거에 내가 못 볼 걸 봤다는 그 마음으로 그냥 달려버려. 더러워서 안 본다는 식으로 그냥 달려버려라. 그런데 미련이 있던 롯의 처는 그래도 나는 내가 살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인데 하고 톡 돌아보다가 소금기둥 됐잖아요. 그래서 사해 근처에 가면 롯의 형상들이 소금기둥이 한 두 개가 아니고 여러개 돼요. 키가 보통 10m쯤 돼요. 이게 뭐냐 하면 도망 쳐라. 그게 니한테 딱 맞다. 살려줄 때 아이고~ 왠 떡이고, 하고 도망쳐버려라 이 말이에요.

그래서 성도의 하루 하루 살면 그냥 내빼는 삶으로서 더는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건전한 것을 기대하지 마세요. 내빼면 됩니다. 도망치면 돼요. 비겁하다 뭐 배신자여! 뭐 배신자여, 아니 배신자 노래하라 해. 하라 해. 이게 바로 재앙입니다. 인간이 갖고 있던 모든 세상 현실이 결코 신도 아니고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재앙이지요. 쉬운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아이가 밥상 위에 올라가는 것. 밥상은 밥하고 반찬만 올라가야 돼요. 물만 올라가야 돼요. 아이한테는 밥상이 자기 놀이터가 됩니다. 기어올라갑니다. 많이 경험하고 있지요. 지금. 손자가 밥상 위에 마구 올라가고 하는데. 떼찌, 떼찌, 올라가면 안 돼! 하지요. 아침 식사가 재앙이지요. 거기에 있는 찬거리의 인간의 모든 행함과 수고는 애 하나 올라가면 전부 다 엎어지고 자빠지고 다 날아가요.

두 번째는 비슷한 예인데 이겁니다. 집안 청소 깨끗이 하고 내부 벽지가 칙칙하다 해가지고 내부 인테리어까지 깨끗이 하고 그 다음 청소 깨끗이 하고 손님 맞이한다고 화환들 이렇게 몇 개 놓고 바람 부는 풍선있잖아요. 나래이션 모델 동원해가지고 개업식 해가지고 “제 다리만 보지 마시고요.” 이렇게 춤추고 있을 때 깨끗하게 신장개업 했을 때 지붕 무너지는 것. 안에 내부 깨끗이 해서 벽지까지 했는데 지붕 무너지면 뭐가 됩니까. 재앙이지요. 요게 뭐냐, 진짜 목자가 하시는 일이에요. 완전히 깽판 내버려요. 심판하시는 목자.

무슨 말이냐 하면, 이스라엘을 멸망케 하시는 그 주인물이 최후에 허락하신 분이 누구냐 이 말이에요. 그건 바로 스가랴에게 예언하신 하나님이지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쳐라. 사정없이 싸그리 쳐버리라고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하나님이 이 세상 이방나라를 통해서 명령해버린 겁니다. 무슨 선한 목자가 어디 있어요. 무슨 선한 목자가. 폭력적인 목자지 무슨 선한 목자입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오늘 왜 우리는 그렇게 안 치십니까? 지금 많이 봐주고 있는 거예요. 기다려 봐! 니 순서가 아직 안 됐어. 이렇게 폭력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의 현실을 인간은 자꾸 뭐로 만드느냐 하면 현실을 자기화시켜요. 현실을 자기화할 때 여기서 뭐가 없느냐 하면 진리가 빠져버리지요. 인간은 진리를 원하는 게 아니고 있는 보이는 그것을 내 것 만드는데 열중합니다. 왜냐하면 내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래요.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걸 ‘협소한 인식’이라 해요. 협소한 인식. 좁디 좁은 현실이에요. 협소한 인식과 광범위한 진리니까, 광범위한 정보니까 이것과의 주님께서는 개인적으로 대결에 나서는 겁니다.

어쨌든 간에 그 당시 이스라엘은 뭐냐 하면 목자시스템이었습니다. 목자시스템이었는데 목자시스템이 이런 협소한 인식을 가지고 현실을 자기화 자기 목숨 건질 것을 급급하면서 이렇게 양과 목자들이 이스라엘을 근근히 이어가려고 할 때 결국은 근근히 이어가지 못하게 만들어버려요. 하나님께서. 왜? 말씀이 더 세니까요. 하나님의 말씀, 스가랴의 말씀이 더 세니까. 그 말씀을 누가 당해냅니까? 당해낼 수가 없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님 오셔도 마찬가지에요. 목자를 치니 양이 흩어진다. 그러니까 목자를 쳐서 목자는 없어지고 양들이 그 현장을 떠나버리니까 양이 없고. 그러니 이 땅에서는 목자는 목자가 아니었었으며 양은 결코 양이 아니었었습니다. 그저 이방나라처럼 내 목숨하나 부지하려고 그래서 그걸 힘을 모아서 국가를 견지하기 위해서 그냥 하나님 이름으로 나라 하나 유지시켜 온 것에 불과한 거죠. 교회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예를 하나 들테니까 답변해보세요. 어떤 사람이 매듭을 잘 매는 사람이 있어가지고 매듭을 꽁꽁해놓고 친구들에게 이거 30분내에 풀면 내가 니한테 돈 줄게. 풀어 봐라. 이렇게 툭 던져줬을 때 정답은 뭐겠어요? 꽁꽁 묶인 매듭을 조심스럽게 풀려고 하겠지요. 그 방법은 뭐냐 하면 칼로 매듭 자체를 잘라버리면 돼요. 인간이 꼬아놓은 모든 매듭있잖아요. 어떻게든 이것도 챙기고 저것도 챙기고 남한테 인간 말종 소리 안 들으려고 조심스럽게, 조심스럽게 살려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방법은 뭐냐 하면 그냥 나랑 죽자. 잘라버리는 거예요. 선한 목자는 칼 들고 오셨습니다.

그 칼로 우리만 자르는 것이 아니고 선한 목자 스스로 자기 자신을 그냥 자기 자신을 죽이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 땅에는 목자, 양이 없었던 시절로 완전히 돌아가는 겁니다. 아무것도 없게 만들어요. 그래야 창조하시는 주님의 창조의 위세가 고스란히 100% 고스란히 주님의 창조의 능력만 은혜만 제공되는 새로운 나라로 이게 전환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이 스가랴 11장에 나오는 초반에 나오는 이 말씀은 주님의 제대로 된 목자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해서 하신 거예요.

그 다음에 8절에 보게 되면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여기 세 목자 나오지요. 이것만 하고 첫째시간 10분 쉽시다. 목자가 세 목자, 목자가 세 사람이지요. 1,2,3. 이게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정말 어려운 게 뭐냐, 이 어려움 때문에 제가 주일날 설교에 한 때, 두 때, 반 때도 그렇게 어려웠던 거예요. 이걸 쉽게 하려고 하니까 또 어려운 게 나왔어요.

이게 세 목자지요. 목자가 몇 명입니까? 목자가 3명이잖아요. 인간 세계에서의 숫자는요, 양을 표현하는 거예요. 양.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걸 숫자로 표현하는 양을 뭐로 표현하느냐 하면, 질로 표현해요. 질로. 본질로 성질로 표현 되어야 돼요. 3명의 목자가 하나의 목자에 있는 세가지의 기능으로 묘사되는 거예요. 제가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그 세 목자가 나오는데 7절에 보면,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한 달 동안에 세 목자를 제거한다.

그 불쌍한, 가련한 양, 가련한 양을 통해서 목자 세 명이 나온다는 말은 이 가련한 양을 살리는데 세 가지의 기능이 총동원되어야 양을 살릴 수 있는 그 방식으로 주께서는 하나님이 진짜 목자로 오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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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8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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