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강의( 388강, 389강) 저주. 인생이란 220419
388강-YouTube강의(저주 로마서 2:5)20220419-이 근호 목사
제388강, ‘저주’. 사람들은 아무런 명분도 없이 이유도 모르는 채 그저 저주라는 것은 자기한테 다가오면 안 된다고 아주 결사적으로 밀어내는 경향이 있어요. ‘저주는 나한테 절대로 오면 안 된다. 나와 맞지 않는다. 저주는 나와 상관없다.’ 스스로 그렇게 마음에 결정을 내리고 인생을 살아가요.
그리고 세상에 있는 모든 사상들이나 생각들이 이 세상에서 저주를 삭제하는 식으로 서로 통용되고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주를 없애는 시도 중 하나가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극찬하고 극히 높이고 아부를 떨면서 ‘하나님이여, 내가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니 이제 나에게는 저주가 오지 않을 거죠?’ 라고 은연중에 그런 다짐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말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성경 자체에서 하나님의 저주라든지 진노가 아예 없어야 돼요. 정말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괜히 하나님의 지옥 불, 저주, 진노 이런 걸 섞어 넣어버리면 사람들이 얼마나 쫄겠습니까? 벌벌 떤다 이 말이죠.
부모님이 사랑하는 자식, 그냥 자식이 아니고 사랑하는 자식에게 편지를 보낼 때 용어 선정에 있어서 벌써 빠질 용어들을 미리 다 챙기죠. 망한다, 저주 받는다, 너는 지옥이라는 이야기, 그런 건 다 빼고 아주 부드러운 용어들을 편지에 담아서 그 자식들이 희망차게 또는 긍정적으로 편하게 마음의 부담 없이 살도록 그렇게 편지하는 것이 인간 세계에서는 당연한 거죠. 부정적인 용어를 안 섞는 것이 사랑의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에 대한 배려다, 보통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2장 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네가 너 자신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계속 쌓고 또 쌓고 축적하고 저장하는 그런 일들을 쉬지 않고 하고 있구나,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흔히 세상에서 좀 배웠다는 사람들, 책을 많이 봤다는 사람들, 공부를 많이 했다는 사람들, 특히 유학 가서 공부를 많이 했다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학식과 덕식을 구비해서 존경받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로마서 2장 5절을 발설하겠습니까?
사람들에게 그렇게 존경받는데 자기를 존경하는 그 사람들, 자기 팬들을 향하여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구나.” 이런 막말을 할 수 있느냐 이 말이죠. 만약에 이런 막말하면 자기 추종자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살벌하게 느껴서 다 떠나고 말겠죠.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이 예수님의 덕망과 학식이 소문나서 랍비 중에서 스승 가운데서 가장 권위 있는 스승처럼 말한다는 소문을 듣고 왔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떠나게 된 이유가 뭐냐 하면 너희들이 하나님을 모른다는 겁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을 모른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에요. 이스라엘은 유대나라는 전 백성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에요. 여기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은 그중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나라 자체가 전통적으로 역사적으로 하나님 믿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은혜로 보존하사 오직 메시아 나라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열심으로 친히 만든 나라가 유대나라라고 자부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죠.
로마서 8장에 바로 그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 자손이다. 우리가 죄의 종이 된 적이 없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너희 아비는 악마다. 너희들은 악마의 자식이고.’
주위에 사람들 만날 때 참 선하고 침착하고 성품이 온화하고 게다가 겸손하고 공부도 많이 하고 여러 가지 세상의 학식과 덕목을 갖춘 그 많은 사람들, 참 인간성 좋다, 사람 좋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 많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하나님을 모른다면 진노의 하나님을 모른다면 지옥 불을 만드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 사람은 바로 로마서 2장 5절에 해당되는 사람이에요. 그들이 말한 점잖은 말과 많은 학식과 덕망이 결국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오히려 유발하는 요인이 되는 거예요.
로마서 1장 22절에 보면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본인도 지혜 있고 남들도 다 지혜 있다고 칭찬하는 사람이에요. 인간이 공부를 하고 바르게 살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가 보기에도 지혜로운 자기 자신으로 전환시키는 노력이란 말이죠.
그런데 그게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은 것인데 21절에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을 안다 하는데 날이 가면 날이 갈수록 마음이 미련하게 되고 허망하게 되고 마음이 어두워진 거예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존재가 자기 삶의 목적이 되고 목표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세상 사람들을 다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냉정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저주를 퍼붓는 하나님. 저주를 퍼붓지 않는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이 아니다. 그런 하나님의 심판을 알게 된 그 기쁨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사람들에게 어떤 존경을 받더라도 다 소용없는 겁니다.
로마서 2장 5절 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네 고집과” 또 그런 인간들이 고집은 어지간히 세죠. 많이 배웠으니까 아는 게 많으니까 다방면에 모르는 게 없으니까요. 말도 잘하죠. 여기저기 강의해달라고 부르기는 또 얼마나 부르는지 몰라요.
그런데 점점 어두워, 마음이. 자꾸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거기에 너무 예민해져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 몰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점점 더 강렬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몰라도 괜찮은 이유가 뭐냐. 사랑의 하나님인데 뭐.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어가지고...... 무슨 사랑의 하나님이 지옥을 만들어놓고 무슨 사랑의 하나님이 진노라는 말을 합니까? 사랑의 편지에 진노한다는 이 말을, 이 편지를 받고도 그게 사랑의 하나님이에요?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죠.
끝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은 인간의 세상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도 세상 인기와 분위기에 말려들어가지 말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면 그것은 100% 지금 방향이 지옥으로 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이하림gblayer('gblayer4', 'summerwood', '이하림', 'summerwood96@naver.com', '', '1', './program');(IP:219.♡.37.139)
22-04-20 04:59
389강-YouTube강의(인생이란 누가복음 21:26)20220419-이 근호 목사
제389강, ‘인생이란’. 참, 세상 사람들, 젊으나 나이 많으나 이런 철학적인 질문을 어느 날 하고 싶어 할 거예요. ‘형님, 인생이 뭡니까?’ 거기에 관한 책들도 나와 있고 의견도 많은데 제가 답변하고 싶은 것은 인생이란 오류다. 오류. 뭔가 잘못되어 있다.
그 증거로서 누가복음 21장 21-26절까지, 좀 깁니다. 긴데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23절에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24절,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25절,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26절,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인간들을 그동안 포근히 감싸주고 인간들이 잘 살도록 온실처럼 꾸며져 있는 이 세상, 이 세상은 그런 식으로 영원토록 인간 세계를 보존하리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아늑한 분위기 안에서의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러면 인생의 해답은, 인생은 허무하다. 또는 인생은 뷰티플 라이프, 즐겁다. 아름답다.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 뭐 온갖 각자 자기가 살아온 경험에 입각해서 나름대로 정리된 생각을 할 수 있겠죠.
어떤 조건에서 그렇습니까? 이 자연세계가 아늑하다는 조건 하에 포근하게 안정적이라는 구조 안에서 우리는 내 인생만 그냥 열심히 부지런히 착실히 살면 거기에 대한 보상이 따라오는 아주 정직한 세계 속에서 우리는 정직한 인간으로 살면 그게 성공한 인생이라 그렇게 보통 생각하며 살잖아요.
그런데 누가복음 21장 이 본문에 의할 것 같으면 기절할 정도에요. 자, 26절에 기절할 정도라면 뭔가 그동안 인생에 대해서 인생은 이렇다, 인생은 저렇다 하는 그 내용에 전혀 해당되지도 않는 예상 밖의 사태가 인간에게 들이닥쳐도 인간은 할 말이 없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인간 자체가 문제 덩어리이기 때문에 그래요. 인간은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 오류, 잘못된 것을 계속 낳게 돼요. 기계가 오작동하고 오류 생기면 그 기계를 못 쓰잖아요. 인간은 처음부터 쓸 만한 게 하나도 없어요. 잘못되어 있는 겁니다.
시편 51편의 말씀처럼 내가 모친의 죄 중에서 죄인으로 태어났다고 다윗이 고백하는 순간 다윗은 비로소 다윗 자기 자신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 오류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본인은 알게 된 겁니다. 다윗보고 그 순간에 인생이 뭐냐? 물으면 다윗은 분명히 이렇게 이야기할 거예요. 나는 오류다. 나한테는 옳은 게 없다. 올바르다 하는 것이 나한테는 나올 리가 없다. 그걸 시편에서는 내가 모친의 죄 중에서 태어났습니다.
결국 내가 하는 모든 제사, 율법 지킴 그런 것은 하나님께서 안 받는다는 사실, 그것을 본인은 알게 된 거죠. 주께서는 번제도 원치 아니하고 속전제도 원치 아니하고 주께서 원하시는 것은 내가 오류 있다는 것, 그냥 심령이 아니고 상한 심령, 썩은 심령인 것을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내놓는 거예요. 이게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이 대자연이 온화하고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같이 있으니까 자기 자신에게 뭔가 건전한 의미가 뭐 귀중한 의미가 있어서 대자연도 나를 지켜주고 마땅히 보호해주는 것처럼 그렇게 오산을 한 거예요.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가게 신장개업해서 안에 내부 청소하고 나니까 신장개업하는 날 지붕 자체가 무너져버리면 청소한 게 무슨 소용 있어요? 이 우주, 우리 인간을 잘 지켰다고 생각하는 하늘의 권능들이 그냥 내려앉아버리면 26절에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기절할 지경이래요.
도대체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조차도 본인은 알 길이 없었던 겁니다. 사람들은 많은 질문을 던지고 많은 답변을 얻어내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 질문 가운데서 제일 중요한 질문을 빠뜨렸어요. ‘하나님이여, 저는 왜 잘못되었습니까?’ 그 질문을 인간은 못해요. 자기가 잘못된 것을 모르는 그 자체가 인간으로서는 근원적으로 오류의 인생입니다.
교회 성경공부하고 교회에 출석하면서 사람들은 지금껏 자신이 어떤 일을 해도 그것은 오류만 제공했지, 거기서는 진실이라는 것은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교회 나옵니까? 그래서 내가 오류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태양이 빛을 잃어버리고 별들이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진다 한들 ‘하나님이여, 왜 이러십니까?’ 할 수 있는 그런 권한이 우리한테는 없고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옴팍 그걸 다 받아들여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교회 나오고 있어요? 그래가지고 인생을 삽니까?
오늘 읽었던 본문 22절 봅시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그 날에 형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날에 형벌이 주어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오류와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형벌은 최종적인 결과물인 거거든요. 줄곧 살아왔던 것에 대한 대가다 이 말이죠.
23절에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아이 밴 자, 얼마나 순결합니까? 젖먹이는 자, 그 아이를 안고 젖먹이는 그 엄마의 모성애, 이것은 천사처럼 사람들에게는 인정받은 모습이죠. 순결한 모습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순수하고 순결한 갓난아이가 무슨 죄가 있어요? 아이에게 젖먹인다는 엄마의 사랑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게 잘못된 겁니까? 하지만 이 세상에 환란과 하나님의 진노는 그 사람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도 그대로 동일하게 닥쳐옵니다.
러시아의 미사일이 우크라이나의 갓난아이를 피하지 못하듯이... 미사일이 날아오다가, 어? 아이고 이 애 예쁘네, 하고 미사일이 알아서 공중에서 아이 눈을 보고 엉뚱한 데로 떨어지고 그런 일은 없죠. 사정없이 그냥 떨어져버리죠. 그럴 때 아이고, 순수한 애가 안됐다. 안되기는 뭐가 안됐어요? 인간 자체가 오류인데요. 오류의 부모에서 오류의 자식이 태어났는데 죽는 것이 마땅하죠.
24절에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칼날에 죽임을 당하는 게 인생이에요. 칼날에 죽임을 당해도 하나님, 제대로 조치하셨습니다, 하고 받아들여야 될 그러한 모습이 제대로 우리의 인생이라는 거예요.
칼날을 치든지 하늘이 떨어져서 망하든지 빌어먹든지 암에 걸리든지 어떤 하나님의 조치도 우리의 오류에 딱 합당한 제대로 된 정확한 조치를 취해주심이라고 여기고 받아들여야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