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10장 36절 (텅빈 형식) 220405a-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10장 36절 (텅빈 형식) 220405a-이근호 목사

오늘은 누가복음 10장 24절부터 하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무슨 내용인지 그들이 많은 선지자와 임금, 이 선지자와 임금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은 인간적으로 봐서 가장 엘리트 계층에 속하지요. 임금 옆에 우수한 IQ가 높고 학식이 높은 그런 보좌관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임금 옆에.

국가를 운영한다면은 국가의 모든 최고의 지혜자들을 옆에 둬야 국가가 운영된다 이 말이죠. 최고의 지혜자의 조언을 듣고 지혜를 끄집어내야 무식한 백성들로부터의 오는 모든 비난이나 불평을 능수능란하게 반박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래요.

임금은 모든 것을 알 수 없지만 보좌관들이 똑똑하기 때문에 이러한 국민들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그들의 요구에 이런 허점이 있으며 이것으로 반박하시면 그 요구사항 한 쪽이 자기의 과오가 드러납니다. 따라서 임금님의 위상은 더욱 더 높아지고 존경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보좌관들을 두는 거에요. 임금의 자리가. 최고의 자리에요. 모든 인간의 지혜가 집대성 중에서도 정점에 해당되는 자리, 임금. 그리고 그 보좌관은 선지자.

그런데 이들조차도 듣고자 해도 듣지 못하고 보고자 해도 보지 못한 것을 70명 너희 제자들에게 내가 알려줬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지혜냐? 그게 누가복음 10장 20절에 보면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늘에 기록된 것, 너희 이름이.

이걸 성경에서 말하기를 이거는 무슨 체계냐 하면은 하늘이죠. 하늘에 기록됐잖아요. 하늘이니까 땅에 있어요? 없어요? 그 책은? 생명책은 땅에 없습니다. 땅에서 인간이 만들어내는 거 아니에요. 하나님이 직접 만드시는 겁니다. 생명책이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시는 것.

인간이 여기서 요구한다고 들어가고 빼달라고 해서 뺄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직접 만드시는 겁니다. 결국 생명책 만든다는 것은 뭐냐 하면은 설계자가 하나님이시고 그 설계자대로 하는 실행자는 누구가 되느냐 하면은 바로 예수님이 되시는 거에요. 북 치고 장구 치고 아버지와 아들이 다 해버리는 겁니다.

이것은 인간의 임금이나 인간의 지혜자, 선지자들은 이런 줄도 몰라요. 왜? 그들은 땅을 관장하기 때문에. 그러나 생명책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늘에. 생명책은 제조공장이 어디지요? 제조공장이? 하늘이 제조공장. 그렇다면 여기에 브랜드는? 구찌? 루이비통? 상표는 그냥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가 상표가 되는 겁니다. 왜? 제조공장이 하늘에 있고 하늘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게 되면 생명책에 내 이름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지요. 그러나 인간의 요구사항이 있다고 생명책에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빼달라고 해서 빠지는 게 아니에요. 이런 것이 정말 참으로 어렵습니다. 정말 이런 게 어려워요. 어느 정도로 어려우냐? 얼마나 어려운지 제가 이 두 가지를 비교해보고 차이점을 여러분들이 한번 보세요.

How many와 How much.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똑같이 얼마나 많이 그런 뜻이거든요. How many, How much. 그런데 이게 사용방법이 달라요. How many라고 하는 것은 하나하나 숫자 헤아림이 가능해요. 하나하나 숫자. 개체 헤아림이 가능.

How much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이’ 거든요. 그 개체 하나에 개체 헤아림이 무의미합니다. 무의미하다. 개체 헤아림이 가능하고 이게 의미가 되어버리면 나는 생명책에 들어갔습니까? 뺐습니까? 라는 질문이 성립이 돼요. 질문이 가능하다고요.

더 알기 쉽게 말해서 이렇습니다. 저 금은 몇 개냐 라는 이런 질문은 이건 성립이 안 됩니다. 저 금덩이가 몇 개냐가 안돼요. 왜냐하면 금은 잘게 잘라보면 무한대로 몇 개가 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금은 몇 개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How much가 되는 겁니다. 얼마나 많이. 집단적으로 표현하는 거에요. 금은. 집단적으로.

그래서 생명책은 내가 들어가있습니까? 빠져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허용하지 않아요. 그 질문 허용하지 않고 그게 내 개체의 기대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생명책을 거론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 생명책은 뭐냐 하면은 연대를 이뤄요. ‘연대’. 영어로 하면 ‘Band’죠. 연대. 일종의 집단을 형성해서 그걸 하나로 양쪽으로 한꺼번에 처리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늘에 생명책이 있다면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 생명책에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가 없지요. 나 들어가게 해달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러면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사람을 집어넣기 위해서는 이 생명책은 무엇이 되느냐?

이 생명책은 오늘 첫 번째 나오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텅 빈 형식이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형식은 있는데 안에 텅 비어있어요. 형식이 있는데 안에 텅 비어있다고요. 텅 비어있으면 그 안에 텅 빈 형식을 내용을 누가 채우겠어요? 당연히 생명책은 하늘에서 제조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채우지요. 그러면 지상에 등장할 때는 텅 빈 형식으로 주어지는 거에요.

그런데 이러한 생명책의 설계자는 하나님이시고 그 내용은 누가 채우신다? 우리 주님이 실행자가 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거에요. 이 땅에 와서 아무것도 안하고 돌아갈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너희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이 70인들아 할 때 70인 누구누구 말입니까? 하는 게 아니라 그 70인이라고 하는 것은 How many의 70인이 아니고 How much의 70인이에요. 금 덩어리 한 덩어리처럼.

똑같은 의미가 요한계시록에 7장 4절에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7장 4절에 보면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14만4천이라고 하는 것은 인 맞은 자를 표현할 때 이 숫자는 How many의 숫자가 아니라 How much의 숫자에요.

그냥 14만 4천으로 개수로 보지 마시고 중량으로 보세요. 한 덩어리. 완벽하게 구원된 사람의 Band, 연대 덩어리를 14만 4천. 12x12x1000을 한 이유가 12는 야곱의 이스라엘 백성이 되기 위해서 야곱의 아들, 12지파에게 복을 내릴 경우에 그 복은 야곱 시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야곱 마지막에 최종 온전한 이스라엘, 온전한 교회, 이스라엘까지 12라는 복의 원리는 완료 1000, 완료가 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기어이 완성시키고 만다.

12x12x1000. 144가 아니에요. 12x12입니다. 12를 강조점이 있어요 강조점 엑센트를 주는 겁니다. 언약의 언약은 언약이 언약대로 완성하게 되면 1000. 다시 말해서 시대는 그걸로 종료된다. 생명책에 숫자 다 차면 시간이 멈추고 역사도 끝난다. 그럴 때 하나의 금덩어리처럼 되는 거에요.

왜 인간 세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왜 How many가 아니라 How much로 단일 양적으로 그렇게 표현하느냐. 이거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상식적이지만 인간은 인공물이 아니에요. 그렇지요? 인간을 인간이 만든 게 아니잖아요. 부모가 나를 만든 게 아니에요. 인간은 인공물이 아닙니다. 부모의 DNA를 자손이 물려받은 건 맞는데 그 DNA가 인간이 만든 게 아니에요.

DNA 누가 만들었습니까? 라는 질문은, 펜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라는 질문과 별은 누가 만들었으며 달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와 동일한 질문이에요. 달이 저기 있고 달의 부피는 달의 길이는 이거는 측정할 수 있지만 근원적으로 누가 만들었는가? 누가 만들어서 달을 저기 공중에 띄워놓았느냐? 아인슈타인이 했습니까? 뉴턴이 했습니까? 윤석열 당선자가 별 만들었어요? 누가 만들었어요? 인간들 중에 있어요? 없어요? 인간들 중에 없지요.

이 말은 인간이 생각하는 원리는 인간에게 적용되면 안 된다는 뜻이에요. 왜? 인간이 만든 것은 인공적이고 인공적인 원리는 인간이 그걸 만들 때 원리를 인공적이기 때문에 만들면 되는 거죠. 여기 매직 만들 때 이렇게 만들었단 말이에요. 여기 어떤 원리가 있느냐?

이걸 쓸 때 이렇게 쓰면 안돼요. 뚜껑을 연다. 그거 하라고 이렇게 뚜껑을 이렇게 만든 거에요. 울산 강의에서는 이렇게 안하고 어떻게 했느냐? 새로 나온 것. 인터넷에만 판다는 것. 딱 하면 매직이 딱 나오게 되어있어요. 열다가 뚜껑 날라가서 줍고 이런 거 없고.

그렇게 만들 때 원리가 있듯이 인간은 그렇게 돼야 돼요? 안돼야 돼요? 인간은 그럴 수 없어요. 인간의 어떤 것도 인간에게 적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 인간은 인공물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만드신 분의 원리가 들어가야 돼요.

인간이 세포로 만들어진 것은 맞아요. 하지만 세포의 원리가 인간에게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세포가 인간을 만든 게 아니고 인간은 세포로 만들어졌지만 재료는 세포지만, 만들어진 원리는 생물학적이 아닙니다. 단순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인간의 원리란 무엇이냐? 인간이 인공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 원리 해와 달과 별과 동일하게 하나님이 적용하신 원리가 있습니다. 원리를 크게 쓸게요. ‘너를 무서워마라.’ 이 세상 사람들이 악마가 무서워요 귀신이 무서워요 코로나 무서워요. 사람이 남들이 다른 사람이 내게 다가오는 게 무서워요.

무서워하는 것은 본인이, 본인이 무섭기 때문이에요. 내가 무섭기 때문에 남들도 무서운 거에요. 내가 망가질까봐 무섭고 무너질까봐 무서운 거에요. 사람이 자기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한번 적어볼게요. 내가 나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내가 텅 빈 형식이 될까봐. 내 안에 아무것도 없어질까봐 인간은 두려워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그냥 주께서 안에서 주님의 내가 인공물이 아니고 사람이 만든 게 아니고 누가 만들었다면 누가 만드신 그 원리가 나한테 오도록 우리는 자기를 텅텅 비어놔야 되겠지요. 내 것을 비워놓게 되면 내가 남을 공격할 무기는 나한테 없습니다. 왜냐? 텅 빈 형식이기 때문에.

그냥 주시는 은혜대로 그냥 받을 뿐이지요. 세리와 창기들처럼. 뭐 내세울게 없어요. 7년 동안 귀신들려서 구부러진 사람이나, 혈류병 걸린 사람이나 이런 사람들. 그리고 문둥병자 소경들. 뭐 변변하게 내놓을게 없어요. 내놓을게 없으니까 주의 뜻대로 안 될까봐 염려하는 것도 없어요. 뭐 개코라도 있어야 희망하는데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 텅 빈 형식이 뭐냐 하면은 바로 누가복음 10장에 38절에 보면 마르다, 마리아하고 오빠하고 같이 사는데 마르다는 일이 많아서 분주한데 동생 마리아는 아무것도 안하고 뭐만 듣습니까? 주의 발 앞에서 그의 말씀만 듣지요. 이 마르다와 마리아 둘 중에 누가 텅 빈 형식이 될까요? 텅 비어 있을까요? 바로 주의 말씀만 채우는 마리아가 텅 빈 형식이 되는 겁니다.

언니는 자기 솜씨를 맛있는 잡채나 탕수육이나 자기 솜씨를 예수님에게 발휘해서 내 쪽에서 뭔가 내놓을게 있고 내세울게 있다고 보는 거에요. 그러나 그것은 뭐냐 하면은 인공물이에요. 인위적이고 인공물이에요.

아나니야와 삽비라 사도행전 5장에 헌금해서 사이 좋게 부부가 한날에 다 죽은 사람 있지요? 아주 사이 좋아요. 죽을 때. 님아 요단강 건널 때 같이 건너간 사람 있어요. 갔는지 안 갔는지 모르겠습니다만은 그 사람은 왜 죽었습니까? 텅 빈 형식이 아니기 때문에 죽은 거에요.

헌금을 이쯤할까? 이쯤할까? 뭔가 계산이 되는 겁니다. 텅빈 형식이 없으면 How much가 아니에요. How many에요. 내가 내 것을 카운트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것까지는 내것이고 이것까지는 내것 아닙니다를 서로 구분하는 거에요.

인간이 귀신 집에 갔을 때 귀신이 무섭다라는 것은 자꾸 우리가 귀신을 무서워하고 마귀를 무서워하는 것은 그것은 무엇 때문에 그런 현상이 있느냐 하면은 이미 마귀가 우리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에 그것이 다치지 않기 위해서 마귀가 만들어낸 인간이 자기를 만들어준 마귀보고 무서워하고 있는 겁니다. 주님께서 만든 인간이에요. 내가 채워줄게 에요. 내가 채워줄게.

어떤 청춘 남녀가 대화하는데 연애하면서 남자가 여자에게 이런 이야기해요. 당신은 왜 자꾸 나한테 심술을 부리느냐? 남자가 여자보고 당신은 왜 나 만나면 자꾸 나에게 심술을 부리고 나를 괴롭게 힘들게 하느냐? 그럼 여자가 어?! 나는 그런 적 없는데?! 당신의 그 아름다운 미모 때문에 내가 일에 집중이 안 되잖아!

나는 내 할 일이 있는데 당신의 그 빛나는 미모 때문에 나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너무 아름다워서. 어쩌면 좋아. 그런 소리 들어봤습니까? 텅 빈 형식은 자기로 인하여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내가 말 이렇게 하면 내가 말 이렇게 했다고 남이 욕하겠지? 그럼 나는 힘들겠지? 이런 게 없어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내가 이 말하면 얼마나 상처 받아가지고 내가 얼마나 또 저 사람한테 미안해하고. 자기가 남들 앞에서 나의 체면이 구겨지면 어떡하지? 그런 체면 같은 것도 없습니다. 그냥 텅 빈 거에요. 왜냐하면은 나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내가 만들어버리면 나는 하나의 개체가 되고 개체는 생명책에 명단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땡! 탈락이에요. 개체는 땡! 탈락이에요. 열심히 노력해서 말씀대로 살아서 생명책에 꼭 내 이름이 기록되도록 힘써 노력하겠습니다 파이팅! 이것은 주께서 전부 다 이거는 인공물로 간주해서 다 제거해버립니다.

그 당시의 선지자들과 그 당시의 유대인들의 민족의 신학을 보고 24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생명책은 나와 1:1 대응이 안 됩니다. 생명책은 우리가 보는 하나의 대상이 아니에요.

그래서 그 원리는 뭐냐? 동일한 것은 둘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동일한 것은 하나만 있어야 되지 둘이 있으면 안돼요. 너도 생명책, 너도 생명책. 너는 따로 다 가졌다가 아니라 동일한 생명책에 원리 적용을 받는 겁니다. 그래서 생명책에 들어 온 사람의 특이점, 특이성은 뭐냐? 존재를 보지 않아요. 보지 않는다.

인간 존재에 대해서 신경 쓰지를 않아요. 주님에게 관심 있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인간 존재를 보지 않을 때 특히 핵심은 뭐냐? 내가 나를 볼 권한도 없고 자격도 없다. 내가 나에게 신경 쓸 그만한 권한은 주님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내가 나에게 관심사 되면 나는 How many가 돼요. 하나의 개체가 되버린다고요. 개체. 카운트되는 대상이 된다고요 내가요.

나는 어떤 집단에 속해야지 내가 따로 꼭 집어서 내가 하나의 개체가 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이 개체를 내가 이걸 지킬까 말까 지킬까 말까 하면서 내가 혹시 못 지키면 어쩌나 내가 나를 무서워해요. 평생을 두고 하루도 쉬지 않고 내가 나를 무서워합니다.

내가 나를 붙들고 어쩔 줄을 모르고 내가 나를 감당을 못해요. 이 덩어리를 어쩌면 좋나. 코로나 안 걸려야 할 텐데 벌벌벌벌 떨고 있는 거에요. 자기가 자기한테 무서워하니까 남들이 오는 것도 다 주위 사람이 다 무서운 거에요. 누가 이야기하면 무슨 말할까 벌벌 떨고 있어요. 감당도 못해.

다시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텅 빈 형식이에요. 형식만 있는데 안에 텅 비어있습니다. 그럼 안에 뭐를 채울 것인가? 그게 바로 누가복음 10장에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이런 주께서 일으키는 사건이 이제 우리 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그 사건을 피해서 가버렸고 그 다음에 레위인도 그 자리를 피해서 가버렸어요. 주께서 생명책에 필요한 내용을 줬건만 하늘에서 만들 생명책을 만들고자 내용이 있어야 되는데 내용을 줬건만 그 내용을 피해갔습니다. 여기서 오늘 제일 중요한 개념이 나옵니다.

이게 뭐냐 하면은 바로 ‘방향성’. 방향성이 달랐어요. 방향성이 다른 거에요. 예수님이 가고자 하는 그 방향이 아니고 낯을 피하여 반대방향으로 가는 겁니다. 반대방향으로. 어떤 힌트가 있는데요. 30절에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원래 이스라엘 정복할 때 여리고부터 정복하고 들어오잖아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갔다.

그런데 거기에 제사장, 거기에 레위인은 어디 있느냐 하면은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고 있지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고자 하는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가버린 겁니다. 왜냐하면은 레위인과 제사장이 자기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장소는 여리고가 아니에요. 어딥니까? 예루살렘이에요.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작자들이 레위인들과 제사장이에요.

물론 일 마치고 놀러 또 여리고 성에 갈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그런 문제도 있지만 여기서는 지리적인 방향이 우선이 아니라 제가 말한 지리적 방향 예루살렘 좋고 여리고 나쁘고 그런 게 아니고 또는 예루살렘 나쁘고 여리고 좋다는 그런 말이 아니고 예수님이 말씀을 탁 던져버리면 네가 지금 가고 있는 인생길이 주님 쪽이 아니냐, 이냐가 이게 주님께 말씀을 듣는 순간 판정이 나고 그 말씀은 사건화 되어서 일어나요. 사건화 되어서.

평소에 자기가 텅 빈 형식이라면 주님의 말씀이 사건화 되어서 오게 되면 저 사건은 나로 하여금 내가 주님 가신 쪽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주님 낯을 피해 반대로 가신 것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건으로 해석을 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겁니다.

텅 빈 형식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 텅 빈 형식이란 그동안 맺어왔던 모든 과거와의 관계를 끊는 것. 모든 과거와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 과거와의 모든 관계를 끊게 되는 게 텅 빈 형식이에요. 그 텅 빈 형식에 대해서 누가복음 10장 30절에서 예수님께서 그걸 두 자로 이야기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은 이웃이에요.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강도 만난 사람. 강도 만난 사람과 일체성을 이루는 이웃. 첫 번째 텅 빈 형식은 뭡니까? 강도 만난 사람. 두 번째 텅 빈 형식은 강도 만난 사람 도와주는 사마리아 사람. 그러면 이 두 사람이 어디 안에 있는가? 두 사람이 텅 빈 형식을 채우는 생명책이라는 그것을 공정하는 내용으로 채워지게 돼요.

그러면 그 내용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실제로 그 내용을 만드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 본인입니다. 예수님 본인 안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뭐가 되느냐 하면은 이웃이 되고 예수님 본인이 그 이웃을 도와주는 분이 되요. 무슨 말이냐 하면은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사건이 어떤 사건이냐 하면은 한쪽은 완전히 뻗어있는 사건이고 그 사건의 그 뻗어있는 것을 살려주는 사건. 이 두 가지.

십자가도 있고 그 다음에 부활은 뭐냐 하면은 전에 죽은 적이 있다는 뜻이에요. 사람들이 이제는 너한테 더 끄집어낼게 없어 가지고 갖다버린 적이 있다는 겁니다. 무덤 속으로. 사람이 죽게 되면 과거도 같이 이제는 소용없게 되지요. 과거가 다 빠진 상태다 보시면 됩니다.

그 빠진 상태에 예수님이 하신 일로 그 과거가 채워지게 되면 텅 빈 형식은 주님의 생명으로 채워지는 새로운 생명책에 해당되는 금덩어리 같은 사람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주님의 말씀이나 주님의 사건 하나 예를 들은 사건 하나 주님이 일으킨 사건 하나가 다 지금 자기 백성의 내용을 채우는 사건들로 주께서는 일으키신 거에요. 주님 자기만 챙길려고 그 사건 일으킨 거 아니에요.

25절 이제 봅니다.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아까 이야기한 것 다시 이야기합시다. 인간은 인공물이 아니지요. 자기가 자기를 만드는 게 아닙니다. 자기를 자기를 지키는 게 아니에요. 인공물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원리가 적용되어야 됩니다. 그 다른 원리 적용되는 원리를 이미 구약에서 율법으로 주신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 율법사가 율법으로 되어있으니까 율법사가 뭐냐 하면은 내가 그 내용을 본인이 채운다고 생각해서 이런 질문을 한 거에요. 율법의 내용을 지키면 영생을 얻는데 그 영생을 얻기 위해서 내 쪽에서 뭘 해야 됩니까 라고 물은 거에요. 그 질문 자체가 생명책의 원리와 맞지 않습니다. 이건 너무 인공적이에요. 인위적이고 인공적이에요. 부합되지 않습니다.

자, 이 율법사가 왜 이런 질문을 할까요. 주님 앞에. 예수님 제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이 질문 왜 하느냐? 그 한 질문을 한 이유는 사는 게 지루해서 그래요. 심심해서 그런 거에요. 사람들이 아무리 바빠도 심심해요.

왜냐하면은 여러분들이 아침에 거울보고 식구들 보지요. 거울에 자기 얼굴을 본다 이 말이에요. 식구들 얼굴, 자기 얼굴 보면서 자기 얼굴이나 식구들 얼굴에 권태를 느낍니다. 왜? 늘 봤던 것이기 때문에. 멀리서 손자 손녀가 갑자기 오게 되면 갑자기 아름답고 이뻐요. 왜?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내 식구라고 하지만 오래 보면 식상해요. 지루해요. 심심해요.

사람은 일단 배부르면 같이 놀아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놀아주는데 어떻게 놀아주느냐? 늘 새로운 걸 줄 사람을 필요로 해요. 자기가 자기하고 놀려면 재미가 없어요. 인간이 제일 재미없는 일이 자기가 자기하고 장기 두는 거에요. 장기를 둘 사람이 없어서 자기가 놨다. 장군! 멍군! 자기 혼자 두는 것.

또는 청량리 근처에 있는 아주머니들이 손님 없으면 아침에 화투 내놓고 치마 휙 드러내놓고 앉아서 오늘 운세 한번 보자. 화투 네 장씩 나란히 12장.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그거하고 오늘 운세와 무슨 관계있다고 딱 해가지고. 화투를 할 때 이렇게 겹쳐서 12개 합니다. 화투는 화투지만 해석은 아줌마들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요. 자기가 자기 가지고 노는 거에요. 왜? 심심하니까.

제가 언젠가 그런 이야기했어요. 농부가 농사꾼이 농사짓는 이유는요 심심하니까 하는 거에요. 인간은 배고파서도 못 살지만 심심해서도 못 살아요. 그러니까 심심하니까 누가 자기가 말 섞을 수 있는 시간 때울 수 있는 말거리 친구가 필요하잖아요.

이 율법사가 누굴 잡았느냐 하면은 예수님을 잡은 거에요. 내가 아는 신학 지식과 주님이 아는 신학 지식과 견주어서 이 무료하고 권태로운 시간을 짜릿하게 한번 보내볼라고 묻는 게 뭐냐 하면은 선생님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습니까? 자기가 몰라서 묻습니까? 자기는 다 알고 있는데요. 율법을 지키면 된다 다 알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잘 아네. 잘 아는구만. 그래서 그 옳도다 이야기 들었다고 이 율법사가 천국 갑니까? 네가 짜놓은 인공적인 것, 인위적인 그 게임을 본인이 포기하지 않고 그 게임에 예수님을 불러일으키는 거에요.

내가 바둑판 가져왔으니까 바둑 한번 두세요. 이것처럼. 내가 벌려놓은 판에 내가 이렇게 지루하지 않고 같이 좀 놀아 주세요 하는 식으로 내 판에 끼어들어서 하는 방법이 뭐냐 하면은 어느 것이 영생이고 어느 것이 율법의 완성이냐 하고 노닥거리고 있는 거에요. 신학 지식 가지고 노닥거리고 장난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의 심보에요. 이게 인간의 기본 심보입니다. 배부르면 놀고 싶은 거에요. 사장들이 직원들 뽑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일은 직원이 하고 사장은 그 시간이 놀려고 하는 거에요. 골프치고 놀려고. 뭐 사장 안 돼 봐서 뭐 압니까.

그래서 회사 초반기에는 사장이 빡시게 모범적으로 일해요. 좀 안정궤도 들어가면 사장은 낮에 코빼기도 안 보입니다. 놀러다니고 있어요. 누가 답답한가? 사원들이 답답해요. 왜? 회사 망하면 자기월급이 안 나오니까. 죽을둥 살둥 일해요. 사장은 지금 골프장 가 있는데.

왜? 그 사람들 사장들한테 물어보세요. 당신 왜 놉니까? 사장 말하기를 사람이 사는 이유가 뭔데? 사람 사는 보람이 어디 있는데? 그건 바로 재미나게 사는 거에요. 재미나게. 이런 질문도 내 인생 재미나게 해볼려고 이런 질문하는 거에요. 진지함의 티를 위장을 하면서. 귀신을 속여라. 어디 자기 게임에 주님을 건방지게 같이 끼어듭니까.

논다는 것은 날마다 새로움이 나와서 그 흥미로움에 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매료되기를 원하는 거죠.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사람의 그런 예수님 자신을 가지고 장난치는 그런 짓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잘 걸렸다 인간아’ 하고 딱 붙들고 이웃에 대해서 이웃이 무엇입니까 질문했으니까 이웃에 대해서 답변을 합니다.

답변을 하는데 텅 빈 형식, 텅 빈 형식을 본인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위인은 아무도 없음을 보여주는 거에요 왜? 텅 빈 형식은 아니고 꽉 찬 형식이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강도 만난 사람은 다 뺏겼어요. 다 빼앗겨버렸어. 강도 만나서 죽은 것도 아니에요. 차라리 죽었으면 문제가 끝날 건데 거의 반 죽었어요. 여기 보면 거의 반 죽었어요.

이 말은 뭐냐 하면은 텅 빈 형식이 어디까지 내려가는가. 텅 빈 형식이 아주 극한까지 내려가는 거에요. 삶과 죽음의 경계선, 거기까지 가는 거에요. 이 점을 이 텅 빈 형식을 설명하기 위해서 누가복음 12장을 13절을 잠시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2장을 13절을 보면 이건 볼 것도 없어요 여러분들 다 아시는 이야기에요.

예수님께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선생님 형이 아버지 유산을 혼자 다 독차지 했습니다. 내게 올 몫을 형이 다 가져갔어요. 되찾게 해주세요” 라고 예수님을 찾아 온 거에요. 예수님의 그 정의를 정의답게 나한테 좀 적용해 달라 이 말이거든요.

그러면 아까 우리가 생각한 거 다시 적용해 봅시다. 이 사람은 텅 빈 형식이에요? 아니에요? 지 딴에는 텅 빈 형식인데 이거 판은 누가 깔았어요? 이건 텅 빈 형식 쪽으로 가는 게 아니고 텅 빈 형식을 안타까워하면서 내게 돌아올 내 돈으로 꽉 차기를 원하는데 형이 다 가지고 갔으니까 이걸 채워달라고 온 거에요.

예수님께서 나무라십니다. 15절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14절에 보면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지금 네가 만든 판에 나를 끌어당기지 마.

인간은 뭐냐? 자기 것으로 자기가 꽉 차 있어서 더 이상 어떤 공포, 내 것 아무것도 없다 이제 안 망하겠다는 공포심에서 좀 해방되고 싶고 그것으로 이제 인생을 이제 즐기고 싶은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비유로 이야기해줄게.

어떤 농부가 있는데 그 사람의 소출이 너무 잘 되서 그래서 너무 잘 되서 창고를 크게 지었어요. 그 소출을 거기에 놓고 혼자서 뭐냐 하면은 19절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참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이 자체가 악마의 표적이에요. 나한테 관심두면 안되는데 자기가 자기한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자기가 자기하고 장기 두고 바둑 두고 다 하는 거지요. 내가 나하고 노닥거리는 재미로서 이번에 많은 재산 들어왔으니까 내가 나 보기에 흐뭇하고 사람 사는 것 같고 인간 승리한 것처럼 느끼지는 거에요. 뭐 서민부자 그런 거에요? 적어도 인생을 살았으면 이 정도 성공해야지 하고 뿌듯해하는 거에요. 뿌듯해하는 거에요. 많은 소유를 가졌지요. 많은 내용을 가졌어요.

그런데 형식 자체를 주께서 가져가버립니다.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20절에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밤새 바둑 둔다고 바둑판에다가 두 사람이 막 코피 쏟아가면서 바둑 뒀어요. 뒀는데 이게 공부도 안하고 바둑 둔 자리를 뒤엎어 버리면 안에 밤새도록 뒀던 그 돌들 어떻게 됩니까? 와르르르 다 사라지지요.

제가 아는 어떤 친구는 내 친구 동생이 바둑만 두고 자기 할 일 안하고 공부도 안하고 하니까 그 형이 도끼를 가져와서 동생의 형식을 바둑판을 두 조각냈어요. 두 조각냈는데 두 조각내니까 이제 바둑 못 두지요. 바둑 못 두니까 나중에 형이 자기가 심심한 거에요. 그래서 테이프 가져와가지고 자기가 다시 붙여가지고 동생 보고 바둑 두자고 불렀습니다. 이거는 내가 목격한 거에요. 이거는 실제 사건, 내가 목격한 사건이에요. 그 친구는 쪼개진 바둑판 위에서 바둑 두고.

하나의 객기로 오기 부리면서 인생 새 인생 산다고 비장한 각오로 내가 다시는 이런 짓하면 나는 개다 하고 결심을 했지만 내가 담배 피우면 인간도 아니다. 담배 끊었다 해놓고는 나중에 담배 끊을 때는 자기가 담배 끊을 것같이 했지요. 한 이틀 뒤에 속상한 일 일어나니까 야 이럴 때는 담배가 답이다 해서 쓰레기통 뒤져가지고 자기가 가위로 끊은 담배를 붙여가지고.

결국 인간은 자기가 무너지는 것을 무서워해요. 자기가 무서워지니까 세상에 조금만 뭐 삐그덕 해도 가을바람에 창틀이 좀 흔들려도 아이고 무서워 잠 못 자 뛰어오고 뚫어진 창호지에 달빛만 어른거려도 귀신 나타났다고 엄마 방에 뛰어가는 어릴 적 그런 거 없었어요? 어릴 때 다 부자였군요. 찢어진 창호지 집에서 안 살아봤는지.

코로나 32만 명이다. 가슴이 철렁해. 가슴이 떨려. 뭐 좋아하는 여자 친구 미모 때문에 가슴이 철렁대는 게 아니고 자기 자신이 내 걸 지키는데 하나님이 무슨 훼방질할까봐 하나님 믿으면서 하나님을 겁내고 두려워하는 거에요.

어떤 사람이 남자가 여자를 너무 좋아해가지고 진짜 결혼하자는 고백을 못했는데 결혼하자는 고백을 하기 위해서 여자는 집에 있고 남자는 병원에서 환자복 입고 병원 앞에 있는 공중전화 해가지고 전화를 합니다. 여러 가지 사설 늘어놓고 마지막 결론 시간에 “결혼, 합시다”만 하면 되는데 “결혼”, 했는데 동전이 뚝 떨어졌어요. “합시다”를 말을 못한 거에요. ‘사내맞선’ 드라마에 나온 내용이에요.

세상만사 내 맘대로 안 되지요. 내 맘대로 안 된다는 것이 기뻐해야 돼요. 내가 나를 몰랐구나 하고 기뻐해야 될 문제를 가지고 그러면 내 맘대로 될려고 한다면 헌금을 십일조를 얼마를 해야 됩니까 이렇게 이건 마귀한테 벌벌 떨다가 이제는 하나님 믿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 앞에 벌벌 떨고 있어요. 주께서는 그런 뜻이 아닌데 그럼 주의 뜻은 어떤 뜻인가?

10분 뒤에.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84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9,067 자유게시판 안양20220414a슥11장13절(사라지는 매개자)-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22-04-30
19,066 자유게시판 16강-미가 5장 1-4절(가장 위험한 곳)220427-이 근호 목사 미가 최고관리자 22-04-28
19,065 자유게시판 대전-신명기 1강 (오답노트)20220425a 신명기 최고관리자 22-04-27
19,064 자유게시판 대전-질문답변 20220425 - 최고관리자 22-04-27
19,063 자유게시판 7강-데살로니가후서 2장 1-4절(구원이란 아이디어)220424 - 이 근호 목사 데살로니가후서 최고관리자 22-04-24
19,062 자유게시판 132강-욥기 40장 15~24절(싫소이다)220424 이근호 목사 욥기 최고관리자 22-04-24
19,061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살아계신 주님 / 220424 - 최고관리자 22-04-24
19,060 묻고답하기 불법의 비밀 데살로니가후서 최고관리자 22-04-24
19,059 묻고답하기 [텅빈 형식]-송민선 성도님의 글 - 최고관리자 22-04-23
19,058 자유게시판 텅빈 형식 - 최고관리자 22-04-23
19,057 자유게시판 15강-미가 4장 9-13절(해산의 고통)220420-이 근호 목 미가 최고관리자 22-04-21
19,056 자유게시판 389강-YouTube강의(인생이란 누가복음 21:26)20220419-이 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2-04-20
19,055 자유게시판 388강-YouTube강의(저주 로마서 2:5)20220419-이 근호 목사 로마서 최고관리자 22-04-20
19,054 강의 유튜브강의( 388강, 389강) 저주. 인생이란 220419 로마서 최고관리자 22-04-19
19,053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10장 36절 (텅빈 형식) 220405b-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2-04-18
열람 ➜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10장 36절 (텅빈 형식) 220405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2-04-18
19,051 자유게시판 6강-데살로니가후서 1장 11-12절(폭력적인 부르심)220417 - 이 근호 목사 데살로니가후서 최고관리자 22-04-17
19,050 자유게시판 131강-욥기 40장 6~14절(혼돈 정리)220417 이근호 목사 욥기 최고관리자 22-04-17
19,049 묻고답하기 이기웅 목사님이 진짜인가요? - 최고관리자 22-04-17
19,048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죽으심과 부활 / 220417 - 최고관리자 22-04-17
19,047 묻고답하기 배도하는 일 - 최고관리자 22-04-17
19,046 자유게시판 서울의존강의20220414b 베드로후서 2장 4절(회수되는 자기 의)-이 근호 목사 베드로후서 최고관리자 22-04-16
19,045 자유게시판 서울의존강의20220414a 베드로후서 2장 4절(회수되는 자기 의)-이 근호 목사 베드로후서 최고관리자 22-04-16
19,044 자유게시판 14강-미가 4장 6-8절(바뀐 인생)220413-이 근호 목사 미가 최고관리자 22-04-14
19,043 자유게시판 20220411b 부산강의 : [시편]47(31:19)-문제해결책 시편 최고관리자 22-04-13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