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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서울의존강의20220414a 베드로후서 2장 4절(회수되는 자기 의)-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베드로후서

서울의존강의20220414a 베드로후서 2장 4절(회수되는 자기 의)-이 근호 목사

베드로후서 2장 4절,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그렇게 되어있죠. 천사가 범죄했다는 이 사실에 대해서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기와 관련된 일인지 아닌지 그것을 본인이 결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어떤 천사가 왔는데 저게 범죄한 천사인지 아니면 진짜 좋은 천사인지 인간 선에서 판정할 수 있는 근거나 기준이 없습니다. 그 한 예가 마태복음 4장에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금식기도하고 있었을 때 어떤 천사가 나타났어요. 예수님께서 광야에 있을 때에 두 종류의 천사가 다 나타나요. 마태복음 4장에서 하나는 마귀가 여기에 나타나죠. 그다음 11절에 보면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두 종류의 천사가 예수님 있는 곳에 다 나타납니다.

그러면 이것이 범죄한 천사인지 범죄하지 않은 천사인지 하는 것은 누가 현장에 있을 때나 가능하냐 하면 예수님이 계실 때 서로 상반되는 두 천사가 다 오죠. 그런데 그 두 천사를 어떻게 구분하느냐. 그것은 예수님에 대해서 나쁜 천사도 무슨 의견을 제사하고 좋은 천사도 어떤 의견을 제시하는데 마태복음 4장 입장에 의하면 이 나쁜 천사, 범죄한 천사인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한다는 점에서 그 정체를 폭로합니다. 시험한다는 것.

강의를 다시 한다면 인간에게는 나쁜 천사, 좋은 천사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없습니다. 없고 예수님이 계실 때 천사가 나쁘다, 좋다고 할 수가 있어요. 나쁜 천사는 예수님을 시험하는 거예요. 하나의 공식이니까 적어보겠어요. 나쁜 천사(범죄한 천사) 다른 말로 악마죠. 악마의 공식은 예수님을 시험한다. 시험을 유혹이라 할 수 있고 테스트라 할 수 있어요.

시험과 테스트는 같은 말인데 예수님을 시험하는 이유가 예수님이 다른 가능성을 시도하도록 부추기는 거예요. 악마가 악마다운 이유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다른 가능성을 시도하도록 부추기는 겁니다. 악마가 하나님을 시험할 수 있을까요? 시험할 수 없습니다. 악마는 하나님을 안 건드려요.

그런데 악마가 광야에서 예수님에게 시도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의도적으로 붙어라, 붙어라, 의도적으로 조성한 거예요. 만남의 기회를 의도적으로 조성해준 겁니다. 악마가 시도하고 노리고 있는 바를 들추어주기 위해서 예수님 있는 곳에 악마가 같이 붙도록 조성한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다른 가능성을 시도하도록 한다는 말은 이미 악마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다는 거예요. '선악과 따먹지 마라‘ 이것이 하나님 뜻인 걸 알고 있어요. 그럼 악마는 하나님 뜻의 다른 가능성을 시도하는 거예요. 좀 따먹으면 어때. 그렇게 나오는 겁니다.

다시 정리하게 되면 악마의 관심사는 오직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훼방하는데 거기에 악마는 전력을 다합니다. 악마를 느끼고 악마의 존재를 확인하려면 예수님이 계신 곳에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비로소 우리는 악마를 느낄 수 있어요,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그러면 예수님과 함께 있으려면 우리는 죄인이 되잖아요. 그렇죠?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왔기 때문에. 예수님이 죄인을 부름으로써 주님의 의가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잖아요. 그래서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려면 우리는 죄인이다 이 말이죠.

자, 강의에서 첫 번째로 제일 중요한 것은 이거에요.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남아있는 주의 일은 없다’가 됩니다. ‘남아있는’을 괄호에 넣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주의 일은 없다. 더 간단히 해서 우리의 할 일은 없다. 더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주의 일은 없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언제 악마를 느끼느냐 하면 ‘우리가 주의 일을 해야지’ 할 때 그게 어떤 종류의 일이건 100% 악마가 시키는 일, 부추기는 거예요, 주의 일을 해라. 더 쉽게 말해서 악마는 우리에게 무슨 요구를 하느냐 하면 ‘잘해야지!’ 간단하죠? 길지도 않아요. 딱 네 자에요. 제대로 살아. 제대로 잘해야지.

악마를 느끼고 싶습니까? 잘해야지! 이게 악마가 우리한테 부추기는 거예요. 잘살아야지. 잘해야지. 남편 같으면 남편 잘하고 아내 같으면 아내로 잘하고. 목사면 목사 잘하고 교인은 교인답게 잘해야지. ~답게 잘해야지, ~답게. 너는 너답게 잘해야지. 너 주의 일해야지. 이게 마귀 일이에요, 마귀 일.

평생을 살아도 우리는 할 수 있는 나의 일이나 주의 일은 지금 남아있지 않습니다. 없습니다. 사람이 내가 주의 일을 하는 순간 이미 홀라당 악마의 꾐에 빠졌어요. ‘내가 주의 일을 하는데 제대로 해야 될 텐데. 아이고, 제대로 수행 못하면 나 어떡해. 바르게 못하면 나 어떡해.’ 그래서 나온 유명한 노래가 나 어떡해. 갑자기. 나 어떡해. 나 어쩌면 좋아, 이런 거. 뭘 어쩌면 좋아요.

주께서 우리에게 주의 일하라고 주님 쪽에서 시킨 일도 없어요. 본인이 홀라당 다 해버렸으니까 우리에게 시키는 주의 일이 없는 거예요. 그걸 증인이라 합니다. 내가 주의 증인되는 거예요. 내가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인간은 평생에 악마의 밥이 되어 사는 거예요. 눈만 뜨면 악마가 ‘안녕~ 우리 반가운 친구야!’ 부터 해가지고 그다음부터 일시키는 거예요. 설거지 제대로 해야지. 청소 제대로 못하면 안 되지. 다음엔 더 잘해야지. 돈 열심히 벌어야지. 안녕, 친구야. 뽀로로 친구야~ 하는 것처럼.

주께서 우리 성도에게 보여준 것은 동사가 아닙니다. ‘~하라’가 아닙니다. 접속사에요. 그리고 그래서 그리고 그러므로. 이게 뭐냐 하면 내가 이렇게 했고 그리고 이렇게 했고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했고. 모든 것이 주께서 하신 일만 그냥 병렬로 나열될 뿐이에요. 네가 이거 하라,는 그런 동사는 없습니다.

심지어 백부장에게도 없어요.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나이다. 그 자체가 주께서 그렇게 만드신 거예요. 주가 만드신 거예요. 백부장이, 이거하면 주님이 저한테 뭐 해줄 겁니까? 이런 협약이나 관계는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왜 이렇게 악마한테 쉽게 넘어가느냐? 그것은 우리 인간이 자기의 육신을 가졌고 육신적으로 뭘 해내는 것에 아직도 미련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 자신을 육신으로 바라보는 거예요.

이것은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 다 같이 한번 찾아보도록 합시다. 고린도후서 5장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예수님 관점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볼 때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영의 사람이에요. 성령의 사람이에요. 거듭난 사람입니다. 주님의 성령을 공급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 안에 주의 성령이 들어있으면 그리스도의 사람, 영적인 사람이 돼요.

그것은 안 찾아봐도 알아요. 고린도전서 2장에 육의 사람이 있고 영의 사람이 있잖아요. 사도 바울이 그런 이야기했다고요. 그 특징이 뭐냐 하면 육의 사람은 영의 사람하고 대화가 안돼요. 영의 사람은 육의 사람과 대화를 할 수가 없죠. 육이 뭔지 알면서도 말을 하면 육의 사람이 자꾸 오해하고 곡해해서 다른 식으로 의미를 이해하니까 대화가 이어질 수가 없는 겁니다.

육의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를 육으로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볼 때 똑같은 관점으로 상대방을 육으로 보는 거예요. 어떻게 보느냐 하면 나 이만큼 열심히 살았는데 너는 얼마나 어떻게 열심히 살았느냐. 이게 어떤 관점이냐 하면 육의 관점이에요, 육의 관점. 여전히 내 할 일이 남아 있어요, 내 할 일이.

예를 들면 성령 받아서 영의 사람인데 어느 집에 시집을 갔다.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이제 군기 잡죠. 시집이 자기 나와바리니까 자기의 영역이니까 며느리 새로 왔을 때 “네가 친정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집와서 우리 사람 됐으니까 우리 집안과 가문의 법도와 도리를 따라라.”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엄중하게 이야기하죠. 물론 그냥 엄중하게 이야기하면 말 안 들을까 싶어서 낙지볶음하고 피자 사서 잘 대접해서 잘 먹여놓고 2차 순서로 커피하면서 무게 잡아가지고 “우리 집안이 이런 집안이다. 그러니까 네가 이 집안 사람 되었으니까 이 집안의 법도를 따라주면 내가 네 시아버지, 시어머니로서 참 고맙겠다.”

그렇게 할 때 그 며느리가 “저 영의 사람인데요? 저 예수의 영, 성령 받은 사람인데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남아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요.” 대화가 될까요, 안 될까요? 대화가 될 수가 없어요. 대화가 안 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인간이 인간답게 하려면 거기에 맞는 행위를 보여라. 이게 마귀의 말이거든요. 악마가 그런 말을 해요, 악마가. 그럴 땐 이렇게 얘기하면 돼요. “악마야, 아직도 너는 내가 육으로 보이냐?” 내가 아직 네 똘마니로 보이냐? 그런 뜻이에요.

악마는 네가 주의 사람이면 주의 사람답게 주의 일을 하라는 거예요, 악마의 주장은. 이게 광야에서 악마가 예수님보고 그렇게 하라 한 거예요. 악마가 얼마나 시건방진지...... 이건 피조물이 창조자보고 한 수 가르치겠다는 것밖에 안되거든요.

하지만 성령이 그 현장을 주선해서 예수님과 악마를 만나게 한 것은 모든 인간이 영의 사람이 되지 못하고 육의 사람으로서 악마의 종노릇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금식하시는 데에 악마를 들여보내가지고 둘이 만남의 기회를 갖게 하신 거예요.

창세기 6장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방금 제가 이야기한 것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6장 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사람이 그럼 육체지 육체 말고 뭐 다른 사람이 있느냐. 인간이 육체가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할 수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자꾸 불러대면서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고 하나님하고 함께하고 싶어 해요. 본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본인이 이미 코로나 걸렸는데 자꾸 이야기하면서 우리 오랜만에 보는데 마스크 벗고 손잡고 하자. 본인이 지금 코로나 양성인데...... 상대방은 음성이에요. 영의 사람이라고요. 음성 된다고 영의 사람 되는 건 아니고요. 예를 들면 그렇습니다. 코로나가 음성이 되려면 일단 양성이 되어서 자아가 죽고 난 뒤에 거듭나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처럼 한번 걸려서 면역이 생기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인간 자체가 육체인 걸 모르고 육체가 시건방지게 천당을 가려고 천국을 가려고...... 자기 분수를 알아야죠. 육체라는 말은 이미 악신과 악마의 노리개가 되어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성신이 거기 함께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악신이 걸린 사람들 그리고 마귀의 사주를 받고 배후의 지시를 따르는 자들은 충동이라는 것이 돌발 사태가 항상 잠재되어 있어요. 언제 확 일어날지 모릅니다. 안데르센 동화집에 이런 동화가 있어요. 이라는 동화가 있는데 신발을 신으면 그 신체의 부분대상, 신체 중 일부가 스스로 자율화되어서 미친 듯이 춤을 추는 거예요. 그러니까 발 빼놓고 나머지 신체부위가 그 발의 충동을 통제 못해요. 어쩔 수 없이 따라가죠. 발이 막 탭댄스 추는데 어쩔 수 없이 팔과 다리는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발이 가는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통제할 수 없는 광기(狂氣). 크레이지(crazy), 그 광기. 육이 된다는 말은 악마가 인간을 육으로 본다는 것은 충동이라는 공격에 대해서 방어능력이 인간에게 상실되었다는 거예요. 이미 자신의 정신은 접수 당했기 때문에 악마가 부리는 대로 부려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게 미친 짓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결국 발목잡혀가지고 악마의 힘으로부터 권세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이야기가 바로 마태복음 12장에 나와요. 여러분 잘 아는 이야기이고 여러 번 한 이야기지만 그 점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에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그러니까 성령이 인간하고 상대하지 않고 인간을 붙잡고 있는 악마와 상대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광야에서 성령께서는 예수님과 악마가 서로 만나도록 주선을 해준 겁니다.

악마가 예수님께 도전한 것은 예수님 빼놓고 모든 인간은 이미 내가 접수했다는 자기의 성과를 예수님 앞에 당당하게 보이는 거예요. 악마가 예수님께 테스트한 그 테스트에 어떤 인간도 굴복될 수밖에 없고 악마의 지시에 놀아날 수밖에 없는 현 시국, 현 형편을 그대로 악마가 예수님 앞에 소개하고 있는 겁니다.

사람은 떡 없이는 못산다. 이건 뭐 지극히 당연한 거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나왔을 때에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기본적인 떡이 없었고 물이 없었잖아요. 떡이 없고 물이 없으니까 이것은 정말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원망할만한 조건이다, 라고 악마가 그렇게 그 조건을 가지고 인간들을 부추겼죠. 부추긴 거예요.

인간의 머리로서는 아이큐 뭐 200이 되든 관계없어요. 인간이 떡이 없고 물이 없는데 그게 어떻게 생존이 되냐?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게 바로 네가 마귀에 사로잡힌 증거야. 그게 육이야.” 그렇게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그 이후에 모세가 시내산에 40일 동안 있을 때 모세가 시내산 올라가면서 햇반 들고 갔습니까, 컵라면 들고 갔습니까, 생수 짊어지고 갔습니까? 아니면 전투식량 가지고 갔어요? 파카 입고 갔습니까? 뭘 들고 갔어요? 자기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들고 간 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어떤 사람은 생각할 거예요. 시내산 가면 다 있다. 어디 뭐 시내산 꼭대기에 매점 있습니까? 지금은 매점이 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시내산 중간에 보면 매점이 있어요. 거기에 필요한 생수 사들고 가면 됩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시내산 위에 가면 먹을 거 다 있다. 아니 시내산 꼭대기에 먹을 거 없어요.

그것은 육적인 방식이에요. 육입니다. 인간을 육으로 볼 때는 먹을 게 기본이고 그다음에 하나님 말씀을 듣는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육적인 의식이에요. 육적인 거예요. 거기에 하나님의 성령이 먹힐 리가 없죠. 하나님의 신은 인간이 육체가 되기 때문에 함께 할 수가 없다. 사고방식이 틀려서 함께 대화가 되지 않아요.

아까도 고린도후서 이야기했죠. 나는 이제 사람을 볼 때 영의 관점으로 보지, 육으로 보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이고 예수님을 볼 때 영으로 보지, 육으로 보지 않겠다. 이런 사도 바울의 이야기들은 이미 인간들은 완전히 마귀의 권세에 갇혀있고 포로 잡혀있고 거기서 빼도박도 못하고 자꾸 뭘 끊임없이 해야 돼요. 아침에 일어나면 뭘 해야 돼요. 세수부터 해서 뭘 자꾸 해야 된다고요.

모세가 시내산 올라가서 세수했습니까? 샤워했습니까? 크림 들고 가서 아침에 샤워하고 이렇게 했습니까? 40일 동안에는 먹지도 않고 아무것도 마시지 않았어요. 다시 말해서 모세가 갖고 있던 위와 소화기능이 아무짝도 소용이 없어요. 육의 기능이 더는 필요치 않는 상태, 그 상태가 하나님과 모세의 관계입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아들, 성자 예수님과의 관계를 그가 맛봤던 거예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인간의 죄 있는 육신의 몸이죠. 그냥 육신이 아니고 죄 있는 육신의 몸으로 왔기 때문에 예수님도 이 땅에서 피곤을 느끼고 먹어야 되고 마셔야 되고 그렇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먹고 마시고 피곤해한다고 해서 뭐 이건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반드시 필수적인 요소라 생각하시면 안돼요. 필수적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모세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상당히 간단한 말씀인데요.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기 위해서 자연물이 필요치 않아요. 양식이라든지 생수라든지 그런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스스로 계신 거예요.

바로 이런 자만이 천국에서의 삶이 보장되는 사람이에요. 이것을 인간으로 하면 영적 인간이에요. 다른 것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햇반 많은 데가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에 골프장 잘 만들고 그런 게 아니에요. 그건 여호와의 증인이나 이슬람교에서 그런 소리하는 거예요.

사도 바울이 삼층천에 올라갔을 때 거기서 자기가 하루 세끼 뭘 먹었습니까? 아니, 세끼라는 것도 없어요. 세끼는 삼식이한테 이야기하세요. 세끼라는 것조차 없어요, 거기는. 여기 내가 있는지 누가 있는지 분간도 안 될 정도에요, 삼층천은. 거기 무슨 짜장면, 짬뽕, 팔보채 그런 게 왜 필요합니까? 처갓집 치킨 이런 게 필요해요?

우리가 이 땅에서 양식 먹는 것을 정당화하면 안돼요. 냉면 먹고 고기 먹고 뭐 잘되면 소고기 사먹겠지 해서 소고기 사먹고. 그러니까 우리는 당연히 얻을 것을 얻었다, 이렇게 나오면 안돼요. 아침에 온갖 영양제 오메가3, 종합 비타민 다 먹잖아요. 어서 그걸 안 먹어도 되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아무것도 안 먹고 먹을 게 아예 없는 거. 또 우리나라에서는 천만 내지 천오백만이 불면증에 걸려 있답니다, 인구 오천만 명 중에서. 네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밤에 잠을 못 자요. 그만큼 육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준 것은 제발 그 육이 떨어지는 날을 고대하라! 이런 뜻이에요. 육의 욕심을 채우려 하지 말고 육만 떨어지게 되면 그 분홍신의 광기도 떨어지고요. 잘사니 뭐 하겠노. 그거 아무 소용없는 거라. 돈 벌고 잘사는 것도 육이 떨어지게 되면 돈도 아무짝도 소용없는 거예요. 뭐 신상? 로렉스? 전부다 아무짝도 소용없는 거예요.

뭐 취직? 아니 영의 사람이 무슨 일을 합니까, 남아 있는 일이 없는데. 주께서 일 다 했는데 우리가 할 일이 없어요, 이 땅에. 우리 자신이 마귀한테 속아서 오늘도 뭘 해야 되느냐 하는데 그냥 할 일이 없어요, 할 일이. 야구선수가 만약에 성령 받았다면 그 사람은 아무 할 일이 없고 농부가 아침에 일어나면 성령 받은 사람은 아무 할 일이 없어요. 밭에 나가서 호미질만 하죠. 호미질은 할 일이 아니에요. 그냥 심심해서 해보는 거예요. 야구선수가 성령 받으면 타석 나가서 치는 거, 이거 심심해서 하는 거예요. 이거 안 해도 괜찮아요. 해서 안타치고 석 점 나고 뭐 이런 거. 또 홈런 때리고.

항상 이래요. 안 해도 되는데 이 죄 있는 육신의 몸이 있기에 안 해도 되지만 육이 심심하다니까 한번 해볼까? 이런 식으로 하는 거예요. 안 해도 되지만. 그래야 우리가 이 나쁜 천사, 범죄한 천사의 시험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준다는 것은 더 이상 우리가 악마에 놀아나지 않는 대상이라는 뜻이에요. 그것을 주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자꾸만 확인하고 싶은 겁니다.

악마의 일은 예수님의 일을 방해하고 예수님의 일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나쁜 천사의 시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일은 다 이루었거든요. 다 이루어졌단 말이에요. 악마가 제일 싫어하는 게 일이 이미 파장되어 끝나버린 거예요. 끝났다는 이 의식을 악마는 가장 싫어합니다.

더 이상 우리가 보탤 일이 남아있지 않아요. 뭐 일을 해야 잘했다 못했다가 되는데 일 자체가 없으니까 잘한 일, 못한 일을 평가할 건덕지, 평가할 대상조차도 없는 거예요. 내가 한평생 잘 살았나, 그걸 왜 평가합니까? 떨어져나갈 그런 옷인데요.

고린도후서에 보면 이 세상 우리 인생은 우리가 벗어던져버릴 옛날 옷이거든요. 옛날 옷은 더럽든 깨끗하든 우리가 관여할 바 아니고 그냥 떼어내고 던지고 버리고 가면 된단 말이죠. 이 육신은 버리고 알맹이만 가면 되거든요. 우리 육신을 버리면......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정말 냄새나고 다 떨어져서 옷을 새로 샀는데 헌옷을 마땅히 버릴 데가 없어가지고 길거리에 그냥 툭하고 버리고 갔어요. 그런데 마귀가 와서 내가 버린 옷을 “죽어, 죽어!” 하고 막 밟는다면 마귀가 쓸데없이 그런 짓하는 거 보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장난치면 되죠. 아야, 아야~ 이러면 되죠. 내가 포기하고 버리기로 작정한 그 옷에다가 악마가 “네가 이래도 마음의 고통이 없어? 아프지? 너 지금 괴롭지? 근심이 많지? 걱정 많지? 네가 인생사는 게 힘들지? 그러니까 내 말 들으란 말이야. 힘들지 않아?” 하고 내가 벗어놓은 옷에다가 궁시렁궁시렁 엉뚱한 옷보고 협박과 공갈을 하면서 “너 인생 망하는 거야. 너는 끝장났어, 내 말 안 들으면.”

그러면 우리는 그런 짓하는 악마보고 “뭐라고요? 지금 누구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에요? 무슨 부질없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것에 왜 당신은 협박과 공갈을 하십니까? 뭐 내 인생 망친다고? 너 저주받는다고? 지금 누구보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지금?”

악마는 우리가 바르게 살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가 완전히 뭉개진다고 그렇게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제시하는 거예요. 그렇게 악마의 말에 충실히 따르면서 그 하수인으로서 그 일을 매주 또는 늘 매일같이 해대는 자들이 바로 목사들입니다. 목사 뒤에 악마 있어요. 이 사람들은 교인들에게 할 일을 제시합니다. 제공합니다, 할 일을. 그냥 제시하는 게 아니에요. 이거 안하면 당신은 당신 가족이고 집안이고 미래고 나중에 구원받는 것까지 몽땅 다 실패한다고, 악마 시키는 대로 협박 공갈하라고 목사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악마가 보고 싶다 하면 교회 나가면 돼요. 여기 있잖아요, 목사. 큰 목사 큰 마귀, 부하마귀 부목사. 늙은 마귀 장로. 늙은 마귀 부인은 권사. 매주 할 일 주고요. 설교할 때 할 일 한보따리 주고 끝나고 난 뒤에 광고시간 20분 동안 할 일 다 주고. 교회를 섬기는 자의 집안이 망하는 걸 못 봤다, 이런 식으로 협박 공갈하고. 그게 협박 공갈이거든요.

악마가 이야기하는 것은 여러분의 육신이 잘 되려면 주의 일에 충성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성도는 그게 생뚱맞은 이야기에요. 고린도후서 5장에 의하면 이 옷을 주께서는 벗으라고 하는 거예요. 결혼해서 살림 사는, 돈 버는 사람 말고, 살림 사는 부인이 남편보고 늘 잔소리하는 거예요. 양말 좀 벗어내라는 거예요, 양말. 양말 벗을 때 거꾸로 뒤집어 벗지 말고 바로 벗어내고. 살림하는 경우에만 그렇습니다. 살림 안하면 반대가 되니까. 남편이 아내보고 잔소리해요. 옷 좀 갈아입으라고. 오늘 빨래하는데 잊어버리겠다 이런 식으로 하는데. 그러니까 아내가 집안 살림하고 남편이 돈 벌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계속 옷 벗어내라는 거예요. 옷 벗어주죠. 더러운 옷은 벗고 속옷도 다 빨라고 내놓죠. 이게 고린도후서에서 우리가 옷을 벗는 것처럼 이제는 옷을 껴입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미련 없이 옛 우리의 육신을 가볍게 날려버리고 벗어버려라. 만약에 그걸 계속 입는다면 동네귀신 다 달려들어요, 동네귀신. 동네귀신들 있잖아요. 동네 목사들, 동네 집사들 다 달려든다고요.

애가 성적이 나쁜데 뭐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하고 자기 담임목사한테 이야기했는데 친구 목사 한 열댓 명 와가지고 이렇게 해야 됩니다, 이렇게 해야 됩니다. 나름대로의 처방전을 내려서 식후 30분에 약 드세요, 이런 거 비슷하게 일단은 기도에 열중해야 되고 그동안 말씀 안 본적 있는지 되돌아보고 특히 십일조 몇 번 빼먹었는지 그것도 계산해야 되고 선교헌금 서약해놓고 두세 번 후딱 지나간 그거 마저 다 챙겨가지고 하셔야 되고. 이렇게 처방전을 내려주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그 결과가 뭡니까? 자식 공부 잘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어차피 모든 여자는 할머니가 되고 남자는 할아버지가 돼요. 그야말로 남자도 귀신 몰골 되고 여자도 귀신 몰골 돼요. 이건 기도를 안 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기도를 해도 마찬가지에요. 헌금 안해서가 아니라 헌금해도 마찬가지에요. 어차피 낡을 옷은 낡아가는 겁니다.

영의 사람은 그걸 보고 오히려 즐거워하죠. 야, 이제 새 옷으로 갈아입을 날이 가까이 왔네. 이렇게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마귀가 재미가 없어서 어디 뭐 협박 공갈하겠어요? 공갈을 쳐도 반응을 나타내야 재미가 있는데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게 돼요. 하나님은 선악과를 알지 말라 했습니다. 선악과 아는 일은 주님의 담당이지 인간이 할 일이 아니에요. 선악과 알고 난 뒤에는 자체적으로 일이 생겨버렸어요. 나쁜 것을 멀리하고 좋은 것만 하자. 그 일을 왜 굳이 했냐는 말이에요. 왜 굳이 했느냐.

따먹었으면 이제는 그 선악과 따먹은 자체가 ‘정녕 죽으리라’ 한다면 죽어주는 그 일만 하면 돼요. 자꾸 일해서 자기 목숨 부지하려하지 말고 죽어 가면 되는 거예요. 심심하거든 농사짓고요. 안 그러면 바다낚시하든지. 그냥 죽어가는 거예요. 일없이 사는 것도 죽을 노릇이거든요. 심심하기 때문에 일하는 거예요. 일 안 한다고 해서 편한 게 아닙니다. 노는 것도 기술이거든요. 노는 것도 노하우가 있어야 놀지 어지간한 사람은 못 놉니다, 힘들어서. 뭐라도 해야 돼요.

그런데 뭐라도 하는데 거기다가 아무런 의미를 두지 마세요. 이미 모든 의미는 주님이 압수해서 가버렸어요. 우리가 만약에 내 인생의 의미, 가치를 컵에 담았다면 좋은 천사가 와서 컵을 쥐고 있는 이 못된 손!, 탁 때리면서 ‘너는 아예 의미 없음!’ 하고 가져갔어요.

주께서 대신해서 죽으시니까 가져간 거예요. 선악과 내가 처리하는 게 아니고 주께서 다 가져간 거예요. 선악과를 주님 쪽에서 이미 완성시켜버렸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스스로 있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체가 스스로 있음 자체로 이미 완결되고 그게 완전히 완성되는 존재가 되어버려요. 이게 영의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봐야 돼요.

다시 오늘 본문 베드로후서 한번 봅시다. 2장 4절에,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되어있죠. 그러면 범죄한 천사를 용서치 않으면 범죄한 천사의 협박과 공갈에 말려들어서 거기에 종속되어있는 모든 자들을 용서한다, 안 한다? 용서하지 않죠. 그리고 범죄한 천사와 함께 포로 잡혀 있는 모든 인간은 결국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그러니까 지옥이라는 장소, 그쪽이 바로 악마에 속한 인간들이 가야될 장소에요.

요한계시록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는 자는 모조리 악마가 가는 지옥 불구덩이에 같이 참여한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얼마나 판결이 깔끔합니까. 정말 깔끔해요.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어요. 오늘 제목을 ‘군더더기 없음’으로 할까.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어요.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그러니까 영적인 사람이 아니면 나머지는 육적인 사람이 되고 육적인 사람이 가야될 방향성은 지옥입니다.

따라서 가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대화가 안돼요. 부부사이라도 대화가 안돼요. 한쪽은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예쁘게 봐가지고 하늘나라 가는 것은 기본이지만 또 상급까지 주지 않겠는가, 라고 말을 하지만 그 속에는 바들바들 떨고 있는 거예요. 바들바들 떨고 있어요.

자기의 해야 될 일이 있다는 자체가 이것이 완성되지 않을 경우의 처벌을 겁낼 수밖에 없어요. 뭔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은 평가가 있다는 말이고 평가가 있으면 마저 못했을 때의 처벌을 어쩔 수 없이 받는다는 두려움은 어떻게 해소될 수 없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해소되지 인간적인 이성과 논리, 윤리 가지고는 이 공포와 두려움이 해소될 수가 없어요.

제가 아직도 성령이 왔다는 것을 설명 안했는데 미리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에 보면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하고 상대 안 해요. 우리를 그동안 강하게 붙잡아두었던 집주인이 있죠. 마태복음 12장을 다시 보겠습니다. 집주인이 나와 있어요. 12장 28절에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너희에게 임했다고 되어있죠. 그러니까 장애요소를 뚫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성공한 거예요. 적진에 있는 라이언 일병을 형이 와서 구출한 거예요. 이 영화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치 않고서는” 그러니까 인간을 약한 자로 보고 악마를 강한 존재로 보는 거예요. 그러면 약한 자는 강한 존재에게서 자력으로 탈출이 불가능합니다. 탈출 안돼요. 그냥 종교적 감수성으로 몸부림칠 뿐이지, 몸부림친다고 마귀가 놔주고 ‘아이고, 네가 대견하구나.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네가 그렇게 생각이 깊구나. 놔줄게. 나는 너의 사랑에 놀랐다.’ 마귀가 그럴 리가 있어요, 마귀가? ‘이럴 줄 알았지?’ 이렇게 나오죠. 마귀가 오히려 약을 올리죠.

우리는 마귀하고 싸워서 마귀를 돌파할 수가 없습니다. 마귀를 상대하실 분은 여기 나오잖아요. 하나님의 성령, 주님이 성령을 가지고 마귀를 상대하는 거예요. 우리는 상대하는 게 아니에요. 주님이 마귀를 상대한다면 우리가 마귀를 상대할 필요가 없죠, 이미 영의 사람 같으면. 마귀에게서 빼내줬잖아요. 마귀에게서 빼내줬다 이 말이죠.

어떤 대위가 제대를 합니다. 사단장에게 경례, 충성. ‘그동안 사단장님 덕분에 군대생활 잘 마치고 제대합니다.’ 이렇게 하니까 그 평소에 악감정 있는 사단장이 ‘네가 나 있을 때 도전했지?’ 해가지고 그 여자 사단장이 팍 때리려 할 때 법무관이 장갑 낀 손을 딱 잡으면서 ‘전 이제 사단장님 부하 아닙니다. 민간인입니다.’ 이게 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거예요.

악마가 협박 공갈을 할 때 나는 더 이상 너의 종이 아니라 주님의 종이다. 주님의 신부다. 딱 커버가 되어야 되죠. 커버를 딱 하고 그다음에 뭐할 거냐. 그건 10분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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