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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강의20220331b 다니엘5장 11절(표적 계시)-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다니엘

(강의 중 나오는 도표 그림입니다)
그림 설명:
【의지로는 뭐라도 할 것 같지만 막상 실천에는 주저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광주강의20220331b 다니엘5장 11절(표적 계시)-이 근호 목사

첫째 시간에 한 게 뭐냐 하면 어떻게 계시가 주체화될 수 있는가.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땅에 어떻게 인격화될 수 있는가. 그 이야기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었다. 굉장히 간단하죠. 그게 아니고 그 사람이 존재하는 주변은 저주로 변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고요한 게 아니고 계시에 대해서 참소하게 되어있어요.

너무나 이질적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다 살고자 하는데 특정 사람은 죽고 사는 것에 대해서 조금도 염려하거나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그것이 그들의 허점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게 멸망의 징조가 되는 거죠. 계시와 연락을 취하고 있는 사람의 등장, 이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멸망의 징조가 되는 겁니다.

아까 한 것 한번 더 적어보면 되죠. 1번-별이 파괴된다, 이게 인류의 멸망이냐. 아니면 2번-내가 파괴된다, 이게 인류의 멸망이냐. 여기 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자가 파괴됨으로써 인류는 멸망하는 거예요. 여기 나라고 할 때 제일 먼저 주님이 십자가에 죽게 되죠. 그 뒤를 따라가야 될 사람들이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파괴되면서 자기는 주님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기쁨과 감사가 나오죠. 그래서 두려워 말라. 무서워 말라. 내가 너를 무섭게 하더라도 무서워 말고 두렵게 하더라도 두려워 말라. 코로나 걸리는 거 너무 무서워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야기죠.

모든 인간들은 코로나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으로 죽어 마땅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이러한 주님의 계시가 주님의 사랑이니까. 그래서 아까 첫째 시간 끝에 뭐라고 했습니까? 사랑이 지나가면. 사랑이 지나가면 그 주변에 없던 저주가 발생되는 겁니다.

어제 한 수요 설교의 일부를 잠깐 말씀드리겠어요. 로마서 4장에 의하면 사라의 태가 죽었어요. 남편 아브라함은 안 죽었어요. 아직 생식 능력이 있습니다. 사라의 태는 죽었어요. 태가 죽었으니까 인간적인 육은 이제 끝났어요. 사라의 태가 죽었다는 말은 여자로서 이미 죽은 거예요. 자식이 없으니까 무(無)가 되니까 여자에게 더 나올 게 없으니까 여자는 이미 죽은 존재이기에 더 생산할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죽었음이 분명히 결정지어졌고 확정지어진 거예요. 죽음이 결정되어야 거기서 부활의 의미가 발생되는 겁니다. 죽을 뻔하고 막 눈 감고 죽을 때 실눈 뜨면서 죽습니다, 이것은 확정된 게 아니에요. 은근히 죽은 척하면 살려줄 거라고 어떤 자기의 환상을 또 만들어내요, 환상을.

첫째 시간에 했지만 또 다시 해봅시다. 환상은 나의 확정적이고 나의 실재적인 것이 나의 나다움을 분명하게 하는, 이것은 반론이 제기되지 않을 만큼 너무나 명확한 거기서부터 뭔가 시도를 할 때 목적과 기대를 가질 때 그게 환상이 되어버리죠. 이유가 뭔가? 진짜 바깥에 있는 모든 환경은 말씀대로 되어가게 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 가는데 우리는 그딴 거 난 됐고 난 모르겠고 내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이게 바로 완전 개꿈 아닙니까. 망상 아닙니까.

내가 뭔데 내 뜻대로 이루어져야 돼요, 내 뜻대로? 기숙사가 돼야 될 건데. 기숙사 들어가야 되는데, 캐나다에. 주일 낮 설교 때 했잖아요. 유리판 위의 물방울이라고. 서울, 대전 찍고 부산 백날 돌아다녀봐야 판 위의 물방울이에요. 여기가나 저기가나 물방울의 이동, 번짐이에요.

태가 죽었으니까 여자가 죽은 거예요. 모든 남자한테는 여자가 죽은 겁니다. 그런데 죽은 여자를 분명히 했어요. 이제는 없는 겁니다. 나이도 많고 태가 죽은 것을 분명히 하고 그다음에 이삭이라는 자식이 여기서 태어나죠. 그럼 이 새로 태어난 이삭으로 하여금 여자가 생깁니다. 그 여자가 생기는 자식과의 관계를 여자의 후손이라 해요.

그래서 확실하게 죽고 난 뒤에 하나님의 계시의 주체가 되어서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나지 않는 모든 것이 뱀의 후손이 되는 겁니다. 여자의 반대가 남자가 아니고 여자의 반대가 뱀이 되는 이유는 안 죽고 뭔가 산 상태에서 있는 이대로 살아서 뭔가 좋은 낯을 보겠다는 모든 것은 뱀의 범주에 포획이 되어버려요. 확실한 죽음 요소가 없이 산 채로 또 살려는 것은 전부다 뱀에 속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사기 집단이에요. 뱀의 단체가 되는 거예요. 목사님, 죽여주세요! 이렇게 손 들고 오는 사람 없죠? 살아있는 내가 나의 환상을 하나님의 도움으로 어떻게 달성하느냐, 그것 때문에 교회 오잖아요. 아, 머리가 되게 아픈데 기도하니까 머리가 깨끗해지더라. 지금 무슨 요소를 놓친 거예요? 죽을 뻔했지, 죽은 게 아니잖아요. 만약에 완전히 죽었는데 머리 아프다면 그 사람 부활한 사람이에요. 그렇죠?

여자의 후손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밖에 없어요. 그 예수님께서 자신의 계시를 구약에다 미리 던져버려요. 구약에 계시를 미리 던지면 그게 다니엘이고 그게 모세고 그게 엘리야가 되는 겁니다. 그게 아브라함이 되고.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기다렸다가 보고 기뻐하였다. 이것은 시간의 경과가 소용없어요. 계시니까요. 하나님의 계시, 말씀은 시간의 경과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 현장에서 주께서 없는 데서 있게 하고 죽은 데서 사는 그 작업을 하는 겁니다.

p.218 봅시다. 위에서 8번째 줄에 ‘억울한 피’ 나오죠. 그리고 밑에서 5번째 줄에 ‘억울한 피’ 나오죠. 아까 다니엘에서 사랑이 지나가면 저주가 피어나듯이 느부갓네살이나 그 밑에 부하들, 신하들이 다니엘 세 친구와 다니엘에게 한결같이 참소하고 고소하죠. 그러면 여기서 억울함이 발생되는 거예요, 억울함.

억울함이 뭐냐 하면 첫째 시간에 한 것을 다시 해봅시다. 하나님의 것은 어떤 경우라도 훼손되지 않습니다. 훼손되지 않는다 이 말이죠. 그런데 느부갓네살 신하들이 다니엘 세 친구와 다니엘을 공격할 때는 무엇을 노립니까? 아무리 자기가 하나님 여호와와 같이 관련된 사람이라도 그의 가치와 그의 고상함, 완전함에 대해 훼손이 된다고 우기면서 들어오는 거예요.

악마의 뜻은 모든 것이 미-확정적이다, 이게 악마의 뜻이에요. 모든 것이 미-확정적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관련성이 있으면 그것은 미흡함이 있을 거라는 틈새를 노리고 차고 들어오는 거예요. 거기서 틈 또는 차이, 차이성을 통해서 인간은 언어의 의미를 획득하고 이 의미를 통해서 자아성을 구축합니다. 차이성을 통해서 자아성을 구축하는 거예요.

하나 예를 들게 되면 독일에 있는 외손녀는 어린애라서 일부러 TV를 안 보여줘요. TV를 안 보여주기 때문에 은연중에 우리는 TV를 봐서는 안 된다는 자아성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가지고 할아버지는 맨날 TV봐,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아침에 TV봐. 뉴스 봐야죠. 뭐 드라마 보는 줄 압니까. 그럼 뭘 느낍니까? 차이성을 느끼는 거예요. 차이성을 느껴서 그다음부터는 TV를 봐도 되는가? 아이들이 조심하다가 이젠 TV 다 봐요, 같이. TV를 보는 나로 전환되죠. TV를 안 봐야 나다운데 TV봐도 괜찮은 나로 새롭게 자아가 정립되는 겁니다. 그럼 TV는 나쁘다는 의미에서 봐도 되는 괜찮은 의미로 의미 수정이 일어나는 거예요.

이런 의미의 관계망을 인간들은 현실로 보는 거예요. 이 배후에 누가 이런 짓합니까? 악마가 이런 짓하는 거예요. 주님은 훼손될 게 없어요. 흠도 티도 없어요. 흠도 티도 없기 때문에 인간들이 하나님의 발목을 잡고 신처럼 되어야 되는데 잡을 게 없다고요. 이미 확정되었으니까요. 인간은 인간대로 확정되고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확정되면... 인간들이 뭔가 잡고 하나님 자리까지 올라가야 인간의 선악과 따먹은 꿈은 실현된다 이 말이죠, 계속해서.

그러니까 어떻게 하느냐 하면 이미 실현되어진 사람이 있잖아요, 계시의 주체자. 거기에 대해서 공격하는 거예요. 참소하는 거예요. 그러면 훼손될 게 없는데 너 죽으면 안 되잖아, 이런 식으로 공격이 들어왔으니까 그들은 억울한 피가 되는 겁니다. 이것이 오늘날 성도가 당하는 경우고요. 이미 구약에서 언약을 받은 사람들이 동일한 억울함을 당했던 겁니다.

그것을 구약 성경의 예를 통해서 제가 말씀드리려 합니다. 우선 성도가 하나님의 계시와 연락이 된 상태, 하나님의 계시의 사람이 되어버리면 연대가 깨어집니다. 인간 대 인간의 연대가 여기서 깨져버려요. 인간들의 수건돌리기에서 빠져나와버립니다. 너네끼리 많이 해라. 너네끼리 많이 해. 너희들끼리 많이 주고받고 해.

그런 것 마셔본 적도 없지만 회사 회식할 때 폭탄주해서 주거니 받거니 하잖아요. 만약에 어떤 사람이 저한테 ‘선생님도 한잔 하시죠.’ 하면 저는 거기서 ‘나 집에 갑니다.’하고 빠져나오는 거예요. 그러면 뭐가 깨집니까? 인간들의 밴드, 연대가 다 깨져버려요. 그럼 뒤에서 막 욕하겠죠. 억울한 피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 연대가 깨져서 빠져나오면 성도가 사랑의 대상이잖아요. 주님의 사랑의 대상이잖아요. 그러면 남아 있는 것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저주의 상대가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 억울한 피를 말씀드리기 전에 인간들의 이러한 판단, 인간들의 선택은 어떤 악마가 준 논리구조를 갖고 있던가. 여러분 아시다시피 선악체제가 있잖아요, 선악체제. 그 선악체제를 제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좀 복잡하지만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A, B, C, D 네 가지 경우를 생각해보겠습니다.

A 나는 하나님을 믿을 의향이 있다.
B 나는 하나님을 믿을 의향이 없다.
C 나는 하나님을 안 믿는다.
D 나는 하나님을 믿기로 했다.

A, B는 의향이죠.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의지가 됩니다. C와 D에서 믿기로 했다 혹은 안 믿기로 했다, 는 실천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A와 C 혹은 B와 D를 이렇게 연관시켜 봅니다. 하나님을 믿을 의향이 있다(A). 그런데 나는 하나님을 안 믿는다(C).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잖아요. 마음은 믿고 싶지만 뭐 별로... 나는 안 믿기로 결심했어, 이런 경우. 혹은 나는 하나님을 안 믿고 싶었는데(B) 그래도 나는 하나님을 믿기로 했어(D).

인간이 할 수 있는 경우는 이 네 가지 경우밖에 없어요. 따라서 인간의 의지와 실천, 이 네 가지 경우를 가지고 이러한 도표, 그림을 하나 만들어볼 수 있습니다. 나라는 것이 중심에 있는데 나에서 방향이 뻗어나갈 때 (수직적으로) A와 B의 방향을 서로 반대로 해야 돼요. 하나님을 믿을 의향, 의지입니다.

인간은 실천하기 전에 반드시 의지를 갖는다는 것에 대해 지금껏 어떤 누구도 그게 아니라고 할 사람이 없어요, 전부다. 인간이 악마에 속한 이상은 본인이 주인공이에요. ‘나’가 주인공이에요. 악마가 주인공이 아니에요. 잘 생각하세요. 악마는 우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니까요. 선악을 아는데 이제는 네가 주인공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럼 내가 주인공이에요. ‘악마는 주인공입니다’ 이런 인간은 없어요. 내가 주인공이에요. 악마도 나의 종이야, 이런 식으로요.

그러면 인간이 뭘 할 의지가 있다(A)/ 의지가 없다(B), 이렇게 되겠죠. 아까 하나님이라 했지만 여기 하나님 자리에 뭘 집어넣어도 마찬가지에요. 난 악마를 인정할 의향이 있다. 반대말이 뭡니까? 난 악마를 인정하기 싫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라도 나는 소실되거나 소멸되면 안돼요. 하나님이 있든 없든 악마가 있든 없든 그딴 거 중요하지 않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여기 있다는 이것이 중요한 거예요. 이게 인간의 시작점이고 악마는 그 뒤에서 미소를 짓고 있죠.

아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있음은 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있음이고 그의 살았음은 죽었음을 보여주는 살았음이에요. 죽었다는 계시를 보여주기 위해서 사라는 남들 보기에 숨 쉬고 살아가는 그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사라를 미끼로 던져서 문자로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것을 영으로 공격하고 저주할 수 있는 미끼를 던진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다음에 실천을 봅시다. 이것을 그대로 가져와요. 나(주인공) 중심에서부터 (수평적으로 간격을 두고 위로 향하는 화살표) 내가 하나님을 믿기로 했다(D)가 되고 나는 안 믿는다(C)면 반대 방향이죠, 방향이.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이렇게 그 사이의 면적(그림에서 빗금 친 영역)에 해당됩니다. 모든 활동은 이것입니다. 이 면적(A나D'C)이 인간의 선택에 의한 의지와 그리고 그 실천력, 이걸 보여줘요.

첨부파일 이미지 참고

이 그림에서 우리가 질문 던지는 것은 왜 인간들은 이걸 하기로 했다 혹은 난 이건 안 하기로 했다, 그렇게 의지를 갖는 그 의지의 동기가 뭐냐 하는 거예요. 그것은 이 그림에 나와 있습니다. 영원토록 내가 나에게서 나에게 주인공이에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천국 간다면 천국의 주인공이 예수님일까요, 자기일까요? 자기가 되는 겁니다.

이것은 교사들이 학교 가서 아동들 다룰 때 이야기해보면 100% 나옵니다. 오늘 학교 왜 왔어요? 물어보면 주님의 계시로 왔다는 애는 없습니다. 내가 학교 안 갈라 했는데(B) 난 안가기로 결정했는데 안 그러면 내가 엄마한테 얻어맞는 수가 있으니까 손해는 내가 보죠. 따라서 이 결정(D')을 한 거예요.

아무리 자기가 결정 안한다 할지라도 이 면적이 압력으로 작용해요. 그러니까 인간은 늘 두려움과 후한과 후회와 아쉬움...... 아 그때 그렇게 안하는 건데. 그렇게 행동 안하는 건데, 라는 말도 나오고 그때 그렇게 생각 안하는 건데. 이걸 사랑으로 바꾸겠습니다. 내가 그때 당신한테 헤어진다고 해놓고 다시 당신을 사귈 게 아니고 좋아한다 해놓고 사귈 건데, 이런 거요. 의지와 실천, 실천과 의지가 항상 인간의 선택 안에 그 내용으로서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런 인간들이 자기가 주인공이거든요. 출발점이 여기서 나에요. 나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할 때 이것이 그대로 작동되죠. 이 원리원칙이 작동되는 겁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이 원리를 하나님께서 빼겠습니까, 집어넣겠습니까? 성경에서 이 내용이 나오겠습니까, 안 나오겠습니까? 필히 나와야 억울한 피가 나오는 거예요. 내가 주인공 노릇했다 하는 그 사실이 있어줘야 언약의 백성이 당하는 그 억울함이 나오는 겁니다.

성경을 한번 보겠습니다. p.218에 억울한 피가 있어야 땅이 저주받게 되기 때문에 그래요. 오늘 몇 번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까 창세기 8장 21절을 보게 되면 내가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않는다는 말은 저주가 이제는 없다, 가 아니라 제대로 된 억울한 피, 최종적인 억울한 피가 다시 말해서 계시에 가장 합치되는, 모든 계시가 다 집약되는 그분이 등장하게 되면 그 순간 이 세상은 저주입니다.

사랑이 완성되었으니까. 사랑이 지나가면 남는 것은 저주밖에 없어요. 목이 메이고 가슴이 아파도 나는 당신을 몰라요. 사랑이 지나가면. ‘주여, 주의 종노릇을 하고 저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나는 너 모른다.’ 사랑이 지나가버리면 모르죠. 그러면 너는 왜 나를 안다고 했을까? 제가 알고 싶어서 한번 시도해봤고 또 귀신 쫓아내고 복음을 전해야 실천에 옮겨봐야 주께서 나를 납득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에게 온 부자청년 같은 경우 어떻게 했습니까? ‘내가 율법을 지켰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무엇을 공격했습니까? 부자청년의 네 주인공 됨을 공격했죠. 근심하면서 돌아갑니다.

다시 말해서 받은 계시가 없으면 자기는 남을 속일 수 있지만 주님을 속이려고 애는 쓰지만 주님은 절대로 속아 넘어가지 않습니다. 천사도 속아 넘어가지 않습니다. 천사도 유월절 넘어가고 딱 지켜봐요. 저거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해. 십자가 믿습니다, 하는 것도 다 망 본다고요. 믿는 척을 하는지 내가 십자가 믿을 의지가 있는데 아니면 안 믿고 싶은데 십자가 믿습니다, 이런 결심을 하는지.

이 나 자리가 없어져야 되죠. 그러면 이 도표가 한꺼번에 전부다 무너져야 됩니다. 나 자리를 없앨 수 있는 것이 창세기 30장부터 해서 31장인데 야곱이 다시 아버지 집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 과정입니다. 하란에서 브엘세바로. 하란은 터키 북쪽이에요. 지금도 터키이고 그 옆에 이란과 이라크가 있는데 터키 북쪽 하란에서부터 이스라엘 남쪽 브엘세바로 내려가는 과정.

하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란에서 일어난 일 가운데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꿈을 꾸게 하고 라반에게도 꿈을 꾸게 합니다. 꿈, 하나님의 계시는 바깥 요소입니다. 바깥 요소는 예상 못한 거예요. 예상 못한 겁니다, 바깥 요소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주께서 여러분들을 다루시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여러분들이 예상 못한 것을 경험하게 되면 주님이 주인공으로 나를 일방적으로 다루시는구나 하고 아시면 돼요. 그렇게 예상대로 안 될 때 성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두려워하지 말라, 그다음에 무서워하지 말라.

이 말은 인간이 평소에 자꾸 환상을 꿈꾸니까 내가 만든 계획이 실제로 현실화되어야 될 텐데 하고 자꾸 거기에 두려움이 생기는 거예요. 저게 만약에 실패로 끝나면 난 어떻게 하지, 하는 거예요. 뭔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 결심을 하고 실천에 옮길 때에 그냥 곱게 하는 게 아니고 바들바들 떨면서 자기 의지를 실천에 옮기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결과의 주인공이 역시 나는 나에게 있어서 내가 바로 주인이라는 이미 확정된 것을 다시 한번 또 확실히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보는 겁니다. 그럼 일시적으로서는 그 사람은 자기의 욕망이 만족되었기 때문에 기분 좋죠. 하지만 새롭게 생겨나는 모든 새로운 일에 대해서는 또다시 욕망을 가동시켜야 돼요. 또 욕망을 품고 또 욕망대로 되어야 돼요.

하나 예를 들면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에 10회 연속으로 출전했으면 좋겠다고 그 팬들은 굉장히 자기 환상을 가지고 꿈은 이루어진다, 하면서 응원하잖아요. 그래서 본선에 올라갔죠. 갑자기 본선에 올라가자...... 그러니까 산이 있는데 어떤 욕망이 달성되면 욕망이 끝나는 게 아니에요. 아시아에서 1등으로 들어가야지. 그래서 이란을 2:0으로 이겼잖아요. 그러면서도 손흥민이 연속적으로 몇 골을 더 넣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얼마 전에 있었던 아랍에미리트와 경기해서 1:0으로 졌죠. 1등 아니고 2등 되었어요.

그러니 뭔가 꿈은 이루어지지 않게 되어있어요. 그리고 그 꿈이 있어줘야 살맛이 나요. 달성되게 되면 인간에게 갑자기 허무가 확 찾아옵니다. 여러분들에게 한 60억 정도 있어보세요. 갑자기 허무해지죠. 다들 그런 경험 안 해봤구나.

구원이, 구원 받고 싶어. 받고 싶어. 드디어 십자가 믿어서 구원했어. 이것은 허무가 찾아와요. 그런데 주님의 일인 구원은 반드시 예상 밖의 일이에요. 예상 밖의 일. 아, 이거 한번 경험해봐야 되는데... 여러분들 진짜 산에 있는 소나무에다 묶어놓고 독수리 찾아와서 간, 쓸개 다 파내져야 돼요, 전부다. 완전히. 심지어 그 미친 엄마처럼 옷 벗겨놓고 옷 빨고 있고 아이는 갖다버리고 하는 뭐 그런 현상. 얼마나 소중한 내 아이인데. 그 소중한 것이 바깥에 버려지고 그 소중한 것을 위장했던 그것은 주께서 사용하시고요. 자기 것으로 채우시고요. 그런 거거든요.

사라가 자기 몸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얼마나 이뻤어요. 이쁜데 애를 못 낳아, 이쁜데. 죽은 여자에요. 그런데 예상 밖에... 얼마나 예상을 못했으면 애가 생긴다고 했을 때 식구들이 웃었겠어요. 아이고 참, 장난을 쳐도 좀 대충 치시죠, 이런 식으로. 그런데 애가 생겼잖아요. 그걸로 끝났습니까? 애를 모리아 산에서 죽여 버려라. 두 부부는 이젠 예상 밖의 길을 갑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길 외에 다 깨라. 말씀 외에 나의 모든 것은 다 깨는 거예요. 길 외에 다 깨는 거예요.

창세기 30장 25절에 요셉을 놓고 난 뒤에는 라헬이 자기 친정집을 떠나길 원합니다. 다시 시가집인 남편의 고향으로 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빈털터리에요. 무려 14년 동안 노동하고 임금은 없었고요. 그다음 나머지 6년 동안 라반이 품삯을 10번이나 고쳤어요, 10번이나.

자, 이 이야기할 때 아까 제가 처음 물은 것 기억하세요. 별이 파괴되고 떨어지는 것이 종말의 징조가 아니라 언약 백성에게 난데없이 고난과 아픔이 올 때 그게 인류의 멸망의 징조입니다. 건들지 말아야 할 자를 건드린 거예요, 이 라반이.

29절에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짐승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나중에 나옵니다만 일단 30장에서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자기의 품삯을 정할 때 월급제로 하는 것이 아니고 삼촌에게 줄 것 주고 나머지는 내 것 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 잘 아시다시피 32절에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떼로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를 가리어내며 염소 중에 점 있는 자와 아롱진 자를 가리어내리니 이같은 것이 나면 나의 삯이 되리라” 그리고 난 뒤에 33절에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나의 표징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자나 점이 없는 자나 양 중 검지 아니한 자가 있거든 다 도적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그리고 난 뒤에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36절에 보면 야곱과 라반의 두 양 사이에 사흘 동안 딱 길을 떼게 만들어요. 그리고 신풍나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해서 살찌고 건강한 양이 새끼 놓을 때에 껍질 벗긴 무늬 앞에 세워서 임신케 해가지고 전부다 얼룩지고 점 있는 것으로 만들었고 건강한 것만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나머지는 약한 양이죠. 약한 것만 남아있는 겁니다.

31장에 보면 라반 쪽의 사람들, 라반의 아들과 그 종들이 야곱이 아버지 소유를 다 빼앗아서 부자가 되었다고 했어요. 그럴 때 31장에서 야곱이 두 아내를 부릅니다. 불러서 옛날에 아버지가 자기를 속여서 당신 둘하고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건 과거사니까 하지 않고 지금 두 아내와 더불어서 아버지에 대해서 정을 떼게 만들어요. 그리고 31장 11절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13절에 네가 네 출생지로 가라고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럴 때 두 아내를 설득했어요. 그러니까 14절에서 라헬과 레아가, 아버지하고 우리하고 아무 상관없습니다. 15절에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었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인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아버지하고 우리하고 따로 떼어냈습니다, 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다음에 나오는 19절에요.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 아비의 드라빔을 도적질하고” 이 드라빔이 나오는데 이 점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드라빔. 이 드라빔은 누구의 신이냐 하면 라반의 신이에요. 라반의 우상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드라빔의 기능이 있어요, 기능. 이 기능은 현재 나의 주인공 됨, 나의 소유성을 보장해주는 기능이에요.

그렇다면 둘째 딸 라헬이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친 것은 이런 신들을 옛날에는 다 갖고 있었어요. 드라빔은 원형이 있고요. 복제물을 만들어서 자식들이 멀리 여행할 때 이 여행을 무사히 안정적으로 잘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원할 수 있는 일종의 부적 같은 것으로 그 당시에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워낙 급하다 보니까 딸이 원판 되는 드라빔 우상을 그냥 훔쳐온 거예요.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라반이라는 삼촌이 자기 드라빔 없어진 것을 뭐로 이해하고 있느냐 하면 이걸 저주로 이해하는 거예요. 그러면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이 있죠. 여호와 하나님은 참 신이죠. 우상이 아니잖아요. 참 하나님이 주어진 계시의 주체자는 사랑이 지나가면 그 주위에 저주가 발생되는 거예요.

라반 삼촌의 실제 모습, 실체가 드러나게 되는 겁니다. 자식보다 내가 우선이에요. 자식이 재산 좀 가지는 것보다 자식하고 연 떨어지는 것보다 내가 나로부터 떨어지는 것을 더 무서워하는 거예요. 나는 나를 지키는 자니까. 나는 나를 사수하고 보호하는 자니까요.

여기에 무슨 하나님 믿는 의지가 있겠어요? 그리고 하나님을 믿겠다고 실천한들 주님에 대한 의지가 나와 나 사이의 틈을 떼어놓겠습니까? 떼어놓지 않죠. 이것은 야곱도 마찬가지에요.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지 않는 한 인간은 결코 자기로부터 자기를 떼어낼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에요. 그걸 라반을 통해서 보여주는 거예요.

그리고 그러한 저주에 바들바들 떨면서 뭐 딸이 가는 거 신경 안 써요. 내 하나님 내놓으라는 거예요. 내 하나님 내놔라. 사흘 동안 헥헥거리며 찾아왔는데 찾아온 이유가 내 소유성을 실제적으로 지켜줄, 내 꿈을 지켜줄, 내 인생 전부를 지켜준 그 신을 내놓으라는 거예요.

그 드라빔을 뭐로 바꾸면 이해되겠습니까? 하나님, 삼위일체, 예수로 바꾸면 딱 떨어지죠. 오늘날 사람들이 신앙생활 어떻게 하는지. 내 예수를 왜 욕하느냐고 내 하나님 왜 욕하냐고. 믿음 좋아 보이는데 이상하게 아까 첫째 시간에 한 원리에 위반되는 것 같아요. ‘하나님은 훼손될 게 아무것도 없다’를 소위 하나님 믿는 사람이 그걸 인정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욕한다 해도 욕 얻어먹을 분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말씀 자체가 확정되어있기 때문에. 우리의 이빨은 빠지면 흔들리지만 주님은 이빨 뿐 아니라 흔들릴 게 아무것도 없어요. 아까 마태복음 28장에서 했죠. 천사가 와서 여자가 예수님 시체 찾는 거 보고 제일 먼저 이야기한 게 뭐였습니까? 무서워 말라. 그분이 여기 계시지 않고, 그다음 말은 인간들 같으면 저기에 있어, 이런 건데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났다.

아니 계신 곳이 없다 이 말이에요. 인간이 포착할 수는 없지만 주께서는 무슨 사건이든 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위치에 계시다 이 말입니다. 주님이 주인공이지 내가 주인공 아니니까. 우리의 주인공 노릇은 오늘로 그만~ 오늘로 그만입니다. 말로만 그만하지 말고 진짜 무서워 말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죠.

그래서 창세기 31장에 드라빔 소동이 벌어진 거예요. 그동안 라반 삼촌이 10번씩이나 삯을 계약적으로 계속 변경시키면서 야곱의 노동력을 착취한 것, 그것은 야곱의 입장에서 삼촌이 자기를 도적질한 걸로 보는 거예요. 그때 야곱은 본인이 자기를 주인공으로 여긴 거예요, 주인공으로.

그런데 아까 31장 11절에서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가라사대 네 눈을 들어 보라 양떼를 탄 수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그다음에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벧엘의 하나님이니까 그 하나님이 계시한 곳으로 여기서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야곱이 하란에 갔다가 라반 삼촌 집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야곱이 계시의 주체자로 바뀐 거예요. 계시가 주인공이 되고 그걸 그대로 보여주는 자아가 된 겁니다, 돌아오면서.

40절 보겠습니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왔습니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 사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년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계약 위반했습니다.”

42절,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계시죠. 언약입니다.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보냈을 겁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일 때는 자기가 주인공이었어요. 자기가 주인공인데 하나님께서는 이 야곱이 택한 백성이니까 어떻게 고쳐야 되지 않습니까? 고치는 방법이 뭐에요? 외삼촌 집에 가서 살게 하고 거기서 야곱이 내가 주인공이 아님으로 고침을 받고 다시 벧엘이 있는 고향집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거예요.

이게 성도의 여정입니다. 주께서 먼저 찾아오시고 찾아오실 때 나는 내 주인공이라고 우겼는데 주님께서 사랑이 지나가면 주위에 저주가 일어나야 되고 그것을 통해서 더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내가 알게 됩니다.

24절 보겠습니다. 심지어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가라사대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 간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이게 아까 이야기한 인간 대 인간의 연대가 더는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찢어버립니다. 인간 대 인간의 연대는 찢어버려요. 여기 야곱을 통해서 아버지와 딸 사이가 찢어져버리죠.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들어와야 됩니다.

인간 대 인간의 연대는 꿈과 권력의 공동체가 되고 그 속에서는 환상이 마치 실재인 것처럼 인간은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는 거예요. 십 사년 플러스 육년간이나 남의 종노릇을 한 거예요. 그런데 이 모든 품삯을 하나님이 개입해서 야곱의 것으로 줬잖아요. 더는 야곱의 것이 더 이상 야곱의 것이 아니라 누구의 것이 됩니까? 이게 바로 주님이 나에게 계시 주셨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이 야곱이 받았던 품삯은 누구 것이라고 우겼던 겁니까? 라반의 것을 주께서는 빼앗아서 야곱에게 준 겁니다.

이것이 바로 야곱이 보여주는 억울한 피였던 겁니다. 억울한 피였어요. 처음에 야곱이 억울하다고 하죠. 억울하다고 하고 가만 보니까 그 억울함이 야곱은 본인의 억울함으로 그치면 안돼요. 이것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억울한 피와 관련되어야 돼요. 그게 바로 벧엘의 하나님의 억울함.

그것이 32장에 나옵니다. 야곱으로 하여금 진짜 억울한 분을 만나게 하시죠, 얍복 강가에서. 여러분 아시다시피 만나고 난 뒤에 33장에서 자기가 속여먹었던, 아버지 재산을 몽땅 차지했던, 비정상적이죠, 그 형이 올 때 형 앞에 그가 일곱 번 굽히고 절하죠. 33장 3절. 그리고 그 많은 재산을 형한테 바치죠.

그렇게 하니까 형이, 동생이 고생해서 얻은 것을 받으니까 형이 또 가만히 있으면 안 되잖아요. 형 에서가 가로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하죠. 그러니까 야곱이 “제가 형한테 은혜를 입었사오니 청컨대 내 손에서 예물을 받으시고 내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습니다.” 이게 지금 오버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형이 있어서 내가 이스라엘 된 거예요. 예상 밖의 내가 된 거예요. 내가 예상한 꿈의 내가 아니라 내 모든 욕구를 만족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욕망에 감히 끼어들 수 없는 내가 주님의 요구사항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으니까 그까짓 거 절하는 게 뭐가 대수입니까. 나 같아도 절하겠다. 그래서 그들 둘 사이가 화목케 되었어요.

33장 15절에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를 언급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끝으로 한 말씀하고 마치겠습니다. 제가 대전 강의 두 번째 시간에 그런 이야기했죠. 어떤 사람이 나를 그렇게 미워하고 싫어하니까 막 저주를 퍼부으면서 ‘저거 죽었으면 좋겠다’ 했는데...

그때는 몰랐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위암 4기가 돼서 정신없어 돌아다니더라. 그때부터 미운 감정이 싹 가시고 아이고 불쌍한 인간. 곧 죽을 거... 너 나 욕해도 돼. 곧 죽으니까. 이런 입장에서 우리가 주위에 저주받을 불신자를 그렇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정은도 마찬가지고. 왜냐하면 사랑이 지나가니까.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찾아오셔서 더 이상 우리가 주인공 안 되게 해주신 이걸로 인하여 우리에게서 어떤 무서움과 두려움이 날라가버리고 그저 주님의 껍데기로서 주님 안에 계시의 사람으로서 마음껏 활용되는 것을 두고두고 감사하고 은혜를 깨닫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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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8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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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