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4b 울산강의-역대기상(8강) 4장 10절 : 야베스의 기도
20220304b 울산강의-역대기상(8강) 4장 10절 : 야베스의 기도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생명책에 등록된 사람들입니다. 등록이란 것은 그 자체적으로 나중에 계보와 족보를 이뤄요. 주님이 등록시켰기 때문에 빼도 박도 못해요. 그것도 혈통적으로 등록한 겁니다. 이거는 본인의 아버지를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아버지가 결정되면 자식도 결정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역대상은 족보에 관한 건데 족보에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단면족보와 선형족보가 있는데, 선형족보(계보)라는 것은 깊이 있게 선을 얇게 그어서 이런 뜻이에요. 결국은 이 사람이 나타나고야 말았다. 마지막에 특정 인물을 보여주기 위해서 선형족보가 이렇게 있고 그 다음에 단면족보가 있는데 단면족보(계보)라는 것은 같이 있는 파생돼 있는 그 족보와 이질적인 것이 막 끼어들어서 그 족보에 있는 등록된 사람과 끼어든 사람과의 관계를 설명할 때 이걸 단면족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선으로 된 선형족보에 있어서는 결국 이 사람은 나타나야 한다, 라는 이야기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노아의 아들 같으면 셈과 야벳과 창세기에선 함으로 돼 있지만 여기선 뭐냐 하면 셈을 제일 마지막에 둬요. 함과 야벳과 셈. 앞에 있는 것은 날아가고 마지막에 결국 셈은 이렇게 등장해야 된다는 거죠.
그럼 아브라함 같은 경우에는 이삭과 이스마엘이지만 이삭을 나중에 둠으로서 이스마엘과 대비시켜서 앞에 있는 이스마엘과 뒤에 나오는 진짜 중요한 인물과 비교해봐라. 앞에 있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다, 이런 식으로 하는 거예요. 선형은 등록시키기 위해서 계속 잘라내는 작업을 병행해서 이뤄지는 겁니다.
등록하는 것,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에요. 섬에 놀러가서 함부로 조개 캐고 하면 안 되지요. 갯벌에 서해안에 가서 어민으로 등록된 사람만 아빠들이 조개 캘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원 생활한다고 촌에 가서 텃밭 가꾼다고 농업인 아니에요. 농업인 되려면 등록이 돼야 되고 평수가 돼야지 텃밭 가꾼다고 농업인 되는 것 아닙니다. 등록이 돼야 법적으로 나라에서 보호를 받게 돼 있어요.
심지어 어떤 직업을 해도 전부 다 등록해야 돼요. 등록하고 회비내고 해야 됩니다. 트롯 가수해도 우리나라 가수협회 등록하고 회비내고 앨범내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등록한다는 것은 법적으로 보장을 받는 동시에 책무도 다한다는 뜻이거든요. 그리도 등록하게 되면 아까 계보가 형성되고.
그러면 등록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보여주는 것은 세상과의 차이점입니다. 자, 세상은 보편성에서 나와서 개별성이 돼요. 인간의 개별적인 속성은 모든 아담의 속성에서 삐져나온 게 하나의 분여된다, 할당받는다. 인간은 고만고만하고 별다른 인간 없는 이유가 모두 다 아담이란 보편성에서 그렇고 그런 인간들 중 하나에요. DNA가 유전자가 비슷비슷하고 그런 겁니다.
그래서 특별한 인간이라 하는 것은 인간세계에선 용납이 안 돼요. 성령 받은 사람을 국가에선 뭐냐 하면 성령 받았다 하지 않습니다. 종교인이라고 이야기하죠. 종교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 다른 사람은 종교에 취미가 없는 사람, 그렇게 되지 성령 받고 성령 안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 관점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는 것은 성경에 나와 있는 거예요. 세상에서는 그런 걸 인정하지 않습니다. 누구 죽어봤나, 누구 천국 가봤나? 이런 식이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그걸 인정해주지 않아요.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사람의 기본 특징은 뭐냐?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을 수가 없지요. 세상 가는 길이 다른데, 그건 넓은 길이고 멸망으로 가는 길인데 멸망으로 가는 사람한테 내가 왜 인정받아야 돼요?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여자가 시집가게 되면 제일 먼저 신경 쓰는 게 뭐냐? 시집에서 내가 며느리로서 인정받는가, 그게 제일 신경 쓰여요. 모든 행동은 다 그렇게 처녀 때 행동, 친정에서 살았던 행동 다 고쳐지는 겁니다. 그게 뭐냐 보편성이 뭘 만든다? 그 집안의 개별성을 낳는 거예요.
스무 살 때까지 군에 갔다 오기 전까지 지 마음대로 살다가 회사 딱 취직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새벽 여섯 시까지 일어나야 돼요. 왜? 여덟 시까지 출근해야 되니까. 이거는 취직 안 할 때는 상상도 못한 겁니다. 취직 안 할 때는 새벽 두 시에 자고 아침 열 시에 일어나잖아요. 그런데 취직하고부터는 입기 싫은 양복 입어야 되고 구두 닦아야 되고 출근해야 되고. 취직 안 할 때 꼰대라고 욕하다가 꼰대가 나중에 자기 과장인데 꼰대 말 안 들으면 잘리는 수가 있는데 월급 날아가고 서울서 혼자 못 사는 데요? 월세도 못 내는데. 안 되겠지요.
인간은 누가 만드느냐? 인간은 사회가 만들어요. 가정에서 만드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잖아요. 군에 가면 인간 되겠다. 왜 군에 가면 인간 되느냐 하면 군에는 개인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보편성만 인정해줘요. 전에는 인간을 학교에서 했잖아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학교에서 인간 만듭니까? 학교에선 지 자랑하기 바빠서 지 개성 발휘하는 장소가 됐지 보편성은 용납이 안 되는 거예요. 보편성 하면 학생들 인권문제 들고 나와요.
아직도 인권문제가 그다지 심하지 않은 데가 군대입니다. 군대는 아직 좋아요. 그리고 직장생활. 직장, 사람 새로 개조합니다. 딱딱 시간 지켜야 되고 아침에 출근하기도 싫은데 컴퓨터 모니터로 하루일과가 쫙 메일로 다 보내지고 하나하나 체크하다보면 자진해서 퇴근시간 반납하고 야근까지 해야 돼요. 안 그러면 그 다음날 되면 지시사항이 또 내려오니까 집에 가서 하든지 밤샘하든지 해야 돼요.
그것 못하면 회사에서 무능력자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자발적으로 퇴직을 강요한 셈이 되지요. 나가야지요. 너, 회사 왜 나왔냐? 나하고 안 맞더라. 자기하고 왜 맞아요. 자기는 어딜 가도 보편성 속에 사는 부속품인데 어떻게 조직이 자기를 맞춰야 돼, 자기가 조직에 맞춰야지. 그렇잖아요.
인간은 신이 되기 위해서 태어났지만 그 신은 더 센 신한테 호되게 평생을 시달리다가 결국은 죽습니다. 속마음은 신이 되고 싶은데 사회는 나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지요. 그 사회가 요구하는 내가 돼야 돼요. 그래서 이 세상은 뭐냐?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자를 뭐라고 하느냐? 이걸 출세라고 이야기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게 출세에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보편성에서 개별성이 있는 게 아니고 아까 이스라엘 속에 특수한 개별성이 있어요. 역대상에서는 역대하도 마찬가지지만 이 특수한 개별성을 뭐로 봤냐 하면 이게 바로 유다 지파고 그중에서도 다윗의 자손을 특수한 개별자로서 이스라엘 역사 속에 이걸 꽂아 넣습니다.
역대상 1장 1절부터 2장 2절까지는 아담과 이스라엘 전체를 다 이야기하고요. 이것 찾아봅시다. 역대상 9장 3절 누가 읽어볼까요. 오늘 강의 이것만 찾아볼게요.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자손 중에서 예루살렘에 거한 자는” 그렇게 돼 있지요. 여기에 아까 봤던 5장 26절에 오늘날에는 북쪽 나라가 다 날아가 버려요.
그럼 남아있는 게 뭐냐 하면 이스라엘에 다윗의 등불이 남아있는 것은 북쪽 나라는 히마리 없고 남쪽의 유다 지파만 남아있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이스라엘 다 죽었잖아. 아니에요. 역대상에 보면 북쪽에 있는 지파들이 신앙생활 제대로 하겠다고 북쪽에 살지 않고 남쪽으로 이주를 해요. 이사를 한다고요. 그중에 많이 이사한 쪽이 뭐냐? 레위 지파에요.
레위 지파가 이사해서 “그래, 우리 북쪽은 잘라졌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희망, 하나님이 주신 계시의 희망은 역시 남쪽의 유다나라야.” 그래서 오는 겁니다. 그 프로가 무슨 프로냐 하면, 이에요. 이제는 만나고 싶습니다. 북한에서 월남한 사람들 모인 프로 있지요. 티비조선에서 하는. 북한 이야기해서 예능프로를 이어가잖아요. 북쪽에 있는 북한 사람들이 남쪽 좋다고 넘어온 거예요. 그 이야기하는 거예요. 반갑습니다, 노래 불러가면서 재롱을 떨고 있어요. 북한에 궁금한 것 이야기하고 프로가 진행되는데....
북쪽에 있는 것이 남쪽에 흡수됐다는 말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보편성이 어디로 굳혀지느냐 하면 한 지파로 굳어지는 겁니다. 고 배치, 고 등록된 계보의 배치를 그렇게 한 거예요. 1장 1절에서 2장 2절까지는 아담에서 이스라엘까지 다 하고요. 그 다음에 2장 3절에서 55절까지는 유다a, 그 다음에 유다a 중에서도 핵심부분 3장 1절부터 24절까지는 다윗. 다윗은 유다 지파에 속합니다.
유다 지파 가운데서 부각되는 것, 핵심 되는 부분을 또 도드라지게 드러내는 족보. 족보라고 같은 족보가 아니란 말이죠. 어떤 특수성에 둘러싸인 이스라엘. 이스라엘을 평면으로 보면 편평하게 돼 있지만 옆에서 보면 이스라엘 제일 중심에 다윗 계보가 있고, 다윗 계보에 가장 근접해서 유다 지파가 있고, 그 다음에 유다 지파와 함께 베냐민 지파, 시므온 지파가 가까이 있거든요. 남쪽. 그 다음에 북쪽, 제일 마지막에 아까 요단 강 그쪽에 동쪽. 그러니까 족보이야기는 동쪽부터 시작해서 제일 중요한 것을 마지막에 이야기하듯이 동쪽부터해서 그 다음에 남쪽, 북쪽 하고 유다와 다윗을 그 중간에다 집어넣어요.
그래서 2장 2절에서 55절까지 유다 지파a, 3장 24절까지는 다윗 계보, 4장 1절부터 23절까지 다시 유다 지파, 그 다음에 유다 바로 밑에 시므온 영토, 그 다음에 5장에 보면 동쪽 지파. 우리가 5장하고 있는데 르우벤, 갓 그 다음에 끝나면 요단 서편 동쪽 므낫세. 그 다음 7장에서는 잇사갈, 잇사갈은 북쪽에 있어요. 잇사갈, 납달리.
이스라엘 북쪽에 보면 갈릴리 있고 사해 있고 요단 강 있는데 여기 아셀 지파, 스블론, 잇사갈, 막대처럼 기다란 건 납달리, 이쪽은 동쪽 므낫세, 요쪽이 서쪽 므낫세, 이 밑에 에브라임, 요 밑에 베냐민, 그 밑에 유다, 옆에 시므온, 이쪽 옆에는 단 지파. 이렇게 돼 있는 거예요. 동쪽에서는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동쪽 므낫세 지파. 이래서 열두 지파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레위 지파는 어디 있느냐? 레위 지파는 다 섞여있어요. 여섯 개의 도피성 중심으로 돼 있는데 여섯 개의 도피성이 각각 삼십 킬로미터 간격으로 띄워져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할 때 결국 마지막에 메시아가 진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실 분은 다윗의 자손부터 나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과거 해석을 다시 결정하는 거예요. 예수님에 의해서.
지금 평소에 우리가 3월 2일에 행동한 걸 내가 평가하잖아요. 3월 3일 되면 내가 평가하고 3월 4일 되면 내가 평가하는데 사실은 주님 보시기는 평가가 소용없습니다. 내가 주인공 같으면 내가 평가하겠는데 나는 잘했다, 못했다 하겠는데 잘했다/못했다 자체가 선악체제에요. 이건 버려야 돼요. 왜? 못한 것밖에 없는데 뭘 잘한 게 있어요.
선악과 따먹는 자체가 우리에게 죽음을 유발했고, 그건 주님 뜻대로 죽어 마땅하지 거기에 뭐 기도했으니까 잘한 것이다. 기도 안 했으면 나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신앙생활을 일기장에 점수 매기는 사람 있습니다. 오늘은 75점, 오늘은 70점. 그 일기장 불속에 들어갑니다. 사람이 얼마나 위선자인지요. 사람이 점수를 매길 때도 자기 몸이 멀쩡하고 건강할 때는 점수 매길 수 있어요.
이가 아프다, 온 몸이 아프다, 췌장암 걸렸다. 그러면 이게 점수가 됩니까? 사람이 아프면 짜증나게 돼 있고 짜증나게 되면 성령의 열매, 온유와 화평과 자비와 양선과 형제우애, 아픈데 형제우애 됩니까? 지 아픈 사이에 형제들이 아버지 유산 다 저희끼리 n분의 1 갈라버리면 그게 형제우애가 됩니까? 안 되지요. 아파서 회사 잘렸는데 그게 양선이 되고, 온화함이 됩니까?
인간은 지 성질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몰라요. 잠시 몸 아픈데 없고, 아픈데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해요. 아픈데 없고 습도가 47%에다가 온도가 14.2도 해보세요. 거기다가 산들바람 불어보세요. 갑자기 온화해지지요. 인간은 육체적인 존재에요. 모든 감정도 육체의 감각과 관련돼 있다고요.
새벽 기도한다고 은혜 막 하려고 하는데 목사가 지 퇴근한다고 난로 검댕이 날아오고 기침해보세요. 기도가 됩니까? 욕이 막 나오지요. 사람은 진짜 산들바람 불듯이 따뜻한 봄날, 그리고 옷차림도 거기에 맞춰서 바깥 온도 25도인데 지는 외투 입어보세요. 이게 온화합니까? 짜증나지요. 그러니까 인간은 모든 감정은 조작입니다. 모든 인간은 그 시절에 조작한 거예요.
수요일에 제가 그런 설교했습니다만 자기를 속이는 자가 누구냐 하면 본인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 했는데 쉬지 말라고 속이고 있어요. 계속 자기 자신을 속입니다. 자기가 믿음이 있는 것처럼 조작해요, 인간은.
주님께서 특수한 개별자에게 모든 것을 일임해버렸어요. 이걸 무슨 언약? 다윗언약. 하나님이 율법에게 맡긴 것은 모세언약, 이제 율법이 아니고 다윗에게 맡긴 것은 다윗언약. 그럼 율법은 어디 가냐? 율법의 모든 뜻을 다윗이 인수인계 받는 거예요. 회사 합병한 겁니다. 사원들은 그냥 다니면 돼요. 사장만 바뀐 거예요. 사장만. 전에 있던 회사 다 인수인계 받아서 그냥 운영하게 되면 사원은 안에서 그냥 누리면 되는 겁니다. 사장, 회장님이 운영만 잘하면 월급은 따박따박 다 받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주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는다는 뜻이에요. 이 뜻이. 주 예수 이름 부른다고 지가 앵무새처럼 이런다고 구원받는 게 아니고 주님이 하신 공로로 구원받는 게 주 예수 이름이에요. 그래서 예수님 안에 등록되는 겁니다. 성령으로 등록되게 되면 우리는 나의 개별자, 나의 개체는 모든 가치와 의미는 우리는 챙기지 못합니다. 왜? 다 가져가니까. 특수한 개별자가 몽땅 나를 다 빼앗아가요. 다 강탈해가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보지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보면서 예수님께서 병자들 고칠 때 귀신 쫓아낼 때 그때 고침을 받은 사람들 공통점을 살펴보세요. 고침 받은 그들은 고침 받기 전처럼 자기 개인으로 돌아가던가요, 아니면 예수님께 복속되던가요, 어느 쪽입니까? 자유다, 내 인생 살면 된다, 이런 식으로 돌아가던가요, 아니면 이제는 주님 없이는 못 살아요 이렇게 되던가요, 어떻게 됩니까? 주님 안의 나에요. 예수 안의 나라고요.
예수님 회사에 취직한 거예요. 전에는 백수처럼 놀다가 주께서 주님 회사에 취직시켜주니까 이제는 먹든지 마시든지 죽든지 살든지 다 주님의 소유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뭐라 하느냐 하면 개별자의 순수성이 다수로 연속된다, 이래 돼요. 개별자, 다윗의 자손 예수님의 순수성이 이제는 다수에게 분배되는 겁니다.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선물을 주셨다. 성령을 선물로 준 거예요.
이거는 내가 노력해서 얻은 선물이 아니고 주께서 다 이루심에서 오는 선물을 주는 거예요. 산 위에 저수지가 있는데 여기에 열두 개의 농가가 있다고 칩시다. 그럼 농사지으려 하면 물이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저수지는 하나에요. 하나에서 농가로 내려가는 관로, 물이 흘러오는 거예요. 이 물은 본인의 물이 저수지에 있던 공통의 물이 이 안으로 흘러들어온 거예요.
그럼 공통의 물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예수님의 소망이 있고 예수님의 믿음이 있고 예수님의 사랑이 있는 거예요. 그걸 성령을 통해서 주니까 각자 받은 농가 속에는 내 믿음이 아니고 주님의 믿음이고 내 소망이 아니고 주님이 소망이고 내 사랑이 아니고 주님의 주신 사랑으로 있다 이 말이죠. 이래서 그들은 아무리 여럿이 되어서 아무리 숫자가 많아요. 주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께 받은 사람이냐, 안 받은 사람이냐 어떻게 우리가 분간할 수 있는가? 이거는 저수지 물 내려오면 되잖아요. 내 행함 말고 주님이 거저주신 것 있잖아요. 주님이 거저주신 것 내놓으면 될 것 아닙니까. 교인들이 서로 이야기하고 성도들이 이야기하면 주님이 주신 거저주심을 되는 거예요. 거저주신 내용이 뭐냐? 별로 주님께 받은 게 없는데 지금까지 내 힘으로 월급 받고 내 힘으로 냉장고도 다 샀는데 주님께서 준 게 있어야 내놓지.
사람들은 충분히 그렇게 차마 말은 못하지만 속으론 그런 말하고 싶어서 가만있질 못하지요. 이론은 맞는데 받은 게 있어야 내놓지. 아무것도 없는데 내 자식도 내가 키웠고 심지어 백 하나도 내 돈 주고 내가 샀는데 그걸 주님 주신 것이라고 하면 남들이 나보고 믿음 좋다고 이야기하겠지. 하지만 남들이 믿음 좋다고 하지만 내가 그게 진심이 아닌데 그게 무슨 소용 있어요.
그때는 주께 주신 게 뭐냐 하면 전쟁입니다. 영적 전쟁은 세계 간의 충돌이에요. 뭘 이야기하느냐 하면 이쪽 세계는 이렇게 살아가더라가 나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지옥 갈 세상에서는 이런 식으로 살아가더라, 라고 거침없이 내놓으면 그 사람은 이쪽 세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왜? 전쟁 중에 있었기에. 그걸 세계 간의 충돌이라 이렇게.
그러면 이쪽 세계, 지옥 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 너는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그러면 당신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날 위해서 나밖에 모르는 사람, 돈밖에 모르는 사람, 그저 자기만 출세하면 다 행복인줄 아는 그런 사람에서 당신은 어떻게 빠져나왔어요, 라는 말을 분명히 할 게 아니겠습니까? 그때는 뭐냐? 나도 모르지, 주께서 하셨는데, 내가 했냐? 주께서 선물로 줬는데 어떻게 빠져나온 나는 모르지. 기도해서 빠져나온 것도 아니고 헌금, 십일조해서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주셨지, 그냥.
등록의 차이거든요. 이쪽은 이미 등록됐잖아요. 어민으로, 농부로 등록됐는데 이 등록은 인간으로 할 수 있는 등록이에요. 왜? 지옥 가는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이쪽 등록은 내가 하고 싶어서 등록하는 게 아니에요. 교회 등록한다고 세례식, 성만찬 한다고 구원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이 점에 대해서 이쪽 세상 세계에 대해서 저들은 저렇게 살아가더라, 라는 것을 둘 다를 알지요. 이쪽 세계, 그리스도 세계도 알고 세상 세계도 알지요. 왜냐하면 그쪽에서 살다가 왔기 때문에. 그쪽에서 마음껏 내 실력과 세상 사람으로부터 어떻게 내가 진짜 괜찮은 인간이라고 인정받기 위해서 평생을 수고했던 그 수고, 그게 얼마나 나를 지옥 가게 만드는 악마의 수법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이제는 세상의 인정 같은 건 개나 줘버려라 하고 이쪽 세계로 옮겨진 상태.
그 상태에 대해서 여기 역대상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예가 나와 있습니다. 역대상 4장 9절에서 10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이 대목입니다. 이게 역대상 4장에 나오거든요. 사람들이 역대상 4장을 잘 안 봐요. 그런데 한 이십 년 전부터 이 대목이 갑자기 확 떴어요. 유명했어요. 왜냐하면 그 당시에 우리나라 부동산투기가 아주 번졌거든요. 그러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부동사투기해서 돈 벌 수 있는 구절 없는지 찾아낸 것이 야베스의 기도라는 겁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여러분들이 보셨으니까 거기에 어떤 대목 나옵니까?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부동산 아닙니까. 그냥 복을 주는 게 아니라, “복에 복” 더블 복, 복을 더블로 주게 하옵소서. 야베스의 기도하면 복을 받아서 부동산값을 대박 난다는 그것으로 그렇게 하는데 누가 부동산을 못 누려서 환장을 했느냐 하면 하나님 자신이, 야 교회 다니는 인간들아, 내가 야베스 기도하면 다 부동산 완전히 대박 나도록 해준다는 데 왜 너희는 야베스 기도 못했느냐, 추궁하는 것처럼 느낀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그래서 내가 부자 못 되고 가난하게 된 것은 야베스의 기도를 못해서 그렇구나, 해서 야베스의 기도가 유명하게 된 거예요. 역대상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는데 갑자기 역대상이 붕 뜬 거예요. 유행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야베스의 기도에 대해서 목사님 해석이 무엇입니까, 물을 필요도 없어요. 본인이 해석 다했는데 새삼스럽게 목사가 엉뚱한 소리하면 산통 다 깨잖아요. 물을 필요 없어요. 목사님 이야기하지 마세요. 이건 내가 알아서 딱 내 이야기입니다, 이런 식으로 믿고 야베스의 기도를 하는 거죠. 야베스가 누군지 몰랐는데 이때부터 야베스가 유명인사가 됐어요.
야베스가 역대상 4장입니다. 4장은 어디 있느냐 하면 역대상에서 바로 유다b에 속하는 거예요. 유다 지파에 나오는 유다b에요. 그러니까 다윗이 아니고 유다에요. 유다 지파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 말은 뭐냐 하면 단면계보에 속합니다. 아까 선행계보가 아니고 직통해서 다윗에게 솔로몬에게 꽂히는 게 아니라 단면계보, 유다 지파인데 서로 이러한 유다 지파에 인물들이 끼어서 그들이 어떤 관계를 갖추느냐를 그 면까지 다 보여주는 계보, 족보, 그게 단면계보에요.
그렇다면 오늘날, 여기서 오늘날 하면 2022년을 말하는 게 아니고 그 당시 역대상을 기록했던 오늘날에 있어서 야베스의 땅을 넓힌다는 건 뭔 뜻인가? 이거는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릴게요. 다시 돌아와 이 땅 줄게. 왜냐하면 야베스가 어디 속하느냐 하면 유다 지파에 속하거든요. 원래 야곱은 한 명이잖아요. 야곱이 자식을 몇 개 낳아요? 열두 명이죠. 아까 이야기한 한 개별자가 열두 명의 자식을 낳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복은 어딜 거치느냐? 아브라함의 복이 어디에 오고? 이삭에게 오고. 이삭에서 어디로 갑니까? 야곱에게 오지요. 야곱에서 열두 지파에게 흘러들어갑니다. 아브라함에서 이삭, 이삭에서 야곱, 야곱에서 열두 지파 할 때 이렇게 내려오면서 어떤 게 있느냐 하면 반전드라마가 이뤄져요. 언약 하나가 다음 언약할 때는 반전드라마, 거꾸로 뒤집는 드라마가 나옵니다.
어떤 식으로 반전이냐 하면 출생의 비밀에서 어떤 부잣집에 어렵게 사는 여인네가 쌍둥이 딸을 낳았는데 한 딸은 부잣집에 양자로 맡겨놓고 한쪽은 어떤 집안에 양자로 맡겨놨는데 A라는 부잣집은 계속 부자 되어 재벌 되었고 한쪽 집안은 너무 가난하고 착하기만 한 흥부 같은 집안에서 점점 못 살아서 겨우 시장에서 떡볶이 장사나 하면서 먹고 사는 그 딸이 있더란 말이죠.
서로 형제간인지 모르고 둘이 헤어졌는데 B에 있는 이 딸은 못 살지만 마음씨 착해요. 그래서 재벌 회사에 말단 사원으로 취직을 합니다. 언니는 상속자 딸로 돼 있고 동생은 이 집안에 인턴사원으로 취직을 하는데 취직한 첫 날에 재벌 아들 만나서 서류 들고 가다가 커피를 쏟아버려요. 멀쩡하게 생긴 키 크고 인물 좋고 돈 많은 재벌 아들에게 옷을 할 때에 역시 재벌 아들은 주인공은 멋있잖아요. 괜찮아요. 다친 데 없느냐고 오히려 넘어진 그 딸이 얼굴을 드는 순간 빠지직 갑자기 둘이 반해버린 거예요. 안 그러면 계단에 넘어지려고 할 때 손을 딱 잡아준다든지. 이런 드라마가 한둘이 아닙니다. 아침 막장드라마 나오고요.
문제는 양자된 언니가 동생인 줄 모르고 굉장히 구박을 해요. 나중에 보니까 지금 말이 꼬여버렸는데 쌍둥이가 아니고 사실은 옆집 아이인데 유전자조사를 해보니까 진짜 재벌의 아들은 못 사는 딸이 진짜고 가짜가 끼어들어왔다. 내용이야 원래 아침드라마는 지 마음대로 바꾸니까 갑자기 무당 됐다 빛이 났다 이러니까.
반전이란 말은, 모든 인간은 창세기 32장에서 영생이란 꿈도 꾸지 못하고 우리는 마귀의 종으로서 죽어 마땅하고 지옥 가야 됩니다. 그게 인간이에요. 그런데 선악과 따먹고 선악지식을 아니까 내가 악에서 선하게 살면 마치 죽어서 선한 사람들이 가는 천국에 갈 것처럼 매일 우리의 행동과 일상과 마음가짐이 착하게 살면 하나님께선 양심도 있고 눈이 있기 때문에 뭐라도 나에게 복이 될 것이라는 그런 막연한 기대로 살아가는 거예요. 인간은 소위 양심이란 게 있어서.
동양철학이 다 그런 것 아닙니까. 나는 종교가 없다 해도 그 사람 속에는 양심이 내 종교라 하잖아요. 바르게 살게 되면 복 받더라. 내 주위에서 한두 명 본 게 아니다. 그러니까 양심대로 살아서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잖아요. 그래놓고 기독교라는 걸 만들었어요. 교회를 만들고. 양심대로 살 사람 다 모여라. 그래서 교회에 다 모아놓고 교회 다 지옥 가잖아요.
왜 양심은 뭘 해도 썩은 양심이란 걸 복음 앞에서 십자가 앞에서 발견해야지요. 너, 실패자야. 그러한 기쁜 소식을 지금 제가 이야기해도 안 들어요. 내가 얼마나 잘난 존재인데. 맨날 이렇고 있다고요. 남들이 날 좀 인정해주면 좋겠다. 같은 교인들이 인정해주면 좋겠다. 내가 얼마나 착실하게 살아가는지. 내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의 시처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혹시 내 잘못인가해서 나는 벌벌 떨었노라, 이런 식이라. 아주 섬세하게 선과 악에 대해서 아주 예민한 감각을 가지 어떻게 하든지 악을 저지르지 않고 착함만 추구하는 것, 지옥이나 가라.
반전을 몰라요. 모든 언약에 반전이 있다는 것.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에 서기로 했지만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자기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꿈도 못 꿨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서 이스마엘이 후계자 아님을 보여주시고 더 나아가서 이삭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이삭을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께 어떻게 하라? 네가 바쳐버려라. 죽어버려라.
그래서 우리는 뭐냐 하면 죽음이란 것, 나의 죽음을 섞어서 이야기하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언약에 등록된 사람이에요. 나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고, 아까 했지요. 첫 번째 먼저 닥쳐오는 거예요. 나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해서 내가 사는 게 오히려 신기하고 신비롭고 왜 내가 아직도 살아 있지, 그 덩어리 자체를 하나님의 은혜로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에요. 이것은 매일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과를 간섭해야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 다음에 이삭도 마찬가지에요. 이삭도 당연히 자기 맏이에게 복을 주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첫 번째로 태어나게 해서 야곱에게 복이 있게 하시는 게 아니고 의도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쌍둥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게 했어요. 인간적으론 첫째가 장자고 둘째는 차자다, 이게 마땅한데 마땅함을 먼저 주고 마땅함을 뒤집어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그 맏이가 아버지 마음에 쏙 들어요. 이삭은 사냥하는 아들을 더 좋아해요. 바깥에 돌아다니는 것을. 야곱은 곱상하게 있으면서 음흉한 인간이에요. 아버지는 야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내치고 싶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사랑하고 이삭이 좋아하는 그 맏이를 미워하셨습니다.
야곱이 이 사실을 알고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의 면면을 다 보여주시고 의도적으로 뒤바꾼다는 사실을 깨닫고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했을 때는 자리를 바꾸는 게 아니고 야곱이 자기 손을 크로스해요. 뭘 이야기하려고 합니까? 이게 인간들의 생각이고 크로스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니까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이 누구도 메시아인 줄 못 알아보도록 오신 거예요. 아무도 자력으로 자기 힘으로 예수님을 못 알아보게 하신 거예요.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어도 마땅한 천하의 죄인입니다. 그런데 지금 후대에 와서는 예수님을 사대성자로 막 높여요. 특히 천주교 이런 데 막 높인다고. 으샤으X 해서 얼마나 훌륭하냐 죄인을 위해서 자기 몸 바치다니, 그렇게 아부하면 천당 보낼 줄 알고.
그런 식으로 주께서 구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완전히 망가져야 되고 완전히 실패자란 사실, 세리와 창기보다 더 못한 사실을 깨닫는 그 순간에서 비로소 발견하는 나는 하나님 앞에서 할 수도 없고 한 게 없고 앞으로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게 하는 그 순간을 그렇게 뒤집어버리는 만들어버리는 주님이 찾아온 순간입니다. 유도에서 씨름에서 뒤집기라 하지요. 주께선 뒤집는 식으로 우리에게 신앙을 주십니다. 다른 방식은 기대하지 마세요.
이건 야곱도 마찬가지에요. 야곱도 열두 아들에게 전해줄 때에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 땅에서 누이 디나를 강간했다고 힘으로 다 죽이는데 강간한 그 인간만 죽인 게 아니에요. 그 땅 남자들 다 죽여 버렸어요. 심지어 재산까지 빼앗아버렸으니까. 그때 야곱이 둘로 나눠집니다. 성질부리던 야곱, 이게 열두 아들이에요. 야곱이 성질부리다가 하나님과 싸웠던 그 못 돼먹은 야곱은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어요.
그래서 열두 아들을 이스라엘로 바꾸는 작업이 이스라엘 역사입니다. 육적인 야곱을 하나님과 직접 만나고 난 뒤의 이스라엘. 육적인 야곱은 멀쩡한 야곱이지만 하나님 만난 야곱은 뭐냐? 자기 힘의 바탕인 넓적다리가 완전히 절어버렸어요. 말이 절은 것이지 사실은 죽은 거예요. 야곱이 죽어서 이스라엘된 겁니다. 예수님 죽어서 예수님 부활하듯이 죽음은 육으로 오셔서 영으로 부활하시잖아요.
그러니 창세기 3장 24절 육 자체가 이미 하나님께 버림받은 거예요. 하나님께 버림받은 우리를 버림받은 자의 행함이나 성과나 선물이나 이런 것 일체 받지 않고 어떻게 일방적으로 버림받은 자를 자기 백성 만드는 그 과정, 그 과정에는 점점 더 하나의 특수한 개별자로 모든 방향이 모든 역사가 집중하게 돼 있어요. 그 집중한 것이 유다 지파였고 유다 지파에서 나온 것이 다윗 자손이고 다윗 자손에서 마지막에 오신 분이 누굽니까? 예수님을 누구라 해요? 다윗의 자손이여, 예수 그리스도에요. 예수님 안에는 뭐가 있느냐? 역대상이 다 들어있는 겁니다.
그러면 야베스는 뭐냐? 야베스는 유다 지파와 관련된 인물이에요. 한 사람의 공로로 결국은 야베스 족속이 다시 약속의 땅에 있거든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아닙니까. 북쪽에 바벨론 있거든요. 현재 이란을 바벨론이라 해요. 그쪽으로 포로 잡혀 갔습니다. 가고 난 뒤에 바벨론이 칠십 년 만에 망하고 그 다음에 바사나라가 돼요. 지금의 이란, 페르시아, 페르시아 만 있지요.
그 나라에 고레스 왕이 있는데 고레스 왕을 두어서 다시 본토로 포로 잡힌 자를 데려오게 만들어요. 그래서 이 빈 땅을 다윗 자손, 이스라엘 땅으로 만드는 이 기도를 야베스가 한 겁니다. 그러면 지금 사는 이스라엘은 야베스 후손들이냐? 야베스 후손들 아니에요. 야베스의 땅은 구약으로 끝났습니다. 왜냐하면 땅 자체가 땅이 언약이었는데 신약에 오면 예수님 자체가 언약이기 때문에 예수님 자체가 이 땅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을 하게 돼요. 승천이 중요해요.
승천을 하게 되면 옛 땅과 예 하늘은 이제는 불로써 다 태워버립니다. 왜? 주님께서 곳이 딴 데로 이동했기 때문에. 땅에 있는 것 말고 하늘에 있는 영역, 영토가 새로 만들어져요. 땅의 어느 곳이 중심이냐가 아니에요. 중심은 어느 지역이 중심이 아니고 중심은 예수님이 이 세상의 중심입니다. 서울의 중심은 뭡니까? 강남이죠. 울산의 중심은 롯데백화점 거기 무슨 동네입니까? 그 동네가 중심이고 대구는 동성로가 중심이잖아요.
사람들은 자꾸 고향을 찾아가는데 우린 이 땅에 고향은 하늘나라가 고향이지 다른 덴 고향이 없어요.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나오거든요. 우리가 돌아갈 고향은 하나님이 따로 만든 본향입니다. 이 땅은 본향이 없어요. 그런데 인간들의 과거 기억에서는 어릴 때 살던 동네 있잖아요. 그 동네로 돌아가고 싶어요. 물장구 치고 다람쥐 잡고 하던 그때 그 시절이 영원한 고향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 박혀있습니다. 그때 옛날에 함께 어릴 때 같이 컸던 순이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 순이는 할머니 다 됐는데, 깜짝 놀라지요. 요샌 마스크까지 써서 알아보지도 못해요.
인간은 과거의 고향으로 자꾸 회귀하려고 합니다. 성도는 회귀할 곳이 없어요. 죽은 시체가 무슨 과거가 있어요. 죽어서 올라오라 이 말이죠. 늙어죽겠습니다, 하지 마세요. 지금이라도 이미 죽었으니까 아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올라오라는 거예요. 성도는 갈 곳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면서 살 필요 없어요.
다시 한 번 정리할게요. 자꾸 열두 지파를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의 집약된 중심축이 있어요, 우리는. 여러분 놀이동산에 보면 빙빙 도는 회전의자 있지요. 공중에 매달려서 좋아서 고함지르잖아요. 예수님 중심으로 해서 우리는 예수님에 관련된 그런 이스라엘로 성령을 받아서 붕붕 도는 겁니다. 이 말은 내가 중심이 아니란 말이죠.
그런데 세상은 예수님을 인정 안 해요. 안 알아줘요. 그러면 우리도 세상으로부터 인정 못 받는 것을 영광인 줄 알아야 돼요. 네가 내 제자라면 세상이 너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나를 미워함이라. 요한복음 14장에 나오는, 나를 미워하기 때문에 필히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 내 말과 내 의로 핍박을 받으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선지자들도 그와 같은 환난을 다 받았다. 그런 팔자가 된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이거거든요.
말씀을 마치겠습니다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말씀을 통해서 보세요. 구약 이스라엘을 통해서 왜 이스라엘이 자꾸 세상 쪽으로 세상에 근접하고 그것과 손잡고 여호와 버리고 왜 그쪽 신으로 자꾸 쏠리는지 보세요. 그거는 뭐냐? 주님의 개별성보다 나의 개별성이 앞섰기 때문에 그래요. 나는 나를 위하여 예수를 믿는 그런 오류를 범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를 위한 예수 아니고 예수님을 위한 나로 우리는 부름을 받은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하신 일이 이처럼 일관되게 주어졌는데 우리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내 안에 주님 하신 일이 역시 일관성 있게 다 이루어지고 진행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