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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20304a 울산강의-역대기상(8강) 4장 10절 : 야베스의 기도자유게시판역대상

20220304a 울산강의-역대기상(8강) 4장 10절 : 야베스의 기도
(강의:이근호 목사)

역대상 계속하고 있습니다. 역대상 5장 25, 26절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저희가 그 열조의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이 저희 앞에서 멸하신 그 땅 백성의 신들을 간음하듯 섬긴지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이 앗수르 왕 불의 마음을 일으키시며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의 마음을 일으키시매 곧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를 사로잡아 할라와 하볼과 하라와 고산 하숫가에 옮긴지라 저희가 오늘날까지 거기 있으니라“

오늘날, 이게 역대기가 써진 그날들, 그 시대의 오늘날이에요. B.C.400~450년 경 그쯤 돼요. 역대기가 써진 게. 그래서 ‘오늘날’이란 것을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미 결정된 과거를 다시 결정하는 것. 이게 이스라엘 역사를 성경에서 기록될 때 특히 역대상 같은 경우에는 어떤 시대로 기록하느냐 하면 fast forward, 빨리 감기하는 것. 녹음기 같은 것 빨리 감기하지요. 역대상 1장에 보면 족보를 빨리 감기해요. 쑥 들어가요.

역대상 1장을 보게 되면 1장 1절부터 아담, 셋, 에노스, 게난 뒤에 순서가 없어 그냥 쫙쫙 나갑니다. 빨리 감기하는데 아담에서 보면 forward 앞으로 빨리 감기. 그런데 오늘날 역대기가 써진 그날에 비하면 뒤로 빨리 감기하는 거예요. 이 역대기를 오늘날 백성들에게 보여주시면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이유가, 빨리 감기를 통해서 뭘 말씀하시려고 후딱 지나가는가?

과거라 하는 것은 오늘날을 위하여 과거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결정된 과거를 다시 결정하는 것, 이 이야기가 쉽게 말씀하면 이렇습니다. 3월 2일, 이걸 오늘날로 보면 3월 2일에 생각하는 것은 3월 1일까지 생각하는 것을 3월 2일에 생각하잖아요. 3월 3일을 생각 못해요. 아직 오질 않았으니까. 그런데 오늘 3월 4일이잖아요. 3월 4일이 되면 3월 2일에 생각한 것, 3월 3일에 생각한 것을 여기서 다시 결정하는 겁니다. 다시 해석하는 겁니다.

옛날 흘러간 노래를 1년에 한 번 듣고 가끔 들으면 그냥 흘러간 노래에요. 그런데 흘러간 노래를 매일 들으면 흘러간 노래가 아니고 오늘의 노래가 되는 겁니다. 이런 것, 이걸 매일 열 번 들으면 과거 노래가 아니고 지금 내 노래가 돼요. 그래서 인간은 이미 결정된 과거를 다시 결정하는 겁니다. 모든 게. 그렇게 되면 오늘날이 자꾸 이동하겠지요, 3월 2일 오늘날, 3월 4일 오늘날, 3월 6일이 되면 오늘날 또 된다 이 말이죠.

그러면 과거에 그렇게 지루했던 과거는 fast forward 빨리 되감기가 되는 거예요. 후딱 지나가는 겁니다. 남자들 군에 갈 때 3년, 우리 할 때는 3년이었습니다. 혜택 받아서 34개월, 혜택 못 받으면 36개월. 3년 했는데 그때는 이러다 인생 끝날 것 같아. 너무 시간이 안 가요. 그런데 지나보면 군대 이야기는 빨리 감기가 되어 후딱후딱 지나가는 겁니다. 이 원리가 신앙의 기본 원리에요. 정말 이거는 죽더라도 잊어버리면 안 돼요. 정말 중요한 건데 다 오셨으니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여기 있는데 내가 언제 태어났다. 태어났으니까 실선, 아직 안 죽었으니까 이건 점선, 내가 언젠가는 죽을 거다. 죽었으니까 시체라 봅시다. 이만큼 남았다고 보거든요. 이게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보는데 성경해석은 이렇게 보는 게 아니에요. 내 쪽에서 이쪽으로 다가가잖아요, 죽는 날. 현재 살아 있고 다가가는데 성경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이 죽는 날이 다가와요. 반대로. 그러면 오늘이 3월 4일이잖아요. 그러면 3월 4일에서 3월 5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왜냐하면 3월 4일 오늘이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그래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 안 하면 성경해석 못합니다. 할 수가 없어요. 마지막 날, 마지막 때의 이 말씀을 주신 거예요. 성경말씀을 준 게 아니고 성경말씀의 완성을 우리에게 주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성경말씀이란, 특수한 죽음 안에 네가 놓여 있느냐? 이걸 묻는 겁니다. 그냥 죽음이 아니에요. 보통 인간이 가는 죽음 아닙니다. 몇 해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 그것 말고요. 일반인들이 죽는 죽음 말고 특수한 죽음이 있어요.

이 특수한 죽음은 우리 쪽에 다가와서 늘 특수한 죽음이 우리 쪽에 대기돼 있습니다. 이 특수한 죽음은 이게 무슨 죽음이냐 하면 예수님의 죽음이 특수한 죽음이거든요. 특수한 죽은 지금 예수님이 죽어 있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지금 살아 있는 거예요. 왜? 부활했으니까요. 그러면 예수님이 살아 있다와 나 살아 있다가 날마다 경쟁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인간들은 살아 있기 때문에 아직 죽을 날은 한참 멀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지금 나이가 얼만데 죽음을 생각해요. 아들 장가도 안 갔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데, 내가 살아 있으니까 죽을 날이 한참 멀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특수한 죽음은 네가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제대로 살아 있는 것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살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경쟁에서 예수님은 뭐냐? 너는 내 앞에서 살아 있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자꾸 내가 살아 있다 하니까 과거 생각하고 미래 앞으로 잘하면 되지, 이런 식으로 성경해석하고 소위 신앙생활이란 걸 하고 있는 거예요. 그건 엉터리에요. 그건 기본이 뭐냐? 지금 내가 살아 있다고 우기니까 앞으로 잘하면 되지, 이런 생각이 드는데 내가 살아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린 특수한 죽음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이미 죽은 거예요.

풍선의 입구 있잖아요. 풍선에 보면 바람 넣는 입구가 있지요. 입구를 생각 안 하고 풍선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자기가 너도 살았고 나도 살았고 서로 이야기한단 말이죠. 풍선 안에, 갇혀 있는 채로. 하지만 그 풍선 안에 있는 것이 나올 때는 죽음으로 나온다고 합시다. 살아 있는 것이 풍선의 좁은 구멍 앞에서는 그냥 산 채로는 못 나오고 죽어서 나온다고 칩시다.

그 풍선 구멍 안에서 먼저 우리에게 들어와서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이 풍선 안에 같이 합류가 돼버리면 우리는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채로 이미 죽은 자가 되고, 왜? 죽었다가 안 살아났으니까 죽은 게 되는 거예요.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 진짜 살아 있는 거라면 우리는 아직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이유 때문에 우린 아직 살아 있는 게 아니고 제대로 살아 있는 게 아니고 지금 죽어가고 있는 죽음이다 이 말입니다. 죽어가는 곧 시체 된다 이 말이죠.

살아서 예수 믿어서 구원받아야지, 이거는 지금 예수님을 완전히 모독하는 거예요. 내가 살아 있지만 잘해서 죽고 난 뒤에 또 살아야지, 할 때 내가 지금 살아 있는데 죽어서 또 살아야지 할 때 산다는 개념이 두 개의 개념이 동일하다고 우리는 오해를 하고 있어요. 그러나 여기 살아 있는 것은 죽음을 모르기 때문에 이건 살아 있는 게 아니에요. 진짜 살아 있는 것은 뭐냐 하면 죽었다가 살아나야 살아 있는 거예요. 그걸 성경에서는 생명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교회 다니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이것 다 죽은 짓이에요. 헌금하고 예배드리고 다 죽은 짓이에요. 성경 공부하는 것 죽은 짓이에요. 죽은 놈 뭐 만져봐야 깨어나지 않듯이 죽은 자가 무슨 짓을 해도 그거는 살지 못해요. 사람들이 교회 다니고 헌금하고 기도하고 참석하는 게 이걸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본인이 살아 있다는 그걸 전제로 해서 모든 것을 내가 일방적으로 해석을 하니까 그런 오류가 등장하는 겁니다.

맨날 교회에서 생각하는 게 뭐냐? “주님, 잠깐만 기다리세요.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해서 주님 나라에 합류할게요.” 이러고 있단 말이죠. 주님이, “지금 뭐하니? 니가 너를 살리려고 해.” 니가 왜 너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말이죠. 그거는 언어도단이거든요. 죽은 자는 그냥 죽어 있을 뿐이지 죽은 자가 설친다고 이게 산 자 안 돼요. 그래서 나는 살아도 죽은 거다, 라고 생각이 드신다면 여러분 살아 있는 겁니다. 여러분, 살아 있는 성령이 함께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인생은 뭐냐? 인생은 내가 살아도 이게 왜 죽은 것이 되는가? 그걸 체험하고 경험하라고 우리에게 인생이란 시간이 허락된 겁니다. 아무리 살려고 해도 나는 죽음의 공포에 휩쓸리는가? 왜 죽는 것이 그렇게 무서운가? 이건 제대로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이스라엘 구약 역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그거는 살아도 저주스럽게 살아 있는 거예요. 구약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주어지게 되면.

그러면 이스라엘은 그들이 율법대로 살지도 못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뭐라고 기도하느냐 하면, 살려주세요, 이렇게 나온 거예요. 율법이고 뭐고 다 치우고 평소에 더 살고자 하는 욕구와 욕망이 너무 강렬해서 눈앞에 주의 말씀이고 율법이고 그런 것은 귀찮고 다 번거롭고 그냥 살려만 주신다면 살려주신 하나님께서 제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억지로 꾸역꾸역 이어갔는데 나중에 망합니다. 나중에는 하나님도 한 고집하시잖아요. 그것 다 망해버려요.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 쳐도 그들은 왜 내가 율법을 못 지키는지 왜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지 이유도 모르면서 그냥 죽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구약성경은 해석을 하는 거예요. 죽일 자를 죽이면서도 이미 결정된 과거는 내가 하나님의 선지자, 하나님의 추가적인 계시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다시 결정하는 거예요. 네가 결정한 것 따로, 네가 죽어가는 결정 따로, 내가 다시 죽어가는 너에다가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을 하는 결정 따로, 그것이 이스라엘은 죽지만 이스라엘은 산다, 이런 새로운 의미 층이 발생되는 거예요.

이걸 가지고 뭐냐 하면 중층결정이라 합니다. 밑에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은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해도 주께서는 죽어줘, 제발 죽어줘 죽여 버려요. 하나님이 죽이시는데, 그래 우리는 죽어 마땅해, 라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율법을 어겨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어 마땅해, 라는 자가 등장하는데 그걸 빨강 걸로 해볼게요.

모든 사람은 그저 본능이에요. 안 죽고 싶어요. 사는 게 본능이에요. 오늘날 우리들처럼. 죽고 싶은 사람 누가 있어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안 죽어야 된다는 거잖아요. 그것 노동하고 일하지 않습니까. 죽을 것 같으면 뭐 하러 일합니까. 살려고 일하지요. 자식을 왜 낳습니까? 더 살려고 하는 거예요. 나 죽더라도 너는 잘 살아라, 그것 때문에 살잖아요.

모든 인간이 죽음으로 가고 있는데 여기에 그래 죽어 마땅해, 라는 사람이 소수지만 빨간 사람들이 등장하는 거예요. 이 사람의 근본은 바탕은 뭐냐? 하나님께 있어요. 하나님께 뿌리가 있는 사람과 하나님께 뿌리가 없는 사람이 뒤섞여있을 때 이게 중층결정이고 이 둘 사이에 뭐가 있느냐 하면 고난이 발생되는 거예요. 고난 또는 핍박이라는 게 성립되는 겁니다.

그리고 장차오실 메시아는 이 고난 받는 이 사람들의 계통에 연결되어서 메시아가 오게 돼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시되 이스라엘을 다 버리지는 않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면서 진짜 이스라엘을 만들어내는 그런 작업방식을 사용하신 거예요.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지요. 교회 왜 오십니까, 물으면 간단해요. 교회 와서 하나님 믿고 예수 믿고 땅에서 복 받고 나중에 죽어선 천국 가고, 그것 때문에 교회 옵니다. 누가 그런 소리하던가요? 교회 목사들이 그런 소리 다 했고 목사만 아니라 그 밑에 장로들도 그런 이야기하고, 우리 목사만 그런 줄 알았더니 다른 목사, 헌신예배 온 목사들 다 그런 이야기하고. 원래 신학교에서 성경 가르칠 때 그게 정답이라고 그렇게 다들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아마추어 입장에서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전문가들이 다 그런 소리하니까 다 맞는 줄 알았습니다, 라고 궁색한 답변을 내놓지요.

그럴 때 제가, “성경에 성령이 왔다는데 성령은 여러분에게 뭐라고 이야기하던가요?” “성령, 들은 바 없습니다. 성령이 온다는 것은 아는 바 없습니다. 내가 알아서 잘하면 되지 굳이 성령이 올 필요 없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알아서 할 것 같으면 내 결정이 내 미래를 확정해요. 그런데 성령이 왔다는 말은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거든요.

나만 살아 있는 줄 알았더니만 예수님이 살아 계셔서 푹 하고 예수님 자신의 칩 있잖아요. 주님 자신의 다 이루심 믿음, 소망, 사랑이 몽땅 다 이루심을 완성된 것을 우리 안에 부속품처럼 칩을 집어넣는 거예요. 집어넣으면 그때부터는 째깍째깍 우리가 움직이는 시계 같아. 주님에 의해서 작동되는 시계, 시간 정확합니다.

뭔가 나는 내가 살기 위해서만 결정하고 싶고, 내 결정을 자율성이라 하는데, 내가 자율적으로 하나님 잘 섬기고 섬길 때 섬기고 선택하고 싶은데 뭔가 내 속에 내가 다룰 수 없는 내가 관리대상이 안 되는 나보다 더 세게 내 안에서 내 내장에서 째깍째깍 시계 돌아가는 소리, 저는 이걸 예수님이 심장박동소리, 예수님의 심장소리가 우리 안에서 째깍째깍하면서 작동하는 거예요.

너는 죽었고 네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그 말씀 아닙니까. 나는 이미 죽었고 인간으로 죽었고 주님의 시계로, 시계는 부속품이 중요하거든요. 부속품은 내 것이 아니고 주님의 성령이 주신 주님의 공로가 나의 부속품으로 들어와서 이제는 껍데기만 나지 알맹이는 몽땅 다 주님, 예수님이 되는 거예요. 다 이루었다는 것.

적어볼게요. 째깍째깍, 이걸 다섯 자로 바꾸겠습니다. 다 이루었다. 째깍째깍할 때마다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 이것이 계속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발 너는 좀 죽어줘. 네가 자꾸 살았다고 우기니까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행함의 어떤 성과나 결과를 눈으로 목격하고 싶은 거예요. 내가 기도했으면 응답받고 싶은 겁니다. 내가 헌금했으면 복 받고 싶어요. 내가 살아 있으니까. 나는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데 괜찮게 잘나게 살아 있다는 것을 잘난 결과를 통해서 비교하고 싶은 겁니다.

그렇게 했던 사람들 중에 누구냐 하면 오늘 본문 역대상 5장 25, 26절에 나오는 르우벤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 5장 18절에 보면, “르우벤 자손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가 이들이 25절에 보면, “저희가 그 열조의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이 저희 앞에서 멸하신 그 땅 백성의 신들을 간음하듯 섬긴지라” 이렇게 돼 있지요. 이 말은 뭐냐 하면 내 단도리는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가 약속의 땅에선 그게 용납이 안 되는 거예요.

네가 네 열심히 살겠다는 건 알겠는데 나는, 하나님 나는, 내 말은, 내 취지는? 네가 너에게 충성을 다하고 너에게 신명을 바쳐버리면 하나님의 말씀은 거기에 대해서 네가 신경 썼냐? 안 썼잖아, 봐. 너는 네 살 궁리만 했지 하나님이 이런 분이란 걸 드러내는데 네가 신경 썼어, 안 썼어? 안 썼지요. 범죄 했으니까, 우상을 섬겼으니까. 그 땅의 백성들의 신들을 간음하여 섬겼으니까. 여호와를 섬긴 게 아니고 그 땅의 백성들의 신들을 간음하여 섬긴 거예요. 르우벤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가. 초장에 떨어져나갑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강의 잘 이해했는지 이 하나로 잘 파악이 됩니다. 이 사람이 갓 자손, 르우벤 자손, 므낫세 이분의 일 지파라 합시다. 이 사람들은 지중해 있고 갈릴리 호수 있고, 그리고 밑에 요단 강 있고, 사해 있는데 이쪽이 서쪽이거든요. 현재 이스라엘. 이쪽 동쪽에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 이렇게 돼 있어요. 지금의 요르단입니다. 그 위에 시리아 있고, 위에 레바논 있고, 밑에는 이스라엘 있고, 팔레스타인 자치지구가 있어요.

이쪽 나라, 요단 이쪽 동쪽에 있는 나라가 제일 먼저 날아갑니다. 이쪽은 약속의 땅에 하나님이 제비 뽑아 주지 않은 땅이었어요. 자기들이 그 땅 보기에 좋아서, 자기들 보기에 좋은 거예요. 자기들 살기에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자기들이 결정한 겁니다. 아브라함과 조카가 처음에 약속의 땅에 있을 때 창세기 18장 이전에 보게 되면 아브라함과 둘 다 복을 받아서 양들이 많았거든요.

그럴 때 아브라함이 조카에게 조카 이름이 롯인데 롯에게 네가 좋은 땅 어느 땅 할래? 네가 좌하면 내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 좌하겠다고 했어요. 그것은 롯이 선택한 땅은 인간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비옥한 땅이었어요. 그런데 그 땅은 본인도 좋아한 땅이었지만 다른 신을 섬기는 민족들도 같이 좋아한 땅이에요.

여러분들이 울산에 사는데 만약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무조건 오백 평을 준다 할 때 울산바닥에서 어느 땅을 오백 평 달라하겠습니까? 언양 골짜기 경주 가는 산 쪽을 달라하겠습니까, 아니면 울산 롯데백화점 있는 거기 고속터미널 그 땅 오백 평 하겠습니까? 가격 차이가 엄청나지요. 요지의 땅을 달라하겠지요. 내가 좋으면 남도 좋아요.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그것을 롯은 복이라고 여겼던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남들도 하나님의 언약의 대상도 되지 않는 자들이 같이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롯은 잊어버린 겁니다. 그 땅을 선택했더니만 롯이 그 땅에 노리는 사람이 왜 그리 많은지. 롯이 있던 땅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였어요. 너무 살기 좋았어요. 마치 에덴동산 같았다고 했거든요. 그 당시에. 여기 사해고 동쪽 이쪽이거든요. 너나나나 다 달려드네. 그 좋은 땅을. 전쟁이 벌어졌어요. 이거는 그 땅에 살아도 산 게 아니에요.

결국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그 전쟁에서 외세를 받아서 포로 잡혀 갑니다. 그때 삼촌 아브라함이 와서 롯을 적들의 손에서 건진다고 애먹었어요. 그게 바로 구원입니다.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그것으로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것에서 빼내주는 걸 구원이라 해요. 그 구원과 같은 개념이 기도 개념인데 기도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박탈시키는 주님의 행위를 기도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박탈 내는 다 못하게 만드는 것, 그게 기도에요.

그래서 기도는 내 이름으로 하지 않습니다. 기도 누구 이름으로 하게요? 누구 이름으로 하시죠, 기도를? 예수 이름으로 하지 말고 내 이름으로 하지 않는다고 하세요. 그게 더 의미가 깊어요. 기도는 기도하는 당사자의 명예와 자존심과 노동, 애씀 이것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노동과 이걸 주여 박살내주시옵소서.

기도한다는 것은 답답하다는 뜻이거든요. 내 답답함을, 답답하게 느끼는 그것을 이게 답답한 게 아니고 이게 사랑이고 은혜고 긍휼하심이라는 걸 깨닫게 하옵소서. 그게 바로 기도에요.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내 것이 아닌 것을 알게 하옵소서. 그래서 기도라 하는 것은 주님이 은혜 주신 것에 대해서 그때그때 반응을 나타내는 게 기도지요.

그래서 기도는 쉴 수가 없어요. 맨날 주니까. 맨날 주니까 고맙습니다, 하고 반응을 나타나니까 이건 밤이나 새벽이나 새벽을 일부러 깨울 필요 없어요. 밤이나 낮이나 새벽이나 항상 주셨으니까 기도로서 반응을 나타내지요. 여러분들도 아침에 일어나면 다 오늘 하루를 이렇게 눈 뜨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를 다들 하지요↗ 말꼬리 올라갔어요.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말은 전체가 은혜덩어리란 뜻이에요. 내 자신이. 그러면 기도내용은 뭡니까, 물으면 기도내용은 아까 했어요. 어제까지의 해석 작살내고 오늘 해석 다시 하는 것, 오늘의 나에 대해서 해석을 다시 하는 그게 기도의 내용입니다. 어제의 기도는 어제까지에 대한 감사, 오늘 기도는 오늘까지의 감사하는 거예요. 그럼 내일은? 오늘로 죽어버렸는데 무슨 내일이 있어요. 내일은 내일 가서 하세요.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요.

주님께서는 네가 십 년 더 살라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올라오라는 거예요, 주의 뜻은. 그러면 저를 오늘로 인생 끝내게 해달라고 한다면, “가만있어봐 너 성질 왜 그리 급해. 네 할 일이 있어.” 계속 또 사는 거예요. 주님이 필요해서 사는 거예요. 내가 필요해서 사는 게 아니고. 딸 시집가는 것 보고, 그런 소리하지 마세요. 누구 맘대로? 시집을 가야 가는 것이지 요새 남자 만나는 게 힘든데 무슨 시집을 가.

시집가는 건 부모의 소원이고 본인은 시집 안 가고 혼자 살겠다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그것도 주의 마음인데요. 너 시집 안 가면 눈 안 감는다. 그건 고집이지요. 그럼 막 기도한다고. 우리 딸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가게 하옵소서. 이 세상에 좋은 남자가 어디 있어요? 지 딸도 좋지 않은데 여자 자체가 안 좋은데 무슨 욕심에 좋은 남자를 구합니까?

“주여, 내 딸이 잘못을 잘 지적할 수 있는 그런 남자를 만나게 하옵소서.” 이래 돼야지요. 그런 남자 있습니까? 있지요. 누구야? 예수님. 예수님은 그것에 도사에요. 우리가 얼마나 엉망진창인지를 예수님만한 신랑은 없습니다. 그런 것을 딸내미한테 하면 딸내미가 예수님과 결혼하겠다고 나서면 수녀도 아니고 갑자기 위기가 확 다가오지요. 입 싹 다물어야지요. 그래도 보내야지 우야겠어요, 입 다물고. 그저 예수님 같은 남자만 만나면....

예수님 같은 남자 만나는 방법은, 자기 딸이 죄인인 것을 알게 되면요 결혼에 아무 문제가 없어요. 문제는 지가 의인이라고 해석한 부부에 문제가 있지 나는 그저 밥이나 먹여줘도 나 같은 인간에게 웬 은혜입니까, 이런 딸내미라면 어떤 남자라도 잘 살아요. 지금 딸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자신들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 역대상에서 주제가 들어있는데 5장 18절 보겠습니다. “르우벤 자손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의 나가 싸울만한 용사 곧 능히 방패와 칼을 들며 활을 당기어 싸움에 익숙한 자가 사만 사천 칠백 륙십인이라” 이렇게 돼 있지요. 자, 이것은 중층결정이니까 아까 이야기한 B.C.400~450년 그때 오늘날 해서 뒤돌아볼 때 테이프를 뒤돌아보게 되면 그때 르우벤 자손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는, 이스라엘은 전쟁하는 기계였다.

지금 오늘날 신약은 무슨 전쟁이냐? 영적 전쟁이에요. 영적 전쟁을 이 지상에 있는 눈에 보이는 인간들이 한 그 전쟁이 옛날 구약 때 한 전쟁이에요. 지금은 구약처럼 그런 전쟁은 의미 없습니다. 지금은 영적 전쟁이니까요. 전에는 뭐냐 하면 언약적 전쟁, 지상에 실제 인간들과 전투를 벌이는 그 전쟁. 어쨌든 간에 전쟁하는 기계입니다. 인간이라 하면 안 됩니다. 전쟁하는 기계에요.

왜 기계냐 하면 이스라엘에서 인간이란 것, 이름을 가진 분이 여기 이스라엘에 유일하게 들어오시는데 그분이 누구 이름이냐? 바로 여호와의 이름이에요.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들고 이름을 아담이라 지었잖아요. 그러니까 이름이 있다는 것은 특정 개별자, 인간이란 인격이 있다는 뜻이에요. 이름이 있다는 것은.

그런데 이스라엘에서는 여호와의 이름, 여호와께서 인격적으로 개입했다, 섞여 들어왔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까 몇 명이라 했습니까? 사만 사천 칠백 육십 명이죠. 사만 사천 칠백 육십 명이 있고 그들 가운데 또 누가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인간 속에 섞여서 같은 인간적인 속성을 가지고 들어왔다 이겁니다. 여러분 이것 신기하게 보면 안 됩니다. 신약 때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잖아요. 사람이 되셔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식사하시고 삼년 동안 같이 계셨지요. 하나님이 인간 속에 섞여 들어온 거예요. 구약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면 여러분 보기에 아까 사만 사천 칠백 육십 명 이들이 전쟁할 때 이들이 모여서 서로 의논했습니까, 합의했습니까? 우리 전쟁할까, 말까? 결정을 그들이 내렸습니까? 아니죠. 사만 사천 칠백 육십 명 가운데 전쟁하자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그럼 전쟁을 누가 일으켰는가? 이스라엘은 전쟁하는 기계인데 전쟁은 누가 일으킨 거예요? 바로 그들 속에 있는 여호와의 이름이 일으킨 거예요.

그럼 여호와의 이름 되시는 분은 실제적으로 어떤 모양을 하고 그들에 섞여 있느냐? 그 한 분이란 분이. 이름은 각각 한 사람 당 해당 이름을 주기 때문에 여호와의 이름은 여호와 한 분의 자격으로 있다 이 말이거든요. 그럼 여호와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냐 하면 바로 이 모습이에요. 제사장의 모습입니다. 제사장 중에서도 그냥 제사장이 아니고 대제사장의 모습이에요.

여러분 물어보겠습니다. 제사장이 전쟁할 때 전쟁의 현장에 참여합니까, 안 합니까? 제사장이 칼 들고 활 들고 합니까, 안 합니까? 안 해요. 제사장은 뭐만 붙들고 있어요? 뭐만 지키고 있어요? 언약궤만 붙들고 있는 거예요. 근데 그게 전쟁이 돼요. 광야 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통과하는데 뒤에 아말렉 민족이 비겁하게 뒤에서 덮쳤어요. 뒤에 낙오자 있는데 덮쳤거든요.

그때 칼 들고 설친 것이 모세입니까, 여호수아입니까? 여호수아가 칼 들고 설쳤지요. 산 밑에서. 그럼 모세는 뭐했습니까? 모세는 그냥 지팡이 들고 있었지요. 그럼 전쟁의 승패는 여호수아에서 승패 납니까, 아니면 산 위에 모세가 들고 있는 지팡이에서 승패가 난 거예요? 지팡이에서 승패가 난 거예요. 이게 바로 이스라엘의 전쟁 방식이에요.

기존의 세상 모든 전쟁은 한 인간 당 그 인간이 갖고 있는 인간의 이름, 인간은 살아 있다고 자부하니까. 살아 있다고 여기는 인간들이 들고 있는 칼이나, 활이나, 타고 있는 말, 그들이 타고 있는 전차, 인간 힘이 인간의 더 센 힘으로 무찌를 때 승리를 낚아챈다는 것이 이방민족, 모든 인간 사이의 특징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들고 있는 칼은 칼로 승리에 보탬이 된다면 나라는 존재는 전쟁에서 의미 있게 전쟁의 성과에 끼어들 수가 있어요. 왜? 내가 설쳤으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이스라엘의 전쟁은 기드온의 삼백 명 군사들이 있는데 그들 가운데 칼 가진 사람 손들어보세요. 아무도 없지요. 창 가진 사람? 아무도 없지요. 삼백 명 중에서 사람 죽인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칼은 미디안 자기들이 자기들 칼로 같은 동지와 전우를 죽인 거예요.

우크라이나 삼백 명 군인들이 나머진 다 피난 가고 남아서 그 삼백 명이 나팔과 항아리와 항아리 속에 횃불 감추고 있었고, 러시아는 십팔 만의 대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는데 나중에 전쟁이 끝났는데 러시아 군인 다 죽었다. 죽은 것 보니까 자기가 자기편끼리 총 쏘고 대포 쏘고 탱크로 밀어서 다 죽었다. 지금 이런 판이에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그런 전쟁 눈으로 봤으면 믿음이 팍 생기겠지요. 죄송합니다만 그런 전쟁은 구약으로 끝났어요. 신약은 영적 전쟁입니다. 혈과 육은 우리는 육과 육의 싸움이 아니에요. 영적 전쟁입니다. 사람과 전쟁하는 게 아니에요.

너희 집 돈 많나? 우리 집 돈 있다. 너희 아파트 몇 평이냐? 나 몇 평이다. 너희 남편 뭐하노? 장관이냐? 동서기다. 이런 전쟁하지 않아요. 너희 교회 교인 수 몇 명이야, 헌금 얼마 나와, 너희 목사 어느 대학 나왔어? 이런 전쟁하지 않습니다. 너 일 년에 몇 명 전도했어? 이런 전쟁하지 않습니다. 새벽기도 몇 번 나갔어, 성경 쓰기 몇 번 베껴 썼어? 이런 전쟁하지 않아요. 선교회비 얼마 냈어? 이런 전쟁하지 않습니다. 예배 몇 번 참석했어? 이런 전쟁하지 않아요. 물걸레 들고 청소 몇 번 했어? 이런 전쟁하지 않습니다.

무슨 전쟁? 째깍째깍 다 이루었다, 그 전쟁이에요. ‘다 이루었다’의 전쟁. 내가 하지도 않았는데 주께서 이미 죽었다가 사신 분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매일같이 너는 나 아니었으면 진즉 죽었어, 라고 늘 되풀이해서 알려주고 통보해주는 그 통보의 전쟁, 너는 네 이름으로 산 적이 없어. 발걸음 하나, 머리카락 하나 임의로 만들어진 적이 없어. 다 내가 필요해서 내가 영적 전쟁의 군인이 되기 위해서 일방적으로 찾아간 거야, 라는 그 통보와 그 알려주심 그 전쟁이에요.

그러니까 성령이 없는 사람은 뭡니까? 맨날 교회 가서 기도해야 돼. 맨날 봉사해야 되고 맨날 목사 섬겨야 되고 맨날 십일조하고 헌금해야 돼. 왜? 그것 안 하면 내 밥 먹고 사는데 하나님께서 벌 내리고 지장이 많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일 년에 두 차례씩 기도원에 가서 수련해야 되고 맨날 내 단도리 내가 해야 돼요. 왜? 내가 아직도 나한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직도 살아 있는 나를 내가 챙겨야 되기 때문에. 내가 챙기지 않으면 나는 못 살기 때문에.

내가 여기서 만약에 신앙생활 소홀히 하게 되면 이십오 년 동안 신앙생활 했는데 지옥 가는 수가 있기 때문에 내가 신앙생활 실패로 끝나는 그 아찔한 순간을 내가 못 견뎌요. 그래서 내가 부지런히 나를 재촉해야 되고 채찍질해야 되고 나를 패든지 해서 나로 하여금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도록 내가 나를 때려야 돼요. 훈육해야 되고. 그 짓하고 있다고, 그 짓. 왜? 자기 안에 자기밖에 없으니까. 내가 나를 살려야지 아무도 나를 안 살리기 때문에.

그게 바로 이스라엘은 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 자체가 얼마나 자기 행함 중심인 것을 들춰낸다. 그렇게 전쟁해서 여기 5장 20절에 보면, 도우심을 입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부르짖었는데 하면 뭐합니까? 5장 26절에서 오늘날 그때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지요. 그때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었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26절 마지막에, “오늘날까지 거기 있으니라” 오늘날에 그들은 뭐했습니까? 여호와께 범죄 해서 그들은 사로잡혀갔는데요. 앗수르에 사로잡혀갔어요. 이스라엘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졌을 때 북쪽은 앗수르에 722년에 멸망당하고, 남쪽은 586년에 망했거든요. 빼기하면 어떻게 됩니까? 136년 후에 남쪽의 유다나라는 바벨론에게 망해요. 그래서 포로 잡혀가는 것이 북쪽이 아니고 남쪽 유다나라가 잡혀가요. 그래서 그게 오늘날이에요.

그래서 오늘날은 누구 중심이냐 하면 아까 처음에 했지요. 이스라엘 망하면서 이스라엘 만든다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역대상이 무슨 중심이냐? 유다 지파 중심이에요. 열두 지파 가운데 유다 지파 중심입니다. 그러면 제사장들은? 제사장들은 다 날아갔어요. 제사장들도 전부 다 율법 어길 때 히마리 없이 다 날아갔어요.

제사장도 없고 율법을 지키던 그 시절이 끝나고 특정한 왕에게 모든 책임을 다 일임해서 왕이 이스라엘을 다시 살려내라는 그 직무를 유다 지파한테 받았고 유다 지파 안에서도 다윗 자손에게 이 이스라엘을 살려내는 임무를 맡긴 겁니다. 그게 바로 오늘날에 와서 해석을 그렇게 하는 거예요. 전에 있던 결정된 과거를 지금 오늘날, 그러니까 유다 지파 다윗 계통 중심으로 일한다는 다윗 계통에서 결정을 다시 내린 거예요.

그래서 이걸 뭐냐? 모세언약에서 다윗언약으로 전환되었다, 이렇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언약으로 일하다가 그 다음 아브라함언약으로 일하다가 그 다음 이삭언약으로 일하다가 그 다음 야곱언약으로 일하다가 그 다음에는 무슨 언약? 모세언약으로 일하다가 모세언약 말고 그 다음에 다윗언약으로 일하는 거예요.

이 언약이 바뀔 때마다 하나님께선 다시 과거에 대해서 과거를 새로운 재료로 사용해서 과거에 인간아 실패했지, 실패했지, 실패했지. 실패했으니까 너희는 실패하지 마. 하나님은 성공하고 말리라. 그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실패가 우리가 오늘날 성도 인생은 매일 실패하라고 하루를 살게 하시는 거예요. 계속 실패하라고. 우리가 실패 안 하게 되면 째깍째깍 떠오르질 않아요. 실패하고 실패했을 때 다 이루었다가 새로운 감사와 은혜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겁니다.

제가 월요일 대전 강의할 때 두 번째 시간에 이런 이야기했거든요. 성령이 와서 성도에게 하는 것은 딱 이거다. 뭘 하느냐 하면 손가락으로 이마를 모독하듯이 쑤시면서 너, 실패자야. 너는 널 몰랐지. 내가 알려주마. 너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실패자야. 이것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성도에게.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다 날아가요. 지가 성공할 수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에 마귀가 짊어준 무거운 짐을 감당도 못하면서 낑낑거리면서 교회생활하게 했던 겁니다.

그런데 너는 아무리 해도 네 자신을 몰라. 왜? 너는 자꾸 성공하려는 의도가 있어. 그게 잘못이야. 너는 애초부터 성공이 안 되는 실패자야. 실패자를 내가 네 속에 들어와서 너를 구원에 성공케 하고 하나님 백성 만들었어. 이 한 마디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한꺼번에 다 날리게 만들어요. 다 날려버린 거예요. 실패자가 뭐가 무섭고 어차피 실패했는데 못할 게 뭐가 있습니까.

제사? 그것 왜 드리는데? 할 필요 없어요. 실패인데 뭐요. 나에 대해서 투자할 이유 없어요. 나에 대해서 희망 가질 이유가 없어요. 그냥 주님이 주신 것 주님의 거저주신 껍데기지만 껍데기로 만족하는 것, 이것이 바로 간음한 여인에게 찾아와 하신 말씀, 네가 오늘부터 자유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니. 그 자유는 아무도 누구한테 빼앗기지 마세요.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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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8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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