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설교 / 악한 예루살렘 / 220306
악한 예루살렘 220306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예루살렘에 오신 예수님, 예루살렘에 오신 예수님 여기에 대해서 누가복음 13장의 말씀을 제가 읽어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13장 33절에 보면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함이 몇 번이냐’
이 말은 그 선지자들 구약에 있는 선지자들이 무슨 중심으로 외치냐 하면 이 에루살렘이라는 곳이 사람만 사는 동네가 아니에요. 그 예루살렘의 한복판에 가면 누가 거주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거주하는 집을 하나님이 지시를 해서 지으라고 했어요. 처음에 집 지으라는 그 이야기는 하나님이 사람보고 집 지으라는 이야기를 안 했고요 다윗이 자기의 충성심에 의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집을 드리고 싶습니다, 라고 먼저 제안을 다윗이 먼저 제안을 했어요.
우리들도 각자 사는 집이 있잖아요. 여러분 집이 있지요. 노숙자이십니까? 아니죠. 집이 있다
이 말이죠. 항상 아무리 하루가 일과가 바쁘더라도 저녁이 되면 집에 와요. 잠을 집에서 잔다 이 말이죠. 그걸 보금자리라고 하거든요. 집에서 잠을 자듯이 집에 있게 되게 되면 어떤 연락사항 할 때 밤에 연락사항을 할 때에 집에 전화하면 대부분 자기 집에 본인들이 있어요. 바깥에는 낮에는 돌아다녀가지고 집 잘 안 봤지만 밤 되면 보통 기어들어온다고 그냥 걸어 들어와도 무조건 기어들어온다고 하거든요. 그냥 기어들어와가지고 자기 집에 있다고요.
하나님을 만나려면 자동적으로 만나려면 하나님은 어디 한 곳이 있으면 편리하겠다 싶어서 다윗이 집을 지어 드리겠습니다, 라고 이야기한 겁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여기 우리 교회에 만약 하나님을 우리 교회에 딱 가둬 놓으면 우리가 아쉬울 때 편리할 때마다 여기 오게 되면 자동적으로 백 퍼센트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니까 그게 편리한 겁니다. 그 생각은 사실은 인간들이 이방신 잘못된 신을 섬길 때 있는 사고방식이에요. 그때는 그걸 그들은 성전이라 하지 않아요. 그걸 신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신전. 신전에는 신이 있고 아쉬울 때 어려울 때 신전에 가서 비는 거예요.
옛날 이스라엘도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말씀을 버리고 신전 중심으로 나갔던 시절들이 오랫동안 시절이 아니고 계속 줄곧 있었어요. 어디다가 하나님을 만나러 가면 신전을 세웠냐 하면 높은 봉우리에 있는데 높은 봉우리 있죠. 여기 팔공산 여기 팔공산 꼭대기 동봉 옆에 보면 뭔가 바위가 있어요. 그건 뭐 바위가 뭐냐 하면 그 바위가 무슨 바위인지 아세요? 이거 모르면 대구에 침투한 간첩입니다. 갓바위. 갓바위가 부산을 바라본다 해가지고 부산 사람들이 많이 올라온다는 그러한 가짜 뉴스도 그런 소식도 있어요. 그 갓바위처럼 뭔가 하늘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하늘 낑낑 수고하고 애써서 낑낑거리면서 올라가서 정성을 다하여 제물을 들고 올라가게 되면 하늘에 계신 신이 떡 내려다보면서 “니가 날 찾아오려고 그렇게 고생을 했으니까 어찌 내가 너의 성의를 무시할 수가 있겠는가? 무엇을 원하는고? 무엇이 필요한고?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는 해줄게.” 세 가지 중에 한 가지 이제 갓바위가 이제 그게 유행이 돼서 세 개 원하면 하나는 된다고요. 그러니까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한 개만 있더라도 그 원하는 것을 눈에 띄게 기도하면 세 가지니까 첫째는 우리나라하고 독일하고 축구 해가지고 백대빵으로 이기게 하옵소서. 이건 뭐 지가 하면서도 이건 말도 안 되는 거 알겠죠. 두 번째는 우리나라가 미국을 다 점령케 하옵소서. 이것도 말이 안 되죠. 지금 세계 중에 하나니까. 세 번째는 돈 벌게 해주세요. 셋 중에서 하하는 되니까 되지도 않는 그 두 개 그거는 옵션 해 가지고 하나만 되면 되니까요.
이거는 뭐냐 하면 신은 깨우기 나름이라는 거예요. 간절히 기도하기 나름이에요. 지금 내가 지금 이런 이야기 하면서 가야 될 그 대학에 체플 시간 하고 내가 궁금해 죽겠다. 대학에는 체플 시간이 있어요. 예배 드린다고요. 뭐라고 이야기하겠어요? 니 꿈은 이루어지리라. 기도하면 이루시라. 그게 갓바위예요. 갓바위.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율법이 있으니까 그 율법이 있었는데 그 율법은 완전히 무시해버리고 여호와여 우리도 다른 신처럼 우리가 기도하면 소원 들어주는 그런 신으로 좀 이렇게 좀 우리가 바꾸어 버리자. 그래서 예루살렘부터 해가지고 모든 봉우리에 산당이라는 이름으로 산당의 이름으로 그런 산당들이 있어가지고 일반 대중들이 아쉬울 때나 어려울 때나 다 찾아가 비는 겁니다. 요즘 세계에서 요즘 세상에서 갑자기 급작스럽게 돈이 필요하다 아쉽다 그럼 어딜 갑니까? 산와머니 제3금융권 사채업자한테 찾아가잖아요. 그때는 그것보다도 뭐냐 하면 제일 가까운 데가 뭐냐 하면 갓바위처럼 신에게 비는 곳이에요. 신에게 비는 곳. 그러면 하나님의 이 십계명과 말씀은 그거는 소용없어요. 그 예루살렘, 그 예루살렘은 선지자들이 말하기를 “너희들 예루살렘은 가짜다. 너희들이 지었던 이 솔로몬 성전도 나중에 파괴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너희를 버렸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을 떠났다.” 그렇게 이야기 했을 때 예루살렘 사람들이 “아니야. 우리는 여호와 여호와 여호와를 부르고 있잖아. 그런데 우리가 떠날 리가 있느냐?” 그러니까 선지자가 하는 말이 “그래. 니가 아직도 니가 진짜 하나님을 안다고 우기는구나. 그렇다면 마지막 아들 하나님의 아들을 내가 예루살렘에 한번 보내볼게.”
보내 봤을 때 그 이스라엘의 정신적인 신앙이 총 집결된 중심지가 예루살렘이에요. 그들이 알고 있는 여호와와 진짜 여호와 하나님이 보낸 그 하나님이 하늘에서 오신 그분과 만났을 때 이게 좋게 지내는지 아니면 어떻게 일이 일어나는지를 한번 보자는 건데 봤는데 아까 누가복음 13장 33절 어떻게 됐습니까?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법이 없다. 아주 강조점이죠. 부정의 부정, 이 말은 뭐냐? 예루살렘 인간들이 끄집어 낸 모든 신에 대한 종교는 바로 메시아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여 버리는 그 결과로서 응집이 된다. 그 이야기예요.
내가 잘 되려고 하는 그 모든 욕구는 결국 하나님이 거저주신 것을 모독하는 식으로 결론이 지어진다는 겁니다. 더 얻을 생각하지 말고 지금 주신 것이 하나님이 내 계획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모든 일에 감사가 되고 모든 일에 고마움이 되고 기쁨이 되는 거예요. 주님께 영광되면 되잖아요. 굳이 내 영광을 고집할 이유 없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창조자의 영광만 높여버리면 그걸로 우리의 소임은 다 한 거예요. 우리의 존재 이유는 다 한 겁니다. 다른 거 필요 없어요. 그러면 되는 거죠.
그래서 여기에 누가복음 13장 34절에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하나님이 파송된 자를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이게 하나님의 뜻이에요. 이제 암탉 지금 세 명이 있거든요. 암탉 세 명이 있는데, 그게 암탉 세 명이 아니죠. 계란 달걀 내가 말 잘못했다. 달걀 세 개 있는데 암탉이 왔을 때 계란 막 귀싸대기 때리고 이럽니까? 막 발끝에 터트려버립니까? 아니죠. 행여나 다칠까 싶어서 포근하게 안아주잖아요. 안아주려면 그 암탉의 양 날개에 도끼 쇠뭉치 장비 챙겨야하나요? 오함마 쇠파이프 이거 가지고 계란 생깁니까? 아니면 오히려 계란보다 더 낮추고 낮추고 낮추고 오겠습니까? 더 약하게 행여 다칠까 싶어서 더 낮추고 오겠습니까? 더 낮추어서 암탉이 달걀을 품듯이, 여기 그림 한번 보세요.
주님께서 온 천지를 불로서 심판할 수 있는 그런 무서운 심판자지만 이 모습에서 어디서 그런 무서운 심판자의 모습을 보입니까? 나귀 타고 오는데요. 동키호테인가요? 나귀 타고 겸손하게 왕이면서도 온 우주를 통치하고 마귀도 다스리는 왕이면서도 아주 소박한 모습으로 낮은 모습으로 오시잖아요. 이게 끝이 아니에요. 이 정도 낮은 건 낮은 것도 아니에요. 나중에는 뭐냐 하면 제자들도 다 도망가도 홀로 그 제자들의 죄를 용서해주기 위해서 본인은 그 죽음을 저주를 피하지 않고 홀로 그 저주가 떨어지는 십자가에 올라가서 그 모든 자기 백성의 죄를 계란의 죄를 다 손수 다 받습니다.
근데 그 십자가 달릴 때 옆에 있던 어떤 강도가요 강도입니다. 좋은 사람은 아니에요. 성질 더러운 사람이에요. 그 강도가 예수님 따라 같이 천국을 갔어요. 천국이란 강도라는 직업을 가지면 천국에서 탈락한다? 맞다, 아니다? 아니죠. 강도라 할지라도 세리라 할지라도 창기라 할지라도 예수님이 하신 공로를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천국 갈 수 있도록 왕이면서도 이렇게 낮고 낮게 오신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사회 생활하면서 남한테 이길 생각하지 말고 이길 생각하지 말고요. 그래 너희들 보기에 내가 아무것도 아닌 걸로 보이지만 주님 보시기에 영광이 된다면 나는 언제든지 지거나 낮출 수 있고 질 수 있다는 그런 마음 자세를 여러분들이 갖춰야 돼요. “니 또 일등이가?” 하면 “하다 보면 1등 된 거지. 나 꼴찌해도 괜찮아.” “또 백 점이가?” “뭐 아는 것만 나왔어. 아이고 실력이 뭐? 내가 무슨 실력이 있어. 아는 것만 나와서 아는 걸 모른다 할 수 없어 쳐보니 백 점 나왔어.” 이런 식으로, 좀 많이 낮아졌지요. 그렇게 낮은 마음으로 주어진 것이 내 일이 아니고 주님이 주신 일이 내한테 주어졌다는 마음으로 살아가세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 사람과 달리 살게 하옵소서. 잘난 체 하는 것이 그들의 희망이라면 저희들은 주님 영광을 위해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