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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강의20220225a 예레미야 33장 20절(약정파기)-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예레미야

광주강의20220225a 예레미야 33장 20절(약정파기)-이 근호 목사

p.216 밑에서 9번째 줄, “지상에서의 축복과 저주, 곧 생명이냐 죽음이냐의 결정짓는 기호로서 새롭게 등장된 것이 ‘피’이다.” 그렇게 되어 있죠. 하나님께서는 지상에 오실 때 그냥 놀러 오신 게 아니에요.

무슨 일을 하시느냐. 예레미야 21장 8-10절에 보면 그것이 나오는데요. 오늘 예레미야가지고 설명을 많이 할 겁니다. 21장 8절을 제가 한번 읽어볼게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또 이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하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다. 생명의 길 그리고 사망의 길. 하나님께서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둔다는 말은 신약 때 성도도 똑같은 기능과 역할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제가 아는 젊을 때 노래 중에 이런 노래가 있어요. . 정미조가 불렀던 , 아시죠? 개여울이라 하는 것은 작은 시내에요, 작은 시내. 작은 시내를 유심히 보게 되면 물이 그렇게 과격하게 흐르지 않습니다. 졸졸 물이 흘러오다가 바위 하나 돌출되어 있으면 물이 둘로 갈라져요. 바위 하나 때문에 물이 돌아가죠.

그처럼 성도가 여기 존재한다는 것은...... 성도는 성령이 함께 계시죠. 그러면 성령은 어디서 나왔는지 알아놔야 돼요. 성령은 언약이 완성될 때만 인간에게 찾아옵니다. 구약에 온 것은 성령이 아니고 성신이에요. 성령은 모든 언약이 완료되었을 때 오는 거예요.

완료가 된 성령이 왔다는 말은 쉽게 말해서 성령이 우리 몸을 둘둘 감았다고 칩시다. 두루마리 화장지가 둘둘 말렸을 때 두루마리 화장지를 다 쓰게 되면 동그란 심 되는 종이통 하나 달랑 나오죠, 동그란 거. 하지만 두루마리 화장지는 잘 풀리는 집이라 해가지고 둘둘 감겨서 두껍잖아요. 둘둘 감아놓은 그 자체가 완성이 되는 겁니다. 완성했기 때문에 인간에게 찾아올 수 있는 거예요.

이 말은 언약이 완성되지 아니하면 인간에게 안 찾아온다는 정도가 아니고요. 인간을 죽여 버립니다, 언약이 완성되지 아니하면. 왜 그러느냐 하면 예수님만 부활로 넘어갈 수 있고 나머지는 부활로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에요. 첫째 부활은 예수님 빼놓고 아무도 없습니다. 나사로가 죽어서 나흘 만에 살아나도 그것이 부활이 아니에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예수님한테만 해당되고 우리한테는 해당이 안 되는 겁니다. 그것이 성령이 옴으로서 더 확실해지는 거예요, 성령이 옴으로써.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는 이미 죽은 자가 되고요. 언약의 완성 내용이, 우리는 이미 죽은 자인데 동그라미 종이 심에다가 성령의 두루마리로 둘둘 감아버립니다. 그러면 이 감긴 내용은 누구 공로냐 하면 여러분 아시다시피 예수님의 공과, 예수님의 공적, 업적입니다.

그래서 신약의 성도는 정말 땡잡은 거예요. 행운아입니다. 로또 4등 당첨 돼서 700만원 타는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1등해서 이십 몇 억 타는 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돈 20억 번다고 해서 내가 달라지지 않잖아요.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주질 않잖아요.

그런데 성령이 왔다는 말은 우리를 죽은 자로 간주해서 생명으로 감아버리면 이 안에서, 그것을 ‘성령 안’이라 하는데 ‘성령 안’과 같은 말이 사도 바울의 ‘십자가 안’, 다 같은 말이에요,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예수 안’, in 그리스도, 예수 안, 십자가 안, 성령 안, 성령 안에 있으면 이미 우리는 여기서 죽은 자이기 때문에 우리 고유의 목적이나 이런 것은 안 통합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둘둘 감아놨으니까. 주님의 하신 일, 주님이 다 이루신 일이 우리 몸을 둘둘 감는 거예요.

감아놓으면 우리 할 일은 뭐냐. 바로 이거에요. 우리가 개여울에 하나의 돌출된 돌처럼 있으면 내려왔던 모든 것은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로 나뉘어지는 겁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25장에는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이 소자한테 한 것이 곧 나한테 한 것이라는 그 말씀 나오죠. 이 소자한테 한 것이 곧 나한테 한 것이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뭐 예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성령 받은 성도한테 한 것이 곧 나한테 한 것이다.

성령으로 둘둘 감은 이것을 지난 낮 설교 제목으로 뭐라고 했죠? ‘성령덩어리’. 이 성령덩어리라 하는 아이템은 어디서 빌려왔느냐 하면 집에서 먹고 자고 살찌고 하면 사람들이 그 사람 욕하면서 이 기름덩어리야, 하죠. 거기서 따온 거예요. 배 나오고 그냥 먹고 자니까 얼굴은 터질 것 같고 바지는 안 맞고 이럴 때 기름덩어리, 지방덩어리야, 하는 것처럼 주께서는 지방덩어리 아니고 성령덩어리.

‘이 소자한테 한 것이 곧 나한테 한 것이다.’라는 이 말은 이 소자, 하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을 우습게 보고 건드리면 그것은 사망의 길로 가는 거예요, 사망의 길로. 이것은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한다. 저주라는 것이 하나님을 욕한다고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이 택한 자를 네가 어떤 안목으로 어떤 인식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서 사망과 생명으로 나뉘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p.216 밑에서 9번째 줄에 “생명이냐 죽음이냐의 결정짓는 기호로서 새롭게 등장된 것이 ‘피’이다.” 십자가의 사건에 휘말린 그 사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살아있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이 이 성도를 보고 ‘너는 뭐 그리 잘났느냐? 너는 뭐 그리 착하냐? 너는 완벽해? 너는 기도 많이 해? 헌금 많이 해?’ 이런 식으로 하겠죠. 그럼 이 사람이 성도라면 뭐라고 이야기해야 되겠어요? 십자가 사건에 관해서 고백하면 돼요.

십자가 사건에서 본인은 죽은 자가 되죠. 내가 죽어버리면 나의 성과, 나의 공로 이런 것은 살립니까, 못 살립니까? 죽었다는 것은 너의 행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 쪽에서는 일체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예요. 받지도 않을뿐더러 아예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예요.

자, 이제부터 점점 난해한 논리로 접어듭니다. 이 점을 한번 생각해봐요. 내가 만드는 말, 언어죠, 말하는 것, 내가 만드는 말과 하나님이 만든 말과의 차이점은? 하나님이 만드신 말과 어떤 차이점이 있느냐.

사람들은 말을 하잖아요. 말을 하는데 그 말을 누가 만들어내요? 자꾸 내가 만들어내는 거예요. 내가 만들어내면 이 안에 나의 역할, 나의 장점, 내가 살아야 될 이유 이런 것들이 여기 섞여서 막 나오는 거예요. 내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니고 ‘나는 살아야 될 이유가 있어’ 이런 게 말 안의 내용으로 채워진다 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파란 걸로 한번 써볼게요. 질문을 할 테니까 누가 답변해보세요. 말씀 외에 ‘나도’, 말씀이 진리 아니란 말이 아니고 말씀이 진리인데 말씀 외에 나도 진리라고 우길 수 있는 근거는 있습니까, 없습니까? 말씀 외에 나도 진리라고 우길 수 있는,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인간에게 나올 수 있어요, 없어요?

만약에 있다면 우리는 십자가에 굳이 내가 죽을 이유가 없어요. 이 말은 말씀 외에 진리라고 우길 수 있는 근거는 없죠. 그렇죠? 예를 들면 동계 올림픽에서 1500m 숏트 스케이트에서 금메달을 땄다. ‘나 금메달 땄어.’ 그런데 하늘나라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어쩌라고?’ 그러나 세상 나라에서는 박수치고 난리도 아니에요. 그렇죠?

그런데 하늘나라에서는, 하나님 입장에서는 ‘금메달 딴 게 어쩌라고? 그게 뭔데?’ 그럼 금메달 딴 사람이 화가 나가지고 ‘이 금메달 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십니까?’ 하면 하나님이 네가 금메달 딴 것이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을 가름하는 그러한 갈림길이 될 수 있는가를 되묻죠. 내가 금메달 딴 거 알아주면 천당 가고 금메달 딴 거 무시하면 지옥 가고 뭐 그런 겁니까? 아니죠. 아니라면 그것은 진리가 아닌 거예요, 진리가. 그것은 진리가 아닌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무심코 사람한테 이야기할 때에 주님이 만드신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내가 만든 이야기를 계속 내놓는 거예요. 그 바탕을 보니까 말씀 외에 말씀도 진리이지만 나‘도’ 진리라고 해줘, 이러한 요구 같은 게 요구사항이 거기에 같이 섞여 있기 때문에 그래요. 모든 만사가 다 그렇습니다. 심지어 부부싸움도 마찬가지고.

거기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3장. 예레미야 23장 보면 하나님께서 참 너무 심하다 할 정도로 말씀해요. 예레미야 23장 18절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석했느냐.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냐” 22절도 마찬가지에요.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라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을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이게 하나님의 회의래요, 하나님의 회의. 쉽게 말해서 회사에서 중역회의. 신입사원들, 인턴사원들끼리 점심시간에 모여서 “이게 회사 방침이야.” 이야기하고 있는데 거기에 상무가 와서 “누가 중역회의에 참석했어, 누가? 너 중역회의 참석했어? 전무하고 같이 회장하고 있을 때 참석했어? 너 뭐야?” “인턴사원인데...” “그럼 참석했어, 안 했어?” “못했어요.” “못했는데 네가 왜 옳다 아니다를 결정하는데?” 이렇게 되겠죠.

23장 16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어디서 나온다? 자기 어디서 나와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인간은 말을 할 때 자기 마음과 끊어지지 않아요. 터질 거예요. 그냥 터져서 나와요.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막 줄줄이 줄줄이 말이 말을 만들고 계속 터질 듯이 나와요. 왜 당신은 그런 말을 합니까? 하면, 내 마음이다.

내 마음이라 하는 그것이 진리라고 보장할 수 없어요. 그건 진리가 아니에요. 인간은 살아있고 입이 있고 혀가 있고 성대 있고 노래 부르든지 말하든지 뭔가 터져 나와야 되죠. 계속 나오는 겁니다. 그럼 어떤 분이 저한테 ‘그러면 뭐 성도는 말 안하느냐?’라고 한다면 성도는 말을 하죠. 말을 하는데 성도의 말은 개여울의 돌멩이처럼 두 가지가 나와요. 이게 사망의 길이고 이게 생명의 길이다. 두 가지가 나와요, 두 가지가.

아까 보셨잖아요.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을 나눈다고. 그럼 그 사망의 길은 뭐냐? 나의 가치, 나도 진리라고 우길 수 있는 것. 이게 바로 내가 만든 말이고 이쪽은 사망의 길로 가는 거죠. 여호와의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여러분 알다시피 구약에 관한 겁니다, 구약. 신약이 아니에요. 구약에 관한 거예요.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이 있는데 그 기호가 어떻게 예수님 피와 관련되어 있는가’ 지금 그 내력과 논리를 설명해드리는 거예요,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을 할 때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 둘로 나누는데 어떻게 예수님의 피가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을 결정짓는 최종 것이 되느냐’ 지금 그 설명을 해드리는 거예요.

예레미야 31장 22절을 봅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여서 마음 같으면 다 같이 해봅시다, 하고 싶은데 한 사람만 이야기해보세요.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여자가 남자를 안는다는 거예요. 여자가 남자를 안는다.

기존의 인간들을 이스라엘, 유다, 예레미야에서는 아주 인정하지 않습니다. 전혀 인정하지 않아요. 그것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오늘 제목일수도 있는데요. ‘약정 파기’. 하나님에 대해서 언급할 때 가장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약정 파기입니다. ‘하나님이 후회하신다’ 그런 말도 어렵고요. 뭐 모든 걸 다 아신다면서 왜 자기가 스스로 한 일을 후회하느냐? 그럼 미래를 몰랐었나? 하나님이 미래에 대해서 그동안 무식했는가? 이렇게 논리가 나올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약정을 파기해버립니다.

약정 파기한 것이 어디 나오느냐 하면 예레미야 33장 19절-26절까지 나와요. 이것을 보고 아까 했던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그것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예레미야 33장 19-26절에 보면 제가 읽어볼게요. 이것은 길기 때문에 쭉 빨리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약정과 밤에 대한 나의 약정을 파하여” 파한다, 파괴한다, 부순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찐대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파하여 그로 그 위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앞에 하나님이 인간하고 의논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인간에게 이스라엘에게 줬던 그 언약을 내가 알아서 전부다 다 파기시켜버린다는 거예요.

여기 24절에 보면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 택하신 두 족속을 버리셨다 한 것을 네가 생각지 아니하느냐”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를 하나님께서 다 파기해버리는 거예요. 25절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주야의 약정이 서지 아니할 수 있다든지 천지의 규례가 정한대로 되지 아니할 수 있다 할찐대” 26절, “내가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려서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된 자로 돌아오게 하고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지금 이 약속의 땅에 있는 사람들을 깨끗하게 전부다 지워버리고 나가라 하시는 주님의 그 자기 결심의 근거를 제시하는 거예요. 너희들하고 계약 파기 되었다. 파기된 이유에 대해서 예레미야에 쭉 나오는데 여러분들이 예상하듯이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런데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지난 수요일에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모세가 돌판을 들고 오는데 모세하고 하나님 사이에는 계약이 맺어졌어요, 돌판을 줬으니까. 그런데 돌판을 그대로 유지해야 될 텐데 백성들은 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섬기고 있었잖아요. 백성들은 그 계약을 구경도 못했어요. 그런데 모세가 뭐 백성들한테 주고 ‘봐라. 계약 파기됐지? 너희들은 당해.’ 이런 게 아니라 본인이 알아서 계약을 중간에 파기시켜버립니다.

왜 그런가. 출애굽기 34장 1절에 보게 되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모세가 돌판을 깨고 그 돌판을 깬 모세보고 하나님께서 글자는 쓰지 말고 돌판은 똑같이 만들라 하시고 그 만들어진 아무것도 안 써진 돌판 들고 시내산 꼭대기까지 다시 올라오라는 이야기에요.

그러면 하나님의 언약궤 안에 상자가 있는데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돌판은 원래 깨진 돌판이 아니고 깨진 돌판을 대신한 돌판이거든요. 이게 복음의 비밀입니다. ‘대신’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에 대해서 대신하는 거예요. 사람에 대해서 대신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람 안에 집어넣고 그 사람을 데려가는 것이 아니고 사람 속에 하나님이 끼어들어서 이 하나님마저 사람과 함께 죽게 만들어요. 죽게 만들어서 죽은 하나님이 하나님이 하는 일을 대신해서 도로 끄집어내는 일을 하시는 겁니다.

왜냐하면 언약궤 상자가 길이 2.5규빗, 너비 1.5규빗, 높이 1.5규빗 이렇게 있는데 이 안에 돌판이 있다했죠. 돌판은 깨진 돌판을 대신한 거죠. 그리고 언약궤 위에 뭐를 부어요? 피를 바른다고요, 피. 희생제물의 피를 발라버려요. 그러면 이 피가 흐를 수밖에 없는 내력을 함유한 피가 되는 겁니다.

어떤 스토리가 있는데 스토리가 진행하면서 생산된 게 뭐냐 하면 피가 생산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인간 속에 들어와서 지내던 그 이야기, 스토리에서 뭐가 발생된다는 말입니까? 피가 발생되는 거예요, 피가. 그런데 그 피가 되려면 이건 사단난 거잖아요. 이게 죽음이잖아요.

피가 무엇을 겨냥하느냐 하면 상자 위의 피는...... 상자 위에 언약궤 위에 피를 뿌려요. 피를 이 안에 붓는 게 아닙니다. 소독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 씻어주는 세정액이 아니에요. 피는 뚜껑 열고 들어가는 게 아니고 뚜껑 위에 있다고요. 그럼 피는 이 안에 하나님의 언약이 왔는데 깨어져버린 그 이야기, 그 내력과 관련되어있는 피가 되는 겁니다.

‘언약이 깨어졌다’가 현실 세계에서 나타나는 표식, 표시는 피로서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피는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언약이 좌절되었다. 언약과 언약 사이에 좌절, 다른 말로 하면 단절. 끊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약이 끊어진 거예요, 인간세계와. 끊어졌기 때문에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이라 하는 것은 인간에게 사치입니다. 인간의 머리에서 나올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피는 무엇과 싸우겠습니까? 문제가 너무 어렵다. 문제가 뭐냐 하면 ‘하나님의 피는 무엇과 싸우겠습니까? 피의 적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이 질문이에요. 아주 어려운 질문인데, 답변은 제 몫이죠. 질문을 제가 했기 때문에. 피는 무엇과 싸우느냐 하면 인간으로 출발한 사망의 길, 생명의 길의 기준과 싸우는 거예요.

이 출발이 뭡니까? 인간으로 구성돼요. 내가 어떻게 하면 천국 가고 어떻게 하면 지옥 갑니까? 그것과 싸우는 거예요. 왜? 피는 하나님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생명이라는 게 없습니다. 언약이 깨어졌잖아요. 박살나서 새로 만든 거예요.

예수님의 피를 보면 알 수 있어요. 단절이에요. 예수 피 믿으면 내가 구원받는다는 이게 말이 안 되는 소리에요. 인간에게는 구원이라는 게 없어요. 피를 믿든 물을 믿든 뭘 믿든 세례 받든 뭘 해도 구원은 없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개여울의 돌로서 성령으로 두루마리처럼 감긴 성도는 자기 내부에서 이 전쟁이 일어나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해서 나는 사망의 길로 가지 않고 생명의 길로 갈래.’하는 그 나와 싸워야 될 성도로서의 나와 싸우기 위해서 주께서는 성령을 둘둘 감아놓은 거예요.

여러분, 평화 시에는 의미라는 게 없습니다. 평화 시 자체가 한시적이고 임시적이에요. 한시적 기간이고 임시적 기간이에요, 평화라는 것은. 그럼 언제 의미가 나타나느냐. 바로 전쟁 때에요, 전쟁 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때 비로소 우크라이나는 내가 누구인지 아는 거예요. 평화로울 때는 몰라요.

우리나라 선교사 한 60명 가 있는데 평화로울 때 그때는 몰라요, 우크라이나가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 8시간도 안 돼서 군사시설 85군데가 작살날 그 정도로 별 볼일 없는 나라라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코미디언 대통령하는 그때는 몰라요. 코미디언할 때 엔터테인먼트 사장이 지금의 비서실장이거든요. 그 보좌관이 시나리오 쓴 사람이고. 평화로울 때는 나라인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속사정이 언제 드러나는가. 언제? 두 자로. 전쟁.

그래서 주님은 날마다 성도를 통해서 전쟁을 벌이는 겁니다. 성도에게 평화란 없습니다. 성도에게 평화란 없어요. 내가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고 불화를 일으킨다. 심지어 가족끼리라도 부부끼리라도 부모자식 간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때, 비로소 의미는 평화 때가 아니고 전쟁 때 의미가 굳어지는 겁니다. 아, 이런 뜻이구나. 단란하게 평화롭게 산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이니까 전쟁의 지속 또는 전쟁의 반복 속에서 십자가의 의미는 계속 나온다. 아까 전쟁은 무슨 전쟁이라 했습니까? 전쟁이라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전쟁이 있지만 세상에 대한 전쟁이죠. 인간의 내부적인 전쟁인데 내부적인 전쟁의 구성은 이렇게 하면 알기 쉬워요.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받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죽어서 천국 가겠습니까?’ 이것하고 ‘내가 세상을 어떻게 설명해야합니까?’ 자, 이 두 문장의 차이점을 한번 보세요.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받겠습니까?’ 하는 것은 자기 구원받을 것만 챙기고 돌아서면 그만이겠죠. 그럼 자기 안에 평화가 오겠죠. 그런데 ‘내가 세상을 어떻게 설명해야합니까?’ 하는 이 말은 세상은 누구에 의해 돌아간다는 거예요?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서 돌아가죠. 그렇죠? 세상은 하나님이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본질과 하나님의 성격이 이 세상에 그대로 있단 말이죠. 그걸 설명하는 거예요. 이걸 설명해버리면 내 생각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나 챙기기를 할 수 있어요, 없어요? 못하죠.

1번-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받겠습니까?, 이 말은 어떤 복음적 설교를 들어도 뭐만 뽑아내느냐 하면 그래, 그래. 잘 알겠는데요. 어떻게 하면 구원받습니까?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만 뽑아서 캐나다 가든지 가면 그만이라. 내 것 챙기면 그만이죠.

2번-내가 세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되느냐 하는 것은 세상은 계속 물결치고 있잖아요. 변화되고 있잖아요. 변화될 때마다 그때그때 설명해야 될 임무와 역할을 우리로 하여금 하게 하는 겁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전쟁 중이니까.

질문을 해도 이런 관점, 2번 관점에서 질문이 되어야 이것이 말씀의 심층까지 내려갈 수 있어요. 그런데 1번-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받겠습니까? 는 여호와의 증인이죠. 성경말씀 몇 구절 달달 외우고 네비게이토나 이런 거 하면 돼요.

‘세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이것을 풀이해서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개인과 전체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습니까?’ 우리 평소의 관심사, 남한테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하고 이야기할 때 나오는 그 내용하고 지금 2번 이쪽은 정말 상당히 거리가 참 멀다는 것을 내가 느낍니다.

제가 누구 말 들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들리니까 들어보게 되면 1번일까, 2번일까? 1번 쪽은 뭐냐 하면 이제 복음 알았으니까 구원받았으니까 어디 촌에 가서 살까? 뭐 이런 거. 왜냐하면 나의 평화를 도모하니까, 나의 평화. 뭐 복음까지 챙겼으니까 일단 천국 가는 것은 됐고 그다음에 이제 내가 나의 여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전부다 무슨 문제입니까? 내 문제죠, 내 문제.

이거 죽은 거예요, 산 거예요? 성령이 둘둘 감아야 되는데 성령이 둘둘 감은 게 아니고 자신의 과거 기억이 둘둘 감겨 있어요. 과거의 기억이. 내가 바둑 5단이고 이런 거. 이게 둘둘 감겨 있어요. 바둑 5단 되면 구원받습니까? 바둑 잘 두면, 잘 둔다고 하면 그 사람은 영생 얻고 나보고 바둑 못 둔다고 하면 그 사람 지옥 가고 뭐 그런 기능이에요?

지금 신진서하고 커제하고 바둑 두고 있어요. 세계 최고의 고수들끼리 바둑 두고 있다고요. 농심배라고 있어요. 상금이 3억도 넘을 거예요. 엄청나요. 바둑 둘 때 중국사람, 한국사람 많이들 보고 있거든요. 바둑 하는 사람들은 다 관심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나라 라면회사인 농심배 국제대회에 일본하고 중국 5명씩 하는데 여기서 결국 관심사는 뭐냐 하면 상금이 5억, 5억짜리 시합을 하니까 자본이잖아요, 자본. 돈이잖아요, 돈. 인간은 어떤 경우를 해도 돈에 종속되어 있는 거예요, 돈에. 1번은.

돈에 종속되어있으면서도 돈 없는 천국을 간다? 그게 앞뒤가 안 맞죠. 지금 연결이 안 되죠, 연결. 연결이 안 돼요, 연결이. 세상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싸운다. 이게 무슨 싸움이냐 하면 돈 싸움이에요. 돈 싸움이라고요. 우크라이나에 밀과 지하자원 있고 이런 것 차지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 성경에서 말하는 사망의 길, 생명의 길 그 기능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나 돈 있다, 그거. 나 아이고 돈 없다. 생각이 돈, 자본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이걸 가지고 양적(量的)이라고 해요. 인간은 양(quantity)의 구조 속에 놓이게 되는 거예요.

왜 갑자기 자본 이야기 하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린 이유가 이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버린 이유가. 예레미야에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어떤 자들을 죽이느냐 하면 소위 사람을 볼 때 돈 빼먹는 대상으로 봤던 사람은 바벨론이 와서 유다나라 다 죽여 버립니다. 왕부터 해서 죽여 버려요. 시드기야 왕이 그래서 죽어요.

예레미야 31장 봅시다. 아직까지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설명 안 했습니다. 예레미야 31장 보기 전에 예레미야애가 4장 13절, “그 선지자들의 죄와 제사장들의 죄악을 인함이니 저희가 성읍 중에서 의인의 피를 흘렸도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의인의 피가 어딨죠, 의인? 그냥 피가 아니라 의인의 피라고요.

그래서 이번 강의에서 지금 힘들지만 우리가 찾아내야 될 것이 도대체 뭐를 갖고 의인이라 하느냐 그걸 찾아내야 돼요. 예레미야 31장 34절에 보게 되면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렇게 되어 있죠. 다시는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어요. 이것이 예레미야 31장 31절에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했죠.

자, 아까 말하고 연결시켜 봅시다. 지금 유다와 이스라엘에는 계약을 파기시켰어요. 이 말은 계약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백성이 나중에 나오는 겁니다, 계약대로. 그런데 출애굽기 32장처럼 그들이 우상을 섬기니까 계약을 깨버렸잖아요. 제가 말씀드린 것 기억납니까? 모세가 돌판을 다시 만든 것 기억납니까?

너희들은 계약 파기자라고 하는 것은 그 계약 파기한 돌판의 내용을 그들에게 알려줘서 아, 우리가 파기되어 마땅하구나, 이렇게 아는 게 아니고 그들이 평소에 하던 그 본색, 자기 마음에서 나온 행동대로 여호와를 위해서 금가락지 뽑아서 소를 만들어놨는데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그게 바로 계약 파기라는 거예요. 진짜 어렵죠.

죄가 뭐냐 하면 일상의 일이 죄가 된다는 거예요, 일상의 일이! 우리가 하는 일상의 일이 죄가 된다는 그 이야기를 제가 말씀드리는 거예요. 따라서 예레미야 31장에 나오는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라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만 해당되느냐 하면 계약 파기를 경험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에요, 계약 파기를 경험한 사람에게만. 나는 인간도 아니야,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만 해당 돼요, 이게.

그걸 모르고 그냥 예레미야 31장 33절과 34절을 읽어버리면 ‘야, 좋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용서하고 그 죄를 다시는 기억치 아니하니까 이건 뭐 신났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묻는 거예요. ‘이리와 보세요. 죄가 뭐에요?’ 죄가 뭔지 몰라요. 죄가 뭔지도 모르면서 지금 죄 사해줬다고 좋아하는 거예요. 죄가 뭔지도 모르면서.

출애굽기 32장에서 이스라엘이 산 밑에서 우상을 섬길 때는요. 그들이 죄인 줄 알고 우상 섬긴 게 아니에요. 그냥 일상의 일이 죄라니까요. 일상의 일이 죄에요. 그래서 그들은 죄에서 일을 한 거예요. 죄=일상의 일, 이렇게 할 수도 있지만 equal(=) 하지 말고 화살표(⇒)로 죄⇒일상의 일이라 하면 죄가 확대되니까 일상의 일이 되는 거예요.

자, 개인과 전체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여기에 뭘 집어넣어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언약을 파기함으로 말미암아 개인이 전체로 확장되는 그 원리원칙은 오직 죄밖에 없는 거예요. 인간은 죄로 한통속이 되는 겁니다. 죄로 한통속이 되는 거예요.

아, 이거 너무 어려운데 여러분들이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믿어요. 로마서 6장 2절에,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살리요.

자, 죄가 뭐냐? 인간은 죄를 몰라요. 일상의 일을 하기 때문에 죄를 몰라요. 광야에서 사람들이 떡 없다고 원망하고 물 없다고 원망했을 때 그들은 추호도 그걸 죄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게 죄가 아니에요. 애가 엄마보고 ‘밥 줘.’하는 그게 죄입니까? ‘너 또 죄를 짓는구나!’ 이렇게 해요?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말은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먼저 만들어져야 그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죽어 마땅하구나, 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겁니다. 한번 적어볼게요. 이 말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문장으로 써야겠어요. ‘이미 죽은 자를 살려서 생전에 해야 될 일을 주께서 하게 하신다’ 이게 죄에 대해서 죽은 자에요.

이미 죽은 자. 인간은 계약 파기로 인해 이미 죽었어요. 죽었는데 죽었다 하니까 ‘목사님, 무슨 말합니까? 지금 살아 있잖아요. 방금 식혜 먹었잖아요. 살아 있으니까 목으로 넘어가죠. 살아 있잖아요.’ 하는데 살아있는 것은 이미 죽은 자를 생전에 해야 될 일을 위해서 주께서 하게 하시기 위해 살려준 거예요.

이미 죽은 자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주께서 일방적으로 만들어주신 것이라 이 말입니다. 뭐 확인하라고? 이미 죽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식혜도 만들고 귤도 준비하게 하신 거예요. 그래서 그걸 한꺼번에 한 문장으로 줄여서 하게 되면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가 되는 거예요.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일상의 하는 모든 일이 죄라고 하는 우리가 어떻게 따로 내가 나를 살려내야지, 하는 그 짓을 할 수 있느냐는 말이에요, 이미 죽었는데. ‘주님이 살게 했다’만 나와야지, ‘주님이 살게 해준 것 믿어서 나는 살아야지’ 이러한 통밥, 이런 요령을 부리지 말라 이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계속 주께서 살려주시는 거예요, 계속.

우리의 모든 일과는요, 주께서 그렇게 조성해주신 거예요. 만들어 주신 거라고, 그게. 그래야 계약 파기, 아까 봤죠, 예레미야, 계약 파기되고 다시 새 계약을 만들어서 새 계약에 준해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자기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내는데 그 백성의 특징이 그 죄에 대해서 기억치 아니하는 거예요, 그 죄에 대해서. 왜냐하면 그 계약 안에 예수님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래요.

예수님이 들어있다는 것이 예레미야 31장에 나오니까 한번 봅시다. 33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아예 인간 속에 하나님이 들어가시는 거예요.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의 갈림길이 되는 그 표징, 기호, 표증을 그 사람 속에다가 집어넣는 겁니다. 집어넣는 것이 뭐냐? 새 언약의 완성 곧 한 자로 하면 ‘피’가 돼요. 피를 집어넣어서 피를 집어넣었다는 그 조건 때문에 그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새 언약의 계약자가 되는 겁니다. 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주님이 죽었죠. 돌판 깨졌죠. 돌판 깨진 것을 누가 다시 새롭게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이 만들었죠. 십자가 죽었죠. 부활하신 주님이 예레미야 31장 33절의 말씀처럼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줘서 이 성령이 오게 되면 껍데기에 있는 우리는 옛날 계약에 의하면 이건 완전히 죽어 마땅하고 그 안에 새 언약, 이게 새 언약이에요, 3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뭘 세운다 했습니까? 새 언약을 세워서 집어넣어버리면 우리는 어딜 가도 뭘 해도 어디 먼 나라가도 우린 새 언약의 사람이어서 그 현장에서 무슨 역할을 합니까? 그냥 개여울의 돌부리 역할해서 거기 가서 뭐 영어 배우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옆에 와서 개무시하면 넌 사망의 길로 가라. 너를 보니까 천사를 보는 것 같아. 생명의 길로 가거라. 우리의 역할은 그거에요, 그냥.

우리는 뭘 했느냐? 우리는 내가 모르는 죄까지 다 용서받았다, 내가 모르는 죄까지. 더 어렵게 이야기할까요? 내가 짓지도 않은 죄까지 다 용서받아버렸어요. 너무 어렵죠? 어려울 땐 10분 쉬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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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8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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