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예수를 만난 자리
[일반] 예수를 만난 자리
이름 : 최덕종(IP:)
예수를 배우고 듣고 알게 된지 40여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 분을 인식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그분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그 분을 증거했던 제자들을 이야기하지만, 너무나 사실 인식하기 어렵다. 바로 가까이 사는 아내와 아이들도 내가 온전히 이해하고 그들을 깊이 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하물며 2천년 전에 문화도 틀리고 언어도 틀리고 분위기도 전혀 다른 고대 로마식민지 유대땅 에 30년을 살다간 예수란 사람을 어찌 성경 몇장의 장면만을 가지고 우리가 그를 온전히 인식할 수 있을까?
심지어 그의 탄생을 역사적으로만 생각하면 우리가 또한 전혀 알기 힘든 사건이다.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것을 본적도 없고 들어본적도 없이 믿음으로만 알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물위를 걸어가시고, 바람과 파도를 멈추셨고 5병이어의 기적, 수많은 치유의 역사....나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일이기에 2천년 역사의 거리만큼이나 나와 거리가 생긴다. 나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내 앞에 있는 사람도 그 속을 알기 힘든데...어찌 이 예수를 내가 인식하고 알아지게 될까? 인식이 안되고 알아지지가 않는데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함께 동행 할 수 있을까? 이 엄청난 거리를 유지한체 어떻게 그와 동행하면서 임마누엘을 찬양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 거리만큼이나 예수를 하늘로 높이 올려놓고 경배하고 숭배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 먼거리에 보좌에 앉으셔서 만유를 통치하시는 절대자로 올려놓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보게된 예수는 나와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의 수많은 이적도, 기적도 능력의 말씀도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할 수 만 있거든 이 잔을 피하게 해주소서..하시던 그 죽음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었다. 십자가위에서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아무것도 하실 수 없는 그리고 영혼을 의탁하고 끝나버리신 그 자리...
그 자리가 내 자리로 보여지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소리만큼 나의 어떠함으로는 도무지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지 못한 다는 것이 나의 탄식이 깊게되어 모든 것이 끝나버린 그 자리가 보여질 때 예수가 알아진다.
나는 십자가에 달려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좀더 노력한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돈도 벌 수 있고, 집안일도 할 수 있고, 아이들도 키울 수 있고, 전도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쩔 때는 남보다 잘 할 수 있을것도 같았다. 힘이 딸리면 주께 기도해서 그 분이 힘을 주시고 도와준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외마디의 탄식을 끝으로 끝나버리신 예수는 나도 자신 안에 포함되었음을 알 기를 원하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그 많은 일들은 사실, 동물들도 수준이 낮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이고 죽어있는 기계들로 대체해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죽어있는 기계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진짜 산 사람이 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하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표현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제물로 드려지고 하나님이 받으실 향기로 태워져서 살아가야 할 존재들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하셨을때 나는 죽었었다.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수 있는 사람이 죽었다. 아니..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으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생명의 씨를 받아 생명을 산출해야 할 존재로서는 죽어버린것이다.
선악으로 뒤범벅이 되어 살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선과 악을 쏟아내고 선과 악을 저울질 하고 선과 악을 판단하고 좋은것과 나쁜것을 비교하면서 좋아하고 탄식하고 그렇게 살면서 그 선악과의 인생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속고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죽은 것이다. 아무것으로도 그에게 올려드릴 수 없는 썩은 것이다.
마치 천둥이 치듯이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죽으리라"는 말씀이 들리는 것같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죽었다. 그 안에 나도 있다. 그 사람이 달려있는 것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가 우리를 그안으로 이끄신다. 내 자신도 그 자리를 외면해 왔다. 그냥 예수는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죽어서 우리는 그를 믿으면 천국간다고 알았다. 그 분만 달리고 우리는 혜택을 받은 자리가 십자가인줄 알았다. 아니었다. 우리의 운명과 실체를 너무나 처절하고 철저하게 보여주시는 자리이다.
살아있는 아담의 어떠함도 하나님앞에서 죽은것이라는게 드러나는 자리이다. 아 이것이 더욱더 나에게 선명하게 보여진다면....십자가안에서 끝난 내 운명이 더욱더 선명하게 다가온다면...그분의 이끄심이 더욱더 크게 들려온다면....내 눈에 씌우어진 비늘이 벗겨지고 내 귀에 쇠붙이처럼 두껍게 쳐진 장막이 걷힌다면......
십자가는 예수가 흙의 운명이란것을 철저하게 보여준다..더 이상 무슨 잔인하고 처절한 방법이 있겠는가? 무슨 더 이상의 설명이 있겠는가? 옆구리에 창을 찔렀을때 물과 피만 쏟아졌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재만 남았다. 흙만 남았다. 그 죽음의 자리에서 아버지가 기쁘게 받으시고 역사하시기 시작했다.
흙의 자리, 흙의 운명..십자가,,숨이 코에 붙은 인생..죽음.."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외침도 끝나고 그저 내 영혼을 의탁할 수 밖에 없이 끝나버린 그 자리...
예수의 인생의 어디도 나와 합쳐지는 자리가 없는데 여기서 만나게 된다. 내 자리와 운명이 그 안에 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으로는 끝나야 되는 자리...나의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되고 번제단의 제물처럼 활활타올라 재만 남아야 되는 그 자리......
새해에도 이 자리에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이 자리에 있기를 소망한다. 내 눈이 더 밝아지고 내 귀가 더욱 열려져서 그 의 죽으심안에 십자가에 달려 계신 그 분안에 깊이 깊이 포함되길 원한다. 그와 함께 죽고 그 와 함께 부활을 맛보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