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설교 / 돌아온 문둥병자 / 220206
돌아온 문둥병자 220206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고침 받은 열 사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여기에 어떤 마을에 이렇게 행색이 보세요. 이 그림에 행색을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죠. 이거는 자기들끼리 이제 뭉쳐 다니는 거예요. 왜냐하면 문둥병 걸렸기 때문에. 문둥병은 사회적으로 격리를 당하고 그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문둥병을 성경에서 찾아보니까 하나님께 대적하면 저주를 받는데 그 저주 받는 그 흔적이 뭐냐? 문둥병이에요. 문둥병은 가장 무서운 병인데 실제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저주한다라는 증거로서 이스라엘에 문둥병이라는 것을 주셨다 그렇게 이해했었습니다.
문둥병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사람이 아니에요. 사람이 되려면 문둥병 낫고 난 뒤에 사람이 이스라엘 속에 들어오는 겁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을 뭐라고 하냐하면 택한 백성이라 돼 있어요. 택한 백성이라는 것을 쉽게 이야기하면 하늘이 여기 있고 땅에 여기 있다면 중간에 우주 정거장 비슷한 게 있죠. 그 우주 정거장에 있는 우주인들이 지상에 있는 대표자들이 지상에 있는 가운데 특별한 민족에게만 뽑아서 하늘나라 가기 위해서 대기 상태에 있는 자들, 이게 바로 이스라엘이라고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하늘과 땅 사이에 그 중간 상태에 있는 민족, 그리고 하나님이 나중에 심판할 때가 되면 땅에 있던 것은 다 재껴버리고 중간에 떠 있는 그들만 왕이 오셔서 건진다는 겁니다. 그 이스라엘을 출애굽기 19장에 의해서 그들은 뭐라고 하냐? 이걸 가지고 그 중간에 있다고 해서 제사장 나라라고 하는 겁니다. 제사장 나라.
제사장 나라를 수직적으로 3차원적으로 보면 이렇게 이해하기 쉬워요. 근데 삼차원을 뭉개버리고 이차원적으로 해버리면 이 세상에 특정 지점을 차지하고 있는 어떤 특별한 민족, 같이 찌그러졌으니까 위에 있던 것이 찌그러져서 합류가 되었으니까 같은 땅에 살면서도 같은 인종이 아니다라는 자부심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그렇게 갖고 있어요. 그걸 가지고 택한 민족이라 그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이기 때문에 옆집에 살아도 너는 지옥 가고 나는 천국 갈 사람이다 하고 그런 자부심을 민족적 자기 정체성이라 하는데 자기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그래서 어릴 때부터 성경 말씀을 달달 외우다시피 시험도 치우면서 성경 말씀을 외워서 우리 민족은 특별한 민족이야, 라는 것을 계속해서 그들의 정신 속에 삽입시키고 주입시키는 거예요. 너는 특별한 민족이야. 그 훈련이 바로 출애굽기의 1장에 보면 모세가 태어났을 때 모세 어머니가 유모로서 위장 취업을 한 거예요. 최초의 위장 취업일 수 있을 거예요. 위장 취업해가지고 교육은 자기가 전담하는 거예요. 자기 아들이니까. 그래서 너는 특별한 민족이야.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어. 왜? 하나님은 약속대로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 약속의 대상자가 우리들이니까 너는 애굽 사람이지만 애굽 사람으로 살지만 실은 그 속에는 우리 택한 민족이 들어있어, 라는 훈련을 계속 시켜온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문둥병이 등장한 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고 문둥병이 들었다 하는 것은 인간의 그 당시 치료가 안 됐으니까 인간 손을 넘어선 특별히 하나님의 조치라고 봐서 그걸 하나님의 저주의 표상으로 본 겁니다. 그 저주 받았으니까 병이 저주 받는 사람이 다시 원대 복귀해서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 되려면 저주 받는 것도 주의 뜻이라면 문둥병에서 치료되는 것도 무엇에만 의존해야 되는가? 인간은 치료가 안 되니까. 하나님의 불쌍히 여겨주심,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서 자연 치료가 될 경우에만 복귀가 됩니다.
복귀할 때 자기가 자기를 살펴 가지고 “어? 나 안 아픈데. 집에 가자.” 이러면 안 되고 거기에 반드시 누구한테 검사를 받는가? 제사장이 검사를 맡아요. 그 제사장이 보면서 쭉 보면서 “좀 지켜봅시다. 다음번에 오세요.” “이제 됐어요.” 하고 들어오면서 그냥 들어오면 안 되고 하나님께서 당신, 저주 받아 마땅한 당신을 은혜로 깨끗하게 치료를 해줬으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경로로 치료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문둥병이 다 나을 때는 새를 두 마리 잡아서 한 새는 잡고 그리고 한 새는 그 피를 발라서 공중에 날려 보내지요. 날려 보내면서 바로 이런 방식으로 죽어도 마땅한 너희들을 살렸습니다, 라고 이 율법에 그렇게 돼 있는 겁니다.
여기는 문등병자들이 자기들끼리 사니까 작대기 짚고 팔다리 뚝뚝 떨어져 나가니까 지체가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니까 삐뚤거리면서 그리 살겠지요. 그런 사람이 열 명이 있었는데 그들의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밖에 없으니까 예수님이 보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했어요.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 이거는 기존에 멀쩡한 사람들이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지켰으니까 이 지킨 불량만큼은 저한테 보상으로 복을 주시옵소서, 이러한 사고방식하고 완전히 달라요. 그냥 달라는 거, 그냥 불쌍히 여겨줘 가지고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뭐 나쁜 짓을 했다 그런 것은 저는 너무 잘 아니까 제가 내세울 게 없다는 것은 내가 아니까 주님 앞에 들을 것도 없으니까 염치불구하고 그냥 납작 엎드려서 불쌍히 여겨 달라, 라고 외치는 겁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소문을 들어가지고 들리니까 이들이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예수님이 메시아니까 메시아는 하나님의 제사장이니까 하나님과 이 사이에 중간에 하나님 쪽에서 오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예수 선생이여 우리를 불쌍히 랍비여 우리를 불쌍히 해달라고 이렇게 했었습니다.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은 낫게 해달라는 이 말이죠.
그래서 열 명이 있었는데 주님께서 그들을 전부 다 깨끗하게 다 낫게 했어요. 여기서 중요합니다. 지금 이 문둥병자들이 그 당시 사람들의 범위가요 문둥병자가 저주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이 말이죠. 그러면 세상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하느냐 하면 자기는 문동병자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저주 받는 것은 죄를, 자기의 조상이나 자기의 죄 때문에 저주 받아서 문둥병이 됐다면 우리는 문둥병이 되지 않았다는 말은 곧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나는 그냥 이대로 살아도 나중에 천국 갈 만한 충분한 착함이 내 안에 함유돼 있다 이런 식으로 자부한 거예요. 이 문둥병자의 수준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 주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하나님은 어떻게, 그거에 관심 없고 저 사람처럼 좀만 되게 해달라면 저는 소원 없습니다. 이 정도 레벨이에요. 그런데 그 10명 중에서 열 명이 다 갔다 이 말이죠. 그래 얼마나 고마워하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나았어요. 이제는 멀쩡한 사람 대우 받으면서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래 갔는데 가면서 한 사람이 이상하게 이게 다가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뭔가 문둥병을 낫게 해줌으로서 비로소 자신이 자기한테 질문해야 될 더 깊은 질문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겁니다. 과연 내가 멀쩡해도 되는 존재인가, 그 점이에요. 내가 문둥병 환자가 나한테 마땅한 내게 걸맞는 내 모습이 아닌가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중에 딱 한 사람 그것도 유대인이 아닌 이방민족이에요. 이방인이에요. 유대인에 의하면 이방 민족은 개 같은 사람들이에요. 이거는 멀쩡해도 저주 받았고 문둥병에 걸려서 저주 받은 거예요. 그 문둥병자 된 이방인은 자기도 그런 줄 알고 여겼습니다. 왔는데 예수님께서 자기 병을 낫게해줬잖아요.
그럼 이걸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내가 만약에 감기 걸렸는데 병원에 가려고 하니 돈이 아깝고 귀찮고 시간도 없고 이래가지고 그냥 가까이 있어서 내가 지금 머리에 열나는데 지금 당장 나를 고쳐주세요, 라고 이야기하면서 나는 지금 아파서 아픈데 불쌍히 여기서 나를 낳게 해달라, 이렇게 했을 때 그쪽에서 나를 낫게 안 한다면 안 해준다면 내가 내 생각이 옳아요. 내 생각 옳다고요. 내 생각이 옳으면서 내가 남한테 부탁할 정도로 나한테 병 고쳐야 할 정도로 나는 겸손한 사람이다. 나는 이 정도로 난 착하구나 하고 그걸로 개기고 그렇게 계속 가면 돼요. 그런데 병을 낫게 줘 버렸거든요. 병을 낫게 주니까 이거는 자기가 상상도 못한 거예요. 다시 말해서 내가 나라고 여기고 있던 내가 내가 아니었던 겁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던 거예요. 사랑은 좋은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그런데 막상 사랑하다 사랑하다가 헤어 헤어지니까 너무 아팠을 때에 이거는 내가 원한 사랑이 아니었는데. 사랑한다고 헤어지고 밀당한다고 얼마나 아파요. 사랑은 안 해본 사람이 뭐 알겠습니까마는. 모르잖아. 비로소 내가 평소에 불쌍히 여겨달라는 그 자체가 과연 나한테 그런 권한도 없고 그런 자격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겁니다. 열 사람 중에서 단 한 명.
근데 놀라운 사실은요 예수님께서 병고치고 난 뒤에 그 뒤에 후의 모습을 주께서 주시했다는 사실입니다. 저 중에서 누가 이 병고침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유대인 중에선 아무도 없었습니다. 근데 이방인 중에서 한 명이 딱 돌아와서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병고치고 난 뒤에 내가 문둥병자라서 괴롭다 나는 멀쩡했으면 좋겠다. 건강했으면 좋겠다. 건강한 자와 나는 건강치 않은 자 그 경계에서만 생각했던 내가 뭘 생각을 못했냐 하면 나는 죄인이다. 그리고 주님만이 의인이라는 이 경계선을 우리가 생각을 못 한 거예요.
주님께서 병을 고쳐 줬을 때 진짜 숨겨진 나라는 것은 주님한테 불쌍히 여겨 달라, 병 고쳐 주세요, 라는 그럴 잽이 못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겁니다. 이제는 건강한 게 문제가 아니에요. 건강해도 문둥병이 걸려도 전혀 달라진 게 내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제는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고 그냥 죄인이다 하고 쫓아온 거예요. 주님한테 온 겁니다. 주님께서 왜 돌아오는 사람을 돌아오기를 원했느냐 하면은 예수님이 병 고치려고 이 땅에 오신 거 아니에요. 여러분 잘 아셔야 돼요. 병 고치려고 오신 게 아니고 죄인은 의인이 될 수 없다는 그 경계선을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거예요.
내가 아니면 내가 십자가에 죽지 아니하면, 잘 들으세요. 예수님이 있으면 구원받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있어도 십자가 지지 않으면 구원이 안 된다는 그것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주님이 와서 병 고쳐주고 주님께서 복 주고 잘 먹고 잘 살아라 하고 가버리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어야 돼요. 이 말은 너는 꼼짝 마라. 그 자리에서 무슨 짓을 해도 니는 움직일 수 없어. 저주 가운데 그냥 몸이 움직이지 못해요. 그러나 주께서 대신 사망에서 생명으로 움직여준 거거든요. 우리는 아무리 어떤 겸손한 말을 해도 그것 때문에 구원 받는 거 아니에요. 주님께서 사망인 이 세상에서 부활로 생명에 갔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인간은 너는 안 되고 예수님 내가 너 대신 해줄 때 그 대신이라는 개념을 적용시키기 위해서 주께서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적용을 시켜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우리가 뭘 해서가 아니라 이미 적용된 것을, 적용된 것을 그냥 우리에게 그냥 집어넣는 거예요.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문제 풀어놓고 그러니까 말이야 정답은 정답이 뭐냐 이 말이야. 24번 일어나. 니 이야기해 봐. 정답이 뭐냐? 할 때 이사람 자고 있다가 “뭐래? 뭔데?” 옆에서 “삼” “3”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알기는 아는구나.” 그냥 나가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는데 이미 해답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적용을 시키니까 우리는 거꾸로 그 과정에 대해서 이제 알아가야 돼요.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내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구나. 그게 바로 십자가만 자랑하는 거예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그냥 하나님께 뭔가 도움을 얻고자 찾지 말고 내가 누구냐를 다시 질문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