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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양20211216b슥9장17절(물 퍼내기)-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

안양20211216b슥9장17절(물 퍼내기)-이 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하나님에게도 어떤 집착 같은 게 있습니다. 그건 자기 백성을 사랑한다, 할 때 그 하나님의 집착을 사랑이라는 표현도 하지만 뭐라고 하느냐 하면 질투하면서 사랑한다. 질투. 질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데 그게 먼저 앞에 먼저 이야기해야 될 게 있어요. 뭐냐 하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질투하면서 사랑한다 할 때에, 여기 자기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해요. 여기서 하나님은 자신을 할 때 이 하나님을 하나님 아버지라고 보고 자신을 할 때, 자신이라는 말을 할 때에 여기에 아들, 예수님을 여기다가 넣게 되게 되면 이 말이 통합니다. 이게 요단강에서 세례 받을 때 나온 거예요. 그리고 변화산에서 하신 구름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형으로 나타난 거예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실제 인물로 나타난 겁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실제 인물로 나타난 겁니다. 나의 택한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어느 정도로 사랑하느냐, 아버지의 모든 심판성, 심판을 아들에게 다 일임할 정도로 아들을 사랑했어요. 그 일임한 심판의 권리가 주님의 권리에요. 주의 권리. 하나님이 일할 때에 하나님의 오른쪽에서 일하실 때에 그 오른쪽의 자리가 주님의 자리, 심판의 자리입니다. 심판을 한다. 그리고 주님의 기능을 한다. 이렇게 할 때는 이렇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무엇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원수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그걸 의식해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말은 뭐냐, 하나님은 아들을 사랑한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나는 원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하나님의 원수를 사랑하지 않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사랑이 아들에 대해서 택하신 아들에 대해서 창세전에 택할 때, 이 하나님의 아들 사랑하는 그 사랑에 그 사랑을 인정하고 그 사랑을 찬미하기 위해서 예수 안에서 택해 놓은 자들이 있어요. 예수 안에서. 그러니까 이게 원래는요, 하나님은 피조 인간을 사랑한 게 아니고 하나님은 아들을 사랑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들만 사랑하기로 선택된 자들이 있어요. 그 선택을 무슨 선택이라 하느냐 하면 ‘예수 안에서 선택’이라 합니다. 예수 안에서.

선택의 방향이 있고, 선택의 목적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겁니다. 선택할 때. 예수 안에서 선택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누구를 선택한다? 인간을 선택할 때 하나님 존재, 인간 존재 나오지요. 여기 예수님 존재 나오지요. 그러면 여기서 인간 존재가 지워져야 예수 안에서가 되어버려요.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선택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내 안에서 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걸 거부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나를 선택하는 것이 단순한 거부가 아니고 하나님 보시기에 미워해야 될 원수가 있어요. 그 원수의 사고방식이 바로 내 안에서 내가 선택하는 그 사고방식이 원수적인 사고방식이에요.

왜 그런 논리가 성립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 많은 인간들 가운데 오직 예수님만 사랑하는 이유가 그래야 하나님의 적이 드러나기 때문에 그래요. 이것 빼고 나머지 적이 되는 거예요. 내 아들 빼고 나머지 것들은 전부 다 이미 원수의 사고방식이 물들어진 엉뚱한 선택, 자기를 위한 선택을 생각하고 있는 자들이다. 방금 한 거 다시 하겠습니다. 방금 목적이 있다 했지요. 자, 그 목적은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선택의 목적은 뭡니까? 그들을 예수 안에 있게 하지요. 그러면 이걸 모르고 하나님이 나를 선택한다. 하면 그 선택은 목적은 어디 안에 있게 됩니까? 내 안에 선택이 들어와 버려요. 내 안에. 나는 그대로 있고 내 안에 하나님의 선택이 들어와서 나를 건져내는 거예요. 이 선택이 뭐냐 하면 바로 칼빈주의 선택입니다. 칼빈주의가 왜 이단인지 아시겠지요.

정통 개혁주의 칼빈주의 신학이 왜 이단인지 알겠지요. 나를 없앨 줄을 몰라요. 왜? 성령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을 꼬이려고 하는 목적으로 사람들의 이성에 호소하고 논리에 호소했지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사랑해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이렇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그걸 전제로 깔고 신학을 해가지고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안 되니까 교회 와서 복음 들으시고 비시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원하는 것을 채워줄 겁니다. 아까 그걸 뭐라고 했습니까? 공산주의라고 했지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거예요.

해를 통해서, 달을 통해서, 별을 통해서 당신의 원하는 것을 주겠다는 거예요. 당신의 원하는 것을 주겠다는 것과 스가랴10장2절에 나오는 무당이나 점치는 사람이나 다를 게 뭐가 있어요. 똑같지요. 사람에게 다가설 때에 당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당신에게 점괘 봐 드리겠습니다. 이거나 우리 교회에 오셨습니까? 복 받을 거예요. 이거하고 차이점이 뭐가 있습니까. 마태복음16장에 분명히 이렇게 되어있거든요. 자기를 부인하고 되어있지요.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를 부정하라 이 말이지요.

십자가라는 말은 예수님이 지셨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를 부정하는 거예요. 오늘 스가랴9장15절, 16절, 17절, 지금도 그냥 나갈 수가 없어요. 나갈 수가 없다고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자기 양떼를 구원한다. 이 말이 16절, 이 날에 여호와께서 자기 양떼를 구원한다. 이 말이 말은 굉장히 간단한 결말로 되어있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것이, 상상도 못할 일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그게 무슨 사건이냐 하면 바로 ‘십자가 살인 사건’이에요.

제가 몇 달 전에 여기에 대해서 설교를 한 적이 있어요. 그것도 짧게 할 수밖에 없지요. 너무 어려우니까. 이 땅에 살인 사건을 일으켰어요. 누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살인 사건이. 어떤 33살 먹은 어떤 분인데 어떤 청년인데 그 청년이 죽었다는 거예요. 그 이야기하면 모든 사람이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뭐? 우리 아하고 수능 치는 거 하고 무슨 상관있는데? 그게 무슨 상관있어요? 코로나 1차,2차,3차 맞았습니까? 그 이야기하고 살인 사건하고 무슨 관계있습니까? 국무총리 이름이 뭐예요? 김유경 대구사람이지요. 김유경 그 사람이 지금부터 코로나와 관련해서 특보 이야기하겠습니다. 여러분, 이천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 살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것부터 운을 뗀다면 방송사고 날 거예요. 저거 뭐예요? 저거?

아, 코로나하고 살인 사건하고 무슨 관계있는데? 대번 이리 될 겁니다. 코로나하고 살인 사건이 관련되어 있어요. 코로나 번지는 거하고 이 살인사건과. 살인사건과 관련 없는 일이 없어요. 토네이도 터지는 것부터 모스크바에 폭설내리는 것도 전부 다 이 살인사건과 관련되어있어요. 우리 애 수능 치는 거하고 다 관련되어있어요. 이게 폭풍의 소용돌이 핵입니다. 모든 세계를 소용돌이치는 거예요. 여러분, 옛날에 초등학교 때 문방구 앞에 연탄불 가스 일산화탄소 마셔가면서 뭐했습니까? 달고나 하지요. 달고나할 때 각설탕 하나 설탕인지 수상스러운 삭카린인지 분간 안 되지만. 그거 하나할 때 휘저어보세요. 약간 노리끼리한 설탕 녹은데다가 하얀 게 들어가 가지고 뭘 일으킵니까? 소용돌이를 일으키지요. 그런데다가 탁하게 되면 약간의 산이 쫙 올라오지요. 벌써 연탄가스 많이 취해 있는 상태에서. 정신이 오묘한 상태에서.

소용돌이에요. 소용돌이. 세상이 주는 소용돌이는 살인사건입니다. 이거 강남경찰서에서 강력계에서 담당해야 돼요. 이 살인 사건이 일어난 거예요. 뭐 신앙이 아름다워. 신앙이 그건 신념이고요. 신앙은 살인 사건과 너와 관련 있다는 그 관계성이 그게 신앙입니다. 아무도 양이 될 수 없다는 이유를 밝히는 거예요. 아무도 양이 될 수가 없는 거예요. 구약에는 말씀을 주셨고, 이 말씀을 이루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스가랴9장 백날 줘도 소용없어요. 십자가 아무리 줘도 소용없습니다.

10장2절과 3절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드라빔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옛날에 부채 비슷한 거예요. 부채 던지고 하는 드라빔이 있어요. 대제사장들이 하는 거 있고. 복술자들은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됨으로 백성들은 양같이 유리하고 목자가 없음으로 곤고를 당하지요. 이런 짓을 진리가 아닌 짓을 누가 했는가. 3절에 봅시다. 내가 누구한테 노를 발한다고 해요? 목자. 영적인 목자. 목자가 뭐냐 하면 목자는 중재자에요. 중재자. 다른 말로 하면 가이드에요. 가이드.

가이드는 이탈리아 가이드. 알마피에 나오는 이탈리아 관광지 알마피 해변이 있는데요. 가봤어요. 거기에 가이드가 필요하거든요. 가이드는 그 곳에 가봤습니까. 안 가봤습니까. 벌써 수차례 가본 거예요. 이쪽 세계 한국 사람들은 한 두 번 가지만 그 사람들은 수백차례 가봤어요. 가이드니까. 한국에도 살았고 그래야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 되니까. 남부 이태리에도 살았고. 양쪽 다 살면서 오고가는 이리 저리 누가 하느냐, 가이드가 한 거예요. 목자는 선지자들이 목자가 되어야 될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천상회의 내용도 알고 지상에 하나님의 뜻과 얼마나 위배된다는 것을 대적적인 관계가 되는가, 양쪽을 알아서 그 둘 사이에 오고가면서 중재하는 거예요.

그러면 안 되고, 아침 일찍 와서 노동했다고 노동 값 내놓으라고 하면 안 되고, 그냥 모든 게 은혜입니다. 라고 이렇게 하늘나라를 알고 중재해야 돼요. 중재하기 때문에 구약에서는 특별히 선지자에게 성신이 주어진 겁니다. 하나님의 신이 주어진 거예요. 성신은 무슨 신이냐 하면 구 언약의 신을 성신이라 합니다. 새 언약의 신을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성령이라고 해요. 성령. 이 성령은 새 언약이고 최종 언약이기 때문에 성령 받고 난 뒤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오지 않습니다. 누가복음에 나오지요.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어떻게 떡을 달라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해로운 것을 자식에게 주겠느냐.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식에게, 자식은 이 땅에 없습니다. 예수님만 있어요. 성신은 일회성이기 때문에 성신 받았다고 해가지고 구원받는 거 아닙니다.

심지어 사울왕도 성신 받았어요. 나중에는 악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일회성이에요. 성신은 하나님이 그 가이드, 중재자에게 주는 거예요. 성령은 중보자에게 주는 겁니다. 중재자하고 중보자하고 달라요. 한 번 중보자는 영원한 중보자에요. 중보자는 이 세상에 예수님밖에 없어요. 구약의 중재자는 선지자들은 장차 올 한 분밖에 없는 중보자를 앞당겨서 그 분의 기능을 차원을 가면 갈수록 더 깊이 있게 해주는 거예요.

무슨 말인가 하면, 지하실에 물붓기 거든요. 지하실에 물 붓기, 물 퍼내기도 되고. 지하실에 물 퍼내기로 해봅시다. 장마철에 비가 와서 지하실에 물이 가득 찼습니다. 지하실에 물이 가득 찼어요. 그럼 펌프로 푸게 되면 뭐가 드러나게 되느냐 하면 퍼낼 때마다 뭐가 드러나겠어요? 계단이 드러나겠지요. 이스라엘 역사에 초창기에 성신 받은 선지자들은 첫 번째 계단만큼만 물을 퍼내요. 그 다음에 선지자는 두 번째 계단을, 그리고 제일 마지막 계단은 뭐냐,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그 때는 성령이에요. 성령 받은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의 마지막 죄까지 다 거둬내는 것이 성령 받은 예수님이 하신 일이고. 그 성령을 받은 자가 성도에요.

그러니 성도는 없어요. 예수님의 영을 받으면 성도됩니다. 성도의 특징은 뭐냐 하면 나의 죄는 내가 알 길이 없어요. 아무리 죄를 지어도 죄가 뭔지를 몰라요. 하지만 성령이 오게 되면 내 죄는 하나님을 죽인 게 내 죄가 돼요. 내가 몇 월 몇일에 죽인 게 아니고 태어난 자체부터가 하나님을 죽이기로 작정된 경향성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거예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죽이는 방법은 간단해요. 살인사건 중심의 삶이 아니라 내 생존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게 이게 살인 사건을 개무시하는 거예요. 모독하는 겁니다. 이걸 성경에서는 교만이라고 하지요.

교만이냐, 겸손이냐 하는 것은 얼마나 마음을 낮추느냐가 아니라 니가 지금 어느 지점에서 출발점을, 사고의 출발점을 어느 지점에 두고 하느냐에 따라서 이게 구분돼요. 그래서 이걸 달리 하면 신념은 건방짐이고, 교만이고, 신앙은 바닥이지요. 지하실 바닥. 제가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를 아주 입가에 미소가 올라가면서 감사함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제가 죄인이기 때문에 아침에 쌀밥 먹고 고기 먹은 이것은 저한테 오감습니다. 하는 거예요.

여러분, 자녀가운데 이제 초등학교 2학년 됐는데 “어머님, 저에게 아침에 밥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한테는 과분하고 오감습니다.” “왜 그래? 응?” “제가 하나님을 죽인 내 중심으로 생각한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연구한 내 중심으로 생각하고 이 큰 죄에 대한 것이 이게 십자가를 모독한 살인사건 중심으로 하지 않고 내가 안 다는 것, 내 호기심 중심으로 살았던 이것이 바로 주님의 십자가를 가리는 마귀의 짓이었습니다. 어머님 밥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죄인에게.” 이리 나온다면 엄마가 뒤로 나자빠지지요. 니가 미쳤구나! 니가 진정 미쳤냐? 아니면 성령 받았느냐? 신비로울 거예요. 신비로울 겁니다.

그게 바로 진짜 참 목자가 그 일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 빼놓고는 전부 다 거짓 목자에요. 예수님 빼놓고는. 그 목자에 대해서 10장3절에,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숫염소들을 벌하리라, 그런데 그냥 엄포냐, 아니에요. 10장1절에 봄비가 올 때, 늦은 비가 올 때는 반드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이스라엘에게.

다시 이야기할게요. 첫째시간 한 거 후딱 지나갔는데. 이스라엘은 하나의 무대에요. 농경시대의 무대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그냥 밥이나 먹고 잠이나 잘 자면 복 받은 줄 아는 거예요. 오늘날과 같이 이렇게 삼차산업이 발달하고 서비스업이 발달하고 금융 자본주의가 발달한 이 시대가 아닙니다. 이제는 그 농사짓기 때문에 비 안 오면 하늘에서 비 안 내리면 농사 완전히 버리는 거예요. 그냥 천수답이에요. 저수지해서 개간산업하고 이런 거 소용없어요.

약속의 땅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안 살면 전부 다 작살내는 겁니다. 그건 하나의 작은 간이무대니까요. 마지막 때를 위한 시범조로 보여주는 거예요. 시범조로. 이스라엘 자체가 소규모 집단이고요, 거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장차 대규모로 일어나는 아니 대규모 정도가 아니고 온 우주로 일어나는 우주의 파멸과 종말의 근거를 위해서 그들을 작게 모집단으로 해가지고 하나의 시범조로 실험실에서 시료로 하나 빼가지고 작은 데서 실험해서 그 원리를 전체에다가 보편화 적용시키는 것이 예수님 오시고 난 뒤에 하는 일입니다. 구약 때 그렇게 보셔야 돼요.

그래서 여기 10장에 9장에 곡식이 있고, 포도주가 넘치고, 약속의 땅에 포도주가 넘치고 포도농사 했으니까 포도가 잘 되는 것은 복이라 여기지요. 양치니까 양떼가 많으니까 복이지요. 그런데 요새 양떼 같은 거 포도 잘되면 그걸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청정지역이라고 하는 나라가 뉴질랜드거든요. 뉴질랜드 인구가 850만밖에 안돼요. 그 뉴질랜드가 수질오염에 빠져있습니다. 환경오염에 빠져있어요. 그것도 모르고 뉴질랜드 환경 좋다고 가는데 자연환경은 좋겠지만, 그 물이나 모든 것은 오염됐어요. 왜냐하면 소를 키우고 양을 키우는데 소가 방귀 꾸기 때문에 소가 방귀 꾸는 것은 우리나라 자동차 매연하고 못지않게 비율이 세서 매탄가스가 오염시킵니다. 지금 뉴질랜드가 그런 큰 문제가 있어요. 뉴질랜드가 여성들의 세계거든요. 여성들이 이혼하게 되면 80%가집니다. 남자들은 쪽박 차는 거예요. 유책해서 책임있는 쪽, 그건 우리나라 법이고 다른 나라는 그런 거 없어요.

무조건 여자들은 약하니까 재산80%가져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남자들은 어디 가느냐, 뉴질랜드 여자하고 결혼 안하고 미국, 호주로 가버려요. 인구가 늘어날 수가 없지요. 그리고 환경 위주로 하다보니까 공장 없지요. 중국산 수입해야 되지요. 그리고 여자 위주로 하니까 치안이 불안하지요. 치안. 행정관리가 느려 터져요. 우리나라는 배달의 기수가 있어서 오토바이 타고 빨리 왔다 갔다 하지만. 그런 것도 없고. 도대체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뭐가 좋다고 가는지 모르겠어요. 이거 전부 다 바보들 같아요. 아이고~ 캐나다에서 듣는 사람 있어 말조심해야 돼요. 미국도 마찬가지고. 이게 집단이거든요. 인간은 동질성의 조직이기 때문에 집단에서 빠져나가게 되면 외로워요. 왜 외로우냐,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외로운 이유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외로운 겁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면서 농사가 안 된다고 불평을 하니까 여기서 거짓 선지자들이 우상을 섬겨도 주변의 나라들 봐라. 잘 먹고 잘살고 군사력이 뛰어나잖아.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이스라엘은 점점 더 그 잘사는 사람이라는 그 목표. 그 목표 자체에 완전히 혼이 빠져가지고 그 목표를 되기 위해서는 어떤 짓을 했기에 어떤 행동을 했기에 그들은 부를 얻었습니까. 우리도 그거 수입하겠습니다. 해서 다 수입해가지고 날이 가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우상 섬기는데 온 나라가 다 따라가 버렸어요. 가이드가 엉터리 가이드에요. 저 뒤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점점 더 저주에 빠지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만의 특수성이에요. 이방민족은 그런 게 없습니다. 이방민족은 잘 먹고 잘 살아요. 어차피 내놓은 자식이니까. 어차피 그건 지옥 갈 거기 때문에. 언약이 없기 때문에 죽이든 밥이든 지 맘대로 살게 둬요.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아요. 이스라엘부터 먼저 멸망합니다. 그게 벌하는 거예요.

다시 스가랴9장16절 돌아와 봅시다. 이게 그냥 대충 설명하고 넘어갈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주신 복이 뭐냐 하는 거예요. 이걸 생각하려면 아까 이방민족부터 생각합시다. 이방민족에 대해서 이스라엘이 부러워했지요. 부러워했는데 이방민족이 아주 잘 살아요. 권력도 많고 군사력도 강해요. 나중에 하나님 앞에 뭘 받느냐 하면 저주 받거든요. 저주 받는 이유에 우리가 주목해야 돼요. 방금 무슨 민족 했습니까? 이방민족 했잖아요. 이방민족을 했지만 저와 여러분에게 했지만 사실은 딱 깨놓고 이야기하면 그냥 현대인이에요. 그냥 현대인들.

현대인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또는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런 제목의 책들이 나오잖아요. 중년에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런 책들이 있잖아요. 처세술에 관한 책들. 교보문고 제일 앞자리 1등으로 나오는 책들이요.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책들 있잖아요. 30에 자취는 끝났다. 이런 거요. 성경에 나온 단어 빼고 오늘날 단어 그냥 붙여보면 이방민족에 딱 해당되는 말이다. 이 말입니다. 제 말은. 오늘날 그냥 평소에 나오는 뉴스나 방송이나 신문지상 매스미디어에 나오는 언론에 나오는 모든 단어가 신문에 나오는 모든 단어가 그냥 이방민족이기 때문에 통하는 단어들이에요. 우리는 거기에 홍수처럼 거기에 휩싸여 있는 겁니다. 그럼 무엇으로 사는가.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건 정답이라 할 수 있어요. 뭐냐 하면 자기 의로 살아요. 자기 의. 자기가 사귀는 여자가 헤어진다고 해서 그 여자 집에 찾아가가지고 여동생부터 남동생 엄마까지 다 죽이는 25살 먹은 애 있지요. 왜 그 짓합니까? 아무리 가정환경이 어떻고 데이트 폭력이 어떻고 하지만 그런 중간 말고 가장 원인적인 것. 현대인들은 무엇으로 삽니까? 자기 의로움으로 살아요. 내 잘난 맛에 살아요. 잘난 맛에. 그 잘난 맛에 그 여자가 흠집을 건드린 거예요. 부부싸움에서 니 왜 돈 안 벌어오나? 경제문제처럼 다가가지요. 경제문제는 핑계고요. 더 깊숙이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워 봐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고 넘어서 계속해서 싸워 봐요. 뭐가 남는지. 니가 뭔데 내 자존심을 건드려? 네가 뭔데. 처음에 할 때는 니가 하다가. 니가 하는 성격은 니그 집의 친정엄마 닮았다. 하는 순간 끝나는 거예요. 니하는 거하고 니 시숙하고 똑같노. 이리 나오면 그 때는 소속에 관한 문제 아닙니까.

나의 의에 관한 문제에요. 아까 지하실 물 퍼내는 거 했지요.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 계속하니까 퍼내니까 왜 인간은 하나님을 죽입니까? 주님이 먼저 인간에게 시비 거는 거예요. 니는 죄인이라고. 그게 하나님이 인간을 건드리지 말아야 될 것을 건드려버린 거예요. ‘너는 살 가치조차 없다.’ ‘너는 쓰레기다.’ 이거 건드린 겁니다. 목사가 설교 때 당신들 나와 당신들 쓰레기라 하면 그 목사 오래 가겠어요? 계약 만료지. 그 다음부터 끝났지요. 목사가 말을 조심해야 될 것은 거기에 오래 있겠다가 아니라 나올 때 퇴직금에 액수와 관련되어있기 때문에 그래요. 좋게 해야 좋게 돈의 액수가 올라가고 나쁜 짓하게 되면 아무래도 성질 나가지고 돈 안 줘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회사잖아요. 교회도 회사 아닙니까. 어떤 회사? 나의 미흡 된 나의 의를 하나님 예수님이 마저 채워주는 회사 이게 교회입니다.

왜? 인간은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요. 나는 사람 취급 받고 싶어요. 왜 나는 나를 사랑하니까. 이게 바로 이사야에 나오고, 미가에 나오고, 선지자들이 그렇게 신약에 가까울수록 그들이 폭발적으로 외칩니다. 너희들이 우상 섬기는 것은 딱 한 가지. 니가 신처럼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이방민족이 진짜 하나님한테 된통으로 당하는 이유가 본인이 하나님이라고 행세하기 시작한 거예요. 내가 하나님이라고요.

그래서 복음이 안 나오거든 만나지 마세요. 참 이건 참 만나지 말라 해가지고 뭐 진리처럼 진리는 아니고요. 사도바울은 요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복음이 안 나오거든 사귀지는 말되 만나기는 만나라. 요렇게 이야기했어요. 아예 안 만나면 생활을 못하니까. 슈퍼 하면서 팔면서 여기 라면 있습니까? 예, 라면 있습니다. 이러면 되지 그런데 실제로는 복음을 아십니까? 이걸 물어볼 필요가 뭐가 있어요. 라면 팔면 되지. 옷가게 하는데 여자 옷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아이고~ 속으로.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또 먹여살리는구나! 고맙습니다. 이리 하면 되지. 실례하지만 물어보겠습니다. 계산하는 순간에 십자가를 아십니까? 십자가 살인 사건을 아십니까? 괜히 오늘 하루 일당 다 날려버리면 우이 하려고. 안되지요.

사귈 때는 복음을 모르면 사귈 수가 없어요. 이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우리교회 어떤 아가씨는 아주 결심을 했어요. 복음 모르는 남자하고는 절대로 안 사귄다고. 글쎄요. 복음을 알든 안 알든 간에 나를 찾는 남자가 귀할 수도 있어요. 내가 선택할 사항이 아니고 내가 골라잡을 사항이 아닐 수도 있거든요. 그 점도 고려해 봐야 될 텐데. 한 200명 쫓아와가지고 좋다한 가운데서 복음 아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이리 되면 괜찮은데 내가 200명 다가가도 다 튕겨나가는데.

자기 의라는 것 이게 우상입니다. 구약에는 우상을 섬겼잖아요. 이제 신약에 가까우게 되면 내가 나한테 신이에요. 나는 신이다. 내가 나는 신이에요. 신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한테 오더라도 내가 좀 믿어도 안 믿어도 선택권은 예수님이 갖고 있으면 안 되고 나한테 일임해야 된다는 거예요. 내가 십자가 지어보고 희생하는 거 보니까 내가 믿어 줄게요. 이런 관계로서 예수 당신하고 같이 가자는 거예요. 천국 가자는 거예요. 결정을 나한테 맡겨 달라는 겁니다. 이게 바로 신이에요.

그렇다면 여기에 아까 16절에서는 양이 성립 안 되지요. 양은 목자 없는 양이 성립되지 않잖아요. 16절 끝에 보면 그들이 왕의 보석같이 빛나리라. 이리 되어 있는데. 자, 그럼 제가 아직까지 해답을 안 내렸습니다. 그럼 당신이 말하는 정답이 뭐냐, 정답은 진정한 중재자가 중보자로 오십니다. 하늘과 땅을 양쪽 다를 알아야 돼요. 하나만 알면 안돼요. 예수님이 오셔서 잔소리 산상설교만 하면 안돼요. 지상의 형편을 알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을 해야 되는 겁니다. 땅을 알아야 돼요. 우리는 땅에 살면서 땅을 몰라요. 우리는 죄를 지으면서 죄의 마지막 계단을 몰라요.

우리의 의가 어느 정도로 우리에게 매순간 매초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끊임없이 24시간 나의 의가 나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느끼지를 못하고 있어요. 뭐 동정하고 베풀고 자비를 베풀면 뭐 하나님의 성령의 열매인가, 이리 착각하고 있다 말이죠. 온유와 화평하면. 돈 떨어져보세요. 무슨 온유와 화평이 있어요. 여유가 있으니까 그리 하지요. 사기꾼에게 그런 거 하겠어요. 원수를 사랑하라, 하는 것은 인간은 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신랑이 되시는 겁니다. 이 스가랴9장16절, 17절 이 말씀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을 주시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그 말씀의 자리에 예수님이 그냥 들어와 버려요. 이걸 한 번 봅시다.

이사야62장 5절에서부터 8절, 9절, 거기에 신랑 신부가 나오거든요. 신랑, 신부가 나오는 이유는 기쁨의 환경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신랑이 나오고 신부가 나오면 왠지 분위기가 즐거움으로 가득차지 않습니까. 여기에 보면 4절에 왕관 나오지요. 아까 스가랴9장16절 왕관 봤지요. 자, 왕관이 누가 쓰실 왕관이냐 하면 이건 먼저 예수님이 먼저 써요. 예수님은 가이드니까요. 중보자니까. 지상에 살면서도 왕관을 쓰시는 최초의 분은 예수님이어야 하는 거예요. 아들이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말씀은 일단 예수님이 다 가져갑니다. 우리가 지킬 수가 없어요. 기쁜 소식 아닙니까.

우리가 못 지켜요. 마음속으로 간음이고, 살인이고 뭐고 지킬 수 있는 말씀은 하나도 없습니다. 일단 다 가져가요. 주님이 다 가져가요. 주님이 출제한 문제를 주님이 정답을 다가져간다고요. 우리는 백날 해야 정답 없음이에요. 3절에,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라고 주님이 예루살렘 이스라엘보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인터셉트 예루살렘 이스라엘을 누가 채는가, 예수님이 가운데 들어가 가지고 예수님이 이 말씀을 아버지가 아들을 향하여 말씀으로 전부 다 전환시켜 버립니다.

선지자는 그냥 백성들에게 있으니까 전하는 거죠. 예수님은 백성들이 없어요. 말씀의 상대자가 자기밖에 없어요. 계약 상대자가. 이스라엘은 망했습니다. 자기가 모든 말씀을 혼자 다 받고 자기가 그 안에서 예수님 본인이 선택을 해버려요. 죄인들 가운데서. 아버지는 예수님을 선택했고.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알아서 선택할 권한을 받았어요. 아버지한테. 요한복음5장에 나옵니다. 내가 원하는 자를 내가 선택한다. 그 권한조차 아버지한테 인수인계 받았다. 이사야62장 덮지 마시고요. 손으로 꽂아놓으시고요, 요한복음5장21절,“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예수님이 자기가 원하는 자를 살린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린다.

그러면 하나님이 살린 자 따로 있고, 예수님이 살린 자 따로 있는가, 그게 아니고 요한복음6장에 보면 아버지께서 모든 걸 내게 일임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원하는 자를 예수님이 살린다. 이리 돼요. 그래서 이 말은 뭐냐 예수님께서는 중재자를 통해서 예수님을 통해서만 일한다. 이 말입니다. 그걸 인간 쪽에서 지하실에 있는 인간 쪽에서 보게 되면 예수님만 하나님이 돼요. 다른 하나님은 없습니다. 인간 쪽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이고 예수님 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예수님의 영이 계시는 거예요.

그러니 삼위일체는 애초부터 성립이 안돼요. 그냥 예수님 중심주의입니다. 모든 게 주로부터 와서 주로 말미암아 주께 돌아간다. 주님 중심주의지. 삼위일체 중심주의가 되면 안돼요. 인간은 자기 주제파악을 못해가지고 그런 논리 신학을 하고 그걸 정통개혁주의라 생각하지요. 예수님 중심 그걸 다른 말로 해서 십자가 중심주의에요. 삼위일체로 구원받는 게 아니고 십자가의 능력으로 구원받아요.

하나님을 알아버리면 하나님을 아는 내가 지옥가면 안되지만 십자가로 구원받으면 십자가 앞에서 나는 죽은 자가 되어야 돼요. 내가 죽었다는 조건하에 나는 구원되는 겁니다. 왜? 내 존재가 죽고 난 뒤에 주님은 예수님의 속성으로 새로운 창조,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내는 만들어진 그 인간만 천국에 구원받거든요.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겪게 되는가, 내가 죽었다. 내 자아가 죽었다는 것을 반드시 경유해야 돼요. 그런데 나는 나를 안 죽이거든요. 살려고 하지 나는 나의 의가 있는데 의가 아까워서 내가 어떻게 죽을 수가 있습니까. 심지어 자살해도 무엇은 잃지 않는다. 자살하는 것이 뭐냐 하면 최후의 나의 의는 챙기면서 그냥 챙기고 죽겠다 해서 자살하는 거거든요.

복음모르는 성령 안 받은 일반인들의 삶이 그게 사실은 죽어가는 거예요. 자살하는 거예요. 지연된 자살이에요. 그들이 열심히 돈 벌고 열심히 활동하는 것은 이러고 죽겠다는 거예요. 결국은. 내비둬. 이리 살다 죽을래. 그럼 소원 들어줘야 되지요. 그럼 가게에 와가지고 “바지 얼마입니까?” 할 때는 “예, 바지 얼마입니다.” 이렇게 해야지. 거기다가 복음 이야기하면 안 되지요. 이 바지 입고 살다 죽어라. 햄버거 가게하면 손님 오면 햄버거 팔아야지요. 속으로 이 햄버거 먹고 죽어라. 표 찍어줘 가지고 대통령 됐으면 찍어줬으면 대통령 누가 되든 다 죽어버려라. 이왕 죽은 인간인데 죽든 냅두지요.

아들이 자기 사람을 살린다는 요소가 성도라면 내 의에 있던 자리에다가 이것이 대체해서 이것이 꽂아져야 돼요. 천주교 신자들 안방에 제일 깊숙한 곳에 무엇이 있습니까. 요만한 마리아상있지요. 마리아상 있고, 옆에다가 천주교 십자가는 예수님의 형체가 있는 십자가에요. 기독교 십자가는 그게 없고. 예수님의 형체가 있는 십자가. 십자가에다가 묵주가 이렇게 걸려있어요. 그래야 아침마다 빨리 빨리 나중에 급하게 해서 밥 먹어야 하기 때문에. 해가지고 성경문보고 기도문하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이게 뭡니까? 자기 의에요. 자기에 대한 자기 충성도를 자기가 지금 보고 있는 거예요. 나 이정도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침 9시에 온 포도원일군이에요.

이 노동을 설마 무가치하다고 할 수 없겠지. 이러고 있다 말이죠. 그게 바로 거짓 선지자, 거짓 목자들이에요. 십자가를 경유를 안 하는 거예요. 이게 십자가입니까? 예. 그럼 다음 코스 갑시다. 이게 빈무덤입니다. 자, 다음 코스 빨리 빨리. 전세버스 떠나야 하니까 빨리 갑니다. 그냥 내가 관람하는 것. 나의 바라봄. 내가 보고 있는 것만 보는 거예요. 주께서 십자가에 섰음을 모르는 거예요. 계속해서 자기의 의를 자기의 50, 60동안 교회를 다니고 성당을 다닌 걸 그걸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그게 나를 살릴 수 있다고 여기면서.

그게 나의 뭐가 되겠어요? 나의 자존감이 되는 겁니다. 자존심이 되는 거죠. 교회 와서 맨날 싸우는 게 결국 청소 똑바로 해! 그거 싸우는 게 아니고 자존심 싸움이에요. 어디 햇권사가 고참권사한테 달려들어. 니 몇 년 되었어? 나 다른 교회에서 50년. 나 이 교회에서 60년 됐어. 눈 깔어. 씨~ 이거 뭐 김장할 때 젊은 것들은 놀고. 외지에서 온 나이 많은 것들만 다하고 이거 뭐야? 왠 천사의 외침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중보자가 우리를 꾸중할 수가 있어야 돼요. 그래서 성령께서 꾸중을 하시는 거예요. 성령께서. 제발 겁내지 말고 너의 의를 유지하려하고. 얼마나 겁이 나요. 이거 흠집 날까봐 얼마나 겁납니까. 겁내지 마! 니는 시체가 겁을 내요. 시체인데. 숯 덩어리가 무슨 겁을 냅니까. 숯 덩어리가. 천국 가는 나는요, 내가 죽고 난 뒤에 만들어진 나에요. 지금의 나가 아니고 죽었다고 우리를 통보해 줄 때 나의 있는 옷가지 하나 내복 하나 전부 다 주의 것입니다. 자식부터 해서 모든 가정 모든 것이 내 것이 없고 다 주의 것이에요.

그래서 나의 일은 없어요. 전부 다 주의 일입니다. 여기에 이사야 한 번 봅시다. 여기에 결혼하지요.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건 기쁨의 끝장은 결혼이에요. 헵시바라는 것은 나의 기쁨이 그에게 있다. 쁄라라 하는 것은 결혼한 여자를 쁄라라 합니다. 기쁨으로 결혼한 거예요. 관계입니다. 관계. 여기서는 더 이상 포도주, 곡식이 왜 필요한지 알겠지요. 포도주, 곡식이 생존하라고 준 게 아니고 신랑, 신부 그냥 살라는 것이 아니고 둘이 혼인해서 한 가족이 이루기 위해서 신랑, 신부하는 거예요. 어느 땅에서? 약속의 땅에서, 약속의 끝은 혼인잔치에요. 주께서 혼인잔치 이야기가 예수님이 하시는 끝 이야기입니다.

내 혼인잔치에 참석하라 했지. 이런 거. 혼인잔치. 이사야62장5절 봅시다.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신랑으로 오신다는 게 아모스에 나오지요. 우리가 얼마 전에도 지금하고 있는 요엘서 나오지요. 특히 유명한 말씀 호세아에 나오지요. 내가 너의 신랑이라는 겁니다. 그럼 여기 내가가 하나님 입니까. 아니지요. 중보자. 예수님이 우리의 신랑으로 온 거예요. 이 말은 스가랴에 있는 이 모든 말씀은 말라기에 있는 모든 말씀이 나를 위한 말씀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예수님을 위한 말씀이에요. 왜? 그럼 나는 들러리야? 아니요. 이미 나는 그 말씀에 입각해서 우리는 율법에 죽었어요.

죽은 자가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는 그 광경을 죽은 나를 살려내어서 니 잘났다가 아니라 니 의롭다가 아니라 주님 의롭다를 보게 하는 관람객으로 참여시키기 위해서 죽은 우리를 주님이 살려내 가지고 아버지와 예수님 사이에 일어난 일을 구경하게 하시고 그걸 증거케 하시는 겁니다. 이게 바로 복음의 비밀이에요.

그 십자가의 살인사건이 그것 때문에 필요한 겁니다. 니가 죽은 걸 니가 모르잖아요. 그래서 니 죽었다는 것을 예수님 내가 너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말미암아 너는 아버지 보기에 이미 죽은 거야. 십자가를 봐. 니 죽은 거 맞잖아. 십자가 죽은 거 나일까? 나만 일까? 아니야. 나도 죽었지만 그 안에 너도 죽었어. 이리 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신념관계가 아니고 신앙관계에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예수님과의 관계 안에서 나는 살아있다. 주님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살아있는 거예요. 내가 살기 위해서 주님이 필요한 게 아니고. 반대가 나가시면 안 되는 거예요. 이게 스가랴 9장, 10장 아니 스가랴 전체 내용입니다. 이게. 전체 내용이 이 내용이에요.

요한복음6장에 봅시다. 29절요.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일이니라 하시니” 내일이 없고 전부 다 주의 일이지요. 그럼 주의 일에 가정에 청소하고 청소기 윙윙 밀고, 세탁기 돌리고 양발 빨아 넣어라. 넣고 그거 ①번 세탁기 일이다. ②번 세탁기에 집어넣는 나의 일이다. ③번 주님의 일이다. 어느 일하나 주의 일 아닌 게 없지요. 그 일은 뭐냐 하면 주님의 노동입니다. 그게 관계이기 때문에 바로 믿음이에요. 주님께서 주님의 일인 것을 알리기 위해서 나로 하여금 생존케 하시는 피조물 되게 하는 그 관계가 세탁기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하루 일과를 해서 일어나는 거예요.

그런데 어떤 97세 먹은 할머니가 증손자 돌본다고 세탁기에 양말 넣고 하다가 그 할머니가 세탁기 돌아가는데 한 10분 남았는데 갑자기 심전기 해서 돌아가셨다. 심장이 기능이 정지되어 돌아가셨다. 그러면 죽은 것은 누구의 일입니까? 이게 누구의 일이겠어요? 이 사람이 복음을 안다면. 이게 전부 다 주의 일이지요. 그러니까 세탁기는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세탁기는 계속 돌아가지요. 그게 누구의 일입니까? 세탁기 돌아가는 것은 주의 일이지요. 나는 죽어도 주의 일은 영원히. 주의 일은 영원히.

그러니까 애초부터 그걸 역으로 필름을 반대로 돌리면 내가 태어날 때부터도 주의 일, 그럼 태어난 일은 주의 일중에 하나.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도 주의 일. 코 흘리게 한다고 손수건 달고 하는 것도 주의 일. 대학 들어가는데 재수해서 들어갔다. 주의 일. 내가 재수했다는 말은 아니고요. 대학교 재수 안했어요. 그냥 들어갔어요. 재수도, 취직 안 해서 노는 것도 주의 일. 군에서 탈영하는 것도 주의 일. 어느 거 하나 나보고 너는 제발 빠져달라는 그런 주의 일 아닌 게 없습니다.

신념은 좀 빼라. 신념 빼고 신념이 빠지지 않으면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이 될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바로 나 혼자 사는 것을 양과 목자의 관계로 대체해 버리겠다는 것이 스가랴에 나오는 처녀의 등장, 그리고 곡식이 풍성하고 포도주 풍성할 때, 거기에 처녀 나오고 청년, 전부 다 예수님의 신약의 작품을 주님에 의해서 새로 생긴 새로운 피조물을 스가랴에서 이렇게 예언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거예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스가랴에서 어떤 내용을 다 이루었는지 말씀을 통해서 역으로 추적해보았습니다. 주의 일을 방해자가 우리 자신인 것을 알았사오니 나의 의로움, 나의 자존감이 주의 일을 모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주여, 저희로 하여금 복음이 일하시는 이 신비를 통해서 늘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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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9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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