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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양20211216a슥9장17절(물 퍼내기)-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

안양20211216a슥9장17절(물 퍼내기)-이 근호 목사

오늘은 스가랴9장. 16절, 17절. 15절부터 보겠습니다. “15.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맷돌에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 취한 것 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16.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17.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곡식은 청년을, 새 포도주는 처녀를 강건하게 하리라” 이리 되어있지요. 여기에 16절에 보면, 구원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어제 수요설교 때에 구원에 대해서 제가 하나의 정의를 내렸습니다. 구원이란, ‘내가 존재하는 곳에서 벗어나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곳에 존재하는 것.’ 이게 구원이다.

여태까지 내가 있던 그 곳, 내가 있던 그 곳에서 벗어나서 내가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는 곳에 가는 것. 이게 바로 구원이지요. 마태복음20장에 천국을 설명하면서 포도원 비유를 이야기하면서 포도원의 일군을 통해서 천국에 대해서 미리 이야기해줘요. 사람들이 자꾸 예수님 오시기 전에 사람들이 자꾸 천국, 천국 이야기하니까 그거 전부 다 엉터리거든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해서 미리 이야기해줘요. 미리. 미리 알려줘요. 천국이 궁금하니까 미리 알려준 거예요.

천국은 뭐냐 하면 내가 존재한 곳에서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곳으로 벗어나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래서 포도원 비유 일군에서 천국은 뭐냐 하면 “왜 내가 노동한 대가 없이 이곳에 오게 하셨습니까?” 이거에요. 내가 오후5시에 와서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루 품삯을 주잖아요. 한 시간 일했는데 하루 품삯을 줬잖아요. 오후 5시에 온 사람들. 그러면 한 시간만 일하면 한 시간 품삯을 준다는 내가 살던 고향, 이 세상에서는 내가 노동한 대가로 내가 사는 거예요. 이게 아까 이야기한 일반화에요. 일반화.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거에요.

그러면 천국가려면 무엇이 완전히 작살나야 돼요? 일반화적인 삶을 작살내야 돼요. 내가 살던 동네의 사는 방식이 박살나줘야 된다 말이지요. 이게 제거되어야 돼요. 내 노동으로 내가 복을 받는다는 것이 제거되어야 된다는 말이에요. 헌금해서 전도해서 기도해서 복 받는다. 이게 제거되어야 돼요. 예배 참석해서 복 받는다. 이게 제거되어야 돼요. 이건 익히 아는 거니까. 익히 아는 걸 그냥 가버리면 이건 구원이라는 게 성립이 안돼요.

그래서 성경에서 뭐가 중요하느냐 하면 이방민족의 존재가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이방민족들의 특징은 우상을 섬기게 되어있어요. 우상을 섬기는 자들. 이방민족 본인은 우상이라 하지 않고 뭐로 보느냐 하면 신. 다른 말로 뭐냐 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에요. 하나님을 섬기는 자. 하나님을 섬기는 자를 하나님이 공격을 해서 그거 완전히 박살냅니다. 이게 15절이에요.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셔서 그들을 물맷돌로 밟아버리지요. 포도를 물맷돌로 밟아버리면 색깔이 어떻게 됩니까? 포도가 터져서 색깔이 파란색 입니까? 붉은 색입니까? 붉은색 나오지요. 타작마당. 타작마당의 특징은 알갱이 하나의 존재성을 완전히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포도 하나가 있는데 이걸 물맷돌로 밟아버리면 여기서 뭐냐 하면 포도 없다! 가 돼요. 그게 요한계시록14장18절부터 보면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그 다음에 포도주 뭡니까? 포도주 틀이지요. 포도주 틀은 포도를 살리는 게 아닙니다. 포도를 으깨버리는 거예요.

포도 개체의 존재감을 으깨버리는 겁니다. 으깨버리니까 그 포도주 틀에서 뭐가 나옵니까? 붉은 액체가 흐르지요. 그걸 뭐냐, 피가 흘러서 천육백 스다디온. 정사각형 이 세상전체가 완전히 피바다가 되는 겁니다. 이 말은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개체를 애초부터 개체를 인정한 적이 없다. 개체를 인정하지 않고 그냥 집단으로 본 거예요. 그런데 현대인들은 집단이 중요합니까? 내 개인이 중요합니까? 개인이 중요하지요. 그게 개인주의 아닙니까. 개인주의거든요. 개인이 자본을 흡수해서 나는 나만이 사는 거예요. 더불어 사는 게 아니고 더불어 사는 것은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나만 사는 게 자본주의에요. 나만 사는 게.

옛날에 60년대에 노래는 같이 사는 거예요. 흙에 살리라. 홍세미. 몇 달 전에 죽었지요. 갑자기 심장으로 죽었거든요. 노래 한 곡으로 평생 먹고 산 사람인데. 불교 집안인데 아내가 지독하게 기독교여서 마지막에서 예수 믿고 교회 다니고 죽었다는 소문이 있어요. 흙에서 사는 거. 더불어 사는 거. 나훈아의 이런 거. 그냥 더불어 사는 거예요. 요즘 애들은 한 집에 살아도 자기만 살아요. 자기 방에 들어가서 문 잠가 버리고. 게임하고. 한 집에 살아도 자기만 살아요. 자기만 살기 때문에 외부의 누구의 가족도 이용하려고 하지 어떤 가정에 대한 그러한 사랑, 그런 것은 장남이나 몰라. 그런 흉내 낼까. 다른 차남이나 형제는 지만 생각하고 동생 생각도 안 해요. 장남은 희한해. 팔자인 모양이라.

현대는 전부 다 개체 중심이에요. 그래서 돈을 모으는 이유가 내 잘되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옛날에 여고 졸업해서 돈 벌면요, 의례히 부모는 돈 가지고 와. 시집갈 때 돌려줄게. 돈 가지고 와! 이리 되거든요. 내가 알아서 돈 모아가지고 니 안 그러면 화장품 사고 다 쓰니까. 내가 모아가지고 다 해준다. 의례히 자식은 고등학교 졸업해가지고 경리 보다가 돈을 부모한테 주는 걸로 되어있는데 지금은 부모한테 용돈 따로 받고 지 돈 지가 챙기고. 지 통장 따로 챙기고. 부모가 내주는 건 당연한 거고 내가 왜 부모 돈 대주나. 그냥 내복이나 사 입으세요. 첫 달 봉급 내복으로 보내고 그걸로 끝났어.

가정 책임. 이건 장남이나 장녀가 하는 짓이지 그 다음부터는 동생들은 이런 것도 없어요. 누가 희한한지. 장남이 희한한지, 동생이 희한한지. 어느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지 분간이 안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개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요. 왜냐 하면 개인의 존재는 이미 확정됐습니다. 누구냐, 바로 예수님만이 개인의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정한 이름은 주의 이름밖에 없어요. 다른 이름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름은 아담에 속한 이름으로 간주하지 그 이름에 의미 없어요. 그래서 아담의 이름 플러스 여기에 언약이 주어지게 되면 이게 계시의 이름이 되게 되고 계시의 이름은 주의 이름의 내용물이 되는 겁니다.

아브람이라는 아담의 이름에 하나님께서 언약을 주니까 아브람이 뭘로 바뀌었어요? 아브라함으로 바뀌었지요. 이 아브라함은 아브람의 이름이 아니고 예수님의 하는 일, 내용을 보여주는 거예요. 아브라함. 왜냐 하면 아브라함은 자식이 하나도 없어요. 없는데 이름만 덜렁 뭡니까.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 되어있어요. 많은 숫자의 아버지. 어떤 집단의 조상이 되어버려요. 그러니 이건 아브람에 관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에 관한 거예요.

이삭도 마찬가지에요. 이삭이라는 이름 자체가 농담, 우습다 이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뭐냐 인간의 일반성에서는 포함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이 하실 일이에요. 야곱이 뭐로 바뀌었지요?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었지요. 야곱은 아담의 이름이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 이스라엘로 바뀝니다. 전쟁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거예요.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매일 전쟁해야 돼요. 이방민족과 전쟁해야 돼요. 우상 섬기는 것과 진짜 하나님 섬기는 것과 전쟁해야 돼요. 그래야 일반성 속에서 특수성이 뽑아져 나오니까.

그것이 하나님께서 허락된 자만 들어가는 하나님의 경계선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은 선을 넘을 수가 없어요. 인간은 매일 몸부림치고 행복에 몸부림 쳐봐도 그것가지고 선을 넘었다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저리 가! 오지 마! 오늘 설교 제목 ‘오지 마!’

그런데 인간은 과학적으로 따져보니까 이 개체 중심인데요. 개체로부터 집단이 있어야 된다는 힘을 모아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힘으로 모아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개체에서 어떻게 집단화될 수 있느냐, 그 개체의 속성이 집단화의 공통적으로 연결되어있는가,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 문제가 바로 생명과학Ⅱ 20번 문제에요. 수능에. 정답 없음의 그 문제.

하디-바인베르크의 바인베르크의 법칙을 거기다가 문제에다가 고지했거든요. 하디는 영국 사람이고, 바인베르크는 독일 사람인데 이 사람이 1908년 때 했던 법칙이 있어요. 그 법칙은 이 법칙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같으면서 왜 다르냐, 거기에 대한 법칙이에요. 인간은 같아야 되는데 어떤 점에서 다른가에 어떤 법칙을 내놓은 겁니다. 모든 인간은 코를 갖고 있지요. 개체에. 그럼 이건 인간의 공통점이지요. 공통점인데 코 중에서 딸기코가 따로 있는 거예요. 딸기코가. 딸기코가 있고, 정상적인 코가 있다고 하면, 딸기코는 뭐냐 술 먹었을 때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는 게 딸기코 아닙니까. 조금만 들어가면 코가 벌겋게 되는 거예요.

이건 왜 다 정상적인 코가 아니고 딸기코가 왜 등장하느냐, 여기에 대한 법칙을 세운 겁니다. 정상적인 것을 우성이라 하고 딸기코를 열성이라 할 때, 우성과 열성이 1대에 거쳐서 2대에 거쳐서 3대에 거쳐서 서로 서로 세대가 지나가면서 서로 섞이게 되는데 섞일 때 이 비율이 변화느냐, 안 변화느냐의 법칙이 아까 하디-바인베르크 법칙이에요. 결론은 뭐냐 하면 폐쇄된 집단에서 어떤 새로운 외부 요소가 없는 한 안에서는 요 우성과 열성의 법칙은 한결같이 변화지 않는다. 그 법칙이에요. 이게.

그럼 이것이 그런 상식적인 이야기가 왜 필요 하느냐, 그 집안에 유전병이 있을 수가 있거든요. 그 유전병이 서로 대를 이어서 다른 집안끼리 계속해서 교접을 하고 결혼을 해도 그 유전병은 계속해서 동일한 비율로 이어지는 거예요. 안젤리나졸리 알지요. 유방암 걸릴까 싶어서 미리 잘라내는 것. 이 법칙을 믿었기 때문에 잘라내는 거예요. 이것은 인간 과학 자체가 분명히 개체이면서도 어떤 집단에서 인간은 몸부림 쳐봐도 빠져나갈 수가 없는 거예요. 개체를 고집하는 게 뭐냐 하면 자아에요. 자아. 나라고요. 나. 오직 나는 나를 내 안에서 나를 내쫓기를 싫어해요. 나는 나를 계속 영원토록 품고 가고 싶어요.

그런데 그 나라는 게 이게 원래 창조 때 없던 거예요. 나 라는 게. 이게 어디서 생겼는지. 그건 창조 때 일어난 사건을 잘라버렸으니까. 성경에서는 분명히 언급해 줬잖아요. 성경에서는 분명히 진리를 이야기해줬는데, 선악과를 완전히 그걸 개무시하고, 잘라버리고 분명히 십자가를 통해서 자아가 있다는 자체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미 죽은 존재로 간주하거든요. 자아가.

인간은 자아가 있을 이유가 없어요. 그냥 몸만 있으면 되지 자아가 있을 이유가 없다고요. 고린도후서12장 한 번 봅시다. 참, 이게 불교의 이론에 의하면 이 자아를 없애는데 아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모든 것이 나는 없고 의식뿐이다. 이런 주장하면서 나오는 대목이 있어요. 여기 고린도후서12장1절에서 3절 보겠습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러니까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 어떤 몸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아요. 사도 바울이. 어떤 분이 있는데 그 분이 삼층천 천국에 올라간 거예요. 그 천국에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니고 천국에 사람이 있어요. 있는데, 전에 내가 나로 살던 그 지점에서 내가 나로 살지 않는 다른 환경으로 바뀐 게 구원이라 했지요.

구원이라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나를 위해 살다가 나가 아닌 다른 분을 위해서 사는 존재로 바뀌는 게 구원이에요. 이 세상에서는 구원이라는 게 왜 안 되느냐 하면 다른 분을 위해서 살게 되면 결국 나한테 좋은 일이 되지요. 라고 결국은 나를 그대로 붙들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나부터 시작된 아이디어가 그 아이디어를 내가 스스로를 뽑아낼 수 없어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그렇게 해서 그 결과가 나한테 결국 이득이 되고 나한테 도움이 된다면 나는 그걸 믿겠습니다. 하는 거래, 흥정, 그걸로 계속 가는 거예요.

그래서 복음 안다고 복음 모르는 사람하고 만나가지고 복음 전파한다고 복음 이야기하면서 복음 전하는 본인이 나중에 헷갈려버려요. 주께서 그렇게 조종하시지요. 저 사람 정도는 나는 복음을 알고 저 사람은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나는 충분히 저 사람을 설득할 수 있고, 저 사람 전도가 가능하다고 시작은 그렇게 좋게 했는데, 결국에는 그 사람의 답변을 못하고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어떤 상황에서 해결하려고 내가 나설 때에 반드시 나의 정당성을 경유하기 때문에 그런 사단이 일어난 겁니다. 말하고 있는 나는 너보다 옳다고, 말하고 있는 나는 니보다 아는 게 많다는 나를 본의 아니게 형성시켜 놓고 그걸 들키지 않은 채 하면서 마치 내가 없는 것처럼 그렇게 위장하니까 상대방이 마귀가 되어가지고 눈치 채지요.

사도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떤 한 사람이 있는데 나라고 하지 않고, 어떤 한 사람이 있는데 14년 전에 하늘에 올라갔는데 그가 몸밖에 있는지 몸 안에 있는지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신다. 그러니 내가 굳이 그걸 알 필요가 없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시면 되지 내가 굳이 알 필요가 뭐가 있느냐 모든 일은 그 분께서 하시는데 내가 했나? 그 분이 하셨는데.

아까 강의 처음에 한 거 다시 해봅시다. 포도원에서 마지막 한 시간만 일했는데 포도원 전체의 품삯을 줄 때에 내 쪽에서 그걸 설명할 수가 없어요. 그건 주인한테 물어봐야 돼요. 왜 저에게 그렇게 하십니까? 하고, 해답은 내가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가 아니라 내가 알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넘겨야 돼요. 질문을. 주께서 알아서 하신 걸로 저는 족합니다. 그걸로 된다 말이지요. 그걸 알려고 굳이 애쓰게 되면 나는 그걸 알았기 때문에 구원 받는다는 논리가 또 성립돼요.

3절에 보면,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자꾸 자기 자신을 가지고 ‘그’라고 이야기해요. 삼인칭을 사용한다고요. 사도바울은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나가 아니고 삼인칭이에요. 이건 주님의 시선에서 나를 바라보니까 나는 주님의 소유물이 되니까 3인칭이 되는 거예요. 이 물건 내 것이라 할 때, 물건이 주님의 물건이 되는 거예요. 주님의 소유의 물체가 되는 거예요. 소유물이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자기로부터의 해방이지요. 내가 알던 나로부터의 벗어남, 이게 구원이잖아요.

그가 이끌려갈 때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했지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거 부산강의에서 했어요. 이 세상은 언어의 세계라고요. 이 사회 자체가 언어의 세계에요. 언어에 뭐가 실리느냐 자신의 요구사항과 욕망이 실리고 그 욕망은 내가 만들어낸 욕망이 아니고 나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던 그 타인의 욕망이 언어를 통해서 나한테 전달됐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 말에 담긴 욕망을 내가 탐을 내게 되어있어요. 욕망은 자극 받게 되어있으니까요.

친구 만나서 친구가 하는 말이 “나는 한남빌에서 산다. 한 200억짜리 집에 산다.” 라는 말을 했잖아요. 그런데 말에 뭐가 담겨있습니까. 나 200억짜리 산다는 타인의 욕망이 담겨있지요. 욕망이 담겨올 때 저거 사나, 이거 사나 뭐 하루 된장 찍어 살면 되지. 라고 쿨하게 잊어보려고 갖은 노력해도 소용없어요. 나도 이왕 죽는 거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갑자기 원룸에 사는 자기 신세가 처량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때까지는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 맞대고 네 식구 한방에 자면 되지. 이게 이제 내 팔자도 참 더러운 팔자다. 그 소리 듣기 전에는 낙원이었던 자기 원룸이 완전히 지옥으로 바뀌었어요. 그러니까 타인은 새로운 나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타인의 욕망이. 나는 그걸 거부할 수 없도록 내 욕망에 의해서 내가 포로 잡혀있고 그래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나로 다가서면 어떤 경우라도 그건 해결점이 전혀 없습니다.

뭐로 다가서야 되느냐 성도라면, 둘 다 언약의 발산으로 다가서야 돼요. 언약의 발산. 복음의 방출로 다가서야 되지요. 나 믿었다 하면, 너만 믿나 나도 믿었다 해가지고 절대로 나중에 식식거리면서 둘 다 화만 내고 있는 거예요. 둘 다 없애버리고 다가서야 되지요. 없는데 주께서 있게 하셨다는 것. 주의 은혜만 다가서지요. 예를 들면 나는 한 시간만 일했는데 천국 갔다. 이리 나오면 나는 30분일했는데 천국 갔다. 나 웬일인지 모르겠어. 나는 포도원 구경도 안했는데 천국 보내줬어. 그렇게 저희들끼리 싸우지 마시고요. 아이구, 한 시간 일했는데 너무 고생했어. 이러지 마시고요.

이게 바로 개체를 없애는. 하나님의 일은 개체 자체를 없애버리는 거예요. 나를 없앤다는 것보다도 개체, 나, 나 홀로만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산다는 자체를 없애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이라는 천국 백성이라는 그 집단, 하나님이 새로 만든 집단에서의 서로의 관계와 나만의 관계, 그걸 언어로 문자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천국내의 관련성, 관계성, 너와의 관계성을 신앙이라고 해요. 또는 신앙 관계. 믿음 관계. 신앙으로 엮여지는 거예요. 복음으로 엮여지는 거예요. 신앙관계에요. 그러면 나로 인하여 저쪽은 나와 연결되는 이것은 신앙이 아니고 신념입니다. 신념은 반드시 내게 내가 정당하든지 내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이렇게 신념은 활용되게 되어있어요.

자, 이 스가랴를 보면서 제가 이런 나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이거에 대해서 하나님의 조치는 한마디로 뭐냐 하면 폭력행사에요. 이게 스가랴9장15절이에요. 개체를 물맷돌로 밟아버립니다. 그 포도송이 하나, 하나를 다 으깨어버려요. 으깨어버리면 여기서 뭐가 나오느냐 개체의 문제가 아니고 유전자의 문제가 나오는 겁니다. 유전자의 문제. 생명과학2에 20번 문제는 개체 문제와 유전자 문제의 차이를 아느냐 묻는 문제였습니다. 결국 해답은 없었지만요.

나중에 퍼센트, 비율의 문제, 세대가 연결될 때에 우성과 열성, 또는 대대로 내려오는 유전병에 대해서 그걸 비율을 알아내야 의사들이 조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이러한 하디.바인베르크 법칙이라든지 이런 게 중요한 거예요. 하디.바인베르크 법칙은 흔히 일반적으로 아는 멘델의 법칙 안에 들어있는 거예요. 멘델 집단 안에 통하는 법칙이에요. 그러니 의사가 되어가지고 어떤 사람이 왔을 때 치료할 병인지, 유전병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대한 지식을 알아야 된다 말이지요.

만약에 그 비율이 그 유전병 비율(멘델의 법칙에서 2대 잡종에서는12(=9+3):4(=3+1)로서 결국 3:1의 비율로 나옵니다.)이 의외로 심하게 되어버리면 많아지게 되면 바깥에서 다른 요소가 뛰어들어 왔다는 그런 증거가 되기 때문에 그래요. 어디 나하 시만 갔다 온 적 있어요? 이런 거요. 어디 여행간 적 있지요? 울타리 바깥에서 다른 요소가 들어왔을 때는 유전자의 변이가 생긴다. 라고 진화론을 믿고 있는 현대 과학에서는 이 문제가 유의미, 의미가 있다고 보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과학이 생명과학이 수능 20번 문제는 학생들에게 보다 나은 집단을 위해서 이런 기본 지식을 갖춰야 된다고 문제를 낸 거예요. 보다 나은 집단을 위해서. 발전이라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우리 힘으로 지켜내고 그걸 안정성 있게 더 발전시켜야 되는데 여기에 필요한 지식들이 수능 문제에 나왔다 이리 보시면 돼요. 수능 문제 자체가 상당히 나 좋아라 되지요. 수능 문제는 신앙 문제에요? 신념 문제입니까? 신념 문제에요.

신앙이라는 것은 인간 세계에서는 신앙은 없습니다. 인간 세계에서 전부 다 말하는 것은 나를 믿느냐? 믿습니다! 하는 것은 신념에 관한 문제에요. 나한테 이익이 되는 문제다 말이지요. 신앙은 특수성의 문제에요. 어제 수요 설교에 의하면. 특수성에 관한 문제지. 일반성에서는 신념밖에 없어요. 신념은 신념을 측정하는 방법은 간단해요. 이게 뭐냐 하면 확률이에요. 확률. 현대과학의 마지막은 확률입니다.

핵이 있고 전자가 전자구름이 있을 때 전자구름이 왜 찌그러지지 않고 이렇게 멀리 떨어져있는가. 둘 다 이건 핵은 플러스고, 전자는 마이너스인데, 둘 다 붙어가지고 찌그러지면 이 집이고 뭐고 우리 몸도 다 압축이 크런치가 되거든요. 납작하게 된다고요. 왜 벌어져 있느냐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어있는가, 왜 거리가 벌어져있고 벌어져 있으면 단단하게 있어야 되는데, 왜 단단하게 있지 않고 자꾸 다른 것과 만나면 바람을 일으키느냐 말이죠. 전자에 어떤 위치가 있을 것이고 위치는 뭐냐, 어떤 지정된 돌아가는 게 아니고 확률로만 존재한다는 거예요. 확률로만.

곽이 있고 그 안에 오비탈이 궤도가 있어가지고 바깥에 있는 곽은 반응하기에 좋게 되어있고 안쪽에서는 단단하게 되어있고, 전자 확률이 그렇게 되어있는 거예요. 확률상. 그래서 현대과학이 내린 결론은 인간이란 확률이다. 이게 과학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인간은 확률이다. 주일 낮 설교에 이야기했지요. 인간의 모든 감정이나 기억이라 하는 것은 -30메가볼트에서 +50메가볼트사이에 전압 펄스의 순서맞춤, 서열이다. 이말이에요. 거기에 대한 열정을 두뇌가 하고 있는 거예요. 인간의 두뇌가. 이건 기억해! 저건 기억하지 마! 문제는 이건 기억해. 저건 기억하지 마. 저 전압은 받아들이고 저 전압은 버려! 라고 명령을 하는 당사자는 누구냐, 몰라요. 그건 과학이 밝히지를 못해요.

전압을 조정해서 기억을 조정할 수는 있지만, 그걸 외부에서 조정하지 않고 스스로 내던져주게 되면 왜 저런 사람은 나는 싫고, 왜 저런 사람은 좋은지를 모르는 겁니다. 제가 지금 폭력이야기하면서 그 폭력은 이방민족들이 살아가는 일반성에 대한 공격이라고 지금 계속 이야기하는데 그 일반성은 우상을 섬기고요, 그 다음에 그 우상은 뭐냐, 자아 자체를 위해서 신을 믿는 게 우상이라 말이죠. 자아 자체를 위해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사랑한다고. 사랑을 하면 계속 사랑을 해야 될 텐데 이상하게 특징은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이게 계속 외로워요.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외로워요. 그럼 부부가 왜 사느냐,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사는 거예요. 부부사이는 전혀 외롭지 않아요. 같은 식구인데 뭐가 외로워. 사랑은 외로움을 유발합니다. 그러면 외로우면 왜 안 되는데? 내가 왜 외롭지 않아야 되는 이유는 뭐냐, 그걸 모르겠는 거예요. 그걸 모른다고 하지 않고 뭐라고 하느냐 이렇게 이야기해요. 두렵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두려움을 매꾸기 위해서 누가 나를 보호해줘야 되고 그걸 사랑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상하게 사랑하면 할수록 이제는 헤어질까봐 나를 떠날까 싶어서 겁이 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두렵다의 반대말은 뭐냐 나를 보호해 달라. 사랑이잖아요. 사랑과 두렵다. 전부 다 이런 생각가지는 것이 주인공이 누구에요? 오직 누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그래서 이 나를 위해서 사랑을 언급하고 나를 위해서 두렵다 하니까 여기서는 뭐만 찾아오느냐, 그냥 가짜 신만 여기 들어붙을 뿐이에요. 진짜 신은 안 와요.

진짜 하나님은 뭐냐 하면 이 자체를 폭발시키지요. 폭발. 폭력이라. 왜 인간은 진정한 외롭지 않은 사랑을 못하느냐 하면 이미 사랑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그래요. 해여, 달이여, 별이여, 다 나를 사랑해 달라. 이 말 아닙니까. 지가 무슨 주 예수님입니까. 왜 지가 만들지 않은 해와 달과 별을 보고 자기를 향하여 절하래. 말이 돼요? 이거 말도 안 되잖아요. 말도 안 되는 그러한 것을 악마가 인간 개체에다가 다 심어놓은 거예요.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그런 의식으로 평생 고생이나 하고 살아라. 인간아. 신이 아닌 게 신인 체 하면서 모든 것은 내 발아래 꿇어야 된다는 거예요.

성도는 어떻냐, 성도는 두려움에서 벗어났다는 말은 자아로부터 벗어났잖아요. 내가 모르는. 성도는 두려움에서부터 시작해요. 해가지고 뭐냐, 신비로워요. 아까 고린도후서12장 봤지요. 뭐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지금 나는 어디입니까. 생각할 필요 없어요. 내가 그 세계에 있다는 그것만 있으면 내 인생 충분해요. 나는 봤다고 나는 빼버려. 나는 삼층천에 거기에 있었다. 더는 소원이 없는 거예요.

내가 예상도 못한 세계에 들어설 때에 한 시간만 일했는데 포도원에 하루 품삯을 다주는 이런 엄청난 혜택 앞에서 할 말을 잊어버린 거예요. 할 말을. 그러면 됐지. 거기서 찬송만 나올 뿐이지 뭐가 필요하겠어요. 두려움에서 신비롭다. 그 다음에 뭐냐, 감사다. 성도는 이거에요. 성도는. 내가 어떻게 나를 단도리 해야 되고 어디서 어디까지는 내 것이냐, 이런 거 필요 없어요.

이 신비로움, 이 신비로움을 주께서 주신 이 신비로움을 이게 복음인데요. 주께서 하신 업적. 주님의 성과, 이걸 하나의 뭐로 보느냐 냄비로 보자는 말이지요. 우동 냄비 있지요. 냄비를 거꾸로 하면 그 안에 쥐새끼가 들어가면 가만히 있는 냄비가 움직여요. 왜 움직입니까? 그 안에 쥐가 들어있으니까 쥐가 움직이니까 냄비가 움직이는 거예요.

쥐새끼는 우리가 되고 냄비는 주의 복음의 진리가 되겠지요. 우리는 복음의 진리를 뒤집어써가지고 안에 쥐새끼처럼 움직이면 그게 전체적으로 복음 자체가 활동하는 방식이 되는 겁니다. 여기 쥐 안에 주님이 들어있어요. 쥐는 죄인이고 주님만이 의인이니까. 구원자가 되셔가지고 우리를 가지고 예수님의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고 영광 돌리기 위해서 우리를 사용하고 움직이는 겁니다. 굳이 개체적으로 요거는 내거. 라고 따로 챙길 필요가 없어요.

이러한 복음의 신비로움과 엄청난 진리를 위해서 주님께서 항상 출발점을 이 두려움부터 출발 합니다. 이 두려움은 어디서 생기느냐 하면 내가 나를 지키고 싶어요.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자, 스가랴9장 16절을 보겠습니다.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이리 되어있지요. 이 본문을 만약에 교회 목사가 설교하면서 이 본문을 했다면 듣는 교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기분 좋게 생각하겠지요. 그런데 왜 기분 좋게 하느냐 하면, 그들의 자기 백성 속에 누가 포함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바로 나의 미래상이라고 여기고 기분 아주 좋게 여기겠지요. 그게 문제인 거예요. 그게.

여기17절에 봅시다.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곡식은 청년을, 새 포도주는 처녀를 강건하게 하리라” 이 말씀이 딱 나한테 적용되었으면 참 좋겠네요, 라는 욕망에서 이 본문을 만나는 거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 많은 유대인들과 오늘날 교인들이 이런 식으로 소위 신념생활하고 있으면서 본인은 신앙생활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나가 없어지지 않고 나가 유지되는 한 그건 신앙이라고 하지 마세요. 그건 신념이에요. 내 잘되기 위해서 하는 짓이에요. 그게. 자기를 위한 노동이라고요. 그게. 여전히 자기 노동이 있잖아요.

그럼 목사가 하는 말이 “여러분, 이렇게 스가랴9장16절, 17절, 들으셨지요. 주님의 약속입니다. 축복입니다. 믿으시려거든 이 교회에 나와서 충성하세요. 시간을 바치시고, 그 다음에 돈 바치시고. 결국 마지막에 설교 끝난 뒤에 돈 바치라. 아니면 예배당에 선교비 없고 교육관 빨리 넓혀야 되고, 주차장 넓혀야 되는데 돈이 안 들어옵니다. 이러니 여러분들이 16절, 17절 이런 혜택을 입었으면 염치가 있어야지 사람이 싸가지가 있어야지. 이런 복을 받았으면 돈을 왜 안 내놔.” 목사는 그 교회를 내 교회로 여기는 겁니다.

내가 안 죽었으니까 자기의 명예를 드높이는 교회이기를 은근히 바라면서 노골적으로 바라면서 그 교회에 온 거예요. 그건 교회가 아니고 회사입니다. 회사의 목적은 이익창출이에요. 그리고 거기 이사들은 명예회복이고. 그 장로들, 집사들 명예회복이고요. 이왕이면 나도 사람값 했다는 소리 듣고 싶다 이 주장이거든요. 그 사람값 그 소리를 왜 들어야 합니까. 니가 뭔데 그 소리를 들어야 돼요. 교회 안 다닐 때는 개차반이었는데 교회 다니고는 인간됐네. 그런 소리를 듣고 싶다는 거예요. 그런 소리를 왜 들어야 됩니까. 그거 들으려고 스가랴9장16절, 17절 그거 있는 줄 압니까? 그거 아니에요.

15절부터 들어가야 돼요. 짓밟혀야 돼요. 특히 우리는 뭡니까. 이방인이잖아요. 우리가 얼마나 나를 위한 신. 우상. 얼마나 하나님을 모든 삼위일체를 우상화로 다 바꿔놓은 그 조작하는 능력이 우리 안에 이미 욕망으로 들어 있잖아요. 그러면 16절, 17절 성급하게 내밀지 말고 15절부터 뚫고 나가야 돼요. 주님께서는 이걸 반복시켜버립니다. 성도한테.

15, 16, 17절 반복시켜요. 이 반복시킬 때 반복의 실험대상이 이스라엘이었어요. 이스라엘은 농경시대기 때문에 약속의 땅에서 농사짓기 때문에 곡식과 새 포도주 17절에 나오지요. 곡식은 청년을, 새 포도주는 처녀를, 곡식과 새 포도주만 있으면 그들은 사는데 행복이라는 걸, 축복이라고 느낀 그 때 그 시절에 그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이었어요.

요즘 청년들한테 밥 세끼 먹고 이밥에 소고기 말아먹고 그 다음에 가끔가다 음료수 포도주스 마시면 자식한테 해 줄 거 다 해줬다고 손 털고 행복하지 물으면 그게 행복합니까. 행복해요? 쌀밥에 소고기 국 끓여주고 그 다음에 맛있는 음료수 누룽지탕이라든지 해주면 어머님! 눈물 흘리면서 더는 소원 없습니다. 저 강건 할게요. 저 행복 할게요. 이런 청년, 자식들 봤습니까. 스마트폰 바꿔 달라. 나이키 신상 나왔는데 특별히 100켤레만 나왔는데 친구도 샀는데 나도 사줘. 이렇게 나오지요. 차 바꿔 달라 하지요. 니한테 곡식 줬잖아. 아침에 밥 먹여줬잖아. 이게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지요.

욕망이 그 때 이스라엘보다 커진 거예요. 욕망이. 17절대로 말씀대로 고대로 하려면요. 교회 나온 교인들에게 아침 밥 먹고 나왔고 그 다음에 맛있는 음료수 마셨으면 더는 하나님께 복 받을 필요도 없는 게 돼요. 그거까지가 형통함이고, 그거까지가 아름다움이에요. 하나님의 복의 아름다움이에요.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일용할 양식을 줬으면 다 준거다 이 말입니다. 먹는 거 입는 거 줬으면 됐다 이 말이지요. 참새 수준으로 줬으면 됐다. 짹짹거리기나 해라. 더 필요치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 요즘 현대인들은 기본 복은 다 누리고 있어요. 복지정책이 괜찮아 가지고. 노인네들 한 달 사십만원씩 줘가지고 이 정도는 다되게 되어있어요. 노름만 안하면, 술 담배만 안하면 지 죽을 때까지는 밥 먹을 수 있어요. 나중에 쌀 떨어지면 라면 먹으면 되잖아요. 무슨 복을 더 원합니까. 이 15절, 16절, 17절 이 말씀은 물맷돌로 안 밟아 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인줄 알아라. 이것들아. 이런 뜻이거든요. 매일 생존해 주신다. 이 말이에요. 매일 생존해 주실 때 이게 바로 복이 아니고 뭐냐 말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복이 아니냐.

16절에 보면,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신다.” 시편100편3절에 보게 되면, 깨나 유명한 구절이 있어요. 깨나 유명한 구절이라는 것은 보통 족자로 또는 액자로 많이 기독교 가정이 많이 있어요. 기독교 가정에 집사님이 이사 가면 성구 구절하나 액자로 해서 선물하잖아요. 3절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여러분들이 많이 들어본 적 있지요. 교회 많이 다닌 사람들. 초자 아니고. 그의 백성이고 기르시는 양이다 말이죠.

이 말씀의 뜻은 뭐냐 하면 양 위주로 일체 허락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너 욕망 위주로 나는 니한테 휘둘리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니가 하나님을 이용해서 니가 니를 기르지 말라는 뜻이에요. 친히 기르시는 분은 니가 아니고 따로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나에서 뭐로 변했습니까? 스가랴9장16절에서. 나는 사라지고 나는 뭐가 되었어요? 양이 되었지요. 양이 됐다는 것은 그냥 양이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 누구의 양이에요. 어떤 목자의 귀속된 양이에요. 12년동안 피 흘린 그 여인이 주님의 옷 가를 만지게 되어서 주님이 칭찬하신 이유가 바로 주님과 그 여인 사이에 시편100편3절, 주께서 친히 기르시는 양인 것을 주님도 아시고 그 여인도 알기 때문에 이것은 신념의 관계가 아니고 신앙의 관계지요.

자, 신앙은 내가 얻고자 하는 게 일체 없는 거예요. 주님께서 원하는 것만 내게 도달하고 도착하면 그걸로 만족한 것. 그게 신앙의 관계에요. 그 관계를 증거 하라고 성령이 우리에게 오신 거예요. 그 관계성. 말만 김양, 박양하지 마시고 최양하지 마시고 주님의 양이에요. 기르시는 양. 그 기르시는 양은 어떠냐 처음에 출발은 어디서부터 한다? 이방인입니다. 우상부터. 우상부터 출발해서 진짜 하나님의 말씀의 시편100편3절 말씀대로 진행하시는 언약대로 진행하시는 진짜 하나님. 진짜 하나님까지 관계를 우리를 통해서 매일같이 순환시키지요. 반복시키는 거예요.

자, 시작은 우상부터 시작하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뭐가 생긴다? 우상의 특징은 뭡니까? 두려움이지요. 두려움. 벌써 몇 번째 하나, 다 잊어버렸어. 두려움이지요. 항상 말씀 듣고 좋다고 했는데 돌아서면 5분도 안됐는데 두려움이지요. 10분 봐 줍니다. 10분까지 있다 하는 것은 대단한 거예요. 두려움이지요. 감사가 아니고 두려움이에요.

복음은 들었는데 복음이 나한테 밥 먹여주나. 이렇게 된다니까요. 복음이 우리가정에 무슨 화목을 주었나, 이렇게 되는 거예요. 내 가정에. 그래서 주님께서는 두려움에서 신비로움으로 바뀌면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나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 없어지게 만들어 버려요. 하나님의 복음이 오게 되면 나의 존재가 없어지면서 나게 있었던 두려움, 걱정, 염려, 공포, 그것이 같이 없어져 버려요. 신비로움과 감사가 이어지는 겁니다.

복음을 날려 보내는 것은 내가 나 혼자 사는 거예요. 나는 양이 아니었고 신념가로 사는 것. 아주 지독한 신념가. 나는 내 힘으로 일어서리라. 내 무릎을 내 힘으로 일어서리라. 대표적인 노래가 에요. 나를 높은 곳에 세울 것이라는. 대단한 신념에 관한 노래입니다. 그리고 인순이가 불렀던 그런 노래들. 이런 것. 아주 노골적인 것은 정수라가 불렀던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88올림픽 때 불렀던 노래.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 이건 레닌 주장이에요. 공산주의 주장이에요. 공산주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그 공산주의 메시아니즘 모토가 그겁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이런 거요. 얻다보니 코로나까지 다 얻어버렸는데.

이 세상의 해와 달과 별은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내가 해와 달과 별에게 빌 수가 없는 거예요. 나한테 도움 달라고 할 수가 없는 겁니다. 미국 사람들이 미신처럼 섬기는 것이 뭐냐, 캐서린 양초에요. 성 캐서린 양초. 양초를 피우면 어떻게 여자한테 효과가 있다는 거예요. 임신했을 때나 이런 게. 수술 앞두고. 성 캐서린은 옛날 유명한 성자에요. 그 양초를 팔아요. 이게 미신이거든요.

스가랴10장2절 봅시다.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드라빔들은 드라빔은 우상이지요. 우상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복술자 알지요. 점치는 거. 점괘 보는 것. 진실하지 않는 것을 보고 헛된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여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한다. 사람들이 왜 위로를 원하고, 왜 꿈을 원합니까? 본인의 인생을 외부의 것을 도움을 얻어서 결국 내가 잘되겠다는 거예요. 내가 내 욕망대로 되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로 그렇게 교회가 문제고 목사가 문제해도 그런 문제되는 목사를 그리워하고 본인이 찾고자 하는 거예요. 본인이. 진실은 나를 좋게 안하면 진실이 아니라고 우기는 그 우상성. 거기에 대한 주께서는 어떻게 조치하시는지 그건 10분 뒤에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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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9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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