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설교 요약(요엘3장1~8절, 선)
수요 설교 요약(요엘3장1~8절, 선)
안양강의 하기 전에 어제 수요일 설교 요약.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거니까. 어제 강의의 핵심은 일반성 속에서 특수자를 뽑아내는 겁니다. 특수성을 뽑아내는 겁니다. 일반성에서 특수성을 뽑아내고 뽑아낸 특수성을 보편화시키는 거 이게 하나님의 뜻이에요. 일반성이라 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는 것 그걸 일반성이라 해요. 인간들의 일반성은 뭘 하느냐 하면, 나의 일은 내가 알아서 하는 것. 이게 일반성이에요. 인간이라면 의례히 하는 것 있잖아요. 김장했어요? 김장할 때 기도하고 했어요? 의례히 하는 것 이게 일반성이에요. 일반성은 경상도에서는 톰배기라고 하는데. 톰배기 잘라버리는 것. 상어고기를 톰배기해서 제사 올릴 때. 앞, 뒤를 잘라버리지요.
인간은 창조 전 잘라버립니다. 모르겠다에요. 그리고 죽음 뒤 잘라버려요. 몰라요. 요 안에서 톰배기 탁탁 끊어버립니다. 끊어버리면 요 안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모임이에요. 내가 할 수 있는 것. 김장하는 것. 장 담그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거거든요. 내가 할 수 있는 것. 애 키우는 것, 밥해주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거니까 여기의 관점은 뭐냐 하면 나의 유지와 보존 같은 말이에요. 나의 보존과 유지에 이것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많이 끌어 모아야 되잖아요.
그래서 뭘 하느냐 하면 나의 번창, 나의 보존과 나의 번창, 사람들은 이것을 끌어 모으게 되면 내가 더 안정적이지요. 내가 더 안정적입니다. 이걸 사람들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행복이라 이야기하지요. 내가 안정적으로 되는 것. 내가 오래 유지하는 것. 행복이라고 해요. 들 아프고, 안 아프고. 내 소원대로 많이 뭐든지 할 수 있는 것. 행복의 요소가 뭐가 되느냐 하면 행복의 요소는 이거에요. 자유. 내가 나답게 할 수 있는 자유. 일반성이기 때문에 주변의 것을 건드리지요.
어제 수요 설교에서는 건드린다. 일반성은 건드리는데 이방민족이 뭘 건드리느냐 이스라엘을 건드려버렸어요. 일반성이 특수성을 건드려 버렸어요. 특수성은 뭐냐 하면 요 중간에 내가 나를 하는 요것을 제거하는 게 특수성이에요. 창조 전의 계획이 일반적으로 주욱 가는 거예요. 창조 전의 계획이 뭐냐 하면 없는데서 있게 하는 것. 이게 창조입니다. 그리고 죽은데서 살리는 것. 죽은데서 살리기 때문에 없는 것을 있게 하고 있는 것을 그냥 있지 않고 죽여버리지요. 죽은 이후에 죽은 것을 살려내는 요것이 뭐냐 하면 이건 인간들은 모르고 하나님만 알 수 있는 특수성이에요.
왜 인간들은 모르느냐 하면 선악과 따먹을 때 이미 인간들은 주님께서 따먹지 말라 하는 것은 하지 마라. 하지 마라에 영역 속에 그들은 갇혀버린 거예요. 내가 하지 마라 했지! 분명히 했지. 하지 마라 했지! 하지 마라고. 내가 따먹지 말라 했잖아. 고 안에 갇혀버립니다. 여기 울타리 쳐버리면 이건 뭐냐 하면 하지 마라 했잖아. 너 저주 받는다! 에 인간들은 갇혀있는 겁니다.
그러면 이 선을 통해서 이쪽에서 뭐냐 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거예요. 하지 마라. 이쪽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퍼주시는 은혜다 말이지요. 그 은혜를 보여주는 것이 뭐냐 하면 특수성, 이게 바로 무슨 나라냐 이스라엘 나라가 되는 거예요. 이스라엘 나라.
이스라엘 특징은 아브라함의 언약, 없는데서 있게 하고 죽은 데서 살리는 그 작용으로 이스라엘이 있는 겁니다. 그 이스라엘을 이방나라 일반성에 나라에 딱 붙여주지요. 딱 붙여주니까 이 일반성은 내 인생은 내가 키워나가야 되기 때문에 참지 못하고 건드리게 되는 겁니다. 건드리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닌 게 하나님의 계획을 건드린 겁니다. 폭탄을 건드린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하나님의 뜻은 뭐냐, 이 선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있는 것을 없게 하고 산 것을 죽게 만드는 하나님의 저주가 이 특수성에서부터 일반성에 퍼부어주는 겁니다. 그리고 이 특수성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느냐 잃어버린 데서 다시 되찾아냄으로서 온전한 특수성을 영원히 보장 받습니다. 탕자 이야기가 그렇고. 잃어버린 동전 이야기. 99마리 양을 놔두고 한 마리 양을 되찾는 그 이야기. 그게 하나님의 선, 경계선을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그러한 이스라엘 특수한 나라가 돼요.
그것을 주께서는 보편화시켜요. 이걸 유포시켜버리면 특수한 나라 빼놓고 전부 다 이쪽은 다 작살나는 겁니다. 그 이야기가 수요일 이야기였어요. 그러니까 이건 일반성과 특수성에서 특수한 것들로 완성된 상태에서 그걸 유포시킨다. 보편화시켜 버립니다. 그럼 일반성은 그 보편화에 대해서 완전히 당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이 행복 있잖아요. 행복. 인간의 행복은 그 자체가 거짓입니다. 인간은 행복할 권한이 없어요. 그래서 인간들은 행복할 권한이 없는 줄 본인이 몰라요.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렇게 이야기해요. 세상사는 게 왜 이리 힘드냐 하지요. 분명히 자기가 별 잘못한 것도 없는데 힘이 들어요. 견디기 힘들고, 살기 힘들고.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잘못한 것이 없다는 이유가 뭐냐 창조 전에, 창조시에 무슨 일이, 나중에 죽은 뒤에 무슨 일이 있는 줄 모르고 톰배기 처럼 잘라버리니까 이 안에서 갇힌 상태에서 해답을 얻으려 보니까 내가 행복해야 될 권리가 있는지 그것도 모르겠고 무조건, 무조건 행복해야 돼. 라고 하는데 결국 이것은 뭐냐 하면 몸부림치거든요. 몸부림. 몸부림이고 발악인 거예요. 그냥.
자기에 대한 집착이고. 그래서 나는 정당한데 왜 나는 망했는가. 이 문제에요. 나는 정당한데.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나는 왜 망해 가느냐. 잘못 있는지, 없는지 이 전까지 가봤어요? 안 가봤잖아요. 본인이 잘못 없다는 거예요. 나는 정당하다. 이걸 가지고 자기 의라고 하는 거예요. 인간은 자기 의에 미쳐가지고 나는 정당하게 되면 별 불행하지 않을 거라고 지가 지 맘대로 생각하는 거예요. 지 맘대로. 이게 일반성이에요. 이게. 일반적인 인간이에요.
그러니 교회 나오는 것도 하나의 몸부림치는 거예요. 발악하고 있는 겁니다. 불행하지 않고 행복 쪽으로 나가고자 하는 몸부림이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는 거예요. 남들 새벽기도 하는 거 잠시 컨닝해서 들어본 적 있지요. 들어보면 뭐라고 합니까? 어떤 거예요? 본인이 이야기해요. 참아야 돼! 참아야 돼! 나만 참으면 다 해결돼! 식구에서 나만 견디면 돼! 나만 참고 견디면 돼. 참으면 참을 수가 뭐가 증가해요? 참는다는 것이 나의 정당함과 나의 의로움이 계속해서 추가가 되는데요.
이게 인간들의 일반적인 사는 모습입니다.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내 거 지키는 것만 관심 있는 더러운 세상. 이 더러운 세상. 나는 정당한데 니가 잘못해서 내 인생 조저 났다고. 남 탓하는 이 더러운 세상.
특수성은 모든 인간은 다 죽었다고 부터 시작해요. 살아올 가치도 없고 산 사람도 없고, 행복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도 없다. 다만, 잃었다가 찾을 때에 비로소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하나님의 창조 전에 약속하신 그 약속을 구현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을 말하게 되는 겁니다. 요기까지. 요게 이게 수요 설교 요약입니다. 다음은 다음 달에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