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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9장 31절 (예수 이야기)211221b-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9장 31절 (예수 이야기)211221b-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시간을 요약해서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성도는 본인이 사라진 목표를 통해서 주님 세계로 들어간다. 주께서 물론 거듭 유도해서 들어가지요. 주님 세계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나만을 위한 목표라는 것이 이게 가정이 되었든 국가가 되었든 민족이 되었든 교회가 되었든 교회 부흥이 되었든 어떤 것이 됐든 그런 다 부질없는 소리가 돼요. 그거는 나의 욕심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나의 목표가 아니에요. 그래야 나를 숨기는 것이 아니고 나를 숨기지 말고 끄집어내서 잃어버리는 순간이거든요. 그렇게 되면 목표니까 나는 무엇 무엇 ‘되고 싶다’가 아니라 나는 무엇이 ‘되어진다’가 돼요. 나는 무엇이 되고 싶다 하면 이거는 고립적 존재에요. 나 혼자 사는 것. 그냥 하나님 도움 받아서 결과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 내가 되고 싶다. 되고 싶다가 아니라 무엇이 되어지는 거에요. ‘되어진다’.

이걸 반겨야 됩니다. 감수해야 되고 억지가 아니라 기쁘게 반겨야 돼요. 그럼 나는 무엇이 되어지느냐? 여기에 대해서 첫 번째 두 번째 오늘 문제 너무 많이 던진다. 첫 번째 두 번째 있는데요. 1번 나는 죽게 된다. 2번은 나는 십자가에 달린다. 몇 번이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나는 십자가에 달리도록 되어 있지 그냥 죽게 되어있는 게 아니에요. 죽는 것은 뭐 백신 맞고 죽고 차에 치여 죽고 연탄가스 마셔서 죽고 죽는 것은 누구나 태어나면 다 죽어요. 죽을 때 그냥 죽으면 안 되고 십자가에 달린 채 죽어야 돼요. 십자가에 달린 채. 십자가에 달린 채 죽으면 그냥 죽으면 멀쩡한 내가 죽지만 때가 돼서 죽지만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는 예수님과 연계되어야 됩니다. 나는 예수님을 핍박했다와 연계해서 죽어야 이게 십자가에 달린 죽음이 돼요.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너는 나를 핍박했다는 말은 어떤 뜻이냐 하면은 나를 핍박할지라도 내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네가 열심히 예수님을 모독하고 핍박한다고 해서 네가 나를 핍박했으니까 너는 지옥가거라 가 자동적으로 이렇게 연결이 안 되게 되어있다 이 말이죠. 그게 고려하지 않아요.

인간이 어떤 행동을 했기 때문에 구원에서 탈락 같은 그런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애초부터 구원 자체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원은 주님 자신의 목표에요. 우리의 기대가 아닙니다. 인간은 어느 정도냐 하면은 인간은 자기 인생에 대해서 후회할 자격도 없습니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 것이기 때문에 마치 자기 것인 냥 자기 인생에 대해서 후회하면 안돼요. 나 이렇게 살은 것을 나 후회해.

이상하게 겸손하게 보이는데 이상하게 저한테는 교만하게 들리는. 뭘 후회한단 말이야. 그럼 후회할 짓을 안 하면 그 인생은 뭐 주님 앞에 괜찮다는 평가를 받을 거 같아요? 후회할 것이 없어서 구원받는 것입니까? 아니잖아요. 후회한다는 말은 아직도 내 인생을 자기가 꼭 쥐고 있겠다는 뜻 아닙니까. 그런 뜻이거든요.

내가 나를 쥔다는 것은 A가 A★를 쥐고 있는 거에요. 내가 원하는 내 변화를 내가 시도하겠다고 지금 우기고 있는 고집하고 있는 겁니다. 여보 예수 믿으세요 하면 듣는 남편은 그러면 예수 믿으면 지금의 나와 당신 말대로 천국 가는 나의 변화를 내가 시도할 수 있다 이 말이지? 고개 끄덕이면서 믿지요.

그러니까 예수 믿으라는 아내가 지금 나쁜 짓하고 있는 거에요 지금. 이왕 마지막인데 아내 소원이나 들어주자. 이런 아내에 대한 배려, 아내를 너무 괴롭혀서 아내에 대한 미안함. 자기가 뭐 경상도 남자입니까? 그냥 사랑하면 될 건데 꼭 말로 해야 되냐? 이런 식으로요. 그냥 사랑한다고 이야기해. 아니야 쑥스러워서 못해. 내가 행동으로 보여줄게 맨날 이런다고요.

사랑한고 이야기해봐. 아니야 나 안 해. 그냥 행동으로 너한테 잘해줄게. 왜 말을 못해. 너는 내 사람이라고 왜 말을 못해요. 그것은 상대방을 어떻게 하든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 내가 끝까지 내가 되고 싶은 내가 되겠다는 그 악마적 고집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첫 째 시간에 약간 언급했지만 그 대목을 다시 한번 중요한 대목이라서 다시 한번 두 번째 시간 하면서 그걸 한번 거론해보겠습니다.

내 이야기가 예수님의 이야기로 전환되었는가? 전환되었는가? 여기서 뭐가 빠지라고 했지요?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빠지라고 했지요. 내 이야기가 예수님의 이야기가 될려면 예수님이 내 안에 고립적으로 살고 싶은 나,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싶은 나에 주님이 무단 침입을 해줘야 돼요. 무단 침입입니다. 우리의 허락 없습니다.

그냥 쳐들어와서 나의 모든 알갱이를 다 삼켜버려야 돼요. 덮쳐야 돼요. 주님의 이야기가 될려면 다시 말해서 주님에 관한 이야기가 안 될려면 주님이 쳐들어와야 돼요. 주님에 관한 이야기는 뭐가 되느냐 하면은 이게 바로 신앙이고 간증이 돼요. 이것은 신앙적이 아닙니다.

주님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나올 때 거기서 나온 이야기는 두 가지가 갈라져 나와요. 어떻게? 이름을 크게 쓰겠습니다. 두 종류의 인간으로 갈라져 나옵니다. 첫 째 인간은 뭐냐? 모든 아담에 속한 인간이에요. 아담에 속한 인간입니다. 이것도 성경에서 다 이야기한 거에요 주님께서. 기도할 때 중언부언 기도하는 것. 이게 여러분 바리새인 보고만 이야기한 게 아니에요. 금식할 때 금식하는 거 티내는 것,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걸 왼손이 알게 하는 것, 마음속으로 간음하는 것, 마음속으로 미워하는 것, 전부 다 아담에 속한 인간들이 바로 그 일을 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언급한 거에요.

두 번째는 뭐냐 하면은 주님이 바른 인간이다. 이 두 가지가 같이 동반해서 나와야 이게 주님의 이야기입니다. 아담에 속한 모든 인간류는 율법에 의해서 말씀에 의해서 뭐가 되느냐 하면은 죄인이 되고요. 예수님이 하는 이것이 바로 뭐가 되느냐 하면은 이게 의인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야기는 죄인과 의인 두 개 다 나와야 되고 말하고 있는 나는 어디에 속하느냐 하면은 1번에 속해 있어요. 1번에 속한 나. 그래서 1번에 속했기 때문에 1번에 속한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 A에서 뭐를 원하느냐 하면은 A★를 원하는 거에요. 1번에서 2번 어떻게 건너가는가? 여기에다가 뭐가 들어가느냐 하면은 말씀이 들어와버려요.

말씀이 들어가버리면 A에서 A★가 되는 여기에 이것이 방해받습니다. 이 이야기를 2번에서 해주는 거에요. 합쳐서 이게 뭐냐? 예수님의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소위 신학자들하고 목사라는 인간들은 뭐냐 하면은 1번을 이야기를 안 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2번 이야기해요. 예수님의 제자는 몇 명? 12명. 참 잘했어요. 이런 거.

성경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은 이렇게 했습니다. 계속해서 성경 이야기하는 거에요. 뭐가 빠졌어요? 그 성경 이야기해서 나의 얻어야 될 본래 목적을 달성하는 나는 여지없이 작살났다는 이야기를 빼먹고 있는 거에요. 나는 성경 말씀 이용해가지고 내가 천국 가는 star가 되고 싶어 했던 내 본심을 빼버리면 그거는 예수님 이야기가 아니고 예수님에 관해서 자기가 들은 지식 이야기하고 있는 거에요.

이거 1번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자기의지입니다. ‘자기의지’. 영어에서 의지로 표현한 단어가 will이거든요. ‘will’. 그런데 will의 과거가 would거든요. ‘would’. will은 강한 자기의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사람들은 will을 잘 안 써요. will 대신에 will의 과거형 would를 많이 써요. 뭐 해주겠습니까? would 할 때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will은 강한 자기의지를 드러낸다면 would는 뭐냐 하면은 확률상 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고 확률에 강압, 압력을 많이 축소시켜서 would하는 거에요. Would you like some coffee?

상대방의 선택을 약간은 허용하는 게 would고 will은 강하게 이거 안하면 나 당신하고 결별이야. 강하게 하는 것. 상대방의 허락의 영역을 약간 허락하는 것을 would로 표시한다고요. 그러나 뭘 하던 간에 이것은 인간의 자격의지를 말하잖아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잘 아는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일단은 제가 언급해볼게요. 일단 언급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과 관련되어 있어요. 중요한 핵심에 도달했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은 인간 대 인간의 만남과 인간 대 주님의 만남의 차이를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둘 다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 베드로가 또는 제자들이 예수를 볼 때 주님으로 봤겠습니까?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났겠습니까? 제자들이 십자가 지기 전에,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난 거에요. 이걸 누가 언급하느냐? 예수님이 언급합니다. 뭐라고 되어있어요?

누가복음 9장 18절에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무리가 인간이죠. 무리가 보기에 예수님을 인간으로 보는 거에요. 이 세상의 모든 출발점은 뭐냐 하면은 인간 대 인간의 출발점이 되는 겁니다. 인간 대 인간의 출발점을 거치지 않고 인간 대 주님으로 가는 방법은 없습니다.

제가 아까 첫째 시간에 뭐라고 했던가요? 두 번째 시간 처음에 뭐라고 했던가요? 자신의 실패를 자기의 실패를 목표가 없어지지 아니하면 주님께 나아가는 방법이 없다. 주님께 나간다는 말은 자기의 목표가 상실되는 거죠. 자기의 목표를 상실하면 주님 만날 수 있다가 아니라 주께서 이끌어내게 되면 갈수록 점점 더 자기 목표가 이게 시답지 않은 거고 사소한 거고 의미 없는 것을 느끼면서 주님과 가까이 된다 이 말입니다.

자기 목표가 사라지면서 주님 속으로 들어간다. 아까 그런 말했지요? 이제 여러분들이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어렵게 해나가봅시다. 어렵게. 어렵게 할 수밖에 없어요. 인간 대 인간의 관계, 인간 대 주님의 관계는 바로 가는 법은 없다고 했고 먼저 뭐부터 시작합니까? 인간 대 인간의 방법부터 시작하는 거에요. 왜 그러느냐 하면은 제자들이 그랬어요. 제자들이. 제자들이 그랬다고요.

일부러 어렵게 할려고 하는 게 아니고 주님이 인간세계 속에 들어오다 보니까 사람은 주님을 뭘로 봤습니까? 그냥 평범한 인간으로 본거에요. 그래서 헤롯대왕이 헤롯왕이 예수님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군대를 보내었고 거기에 천사가 개입할 줄은 몰랐지요. 심지어 동방박사 죽이는 것도 헤롯이 실패했지요. 동방박사가 알아서 빠졌습니까? 아니면 누가 와서 알려줬습니까? 천사가 와서 다른 길로 가라고 했지요.

참 그 이야기 들으면 듣는 우리는 참 섭섭해요. 왜 섭섭하느냐 하면은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살려주지 말고 아예 헤롯을 죽이면 안 됩니까? 그런 능력 있잖아요. 왜 헤롯 대왕은 안 죽이고 뭐 드라마 찍는 것도 아니고 아슬아슬하게 폭력을 가하는 자를 아예 죽이면 되는데 그렇지 않고 폭력은 폭력대로 그 씬을 살리고 그들에게 손에 매이지 않는 다른 또 촬영 장면을 씬을 또 따로 찍는다고요. 왜 그렇게 하시는 거에요?

그것은 주님은 우리 목표가 아니고 우리 편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주님은 자기 편이지 우리 편이 아니에요. 우리가 감독질하고 하면 안돼요. 우리는 하나의 출연자지 감독이 아닙니다. 그리고 감독의 목표는 우리가 구원받는데 있는 게 아니에요. 예수님이 얼마나 우리를 어떤 식으로 우리를 예수님 자신을 위한 존재로 전환시키느냐 그게 핵심이지 구원받고 싶은 내가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아싸!” 이거는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어서 천당 가는 것도 이거는 A★에요. 내가 되고 싶은 거에요. 교회 가서 성경 보면서 은근히 갑자기 자극받아서 그런 목표가 생기는 겁니다. 아 이런 수가 있네. 천국 가는 수가 있네. 몰랐잖아. 나 예수 믿을거야. 이거 뭡니까? 그거는 자기 목표가 안 사라졌잖아요. 내가 지옥 안 가고 천국 가겠다는 그 목표마저도 주님을 만나면 그것 때문에 네가 나를 핍박한 거야 라는 한소리를 듣게 되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네가 너의 목표를 안 살리기 때문에 늘 너는 나한테 삐걱삐걱 살아. 그러니까 너는 구원이라는 집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감사가 없어요. 감사가. 자기 노리는 것도 없는데 무슨 감사가 있어요. 자기 노리는 것만 있을 뿐이죠. 감사가 없어요. 고맙습니다 할 건덕지가 없어요. 자기 천당 갈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얼마나 헌금하고 얼마나 수고했는데. 교회 청소도 다 했는데. 감사는 나한테 감사해야지. 왜 주님한테 감사하느냐. 이렇게 나올게 뻔하단 말이죠.

차마 그 말은 못하고 주님께 감사합니다, 예예예. 십일조 다 했잖아요.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그러니까 아무리 천하의 주님이라도 내가 보람 있게 즐겁게 한 나의 목표 나의 가치는 손대지 말란 말입니다 이런 식이에요. 나의 가치, 우리 가정의 소중함을 손대면 나 미워할거야! 이렇게 나오는 거에요.

알기 쉽게 말해서 no, yes가 우리한테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안됩니다, 됩니다를 우리한테 요구한 적이 없어요. 아멘, 진실로 그러합니다 라는 아멘은 사랑이 지나가고 난 뒤에는 결과입니다. 결과로 나와요. 그래서 아멘 하는 것도 내 뜻이 아니고 성령께서 오셔야 아멘이 나옵니다. 성령께서. 성령이라는 외부성이 와야 아멘이라는 거에요. 그냥 아멘 하는 것은 이것은 하나의 주술 외우는 거에요. 아멘.

어떤 목사가 설교하는데 옛날에 대구의 지방교회에 거기는 완전히 설교자가 민중들에게 심리적으로 체면을 걸어놨어요.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믿음이 있을려면 내 말이 주의 말씀이라면 말 끝나자마자 아멘으로 화답해야 됩니다 이렇게 요구를 한 거에요. 그러니까 그 집회는 시끄러워요. 그러므로 아멘! 무슨 말했는데? 말 한마디 끝나자마자 아멘 해가지고 교인들이 스스로 자기한테 흥분을 스스로 유도하는 거에요. 자기기만이죠.

목사님 보세요. 아멘으로 화답했으니까 구원 받는거 맞지요? 자꾸 목사한테 인정받을려고 하는 거에요. 목사는 그 심리를 노려가지고 말씀에 아멘 하시면 여러분들 속에 성령께서 그렇게 아멘 하시기 때문에 가는 거 맞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둘 다 앉아서 고스톱 치는 것도 아니고. 그게 뭡니까. 시끄러워. 이현래 목사. 워치만 니에서 갈라진 위트니스 파에 속한 사람들. 아 참. 어디 진짜 휘발유 있으면 휘발유 몇 통 가져가가지고... 주께서 지옥을 왜 불로 만드신 이유를 알겠어요. 주님의 분노.

본인 구원에 본인이 참여할 것을 계속 본인들이 개발해내요. 그래야 마음이 편하거든요. 세리와 창기 생활해서는 영 마음이 안 편한 거에요. 본인이 뭔가 A에서 A★로 발전할 기미, 그러한 증거 성화된 증거, 인격성이 나아졌다는 증거, 그 증거가 있어야 본인이 마음이 안심이 돼요. 이건 누굴 믿느냐? 본인이 본인을 믿는 거에요 그거는. 본인이 본인을. 그러니까 본인이 실망스러우면 본인한테 후회를 하는 거에요.

드라마에 보면 남편이 사이코패스 같은 남편이 가끔 나와요. 그런데 그 사이코패스 같은 남편한테 늘 허리띠로 진짜 모욕적이죠. 허리띠로 얻어맞는 그 부인도 같이 사이코패스가 돼요. 드라마에 보면. 네가 사람들 앞에서 나 재벌 3세인데 네가 사람들 앞에서 내가 시키지도 않은 말을 네가 그 현장에서 그 파티장에서 했잖아. 내가 많이 참았다. 오늘 좀 맞자 해가지고 밀실에다가 저택에는 그런 게 있답니다. 밀실이 있어요.

이렇게 눌러서 들어가는 거기 들어가가지고 팰 때 때리는 남편도 사이코패스지만 얻어맞으면서 잘못했어요 이런 거 있잖아요. 그 여자도 환자에요 내가 보기에는. 여자도 환자에요. 하도 맞다보니까 이게 가스라이팅인지 길들여졌는지 자기가 얻어맞는 그걸 통해서 자기 앞에 천사표가 막 붙는 거 같아요. 부채표가 아닌 것은 활명수가 아니지요. 천사표가 없는 것은 성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얻어맞는 핍박받는 천사로서 자기만족에 빠지는 거에요. 그 여인이. 안 때려주면 본인이 뭔가 허전해요. 한국교회가 완전 사이코패스 다 만들어놨어요. 그걸 보게 되면. 간발의 차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간발의 차가. 그 작은 차이가 이제 복음을 알면 그런 것을 뽑아낼 줄 알아야 돼요. 저게 사이코패스인지. 안 그러면 진짜 프리패스인지. 그냥 막 천당 가는 사람인지 그걸 구분할 줄 알아야 돼요.

구분하는 방법은 뭐냐? 본인 이야기가 나오면 본인이 얻어맞고 순교했다 나오면 안 되고 예수님이 이야기가 나와야 돼요.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은 예수님이 해석한 예수님의 말씀이 나와야 돼요. 예수님이 해석한 예수님의 말씀. 너는 나를 핍박했고 예수 믿는 너는 나를 핍박했고 사울아 너는 나를 핍박했고 핍박하는 너를 내가 건졌다. 그 이야기가 나와야지요.

그럼 핍박의 근거가 뭡니까? 모든 말씀이 핍박의 근거에요. 왜? 그 말씀을 가지고 우리는 내 목표를 이룰려고 했으니까. 이제 감이 오지요? 시키는대로 다 한 게 주님이 시키는대로 다 한 게 그게 주님에 대한 핍박이 될 줄이야 사울도 몰랐고 오늘날 인간들도 모르고 있어요 그게.

문제 다시 봅시다. 주께서 우리를 그냥 죽입니까? 십자가에 죽게 하십니까? 성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지요. 그런데 성도는 그냥 죽을 수 있는데 내가 나를 자살할 수 있고 그냥 순교할 수 있지만 십자가에 죽는 것은 인간의 몫이 아닙니다. 그거는 성령이 와야 돼요. 성령이 와야 돼요. 성령이 와가지고 피자먹는 거 그것도 십자가의 죽음이에요. 좀 너무 심했어요? 피자먹고 옆에 사이다 한 잔 먹는 것.

감사라는 것은 내가 패배하고 내 목표가 무산되고 내가 더는 손댈 수 없다는 그 짧은 순간에 감사가 나오는 겁니다. 이거는 내 신상에 아무것도 없어도 나는 망했다를 즐거이 말할 수 있어야 돼요. 내가 망했다. 진짜 재산 날라가고 몸 아프고 그거 말고 그냥 멀쩡하게 가만 있어도 나는 내가 하나님 보기에 망한 존재라는 것을 불현듯 확 올라와서 깨닫게 될 때 그게 바로 감사에요. 그게 기분 좋은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무게감이 완전히 제로가 됐기 때문에. 그동안 그 망하는 것을 지금 이 순간 누가 만들었어요? 죽어가는 남편 옆에 누가 간호케 했습니까? 전에는 누가 했어요? 내가 했어요. 신앙적으로. 그게 바로 삐! 그게 망한 거에요. 주께서 나로 하여금 같이 망한 자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옆에 간호하게 하신 거에요. 둘 다 똑같애.

그러니까 아까 이야기 다시 해봅시다. 두 종류의 인간을 말할 수 있어야 돼요. 첫째는 뭡니까? 아담에 속한 자, 누굽니까? 나잖아요 나. 나와 너의 관계. 아까 했죠. 인간은 뭐로 시작한다?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에요. 인간 대 인간의 만남. 그림으로 그리면 내 안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은 긴 창이 나오고 또는 가시, 창 나오고 너도 긴 가시가 나오지요.

이 이야기는 둘 다 배 내밀어서 둘 다 찔리는 거에요. 네 말에 내가 상처받고 내 말에 네가 상처받고. 부부싸움이란 것은 처음에는 여보 물을 먹고 난 뒤에 물그릇을 이렇게 다시 똑바로 놓으면 안 되느냐 이렇게 점잖게 시작하다가 좀 이렇게 심하게 되면 시댁 이야기 나오고 친정집 이야기 나오고 둘이 대판 싸우는 거에요. 이게 전부 다 속에 있던 가시가 튀어나오는 겁니다. 이 가시 이야기가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사사기에 나와요.

성경 좀 본 사람은 벌써 감 잡을 거에요. 사사기 9장에 7절의 이야기입니다. “요담이 그리심 산 꼭대기로 가서 서서 그의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아 여기서 이제 감동이 다르지요. 그리심 산에 올라가 본 사람하고 안 올라가본 사람하고 다르지요. 그 광경이 딱 떠오르는데. 내가 선 자리에 옛날 요담이 섰던 자리. 아래 밑에 세겜 마을이 있어요. 세겜 마을까지 가봤으니까요 저와 우리 가족은.

8절에 “하루는 나무들이 나가서 기름을 부어 자신들 위에 왕으로 삼으려 하여 감람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감람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게 있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한다고 왕을 안 해요. 그 다음에 무화과나무 보고 하니까 무화과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하니까 안합니다. 그리고 포도나무 하니까 사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를 짜야 해서 안한다는 거에요.

결국 뭐냐? 결국 왕이라고 하겠다고 목표를 가지고 왕의 관심을 가진 자는 어떤 자만 관심이 있는가? 14절 15절에 무슨 나무 나옵니까? 가시나무에요. 가시나무입니다. 자기 상처받은 거 외에는 아무것도 내놓을게 없는 거에요. 전혀 유익이 없는 것들이 결국은 서로가 선악과 따먹고 신이 됐기 때문에 나는 내 선에서 왕이야 라고 우기게 돼있는 거에요. 그게 12제자에요. 그게 예수님과 동행한 자들입니다.

대구강의에서 인간의 심리 이것만 알면 인간의 심보 90%는 먹고 들어간다고 했지요. 첫 번째 뭡니까. 남에게 지기 싫다. 이게 자기 의 잖아요. ‘자기 의’. 돈으로 지고 학력으로 지고 권력으로 지고 아파트 평수에 지지만 나의 의에 대해서는 남한테 질 마음이 전혀 없다. 나의 의로움과 나의 정당함.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지기 싫다.

네가 뭐 신부한테 목사한테 가가지고 너의 죄를 회개했다고? 나는 이번 달만 해도 5번 회개했어. 이게 뭐가 돼요? 자기 의가 되는 거에요. 너는 세 번 밖에 회개 안했지. 나는 5번 회개했어. 두 권사님이 요새 유행하는 성경쓰기. 너 진도 어디까지 나갔어? 나 사사기. 나는 이사야. 앗싸 내가 이겼다. 이게 말은 안 해서 그렇지 모든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은요 비교의 만남이에요. 경쟁의 만남, 라이벌 관계에요. 라이벌 관계.

제가 우리 가정 이야기를 했는데 이게 예수님의 이야기가 돼야 되는데 내 가정 이야기가 아니라. 사돈이 명절 됐다고 또 사돈 생일이라고 뭐 보내줘요. 받고 난 뒤에 가만있을 수 없어가지고 계산 딱딱 해가지고 거기에 맞춰서 또 택배를 보내줬습니다.

보내주니까 저 쪽에서 뭐 이거 안 보내도 될 걸 보냈다고 또 다른 걸 보내줘요. 이게 뭐 하는 시츄에이션이야. 뭐냐 이 말이죠. 한쪽이 그냥 자기 의만 포기하면 되는데. 한쪽이 자기 목표만 포기하면 되는데 둘 다 지금 기 안 죽겠다고. 이게 MBC 로고송입니다.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 모든 인간의 만남은 전부 다 경쟁이고 자기 의입니다.

또 제가 들었던 사람은 자기 며느리한테 생일을 해주는데 며느리가 시어머니 생일 하는 것을 보고 그걸 곱빼기로 며느리한테 해줘버려요. 이래도 네가 나 사랑 안하느냐 두고 보자. 내가 보기에 그거는요 며느리한테 해주는 게 아니고요 며느리에 대한 물질적 폭력이에요. 내가 보기에는. 제발 좀 기 좀 죽어라!! 이 말 아닙니까. 이 무슨 관계가 이런 관계에요. 며느리 시어머니 관계가. 이게 모든 관계가 다 그래요. 모든 관계가.

의사와 환자의 관계도 마찬가지고. 돈 치르고 카드 긁고 나가면 밖에까지 나와가지고 건강하세요. 이게 뭐에요. 더 이상 나한테 컴플레인 걸지 않게 사전 조치를 하는 겁니다. 인간의 심보는 모든 행동과 태도는 무엇이 바탕 되었느냐. 어떤 경우라도 나는 고립적으로 산다. 나는 고립적으로 산다. 나는 나로 인하여 산다.

그래서 이러한 여자나 이러한 남자들이 뭘 한다 합니까. 20대 30대 지나면 뭘 해요? 결혼을 한다 하죠.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에요. 결혼이라는 게. 둘 다 가시 이렇게 창 꽂고 무슨 결혼이 되겠습니까? 이거는 뭐냐 하면은 나는 나를 고립적으로 사는데 이 고립적인 나를 보호해 주오. 결혼해 주오 랑 비슷해. 나를 보호해달라고 이 여자는 남자를 만나는 거에요.

나는 내 맘대로 할 테니까 내 맘대로 하는 나를 잘 지켜주고 그게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나는 당신과 나와 결혼해 듀오. 결혼해 달라는 거에요. 그럼 남자는? 나는 내 맘대로 사는데 그걸 뒤에서 다 서포트할 수 있도록 당신은 나의 아내가 될 수 있습니까? 앞에는 물론 생략하고 앞에는 들통 나면 안 되니까 안하지요. 그냥 사랑해요, 이런 말로 하지만 나는 고립적이에요. 나는 나 밖에 몰라요.

그걸 주변에 보호해주면 나 당신에게 합당한 어떤 대우라든지 그런 용돈 줄 용의가 있다 이 말이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연애하면서 이걸 실험을 한번 해봐요. 해보니까 어떻게 됩니까? 이게 잘 돼요? 안돼요? 이게 무슨 보살? 서장훈 찾아가는 보살. 무엇이든 물어보살 이라든지 애로부부라든지 상담하는 거 있잖아요. 안 그러면 사자머리한테 찾아가가지고. 인생경험.

그 사자머리한테 찾아가가지고 자기 인생관 어떤 괴로운 거 이야기하면 사자머리 그 사람 정말 돈 많이 벌지만 딱 한 개에요. 나는 너한테 질 수 없다. 이게 바탕이 되어서 모든 게 나오는 거에요. 이 것뿐이에요 이것. 심리상담 이 것뿐입니다. 나는 어떤 경우라도 너한테 지고는 못 산다. 이거 하나뿐이라니까요 이거.

그러니까 이게 안 되니까 뭐하느냐. 개나 고양이 키우는 거에요. 나의 혼자 사는 것을 도와주는 것은 개와 고양이가 아주 적절해요. 땡이에요. 왜? 살아만 주면 내 고립에 지장을 안주잖아요. 내 고립에. 지장을 주면 갖다버리면 되니까. 그래서 인간이 오늘날 현대인들이 제일 힘든 것은 뭐냐? 사람과의 만남이에요. 사람과의 만남이 제일 힘들어요 그게.

나 혼자 내 마음대로 하는데 왜 그걸 네가 안 들어주냐. 이걸 누구 탓이냐 남 탓으로 돌린다고요. 남 탓으로. 너한테 월급 다 주고 너한테 아파트 사줬는데 왜 너는 내가 하고 싶은 거 왜 못하게 하느냐 이렇게 되는 거에요. 오늘 아침에도 어떤 상담프로에 보니까 남편하고 아내하고 대판으로 카메라 있는데도 싸워요.

왜 싸우느냐 하면은 여자가 장화를 신는데 종아리가 굵어가지고 장화가 안 들어가는 거에요. 그러니까 아내가 하는 말이 대뜸 종아리 줄이는 성형하러 가겠다는 거에요. 그걸 남편이 말린다고요. 그 싸움이에요. 종아리 줄이는 성형. 남편은 장화를 버려라 이렇게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나는 장화 없이는 못 살겠다는 거에요. 그 다음 말은 남편 쪽에서 뭐라고 나오겠습니까? 안 질려고 하면. 단답형 나오겠지요. 너는 장화가 좋냐? 내가 좋으냐? 뻔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여자 쪽에서 가만있지 않습니다. 뭐라고 나옵니까? 장화를 좋아하는 내가 좋아? 너가 좋아? 또 이렇게 나온다고요.

인간의 모든 말은 준비되어 있어요. 뭐냐 하면은 조금이라도 나의 가치를 나의 의로움을 지키는 방향으로 말들이 터지게 되어있어요. 나오게 되어있다고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만약에 주님이라면 아담에 속한 이 인간, 이 마귀적인 인간 어떻게 뜯어고치겠습니까? 주님 같으면 어떻게 고치겠어요? 잠깐 7.5초 동안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고치겠습니까?

가만 놔두지요. 가만 놔둬요. 가만 놔두고 질문을 던져요. 질문을 던지면 답변이 뭐라고 나오겠습니까? 그대로 마귀적이고 아담적인 답변이 그대로 나오겠지요. 주님께서도 됐어 됐어 알았어 알았어. 알았어. 해놓고 일은 누가 합니까? 일은 혼자서 해버려요. 혼자서 일하고 그 효과는 자기가 질문을 던진 그들에게 효과가 가도록 주께서 조치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이 하시는 일에 주님만을 위한 일이 있겠어요? 아니면 자기가 질문을 던진 사람이 포함될 수 있는 일이 또 있겠습니까? 어느 쪽이겠습니까? 예수님 혼자만 구원받는 일이 되겠어요? 아니면 자기가 질문을 던진 그 대상자들도 자신의 이루었던 성과에 포함되는 일도 만들어가겠지요. 그게 몇 절이냐 하면은 그게 27절입니다.

27절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아멘. 지금 이 이야기는 제자들 입장에서는 엄청난 이야기에요. 제자들은 지금 예수님의 계획을 전혀 모릅니다.

왜? 자기 계획에 미쳐가지고 내가 예수님 믿고 있으면 천당 간다 그 계획에 미쳐가지고 자기가 배제되면서 배제되고 난 뒤에 다시 주님 찾아오는 식으로 그것도 본인이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정말 never 아무것도 없는데 주님 혼자 한 성과를 그냥 하늘에서 폭설이 내리듯이요, 덮치는 거에요. 여러분 폭설이 내릴 때에 여기서 물 뿌려서 폭설 내립니까?

대구는 눈이 거의 안 왔지만 뉴스 보니까 서울에 눈 많이 왔다면서요. 서울에 눈 올 때 밤에 나가봤어요? 전부 다 추워가지고 특히 연세 많은 분들은 미끄러지면 큰일나잖아요. 눈 구경도 20대 30대 문제지요. 눈 지가 만든 것도 아닌데 애인한테 눈 자기가 만든 것처럼 눈 세상 자기가 만든 것처럼 폼 잡을려고 홍대 앞에 명동에 나가잖아요.

눈 뭉쳐가지고 맞아라~ 안서면 때린다 이렇게 눈 장난하지요. 아름다운 낭만. 눈 오는 것도 우리가 만드는 시츄에이션 아닙니다. 무대장치 아니에요. 미장센 아니에요. 주께서 무대장치를 미리 보여줬습니다. 그것이 29절에 나오지요.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절에 그때 누가 등장합니까?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하지요.

자, 모세와 엘리야는 31절에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모세 엘리야가 예수님하고 이야기 할 때 그 이야기 대화 주제가 있었어요. 주제가 뭘로 되어있죠? 31절에 두 자로 하면 뭡니까? 별세죠. 죽음입니다. 늙어 죽는 것 아니에요. 자살해 죽는 거 아닙니다. 모든 예수님의 죽음이에요. 아버지와 유일하게 관련된 아버지가 인정한 유일한 인간의 죽음이에요.

다른 죽음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죽은 거고 진짜 의미 있는 죽음은 오직 예수님만이 오셔서 이루어야 그 죽음이 있어요. 그 죽음이 뭐냐? 십자가란 말이죠. 자살한다고 구원받는 게 아니에요. 그 십자가에 들어가야 돼요. 십자가에 들어가면 인간은 무엇을 잃어버린다고 했습니까? 인간은 뭐를 잃어버리며 들어갑니까? 자기 목표를 잃어버리는 거에요.

인간의 자기 목표는 첫째 시간 다시 반복하게 되면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의식이 나오게 되어 있고 의식은 무엇을 한다? 어떤 대상, 어떤 사태, 어떤 사실을 끌어 모으게 되는데 이 끌어 모은 것을 뭐라고 합니까? 그걸 현실이라고 하고 그걸 세계, 세상이라고 하잖아요. 인간은 인간이 꿈꾸는 세계 따로 있다고요. 여기에 별세 없어요. 죽음 없습니다. 살아서 이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요.

그러니까 이 세계를 주님께서 피의 방법은 이 인간세계에서 가짜 인간에 의해서 본인이 별세, 죽임을 당한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완성하는 별세가 되는 겁니다. 이 예수님 별세할 때 베드로 12제자 어디로 갔습니까? 도망쳤지요. 자기를 없앤 게 아니고 자기를 숨겨버렸어요. 이게 오늘날 우리 모습하고 너무나 똑같은 거에요.

주님 이야기하라고 하니까 입을 다물어버리는 거에요. 내가 아는 게 있어야지. 입을 다무는 것도 자기 의 잖아요. 괜히 모르는 소리했다가는 모든 우사를 흠뻑 다 뒤집어쓰니까 성경 말씀이랑 복음이랑 다르네 이렇게 나오면 온갖 비난과 우사를 다 당해버리면 나의 의가 손상이 가지요. 인간은 나의 의가 손상이 가면 누구한테 이길 수가 없어요. 내가 멀쩡해야 남을 이기는 재미가 있다고요.

그러니까 항상 인간이 신경 쓰는 것은 나의 가치, 나의 의미, 나의 의가 손상되지 않고 아무리 가난하고 아무리 몸이 비실 아파도 끝까지 웅크리면서 남아 있는 것은 그래도 나는 경상도야! 나는 나야! 당신 죽기 전에 경상도 남자인 건 아는데 죽기 전에 나 때문에 당신이 고생했다. 사랑한다 이 말 한마디 하고 죽으라 하면 고개 절레절레. 입에 지퍼를 잠그고 나는 경상도야. 우리 집안에서는 남자가 함부로 입 놀리면 안 된다고 배웠어.

집안 핑계대지 말고 본인이 본인의 의를 잃어버리면 본인의 자존심을 잃어버리면 살맛이 안 난다고 평생 악마한테 그렇게 세뇌 받았어요. 선악과 알지? 선과 악을 알지? 그러면 그걸 지켜. 주님은 따먹지 말라고 했어요. 악마는 지켜라는 이야기에요. 네 양심을 지키고 네 도덕을 지키고 하라는 거에요. 놀라운 사실은 도덕은 도덕이 아닌 곳에서 나와요. 몰랐지롱?!

도덕은 도덕이 아닌 곳에서 만들어진 겁니다. 지옥에서 만든 게 도덕이에요. 왜냐하면 도덕은 뭐를 제거하느냐? 자신의 쾌락과 충동을 감추고 나온 게 도덕이기 때문에. 자기의 충동과 자기의 성적인 본능, 먹고 싶은 본능, 충동 이런 게 마치 자기한테 없어진 것처럼 위장하면서 기만하면서 나온 게 도덕이라는 겁니다.

어떤 미국에서 나온 만화책 보니까 어릴 때 봤어요. 군목, 사병들에게 모범이 되고 하나님의 성도의 모범이 되었던 군목, 군대 목사가 만화에 나와요. 나오는데 자기는 마음속으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간음한 자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이쁜 여자, 못생긴 여자한테는 그 마음도 안 생기니까. 이쁜 여자가 오는 것을 보고 피하다가 맨홀에 빠지고 빠지는 그 만화를 본적이 있어요.

일단 봤잖아요. 일단 봤으면 오늘 배운대로 하면 일단 봤잖아요. 보게 되면 보고 마음에 훅 들면 간음이죠. 간음되면 어디에 손상당합니까? 나의 의, 나의 의가 흠짓이 날 가능성이 많지요. 그러면 내 의를 지키기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의를 지키기 위해서 그걸 하는 방법은 내가 그 여자를 안보는 방법을 하지요. 안보다가 맨홀에 빠져서 죽는 수가 있어요.

순교입니까? 아니지요. 순교란 내가 내 목표가 사라지는 십자가에 죽어야 자기 십자가에 죽어야 내가 죄인으로 죽을만해서 죽어야 그게 주와 함께 죽는 순교지 자기 의 지키다가 죽으면 순교가 아닙니다. 그래서 십자가 죽음은 제자들이 자기가 해내지를 못해요. 다만 미장센, 무대장치는 미리 보여줍니다. 그런데 선배들이 누가 있어요? 엘리야와 누굽니까?

모세, 엘리야와 모세는 자기 목표가 없어요. 그저 주님의 목표만 바라봅니다. 그저 주님의 목표를 두 자로 뭐라고 했습니까? 여기 본문에서 31절에서. “별세”. 이거는 엘리야가 할 수 없고 모세도 못하고 저와 여러분도 못합니다. 이거는 성령이 와서 우리를 그렇게 환경을 그렇게 만들어줘야 돼요. 주께서 죽이게 했습니다 라는 고백이 나오도록 그게 감사하도록 내가 할 수 없는 십자가 죽음을 이렇게 이루어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라는 그것.

그 환경은 지금 여러분들이 조작해내고 만들어낼 필요가 없어요.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 여러분들이 있는 처해 있는 상황이 이게 주의 감사로 나온다면 그 주님이 누구냐 하면은 십자가 지신 주님에 대한 감사이기 때문에 지금 상황이 주님의 십자가 안에서 나오는 감사입니다. 주의 목표로 인한 감사. 주님의 다 이루심에 대한 감사. 그것이 바로 우리가 못했던 십자가에 우리가 합류한 증거가 되는 거에요.

변화 산 이게 오늘 현재 우리가 사는 21세기 우리의 모습, 우리의 모습이라고 보면 돼요. 변화 산에 영광스럽다 아니다 생각하지 마시고 주제, 모티브가 우리 대화의 모티브가 나는 1번 나는 아담에 속해서 개판이다. 2번 그런데 주님께서는 별세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 주님의 별세에 아무 한 것도 없이 오늘도 참여시켰다. 3번 그래서 나는 범사에 감사한다. 이게 십자가 안에서 성령 안에서 주님 안에 살아가는 성도의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사도 편지에 나오는 십자가 안에 있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의 모든 말씀이 주님 자신을 겨냥해서 이뤄진 그 말씀인 것을 저희들 깨닫게 하여 주시고 그 말씀 이루기 위해서 나밖에 모르고 나의 의만 챙기는 우리를 주의 일에 합류하게 해주신 이 은혜를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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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9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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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