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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9장 3절 (오지마)2112076a-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9장 3절 (오지마)2112076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9장 1절부터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그렇게 되어있지요.

제자라는 것은 스승 없이는 제자가 없겠지요. 그래서 제자란 제자들이 모여서 스승을 초빙하는 형식이 아니고 스승이 제자를 생산합니다. 스승이 제자를 생산해요. 그러면 생산된 제자는 나 제자다 가 아니라 나의 스승은 누구누구시다 이렇게 돼요. 나의 스승은 누구시다. 그렇게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나의 존재 가치라고 하는 것은 나 찾지 말라.

나보고 자꾸 묻지마 너는 왜 사느냐 나보고 묻지마 나를 나 되게 하신 다른 분에게 미뤄버리세요. 미루세요. 미뤄버리세요. 악마가 말씀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요 악마는 나를 공격해요. 나를 공격하게 되면 나는 나를 부정하면 되는데 나를 안 지키면 되는데 이 공격을 받으면 사람이 본능적으로 자기정당화에 자기방어에 나서버려요. 희한하지요. 자기방어.

조금 전까지 주님의 제자 해놓고 만약에 다른 사람이 와서 확 쑤셔버리니까 누구의 제자는 날라가버리고 내가 뭐가 잘못되었는데? 뭐 나 더 이상 뭐 어쩌라고? 너는 잘났어? 갑자기 너, 나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여기 12제자 할 때 제자의 제일 걸림돌은 뭐냐 하면은 나는 무엇이다 이거에요. 나의 규정성 이것이 제자들의 제일 나쁜 점이에요. 나의 규정성. 내가 나를 규정하는 겁니다.

이럴 필요 없고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나를 규정함으로써 내가 나를 규정한데서 성경과 맞출려고 해요. 성경에 나오는 딱 그 제자가 나야. 성경에 천국 백성이 종려나무가지 나무 흔들며 주님을 반긴다 할 때 그게 바로 나야! 성경 말씀에 바리새인하고 자기하고 일치 안하고요. 가룟 유다 하고 자기 일치하지 않고 꼭 좋은 거 있잖아요. 골라잡은 것, 괜찮은 것.

기드온 이런 거. 여자 같으면 드보라. 드보라는 할라 해도 룻은 또 안 할라해요. 거지꼴 될까봐 싶어서 겁나가지고. 꼭 괜찮은 여호수아. 이름도 김여호수아. 여자이름 같으면 엘리자벳. 마리아. 한나 이런 것. 괜찮은 거 다 골라하고 다윗. 그런데 저는 이름이 시므온은 제가 들어본 적 없어요. 시므온은 두 번씩이나 저주받았기 때문에.

하여튼 괜찮은 것만 하는데 이 점을 누가 알고 있느냐 하면은 마귀가 이미 알고 있어요. 너는 핑계대지 마. 예수 핑계, 하나님 핑계 백날해도 너한테 중요한 것은 너 자신밖에 없잖아. 내가 알아. 너도 알듯이 내가 안다고. 마귀가 우리 자신이 뭐를 사수하고 무슨 형식을 지킬려고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아요.

그래서 성경에서 누가복음 9장 하는데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 나오니까 야 이거 제자의 소속이 되야 이거는 천국의 어드밴티지가 이익이 수월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해가지고 예수님 제자 되겠다고 대학교 때 공부할 때 자기 전공 다 F 다 맞으면서도 기어이 성경 공부해가지고 간사해가지고 겨우겨우 졸업해가지고 간사 그 다음의 코스는 선교 아닙니까.

허황된 선교 해가지고 아골 골짜기 빈들에도 가옵니다 해가지고 완전히 자발적인 귀향. 자기가 정약용도 아닌데. 자기가 정약용입니까? 왜 자발적 귀향해요. 흑산도 가서 고기나 연구하라고. 정약용이 그랬답니다. 고기나 연구했답니다. 할 게 없어가지고. 자발적으로 그렇게 자기 자신을 제자에 억지로 끼워맞출려고 하는 것, 그걸 뭐냐 하면은 그걸 죄라고 하는 거에요.

죄란 ‘나를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 이게 바로 죄입니다. 나를 위해 내가 존재하는 거에요. 이 세상 사람치고 죄인 아닌 사람이 없는 이유 아시겠지요? 어떤 사람이 나는 나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나는 너를 위해 삽니다. 희생하겠습니다 할 때 이게 또 뭐가 문제냐 하면은 이게 나, ‘나’라는 것은 자아와 주체로 나누는데 자아는 뭐냐 하면은 상상 판타지, 판타지의 이상적인 나를 일치시킬 때를 자아라고 하고요 그 일치시키는 것에 대해서 의심하면서 일치할려고 노력하는 것을 주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아로 만족하는 것은 대체로 정신병자들이 하는 거에요. 나는 나폴레옹이다. 정신병자 아닙니까? “엄마 나 나폴레옹 될래.” 이건 주체에요. 차이 확 차이나지요? “나 제자다!” 정신병이죠. “제자 될래.” 주체죠. 이걸 정신병이라고 하고 신경증 환자에요. 둘 다 환자에요. 왜? 둘 다 뭡니까? 내가 되고 싶은 나를 위해서 내가 나한테 봉사하고 복무하는 것. 모든 복무. 나의 사명은 내가 되고 싶은 내가 되는 것이 타고난 나의 사명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악마가 그걸 모를 리가 있어요? 악마가 계속 이야기하는 거에요. 똑바로 하라고. 사람들은 이 두 점을 구분을 못해요. 악마의 주특기는 뭐냐? 참소, 고자질하는 겁니다. 뭐냐 하면은 “똑바로 해! 그래가지고 구원받겠어? 그래서 성화되겠어? 그래서 거룩하겠어? 성경에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도 거룩하라고 했잖아. 그 수준이 거룩 수준이야?” 이렇게 지적하는 게 악마가 하는 짓이에요.

성경에 히브리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를 하지요. 징계하고 참소하고 주님이 하는 징계하고 악마가 하는 참소하고 구분을 못합니다. 구분을 어떻게 하느냐? 참소는 우리에게 불안을 조성합니다. 계속 결핍을 만들어내고 결핍을 메꿀려고 애를 쓰게 되지요. “아냐 아직도 모자라. 안돼 안돼. 더 해야 돼 더 해야 돼. 기도 시간 늘려야 되고 헌금 더 해야 되고 선교해야 되고 안돼 안돼.” 나를 채찍질하고 나를 때리는 거에요.

이거 주로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은 수도원, 수녀원 이들이 이거 전문가들이에요. 인간이 심리적으로 어떠했을 때는 이렇게 처방전 다 나와 있습니다. 그 처방전이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천주교에 나온 고해성사가 처방전 되는 거에요.

사람들 오게 되면 자기는 삐딱하게 앉아가지고 처방전 내려줍니다. 식후에 30분후에 약 하나 잡수세요 하는 것처럼 주기도문 세 번 외우세요. 처방내리는 겁니다. 다음은 그냥 기도하지 마시고 묵주 기도하세요. 여러분 가짜 아니고 진짜입니다.

이거 그냥하지 말고 묵주 기도하게 되면 마음에 평정이 온다는 거에요. 불교에서 이미 이천년 동안 힌두교에서 이미 사천년 동안 써먹었던 거에요. 그냥 기도하지 말고 이걸 돌리는 거에요. 마음의 평정이 인간의 뇌파나 심장파에 정상파로 진정이 되면서 기분이 이렇게 안정을 취하면 이걸 성령 은혜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게 고해성사하는 방법이에요. 불안함.

주님의 징계의 특징은 뭐냐 하면은 감격입니다. 주님 저도 아들이라고 그래도 저를 때려주시니 세상에 이런 복이 어디 있어. 징계가 감격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이거에요. 내가 살아있다고 여겼는데 이게 착각이었어. 내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이 현장성에 주님이 살아있었지요. 내가 살아있음은 주님의 살아있음의 파생결과, 파생물이에요.

주님이 살아 있어서 나를 살게 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나의 결과물을 쥐지 마시고 나는 안 살아야 되는데 왜 살았지? 주님이 살아계시는구나. 보이지 않는 주님을 드러내는 감격은 바로 악마의 참소 받으면서 어쩔 줄 몰라 불안에 떠는 나를 주님께서 이 자체를 징계해버려요. 네가 아직도 참소나 듣고 있고 이 인간아. 내 아들이야 마귀 아들이야? 구분이 안돼. 좀 맞아야 되겠어. 때려주실 때 이 참소의 불안에서 벗어나는 거에요.

악마는 뭐냐 하면은 네가 만약에 나쁜 짓했기 때문에 네가 한 달 뒤나 일주일 뒤에 너는 큰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럼 뭐를 상상하느냐 하면은 일주일 뒤에 내가 벌 받는걸 어떤 벌을 받을까? 보니까 일주일 뒤에 애가 시험친다든지 하면 아 이게 사단나는구나. 그렇다면 미리 주여 감사합니다 미리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의 뜻이 아니면 어떻게 제게 미리 예고했겠습니까. 이게 악마고요. 망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게 악마고요.

진작에 망해야 되는걸 안 망할려고 했던 이 죄를 용서하옵소서 이렇게 되는 거에요. 남들 보기에 둘 다 미쳤는데 진작에 늘 망해있어야 되는데 안 망할려고 했기 때문에 누가 꼬였다? 악마 일곱 귀신, 일곱 귀신이면 천만다행인데 일곱의 일곱 귀신 490마리가 꼬이는 겁니다. 너 그러면 망한다가 이게 협박용이거든요. 그럼 자기는 안 망해야 된다는 의식을 유도해내는 거에요.

어떤 스토커가 어떤 사람에게 전화를 한다. 되지도 않는 농담거리로 전화를 했을 때 그거는 뭐냐 하면은 스토커니까 반응을 유도해요. 말동무를 삼아가지고 자기의 권태로움과 무료함을 달래는 용도로 상대방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화와 문자를 막 보냅니다. 남은 바빠 죽겠는데. 그러면 어지간한 사람은 뭐합니까? 이런 문자 보내지 마세요 저는 바빠요. 당신과 엮기기 싫어요. 이러잖아요.

그걸 원하는 거에요. 그걸. 그러니까 재미있다고 또 보내는 거에요. 또 보내는 겁니다. 스토커까지 강의를 해야겠습니까. 그러니까 이게 주위에 모든 사람들이 어떤 당신을 사랑합니다 뭐 입에 발린 소리를 해도 이거는 나를 위함이고 당신을 위함이다 너를 위함이다 라고 하는 너가, 너를 위함이다 하는 것은 사실은 너의 욕망으로 내가 나의 욕망을 정렬하고자 하는 거에요. 인간은.

인간은 나는 누구냐가 규정되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살아요. 나는 누구냐가 되지 않으면 불안하거든요. 나의 나 다움을 계속 내용물을 재료를 채워넣을려고 하는 거에요. 그런데 이게 뭐냐 하면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으로 나를 구조화한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으로 나를 구조화한다. 구조라고 하는 것은 틀에 곽에 딱 채우게 하는 거에요. 나는 이렇다고 앞으로 몇 년간은 밀어붙일거야. 나는 이렇다고 하는 거에요.

그럼 성경을 보면 누가복음 9장이니까 12제자 나왔지요. 12제자 나오니까 12제자, 예수님의 12제자 타인이잖아요. 타인의 그 욕망이 나는 네모다 에서 나는 준비되어 있어요. 나는 뭐다.여기를 괜찮은 걸로 채울려고 하는데 누가복음에 제자가 나오지요. 나는 제자 될래 에서 나는 제자다 할 때까지 뭔가 하나님이 요구하는 성경말씀으로 꽉꽉 채우고 나름대로 나는 실천에 옮겼다고 우기고 싶은 거에요.

이렇게 하게 되면 더 이상 악마의 협박과 공갈에서 덜 시달릴려고 하는 거에요. 이게 악마가 노리는 겁니다. 나를 포기 안했으니까요. 나를 포기하지 않는 한 12제자를 보든 어떤 생각하든 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가복음 9장에 12제자 볼 땐 어떻게 봐야 되느냐? 이건 굉장히 간단해요.

예수님 계시고 12제자니까 암탉 있고 병아리 12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간단해요. 예수님이 방향성을 예수님이 어디로 들어갔습니까? 이스라엘에 오셔서 예수님이 어디로 갑니까? 죽으러 가지요. 그러며 암탉이 죽으러 가면 병아리는 짹짹 죽으러 가면 되는 거에요. 그게 뭐냐 하면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스승이 가는 곳에 가야 그곳이 천국이에요.

스승은 네가 가라 하와이 해가지고 스승은 하와이 보내버리고 다른데 가면 그거는 스승은 천국 가는데 나머지는 전부 다 엉뚱한 길로 가는 거에요. 실제로 군대에서 논산훈련소 제식훈련 할 때 실제로 그런 일들 일어나요. 식사시간 제식훈련 시간이 12시에 끝나는데 이 교관이 시간을 잘못 봐가지고 11시 59분에 막 훈련시킨 거에요.

군인들 장병들 가지고 앞으로 가! 뒤로 가! 하고 앞으로 가! 척척 가는데 다 시계를 보고 있거든요. 나중에 12시 넘으니까 교관 혼자 앞으로 잘 가고 있고 나머지는 식당으로 가고. 60년대 개그입니다. 군대는 칼 같이 12시에 식당가거든요. 가버리는 겁니다. 말 못하지요. 왜? 시간이 지났으니까. 그 시간 식사시간 되었으니까. 이게 우스운 이야기가 이게 오늘날 현실이라는 사실이에요.

왜 그러느냐 하면은 주님을 따라가면 되는데 여기 ‘나’가 있잖아요. 나는 그냥 ‘나’가 아니고 판단을 해요. 나한테 이익이 올 것인가 손해가 올 것인가를 머리를 막 돌리는 거에요. 머리를 무지하게 돌리는 겁니다. 생각이 단순하지를 못하고 점점 더 복잡해버리죠. 그래서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서는 이처럼 불합리가 늘 발생이 돼요.

주께서 제자다 하시면서 주님께서 나 따라 오너라 분명히 따라가는데 분명히 이 제자들이 엉뚱한 길로 간다는 것을 누가 아십니까? 주님이 아시지요. 제자들은 몰랐다. 뭘 몰랐는가. 예수님께서 인도하실 때 예수님의 적도 같이 동반해서 생산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에요. 제자들이. 제자들만 간 줄 알았지 제자들 속에 악마가 거기 섞여서 가룟 유다죠. 악마가 같이 가자라고 할 줄 제자들이 몰랐고요 또 뭐가 몰랐느냐 하면은 제자들의 11명의 의견이 단 하나의 의견보다도 영향력이 적다는 사실을 몰랐던 겁니다.

그래서 이걸 제가 정리해왔어요. 그걸 가지고 오해의 3종 세트. 오해의 3종 세트에요. 첫째 오해1. 사후작용으로 인간은 재해석된다 라는 사실을 인간은 몰랐던 겁니다. 사후작용으로. 인간은 나름대로 판단하잖아요. 이 길이 나한테 영생길이고 천국길일 것이다. 그 판단 주께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일단 너는 무슨 의견 뜻이 있던 간에 일단 너는 저질러. 이걸 다른 말로 더 확실한 말로 일단 막 살아.

막 살고 해석은 누가 한다? 일단 저지른 것에 대해서 해석자가 누굽니까? 주님이 거기서 해석하기에 따라서 그 사람의 미래가 확정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구원받는 사람은 내가 내 해석에서 내가 잘 관리하고 해석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라 주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거에요.

내가 죄인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에 구원받는 게 아니고 그 죄라는 해석도 주께서는 개무시해준 것에 대해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생각하는 죄는 죄도 아니에요. 죄 근처도 안 갔어. 이거는 뭐 내가 죄인입니다 하면 봐줄까봐 복잡한 머리 통밥을 굴려요. 특히 큰일 앞두고 애들 수능 앞두고 있을 때라든지 갑자기 안하는 회개가 막 되면서 회개해야 될 것 같애. 교만한 자는 또 물리친다고 해가지고 나는 괜찮은데 애가 성적이 내려갈까 봐 걱정돼. 이런 점들을 계산하면서 막 회개한다고 뭐 난리도 아니지요.

사후작용으로 인간을 해석하시는 주님의 해석이 그 다음에 우리를 가르치는 게 아니고요 우리를 가르친다. 가르쳐서 똑바로 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뭘 하느냐 하면은 적용시켜버려요. 일방적으로. 이게 무슨 법칙이냐? 새 언약 법칙입니다. 옛 언약까지는 우리 코앞에 율법을 가져다 대고 네가 지켜라 이렇게 되요. 네가 지켜야 돼. 그런데 새 언약은 아예 우리 안에다가 이걸 삽입시켜버립니다.

그러면 내 안에 나보다 더 중요한 게 들어와버렸어요. 나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주님 보시기에 나보다 더 중요한 것 그것을 주께서는 그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서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을 아주 무가치하게 만들어버리지요. 그런데 그게 얼마나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감사한지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건 뭐 돈 주고도 못 깨달아요. 주께서 밟아줘야 깨달아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내 안에 아무것도 아니게 만든 나보다 더 소중한 것을 주께서는 집어넣었기 때문에 주께서 집어넣은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계속해서 일임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강의를 요약하게 되면 제자란 아무것도 아닌 것. 아무것도 아닌 것을 주님께서 인도해주시는 겁니다.

그러고 난 뒤에 제자들이 해야 될 일은 여기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식으로 이끄시는데 그 아무것도 아닌 식의 대우를 받고 그런 평가를 세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가운데서 제일 아무것도 아니게 평가받는 분이 누구냐? 스승이에요.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이 세상 어느 사람한테도 호응 받지 못하고 정말 죽여 제발 눈앞에서 사라져줘 모든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필요치 않은 존재로 되도록 주님께서는 자기 12제자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도중에 12제자 어디 갔습니까? 따라갔습니까? 식당으로 갔습니까? 다 흩어졌어요. 없어요. 없으니까 정말 제자들의 말로 예수님을 배신하고 도망하고 했잖아요.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잖아요. 그러니까 제대로 된 아무것도 아님을 제자들은 몸소 체험케 되었습니다. 제자들을 위해서 박수 한번. 예수님 배신한 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닌 게 다른 사람들은 입만 살아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러는데 그걸 실습을 시켜줬다는 거에요.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 보기에 내가 보잘것없어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라 유일하게 예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드러난 사람들은 오직 12제자들 밖에 없어요.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비교해서 부족합니다 뭐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하는데 그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예수님 앞에서 정말 너희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따라서 아무것도 아니니까 무슨 욕심까지 내지 말아야 되느냐 하면은 “저 구원해주세요” 라는 욕심도 그걸 잘라버립니다. 구원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무것도 아니면 입 다물고 있어. 아무것도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여야지 어디 욕심을 부릴 걸 욕심을 부려야지. 배신 때려놓고 어딜 합류해? 배신할 때는 언제고 어디 가겠다고? 천국 가겠다고?

천국이 어떤 나라인데요?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올수 없다를 들추어내는 그것이 근거가 될 때 나타나는 게 천국이에요. 아무도 갈 수 없었다가 확실하게 보여주는 기능을 보여주는 그것이 천국이에요. 아무도 갈 수 없다. 그것은 뭐냐? 천국. 아무도 갈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천국. 그러니까 이것은 인간 쪽에서 천국을 가겠다는 것은 전부 다 주님께서 전부 다 밀어내는 방법이에요.

첫째 오해가 뭐라고 했죠? 사후작용. 죽고 난 뒤가 아니라 일이 끝나고 난 뒤에 인간의 해석은 주님이 일방적으로 해석하시고 그것을 가르쳐서 똑바로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일방적으로 적용시킨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제자들은 나중에 성령이 찾아오니까 유구무언, 할 말이 없는 거에요. 자기가 주님을 버린 것이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에. 할 말이 없지요.

주님은 버림받았다를 계속 유지를 해줘야 세상이 나를 버려도 내가 나에 대해서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버린 것은 그게 뭐 중요합니까.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 더 분명한 내 위치고 내 진 면목이기 때문에. 진짜 내 모습은 세상이 버려도 우리는 자기 자존심 챙기는 거에요. 제가 그 한 때 인용했던 옛날 노래에 무슨 노래냐면 이 노래에요.

나이 연세 많은 분들은 아시지요. 산장의 여인. 모텔 여자 주인 말고요. 산장의 여인. 가사 내용은 세상에 버림받고. 버림받은 거에요. 세상에 버림받아요. 버림받아가지고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 나는 홀로 살래. 그래서 깊은 호숫가에 산장 지어서 사는 거에요. 지금 계산하니까 최소한으로 2억에서 3억 있어야 될 문제에요. 이거 버림받은 거 아니에요. 내가 보기에는.

요새 자연 허가받을려면 보통 돈 먹여서 안돼요. 돈 먹여도 안 되잖아요. 2억, 3억 있어야 산장도 10평짜리라도 사지요. 버림받은 거 아니네. 제가 보기엔 사기 좀 쳐가지고 돈 좀 남긴 거 같애. 산장의 여인될려고 하면요 자기 어떤 재산 여력이 있어야 돼요.

지옥이 뭐냐 하면은 지옥이란 불 뜨거운 것도 지옥이지만 억울한 마음이 있는 곳은 모든 곳이 지옥입니다. 원통, 절통, 분통. 억울한 마음이 있으면 그거는 천국 가도 지옥이에요. 재산이 고 뭐고 자식 잘 되도 필요 없어요. 인간은 자기 의가 있기 때문에 그게 악마의 노림수이기 때문에 분통하게 되면 사람은 어떤 곳도 지옥이 되는 겁니다.

그럼 왜 분통 터지고 억울함을 느끼느냐? 본인이 본인을 해석하기 때문에 그래요. 나 외에는 다른 해석자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이 옆에 안 계시니까 해석해도 내가 해석을 해야 되지 다른 해석자가 없어요. 어떤 사람은 나는 뭐 별로 억울하지 않아요 하는데 막상 일 터져 보세요. 억울하지 않은 게 어디 있어요. 인간의 욕심은 상승하는데 억울하지 않은 게 어디 있어요. 맨날 억울해요. 지옥은 본인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가장 진정한 철학자는 성경에 나오는 진정한 철학자 소개해드릴께요. 이게 뭐냐 하면은 거지 나사로 앞집에 살았던 지옥 간 부자, 이 사람보다 완벽한 철학자는 없습니다. 이 철학자의 외침은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뭐 이랬잖아요. 그렇죠? 철학의 기본입니다. 철학은 윤리 도덕이니까 우리 자신을 알아서 바르게 살 수 있다. 불교도 마찬가지인데 불교도 철학의 일종이거든요.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하는데 가장 진정한 철학자 거지 나사로 건너편에 있는 부자님께서 하신 유명한 철학의 멘트는 이거에요. 오지마! 오지마! 동생 5명이 있단 말이에요. 오지마! 이건 뭐 어렵지 않죠. 달랑 세 자에요. 오지마! 이유를 불문하고. 군대 가서 고생 직싸게 한 형이 동생보고 형 군대 생활 어떻게 해? 세 자. 무시를 하던지 뭘 하든지 오지마! 오지마.

왜? 본인은 이 철학은 생, 살아있는 철학이에요. 지옥에서 벗어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지옥 한 가운데서 외치는 그러한 울림입니다. 오지마. 자기가 들릴 수만 있다면 아직까지 죽지 않은 동생 5명에게 귓가에 들리도록 외치고 싶어요. 지옥에 오지마 라고. 다른 말로 좀 길게 설명하면 나처럼 살지마. 동생이 미리 듣고 나 형처럼 안살아 이럴 거란 말이에요.

동생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요. 안 죽어봐서 지옥에 안 가보니까 지옥에 가볼 때에 이게 아까 무슨 해석이라고 했습니까? 무슨 해석? 사후해석. 주님의 조치가 완전히 시멘트하는 거 뭡니까? 래미콘 시멘트로 덮어버리면 완전히 고형화되지요. 콘크리트. 완전히 지옥의 저주가 덮어버리니까 나오는 게 뭡니까? 오지마라는 거에요.

인간들의 철학자, 정치가 해석 말고 링컨 이야기 말고 그냥 하나님의 이야기가 덮여버리니까 나오는 철학은 뭐냐? 사후해석이죠. 인간의 해석이 아니고 주께서 주신 해석.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해석. 저를 왜 보냈습니까 말도 안 나와요. 그냥 무조건 오지마. 따지고 봅시다 주님 이런 소리도 하지마. 그냥 오지마. 따지고 봅시다 하는 건 아직 안 죽었을 때나 하는.

아무 해석이 주님의 십자가 해석이 안 덮치니까 뭐 한번 따져봅시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어떻고 양심이 어떻고 하는데 시끄러 시끄러 시끄러 시끄러워. 그냥 오지마. 지금 첫 번째 오해밖에 안했네요. 두 번째 오해에요. 두 번째 오해, 오해 2가 뭐냐 하면은 인간의 전문성은 철저히 배격된다. 인간의 전문성. 내 가능성, Possibility죠. 나의 가능성. 나의 할 수 있는 것은 철저히 배격돼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뭐라고 하느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뭔가 주의 일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이게 오해 2에요. 그래서 이 오해 2가 이 세상에 범람하기 때문에 거지 나사로 누가복음 16장, 거지 나사로 이야기 들으면 어떤 사람은 나도 거지 되면 천국갈 수 있습니까? 라고 본인이 해석을 내려요. 왜? 잘 사는 사람이 거지되는 것은 맘먹기에 따라서.

뭐 톨스토이처럼 그 많은 대지주의 아들이 산상설교 듣고 감명을 받아가지고 나는 예수님처럼 그런 천국의 삶,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천국이 저의 것임이라 해가지고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의 것임이라 이걸 가지고 가난한 자는 천국 가는 줄 알고 자기의 모든 재산을 다 줘버리고 자기는 주님처럼 거지로 되가지고 가난한 사람을 돌보겠다. 이거는 인간의 가능성에 포함이 됩니까? 안됩니까? 포함되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 다 줬던 톨스토이가 현재 유산이 땅이 15만평 남아 있어서 후손들이 현재 잘 살고 있습니다. 다 줘도 15만평 남아요. 다 줘도. 얼마나 부자였으면. 제대로 다 안 준거에요. 내가 선교사로 가서 고생하면 죽기까지 텔레반한테 모가지 베이면 천국갈 수 있습니까? 이거는 아무리 겸손하고 낮춰도 이거는 인간 가능성이에요.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는 철저하게 뭐가 배제됩니까?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다 배제돼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그걸 제자들은 오해한 겁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나와 있지요.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제자들이 자기 딴에 고생 좀 했거든요. 고생 하니까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흔히 우리 십자가 마을이나 복음 아는 사람끼리 하는 다른 사람 말고 우리끼리 이야기입니다. 우리끼리. 다른 사람은 놔두고 우리끼리. 우리끼리 준결승, 결승 붙겠다.

우리끼리 누가 복음을 잘 압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주님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 쓴 잔이죠. 왜 쓴 잔이냐 하면은 주님께서 마지막 기도할 때 ‘이 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거 거부당했습니다. 예수님의 뜻이 거부당했어요.

예수님께서 내 뜻 말고 아버지 뜻 할 때 예수님의 내 뜻 안에 뭐가 포함되었느냐 하면은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뜻이 그 안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거부당한 거에요. 예수님은 죄인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죄인의 입장에서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다 내놓고 아버지의 평가를 받는데 그것이 거부당한 겁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은 인간의 판단과 자신의 뜻이 여기 들어있어요.

쉽게 말해서 제자들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천국 간다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제자들이 천국 간다는 이야기를 예수님한테 한 두번 들은 게 아닌데 우리는 천국 간다 할 때 뭐가 빠졌느냐 하면은 우리는 천국 가는 도중에 옆길로 샌다는 빠트린 거에요. 천국은 한분을 위한 나라가 천국이에요. 예수님, 주를 위한 나라가 천국이지 여럿이 떼로 우~ 들어가는 나라가 천국이 아니거든요.

들어가더라도 한분을 위한 한분만 쳐다보는 나라라는 것 이렇게 되야 되지 천국 가는 본인이 자기가 자기보고 흐뭇해가지고 역시 난 잘했어 이거 하는 나라가 아니에요. 인간의 가능성에서 나올 수가 없는 거에요. 누가 높으냐 할 때 이건 자기의 공과 자기의 노력한 것 누가 더 희생했습니까 그거 자랑하는 거에요. 주님께서 내 잔을 마실 수 있느냐 물으시고 후딱 답변해요. 너희밖에 마실 수밖에 없다 라고 되어있어요.

그게 정말 중요합니다. 제자들과 함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하는 것은 이미 예수님의 제자라고 거들먹거리면서 나 누군 줄 알아? 아까 다시 이야기합시다. 나는 무엇이다. 이 틀 있잖아요. 놀랍게도 이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까지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이다. 나는 천국 백성이다. 나는 무엇이다. 계속 나오겠지요. 나는 무엇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나는 무엇이다 제자들이 알고있는 걸 알고 아예 역으로 가버립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이건 불가능이죠.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이것까지 또 흉내를 내요. 그래서 CCC 애들은 아무것도 없이 돈도 없이 가서 민폐 끼친다고 복음 전하러 왔습니다. 밥 좀 주세요 이러고 있어요. 이건 옛날 조선시대 때 삿갓 하나 쓰고요 중이 지나가는 과객입니다. 밥 좀 주세요 하고 똑같은 거에요. 관세음보살 이런 식으로. 댁의 아드님은 아마 큰 일꾼이 될 겁니다. 휘리릭 하고 가고.

오해 2는 뭐냐 하면은 모든 자를 배격한다는 것은 이미 결론은 나와 있어요. 왜? 내 쓴 잔을 너희들은 마셔야 된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를 나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너희들 뜻도 있잖아. 너희 뜻도 일체 주께서는 거부당할 것이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알려주시는 겁니다. 제자들이 아직까지 좋다고 귀신 쫓아냈다고 좋다고 뭐라도 된 냥 여기기 때문에 그래요.

첫째 사후해석. 두 번째 능력배제. 세 번째는 제자들이 오해한 것은 주님과 그들 사이에 틈 생산.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 나중에 갈라져버려요. 갈라집니다. 첫 번째 사후해석, 두 번째 능력배제 이걸 아무리 이야기해도 제자들은 못 알아봐요. 못 알아보기 때문에 이걸 실제로 적용 시키는 것이 뭐냐? 예수님 가신 곳과 제자들이 남아 있는 곳과 틈이 생겨버립니다.

틈이 생겼다는 말은 제자들 쪽에서 아무리 배우고 실천했던 것, 들었던 것 백날 해봐야 도약이 안돼요. 점핑이 안 되는 거에요. 도약할 수가 없어요.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이유 때문에 가장 무엇을 느끼겠습니까? 주님과 우리 사이에는 그만큼 단절되어있다는 것을 그들만 아는 거에요. 그래서 제자들이 나중에 성령 받고 난 뒤에 사도행전에 전도할 때에 절대로 사람의 뜻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압니다.

사도행전 마지막에 사도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는 그 의미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가 이게 바로 실제 인간이 사는 세상의 그 사정이다. 사정 그 자체. 실전 그 자체에요. 실전. 실제로 그런 형편에 있어요. 왜 이것이 중요하느냐 하면은요 우리가 예수 믿게 되었다는 이것은 참 기적입니다. 오히려 매일같이 화들짝 놀래야 될 문제에요.

그리고 예수 믿다가 안 믿고 싶잖아요. 나는 예수 안 믿어 하잖아요. 제대로 제 모습으로 되돌아간 거에요. 그동안 어설픈 신앙인 코스프레한 겁니다. 제가 대구강의에서 했지요. 신앙인 코스프레. 코스프레 무슨 뜻인지 아시지요? 흉내 내는 것에서 뭐로 바꿔야 된다고 했습니까. 싸우는 전사로 바뀌겠지요. 이 앞에 신앙인 코스프레 앞에 뭘 하나 덧붙였어요.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은 칭얼대는 신앙인 코스프레. 주여 부족합니다. 흑흑 주여 도와주옵소서 이런 거. 칭얼대고 찡찡거리고 엄살 부리고 자기를 스스로 나약하다고 여기는 것. 연약하게 느끼는 것을 이걸 마치 겸손처럼 느낍니다. 온갖 인간의 겸손과 나약한 걸 다 동원시키면 여기서 뭘 기대하느냐 하면은 코스프레하는 사람은 여기서 긍휼히 여김, 불쌍히 여겨줄 줄로 아는 거에요. 불쌍히 여겨줄 것을 끄집어내는 능력은 이건 뭡니까? 오해 2에 위반되지요. 오해 2에.

불쌍히 여겨줄 능력이 있으면 구원될 능력이 거기에 결부된다고 그렇게 본인이 스스로 믿고 싶은 거에요. 누가? 코스프레 가짜들, 가짜 신앙인이. 그러나 제자들은 뭘 합니까? 이미 예수님 십자가 떠나고 난 뒤에 인간 쪽에서 할 수 있는 어떤 역량으로 폴짝폴짝 뛰어봐야 그게 아무짝도 소용없다는 것을 그들만이 체험했잖아요. 그 체험으로 그대로 사도행전에 보면 그들이 그 체험 가지고 복음전파에 나서는 거에요. 그러니까 사람 꼬시는 게 전혀 그들의 임무가 되도 소용없고요 이게 애초부터 안 된다는 것을 알아요.

여러분들이 고린도전서 2장 4절 한번 봅시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사람의 지혜를 신학이라고 봅시다. 신학, 철학, 사람의 교양 양심에서 나오는 윤리 도덕으로 봅시다.

어떤 걸 해도 이거는 구원이 안 된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거는 하나님의 능력과 맞은 편에 있는 거에요. 하나님의 능력이 이쪽 편에 있다면 맞은 편에 빈 공간이 아니고 인간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하는 겁니다. 그게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1장 21절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그 전도의 내용이 뭐냐 23절에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그러니까 이게 맞은편에 있는 사람들, 인간의 자기의 철학과 지혜와 신학과 자기의 행동과 열심과 실천 등 고상해 보이는 신앙적인 코스프레 이걸 못 버리는 사람한테는 무엇이 그렇게 미련 곰탱이처럼 보이겠습니까? 이걸 못 버리는 사람들에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못 버리는 사람들에게는 뭐로 보이겠습니까? 십자가 못 박힌 것이 뭐로 보이겠어요. 미련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거에요. 그러니까 십자가만 증거해야 되는 거에요. 가짜를 가짜로서 들통 내야 되니까.

이게 바로 사도들 제자들이 받았던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뭐냐 하면은 배짱 튕기는 거에요.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산상설교에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 복음을 누구에게는 전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개, 돼지한테 전하지 말라고 했지요. 그런데 개, 돼지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그거는 복음을 전해보면 알아요.

결국은 이거는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은 결국은 아까 오해 1, 오해 1이 뭐라고 했습니까? 사후해석. 인간은 인간이 해석 못하고 주님이 해석한다. 오해 2. 모든 능력 배격하는 것. 뭐했습니다. 십일조했습니다 뭐 했습니다. 그거 다 치워. 능력배격. 세 번째는 뭐라고 했습니까? 세 번째 틈이 있어 줘야 돼요. 틈이 있어줘야 나오는 게 뭐냐? 오직 감사와 찬송 밖에 없습니다.

시편 42편 5절 한번 읽어보세요. 자, 아까 지옥은 억울함이 있는 것이 지옥이라고 했지요. 시편 42편 5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자, 처음에는 낙망과 불안감이 있지요. 자, 아까 공부했으니까 생각해 봅시다. 불안이 왜 생깁니까? 무슨 틀이 유지했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나는 무엇 무엇이어야 된다는 그 틀을 그 프레임을 어떤 경우라도 그걸 갖고 있어요. 나는 무엇이어야 된다. 내가 되고 싶은 것 내가 되고 싶다 이 말이거든요. 나는 이상향 되고 싶다. 그걸 이상자아라고 하는데 그게 나와요. 그게 자아에요. 주체가 아닌 자아. 완전 정신병이죠. 나는 무엇이다. 그걸 노력하는 걸 주체. 나는 무엇이 되고 싶다. 무엇이다 있으니까 무엇이 되고 싶다가 있는 거에요.

정신 분석하는 건 두 가지 밖에 없어요. 너 커서 뭐될래? 이거 되고 싶습니다. 노력해라. 이게 교육 아닙니까. 이게 교육법이잖아요. 스스로 자아가 되라. 독립하라 그거잖아요. 낙망, 불안. 그런데 문제는 낙망과 불안이 있으니까 이게 지옥이에요. 어떤 수입이 많고 아무리 칭찬해도 다 귀찮아. 내가 나임을 정립이 안 됐으니까. 규정이 안됐으니까 불안한 거에요.

그런데 규정이 안 되니까 시편 42편 5절에 끝에 그 낙망과 불안이 뭐로 변했습니까? 찬송. 찬송은 자기 보고 찬송하는 게 아니지요. 어떤 대상이 있지요. 쉽게 말해서 찬송은 이런 뜻이에요. 나 아니었습니다. 나 아니었습니다. 나를 적어놓고 지워야 돼요. 매일같이 나를 생각하고 그걸 지워버려요. 나 아니었습니다. 이것보다 더 위대한 찬송은 없어요. 나 아니었습니다.

끝으로 이 이야기하고 첫째 시간 마감해보겠습니다. 이 이야기에요. 어떤 사람이 바둑을 두는데 인터넷 바둑을 두는데 닉네임, 자기 나름대로 지은 닉네임이 있어. 그런 닉네임을 제가 본적이 없습니다. 아주 진짜 심오한 닉네임이 있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은 이거에요. 세 살 연상. 세 살 연상이라는 닉네임이에요.

이것은 본인은 그걸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세 살 연상이라는 닉네임, 나는 무엇이다가 날라가버렸지요. 그렇죠? 나는 무엇이다 이건 긍정이잖아요. 세 살 연상은 이걸 가지고 부정이라고 합니다. 부정태. 부정이 되는 거에요. 부정. 자기 자신을 정하지 않아야 될 자로 자기를 정한 거에요. 이게 바로 제자도에요. 제자들은 유동적이에요. 내가 나를 정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아는 거에요.

주께서 그때 그때마다 역할을 주님이 정하지 내가 정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악마로부터 참소하고 공격받을 건덕지가 없어요. 왜? 내가 누구라고 정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10분 쉬는 것이다. 안되겠지요. 10분 동안 여러분이 정한 것 다 빼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10분 뒤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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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9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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