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1십자가마을여름수련회-왕의무대(삼하)(8,1~2)(총9강)(강의정리)(재정리)자유게시판-

21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사무엘하 1강, 말썽쟁이들)

강의 이근호, 정리 한윤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조성한 모임이 아니라 주님이 조성해주신 모임이 되기를 원합니다. 어떤 사람이 중요하지 않고, 다만 우리 가운데 주님의 함께 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새롭게 각인되고 확인되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점점 희미해지는 기적 !!

이번에는 사무엘하를 하겠습니다. 사무엘하를 처음부터 읽어본 사람은, 뭔가 그 상황이 너무나 세속적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어떤 상황이 나와야 되느냐 하면, 자연의 기적이나 출애굽과 같은 사건들이 좀 일어나 주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하나님이 자연을 통해서 마구 도와준다는 현상이 일어날 때, "참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있구나" 라는 것이 이해가 되는데, 그런데 이 자연의 기적이 출애굽기, 그 다음에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까지는 그래도 제법 나타나고 있는데, 점점 가면 갈수록 자연의 기적이 자꾸만 쇠퇴해지고 희미해지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희미해지면서 무엇이 부각되느냐 하면, 인간들의 아귀다툼이 유난히 점점 더 강렬해지기 시작한다는 말이죠. 사무엘하로 오면서는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도와준다는 것은 없고, 어떤 인간이 어떤 인간을 죽이고, 그렇게 죽이고 난 뒤에는 그 형제들이 복수하겠다고 또 나서서 죽이고 하는, 그러한 인간들의 마당이 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 말썽쟁이들의 집합 !!

그러니 "하나님이 개입한다. 관여한다" 라는 증거는 점점 더 축소가 되고, "인간들이 설치기만 하면 얻을 것을 얻을 수 있다" 라는 식으로 사무엘하가 전개되고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 사무엘하에 나오는 모든 인간들은 뭐냐 하면 트러블 메이커인데, 즉 말썽쟁이들, 말썽꾸러기들을 모두 다 모아놓은 것만 같다는 겁니다.

이 말썽꾸러기들을 통해서 나온 결론은, 죽이고 죽고, 죽이고 죽고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말썽꾸러기들이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인간들이 무엇만 쳐다보느냐 하면, 인간은 인간만 쳐다보는데, 즉 인간이 자꾸 다른 인간들을 염두에 둔다는 겁니다.

이것을 다른 문장으로 표현하면 "나는 나를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너는 나를 버렸잖아. 따라서 나는 너를 죽이겠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마치 시조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나는 나를 버리지 않았지만, 나는 나를 배신하지 않았지만, 너는 나를 배신했으니까, 배신을 당한 나는 너를 그냥 두지 않고 죽여 버리겠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사무엘하 전체에 나오는 내용이라는 말이죠.

* 율법은 안중에도 없다 !!

이것을 한꺼번에 그 의미를 축약해서 말하면, "율법은 안중에도 없다" 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법에 대해서는, "지금 내가 성질이 나서 바쁜데, 무슨 법을 이야기해요? 타인이 나를 건드렸는데, 남이 나를 건드렸는데, 왜 거기 율법이 끼어 드는가? 일단 복수부터 하겠다"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성질이 나니까 복수하고 가실게요" 라고 하는, 이게 바로 사무엘하의 전개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누가 한 몫을 하느냐 하면, 놀랍게도 그게 다윗이라는 말이죠. 이렇게 다윗이 한 몫을 한다는 것은, 다윗조차도 율법이 안중에 없었음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에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언제부터냐 하면, 그것은 바로 사사기에서 사사들이 단회적이라는 것인데, 즉 사사들의 활동이 일회용이란 말이죠. 그래서 사사들의 숫자가 많고, 그리고 그 어떤 사사라도 한결같지가 않다는 겁니다.

사사들이 단회적이라는 말은, 이 사사들이 제가 앞에서 말한 그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즉 "나는 나를 버리지 않았지만 너는 나를 버렸잖아. 나는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 라는 원칙에 말이죠. 소위 성신을 받았다는 사사들도 자기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사사와 같은 연속성이, 드디어 사무엘상에 들어가면 선지자로 넘어간다는 말이죠. 그것이 바로 사무엘인데, 그리고 이런 사사들의 단회성적인 요소가 어디까지 이어지느냐 하면, 바로 사울 왕까지 이어지고, 그리고 다윗까지도 이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의 관심이 사사에 있다는 말이죠. 즉 "사사들이 우리를 훌륭하게 구원을 했잖아. 그런 영웅과 같은 인물이 또 없어? 선지자 사무엘이 있네. 사무엘 때문에 우리가 살았잖아" 라고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감정이입을 해서 사사, 사무엘, 그리고 왕에게 백성들이 기대를 건다는 겁니다.

* 백성들이 문제다 !!

그런데 사무엘하에서 정작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백성들이 문제다" 라는 겁니다. 자꾸만 자기들을 구원해줄 영웅을 기대하는, 그 백성들이 문제라는 말이죠. 그 백성들이 왕을 갈아치워 버리는데, 그러면 백성들이 "나는 나를 버리지 않았지만" 라는 이 문장, 여기에 대해서 "그래서 뭐?" 라고, 사무엘하에서는 그것을 묻고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백성들이 "나는 나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에게 충실했습니다" 라고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사무엘하는 "그래, 그게 잘했다는 거야? 너희들이 대단하다는 뜻이야?" 라고, 지금 그것을 묻고 있다는 말이죠. 여기 이 '나' 라는 것이 모여서 백성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백성들마다의 생각이 뭐냐 하면, "전에 있었던 훌륭한 사사, 훌륭한 선지자가 어디 없느냐?" 라는 겁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무엇을 폐기처분을 했는고 하니까, "율법은 왜 있는가?" 라는 것인데, 하나님이 율법을 통해서 나타났는데, 그렇게 율법은 안중에도 없다는 말이죠.

이것을 바꾸어서 말하면, "내가 무슨 짓을 하든지, 나는 나를 지키는 것에만 일관되게 충실할 테니, 여기에 발생되는 하나님에 대한 해악은, 그것은 하나님과 백성사이 중재자가 나타나서, 나의 해악을 눈감아 주든지 봐주든지, 그렇게 해결해달라"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 인간은 잔인할 때 살아갈 맛이 난다 !!

사무엘하를 읽어본 사람은 아시겠지만, "나는 나를 버리지 않았지만, 너는 나를 버렸다. 그래서 나는 너를 죽이겠다" 라고 하는 것에 있어서, 이게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어떻게 죽입니까? 아주 잔인하게 죽이는데, 그렇게 잔인하게 죽인다는 것은, "나는 나를 지킬 때 잔인하게 지킨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죠.

자기가 자기를 지키는 강도와 비례해서 타인에 대한 태도가 결정이 되는데, 남을 잔인하고도 강하게 죽인다는 것은, "그만큼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 사력을 다했다" 라는 표시라는 겁니다. 그래서 남을 대할 때 잔인함의 강도를 높여가면서, 온 힘을 다해서 자기를 지키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말이죠.

그래서 여기서 빨간 글씨로 적겠는데, "인간은 잔인할 때 살아갈 맛이 난다" 라는 겁니다. 어중간히 잔인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봐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봐주면 뭔가가 찜찜하다는 것이죠. 물론 칭찬은 좀 받기는 하겠지만, 그런 칭찬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러니 "내가 극히 잔인할 데로 잔인할 때, 비로소 그게 나답다"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아주 잔인하게 될 때, 그것이 가장 나를 직면하는 순간이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이죠. 남을 밟을 때 대충 밟는 것은 전혀 '나' 답지 않은 것인데, 그래서 "저리 가세요" 라고 하면 안 되고 마구 밟아주어야 하는데, 그것도 맨발이 아니고 군화발로 지근지근 짓밟을 때, 그러면 "속이 다 시원하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라고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율법에는 누가 계십니까? 율법에는 예수님이 계시는데, 인간들이 그 예수님을 가장 잔인하게 대할 때, 즉 인간들이 잔인할 대로 잔인해져서, 예수님을 마구 짓밟으면서 잔인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모두 다 털어놓을 때, 그때 비로소 율법은 완성이 된다는 말이죠.

* 잔인함의 최고 목표지, '국가' !!

그래서 사사기를 지나고 사무엘상을 지나서 사무엘하로 가면서, 점점 더 어디에 접근을 하느냐 하면, 십자가로 다가서고 있다는 겁니다. 인간들의 본성이, 드디어 율법에 구애받지 않고 본성대로 활개를 치면서, 인간의 잔인함이 구성해내는 최고 목표지를 향해서, 그들은 질주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국가라는 말이죠.

그러면 이 국가가 잔인함은 어디서 드러나느냐 하면, 그게 바로 전쟁을 할 때라는 겁니다. 13세기에 몽골이 지구의 절반 이상을 점령할 때, 그들은 아주 잔인했다는 말이죠. 그들은 잔인하면서도 왜 잔인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는 겁니다. 그런데 징기스칸은 적들을 쳐부수기 위해서, 그들보다 열배 이상 잔인하게 자기 부하를 다루었는데, 한 명이 탈영하면 그 부대 전체를 처단했다는 것이죠.

그것을 다른 부하장수들이 그대로 인수를 받아서 다른 민족을 공격할 때, 지금의 미얀마나 이란 등을 칠 때, 그들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인했다는 겁니다. 유럽으로 가서는 막혔는데, 그때는 징기스칸이 죽었기 때문에 후퇴한 것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유럽도 그들의 잔인함에 모두 다 넘어갔다는 말이죠.

* 흉측한 '날것' !!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는고 하니, 전쟁이란 것은 숨겨진 인간의 악마적인 주특기까지도 다 뽑아내게 한다는 겁니다. 그것을 아주 고상한 말로 '날것' 이라고 할 수 있는데, 표피층 밑의 날것, 피부가 벗겨지면 그게 나온다는 말이죠. 아주 흉측한 날것이 나오는데, 그런데 이게 전쟁을 하면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겁니다.

그래서 전쟁을 할 때는 의리와 우정과 사랑, 그런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는 말이죠. 전쟁을 할 때는 인간은 그야말로 기계가 되고 마는데, 아무런 감정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그동안의 정이란 것은 사치스러웠다는 것인데, 그런 것들은 전쟁이 아니고 평화로웠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있었던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죠.

* 이스라엘 역사가 진행될수록 가까워지는 십자가 !!

그런 것이 바로 우정이고 형제우애고 가족애인데, 그러나 이런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점점 더 십자가에 가깝게 된다는 말이죠. 이스라엘의 역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십자가에 가까워지고, 인간의 본성은 본성대로 모두 다 드러난다는 겁니다.

북이스라엘이 아람나라에 포위가 되어서 양식이 없었을 때, 백성들이 어떻게 나옵니까?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의 자식을 먼저 먹고, 다음 날에는 인간 사람의 자식을 먹고 했는데,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왕에게 고소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게 인간이라는 말이죠.

(왕하 6:28)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왕하 6:29)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
(왕하 6:30)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저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 인간은 자기 자신을 몰라 !!

그래서 인간은 아무리 인생을 살아도 가장 모르는 것이 뭐냐 하면, 자기 자신의 마음이라는 겁니다. 자기 마음을 자기가 모른다는 것이죠. 자기의 마음도 모르면서 무슨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리겠다고 하는지, "눈코는 다 그렸지만 당신의 마음은 그릴 수 없습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게 이수미가 부른 노래에 나오는데 말이죠(ㅋㅋ).

그래서 먼저 자기의 배부터 부르게 채우는데, 그 마음이 곧 타인의 마음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인의 마음을 알고자 할 때는 항상 무엇으로 다가섭니까? 그것이 곧 환상인데, 즉 "내게 없는 것이 네게 있을 것이다" 라고 하는데, 그게 헛것이라는 것이죠. 이 헛것의 반대말이 날것이고 말이죠.

전쟁 중에 자기 목숨이 위태로울 때, "나는 나부터 챙긴다" 라는 원칙은 두 살 먹은 손자라도 유지가 된다는 겁니다. 아무리 누나와 사이가 좋다가도, 쟁반에 피자 한 조각이 남으면 접시가 깨질 정도로 "너 죽고 나 살자" 라는 식으로 덤벼들게 되어있다는 말이죠. "어딜 감히, 내가 이렇게 나를 지키는데, 감히 나를 건드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 둘로 쪼개지는 다윗 !!

제가 아까 "다윗도 한 몫 거든다" 라고 했는데, 그런데 다윗에게는 무엇이 있느냐 하면, 다윗에게는 율법의 완성체제가 있는데, 그것을 다윗만이 가지고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다윗은 자기가 자기의 모델이 아님을 아는데, 하지만 다윗 이외의 인물들은 이것을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둘로 나누어지는데, 물론 다윗에서 메시야가 오지만, 여기서 다윗이 둘로 쪼개진다는 말이죠. 메시야는 다윗에게서 오지만, 이게 로마서 1장에 분명 나온다는 겁니다. 메시야는 다윗의 후손이지만, 그러나 그 다윗이 그 다윗이 아니란 말이죠.

(롬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롬 1: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이 다른 다윗을 기존의 다윗대로 하는 게 아니라, 그 다윗 속에서 다른 다윗을 끄집어내는 방법, 그게 사무엘하에 나온다는 겁니다. 이 다윗은 날것인데, 반면에 다른 다윗은 율법대로의 다윗이란 말이죠. 그래서 사무엘하는 이 두 종류로 나누어서 생각하면 쉽다는 겁니다. 쉽지 않다고요? (ㅋㅋ)

이게 다윗의 혈통인데, 이 다윗의 혈통에서 다윗을 끄집어낼 때, 기존의 이 다윗은 생것, 즉 날것이 그대로 유지가 되는 다윗이라는 말이죠. 이 다윗은 압살롬이라는 자기의 셋째 아들에게 그만 당하는, 크게 웃음거리가 되고 마는, 그런 다윗이라는 겁니다.

* 후손이 조상을 구원해 !!

반면에 이 다른 다윗은 어디서 나왔냐 하면, 이것은 오히려 자식에 기대하는 다윗인데, 즉 솔로몬이 태어나면서 그 솔로몬을 의지하는 다윗에게서 나왔다는 말이죠. 시간적으론 다윗 다음이 솔로몬인데, 그런데 솔로몬이 태어난 뒤에, 그 솔로몬 속에 있는 다른 다윗을 기존의 다윗이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먼저 태어난 선조된 자가 자기의 후손 속에 응축이 되어있는 메시야를 발견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언약의 율법완성을 선조들이 어디서 찾는다는 겁니까? 자기의 후손 속에서 그 율법의 완성, 즉 메시야를 찾게 된다는 겁니다. 선조가 후손에서 말이죠.

* 혈통을 관통하는 율법 !!

요한복음 8장에서, 아브라함이 분명히 자기 후손으로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기다리면서, 자기 후손이 메시야임을 고대할 때, 그 메시야와 아브라함 사이에는 혈통 그 이상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혈통을 벗어납니까? 그것은 아니란 말이죠. 율법은 혈통을 비켜 가는 것이 아니고, 혈통 안에 율법이 있는데, 그 율법이 혈통을 관통한다는 겁니다.

(요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세계에서 제일 긴 터널이 북이탈리아와 스위스의 알프스 산 아래에 있는데, 그게 '고츠하르트 베이스' 터널로서, 무려 그 길이가 57km라고 한다는 말이죠. 우리나라에도 50km가 되는 '율현터널'이 있는데, 그게 평택 지제역에서 수서역으로 가는 고속열차가 통과하는 터널이라는 겁니다. 아무튼 알프스 산 아래를 뚫고 지나가는데, 그런데도 그 산이 무너지지 않고 멀쩡하다는 것이죠.

우리가 신약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인물들을 보면, 그 아래로 예수님의 성령께서 뿌리 채 뚫고 지나간 자들이라는 겁니다. 열두 제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앉은뱅이, 백부장, 혈루병 여인 등등, 이들 모두가 예수님이 뚫고 지나간 자들인데, 그래서 생명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말이죠.

* 시력 2.0의 소경 !!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소경이 나오는데, 평소에 자기는 눈만 뜨면 족하다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날것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눈을 번쩍 뜨고 지옥에 갈래? 아니면 눈을 감고 천국에 갈래?" 라고 하자, 여기서 소경은 "소경인체로 천국에 갈래요"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그러니 소경은 자기가 눈을 떠도, 그 눈을 떴다는 것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기 시력이 2.0이라도 "나는 소경이다" 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미쳤다는 말이죠. 그만 맛이 가고 말았는데, 하지만 이런 변화가 없이는 성도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요 9: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다윗은 자신을 모델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러면 자신의 모델은 어디에서 찾는고 하니, 솔로몬에게서 찾는다는 말이죠. 비록 솔로몬이 자신의 몸에서 나오지만, 다윗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해버린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다윗이 아니고 누구입니까? 죽은 우리야 장군의 아들로서의 솔로몬이 되어버린다는 말이죠.

* 왕은 죽음에서도 소환된다 !!

그러면 솔로몬이 왜 중요하냐 하면, 이게 '날것' 인데, 즉 "육적인 내가 누구를 죽였다" 라는 겁니다. 여기서 첫째 시간에 제일 중요한 것을 적어보면, "왕은 죽음에서도 소환된다" 라는 것인데, 이게 메시아적이라는 말이죠. 다윗만이 간음을 하든 살인을 하든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죄의 죽음에서 소환되기 때문에, 그래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죠. 왕이 왕다우려면, 자기가 필히 율법에 의해서 망가지고 구멍이 나야만 한다는 것인데, 그것을 유일하게 아는 자가 누구인고 하니, 그가 바로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멀쩡한 나로 유지해서는 절대로 죽음에서의 소환된다는 언약적인 능력이 나올 수 없다" 라는 것을 다윗만 안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는 것이죠. 그런데 정작 다른 사람들은 이 다윗을 모델로 삼는데, 왜냐하면 다윗에게 권력이 있기 때문에 말이죠.

권력이라는 것을 가지고, 자기가 지키고 싶은 그 '나'를 어떻게 하느냐 하면, 칭칭 감는다는 겁니다. 두텁게 잠바를 입고 오버를 입고, 그 위에 또 무엇을 입고, 그렇게 자꾸만 걸친다는 말이죠. 힘을 모으고 모아서 감고 걸치고 한다는 겁니다. 즉 권력을 원해서 권력자가 되려고 한다는 말이죠.

* 다윗의 모형에서 권력자는 없어 !!

그런데 다윗의 모형에서는, 권력자를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적이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무엇으로 싸웠습니까? 칼의 힘이었습니까? 평소의 훈련 덕분이었습니까? 그게 아니라는 말이죠. 하나님의 이름으로 승리했는데, 그게 소년 다윗의 고백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다윗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여호와의 이름이 다윗 속에서, 무슨 고백을 하게 하느냐 하면, 골리앗을 볼 때 덩치로, 즉 "방패가 있다. 칼이 있다. 창이 있다" 라는 것으로 본 것이 아니고, 골리앗에게는 누락된 것이 있다는 말이죠. 그게 바로 할례언약인데, 즉 "너는 할례를 받지 않았잖아?"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막상 정답을 알면 좀 허망하게 느껴지는데, 아닌가요?

골리앗이 왜 죽었느냐 하면, 하나님의 언약이 없어서 죽었다는 말이죠. 소년 다윗이 힘이 세서 죽은 것이 아니고, 골리앗은 언약이 없어서 죽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떻게 이겼습니까? 소년 다윗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할례가 있는데, 즉 하나님의 언약이 있기 때문에 이겼다는 겁니다.

참 쉽지요? 그런데 이 쉬운 이야기를 무엇이 훼방을 놓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델로 삼아야 하는데, 예수님은 자기가 구원의 모델인 것을 아는데, 예수님 자신은 그것을 아신다는 말이죠. 그러면 예수님을 빼놓고, 열두 제자들을 비롯한 다른 인간들이 예수님이 구원의 모델인 것을 압니까? 그 어떤 인간도 몰랐다는 겁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과 힘, 권세, 권력, 여기에 눈독이 들였다는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에게 "우리 제자들 가운데 하늘나라에 가면 누가 높습니까?" 라고 하는데,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제일 빈약한 존재를 하나 끌고 오는데, 그게 바로 어린아이라는 겁니다.

(마 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 18: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마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의존적인 어린아이 !!

열 살이 넘어가면 이미 어린아이가 아닌데, 그러니까 아주 어린 어린아이를 하나 데려왔을 때, 그런 어린아이의 특징은 뭐냐 하면, 아까 이야기한 원칙, 즉 "나는 나를 지킨다" 라는 것이 없다는 겁니다. 그게 아직 발달되지 않았다는 말이죠. 자기가 자기를 지키려고 하지 않으니, 타인에 대한 잔인함도 없다는 겁니다. 그냥 의존적인데, 의존교회의 그 의존이라는 말이죠(ㅋㅋ).

길을 가는데 아저씨가 사탕을 준다고 하면, 물론 요즘은 사탕은 먹히지 않고 비트코인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그러면 아이는 따라간다는 겁니다. 아무튼 뭔가 좋으면 따라가는, 그렇게 전부가 의존적이라는 말이죠. 누가 키워주어도 모두 엄마라고 부르는데, 혈통적으로 어디서 태어났는지, 그런 것은 문제삼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전적으로 더 이상 나는 나에게 중요치 않다" 라는 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그런 분은 오직 하나님의 율법 안에만 계신다는 말이죠. 자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끝까지, 그것을 자기에게 주입시키는 분, 그분이 바로 메시야라는 말이죠.

다윗에게는 이미 소년 때부터 있었는데, 그런데 다윗은 자기가 골리앗을 이기고 그것으로 계속 이스라엘의 왕이 될 줄로 알았다는 겁니다. 사무엘하 1장부터 10장까지 "나는 왕이다. 나는 왕이다" 라고, 그렇게 계속해서 자기를 주입하면서, "나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나왔다는 말이죠.

* 다윗의 몰락 !!

그런데 11장으로 넘어가면 몰락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1절과 2절에 나온다는 말이죠. 여기서 2절을 보면, "저녁 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삼하 11:1) 해가 돌아와서 왕들의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 신복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저희가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으니라
(삼하 11:2) 저녁 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골리앗을 이길 때의 원리원칙, 즉 소년 다윗은 자기가 자기를 지키는 것이 아니고, 할례가 무할례를 이긴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자기가 자기를 지킬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 소년 다윗이 점점 더 자라난다는 겁니다. 물론 예수님은 자라나서 십자가로 다가가지만, 인간은 자라나게 되면, 어릴 때 품성이 전부 다 세속에 물들어서 그만 이 세상과 똑같이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다윗은 점점 자라가면서 "나는 왕이다. 옛날에 잘 나갔다, 과거에 골리앗을 이겼다" 라는 생각만 하기 때문에, "이 나라에선 나말고 왕의 적임자는 없다" 라고 여긴다는 겁니다. 여기서 정치적 발언을 하면 곤란하겠지만, "내가 올바른 정치, 정의로운 정치를 위해서 이렇게 애썼다"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그러니 "나는 나다" 라고 계속해서 외치는데, 그렇게 인간이 밀어붙이는 것 자체가, "나는 이 정도다" 라고 하는 것 자체가, 그게 자기가 망가지고 있는 과정인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오히려 점점 더 율법의 정신과는 멀어지고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골리앗을 물리친 원칙과 멀어진 다윗을 대체해서 누가 등장하는고 하면, 우리야 장군이 등장한다는 겁니다. 지금 거룩한 여호와 하나님의 전쟁에서 누가 관여를 합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궤가 주시하고 있다는 말이죠. 이러한 점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겁니다.

* 붙이시매 전쟁

보통 전쟁은 사람들이 한다고 보는데, 그러나 여호수아서나 사사기에 보면, 사무엘상 초반도 마찬가지이고 말이죠. 이 전쟁은 누구에게 달렸느냐 하면, 그것은 언약궤가 있는 쪽과 언약궤가 없는 쪽으로, 그렇게 전쟁은 이미 결정이 난 것으로 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언약궤가 율법의 완성이고, 그 언약궤가 있는 예루살렘에서 우리야 장군은 무엇을 보느냐 하면,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을 지키는 전쟁이 아니라, 언약궤의 의미와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주셨다는 것인데, 거기에 연결고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는 말이죠. (참고로, 언약궤가 예루살렘이 아닌 전쟁터에 있다고 2강에서 목사님이 수정함)

저쪽 암몬자손은 할례가 없는데, 반면에 이스라엘은 율법이 있다는 겁니다. 그쪽은 율법이 없다는 말이죠. 그러면 율법이 있는 쪽이 없는 쪽을 이기는 것, 그것이 바로 언약궤의 취지를 살리고 확인하는 것인데, 그런 차원의 전쟁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무슨 전쟁이라고 하느냐 하면, 이것을 붙여주는 전쟁, 즉 '붙이시매 전쟁' 이라고 한다는 것이죠.

* 얻어맞아 죽어가면서 !!

예를 들어서, 마태복음 5장 39절에서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며 왼편도 돌려대라" 라고 하는데, 이 말씀을 지킨다고 하면서,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을 돌려대면 어떻게 됩니까? 특히 군대에서 그렇게 하면, 몸이 그야말로 남아나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마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졸병이 "내가 얻어맞음으로 말미암아서 마태복음 5장 39절의 의미가 살아납니다" 라고 하면, 상관은 화를 내면서 이번에는 오른쪽 정강이를 발로 걷어찬다는 말이죠. 그러자 왼쪽도 때리라고 하면 내놓는데, 그러면 이것도 마저 차버리는데, 그렇게 두 시간 반 동안 너무 맞아서 죽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죽어가면서, "죽어가는 이것이 마태복음 5장 39절의 완성입니다" 라고 한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미친 것이란 말이죠.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개기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말씀을 왜 네가 지키려고 하느냐?" 라는 겁니다. 그야말로 바보라는 말이죠.

* 붙이시매 전쟁과 우리아 장군 !!

그런데 그것이 바로 우리야 장군인데, 즉 "우리가 이 전쟁에서, 나의 안전과 내 아내와 약간의 휴가를 즐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언약궤가 있는 이스라엘 쪽이 반드시 이긴다는 것을 이 몸 하나를 바쳐서 확인하고 증명하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 붙이시매 전쟁에 우리아가 나섰다는 겁니다.

이것은 사실 과거에 다윗이 소년이었을 때 골리앗과 했던 전쟁방식이었다는 말이죠. 그 전쟁방식은 하나님에게 변함이 없는데, 그런데 인간이 그만 시건방져졌다는 겁니다. 즉 "내가 왕년에 좀 했잖아. 왕년에 내가 세탁기를 백만대 팔았던 신화의 인물이다" 라고 하는데, 드라마를 보면 그런 것이 나온다는 말이죠(ㅋㅋ).

그러니 "옛날에 내가 무엇 무엇을 했다" 라는 식으로, 즉 "왕년에 내가 이 교회를 개척해서 세웠잖아, 왕년에 내가 전도를 몇 명했잖아" 라고 하는데, 그렇게 '왕년에' 라는 것이 나오면 "아, 망했구나. 맛이 갔구나. 저 인간은 끝났어" 라고 여기시면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새로움이 없는데, 남녀가 사귀면서 "옛날에 너에게 잘해주었잖아" 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죠.

* 다윗의 끼어듬 !!

그래서 우리아가 전쟁에 나갔을 때, 우리야 아내가 목욕을 하고 있었고 다윗은 그것을 쳐다봤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게 어떻게 됩니까? 언약궤와 전쟁 가운데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어야 하는데, 그런데 갑자기 다윗 왕이 여기에 장애물로서 등장한다는 겁니다. 타이밍이 죽이지 않습니까?

소년 다윗은 아무 다친 것도 없이 골리앗을 이겼는데, 그런데 우리야의 경우에는 우리야 자신이 죽는다는 말이죠. 이렇게 자기가 죽는다는 것은, "다쳤다, 다치지 않았다" 라는 것보다 죄가 더욱 더 심화가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방식도 어떠냐 하면, 잔인하게 죽는다는 말이죠.

여기서는 누가 죽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다윗이 끼어 들었다는 겁니다. 이것은 소년 다윗, 그 시절의 다윗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건방지게 다윗이 끼어 드는 다윗이라는 말이죠. 율법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현재성, 그 실재성에 그만 인간이 끼어 들었다는 겁니다.

* 의인의 죽음 !!

그렇게 끼어 드니까, 여기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느냐 하면, 바로 억울한 자, 즉 억울한 의인의 죽임이 발생된다는 말이죠. 이것이 뭐냐 하면, 출애굽기나 사사기에 나오는 대자연의 기적보다도 더 확실한 기적인데, 그게 바로 '의인의 죽음' 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집에 돈이 백억 생기는 것보다도 십자가가 더 큰 기적이라는 말이죠. 왜냐하면 백억이 생기면, 자기는 백억을 받을 만한 잘난 존재가 되지만, 십자가가 자기 인생에 개입해버리면, 구원이라는 것이 자기가 신경을 쓸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의 무거운 인생의 무게를 놔버리게 된다는 말이죠.

* 접시를 깨자 !!

돈은 좀 들겠지만 실감나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저기에 교회주방에 가면 접시가 놓여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접시를 위에서 그냥 놔버리면 되는데, 그러면 그 접시는 어떻게 됩니까? 바닥에 떨어지는데, 그러면 '와장창' 하면서 깨어진다는 말이죠. 그런데 접시를 깨기 전에, 그 접시에 '나' 라고 써놓으라는 겁니다(ㅋㅋ).

시건방지게 주께서 하시는 일에 '나의 구원' 이라는 욕망이 끼어 들면, 진짜 구원될 사람의 경우에는, 주께서 그것을 마치 접시를 깨버리듯이 깨어버리는 복을 주신다는 말이죠. 자기가 망해버리는 복인데, 다윗은 이러한 '복 만들기'에 이스라엘 왕의 자격으로 참여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 타이밍을 통해서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 말썽꾸러기가 되자 !!

그래서 제가 강의처음에 트러블 메이커, 즉 말썽꾸러기라고 했다는 겁니다. 모든 인간은 주님에 대해서 말썽꾸러기인데, 즉 우리는 말썽을 일으키라고 이 땅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말이죠. 이쯤이 되면 '아멘'이 좀 나와줘야 하는데(ㅋㅋ), 우리가 어느 정도로 말썽꾸러기인가를 알기 위해서 이렇게 계속해서 살려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말썽꾸러기 역할에 충실하자는 것이죠.

영화의 주인공은 예수님이고, 우리는 엑스트라라는 겁니다. 그 중에는 허장강처럼, "김중배의 다이아가 그렇게 좋더냐?" 라고 했던 그 김중배의 역할을 맡아서 온 국민들에게 욕을 얻어먹는 경우도 있고, 그러면 그런 국민밉상이 되는 역할을 주님께서 맡겼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주인공인 드라마에 참여했다는 것인데, 그러니 얼마나 신나고 감사한 일이냐는 말이죠.

감독이 악한 일을 하라고 하는데, 자기는 착한 일을 하겠다고 우겨버리면 드라마가 엉망이 되어버리는데, 그러면 감독이 "컷, 다시"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악한 일을 여러분이 잘 하시는데, 아까 악한 일의 원칙을 보았죠? 즉 "나는 나를 지키는데, 왜 너는 나처럼 지키지 못해? 그만 죽어버려라" 라고, 인간이 잔인할 때 살아갈 맛이 나는 것처럼, 그런 역할을 하게 하신다는 말이죠.

* 옷은 제가 맡겠습니다 !!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그런데 "믿는 사람은 이단이다" 라고 하면서 돌아다니는 자가 있다는 겁니다. 자기가 행정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스데반이 죽을 때 "돌을 던지는데 힘들지요? 신명기의 율법대로 제대로 죽여야겠죠? 옷은 제가 맡을게요" 라고 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신약의 사울이라는 겁니다.

사울 자신은 그 당시에 자기가 예수를 믿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구원은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상상이 안 된다는 겁니다. "이번 수련회가 끝날 때가 되면 예수를 믿을 거야" 라고 하신다면, 그것은 망상이란 것이죠(ㅋㅋ). 그렇게 되면, 망상 자체에 현혹이 되어서, 믿지도 않으면서 믿는 척을 하는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 하늘나라의 양자로서 !!

이 구원문제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이것을 '후견자' 라고 하는데, 혹은 보호자, 교회에서는 목자라고 하는데, 이런 후견자인 고엘은, 우리를 양자로 취급을 한다는 말이죠. 즉 아들도 아닌데 아들로 여겨주어서, 구속자, 이것이 바로 구원자란 뜻이라는 겁니다.

이 구원자는 우리를 양자로 취급해서 돌봐주신다는 겁니다. 그렇게 돌봐주시면,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반드시 "나는 아들이 될 자격자가 아니었습니다" 라고, 그리고 이것을 한 때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고백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하늘나라에 하나님의 아들로, 즉 양자로서 구원받은 자의 모습이라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주님께서 율법을 이루셔서, 그 율법을 우리에게 적용을 시켰더니,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부하는, 그렇게 양자로 전환이 된다는 겁니다. 아들은 따로 있는데, 그 아들은 예수님이고, 우리는 양자가 되어서 그의 동생들로서, 형제로서 드디어 하늘나라의 패밀리가 된다는 말이죠.

마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이 "누가 내 모친이고 동생들인가?" 라고 하시면서, 그 다음에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형제고 자매고 모친이다" 라고 하셨다는 말이죠. 그러니 양자가 되는 사람은, 주님의 뜻 때문에 자기의 뜻이 다 작살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날마다 우리 자신의 포부와 뜻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신다는 말이죠.

(마 12:48)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마 12: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마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 오늘은 계란을 삶아야지 !!

계속해서 매일같이 우리는 눈만 뜨면 자기 자신의 스케줄을 체크하는데, "그것이 내 뜻입니다" 라는 의미라는 겁니다. 즉 "오늘은 계란을 삶아야지. 그리고 오늘은 찰밥을 해야지" 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우리는 자기의 뜻을 만들어낸다는 것이죠. 그러면 찰밥을 했을 때는 맛있게 먹었는데, 그렇게 하고 난 뒤에는 인생의 허무함을 달랠 길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찰밥을 하려고 태어났나? 돈을 모아서 차를 바꿔야지" 라고 하는데, 그러면 차를 바꾼 직후에는 기분이 좋은데,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기껏 차나 바꾸려고 태어났나? 겨우 벤츠 600이야? 개나 소나 다 벤츠를 타고 다니네. 차별화가 되지 않아. 인생목표를 향상시키자. 이런 벤츠로는 안 된다. 포르쉐로 바꿔야지" 라고 한다는 말이죠.

이게 우리의 뜻이 아니고 주님의 뜻인데, 그런 주님의 뜻은 언제 나타나느냐 하면, 먼저 우리의 뜻이 등장한 난 다음에 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데, 전부가 자기 뜻이라는 것이죠. 기도할 때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복음만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라는 것은 거짓말인데, 왜냐하면 인간은 배가 고프면 자기 뜻이 우선이지 주의 뜻은 없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나대지 마시고 그냥 자기 뜻을 펼치면 되는데, 사무엘하에서는 이것을 욕망이라고 하는데, 무슨 욕망입니까? 권력의 욕망인데, 그러니 그 욕망대로 살면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살면 때가 되면 주님께서 그 욕망을 다 부셔주신다는 말이죠.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르는데, 즉 "지은 것은 죄밖에 없는데, 그 결과는 구원이다" 라는 겁니다. 무슨 이런 공식이 다 있느냐는 것이죠.

* 인간의 개별적 뜻은 통하지 않는다 !!

여기에서 공식을 하나 제시하면 "인간의 개별적 뜻은 통하지 않는다" 라는 것인데, 즉 "x²+3x-4=0" 이라는 겁니다. 여기에서 x를 구하는 방법은, 4를 0의 뒤로 보내면, x는 1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별적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이 "x²+3x-4=0" 라는 것을 보편화를 시키면, 그러면 이것이 "x=-a±√a²+4b /2" 라고 되는데, 이것이 '일반해(一般解)' 라는 겁니다.

이 일반해가 무엇인고 하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고 예수님의 뜻인데, 즉 율법의 완성이라는 말이죠. 이런 상황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별해인 "x²+3x" 라고 하는 상황을, 그것을 시간에 딱 맞게 주님께서 아주 적절하게 만드시는데, 그것을 이 사무엘하에서 잘 보여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밧세바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자기가 아직 목욕할 때도 아니더라도 반드시 목욕을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죠. 즉 보편적인 일반해가 개별적으로 적용이 되려고 하면, 우리는 보편에 매인 개별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가 되시죠? (ㅋㅋ)

* 누가 힘을 가졌는가?

그러니까 이 사무엘하가 보여주는 것은, 사람들이 권력의 욕망에 미쳤을 때 누가 피해를 보느냐 하면, 율법은 아무런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가 힘을 가졌는가?" 라는 것을 가지고, 그것을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으로 오인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그러면 이 사무엘하를 제일 잘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인고 하면, 교회 내에 권력투쟁을 보면 된다는 겁니다. 교인들이 목사를 그냥 모시는 게 아니고, 그 앞에 무엇을 넣는데, '받들어' 모신다고 한다는 말이죠.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교인들을 백성으로 본다면, 백성들이 무엇을 결정합니까?

* 당회장 목사를 '받들어' 모시겠다 !!

당회장 목사를 자기들이 결정하겠다는 것인데, 즉 "당회장 목사는 우리가 요구하는 바,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켜줄 때 받들어 모시겠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갑자기 사무엘하가 다가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교회가 커져서 십만명이 되었다는 말이죠. 그렇게 커지니, 목사가 자기 자식들을 교회의 주요관직에 세우는데, 성가대장과 반주자로 세운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교회는 집안 교회가 된다는 말이죠. 그리고 교인들은 졸지에 백성이 되고 만다는 겁니다. 백성들이 그 목사를 쫓아내지 못하는 이유는, 그 목사가 옛날에 골리앗을 이겼다는 말이죠. 그 목사가 옛날에 빈민촌에서 활빈당을 만들었는데, 처음 개척할 때 자기 혼자서 고생을 다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눈치코치도 없이 복음을 전하는 자가 등장했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 목사가 어떻게 합니까? 성경적인 용어인 종용히 불러다가 종용히 잘라버린다는 겁니다. "네 말은 옳지만 교회부흥이 안 된다" 라는 한 마디로 잘라버린다는 말이죠. 그러면 투자한 주식이 많은 임원진들은, 비록 목사의 횡포가 심하지만, "지금은 권력이 없어서 종용히 있느니라" 라고 하면서 때를 기다린다는 겁니다.

사무엘하 그렇게 보시면서, 10분을 쉬시기 바랍니다.

2021,12,6 재정리함 - 녹취 구
2021,12,15 재재정리함 - 녹취 구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92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8,867 자유게시판 서울의존강의20211216a 베드로후서1장 19절(실패다)-이 근호 목사 베드로후서 최고관리자 21-12-19
열람 ➜ 자유게시판 21십자가마을여름수련회-왕의무대(삼하)(8,1~2)(총9강)(강의정리)(재정리) - 최고관리자 21-12-17
18,865 자유게시판 14강-요엘 3장 1-8절(선, line)211215-이 근호 목사 요엘 최고관리자 21-12-16
18,864 자유게시판 20211213b 부산강의 : [시편]44(28:3)-나와의 이별 시편 최고관리자 21-12-15
18,863 자유게시판 20211213a 부산강의 : [시편]44(28:3)-나와의 이별 시편 최고관리자 21-12-15
18,862 자유게시판 113강-욥기 35장 1~8절(모순)211212 이근호 목사 욥기 최고관리자 21-12-12
18,861 자유게시판 16강-데살로니가전서 4장 9-12(형제사랑)211212 - 이 근호 목사 데살로니가전서 최고관리자 21-12-12
18,860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여자 제자 / 211212 - 최고관리자 21-12-12
18,859 묻고답하기 휴거 데살로니가전서 최고관리자 21-12-12
18,858 자유게시판 12월 부산 성경공부 모임 안내 - 최고관리자 21-12-11
18,857 자유게시판 13강-요엘 2장 28-32절(한장의 그림)211208-이 근호 목사 요엘 최고관리자 21-12-09
18,856 자유게시판 375강-YouTube강의(시간 베드로후서 3:8)20211207-이 근호 목사 베드로후서 최고관리자 21-12-08
18,855 자유게시판 374강-YouTube강의(설교 요한복음 20:31)20211207-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21-12-08
18,854 강의 유튜브강의 (374강, 375강) 설교, 시간 211207 - 최고관리자 21-12-08
18,853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8장 37절 (빛의 산란)211116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1-12-06
18,852 자유게시판 20211203b 울산강의-역대기상(6강) 4장 40절 : 후크와 자크 - 최고관리자 21-12-06
18,851 자유게시판 20211203a 울산강의-역대기상(6강) 4장 40절 : 후크와 자크 - 최고관리자 21-12-06
18,850 자유게시판 112강-욥기 34장 31~37절(딜레마)211205 이근호 목사 욥기 최고관리자 21-12-05
18,849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우리의 기도 / 211205 - 최고관리자 21-12-05
18,848 묻고답하기 형제 사랑 - 최고관리자 21-12-05
18,847 묻고답하기 [처음 사랑]-송민선 성도님의 글 - 최고관리자 21-12-05
18,846 자유게시판 처음 사랑 - 최고관리자 21-12-05
18,845 자유게시판 2021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삼상) 재정리 - 최고관리자 21-12-02
18,844 자유게시판 목사님, 질문입니다 - 최고관리자 21-12-02
18,843 자유게시판 11강-요엘 2장 24-27절(옛것과 새것)211201-이 근호 목사 요엘 최고관리자 21-12-02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