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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3강-요엘 2장 28-32절(한장의 그림)211208-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요엘

13강-요엘 2장 28-32절(한장의 그림)211208-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요엘 2장 28-32절입니다.

요엘 2:28-32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이 본문에 하늘과 땅에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는 어떤 징후, 어떤 징조가 나타난다 했습니다. 그러면 하늘과 땅을 합쳐버리면 이것은 대자연이 되겠지요. 대자연을 하나의 연극무대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팅된 연극무대.

그러면 그 연극무대는 연극무대기 때문에 거기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 등장인물들은 갇혀 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하고 바깥세상을 아무리 구상을 해도 그들은 하늘과 땅이라는 그 제한된 공간 밖으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 안에서 모든 일이 다 벌어집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연극무대의 세팅되어 있던 천장이 내려앉는다고 봅시다. 그걸 가지고 하늘이 내려앉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만약에 무대가 꺼진다면 이건 땅이 주저앉는 거지요. 그러면 그 세팅된 무대에 의존해서 그것이 전부라고 여겼던 그 인간들은 꼼짝없이 그 무대의 운명과 함께 소멸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연극무대라 하는 것은요, 그 연극을 연출하는 연출가의 의도와 뜻만 충분히 보여주게 되면 연극무대로서의 그 역할은 다 한 거예요. 거기에 등장하는 배우들이나 등장인물들의 사적인, 개인적 사정은 연출가 입장에서는 고려해주지 않습니다.

영화 촬영하는데 영화배우가 우리 집안에 일 있다고 촬영 그만두고 가게 되면 그것은 감독으로서는 용납이 안 되지요. 배우가 그 역할에 충실해야 되고 배우 입장에서는 영화 촬영할 때 그게 자기의 인생이에요. 다른 인생 없습니다. 그 역할에 충실해 줘야 돼요.

그처럼 우리 피조물 운명이라는 것, 팔자라는 것은 갇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가두었어요. 그러면 그 연극이 끝나는 날 같으면 이제는 세팅된 연극무대부터 철거대상입니다. 무너지지요. 무너질 때 거기 배우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비명을 지를 겁니다. 악!~ 하고 비명 지를 거예요.

자, 연극무대가, 내가 알았던 대자연이 하나님이 만든 하나의 세팅된 연극무대인데, 하나님이 그 연출자고 감독인데 하나님에 의해서 그것이 무너져 내릴 때 악! 하고 무대장치, 대자연과 함께 함몰되어서 무너지는 사람의 비명 소리도 있겠지요. 그게 우리네 상식입니다.

연극무대 무너지면 다 같이 외마디 비명 지르고 다 거기에 파묻히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오늘 본문에 보면 거기 어떤 놀라운 예상 못 할 다른 이야기가 있어요. 비명 소리 말고 다른 이야기. 그게 32절에 나옵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등장해요.

참 희한한 일입니다. 내가 의지했던 그러한 이 대자연, 내가 유일하게 의지했던 대자연이거든요. 대자연이 무너지면 우리는 망한다. 이것은 인간들의 상식입니다. 코로나 범람하니까 마스크 쓰고 있는 이유가 뭐 대자연의 변화에 인간이 같이 호응해주지 않으면 인간들이 죽을 판이니까 마스크 쓰고서라도 살아야 되겠지요. 항상 대자연의 눈치를 봐야되는 거예요.

그런데 몽땅 무너진다면 다른 희망은 없어요. 절망적입니다. 이게 우리네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좋으나 싫으나 간에 평생을 대자연 품 안에서 우리는 살았기 때문에 이것 대자연 사라지게 되면 같이 망한다. 이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 가운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등장한다면 이것은 인간들이 예상을 못 한 거예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그다음에 “구원을 얻으리라” 되어 있지요. 32절에. 그러면 이 구원이라는 것은, 제가 방금 해드린 말씀에 의하면 구원이라는 것, 인간은 대자연이 전부고 그 안에만 머물러 있을 뿐이고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는 자에 한해서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는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망하면 망하는 거지 여호와의 이름 불러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만약에 어떤 사람이 대자연이 무너지는데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이런 뜻입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 세상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내가 벌써 알았어. 내가 부르는 여호와께서 이 세상이라는 무대를 만들었다가, 부수기 위해서 만들었다가 부수시는 것이 그분의 예정된 작업이라 내가 사전에 그걸 알았지’라고 하는 사람에게만 무엇을 부르느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 인식은 대자연을 초월해요. 대자연을 초월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 이 모든 것이 결코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말이 있지요.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게 사도행전 마지막에 보면 나옵니다. 사도행전 28장 26절에 보면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무대장치를 보는데 성령을 받아서 깨닫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대자연이 다가 아니야, 이렇게 하는데 성령을 못 받은 사람은 뭐냐 하면, 눈에 보이는 대자연이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있습니다.

인생이라 하는 것은 그 안에서 사는 게 그게 인생의 all, 모든 인생이라는 그 안에서만 형성되고 그 밖에는 다른 인생이라는 것은 없는 줄 알았던 거지요. 그러니까 그들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그들에게 귀가 있고 눈이 있지만 귀가 있고 눈이 있는 그것도 대자연의 일부가 되어서 대자연이 무너질 때 그들의 귀와 눈도 아무 쓸모 짝이 없다는 것이 완전히 티가 나면서 와르르 무너지는 겁니다.

제가 처음부터 강조한 것은 이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신 연극무대로써 세팅되어 있다는 것을 제가 말씀드립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말하기를 “아니야. 대자연은 옛날부터 있는 그대로 이것은 무너질 리가 없어.” 이렇게 그대로 간다고 이야기하겠지요.

오늘 본문 요엘서 2장 30, 31절에 보면 “내가 이적을……” 이적이란 어떤 징후를 말하지요. 내가 징후를 보여주는데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피와 불과 연기 기둥, 그다음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피 색깔이 되면서 변하는 거예요. 뭐 일식이 일어났어요? 핏빛같이 변한다. 갑자기 무대 색깔이, 무대를 유지했던 색깔이 달라져요. 해가 어두워졌다는 말은 대자연을 비추는 조명시설이 맛이 갔어요. 형광등이 너무 오래되었는가요? 맛이 갔어요. 대자연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겁니다.

인간들은 그것만 의지했거든요. 인간들의 의식은 뭐냐 하면, 사람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대자연의 질서다. 이것 믿고 그들은 변하지 않는 자연의 질서 가운데서 종교도 끄집어내고 철학도 끄집어내고 오늘날 과학도 그러한 안정된 질서라는 전제하에 과학을 실시하는 겁니다. 안정된 자연 가운데서. 안정된 보금자리, 갑자기 보금자리 아파트가 생각나네요.

보금자리 아파트처럼 나의 보금자리,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내가 죽고 난 뒤에 자식에게도 물려줄 나의 보금자리, 그것만 있으면 인생 오케이, 인생 대대로 별 탈 없이 잘 살았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러나 햇빛이 어두워지고 달빛이 핏빛이 된다는 것은 그들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해가 어두워지게 되면 그 이유를 내가 알아야 되고 달이 핏빛이 되면 그 이유를 알아야 되는데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면 이것은 곧 나에 대해서, 그동안 내가 다듬어온 내 안정된 나의 인생에 문제가 일어났다는 뜻이거든요.

그게 싫은 거예요. 무슨 말이냐? 인간은 뭐가 싫으냐 하면, 나다움에 변경이 일어나는 것을 싫어해요. 나다움. 인간이 자연에 갇혀 있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자연을 모티브로 해서, 자연을 안정으로 해서 그 안에 형성된 이 자아상, 내 자아상에 내가 갇혀 있다, 같은 말입니다, 내가 내 자아상에 갇혀 있다는 말은 내가 가진 것 안에 내가 갇혀 있다,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하나 둘씩 빼앗기면 분노가 일어나고 화가 나지요. 성경 말씀을 사람들이 대충 듣고 안 보려고 하는 이유가 성경 말씀은 처음부터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되어 있거든요.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서 그들은 말합니다. 이것은 부정적 사고방식이다. 이렇게 돼요. 우리에게 어떤 희망과 행복을 안 주는 책이기 때문에 내 쪽에서 거절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타조가 뒤에서 짐승이 따라오니까 그 자리에서 도망치면 되는데 도망치는 것이 아니고 뭘 하느냐 하면, 모래밭에 자기 머리 부분만 팍, 하고 거기에 처박아 버립니다. 머리 부분을 처박아서 눈과 귀가 모래 속에 있으니까 모래 안에는 짐승이 없잖아요. 그냥 고요만이 흐를 뿐이지요. 몸뚱이는, 엉덩이는 바깥으로 다 내놓고요.

그래놓고 눈만 감으면 짐승이 그냥 못 볼 줄 아는 겁니다. 자기는 자기를 못 보지요. 그런데 짐승이 나를 못 보고 그냥 지나갈 줄 알았던 겁니다. 이게 참 어리석지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되어 있는데 인간은 자기가 무너지는 대상이 된다는 것이 본인이 이게 듣기 싫어서 아니야 ‘아니야. 나 그런 소리 안 들을거야.’ 하고 자기 손으로 귀를 막으면 성경 말씀이 ‘아이고, 무서워라.’ 하고 하나님께 일 안 벌입니까? 이 무대가 안 무너집니까?

무대는, 자연은 무너지게 되어 있고요, 무대는 무너지게 되어 있는데요. 그걸 절망적으로 생각한다는 자체가 그 사람은 그 무대 안에 갇혀 있다는 그런 티를 확 내버린 거예요. 성경에 보면 무너지게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무너짐에도 불구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이 있다는 이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무너져야 할 것들은 무너져야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분명히 인자가 구름 타고 온다 했거든요.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온다 할 때 바리새인들이 믿지를 못했어요. 아니 믿고 싶지를 않았어요. 왜냐하면 구름 타고 오는 것은 누구한테 해당 되느냐? 마지막 그들이 아는 구약성경, 그들의 성경에 의하면 이 세상 무대가 무너질 때, 마지막 심판주가 나타날 때 이 세상에 구름 타고 오게 되어 있어요. 다니엘서에서도 그렇고.

그러면 그들이 정말, 그들이 진짜, 여호와의 말씀을 진짜 기뻐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그걸 반긴다면 그들은 무너짐을 고대해야지요. 기다려야지요.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이 세상 무너지는 그 날을 기다려줘야 주의 이름 부른다는 그 의미가 현실로 실현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영화 내용에 주인공이 영화 내내 1시간 반 동안 시달리게 되면 관객들은 짜증나요. 짜증나지만 기다립니다. 뭘 기다리느냐? 그 주인공한테 못되게 했던 깡패들 있잖아요. 그 깡패들, 주먹 쓰는 그 사람 누굽니까, 마 동석이 나와서 한방으로 때려눕히면서 그 깡패세계가 무너지는 것, 그 무너지는 것을 간절히 소망하는 거예요.

이게 성도잖아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내가 순수하게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진짜 누가 뭐래도 그것만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라고 믿는다면 이 세상이 어서 무너져야 되지요. 그래야 그 가치가 드러날게 아니겠습니까? 그게 바로 예수 믿는 즐거움 아니겠어요? 보람이기도 하고. 좁은 길을 가는 사람들의 낙이 그 낙이잖아요.

넓은 길로 가는 많은 인간들 다 죽어라, 다 무너져 버려라. 왜? 주의 이름을 부를 그날이 와야 되니까, 그 타이밍 맞추는 날이 와야 되기 때문에. 자,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생각해야 되는 것은, 그동안 잘 지내왔던 이 대자연이라는 무대장치가 왜 무너지는가?

그것은 창세가 6장 1절에서 3절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 말씀의 요지는 뭐냐 하면, 하나님의 신이 철수를 하는 거예요.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신이 철수를 해버리면 남는 것은 ‘하나님이 없음’이 되어버려요. 하나님의 신이 철수를 해버리면 그 남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음이 되어버려요.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음이 되어버리면 그들은 이 대자연의 있을 자격자가 못됩니다. 그러면 그 대자연은 그들을 눌러서 뭉개버리지요. 대자연과 더불어서 무너지는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바로 120년 후에 그들에게 노아홍수가 일어나서 다 죽어버리는 거예요. 다 멸망하는 거예요. 원인은 딱 한가지에요. 하나님이 함께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있는 그러한 무대를 하나님이 원했건만 이 악한 천사들이 인간의 딸과 같이 섞여버리니까 이것은 경건한 인간들만 살아야 될 이 땅에 하늘의 악한 천사가 개입했다는 이것이 창조원리에 위배되는 것으로 하나님은 간주하시고 대자연과 함께, 그걸 전부다 자연과 함께 그걸 뭉개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진실은 뭐냐? 하나님의 신이 함께 있지 아니하면 이 대자연은 무너진다. 하나님이 함께 있지 않으면 무너진다. 그러한 원칙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세계에 대해서 전쟁을 벌인 거지요. 무너뜨리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와서 피와 불과 연기 이것은 뭐냐? 피라 하는 것은 출애굽기 7장 17절에 이렇게 되어 있어요.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하수를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대자연은 하나님이 건드리기만 하면 거기서 하늘의 뜻을 보여주는 징후로서 대자연이 그냥 놓여 있어요.

설교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면 이 대자연은 무대에요. 연극무대입니다. 연극무대에 하나님의 대본이 딱 들어가게 되면 그 연극무대가 거기에 맞춰서 변화의 모습을 보이게 되어 있어요. 이 대자연 자체가 무대거든요. 무대인데 하나님께서 이 대자연을 하나님의 신이 함께 있을 마음이 없다는 식으로 보여주게 되면 물이 뭐로 변하는가? 피로 변하는 겁니다.

그러면 물은 영원한 물이고 피는 영원한 피라고 생각했는데 물이 피로 변하는 그러한 혼란은, 카오스는 인간들로 하여금 과연 이 대자연은 믿을만한지 의심하게 만들어서 그들로 하여금 당황스럽게 하지요. 당황스러운 이유가, 천사와 사람의 딸과 혼인을 해서 거기 등장한 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하느냐? 창세기 6장 3절 다시 보게 되면 거기 뭐라고 되어 있느냐?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육체가 된다는 것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하는 거예요. 육체가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 보시기에 거짓된 인간형을 육체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진실 된 인간이 아니고 거짓된 인간이에요. 거짓된 인격자로 행세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대자연을 거짓된 인간을 위해서 유지할 마음은 하나님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거짓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공격을 벌이는 것이 뭐냐?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에요. 그 심판을 하실 때 모든 인간은 하나님 보시기에 거짓된 인간들이거든요 왜냐하면 인간들이 악마를 대행하는 인격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거짓으로 보는 겁니다. 육체로 보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만들었어요. 이스라엘나라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격자를 실어 나르는 하나의 가마꾼들이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 속에는 언약궤가 있거든요. 그 언약궤 있는 장소에 누가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기에 있어요.

이름이 있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어떤 인격적인 분이 여호와와 함께 동행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름이니까요. 짐승은 이름이 없잖아요. 이름은 인격적인 어떤 존재자에게 붙는 게 이름이에요. 어떤 보이지 않는 존재자가 이스라엘과 함께 있는데 그 존재자 이름이 여호와라, 여호와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거예요.

그러면 전쟁을 벌일 때 애굽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벌인다는 말은 이 대자연속에서 징후를 남기는 겁니다. 인간은 육체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육체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심판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스라엘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이스라엘과 너희들의 차이점을 보라고 애굽나라의 자연에 징후를 남기는데 그것이 바로 지팡이를 가지고 물에 집어넣으니 물이 피가 된 겁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불은 어떠냐? 불은 출애굽기 9장 24절에 보게 되면 아주아주 희한한일이 일어납니다. 모세가 애굽 왕하고 대결을 하는 거예요. 23절부터 보면 “여호와께서 우박을 애굽 땅에 내리시매” 다섯 번째 재앙부터는요, 이스라엘이 사는 곳, 히브리인들이 사는 곳과 애굽 사람들이 사는 곳을 차등해서 재앙을 내리는 겁니다.

그런데 심판을 할 때 이 대자연을 통해서 심판을 내리는 것은 아까 이 대자연이 무대장치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무대장치에 연출자의 각본대로 뜻이 전달되게 되면 무대가 그 징후를 드러내게 되어 있다는 그 말이지요. 왜? 인간들은 갇혀 있으니까요. 이 대자연에.

그래서 24절에 “우박의 내림과……”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불덩이가 우박에 섞여 내림이 심히 맹렬하니”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요. 하늘에서 불이 내려옵니다. 우박이라는 그 차가운 요소와 불이 함께 내려온다는 것이 그동안 인간들이 대대로 경험했던 자연법칙에 의하면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대자연법칙이 깨어지고 있는 겁니다. 무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왜? 이스라엘 속에 하나님의 이름을 실어 나르는, 참된 인간을, 참된 인격자를 실어 나르는 가마꾼들이 이제는 형성되기 때문에. 히브리인들 속에서 언약을 받았던 그 이스라엘과 더불어서 이 대자연을 누릴만한 유일한 인격자 되시는 여호와 이름께서 그들과 함께 있음을 티내기 위해서, 드러내기 위해서 애굽 나라의 대자연이 무너지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 또 연기는 뭐냐? 사무엘하 22장 9-11절에 보면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린 것, 이스라엘 곧 히브리인과 애굽의 싸움에서 하나님께서 개입해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린 그것을 총괄적으로 설명한 것이 사무엘하 22장 9-11절에 나옵니다.

“그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연기지요.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저가 또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니 그 발 아래는 어둑캄캄하도다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 날개 위에 나타나셨도다.”

이게 뭐냐 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곧 무대연출자께서 직접 무대 속으로 하늘위로부터 내려오실 때에 이 무대는 이제는 무대를 설치한 모든 취지가 다 종결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지요. 무너뜨리면서 내려오시는데 자연을 무너뜨리는 무기로써 코에서 연기가 나오고 입에서 불이 나오고 그 불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는 그러한 현상들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이게 뭐 공룡입니까? 익룡이에요? 날아다니는 공룡이에요? 주님께서 구름타고 인자로 오신다는 이 말이 사무엘하 22장 9-11절 다윗이 미리 예언한 그 예언대로 오신 거예요. 이거 지금 신화 아니에요. 동화이야기 아닙니다. 이거 만화이야기 아니에요 일본만화 아닙니다, 이거. 이게 이스라엘 역사에요. 실제로 있던 역사.

그래서 이렇게 보게 되면, 이걸 무대라고 이야기했는데 무대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도 이렇게 설명하면 좋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엘서 2장 30, 31절에 보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렇게 요엘서에 나오잖아요.

그런데 이 이야기가 그대로 인용된 것이 오순절에 성령이 오고 난 뒤에 사도행전 2장 17절에서 21절에 보면 그대로 나와 있어요. 길기 때문에 빨리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하였느니라.”

여기까지입니다. 이렇게 보시면 돼요. 하나의 정지된 시간의 전체 화면을 두시고 그중에 십자가를 제일 밝은 부분에다 딱 부각을 시키기 바랍니다. 그리고 옆에 같은 한 장면으로 배치가 되어 있는 거예요.

십자가 지시기 전에,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요엘서를 중간부분에 배치를 한다면 그 전에는 열 가지 재앙을 그림을 그리고요, 이게 한 화면입니다. 이게 한 화면이에요. 두 번째 세 번째가 아니고, 드라마가 아니고 전람회 한 장의 그림이에요 그냥. 그 그림 안에 이게 다 들어 있는 겁니다.

밝은 부분이 뭐냐 하면, 예수님 십자가 부분이고 나머지는 다 어둡게 처리되어 있는 겁니다. 누가복음 23장 44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입니다.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십자가 사건을 부각이 되게 되면 이 땅에서 아무리 원자력발전을 해서 전기로 밝게 해도 전부다 어둠이 돼요. 예수님만 부각이 되거든요. 예수님만 조명발 받습니다. 이게 뭐냐? 무대에요.

하나님이 만든 무대가 뭐냐? 십자가만 밝게 빛나고, 영광스럽게 빛나고 나머지는 어두움으로 배경처리 되는 겁니다. 어두움으로. 제가 몇 해 전에 가본 적이 있는데요. 이탈리아 로마에 가면 바티칸 시국이라는 데가 있어요. 거기에 유명한 성당이 있는데 시스티나 성당입니다. 성당의 천정에 미켈란젤로라는 사람이 교황의 지시를 받아서 작품들을 천정에 그려놨어요. 고개 쳐들어서 그거 쳐다본다고 이 목이…….

그 성당 크기가 길이가 40.23미터, 폭이 13.4미터, 천정높이가 20.7미터, 이게 솔로몬 성전하고 똑같아요. 거기에 벽화를 온통 그렸는데 처음에 천지창조를 그려놓고 20년 후에 후임교황의 지시를 받아서 최후의 심판을 같이 그려놨어요. 천정만 바라보면 전부 다 한 장에, 한 장에 다 그려져 있어요. 그 전체가.

이게 바로 무대잖아요. 무대가 두 개가 아니잖아요. 무대는 한 무대잖아요. 한 무대에 그 전체를 다 보여주는 겁니다. 보는 사람들이 고개 치켜들고 보기 바쁘지요. 뒤에서는 빨리 가라고 밀지요. 제대로 보지도 못해요. 하도 밀어대서.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와요. 바티칸 박물관 안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에.

그 성당 벽화 내용이 뭐냐? 성경의 천지창조부터 마지막 심판까지 다 그렸어요. 그런데 그 벽화의 문제점은, 중심이 어디 있느냐? 중심이 없어요. 창조로부터 마지막 심판까지 흘러가면 끝나는 거예요. 거기에는 중심이 시간이 중심이에요.

그러나 성경은 시간이 중심이 아니고 시간은 그냥 정지되어 있어요. 예언 안에서, 하나님의 징후 안에서.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령 받은 사람의 특징이 뭐냐? 무대를 통째로 본다는 안목을 가진다는 거예요. 그게 성령 받은 사람이에요. ‘주여, 전체가 전체로 다 드러나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주인공, 누굴 주인공으로 모시느냐?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주인공으로 모신 거예요. 그래서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주인공이여, 어서 오시옵소서. 주인공이여’ 주님이 이 우주의 주인공, 대자연의 주인공이라는 말이지요.

십자가 질 때 해가 빛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이 깜깜하게 처리되었으니까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연출하신 거예요. 일부러 연출하신 거예요. “보라. 십자가만 바라보라. 저 달린 분이 우주의 심판주요 창조자니라.” 그분이 어떻게 창조 되었는가, 어떻게 심판 되는가, 그것 필요 없어요. 그분이, 그분이 중심이에요. 내가 알아서 구원 받는 그 내가 중심이 아니고.

하나의 배우잖아요. 하나의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왜 내가 주인공입니까? 주인공은 따로 있는데요. 그분을 모시는 하나의 가마꾼이고 시다바리, 일본말 써서 죄송합니다만, 우리는 그냥 시다바리에요, 시다바리.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창세기 6장부터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악마가 우리로 하여금 완전히 인간을 육체로 만들었어요.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할 수 없는, 여호와께서 함께 할 수 없는 인간으로 만들었다고요. 육체로 만들었어요. 육체에 대해서 하나님의 마땅한 조치는 이 연극무대에서는 그냥 심판하는 거예요.

그런데 악마는 인간으로 하여금 이 땅에 유일한 인격자는, 이 세상, 눈에 보이는 이 대자연속에서 유일한 주인공 인격은 인간들밖에 없다고 계속해서 인간들에게 그 사상을 심어준 거예요. 이 세상의 주인공은 인간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게 아니에요. “아니야, 아니야. 네가 주인공이 아니야. 너는 멸망당해야 돼. 주인공은 따로 있어.” 그 ‘따로 있어’가 바로 주의 이름으로 이스라엘과 함께 동행하는 겁니다. 그분이에요. 이스라엘 역사를 이끌어나시는 주의 이름. 주의 이름이 주인공이에요.

그러면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그 심판, 무너지는 그 무너짐 있잖아요. 그 무너짐을 그대로, 심판을 주님의 십자가로 인해서 같이 무너질 때 같이 무너져야 될 취지, 진짜 마귀의 종으로 살았던 우리에게 그냥 그 성령이 들어오는 겁니다.

들어오면 우리를 관통해 버려요. 관통이라 하는 것은 여러분, 화폐 오래 쓰게 되면 조폐공사에서 천공, 구멍을 뚫어버려요. 이것은 더 이상 못 쓰는 거예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우리를 구멍을 뚫는 거예요. 성령께서 눕혀 놓고 하든지 서서 그냥 하든지 성령께서 왔다는 것은 뻥, 하고 구멍을 뚫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뭐가 날라 가는가? 나의 구원은 날라 가버려요.

그동안 그놈의 나 때문에 얼마나 시달렸습니까? 인간이 내가 있다는 것은 내 것이 있다는 것이고, 그 내 것을 잃어버리면 사람은요 분노를 하게 되어 있어요. 내 것 건드렸잖아요, 내 것. 이 대자연속에서 악착같이 노력해서 얻었던 내 것 있잖아요, 내 것. 그 내 것이 손상되고 손해가 나게 되면 인간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지옥 같은 거예요. 죄도 없는데 어떤 건드림을 당할 때 그 억울함은 감정이 지옥감정이에요. 지옥이라는 것은 억울함을 풀지 못할 때라고 제가 분명히 강남강의에서 이야기했어요. 새벽에 듣는다고 비몽사몽간에 들었을 테니 알 길이 없겠지만.

주님은 말합니다. 너는 억울할 자격이 없다는 거예요. 어떻게 보조연기자가 억울합니까? 억울해도 주님이 억울해야지 네가 뭔데? 그래서 문제는 뭐냐? 악마가 자꾸 네가 주인공이라고 뒤에서 부추겼던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대할 때도 하나님보고 하인 시키듯이 나를 행복하게 해 달라, 나를 천당 보내 달라, 나 구원해달라고 누가 주인공인지 누가주인인지 분간도 못하고 자꾸 구원해달라는 거예요.

주의 성령이 와서 “어디서 구원이라니!” 입이 쑥 들어가게 만들어요. 빵꾸 내버립니다. 빵꾸 내버리면 그것은 뭐냐? 본인은 사라지고 주의 사명만, 역할만 우리 안에 남습니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아요. 성령 받으면 특징이 뭐냐 하면, 더 이상 내가 내가 아닌 것 같고, 그리고 굳이 내가 나 아니라도 좋아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내가 나 아닌 게 홀가분해요.

왜냐하면 사명이 전에 나였던 그 자리를 주의 사명이, 말씀에 대한 사명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말씀대로 쓰이면 그것은 뭐 엑스트라, 좋게 말해서 보조연기자, 나쁘게 말하면 7만 원짜리 보조 연기자, 죽을 때 깩! 하고 죽는 역할, 전체 주인공은 이미 확정되었어요.

주연은. 현빈? 아닙니다. 오 현빈? 아닙니다. 빈자 돌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이미 주인공이에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없어요. 나의 구원이 교회 나오는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목적이 될 수 없어요.

주님이 주님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를 실어 나르는 가마꾼으로서 그 연극에서 주님이 이미 주인공으로 오셨다는 것, 심판할 자격자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게 바로 우리 인생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와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냐? 주님의 동일한 안목에 의하여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끝! 이 세상 무너뜨리게 하옵소서.”

코로나 오미크론(Ο), 델타(Δ)변이, 제타(Ζ)가 오든 델타가 오든 헬라어 알파벳 다 써도 ‘주여, 참 잘 하셨습니다. 무너져야 마땅한 세계인 것을 또다시 그렇게 배후에서 조치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마스크 쓰는 것 짜증나서 “뭐하시노, 주님! 안도와주고” 이런 것 없어요.

내 것이 구멍 나고 내 것이 깨어질 때 분노를 가질 아무런 자격도 권리도 우리한테 없습니다. 천공, 구멍 나야 돼요. 그래서 나온 유명한 노래가 구멍 난 것처럼, 구멍 난 것처럼. 뻥 뚫려버렸어요. 성령의 바람만 휑~ 하니 불지요.

그러니까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나도 못 먹을 이 세상 그냥 무너뜨려 주옵소서.’ 그게 뭐냐? 주의 이름을 부르는 현실 속에서 특이한 징후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에 성령 받은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예언을 말할 것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환상을 본다. 바로 주인공은, 모든 환상, 꿈, 영, 주인공은 오직 주님이 심판주고 구원자라는 그 사실밖에 없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어떤 공간에 속해있고 어떤 현실인 것을 저희들이 깨닫게 하옵소서.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과학이 전부고 눈에 보이는 세계가 영원할 줄 알지만 주여,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그것들은 무너져야 될 것을 저희들이 이제 알았사오니 오직 주님으로 인하여, 주님의 사람으로서 말씀의 역할만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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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9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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