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누가복음 8장 37절 (빛의 산란)211116a-이근호 목사
강남-누가복음 8장 37절 (빛의 산란)211116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8장 22절부터 56절까지 보게 되면 몇 가지 일이 나오지요. 하나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더불어서 갈릴리 바다를 지나가다가 갑자기 풍랑이 일었고 예수님은 주무셨고 제자들이 그 풍랑을 보고 우리가 죽게 되었다 해서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깨우니까 예수님께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고 그 다음에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고 나무라시고 제자들은 자기들 나무랜 것은 안중에도 없고 어떻게 저분이 누구신데 바람과 물이 명령에 순종 하는가 놀라기 바빴지요.
그 다음에 26절부터 보면 거라사인의 땅에 귀신들린 가자 있었는데 귀신 들린 정도가 아니지요. 귀신들이 집단적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귀신이 얼마나 많은지 그 이름을 스스로 주님께서 군대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많은 귀신들이 들어가 있어요.
이제 예수님이 이름이 무엇이냐 하니까 그들이 군대라고 하니까 군대라고 하는 것은 많은 귀신이 들어 있기 때문에 군대라고 이야기한 겁니다. 그래서 그 귀신들이 우리 주님에게 무저갱으로 가지 않게 해달라 비니까 귀신들을 돼지에게 보내게 하니까 돼지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집단적으로 투신해가지고 돼지들이 다 죽었지요.
그 뒤에 귀신들은 어디 갔느냐. 그건 더 이상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거라사인에 있는 사람들이 소동을 보고 예수님께 부탁하기를 빨리 우리 동네에서 빨리 떠나기를 바랬고 그 다음에 40절부터 56절인데 여기 두 개의 일이 섞여있지요.
하나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또 어떤 일이 있느냐 하면은 어떤 여인이 12년 동안 피를 흘리는 여인이 하혈을 하는 여인이 와서 가만히 와서 옷에 손을 대니 그 피 흘리는 증세가 즉시 사라졌습니다.
이럴 때 주님께서 누가 내게서 능력이 나가는 그 계기를 만들었느냐. 누가 내게 손을 댔느냐 하니까 그 여자가 겁이 나가지고 제가 손댔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주님께서 나무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칭찬을 합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그렇게 하시고 그 다음에 회당장 딸에게 가서 믿기만 하라. 그러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과 아이의 부모 외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하니까 모든 사람이 아이가 늙어서 죽은 게 아니고 젊어서 죽었으니까 애통해서 우니까 주님께서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고 잔다고 이렇게 할 때 예수님이 비웃음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손을 잡고 아이 보고 일어나라 명령하니까 그 영이 돌아와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지막 56절에 이 부모가 놀라니 예수께서 경계하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지금 이게 몇 개냐 하면은 하나, 둘 네 개죠. 네 개. 네 개를 한꺼번에 처리하면 이렇습니다.
이게 한꺼번에 처리하면 ‘유령의 물질화’. 이게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육신, 육체도 여기 포함이 되어 있거든요. 물질, 육신과 육체로 된 이것을 인간은 자기 육신+영혼, 또는 영. 육신과 영으로 되어있다 인간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이란 육신과 영으로 되어있다 라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은. 이 생각이 잘못된 생각이에요. 왜 잘못된 생각이냐? 인간 자체가 없으니까. 인간 자체가 없는데 육신, 영 결합이. 인간이라는 것이 있다고 치고 그럴 때만 육신+영이 되는데 인간자체가 없다면 이런 것도 육신+영도 성립이 안 되는 거죠.
그렇다면 인간 자체가 없다면 인간은 뭐냐? 육신으로 된거냐? 아니면 영으로 되는거냐? 라고 우리가 궁금해 하잖아요. 오늘 본문 내용도 그거에요. 그것도 궁금해 할 자격도 없다는 거에요. 네가 인간에 대해서 궁금해 할 자격이 없다. 왜냐 하면은 인간은 육신+영으로 되어있다 할 때 이게 뭐가 되느냐 하면은 이게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이 자체가.
나는 육신에다가 영혼이 있다 또는 영이 있다 이렇게 결합된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이 문제 중에 하나가 유령을 물질화시키는 겁니다. 인간은 육신이 있으니까 코, 눈, 입 등등 육신으로 되어 있으니까 유령을 상대할 때에 이걸 유령이라고 보는 거에요. 영으로 보는 거에요. 나는 육체로 되어 있는데 저쪽은 육신 없으니까 영으로 됐다 이렇게 보는 것이 인간들의 사고방식입니다.
그래서 여기 29절 한번 보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그 사람을 붙잡으므로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켰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이렇게 되어있어요.
그 사람들이 귀신들린 청년이 자꾸 이렇게 말썽을 일으키니까 뭘로 묶었습니까? 쇠사슬과 고랑이죠. 쇠사슬, 고랑은 물질이죠. 물체죠. 쇠사슬과 고랑을 가지고 뭐를 묶고자 했다? 귀신들린 사람을 묶고자 했다는 거에요. 왜 묶고자 했느냐 하면은 그 사람 속에 귀신이 들어있으니까 귀신은 뭘 가지고 하면 붙들 수 있다? 쇠사슬과 고랑을 가지고 묶어버리면 꼼짝 마라 했으면 우리는 그 사람 속에 있는 악한 영을 제대로 다스리게 되었다라고 자부하고 싶은 거에요. 이게 바로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귀신들린 그 사람이 그 거라사인 마을에 오지 않았으면 그들은 돼지 키우면서 축산업 하면서 스스로 문제 있다고 생각하겠어요? 문제 없다고 생각하겠어요? 문제가 없지요. 그들은 뭐냐 하면은 첫 번째 문제 없음이죠. 문제 없음이 여기 귀신들린 자 찾아오니까 여기서 문제 있음이 되고 나중에 이게 뭐냐 하면은 이것이 문제가 해결이 되지요.
문제가 해결이 되면서 문제 해결은 주님 쪽에서는 문제 해결됐는데 여기서 문제 없음에서 문제 있음이 생기고 문제 있음은 문제 해결로 되는데 지금 이 과정이 오늘날 우리 과정하고 똑같은 거에요 지금. 여기서. 문제 해결이 되면서 문제 해결되는 것은 주님 쪽이고 여전히 해결 안됨 이건 바로 세상 쪽입니다.
뭐라고 되어있느냐 하면은 여기 37절에 보면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예수께 떠나가시기를”, 누구를 떠나기를 원합니까? 예수님이 떠나시기를 요청했지요. 구했지요. 예수님이 떠나주게 되면 문제 없음 그때 그 시절이 좋았다 이 말입니다. 귀신들린 자가 들어왔을 때 문제 있었지요.
예수님은 문제 있음의 문제 해결자로 왔는데 결과적으로 그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도 제발 떠나주기를 그 다음에 누구도 떠나주기를? 예수님도 떠나주기를. 그러면 그들은 문제가 없음이 된다고 여기겠지요. 이 문제 없음이 문제가 있는 거에요. 문제 없음이. 왜냐 하면은 예수님이 떠나버리면 이것이 바로 지옥이 되는 거에요. 천국은 예수님이 계신 곳이 천국이고 예수님이 없는 곳이 지옥이거든요.
처음부터 이거는 뭐냐 하면은 누가복음 8장 22절에서 56절까지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는데 그걸 한마디로 요약하면 뭐냐? 마주침입니다. ‘마주침’. 사람과 사람들의 마주침이 아니고 예수님이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을 예수님께서 유발해놓고 거기에 예수님이 투입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들과의 마주침에서 마주침을 그걸 계기로 해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누구하고 마주치느냐 하면은 예수님하고 마주치게 되는 거에요. 예수님하고 마주치는데 그 결과는 뭐였습니까? 사람들은 제발 플리즈 우리 동네에서 좀 나가주실래요? 라고 부탁한 거에요.
그러면 예수님이 다녀가지 않았으면 그들은 멀쩡하고 문제없다고 여기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다녀가니까 일을 발생시키며 다녀가니까 그들의 의식 속에는 뭐냐? 부디 예수 없이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겁니다. 예수 없이. 예수 없이 살아도 아무 문제 없었다는 겁니다. 주님은 그게 문제 있다는 거에요 그게. 그게 문제 있다는 겁니다. 예수 없이 살아가는 것.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 다니면서 교회 오면서 많은 사람이 교회 왔다가 갑니까. 안 믿어도 될 걸 괜히 믿었다 하면서 떠난 사람이 굉장히 많거든요. 떠난 사람보다 더 나쁜 경우가 뭐냐 하면은 교회 목사 집사 장로로서 50년 동안 봉사하면서 예수 안 믿는 사람들. 뭐 대부분이죠. 교회를 믿으니까. 교회 커지는 것만 믿기 때문에 예수는 안 믿어요.
교회 있으면 되지 굳이 예수가 필요 없어요. 내가 돈 투자해서 세운 내 청춘과 역사와 봉사를 바친 이 교회만 멀쩡하고 교회만 이렇게 부동산 값만 오르면 아무 문제 없어요. 교회 부동산 값이 내려가는 게 좀 문제가 되겠지만. 올라가면 이거 팔고 다른데 가면 되고. 더 멋진 예배당 짓고 뭐 이러면 되니까. 그들은 자기 교회 욕하면 벌컥 화를 냅니다.
그러나 예수님 이야기 십자가 이야기하면 또 화를 내요. 왜냐 하면은 자기를 치는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에. 자기들은 교회만 있으면 돼. 그러니까 오늘날 교인들과 목사와 장로에게 있어서의 오늘날 교회가 뭐냐 하면은 거라사 지방의 돼지입니다. 그들에게는 돼지만 있으면 돼요. 공식 하나 적을까요? 교회=돼지.
그런데 이 돼지 안에 뭐가 들어 있습니까? 귀신이 들어갔지요. 교회에 뭐가 들어갑니까? 이 귀신이 들어간 거에요. 그래서 뭐라고 합니까? 제발 예수님 복음은 좀 꺼져줄래? 서울말로. 우리교회에서 십자가 복음 제발 꺼져줄래?! 제발 부탁하오니 이 교회가 역사가 몇 년인데 이 교회 역사 건들지 말고 십자가 복음 좀 나가줄래?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었잖아요. 그런 이야기한 사람도 있었고. 제주도 어떤 성도가 제주도 어느 교회 가니까 십자가 복음 하니까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십자가 이야기를 왜 하느냐? 이 말이죠. 그 체험 한 사람 아직 제주도에 살고 있을걸요. 설마 교회인데 십자가 복음 이야기는 먹히겠지. 아니. 귀신이 귀신같은데 그게 먹힐 리가 있겠어요?
교회에 부흥되는데 도움 되지 않으면 전부 다 교회의 적입니다. 마귀 들어온 걸로 여겨요. 교회 부흥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교회가 사랑이 넘치고 뭐 이렇게 사랑이 넘치고 이 분위기 흐리면 그거는 뭐냐? 그건 몽골 지방에서 날라 오는 모래폭풍과 같은 거죠. 그걸 뭐라고 합니까?
황사지요. 황사 날라온 거에요. 황사 날라온 거. 분위기 다 흐려놨다 이 말이죠. 분위기를. 싸늘하지요. 분위기가. 주님의 분위기가 싸늘한 거에요. 제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게 뭐냐? 인간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유령을 물질화하는 이 자체가 이게 바로 귀신들린 짓이다 이 말입니다. 유령을 물질화하는 자체가. 이게 실패작이다 이 말입니다.
유령을 물질화하겠다는 이유가 뭐냐 하면은 나는 행복하겠다 이거거든요. 내 행복에 유령이 귀신이 끼어들면 내 행복이 뭐로 변합니까? 이게 비극으로 변하지요. 이게 싫은 거에요. 이게 싫고 주님 보시기에 문제 있는 거에요. 나는 행복해야 되고 나는 항상 편안해야 된다고 우기는 그 자체가 이것이 뭐냐 하면은 인간이 문제 있는 겁니다. 귀신 하나도 다룰 수가 없어요.
그러면 인간은 뭐가 문제냐 하면은 바로 인간은 육신+영 이라고 생각하는 이것. 내 육신이 있는데 여기에 깨끗한 영이 임하면 그게 내가 천국 가는 백성이 된다는 이 공식 자체가 이게 있을 수가 없는 거에요. 왜 이게 있을 수가 없느냐 하면은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래요.
천국은 뭐냐? 천국은 사적 의식에서 벗어나는게 천국이에요. 개인적 의식에서 벗어나는 거에요. 개인적 의식 갖고 있으면 어떤 경우라도 이거는 천국의 현상이 아닙니다. 반딧불 알지요? 반딧불이 한 마리만 번쩍입니까? 아니면 여러 마리가 그 현장에 반딧불이 번쩍 번쩍 거려요? 그 현장에 집단적으로 움직입니다. 집단적으로 움직이지요. 그게 바로 천국도 마찬가지에요.
천국도 개인적인 노림수 없이 주님이 작용을 하게 되면 여기저기서 반짝 반짝 거리는 겁니다. 이걸 좀 설명해드릴게요. 천국은 사적인 의식에서 또는 사적 의미에서, 개인적인 의미에서 벗어나는 게 천국이에요. 천국의 나는요? 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곳이 천국이에요. ‘나는요’.
그래서 천국의 특징은 반딧불처럼 우발적으로 툭툭 튀어나오는 것이거든요.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천국은 진행 중이다. 뭔가 진행 중이에요. 우리는 그것을 가지는 게 아니고 사적인 것 같으면 내가 가져야 돼요. 가지는 것이 아니고 서로를 보면서 반딧불 불빛 확인하듯이 확인되는 겁니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제가 간단한 자연 현상을 한번 이야기할게요. 하늘은 왜 푸른가? 하늘은 왜 붉지 않고 왜 노랗지 않고 왜 푸른가? 같은 질문. 구름은 왜 하얀가? 그것은 하늘과 구름을 만드신 하나님 마음이 착해서 그렇다. 이거는 유치원 애들한테 이야기하는 것이고요 유치원 벗어나고 초등학교 벗어나면 해답을 달리 해답을 해야 돼요.
물리적으로 상식적으로 내가 물리적 이해를 해보겠습니다. 이 세상은 입자로 되어 있고 그 다음에 빛이 올 때 빛은 파장으로 되어있어요. 이 이야기가 오늘 본문 이해하는데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 연못이 있는데 연못에 돌을 던진다. 이만한 돌을 던지면 풍덩하고 돌이 빠지겠지요. 빠지면 이걸 파원, 파장이 일어나는 기원이 되는데 파장이 이렇게 일어나게 되면 이걸 골 이라고 하고 이걸 마루라고 해요. 이 마루과 골 사이에 이걸 파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이걸 가지고 진동이라고 하고요.
이건 뭐냐 하면은 종파라고 하지요. 이렇게 움직이는 거에요. 마루와 마루 사이도 하나의 파장이 됩니다. 진행방향이 이렇게 돼요. 행파도 있는데 행파 같은 경우에 좁아졌다가 넓어졌다가 좁아졌다가 이런 거 있잖아요. 어쨌든 간에 파장을 생각해보자 이 말이죠.
그러면 고요한 연못에 돌이 주어졌다. 돌이 주어지게 되게 되면 물의 표면 장력이 도중에 충격을 받았지요. 있어가지고 이거는 복원하려고 복원력이 작동하고 있어요. 그리고 종파든 행파든 충돌이 일어났을 때 여기 표면 장력이 하나가 됐던 것이 구멍이 났으니까 빨리 복원 하려는 하나 있고, 또 위로 당기는 것이 있기 때문에 중력이 있고 중력과 복원 때문에 물의 파장이 생기는 겁니다.
그걸 그대로 방금 제가 무슨 이야기했느냐? 파장 이야기했지요. 바로 파장은 뭐냐? 위에서 오는 파장이 빛이에요. 빛이 입자에게 오는 거에요. 작은 입자에게 오는 겁니다. 빛의 복사 파장의 1/10 입자, 1/10 입자가 될 때 이 입자가 되게 되면 그걸 산란이라고 하는데 파장이 돌멩이처럼 부딪혀가지고 여기서 부딪혀 파동이 생기거든요.
파동이 생길 때 이것을 무슨 색이냐 하면 짧은 파장으로 푸른색이에요. 구름같은 것은 물 입자가 크기 때문에 이게 흰색이 된다고요. 흰색. 그래서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뭡니까? 산란이죠. 산란. 제가 왜 산란하고 성경하고 굳이 왜 연결시키느냐 하면은 산란된 판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말이죠. 산란된 판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색깔을 보여주잖아요.
파장이 짧은 입자에 부딪히면 그게 푸른색, 파장이 큰 것에 하면 붉은색이라든지 안 그러면 흰색. 노을 같은 경우에 지구가 비슷하기 때문에 이거는 참 초등학교에서 하면 좋아하는데 지구가 비슷하게 해가 지기 때문에 파장이 길어져요. 그때는 노을이 붉게 돼요. 붉게 된다고요.
그러면 네가 붉다 너는 파랗다 말을 하면 안돼요. 천국은 사적인 의식이 없기 때문에요. 천국은 그냥 하나의 주로부터 온 산란됐기 때문에 빛깔이에요. 빛깔. 컬러풀한 거에요. 아름다운지 모르겠지만. 아름답게 모든 게 깨어지는 거에요. 뭐처럼? 반딧불처럼. 주님께서 돌멩이를 이 더러운 세상, 문제 많은 세상 여기에다가 주께서 돌멩이처럼 여기서 마주침이 일어나는 겁니다.
마주침이 일어나니까 이 세상에 그 악마의 통치를 한 이 세상이 자기의 본색을 그냥 노출되어 버리는 거에요. 그걸 감추지 못하고. 반응을 일으키는 겁니다. 그럴 때 이것의 문제가 뭐냐 하면은 인간의 문제는 간단해요. 앞에 나를 붙여요. 나는 문제없다가 문제가 되는 거에요. 나는 문제없다. 누가 오기 전까지는?
예수님의 부딪힘이 마주침이 그런 일이 있기 전까지는 자기는 문제 없는 거에요. 늘 희극이여야 되고 늘 웃고 지내야 되고 행복해야 되고 계속 이런 식이에요. 마귀, 악한 귀신 그거는 물질로 쇠사슬과 고랑으로 묶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귀신들린 자가 거기에 묶였습니까? 으랏차차 해가지고 풀어버렸지요.
제가 지금 누가복음 8장하면서 22절에서 56절까지 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잖아요. 네 가지 일이 있지요. 첫 번째는 뭡니까? 풍랑이 갑자기 일었다는 것. 그리고 풍랑이 뭔데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기이하고 신기하다는 거에요. 그 다음에 귀신 들린 자가 있었는데 그 귀신들이 돼지 속에 들어가 몰살했다는 것.
그 다음에 또 뭐냐 하면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는데 다른 사람은 죽은걸 확인하고 울었는데 주께서는 잔다고 이야기했고 그 일 중간에 12년 동안 피 흘린 여인이 옷만 만져도 갑자기 그 자리에서 그 병이 나아버렸지요. 자, 그런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를 한마디로 이렇게 묶어버리면 뭡니까? 마주침이고 누구와의 마주침입니까? 주님과의 마주침이죠.
어떤 자는 귀신이 나갔다 어떤 자는 병이 나았다 좋겠다. 좋겠다 하지 마시고 그냥 산란이에요. 그 사람은 그런 색깔을 낼 때 그 색깔도 주님에게 나온 색깔이고 어떤 사람이 풍랑이 잠잠해도 그 주님의 또 다른 면을 그 사람, 제자들을 통해서 보여준 것이고 어떤 사람은 12년 동안 피흘려온 것도 산란이에요.
빛이 와서 색깔이 원래 그렇잖아요. 한 색깔만 있는 게 아니고 약 한 2만2천 색깔인지 인간이 이해 할 수 있는 색깔이 그 정도 된답니다. 엄청난 색깔이 빛의 그 파장 따라서 전부 다 빛이 조금씩 다 다르잖아요. 채도도 다르고 다 다르단 말이죠.
여기서 산란이라는 말 한 순간 여기서 뭐가 날라가 버렸습니까? 산란이라는 말 하는 순간 뭐가 날라갔어요? ‘나는요’ 라는 말이 날라가 버렸죠. 이게 바로 천국이죠. 천국은. 누구의? 주님의 여기 계시고 일하고 계시고 일이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형입니다. 표현해주는 거에요. 개인이 ‘나는요’ 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이 안돼요.
‘우리 교회는요?’ 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이 안돼요. ‘내 인생은요?’ 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이 안돼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딸을 기도하니까 살았잖아요. 그럼 이걸 보고 사람들은 뭘 생각합니까? 저도 얼마 전에 우리 딸 죽었는데 살려주세요 이렇게 나온다면 지금 그 사람은 마치 뭐와 같으냐 하면은 예수님을 물질화시키는 거에요.
자, 인간이 육신이라고 생각했죠. 이 육신 자체 인간은 문제없다고 생각했지요? 단 육신에다가 좋은 영, 착한 영, 정신이라고 해도 되고 마음이라고 해도 되는데 이런 것만 받으면 나는 구원받는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니까 인간은 육신은 문제없으니까 뭐만 붙으면 된다? 예수그리스도라는 영적 존재만 오게 되면 나는 천당 간다 이 자체가 바로 귀신들린 사고방식이에요. 이 자체가.
여기서 뭐가 계속 살아있습니까? ‘나는요’. ‘나는’. ‘나’는 계속 살아있는 거에요. 나는 어떻게 됩니까? 빛의 산란은 어디 가버렸습니까? 없지요. 없는 거에요. 주님은 이 물질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물질+영을 하는 게 아니고 물질 자체 영 자체를 없애버리고 ‘인간 자체=육신과 영으로 되어있다’ 이 공식 자체를 없애버리고 이걸 뭐로 바꾸느냐 하면은 생명으로 또는 생명의 빛으로 바꾸어버립니다.
나는 없어지고 생명에서 산란된 빛이 우리 각각 다 다르지만 다 묶어보면 동일한 생명에서 나온 그러한 주의 일하심의 결실물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천국입니다. 이 비슷한 이야기가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어요. 정신은 뼈다 라는 말을 한 사람이 있어요. 상당히 말이 어렵지요. ‘정신은 뼈다’. 이걸 제가 쉽게 풀이해드리겠습니다.
정신은 뼈있는 곳에만 정체를 드러낸다 이 말이에요. 정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거죠. 제대로 된 정신을 알려면 뼈가 있는 곳에 정신이 있다. 인간은 뼈로 되어있습니까? 정신으로 되어있습니까? 세상에 철학들은 뭐냐 하면은 인간은 뼈로 골조가 이루어져 있고 그 위에다가 정신이라는 것이 입혀져 있다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철학에서 그렇게 생각해요. 철학에서.
이 사람은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거 누가 이야기했느냐 하면은 헤겔이라는 사람이 이야기했어요. 그게 아니다. 그러면 그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를 그렇게 관람자로 이렇게 본다는 거에요. 인간이 이렇게 보게 되면 인간이 이렇게 본다는 것은 인간의 지금 자기 자리는 어딥니까? 자기 자리가 이게 뭐에요? 이미 정신이 되어있어요.
정신은 뼈라고 말하는 것은 이 자체는 말도 안 된다는 겁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이게 왜 말도 안 되느냐. 이게 왜 말도 안 되느냐 하면은 이 정도로 말도 안돼요. 어느 화가가 내가 그린 그림 속에 내가 있다. 이게 말이 돼요? 안돼요? 이게 엉터리죠. 자기 따로 있고 그린 그림 따로 있잖아요.
그런데 인간은 이렇게 설명하면 안 된다는 거에요. 나라고 할 때 내가 있고 나는 따로 있다고 바깥에 나는 따로 있다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림 속에는 화가가 못 들어가지만 정신 뼈 속에는 이미 이 뼈가 누구 뼈에요? 자기 뼈잖아요. 이 정신 누구 정신? 자기잖아요. 정신은 뼈라는 말은 나는 이렇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거에요.
왜? 여기 정신 속에 본인 들어가 있고 뼈 속에 본인 들어가 있으면 이건 뭐냐 하면은 나는 모르겠고 그냥 나는 나다. 이건 말하나 마나, 이건 아무 새로운 의미가 추가된 의미가 없어요. 너무 어렵게 이야기하나? 제가 굉장히 쉽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굉장히 쉬운 이야기에요. 더 쉬운 이야기해볼게요.
예수님하고 악마하고 싸웁니다. 할 때 다음 정답은 1. 예수님 이겨라 이게 정답일까 아니면 2. 악마 이겨라 이게 정답일까 3. 누구든지 이겨도 상관없다 정답이 어느 것입니까? 1번 2번 3번 가운데. 어느 것입니까? 1번 예수님 이겨라 하면 본인은 마치 악마에 안 속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이에요.
예수님 이겨라 이 말은 뭐냐 하면 예수님 이기면 나는 예수님 이건 것 보고 이긴 편에 속한다 이 말 아닙니까. 그러면 주님 나는 손대지 마세요 이거하고 똑같은 말이에요. 이거는 엉터리죠. 악마가 이겨라. 악마가 이겨라 말은 뭐냐 하면은 자기는 이미 예수님 편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누구 맘대로? 네가 누구 맘대로 예수님 편에 서있어?
예수님 편에 있으면서 악마 이겨라 이 말은 일종의 심술같은 거다 이런 거라 이 말이죠. 악마가 이기는 걸 봐가지고 내가 이해하겠다 이런 식이거든요. 악마 이겨라 이런 사람 별로 없어요. 세 번째, 세 번째가 정답이 되는 이유가 누가 이기든 예수님하고 악마 싸우는데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거든. 왜? 천국에는 사적 의식이 개인적 의식이 이거는 인정을 안 해줘요.
누가 이기든 그거 나하고 무슨 상관있는데요? 악마가 이기든 예수님이 이기든 내 문제가 아닌 거에요. 그 정도로 우리는 내 문제에서 못 벗어난다 이 말입니다. 인간은. 이게 바로 문제 있는 거에요. 예수님이 찾아올 때 인간은 기껏 나는 육신이다. 뼈다 괜찮은 정신으로 무장하자 지금 이 정도밖에 안돼요 인간은.
그러나 정신은 뼈다 이 말은요 뼈가 있는 곳에 진짜 정신이 나타난다. 이 뼈가 결국 무슨 뼈냐 하면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십자가 일어나야 아! 정신이라는 것이 나와 관련된 게 아니고 원래부터 악마는 나와 상관있는 게 아니고 악마는 예수님을 겨냥하는 거에요. 예수님을.
그 이유가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여기에요. 31절에 나옵니다. 31절에 악마가 부탁하는 게 있습니다. 악마가 뭐라고 하느냐. 제발.. 제발 넣지 말고,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제발 넣어도 괜찮네요.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악마가 예수님이 자신을 무저갱, 무덤 없는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가게 하는 분이라는 것을 인간은 몰라도 누구는 압니까? 영은 알지요.
현재 인간들은 모르잖아요. 인간은 지금 돼지 치는 것만 안다고요. 인간은 자기 알면 그걸로 됐지 더 알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자기는 육신만 알면 됐지. 육신에다가 괜찮은 정신만 또는 괜찮은 정신만 또는 괜찮은 영만 골라잡아서 붙이면 나는 잘된다 본거에요. 무저갱이라는 것을 인간은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악마가 주님한테 무저갱 영원한 감옥에 집어넣지 마세요 라고 부탁한다는 말은 이거는 인간들이 아는 레벨하고는 별개의 문제에요. 인간은 괜찮은 영이고 나쁜 영이고 고를 자격도 없고 그런 안목도 없어요. 이런 누가복음 8장에 나오는 여러 가지 일들은 결국 뭐냐 하면은 인간 배제하고 벌린 일이에요. 인간의 한계성이란 한계성은 다 드러내고.
예를 한번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22절에 보면 풍랑이 치지요. 자, 여기서 마치 광풍이 호수에 내려칩니다. 광풍이. 자, 광풍은 물질입니까? 물질 아닙니까? 광풍, 바람, 물, 풍랑. 물질이죠. 이 물질에 대해서 아까 귀신들린 사람은 쇠사슬과 고랑으로 잡아맬 수 있는데 이 풍랑과 물결치는 것은 인간이 감당 못하지요. 감당 못하니까 어떻게 되겠어요.
24절에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죽겠나이다’. 인간은 항상 이 물질에 대해서 죽음에 노출되어 있는 거에요. 어느 정도 괜찮으면 견딜 수 있지만 쎈 풍랑, 바다의 배만 달랑 타고 있는데 쎈 풍랑이 오고 물결이 쳐버리면 인간은 뭘 생각하느냐 하면은 본인이 더 이상 이 땅에서 존속할 수 없다는 그것을 감을 잡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육신은 물질이잖아요. 결국 인간은 물질은 더 쎈 물질한테 지금 시달리고 있지요. 그걸 이렇게 합니다. 물질에 갇혀있다. 물질에 갇혀있는 거에요. 인간은 자신의 물질에 갇혀있는 거에요. 불신자들의 공통점이 뭐냐? 예수, 복음을 안 받아들이는 이유가 뭐냐? 본인이 갇혀있다는 사실을 애써 거부해요. 갇혀있다는 사실을.
인간은 2년 전에 인간들이 UN에서 결정해가지고 모든 인간은 앞으로 2년간 마스크 쓰기로 결의했습니까? 아무 일 없는데? 인간의 코 이것도 물질인데 거기에다가 마스크라는 인공적인 것으로 막아보세요. 이게 안 답답해요? 답답하지요. 턱스크가 왜 나왔는데? 답답해가지고 하도 답답해서. 이 답답한 것을 온 지구인들이 심지어 북한에 김정은 빼놓고 나머지는 다 쓰고 있잖아요. 이거 왜 씁니까?
인간이 물질로서 뭘 감당 못한다? 물질을 감당 못해요. RNA바이러스라는 그걸 감당을 못하는 거에요. DNA 바이러스는 어느 정도 감당했는데 RNA 바이러스가 등장해가지고 감당을 못하는 겁니다. 결국 이것은 뭔가? 인간은 결국 갇혀있다는 것을 자명한 셈이에요.
그래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우리가 죽겠나이다.” 이게 문제 있는 거에요. 왜냐하면 이미 죽어있는 거에요 이거는. 갇혀있음을 가지고 다른 말로 하게 되면 두 자로 하게 되면 이걸 ‘죽음’이라고 하는 거에요. 갇혀 있음을. 갇혀있는 가운데 숨 쉰다 골프친다. 갇혀있어도 골프치고 갇혀있는 자체가 이게 죽음이에요. 왜 죽음이냐? 뭐라고 합니까? 생명이 아니니까요.
예수님의 특징은 무덤이라는 것이 돌무덤이 예수님의 육신을 가둬놨습니까? 이런 것 한번 상상해보세요. 예수님이 무덤에서 살아났는데 돌이 무거워. 좀 열어주세요. 낑낑낑 이랬습니까?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올 때에 구름 탈 때 미리 두 세 번 굴러봤습니까? 이게 빠지겠나 안 빠지겠나 이래보고 구름 탔습니까? 아 구름 괜찮네 타고 올라가는 거에요? 그렇게 되는 거에요?
예수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다. 예수님은 대단한 분이 아니고 예수님은 사신 분이에요. 대단한 분이 아니라니까요. 세상에 어떻게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걷느냐? 대단한 분이 아니에요. 그냥 갇혀있지 않는 분이에요. 갇혀있지 않는 분. 오늘 제목을 이걸로 할까. 좀 길다만은. 주님은 갇혀있지 않는 분이에요.
그리고 주님의 빛에 의해서 산란되는 사람도 갇혀있지 않아요. 이 얼마나 이것보다 더 큰 행복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요. 이것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습니까. 갇혀있지 않아요. 죽음이 무덤이 예수님을 못 가두듯이 빛이 비추는 빛 되신 분의 물질과 부딪히면서 산란되는 그 산란의 색깔을 그 무지개같은 성도의 모습을 어느 죽음의 권세도 악마도 가둘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내가 내 생각하니까 가둬지는 거에요. 내 생각. 나는 육신으로 되어 있고 육신은 물 위를 못 걸어. 육신은 풍랑을 명령할 수 없어. 육신이니까 육신의 제한적인 한계를 본인이 알고 있는 거에요. 본인이. 쉽게 가겠습니다. 성령 밖에 있는 사람이 성령 안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볼까요? 어떻게 볼까요? 성령 밖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볼까요?
아주 예수 믿을라고 발악을 하는구나. 천당 갈라고 발악을 하는구나. 이기주의야 욕심쟁이 우후훗 뭐 이럴 거란 말이죠. 그 지옥 가면 지옥 가는 거지 뭐 천당 갈라고 애를 쓰느냐. 천당 갈라고 애 쓰는 사람 지옥 갑니다. 왜? 나, 자의식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그런데 성령 받은 사람 특징이 뭐냐? 자의식을 성령이 가만두지를 않아요. 성령이 내부적으로 싸워가지고 내 자의식을 완전히 짓밟아버려요. 하여튼 내 뜻하면 다 밟아버려요. ‘내 뜻’. 나 이제부터 거지로 살겠습니다. 절대 거지 안 되게 만들어요. 내 뜻이기 때문에. 내 뜻이기 때문에. 이제 손님 하나도 오지 마라. 안돼 와야 돼요.
손님 오지 않으면 주께서 손님 주시는 방법은 손님 끌어 모을까? 안돼요. 손님 하나도 안 옵니다. 그게 내 뜻이거든요. 반딧불. 이건 통합적이고 통합적이에요. 천국은. 통합적이고 거기서 나를 끄집어낼 필요가 없는 게 하나의 나에서 분산되었기 때문에 그래요. 파급, 하나의 나의 열매거든요. 포도나무는 두 그루가 아닙니다. 포도나무는 단 한 그루밖에 없어요.
한 그루에서 나오는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 열매에요. 성도는. 그래서 포도열매 하나 가지고 나라는 ME라는 I라는 말을 붙이면 안돼요. 나는 생명이 아니고 생명의 열매가 나에요. ‘나’. 생명은 예수님이고 생명의 열매가 나에요. 예수님만이 ‘나’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나’라는 말 못해요. 그래서 여호와가 누구냐 하면은 ‘나는 스스로 나다’라는 뜻이에요.
나? 오직 나만이 ‘스스로 나’라고 할 수 있는 분이 여호와입니다. 왜? 세상의 모든 있는 것이 주로부터 시작해서 주로 말미암아 주님께로 아주 끝내버리거든요. 끝내버려요. 이걸 당구장에서 한 큐에 끝냈다. 짜장면 내기했는데 나부터 친다고 해서 벌써 끝나버렸어요. 아줌마 여기 오백 났어요. 짜장면. 그것도 옛날 짜장면. 당구장에서 먹는.
한 큐에 끝냈어요. 한 큐에 끝냈을 때 나는 당구대에서 좀 칠려고 들어갈 찬스를 못 잡아요. 당구는 한번 치면 계속 치게 되면 성공하면 실패할 때까지 계속 해요. 우리 구원이 그래요. 기도 솜씨 뭐 솜씨 부릴 기회를 안줘요. 낄 수가 없어요. 낄 수가 없어요.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성경에서 나왔지만 참 어려운 말인데 처녀성이라고 합니다. ‘처녀성’. 순수 그대로 계속해서 끝까지 가버리는 거에요. 여러분 아시지요? 이사야 7장 14절. 처녀가 잉태한 아이는 무엇을 유지합니까? 끝까지. 처녀가 잉태했음을 유지해야 처녀성이에요. 이게 바로 성도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처녀성의 모든 작업 스케줄은 에스겔 1장 10절에 나와 있습니다. 한번 봅시다.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이 얼굴이 사방으로 다르다는 말은 이 천사들이 이 천사들의 체계가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창조의 동서남북으로 설명되어 있어요. 동서남북으로.
요한계시록에 나와요. 동서남북으로. 스가랴에도 나오고. 동서남북에 안 간 곳이 없어요. 꽉 채워져 가요. 꽉 채워져 가요. 천사가 하는 일, 스케줄이 그 프로그램이 온 천지에 숨을 곳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건 뭐냐? 이 천사는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형상이거든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양을 갖고 있다 얼굴을 갖고 있다 이렇게 돼요.
하나님의 얼굴이 여러 가지 다양한 하나님의 스케줄을 따라서 얼굴들이 사면으로 꽉 차 있으니까 이건 뭘 유지하느냐 하면은 태초에 있었던 하나님의 계획 처녀성이 끝까지 그대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에스겔 10장에도 똑같은 하나님의 보좌를 봐요. 이걸 본 사람이 누구냐 하면은 인자라고 불리는 에스겔 선지자가 이걸 봅니다.
이걸 볼 때 에스겔 선지자가 뭘 느끼느냐 하면은 아 지상에 있는 이스라엘은 망해도 상관없구나 정도가 아니고 많은 것이 이게 원래 하나님의 계획했던 순전함을 유지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나라가 망하는 것이 그게 스케줄 속에 포함이 되어있던 거에요. 그 에스겔은 아무 염려 없지요. 스가랴같은 경우는 성전을 짓는데 사람의 힘으로 짓는 게 아니고 뭐로 짓는다? 하나님의 신으로 짓는 거에요.
그러니까 인간이 손대면 되겠어요? 안되겠어요? 인간은 손대는 게 아니고 인간은 자기가 망해야 될 자기의 그것을 예수님의 오심으로 들통 나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이거 복음이에요. 나는 그 원천적 처녀성에 해당되지 않음을 자기가 드러내면 돼요.
드러났다는 말은 이미 그 사람에게 주님이 찾아왔다는 거에요. 너 아니야. 너 아니야. 주님께서 너 아니야 손가락질만 하는 게 아니고 십자가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왔거든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은 내가 얼마나 못되쳐먹었는지 나한테 오는 사람들은 모두 나한테 상처나 받고 꺼져라 이런 식이에요.
여러분 한번 살아보세요. 여러분에게 찾아온 사람 중에 상처 안 받고 간 사람 10분 쉴 동안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한테 온 사람 중에서 나한테 상처 안 받은 사람 한 사람도 없어요. 10분 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