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누가복음 8장 10절 (아름다운 과정)211019a-이근호 목사
강남-누가복음 8장 10절 (아름다운 과정)211019a-이근호 목사
오늘은 누가복음 8장 1절부터 18절까지 하겠습니다. 여기 예수님의 12제자가 악귀를 쫓아낸다고 되어 있는데 이 악귀를 쫓아낸다는 말은 이 세상에 악귀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악귀가. 그럼 그동안 인간들이 악귀하고 줄 곧 악귀, 악한 귀신과 더불어 살았다는 겁니다. with 악귀. with 코로나. 함께 악귀와 더불어 산거에요.
악귀와 더불어 살았으니까 이 악한 귀신이 악하다고 악한 것이라고 누가 지적을 해야 합니다. 지적을 해야 하는데 악귀보고 귀신보고 귀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 분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은 유일하게 귀신들리지 않는 사람. 첫째 조건은 귀신들리지 않은 사람이 악귀라고 지적을 해야 되고요. 두 번째 그분이 뭐냐 하면은 귀신들렸다고 오해받는 사람. 이 사람만이 악귀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본인은 귀신들리지 않기 때문에 악귀를 추방할 수 있고요. 추방할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은 악귀하고 함께 있기 때문에 이 함께 이것이 뭐냐 하면은 인간들의 삶의 현실이거든요. 삶의 현실. 삶의 현실이다 이 말이죠. 그럼 삶의 현실에서 악귀를 쫓아낸다는 것은 이 삶의 현실의 속하지 않은 분이어야 악귀를 쫓아낼 수 있고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분이어야 이분이 귀신들렸다는 오해를 유일하게 받는 분이어야 된단 말이죠.
왜? 악귀들렸으니까 전체가 여기 이러한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해서 악마 자체가 나 악귀다! 라는 악마는 없잖아요. 나는 정상이다. 제대로다. 정상이다, 제대로 된 사상이다 라고 이걸 유포시켜놨기 때문에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이 악귀들린 그 쪽에서부터 뭐가 되느냐 하면은 귀신들렸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돼요.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나옵니다.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15절에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라고 한 거에요. 예수님보고 귀신 들렸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왜 이야기를 이렇게 1번, 2번 두 요건을 다 갖추어야 되느냐 하면은 이미 악귀한테 접수당한 이 세상에서는 중성이라는 게 없습니다. 악귀도 안 들리고 성령도 안 받고 중간쯤 되는 사람은 없어야 돼요. 만약에 중간쯤 된 사람이라면 굳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 세계 가운데서 좀 괜찮다 악귀 안 들린 사람이 그 사람 고쳐주면 되니까요. 유대인들이 그걸 자처했어요. 건강하니까 우리는 악귀 안 들린 줄 나쁜 귀신 안 들린 줄 알고 있어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뭐로 보느냐. 바리새인 보고 뭐라고 했습니까? 너 집안 자체가 귀신의 집안이다. 왜? 저희 아버지가 악마니까. 악마 집안이에요.
그럼 악마 집안이 믿는 여호와는 있지도 않는 여호와에요. 진짜 하나님은 예수님 아버지만 진짜 하나님이고 나머지는 마귀가 조작해낸 종교적인 여호와 하나님이죠. 말이야 뭘 못 갖다 붙입니까 다 갖다 붙이죠. 그래서 이 악귀를 쫓아낸다는 말은 어떤 뜻이냐 하면 이 세상 사고방식은요 자기는 악귀 들렸으면서 그걸 모르고 정상적이다, 제대로다, 세상 잘 돌아가고 있다. 지금 멸망으로 가는 것도 모르고 불바다 되는 것도 모르고 잘되고 있다, 이렇게 보는 거에요.
여기서 지난 낮 설교한 것을 잠깐 언급하겠습니다. 낮 설교에 제가 무슨 이야기했느냐 하면은 불신자들은 늘 바른 말만 한다. 이렇게 했지요. 불신자들은 늘 옳은 이야기를 해요. 거짓말을 안 할뿐더러 과학적으로 사리를 판단해가지고 세상을 옛적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불길한 조짐이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가 내린 결론이다. 과학적 결론이에요.
지구 역사가 47억년. 우주 역사는 137억년. 이거 수학적 계산으로 다 나오는 거에요. 조건이 있어요. 지금의 물리법칙이 과거도 유효하다면. 과거도 유효하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된다면. 이것은 이 원리를 계산이 맞다고 하는 겁니다. 지금의 짧은 기간의 실험에 의해서 나오는 데이터가 과거도 미래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조건하에 우주의 역사는 137억년 지구의 역사는 47억년 이런 계산이 나온 겁니다.
이 원리가 뭐냐 하면은 이런 거에요. 세상에서의 이 의미라는 것, 세상 자신의 의미라는 것은 뭐냐 하면은 어릴 때 알던 테이블, 테이블의 의미가 좀 크면서 탁자에 대한 의미가 계속 뭐가 되느냐 하면은 누적이 되겠지요. 나중에 42살 때 어떤 테이블을 봤을 때 그 테이블 의미는 어릴 때 봤던 테이블 의미가 누적되면서 그때부터 누적되면서 변천을 거쳐서 나온 42살 때까지 나왔던 그 의미를 자기는 테이블 의미로 보는 거에요. 어릴 때부터 해서 누적된 의미.
그러니까 이 말은 의미라는 것은 뭐냐 하면은 제가 하는 의미는 뭐냐 하면은 어떤 사물 탁자가 있는 것을 그냥 테이블이라고 보지 않고 거기에 감정을 싣게 되어 있단 말이죠. 의미 안에는. 내가 까불다가 넘어진 그 테이블. 인간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모든 것을 다 주입시켜서 색다른 의미로 보는 거에요.
고목나무. 요즘 고목나무 자주 나오는데. 고목나무 무슨 나무냐? 오래된 나무죠. 어떤 사람에게는 그거는 어떤 고목나무를 처음 본 사람에게는 오래된 나무로 끝나겠지만 그 고목나무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고목나무를 볼 때마다 고목나무 플러스 헤어졌던 첫사랑이 자꾸 결부되어서 그게 의미가 되는 거에요. 다른 사람은 고목나무 와가지고 이쪽 길입니다 등산로 노란 테잎이나 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이 고목나무하면 눈물을 죽 흘리는 거에요. 그때 사람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올 리도 없겠지만. 올 리도 없겠지만 혹시 아냐. 또 올 줄 이렇게. 다 의미가 달라요.
그래서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는 의미하고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지요. 완전히 달라요. 아무리 달라도 이 세상은 의미를 보태고 보태도 이걸 못 뽑아낸다니까. 이 세상 자체가 악귀가 다스리는 마귀가 다스리는 세계라는 이 요소를 뽑아낼 재간이 없어요. 왜?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을 정상으로 보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불신자는 바른 말한다 이 말은 그것은 올바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세상을 볼 때 의미를 찾는 그 ‘나’ 가 좀 정상이고 싶어라. 이 욕망이 있어요. 나는 하자 없는 인간이고 싶어라.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 내가 옳게 이야기한다면 내가 나를 옳게 본다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분명히 하자가 없고 옳기 때문에 옳게 볼 것이다 라는 그것을 자기가 믿고 싶은 거에요 이게. 믿음의 내용을 자기가 만들고 싶은 거에요. 잘못이 없고 하자가 없는.
나는 마귀들렸다 이걸 누가 믿어요. 나는 마귀들린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이거는 되지요. 자기는 마귀 안 들렸으니까. 예수님께서 12제자를 같이 다녔다. 그러면 예수님 주변에 12제자가 포진되어 있습니다. 12제자는 마치 구약의 이스라엘 12지파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양식을 보여주죠. 형태를 형식을 보여주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그냥 툭 던져놓고 그냥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까? 아니지요. 이번에 겨울수련회 주제가 여호수아인데요. 제목은 ‘없는 땅’ 이라는 제목인데 여호수아가 그 전쟁에 나서면서 그냥 나선 게 아닙니다. 가는 길을 누가 막았느냐? 군대장관이 막았어요. 너희들이 사는 땅이 아니고 하나님이 사는 땅을 정복하라는 겁니다.
아 인간으로서는 정말 이거는 감당하기 어려운 땅이에요. 자기 사는 땅도 이건 골골하게 터전을 가꾸고 다듬고 하기 힘든데 사람 사는 땅도 이렇게 힘들게 토대를 닦아놔야 되는데 하나님이 산다면 도대체 하나님이 원하는 조건을 만족시켜야 그게 오시지 안 그러면 오시지 않거든요. 하나님이 오셔야 된단 말이죠.
하나님이 사시는 땅을 이스라엘 백성 보고 그걸 만들어내라고 하니까 그걸 만들 수가 있겠어요? 여기에 누가 오느냐? 천사가 등장해요. 수련회 벌써 시작한 느낌 든다. 천사가 왔다고요. 여호수아 5장에. 군대장관이 딱 서니까 거기서 여호수아가 항복했잖아요. 신발 벗어라. 신발 벗었어요. 어디 신 신고. 예예예 신발 벗겠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겠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는 땅은 어떤 조건이냐 하면은 모세에게 준 언약 있잖아요. 약속이 완성이 되면 하나님이 살 수가 있어요. 그러면 이스라엘은 약속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지요. 그러니까 천사가 앞장서야 되지요. 천사가 언약대로 실시할 때 그거는 종들은 시키는 대로 해야지요. 따라가야 돼요.
이 말은 이스라엘이 악귀가 안 들린다 할지라도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동행자가 이스라엘 동행자가 그 당시 이 세상의 악귀보다 더 우열한 더 통치력을 가진 분이 동행해주지 아니하면 악귀는 물러갈 생각을 안 합니다. 악귀한테 자꾸 악귀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악귀는 악한 마귀는 귀신이라고 할께요. 쉽게. 귀신은 물러가지를 않습니다.
귀신은 나름대로의 자기 조직체가 있어요. 악마가 대장이고 그 밑에 부하들이 귀신이거든요. 자기 나름대로의 조직체가 있어가지고 귀신을 건드리면 악마가 가만 두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악마는 인간을 이기고 있고. 귀신이 들어오겠다는 것을 말릴 수가 없지요. 마귀가 집어넣었으니까. 악마가 집어넣었으니까요. 지금 우리 형편이 이런 형편이에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 뒤에 나오는 이야기가 뭐냐? 씨 뿌리는 이야기 아닙니까. 8장 4절에요. 씨 뿌리는 이야기라고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씨 뿌린다는 이 비유를 하시는 이유가 그 씨 뿌리는 이야기가 뭐냐? 10절에 보면 이건 천국, 하늘나라에 관한 비밀이에요. 씨 뿌리는 비유가.
그러면 씨를 뿌린다는 그 취지가 뭐냐 하면은 이 세상 자체가 씨가 없는 세상이다 이 말입니다. 씨를 뿌린 적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세상에 인간은 살고 있는 거에요. 누가 와서 뭘 뿌려? 뿌리기는 뭘 뿌려. 뭐 없어. 우리는 청소 다 했어. 없어 없어. 뿌리기만 해봐라. 락스 가져와서 싹싹 밀어낼 테니까. 씨 뿌리는 족족 다 제거해버리는 세계.
그래서 귀신의 대장인 바알세불 악마가 통치하는 세계라는 것은 주께서 그걸 정확하게 이 세상은 악마가 다스리는 세계라는 것을 보여줄려면 주께서 하시는 말씀 속에 뭐냐 하면은 악마가 하는 일을 집어넣어서 비유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거에요. 뿌리는 거에요. 외부에서 씨를 뿌리는 거에요.
그런데 그 씨 뿌릴 때 제일 첫 번째 내용이 뭡니까? 뿌리면 누가 와서 먹습니까? 새가 와서 공중의 새가 와서 그걸 먹어버리죠. 그게 뭐냐? 12절에 보면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그 다음에 뭡니까? 뭘 얻지 못한다?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자, 구원을 얻지 못하고 말씀을 마음에서 빼앗는 그 세력이 이 세상에 지금 현존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까? 있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월급만 따박따박 나오면 살만하잖아요. 뭘 말씀을 뺐든 그런 건 신경 안 쓰고. 승진하고 출세하고 성공하고 넓은 아파트 살고 몸 건강하고 살 뺄 때 쫙쫙 빠지고 찔 때 근육 찌고. 그럼 행복하다 이렇게 되거든요.
시작을 주님이 뭘 했느냐부터 시작을 해야 되는데 평소에 내가 밥 먹고 살기 위해서 뭘 하고 있느냐 맨날 시작을 이것부터 시작하니까 그것부터 시작하면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내가 뭐 잘못되었는데? 나는 바르게 사는데. 나는 바르게 사는데 나는 잘못된 게 없는데. 맨날 이런 식이에요. 맨날 이런 식.
누가복음 11장 한번 봅시다. 11장 거기에 보면 24절부터 26절까지 보겠어요.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이렇게 되어있지요.
귀신 하나 들어갔다가 나갔는데 나중에 일곱을 더 데려온 거에요. 그럼 토탈 귀신 몇 마리입니까? 8마리가 어디에 들어왔다는 말입니까? 그 사람 속에 들어왔다는 거에요. 그 사람 속에 들어오면서 귀신은 뭘로 보느냐 하면은 귀신은 그걸 자기 집으로 보는 거에요. 자기 집으로. 집이 뭐냐? Home이 뭐냐? 귀신도 좀 쉬자. 너희들만 쉬냐. 나도 좀 쉬자 해서 쉬자고 들어가는 그 안식처가 인간의 마음. 인간의 마음이에요.
그러면 귀신들린 이 분이 그동안 뭐했어요? 나가라 뭐 이런 아무것도 반응도 못하고 그냥 자기 마음을 홀랑 귀신의 안식처로 거실 다 내준 겁니까. 도대체 그동안 뭐한 거에요? 왜 귀신오는 걸 왜 오지 말라고 왜 반발 못했습니까? 왜 못했어요? 지금 이 세상이 귀신이세요? 귀신이 뭐 허락 맡고 계십니까? 잠시 한 달간 하숙 하겠습니다 이런 거 없어요. 그냥 와요. 그냥. 그냥 들어온다고요. 그 정도로 인간은 귀신한테 나약한 존재다 이 말입니다.
자, 오늘 본문 누가복음 8장 봅시다. 8장 2절에 보면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그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봅시다. 이스라엘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와 함께 있다고 했습니까? 이스라엘은 누구와 함께 있다? 하나님이 이름이 함께 있지요. 이건 이스라엘이 거주할 땅을 찾겠다는 것이 아니고 정복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거주할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앞장 세운 거에요.
그거는 왜 그러느냐 하면은 이미 아담의 세계, 인간의 세계가 누구의 권세 안에 이미 장악 당했습니까? 점령당했습니까? 뱀한테 점령당했잖아요. 뱀한테. 그게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옵니다. ‘옛 뱀. 용.’ 이미 점령을 당했어요. 예수님이 탄생할 때에 그 유대 나라에 통치자가 누구였습니까? 헤롯이죠.
그러면 주님은 그 많은 유대 나라의 많은 사람 가운데 유독 누구를 지목합니까? 동방박사와 예수님을 해코지할 자를 누구를 지목합니까? 헤롯인 거에요. 헤롯. 임금이에요. 헤롯은 유대 나라의 뭐가 되느냐 하면은 유대 나라의 통치자죠. 이 통치자가 동방박사나 예수님에게 시도하는 게 뭘 시도했습니까? 살해했지요. 죽일려고 한 거에요.
죽일려고 하는데 못 죽이고 두 살 밑의 애들 베들레헴 애들 다 죽었잖아요. 통치자가 뭔가 일을 시도하면서 그 여파로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밑의 애들 다 죽었습니다. 다 죽었는데 정작 죽일려고 하는 아기 예수님은 그 가족과 함께 애굽으로 피신했어요. 애굽으로.
그럼 여기서 애굽이라는 나라하고 이스라엘 나라가 분명히 구분되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말씀을 반대로 사용해가지고 예수님 계신 곳을 이스라엘로 봐가지고 현재 예수님을 학대하는 그곳을 애굽으로 봐가지고 애굽에서 내 아들을 뽑아냈다 이렇게 설명하는 거에요. 예언을. 이거는 그 당시 유대인들이 구약을 설명하는 것과는 완전히 뒤바뀌었지요.
왜냐 하면은 상황 자체가 성경을 해석할 수 없는 자가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해석을 할려면 그들의 해석과 완전히 뒤바뀌어져야 돼요.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도 비슷한 말이 나오는데요. 한번 적어볼께요. 사도 바울이 말하는데 “내가 사람을 좋게 하면 그리스도 종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지요. 맞지요? 그렇게 되어있지요? 내가 사람을 좋게 하게 되면 그리스도 종이 아니라고 했지요.
여기에 사람 가운데 누가 포함되어 있어요? 내가 사람한테 포함될까요? 포함 안 될까요? 예? 된다? 안 된다? 반드시 되는 거에요. 그래서 이걸 새롭게 해석하면 뭐냐? ‘나는 나를 좋게 하면 그리스도 종이 아니다’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나쁜 짓을 한 게 마귀 짓이 아니고 나를 기쁘게 한 게 마귀 짓이에요. 나를 위해 사는 것이 마귀 짓이에요.
고린도후서 5장 17절 “이제 그리스도 외에는 새로 구원받은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은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게 함이라” 딱 나오잖아요. “우리 교회 부흥됩시다.” 이거 이단이라니까요. 뭘 부흥해요. 누구 교회? 우리 교회. 우리 교회 하니까 대구의 어느 교회 이름 같다. 우리 교회 부흥합시다 하면 왜 부흥해야 되는데? 왜 해야 되는데?
많은 신학자나 목사들이 어떤 설교를 할 때 기본 선입견이 뭐냐 하면은 이거에요. 저 설교 따라하면 내 교회 부흥될까? 이게 기본이에요 기본. 갈라디아서 1장 10절 이런 건 무슨 말인지 몰라요. 하나님을 위해서 잘되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이런 식이에요. 자기 자신이 거기에 부정적 존재로서 개입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거에요. 자기는 자기가 봐서 멀쩡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 2절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 있는데 막달라 마리아. 여기 막달라 마리아가 누구입니까. 뭐했던 자에요? 일곱 귀신 들렸다가 나간 자 잖아요. ‘일곱 귀신 들렸다 나간 자’. 그런데 그 앞에 1절에 보면 12제자가 뭘 했다? 악귀를 쫓아내고 병을 고치지요. 그러면 이 막달라 마리아가 12제자한테 굽신거려야 됩니까 아니면 그 공로를 누구한테 돌리겠어요? 예수님한테 돌리겠어요? 제자한테 돌리겠어요? 제자 아니고 예수님이죠.
왜?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까요. 여기 나 할 때의 ‘나’가 하나의 인물이잖아요. 인물 또 나와요. 뭡니까? 그리스도 인물이잖아요. 이 인물, 그리스도라는 인물과 ‘나’라는 인물 가운데서 인물이 둘 나오는데 최종적인 결정자가 하나로 줄여야 한다. 누구 쪽으로 몰아 세울거야 이 말이죠. 나냐? 아니면 그리스도냐 이 말입니다.
사람은 두 주인을 못 섬기거든요. 나를 우선하면 그리스도가 나의 졸개가 되어버려요. 그러면 그리스도가 되면 나는 주님의 졸개 딸랑딸랑. 주님의 졸개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세상에 이런 복이 어디 있느냐. 나에게 주인이 다 있다니. 지금까지 나 혼자 살았는데 나한테 주인이 있다니. 그 주인이 얼마나 든든한지. 나는 주인이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온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온다.’ 이걸 자유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왜? 나로부터 벗어났으니까요.
그 악귀들린 막달라 마리아가 이렇게 악귀들린 쫓아냄을 당하고 병 고침을 하니까 이 광경을 그 다음에 4절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이 모습을 이렇게 비유하시는 겁니다. “말씀하시되” 4절 끝에 보면 뭐라고 되어있지요? 뭐로 말씀하시니? 비유지요. 여기서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어려운 이야기 시작됩니다.
현실에 반대말이 예수님한테는 비유가 돼요. 현실의 반대말이 초현실이 아니고. 초현실이라는건 없어요. 현실바깥에 초현실이 있더라도 현실적과 관련성 될려면 비유로 이야기해줘야 돼요. 비유로. 왜냐하면 현실 바깥에 초현실이라고 이야기해버리면 이거는 그 당시의 유대 민족뿐만 아니고 모든 인간들은 다 이 정도로 생각할 수 있어요.
인간이 사는 세상 말고 하나님 사는 세상 있다 이 정도는 상식입니다. 이거는 인간의 상상력에서 이건 충분히 이런 것을 인간은 구상하는 재주가 있어요. 현실의 세계 말고 바깥의 주님의 세계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인간들에게 주님은 뭐냐 하면은 현실의 세계 안에 천국은 비유로 세계에 이미 들어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이 이미 들어왔기 때문에 그래요. 이미 들어온 분 놔두고 바깥에 죽으면 좋은 나라 있다. 이미 들어왔잖아. 들어와 들어와 들어왔단 이 말이죠. 이미 들어온 분이 할 때는 비유도 현실 이야기하는 것 같고 현실도 현실 이야기 같은데 둘이 이 양쪽에 내용이 통하지를 않네요. 도대체. 이게 알 수가 없어요. 뜻이 통하지를 않아요.
10절에 한번 봅시다. 8장 10절 “이르시되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비유로 한다는 자체가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새로운 영역 공간을 새로 만드는데 그 만드는 세계가 뭐냐? 비유의 세계. 현실을 까는 세계. 현실을 부정하는 세계에요.
그래서 8절 끝에 보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런 조건을 왜 붙입니까? 이런 조건 이 조건을 모르게 되면 이거는 네가 들어도 왜 예수의 말을 내가 못 알아듣는지 본인이 그 원인을 파악이 안돼요. 주님은 원인을 파악을 합니다. 원인 파악을 해가지고 알려줘도 이게 해결책이 안나요. 왜? 네가 들을 귀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말씀을 그렇게 해버려요.
그러면 그쪽에서 귀 두 개인데 들을 귀 하나 더 붙여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야 아니야 그러면 안돼. 왜? 현실은 현실대로 비유와 차이 남을 뚜렷하게 드러낼려면 이 들을 귀라고 하는 것은 그냥 제공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들을 귀는 어떤 사람에게 제공되느냐?
바로 그것을 위해서 막달라 마리아 일곱 귀신 들렸는데 귀신도 두 귀신 정도가 아니고 일곱 귀신 들렸으면 이것은 자력으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언급하는 거에요. 자력으로 귀신은 나가지 않는다. 꼼짝 마라 이거에요. 꼼짝 마라. 일곱 줄을 감는다는 말은 완전히 드디어 자기 힘으로는 구원 불가능성입니다. ‘구원 불가능성’
그러면 나는 구원이 안 되지요. 나는 구원이 안 되는 여자다. 나는 막달라 마리아. 나는 구원이 안 되는 여자에요. 구원이 안 되기 때문에 이것은 어디에 속하느냐 하면은 이건 뭘 반영하느냐 하면은 그 당시의 현실세계, 오늘날 우리의 현실세계를 그대로 반영해주고 있습니다. 이 현실세계라는 말은 어떤 것도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막달라 마리아로 보여주는 거에요.
이걸 현대 물리학에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깔대기 비슷한 그림. 깔대기 동그란 부분 있고요 여기 새카만 부분 있는데 이걸 이게 뭐냐 하면은 블랙홀. 블랙홀. 블랙홀은 빛도 중력에 강해서 빛도 빠져나오지를 못해요. 블랙홀은 아무도 볼 수 없습니다. 볼 수가 없는데 그 근처에 있는 별들이 여기 막 빨려 들어가는 거에요. 시커먼 우물이기 때문에 시커먼 우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데 여기 주변에 있는 물들이 여기 우물 속으로 자꾸 흘러가는 거에요. 흘러가고 이게 손실되고 소멸돼요.
막달라 마리아는 구원이 불가능한데 이 땅에서는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정됐잖아요. 일곱 귀신이 덮고 있으니까 안 되잖아요. 일곱 귀신이 있어서 안 되는데 주님은 이걸 뭐로 보느냐 하면은 현실 안에 있는 막달라 마리아를 뭘로 보느냐 하면은 씨 안의 존재로 봐요. 씨 안의 존재. 씨는 뭐냐? 여호와의 말씀. 말씀 안의 존재로 전환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하는데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용어가 적절해요. 지평선은 나중에 저녁 되면 뭐가 지지요? 낮에 혼자 주관했던 낮에 모든 에너지를 주관했던 해가 지평선 너머 가지요. ‘너머’ 이렇게 씁니까? 한글로. 너머 가지요. 사라지잖아요. 소멸되고 없어지지요. 이 블랙홀의 특징이 뭐냐? 들어갔다 하면 못 나와요.
블랙홀은 뭐냐 하면은 우주의 쓰레기통으로 아주 적절합니다. 좋은 점은 뭐냐? 보통 쓰레기는 꽉 차면 나중에 한도가 있는데 블랙홀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커져요. 쓰레기통이 더 커져요. 멋지지 않습니까? 쓰레기통으로. 쓰레기를 집어넣으니까 쓰레기가 쓰레기통을 키우는 거에요. 이게 블랙홀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자꾸 삼키는 겁니다. 손실되고 소멸되는 거에요. 이 안에서.
그러니까 이건 뭐냐? 막달라 마리아 안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없는 거에요. 내 안에 내가 없는 것. 없어지는 거에요. 나의 고유성이 없어지는 거에요. 나의 고유성이 없다는 말은 드디어 귀신이 자기의 안식처로서 나를 사용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고 잘된 나는 존재하지 않아요.
왜? 내 안에 나는 존재하지 않아요.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예수 믿고 나게 되면 누구든지 사람을 좋게 하면 그리스도 종이 아니라는 아까 그 원칙을 그대로 여기에다가 적용 시켜버리면 나라고 할지라도 나를 위해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닌 거에요. 쉽게 말해서 그리스도가 일하는 그 영역 안에 내가 놓여버린 겁니다. 그러면 그 전까지는 내가 일하는 영역 속에 내가 놓인 거에요.
보통 세상에서 어떤 이야기나 드라마 할 때 이런 거 하잖아요. 너의 정체를 밝혀라 또는 네 정체가 탄로났다 뭐 이런 문장들이 있지요. 이게 막달라 마리아한테는 해당이 안 되는 거에요. 정체가 없으니까. 정체성, identity, 정체 자체가 없기 때문에 탄로날 게 없어요.
실은 너 몸무게 57이면서 50이라고 속였잖아. 너 정체를 밝혀라. 아무리 봐도 50kg 넘는 거 같은데. 아가씨들 그런 이야기하지요. “57kg 뭐? 내 안에 있는 주님의 몸무게다. 내 몸무게 아니고 주님의 몸무게다.” 요새 주님의 몸무게 많이 나가요 요새. “정체를 밝혀라! 몇키로야?!” “몰라. 주님께서 얼마나 키워놨는지 나는 검사 안 해봤는데.” “57kg.” “주님께서 그렇게 만들어놨나?”
내 안에 내가 없는 거에요. 내 안에 내가 있는 경우는 어떤 경우냐 하면은 바로 귀신이 그렇게 사람들을 길들여놔서 그래요. 선악과 따먹는 한 정녕 네가 신이 되야 되겠으니까. 귀신이 우리를 그렇게 다루었던 겁니다. 너는 정당하다. 너는 하자 없다. 너는 바르게 살면 된다. 성도는 바르게 사는 사람이 아니고 소멸되는 사람이죠. 바르게 사는 것도 소멸되고 아픈 것도 소멸되고.
제가 옛날에 좋아했던 노래 제목이 뭐냐? 이 노래에요. 과거는 흘러갔다. 아시죠? 권사님. 몰라요? 과거는 흘러갔다. 이 제목이 너무너무 좋은 거에요. 과거는 흘러가버린 거에요. 과거의 ‘나’가 소멸된 겁니다. 우리 송재현 씨가 질문한 것처럼 과거가 과거는 현재에 이미 들어와버렸어요. 그래서 과거가 없는 거에요. 과거는 없어도 과거에 있는 의미는 계속 남아있어가지고 고목나무 붙들고 울고 있단 말이죠.
인간의 모든 의미는 사실은 자기에 관한 의미입니다. 모든 의미가. 학교에서 산수나 수학 가르칠 때에 아주 냉혹하게 가르치지요. 7x4=28. 굉장히 냉정하고 냉혹하지요. 그러나 이걸 7x4 이걸 풀 때 인간은 여기 의미가 붙습니다. 나는 똑똑하다라는 의미가 붙어서 내가 이걸 다 맞추다니. 선생님이 참 잘했어요 도장 팍 찍어주면 엄마한테 가가지고 엄마 또 100점이야.
7x4=28. 엄마가 “너는 그 의미를 아느냐?” 의미고 뭐고 필요 없어. 내가 맞췄다는 게 중요하지, 7x4 이것 자체는 의미 없어요. 내가 이걸 풀었다는 게 의미 있는 거에요. 모든 의미는 나한테 와서 최종점수가 매겨져요. 모든 의미가. 그 채점자가 누구냐 하면은 노태우지요. “본인이~~” 내가 채점자에요. 내가.
주님께서 씨를 뿌린다는 것은 그 씨가 현실의 정체를 폭로시키는 씨가 되는 거에요. 씨를 뿌릴 때에 여기에 나타나지 않던 이 세상의 통치자가 나타나가지고 길가에 떨어진 씨에 대해서 어떻게 합니까? 그걸 물어 없애버리지요. 그러니까 현재 인간들이 정상으로 보는 아! 대한민국. 중공. 중국 공산당. 이 모든 것은 노림수가 딱 한 개에요. 대한민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관계없이 딱 하나입니다. 뭐냐 하면은 씨를 없애버리는 것, 씨를 말려버리는 것. 씨를 말리는 것.
그러면 성도는 그렇게 씨를 말려들어갈 때 성도가 얻는 게 뭐냐? 이게 오늘 강의에서 제일 어려운 대목에 여러분 도달했습니다. 성도는 뭘 얻느냐? 질문할께요. 성도가 얻는 것은 열매다. 맞아요? 열매다. 1번 맞다. 2번 틀렸다. 성도가 얻는 것은 열매다. 1번 이 말이 맞다. 2번 틀렸다. 30배 60배 100의 열매다. 2번 아니다. 몇 번입니까?
열매는 주님이 얻는 것이지 성도가 얻는 게 아니에요. 성도는 뭐냐 하면은 이겁니다. 과정입니다. ‘과정’. 성도는 결실이 되면 안 됩니다. 결실은 주의 일이기 때문에 결실은 주님의 일이 결실 되야지 내가 결실되면 안돼요. 내 안에 ‘나’가 없어요. 나는 하나의 주의 일에 과정으로 프로세스 과정으로 들어가는 거에요. 과정으로. 과정으로 들어가거든요. 과정으로.
저 미국에 남부에 가면 토지가 어마어마하게 크지요. 수십만 에이커 이렇게 농사짓는 사람에게 필수로 필요한 게 사일로. ‘사일로’. 겨울철에 습기 많은 사료를 습기를 촉촉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같이 섞어가지고 탑을 해서 창문이 두 개 있는데 창문 위에 집어넣어서 빼낼 때는 아래로 빼내요. 사일로. 사료 창고, 보관 창고를 사일로라고 합니다.
그러면 들어가면서 여기 돌을 놔요. 무거운 돌을 놔가지고 이 안에 있는 옥수수나 호밀이나 이런 습기가 있는 그것을 해놔야 가축들 먹일 질 좋은 사료가 돼요. 습기를 유지시켜 주니까. 위에서 내려오겠지요. 촉촉이. 40일인가 60일인가 이렇게 겨울철에 한다는데. 이게 뭐냐 하면은 이게 바로 과정. 크로마토그래피. 화학 실험하는 사람들은 알아요. 밀도가 다른 것을 집어 넣어가지고 밀도의 차이 가지고 성분을 분석하는 게 있어요.
유리병에 붙어있는 점도 이런 것까지 비교하거든요. 이만큼 내려왔다. 이만큼 내려왔다. 같은 시간 내에. 물질은 인간과 다르고 물질은 이러이러한 물질이다 살피는 거에요. 하나의 과정입니다. 과정인데 지금 주님께서 이걸 비유로 사일로를 몇 개 해놨어요? 하나, 둘, 세 개? 네 개를 한 거에요. 네 개를.
씨는 다른 씨가 아니에요. 동일한 씨입니다. 동일한 씨를 사일로 여기에 다 내려보내지요. 여기서 뭡니까? 쭉쭉 내려오지요. 일종의 사다리타기. 사다리타기 알지요? 쭉쭉 내려오는 거에요. 그러니까 사일로 하나하나가 뭐냐 하면은 과정들을 통해서 절차를 보여줍니다.
무슨 절차냐 하면은 절차를 보여주는데 천국이 통과하는 절차. 천국이 이루어지는, 천국을 이루기 위해서 통과해야 되는 절차, 이 절차를 보여줘요. 동일한 씨를 뿌립니다. 이 전체가 지금 인간의 일입니까? 성도의 일입니까? 주의 일입니까? 이게 주의 일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12제자를 가리잖아요. 옛날 이스라엘처럼.
다시 이야기할께요. 이스라엘이 땅을 정복하는 것은 그들이 살기 위함이 아니고 누구를 살게 하기 위함이다? 주의 이름이 거주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데리고 가는 겁니다. 그리고 그 원칙은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을 완성하면서 이루어지는 거에요. 그러면 약속을 완성한다는 그 완성의 의미는 그 약속을 도발하고 약속에 대해서 저항하고 반대하는 것을 계속해서 그걸 끄집어낸다는 것과 동일한 뜻이에요. 주님의 적수를 계속 끄집어내는 거에요.
씨 안에 막달라 마리아 들어있어요. 막달라 마리아는 이미 귀신이 나갔잖아요. 막달라 마리아 사적인 의미에서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이에요. 구원을 받았지만 나는 구원 받았다를 적용해버리고 너는 하나의 씨앗이야 이렇게 되는 거에요. 씨앗이야. 전체가 하나의 씨앗이 되는 거에요.
이 씨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로 나왔지요. 그러면 그 하나님께 나왔다는 말은 이 씨를 뿌린 자가 있을 게 아닙니까. 이 씨를 누가 뿌리지요? 씨를 누가 뿌립니까? 뿌린 자가 있지요. 이 씨를 뿌린 자가 누구냐 하면 예수님 본인이 뿌립니다. 예수님 본인이 말씀을 뿌려요. 그러면 이거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오늘 참 어렵지요. 내용이. 그래서 씨 뿌리는 비유가 어렵다고 사람들이 무슨 뜻으로 어렵다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어렵다고 이야기해요.
아까 다시 해봅시다. 현실 바깥에 초현실이 있다고 했습니까? 없다고 했어요? 이런 건 없어요. 현실 속에 현실의 반대말은 비유의 세계입니다. 비유의 세계에요. 현실 속에서 천국을 만들어내거든요. 그런데 이 비유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어디 있느냐? 예수님께서 현실 이야기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현실은 예수님의 현실 이야기를 못 알아들을 때 이것이 같은 현실 속에 살면서도 두 개의 현실이 지금 따로 나뉘어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겁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과 나머지 인간이 하는 일 또는 마귀가 하는 일, 같은 뜻이에요. 인간이 하는 일을 보여줄 때 예수님께서는 그 양쪽이 어떻게 넘어올 수 있는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겁니다. 이 동그라미를 기억하시면 돼요. 하나는 뭐냐 하면은 천국 비유의 세계, 그 다음 이쪽에는 지금 우리가 말하는 현실이라고 하는 거에요. 현실. 이 현실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가 우리는 현실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요.
이 사이에 뭐가 있느냐 하면은 씨가 있어요. 씨. 이 씨가 옆에 누구냐. 막달라 마리아. 왜냐하면 이 사람은 구원에 불가능한 사람이기 때문에. 구원에 불가능한 사람인데 아까 블랙홀 있지요. 블랙홀 있는데 블랙홀에 만약에 우주선이 날다가 뱅뱅 돌다가 방향을 잘못 바꿔가지고 이쪽에 있다면 빠져버려요. 블랙홀 근처에 간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빠지는 건 아니고요 제대로 해야 돼요. 그냥 돌면 안 빠지는데 핸들 잘못 틀어버리면 빠져요. 빠졌을 때 한번 빠지면 못 돌아와요.
지평선에 해가 져버리면 이 해는 절대로 다시 떠오르지 않습니다. 서쪽으로 해지는데 서쪽에서 해 뜨는 거 봤어요? 없지요. 지는 쪽이거든요. 지는 쪽. 사라지는 쪽이에요. 그 역할을 누가 하느냐? 막달라 마리아가 하는 거에요. 나는 구원에 불가능함. 구원에 불가능하면서도 이게 넘어가는 거에요.
만약 여기에 절벽이나 해변가에 땅이 끊어지는 곳에 어떤 사람이 갔다. 어떤 사람이 가가지고 뭐 한마디 하더니만 뒤로 넘어져서 이 땅이 끝나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을 때 다시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경우가 별로 없잖아요. 그냥 넘어가잖아요. 막달라 마리아는 그냥 넘어간 거에요.
그 전에는 뭐냐 하면은 나는 불가능해. 나라는 인간은 불가능해 에서 인간에서 뭐로 바뀌느냐 하면은 씨로 바뀌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남 보기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인간이잖아요. 그러나 비유의 세계에서는 예수님의 비유의 세계에서는 그걸 인간으로 보지 않고 씨 안에 있는 주님의 생산물로 보는 거에요. 주님의 생산물.
주님의 말씀이 들어있는 사람으로 주님의 작업, 주님의 천국 절차 과정에 참여된 자로 보는 거에요. 그래서 12제자가 악귀 쫓아내고 병 고친 사람 많으니까 그 전체를 모아놓고 주께서 거기에다가 새롭게 그걸 하나의 모형을 만드는 거에요. 모형으로 이게 바로 천국의 비유의 세계라고 하는 거에요.
어떤 사람은 삐지고 어떤 사람은 말씀 모독하고 어떤 귀신은 드론처럼 와서 말씀을 가져가고 온갖 있어도 어떤 사람은 기어이 30배 60배 100배 맺었잖아요. 그러면 구원만 챙기는 것이 아니고 그 과정 속에서 뭐가 등장하느냐. 왜 인간은 구원받을 수 없는지. 자력이라는 말 넣지 마세요. 아예 인간은 구원 대상이 안돼. 왜 인간은 구원이 안 되는지 이유가 뭐냐 하면은 본인이 인간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구원이 안 되는 거에요.
못난 인간이라서 구원 안 되는 게 아니고 인간이라는 자체가 구원이 안돼요. 인간이라는 자체가. 왜? 씨가 아니기 때문에. 누가 나보고 씨라고 의미를 부여해야 구원을 받아요. 말씀 안에 주님의 작업에 동참해야 구원이 되는 거에요. 그럴러면 우리는 어느 지평선? 현실의 지평선에서 소멸되야 된다니까요. 그래서 성도는 바르게 사는 것이 아니고 매일매일 사라져가는 사람이에요. “나 간다~” “어디로?” “나도 몰라.” 그냥 가버려요. 지평선, 현실이라는 지평선 너머 씨의 나라, 비유의 나라로 가버리는 거에요.
10분 쉬었다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