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서울의존강의20211111b 베드로후서1장 13절(망상처리)-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베드로후서

서울의존강의20211111b 베드로후서1장 13절(망상처리)-이 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첫 번째 시간 끝에 얘기한 것, 악마의 통치방법은 창세기 3장에 잘 나와 있어요.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해 살라고 촉구하는 거예요. 악마를 위해 살라 하는 것은 악마가 이야기한 적 없어요. 악마는 아담 편입니다. 이미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자체로, 하나님이 하는 계획에 차질을 입혔다는 그 자체로 악마는 신바람 났어요. 그러니까 ‘너는 너를 위하여 살라’ 이게 악마의 통치방법이에요.

그래서 이 악마의 통치방법에 걸려든 사람은 항상 점검하고 항상 측정하는데 이 측정을 하기 위해서 내가 나다우냐를 세상을 통해 늘 실험합니다. 설교에서도 한 적 있는데 ‘실험한다’. 성경적 용어를 쓰면 ‘시험한다’. 내가 신자 맞는지 안 맞는지를 계속 시험하는 거예요. 십일조 한 20년 냈다가 십일조 이거 안 내면 어떻게 될까? 시험하고 점검하고 측정하는 거예요. 그 목적이 있어요. 나는 신자인가? 나는 성도 맞는가? 시험하는 거예요.

나 자체가 망상인데. 이 시험 자체가 성립될 리가 없죠. 나 자체가 망상인데요. 우리는 주님의 파이프라니까요. 주님의 몸체에 붙어있는 파이프에요. 나라고 따로 뽑아낼 자격도 없고 그럴 권한도 우리한테 없습니다. 그런데 악마가 자꾸 뭐라고 하느냐 하면 너는 너를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너 그러다가 천국에서 잘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악마가 통치하는 방법, 이걸 요한계시록에서는 ‘참소하는 자’라 해요. 고자질하는 자. 끊임없이 내 속에서 나를 고자질하는 거예요. 너 몰랐나? 베드로후서에 보면 ‘이런 것, 열매가 없는 자는 소경이라.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그러니까 잊지 말아야지. ‘잊었느니라’의 성취는 잊지 않는 것이 성취가 아니에요. 나 자신을 없애버리는 것이 성취에요.

아, 이거 너무 쉬운 건데...... 왜 그러느냐 하면 10절에 나와 있습니다. 부르심과 택하심의 시발점, 시작점이 뭡니까? 나입니까? 나 아니죠. 적어야 되겠다, 이건 중요한 거니까. 나의 시작점과 나의 도착지점은 무(無)입니다, 무. nothing이에요. 없어요. 내 자체가 망상이기 때문에 나의 시작점과 도착점이 없어요.

시작은 나 말고 나 없음인데 다른 있음, 주님께서 시작하시고 주님께서 마감하시고 나는 그 안에 있어서 항상 변신하는 거예요. 매일같이 이게 달라져요. 계속 다른 나가 되는 거예요. 그건 주님 마음대로에요. 내가 비-고정되었다니까요. 고정이 되지 않아야 내가 우상이 안 되죠.

영화나 드라마가 실제 상황을 반영해주니까 거기에 보게 되면 소위 의리 있잖아요, 의리. 꼭 주먹을 왼쪽 가슴팍에 대고 의리. 의리 한다고 주식 거래 말아먹고. 이렇게 나의 나다움, 나의 개성을 내가 지켜내는 것, 이게 필생의 나의 과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거 우상 숭배자입니다. 사람은 ‘상황따라 변할 수 있다’가 아니라 안 변한 적이 없어요. 변할 수도 있는 게 아니고 안 변한 적이 없습니다.

어제는 어제따라 나였고 오늘은 오늘따라 나에요. 내일되면 내일따라 또 다른 나가 될 거예요. 나를 특정모습으로 붙잡으려고 하지 마세요. 그거 자칫하면 우울증 걸려서 정신병자 됩니다. 그냥 제발 여러분 자신을, 유명한 용어, 내비두세요, 그냥. 여러분 자신을 그냥 내버려두세요. 자꾸 나다움이 있어버리면 그게 우상화 된다고요. 마치 그래야 되는 것처럼.

지금 상황이 바뀌었잖아요, 상황이. 모든 환경이 바뀌었잖아요. 그 환경을 누가 바뀌게 했습니까? 주님이 바뀌게 하신 거예요. 너는 너를 위해 살지 말라고. 주님께서 악마의 통치방법을 아시거든요. 인간으로 하여금 예수님 믿는 것보다 누구를 믿는 게 의식적으로 더 확 와닿습니까? 역시 믿을 놈은 나밖에 없다. 이게 의식적으로 확 와닿는 거예요. 그러면 부르심도 날라가버리고 택하심도 날라가버리고 피 뿌림의 은혜도 날라가버리고.

여기 베드로후서 1장 1절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엇을 힘입어? “의를 힘입어” 그 의를 어떻게?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1장 1절만 봐도 베드로부터 우리 모두가 결코 나 하나를 우상시할 수 없는 그런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1장 1절만 봐도 알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마귀는 ‘이게 바로 나야’라고 뒤에 나를 집어넣는다고요. 나야 나. 아이고 참. 이걸 집어넣으니까 매순간 망상이 없이 지나간 순간이 없어요, 망상이 없이. 봄 되면 봄 왔다고 낭만적이고 여름 되면 여름 왔다고 하고 가을 되면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 지금도 기억하고 있죠 10월의 마지막 밤을’ 이거 뭐 10월 31일은 매일 돌아오는데 돌아오면 그 노래 들어야 돼. 늘 돌아오는데...... 자기한테 홀렸어요. 다른 말로 하면 자기한테 반했어. 너 나한테 반했나? 하잖아요. 인간은 자기한테 반해버렸어요, 평생을. 천상천하 나보다 더 귀한 것은 없어요.

귀하기는 뭐 개뿔이 귀해. 하나도 안 귀해요. 그 귀한 거 돈 몇 푼 준다고 하면 대번 고개 숙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제 수요일에 작심하고 이야기했어요. 수요일에 했던 문장을, 멘트를 한번 적어볼게요. ‘비참하고 비굴하게 꾸역꾸역 돈 버는 외에’ 그다음이 중요해요. 다른 대안이 있습니까, 우리 인생 사는 게? 다른 대안이 있어요? 꾸역꾸역 돈 버는 외에 다른 대안이 있습니까? 어디 기도원 들어가서 도 닦을까요? 비굴하게, 비굴하게. 그리고 비참하게. 비참하고 비굴하게 꾸역꾸역 돈 버는 외에 다른 대안이 없어요.

마귀는 말합니다. 너도 돈 벌어가지고 남을 지배해서 비참하고 비굴함에서 빨리 졸업하라고 이야기하죠. 주님은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한 것이 바로 나라고. 주님이 그렇게 했어요. 주님이 그렇게 했어요. 왜? 나를 우상화 안 되게. 네가 보기에 볼품없이 만들기 위해서. 이게 얼마나 행복합니까? 내가 보기에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것. 이거 출애굽하신 거예요. 해방한 거예요.

무슨 나에게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수요일에 멘트 하나 이런 게 나올 거예요. 나의 의미와 가치를 설사해라, 설사. 설사하면 뭡니까? 낮에 먹은 맛있는 거 전부다 쫙 내려가죠. 나의 의미와 가치를 매순간 설사해야 돼요. 왜? 나는 nothing,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이게 자유고요. 이게 11절에 의하면 넉넉하게 천국에 가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누구한테 간섭받았습니까? 간섭 안 받았죠. 왜냐하면 성령이 함께 해서 그래요. 성령은 자유하는 영이에요. 성경대로 합시다. 성령은 예수님에게로 온, 자유로운 예수님의 영이 성령이에요. 그럼 예수님이 자유롭게 되면 성령 받은 사람은 자유롭게 안 되어도 이미 자유롭게 만들어요. 자유, 해방. 그러면 자유롭게 해방되면 ‘나는 해방이다’하는 내가 있는 게 아니고 나는 원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원래.

제가 묻겠어요. 솔로몬 재판에서 여자 둘이 애 하나 잃어가지고 재판하는 경우 기억나죠? 그 때 둘 중에서 누가 자유로운 사람입니까? 애를 죽인 자가 자유로워요, 애를 그 범인에게 내준 그 여자가 자유롭습니까? 애를 그냥 내준 여자가 자유로워요. 솔로몬의 재판은 그 범인이 아닌 여자에게 자유를 허락한 거예요. 자유를 제공한 그러한 판정이었습니다.

판정이 뭐였던가요? 여러분 아시잖아요. 둘 다 내 애라고 하니까 짜증난다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하느냐. 애를 두 토막 내서 한 토막씩 나눠줘라 이 말 아닙니까. 그 말은 뭐냐 하면 애가 있으니까 그 애에 대한 집착이 있는 거예요.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성도의 시작과 끝 지점은 없어요. 없는데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지금 내가 사람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내가 사람 된 것은 주님 때문이지 우리 부모님의 DNA가 나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 아니란 말이죠. 형제 때문에 사는 게 아니고 내 아내 때문에 남편 때문에 사는 게 아니에요. 주님 때문에 사는 겁니다. 아이고, 오랜만에 바른 소리하니까 기분이 좋네. 내가 자식보고 사는 게 아니고 남편보고 아내보고 사는 게 아니고 주님이 그렇게 나를 거기다가 집어넣은 겁니다. 주님이 자유로운 것처럼 너도 자유로워라. 남편, 아내 노릇 하지 말라가 아니라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로? 비굴할 때는 비굴해야 되고 비참할 때는 비참해야 되고.

아니 돈 버는 재미도 없으면 어째 삽니까? 꾸역꾸역 돈 버는 재미, 저축하는 재미 있잖아요. 세금 속이고 덜 내는 그런 재미. 재해 지원금 받을 자격도 안 되는데 서류 꾸며가지고 20만원 받을 때 얻는 인생 승리감 있잖아요. 그게 얼마나 비참하고 지가 보기에는 한심스럽습니까? 그런데 다른 대안이 없어요. 죄인이 죄인처럼 더럽게 사는 게 그게 전부지, 무슨 천사도 아닌 게 천사 짓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8절 다시 보겠습니다. 이제 서서히 정답에 가까이 되겠죠. “게으르지 않고” 할 때는 제가 바로 게으른 사람입니다. “열매 없는 자 되지 않고” 제가 열매 없습니다. 왜? 내가 열매 없잖아요. 그러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가 되는 거예요. 열매 없음 앞에 ‘나’가 붙었잖아요. 망상인 나가 붙었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열매 없는 자로써 망상 처리해주시라 이 말입니다, 망상 처리. 오늘 제목을 로 해야겠다, 갑자기 떠올랐다.

여러분이 이 정답을 알아요. 모든 것은 말씀이 말씀대로 처리해나가는 거예요. 내가 노력하는 게 아니고 말씀대로 처리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안 살아있지만 나 살아있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게 주의 말씀이에요. 주의 말씀이 살아있습니다, 주의 말씀이요. 주의 말씀이 살아있어요. 그래서 지금 베드로가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가 너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거예요.

9절에 “이런 자는 소경이라” 내가 소경입니다. “원시치 못하고” 나는 큰 것도 몰라요. 아니 큰 걸 안다 해서 어느 정도까지 여러분 아십니까? ‘저는 큰 거 알아요.’ ‘어느 정도까지?’ ‘난 마귀에 대해서 압니다. 그 정도면 크잖아요.’ ‘그럼 마귀의 어느 정도까지?’ 이렇게 물으면 크기에 크기, 그보다 더 큰 크기. 이건 한도 끝도 없어요. 도대체 어디까지 몇 단계까지 알아야 됩니까? 주님한테 묻지 마세요. 주님은 내가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 주님 보시기에 가장 적절한 상황이에요. 말씀에 입각해서. 말씀이 말씀되기 위해서.

그러니까 결국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내 기대한대로 뭘 행할 거냐가 아니라 지금 주님께서 말씀을 가지고 어떤 일을 벌이시는가, 베드로후서의 말씀 가지고 어떻게 그 상황을 만들어내시는가에 여러분들이 감탄하시기 바랍니다. 야, 내가 살아있다 했는데 내가 살아있는 게 아니고 주님이 살아계시는구나. 그걸 매일같이 감탄하시기 바랍니다.

매일매일 우리는 달라지니까. 종잡을 수 없으니까 어느 걸 잡아서 이걸 나라고 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한결같은 것은 내가 어떤 인간이 되든, 내가 소경이 되든 옛 죄를 깨닫지 못하게 되든 살아있는 것은 말씀이 살아있는 겁니다. 이게 바로 나를 인정치 않는다는 점에서 신자에요. 불신자가 아니고 이게 바로 신자입니다.

자, 정리해봅시다. 지금까지 한 것 정리해봅시다. 이거 아셔야 되죠. 불신자는 나 중심, 신자는 나 중심 아님. 됐죠? 또 말씀 중심 하지 마세요. 그럼 또 불신자도 말씀 중심 다 이야기하기 때문에. 나 중심 아님. 내가 깨지든 망하든 비굴하든 상관없어. 신자는 나 중심 아님. 누구 중심? 예수님 또는 예수님의 말씀 중심. 예수님의 말씀이 자기 가지를 열매 맺게 하시는 예수님 일 중심. 이렇게 우리끼리지만 깔끔하게 정리합시다. 우리끼리입니다. 저기 다른 사람 말고 우리끼리 깔끔하게 정리됐죠?

나 중심 아닙니다. 나 중심이 아니에요. 지금 내가 이런 형편에 있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 11절 넘어갑니다. 아이고, 8,9,10절 하는데 이렇게 힘듭니다. 아까 요한계시록, 고린도전서 이야기 전부다...... 그러니까 또 또 잊을까봐 당부하는데 고린도전서에 불의, 간음하면 어떻게 되느냐. 불의, 간음이 바로 납니다. 그럼 끝나는 문제에요. 내가 간음한 자이고 내가 불의한 자 맞습니다.

나라는 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성령으로 씻음 받은 사람이 아는 거거든요. 다른 사람은 몰라요. 그러니까 내가 환상인데 나 중심 될 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고린도전서 6장 중심이죠. 말씀 중심이죠. 그럼 그 말씀이 어떻게 되느냐. 반복이죠. 반복해서 내 의식에 계속 반복해서 주어지는 거예요. 너 중심 되지 말고 말씀 중심이다. 또 반복.

그것을 십자가의 반복이다. 십자가의 단회선의 반복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갈라디아 3장 1절에서 이미 15년 전에 십자가 다 끝났는데 사도 바울은 십자가가 네 눈앞에 보이지, 그치? 그러고 있다고요. 이미 지나간 십자가를 왜 거론합니까? 반복되거든요. 피 뿌림이 반복돼요. 우리는 달라지지만 피 뿌림은 한결같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정서적으로 안정적이에요, 성도는. 안정적. 나 중심이 아니니까 안정적이죠. 하여튼 내 중심을 들어보면 이건 난리도 아니에요. 아이고 나 우짜노, 우짜노. 난리도 아니다가 주님 생각하게 되면 갑자기 안정이 되어버려요.

자, 그다음에 13절 봅시다. 12절 빼놓고 13절을 보는 이유가 있어요. 거기에 단어 하나 나옵니다. 장막.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이 장막이라는 말이 여기서도 나오지만 고린도후서 5장에도 나와요. 1절,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이렇게 되어 있어요.

장막 또는 초막, 하우스. 우리의 몸을, 우리의 육신을 집으로 사용하는 이유가 뭐냐.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 3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절에,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자, 육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걸 장막이라 하지만 다른 말로 하면 육, 육체에 대해서에요. 여러분들이 성경에서 육체가 나오거든 현재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아주 간편해져요. 육체는 물질, 물체, 사물 덩어리에요. 또는 ‘아이고, 그거 물건이네’ 할 때 물건. 우리의 육신을 물질, 물건, 사물 덩어리 이렇게 보는 것, 이게 바로 과학 정신입니다.

과학정신은 해부해요. 안에 뭐가 들었지? 쪼개면 전자 현미경 가지고 더 뭐가 들었지? 계속해서 쪼개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성요소를 찾기 위해서 분석하고 분석하고 또 분석하고 분석합니다. 우리의 물질의 근원을 찾는데 인간들은 근원을 정신으로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물질 안에 어떤 요소들이 하나의 조직 체계를 이루게 되면 우리가 말한 정신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신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정신은 없다고 보고 물질의 모아진 하나의 효능 또는 효과로 보는 거예요. 효능, 효과. 예를 들면 우리의 두뇌를 쪼개면 거기서 사랑이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두뇌를 쪼개면 신경세포 나오죠. 신경세포 쪼개면 화학구성분이 나오죠. 분자, 원자 나오죠. 사랑이 안 나오는 겁니다. 그럼 사랑은 뭐냐? 사랑은 그냥 그들이 만들어낸 조합의 어떤 효과 같은 것. 그게 사랑이죠.

사랑, 미움. 사랑, 미움이 나오는데 미움도 사랑도 없어요. 없으니까 미움은 어디서 찾는가? 이걸 사랑이라 했을 때, 사랑과 대비되는 것을 미움이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의 의미체계는 변별체계에서 나온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의미라 하는 것은 이게 의미다, 가 아니라 이게 아닌 다른 것과 비교해서 이건 이리로 분류하고 저건 저리로 분류해서 인간은 의미를 갖는다는 거예요.

문제는 인간의 그 의미 때문에 자살하고 목숨도 버린다는 사실이에요. 나 약 먹고 죽을래. 왜? 나 그 사람한테 버림받았어. 버림이라는 게 없는데요. 버림이 없잖아요. 어떤 사람이 나한테 욕을 한다. 욕을 하는 것하고 야구공 던지는 것하고 달라요. 야구공 던지면 몸에 멍들잖아요. 그런데 욕을 하게 되면 육신에 아무 멍이 안 들어요. 그런데 마음에 멍이 들거든요. 마음이 있어야 멍이 들죠. 마음에 무슨 멍이 들어요, 마음이 없는데.

그러니까 결국은 과학적으로 말하는 인간의 육신은 귀신 씌였어요. 그냥 분자구조인데 나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든지, 나는 내 마음에 총 맞은 것처럼. 그리고 누가 보고 싶다. 같은 하늘 어느 곳에 있더라도. 막 괴로워서 잠을 못자. 잠이라 하는 것은 피곤하게 되면 물질의 에너지, 호르몬 작용에 의해 잠이 오게 되어 있는데 누가 보고 싶어서 못 자고 그리워서 못 자고 만나고 싶어서 못 자고.

두뇌가 너의 말을 왜 안 들어? 하면 글쎄, 두뇌가 내 말을 듣지 않네. 이건 과학적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나’가 없어요. 신경세포에 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두뇌가 내 말을 안 들어. 내가 없는데 없는 게 왜 말을 듣죠? 이것도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인간의 과학은 대혼란입니다, 이게.

얼굴이, 턱이 너무 내려왔다. 그럼 수술합니다. 양악수술, 턱 수술하죠. 턱 수술을 하게 되면 정상적인 턱이 된다. 여기까지는 과학이에요. 그런데 기분 좋다. 기분 좋다는 것은 무슨 과학입니까? 기분 안 좋을 거 같으면 수술 하지도 않죠. 기분 좋음을 내다보면서 수술할 거잖아요. 그럼 이건 과학으로 하면서도 과학이 아닌 다른 귀신 씌인 거, 정신적인 문제, 마음적인 문제 가지고 과학을 이용한다면 그 과학을 지배하는 정신은 과학을 분석해보면 어디 있습니까? 없어요.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게 아니고 아예 없다니까요.

바로 성경은 무엇을 이야기하느냐 하면 인간의 모든 숨 쉬는 것, 행동하는 것, 밥 먹는 것 일어난 모든 일은 우리 주님이 개입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 주님이 개입하고 있는데 주님이 어떻게 개입하느냐 하면 언약적으로 개입합니다.

십자가 복음을 위해서 저 불신자들이 자기 애인한테 욕 얻어먹는 것, 이게 따지고 보면 십자가 복음을 위해서 있는 거예요. 너무 논리가 비약되어버렸죠? 어떤 불교의 중이 자기 절에 있는 화초에 물 주는 것이 십자가 복음을 위해서 물 준다 이 말입니다. 논리가 누락된 것이 너무 많아 보이죠.

이 정사각형이 우주라 한다면 우주에 있는 이 촘촘한 그물 같은 모든 구조의 중심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사도 바울이 이야기한 거예요. 이 세상 모든 만물의 움직임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명하기 위해서 모든 게 있다고요. 골로새서 1장 16절(“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모든 만물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되심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성도가 알아야 될 것은 절에 있는 중이 자기 화초에 무심코 물 주는 것이 십자가와 관련되어 있다는 관련성을 알아내는 거예요. 이게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다 의도에 의해서 신자든 불신자든 가리지 않고 이 땅에 그들이 태어나야만 했다는 겁니다. 태어나야만 했다.

어제 수요일 설교할 때 이런 이야기했잖아요.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난 것은 오지게도 재수 없는 일이라고요. 왜냐하면 이 자체가 심판받는 곳에 태어났거든요. 잘못 태어났어요. 심판, 장차 여호와의 날에 불구덩이 될 곳에 우리가 태어난 겁니다. 태어날 때 불로 심판받기 위해 태어난 거예요. 심판받기 위해서 태어난 거예요. 심판받는 기준이 뭐냐. 여호와의 날에 의하면 십자가에요. 십자가를 드러내기 위해서 꼭 심판받아야 돼요.

그거하고 오늘 본문 10절 봅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한다는 말은 우리가 어떤 근거에 의해서 구원받기로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았는가. 십자가에 의해서 부르심과 구원을 받았거든요. 십자가 열매를 위해서. 또 내가 구원받았다고 이야기하지 마세요. 한 시간 동안 이야기했는데 또 반복하게 하지 마세요.

주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은 주님께서 자기가 자기 열매를 생산하기 위해서 불러줬다 이 말이죠. 그러면 그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려면 불신자가 지옥 가야되는 그 사실도 확정되어야 되고 굳게 되어야 돼요. 그럼 그 기준은 내 기준이 되지 못하고 주님의 기준이 되는 겁니다, 주님의 기준.

14절 봅시다. “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자, 장막이 뭐냐. 이제 말할 시점이 왔죠. 장막이 뭐냐. 예수님께서 주가 되시기 위해서 이 땅에 마련하신 것이 장막이에요. 그게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된 거예요. 말씀이 육신이 된 것.

장막은 장막만 있으면 안 되겠죠. 장막 그 자체만 있다면 장막의 의미가 충족되지 못합니다. 장막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어야 되고 말씀이 있어야 되고 언약이 있어줘야 되죠. 그럼 베드로는 자신을 뭐로 봅니까? 장막인데 하나님의 굳은 약속이 들어있는 장막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런 장막이라고. 그러나 불신자의 장막은 장막만 있을 뿐이지, 안에 보면 헛방.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대들고 반항하는 그런 비(非)언약적인 요소가 작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니까 아까 처음에 인간이, 나라는 게 왜 망상인지 아시겠죠? 인간이, 나라는 것이 왜 망상이냐 하면 안에 내용이 아무것도 없어요. 내 안에 누가 들어있냐 하면 나 있다. 그 나 안에 누가 들어있냐 하면 나 있다. 또 그 안에 나 있다. 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내 안에 계속 내가 있어요.

그러나 성경에서는 뭡니까? 우리는 장막이고 우리의 육은 장막이고 그 안에 십자가 복음, 언약이 들어있는 거예요. 불신자는 그 언약에 대드는 요소가 들어있고. 그렇게 설명해야 세상의 모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복음으로 어느 하나 빠짐없이 촘촘히 다 연계되어 있고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거예요.

자, 이쯤 와서 베드로후서 1장부터 다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베드로의 사고방식이 뭐냐? 베드로의 의식상태, 베드로의 세상관, 사고방식은 뭐냐? 예수 그리스도의 피 중심이죠. 얼마나 간단해요. 흔한 목사들도 이 정도는 얘기할 수 있어요. 이 세상은 예수님의 피 중심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몰라. 이런다고요. 성경에 나오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이게 지식이 아니에요. 그야말로 옴팡 자기 삶을 통해서 그대로 지금 발산하고 있어요. divergence. 그냥 확장하고 있어요. 발산하고 있어요. 그래서 베드로는 하루하루 사는 것이 자기 일이 아니고 주의 일이에요. 주님이 그 안에서 베드로가 품고 있는 언약을 계속해서 확산시켜 나가고 퍼뜨려나가기 때문에. 민들레 홑씨처럼. 어느 강의에서 그랬죠. 민들레 홑씨에서 특이성이 부풀어 오른다고, 특이성. 그 언약의 특이성이요.

마태복음 13장을 다시 보겠습니다. 13장 14절-15절을 제가 읽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이게 특이성이에요, 특이성. 갑자기 제목을 또 바꾸고 싶은 생각이 확 드네. 아까 제목을 잊어버렸어요. 무슨 처리인데... , 그게 더 낫네요.

신자가 불신자와 다른 점은 거기서 특이성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그 특이성에 어떤 특징이 있느냐 하면 불신자들은 아무리 듣기는 들어도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해요. 세상 보는 사고방식 자체가 완전히 예수님 십자가 중심이에요. 예수님 중심이에요. 누구 중심은 아니다? 나 중심은 아니에요.

그런데 세상은 누구 중심입니까? 악마의 통치방법은 나를 위하여서. 나를 위해 사니까 여기서 과학정신이 나와요, 과학정신. 분석정신.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계속해서 실험하는 정신. 내가 과연 믿을만한지를 세상을 향하여 계속해서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실험하는 거예요.

세상에 있는 8000m 봉우리를 15개 등정했으면 이제는 그만 산에 안 올라가도 되거든요. 산에 왜 올라갑니까? 산이 있으매 올라간다. 이 있는 산 다 올라갔는데? 이제 안 올라가야 될 것 아닙니까? 또 올라갔다가 내려오다 얼어 죽고 그런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잖아요. 이 등산가들은 본인이 망상이에요. 망상에 본인이 있어요. 나의 나다움의 내용을 채우려고 하니까 이게 다 안 채워지는 거예요. 이게 어디 등산가뿐입니까? 모든 불신자가 다 그러는데요.

월드컵 4강 올라갔으면 됐잖아요. 그런데 아직도 배고프다고? 빵 줘라. 응원 입어서 4강 올라갔으면 잘했지. 박지성 때문에 올라가서 잘했지. 뭐 또 결승까지 올라가려고 그리 욕심을 냅니까? 뭐 결승 올라가면 욕심이 멈춥니까? 안 멈춰지죠. 참고하시려면 안양 강의에서 했던 금 물고기 이야기 들어보세요. 금 물고기 이야기했어요. 물고기를 잡았는데 금물고기라. 풀어주면 소원 들어준다고 하니까 할머니가 소원 이야기를 하는데 소원이 점점 커져요. 나중에 소원을 너무 이야기해서 오바해서 원상태로 돌아갔어요.

이 말은 뭐냐 하면 나라는 망상은 악마의 통치방법이기 때문에 계속 채우고 채우고 채워도 한도 끝도 없어요. 사마리아 여인처럼 남자 5명 사귀면 됐는데 벌써 5번째 싫증나가지고 6번째 사귀고 있어요. 이게 목마른 여인이에요, 목마른 여인. 그러나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가 들어오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나는 이제 배부르다가 아니에요. 나 자체가 망상이니까. 주께서 나를 그냥 사용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됐잖아요. 그 주님께서 나를 순간순간 사용하면 됐지, 무슨 더 욕심을 내겠습니까? 주스나 마실란다.

자, 여기서 진도 나가봅시다. 진도 나가면서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질문할게요. 장막은 같은가, 다른가? 1번, 모든 장막은 같다. 2번, 모든 장막은 다르다. 몇 번입니까? 둘 중에 하나니까 뭐 아무거나 하나 집으세요. 모든 장막은 같다. 모든 장막은 다르다. ‘같다’가 정답이죠. 모든 장막은 같아요. 재벌 부러워하지 마시고요. 과장 됐다고 슬퍼하지 마시고. 어차피 장막이에요. 어차피 육입니다. 어차피 나중에 흙이 되어 사라지고 장막이라는 의미를 가져야 새 장막을 고대하는 사람이 되죠.

장막이라는 것은요. 육이지만 이게 언약적 관점에서 장막이거든요. 장막이란 뭘 보호할 용도에요. 뭘 담을 용도라고요. 집은 지어놓고 아무도 안 살면 개집 되는 게 되잖아요. 안에 들어가 있는 내용에 따라서 장막이 빛이 나잖아요. 장막이 동일한 이유가 언약이 완성되면 모든 장막은 그게 코가 되든 눈이 되든 귀가 되든 간에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점에서 모든 지체는 다 같아요. 다 성령을 받았으니까요.

어떤 사람은 전도 50명 했다. 다른 사람은 한 명도 못했다. 그래도 똑같아요. 어떤 사람은 50명을 전도한 장막이 있고 어떤 사람은 한 명도 못했다. 똑같습니다. 그러나 이건 달라요. 어떤 사람은 50명을 전도하려고 애썼다, 본인이. 자기가. 어떤 사람은 난 한 명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이건 틀려요. 둘 다 ‘나’가 있기 때문에 둘 다 망상이에요. 이제 이해되셨죠? 50명 전도하는 것, 그건 주께서 하셨겠죠. 그러나 내가 하고자 하는 것과 그건 달라요. 내가 전도를 하나도 못한 것도 주의 뜻이죠. 그러나 나 안 해도 된다 하고는 달라요.

이 질문은 어디서 나온 질문이냐 하면 흔한 질문이죠. ‘목사님, 예수 십자가 피로 구원 받았으면 십일조 해야 돼요, 안 해도 돼요?’ 이 질문하고 똑같은 거예요. 십일조 하고 안 하고 간에 그 문제는 주님 소관이지, 지 돈도 없으면서 지가 내고 말고를 왜 본인이 결정하려고 합니까? 그게 바로 악마의 통치 방법이죠. 아무리 주님의 지시지만 일단 내 허락, 내 검증과 내 측정과 내 시험을 내가 결정하겠다는 거예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또 이런 질문한다고요. ‘목사님 그때 내가 망상인 줄 알아야 되는데 수시로 난 내 생각밖에 안 해요.’ 하면, 그냥 당신 생각만 하세요! 그것도 망상인 줄 알면 돼요. 지금 되어지는 일이 여러분들이 만들어낸 게 아니고 주님이 만들어냈어요. 여러분이 살아있는 게 아니고 주님이 살아 계시다고요.

하여튼 공장 주인이 아니고 직원 같으면 직원대로 열심히 하면 되지. 지가 주인노릇 다 해가지고 지가 할라 하니 얼마나 바쁜지. 바쁘고 또 그것도 제대로 못해가지고 지 혼자 공포에 휩싸여가지고 나 벌 받을 거야. 나 전도 안 해서 저주 받을 거야. 아이고, 저주받기 전에 미리 자살할까? 온갖 되지도 않는 걱정, 근심 다하고 있어요. 장막 주인은 따로 있는데 지가 장막 주인인 줄 알고.

그래서 14절 다시 보겠습니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보세요. 베드로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나, 내 중심 아니야.’ 지금 그 소리를 크게 외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베드로가 1절부터 14절까지 왔는데 베드로를 다시 한번 보세요. ‘이 일, 내가 한 게 아닙니다.’를 일관되게 하고 있어요, 일관되게.

14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임박한 줄 알라 하니까 또 뭐 후대에 나온 신학자들이 베드로는 착각했다. 자기는 금방 재림할 줄 알았지만 어림도 없지. 재림은 아직 이천 년이 지나도 안 했는데.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고요. 임박이라 하는 것은 이천 년이 되든 삼천 년이 되든 모든 성도는 오늘이 최후의 날이에요. 오늘이 최후의 날. 내일을 보장할 수가 없어요.

나중에 저를 차 태워 광명 가다가 도중에 음주운전에 박혀서 집사님은 살고 난 죽으면 난 최후의 날이에요. 그것은 내 소관이 아니고 주님이 그러시겠다면 그런 거니까요. 나는 망상이니까요. 지금껏 살아온 것도 주의 은혜니까요. 최후의 날이에요. 이것을 요엘서 수요설교에서는 무슨 날이라고 했습니까? 여호와가 직접 오시는 여호와의 날이에요.

그러니까 성경해석을 어떻게 하느냐. 내가 이미 죽었다 치고 해석하면 해석이 다 돼요, 내가 이미 죽었다 치고. 그래야 나 중심이 아니니까. 이것을 전에 광주강의에서 단어 하나, 부사로 이걸 썼어요. 기억납니까? ‘빼꼼히’. 인생 어떻게 사느냐? 일단 관이 있고요. 관 뚜껑을 한번 열어보는 거예요. 빼꼼히 열어가지고 이왕 죽었는데,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잖아요, 죽었는데 어디 바깥 세상 서울 구경이나 해볼까 해서 빼꼼히 나와가지고 취직이나 해볼까, 결혼이나 해볼까 해서 아이 둘 놓고.

이게 전부다 어디 해당됩니까? 빼꼼히 관 문 열고 빼꼼히 내다보는 거예요. 그래서 급하면 다시 쏙 들어가서 죽으면 되니까. 손해 볼 것 하나도 없어요. 그림이나 그려볼까, 빼꼼히. 그림 마음에 안 드는데 가위표 칠하고 다른 그림이나 그려볼까, 빼꼼히. 빼꼼히만 다 집어넣으면 돼요.

그냥 살아보는 거지 뭐. 그냥 재미로 한번 살아보는 거예요. 물론 재미 치고는 너무 비굴하고 비참하고...... 돈 번다고 밤 12시에 들어와서...... 그러니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은 어차피 내 세상이 아니고 주님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주님이 어떤 어떤 어떤 것을 만들었는가. 주님의 놀이동산 구경이나 해보세. 물론 제가 말은 구경이라 하지만 고생은 직싸게 해요, 사실은. 코로나 백신 주사 2번 맞아야 되고요. 고생은 하는데 그것도 뭐 주께서 만든 상황이면 하죠 뭐.

그러니까 베드로의 사고방식이 이미 죽었다고 치고 살아보는 거예요. 이미 죽었다고 치고. 그럼 집에 있는 아내나 남편에게 평소에 안 들던 생각, 갑자기 고마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사람이 상당히 고마울 수도 있네. 애는 먹이지만 돈은 벌어주잖아. 중요한 건 돈이니까요. 부부는 동업자거든요. 애는 먹이지만 내 마음대로 안 되지만 돈은 벌어줬잖아. 챙길 거 챙겼으면 좀 내 말 안 들어도 본전 찾았으면 됐지 뭐. 갑자기 마음이 낮아지면서 ‘고맙다, 여보.’ 뭐 이런 식으로 나올 수 있죠.

이게 베드로 같은 정신, 망상처리, 망상을 처리하는 겁니다. 이 땅에 이왕 사는 거 개나 세 마리 키워볼까,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이 모든 것에 망상인 내가 개입되고 들어가면 나는 내 몸, 내 것이 되고 내가 개입 안 되면 이건 장막이 되는 거예요. 제목을 또 으로 하고 싶은데......

자, 16절 보고 마치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자, 묻습니다. 예수님의 능력과 예수님의 강림하심을 인간이 지어낸 겁니까? 어느 소설가가 창작한 겁니까? 아니죠. 인간의 아이디어에서 안 나왔죠? 그러면 우리는 내 중심되면 안 돼요. 왜냐하면 내 중심이 되어버리면 내가 해낼 수 있는 것만 수집하거든요. 그런데 강림은 내가 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강림에 대해서만 주님께 맡기지 마시고요. 여러분 태어난 것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것 다 그냥 주님께 일임하세요. 앞으로도 일임하세요. 어차피 강림은 우리 소관 아니니까. 큰 덩어리 안에 나를 그냥 여기 다 맡기세요.

그 뒤에 나오잖아요. 이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이게 바로 증인이에요. 베드로가 사도가 되는 거예요, 증인. 증인되는 겁니다. 증인의 특징은 내 중심이 아니에요. 그냥 나는 어떤 사건을, 우연히 그 현장을 목격한 거예요. 그러니까 내 잘못일 수 없죠, 그냥 본대로 이야기하는데.

물론 세상에서는 예수님에 관한 것을 발설하면 죽인다는 협박, 공갈이 있겠죠. 협박, 공갈이 있든 말든. 협박, 공갈을 누가 하라 했습니까?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우리 주변에 깔아놓은 거예요. 넌 남들 다 자기 중심으로 사는데 너 혼자 그리스도 중심으로 산다 하면 회사 잘린다. 그 잘린다는 협박, 공갈도 누가 하시는 거예요? 주님께서 하시는 것이죠.

물론 유난 떨어가면서 아침에 출근하면 벌써 기독교 회사도 아닌데 두 손 들고 할렐루야! 이러고 오게 되면 그거는 회사 사기 문제에 지장이 되고 그건 백번 잘려도 마땅한데 그게 아니고 의도적으로 막 전도 티내고 이게 아니고 저쪽에서 일부러 건드리는 경우들이 있어요. 술 한 잔 해라. 교회 다니는 거 아는데 술 한 잔 정도는 해도 괜찮다. 너도 회사 다니면서 회사의 분위기가 협조되어야 회사의 생산성이 오르고 너도 월급 오르는 걸로 한 몫 보잖아. 너도 돈 값해야지. 부정할 수 없는, 반박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면서 술 한 잔만 해라. 내가 뭐 술 취하라 하나. 한 잔만 해라. 한 잔에 한 잔에 한 잔에. 한잔이 두 잔 되고. 나중에 취해가지고 큰 잔에 한 잔 되고. 나중에는 다른 사람한테 이 사람 교회 다니면서 술 마신다고 딴 소리할 거예요. 분명히 한 잔만 하고 용납해준다 해놓고 딴 데 가서는 완전히 술꾼으로 포장해버리죠. 너 같은 게 교회 다닌다고, 술 먹는 주제에? 어디서 들은 소리는 있어가지고.

그러니까 그런 경우가 있더라도 그럴 때는 빼꼼히, 아이고 빨리 죽자. 이런 수모를 당하느니 죽는 게 낫다. 그런 편안한 해방된 마음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 내가 망상인 것을 따져보기 전에도 우리가 알아야 되는데 우리가 말씀을 모르다 보니 나만큼은 확실하게 나다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다운 경우가 존재하지 않고 나답다면 그게 우상이 된다는 그 위험한 지경에 놓인다는 사실을 베드로의 마음을 본받아서 그저 그리스도 중심으로 다 맡기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94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8,817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세례받으신 예수님 / 211114 - 최고관리자 21-11-14
18,816 묻고답하기 흠없는 상태 - 최고관리자 21-11-14
열람 ➜ 자유게시판 서울의존강의20211111b 베드로후서1장 13절(망상처리)-이 근호 목사 베드로후서 최고관리자 21-11-14
18,814 자유게시판 서울의존강의20211111a 베드로후서1장 13절(망상처리)-이 근호 목사 베드로후서 최고관리자 21-11-14
18,813 자유게시판 8강-요엘 2장 12-14절(마음을 찢으라)211110-이 근호 목사 요엘 최고관리자 21-11-11
18,812 자유게시판 수련회 교재 - 최고관리자 21-11-10
18,811 자유게시판 겨울수련회 안내 - 최고관리자 21-11-10
18,810 자유게시판 20211108b 부산강의 : [시편]43(27:10)-십자가 소리 시편 최고관리자 21-11-10
18,809 자유게시판 20211108a 부산강의 : [시편]43(27:10)-십자가 소리 시편 최고관리자 21-11-10
18,808 자유게시판 20211105b 울산강의-역대기상(5강) 3장 4절 : 주의 기억 - 최고관리자 21-11-08
18,807 자유게시판 20211105a 울산강의-역대기상(5강) 3장 4절 : 주의 기억 역대상 최고관리자 21-11-08
18,806 자유게시판 108강-욥기 32장 6~10절(내면의 세계)211107 이근호 목사 욥기 최고관리자 21-11-07
18,805 자유게시판 11강-데살로니가전서 3장 1-5(시험)211107 - 이 근호 목사 데살로니가전서 최고관리자 21-11-07
18,804 자유게시판 내일 11월 부산 성경공부 모임 안내 - 최고관리자 21-11-07
18,803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탄생과 관련된 것 / 211107 - 최고관리자 21-11-07
18,802 묻고답하기 얼굴 보자 데살로니가전서 최고관리자 21-11-07
18,801 강의 [21 대구강의] '창세기'속의 그리스도 37 - 주님의 환경 창세기 최고관리자 21-11-05
18,800 자유게시판 7강-요엘 2장 4-11절(공포없음)211103-이 근호 목사 요엘 최고관리자 21-11-04
18,799 자유게시판 371강-YouTube강의(원형 요한복음 1:5)20211102-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21-11-03
18,798 자유게시판 370강-YouTube강의(배경 출애굽기 13:21)20211102-이 근호 목사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21-11-03
18,797 강의 유튜브강의(370강,371강). 배경, 원형 211102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21-11-02
18,796 자유게시판 107강-욥기 32장 1~5절(처음으로)211031 이근호 목사 욥기 최고관리자 21-10-31
18,795 자유게시판 10강-데살로니가전서 2장 17-20절(강림)211031 - 이 근호 목사 데살로니가전서 최고관리자 21-10-31
18,794 묻고답하기 시험하는 자 - 최고관리자 21-10-31
18,793 묻고답하기 잃어버린 모자 - 최고관리자 21-10-30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