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모자
- 잃어버린 모자 -아파트 가로수 느티나무가 노란빛을 띠었다.날씨가 좋다.문득, 북한산 가을이 보고 싶어 진다.오후 1시가 넘어서 집을 나섰다.가방을 메고는 나왔는데,'민수님'(내 친구)과 화악산 갈 때 딱 1번 쓴 모자 생각이 났다.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등산화를 신은 채...오호! 호오!정릉탐방센타에서 바라보는 보현봉 아래로 산이 붉어져 있다.골을 따라 오르는 길 골짜기 단풍나무마다 붉은빛들이다. 곱다.마음이 즐겁다.숲의 향기가 온몸에 감긴다.하지만 숨은 차는데 마스크 때문에 갑갑하다.전철이나 시내에서는 잊고 있던 갑갑함이 여기선 짜증스럽다.그런데 어찌 산 봉우리마다 보살들 이름일까?(보현, 문수, 원효, 승가)마치 유럽의 지역마다 있는 '수호성인'의 이름처럼?이유는 있었다.당시 성곽을 지킬 예산이 없어서,곳곳에 절터를 주고는 승려들에게 성곽을 지키게 하였다.띄엄띄엄 만나는 사람을 보니 대부분 턱스크다.길 따라 멀리까지 사람 자취를 살펴보고는 마스크를 벗었다.숨을 가슴 깊숙이 채웠다.형제봉 능선을 따라 대성문을 향해 오르는데건너편 칼바위 능선으로 늦은 오후 가을 햇볕이 쏟아져 내린다.대성문에 도착.싸온 만두와 함께 물을 마셨다.오늘은 여기까지다.하산길.칼바위 능선으로 하산길을 잡았다.능선 돌계단 성벽길을두 스틱으로 밀어 올리며 올라간다.그런데 세월에게 절반도 더 뽑혀 나간 머리, 그 정수리가 햇볕에 따갑다.모자를 쓰려고 배낭을 벗었다.어?어어???배낭 뒤에 매달아 놓은 모자가 없다.에효오~칼바위 능선은 포기하고 뒤돌아섰다.혹시나!어떤 천사님이 잘 보이는 곳에 놓아줬기를 기대하며...가을빛과 단풍을 즐길 새도 없이 길을 살폈다.탐방소 가까이, 길이 끝나는 데에서혹시나! 했던 그 기대는 사라졌다.자책이 뒤 따랐다."왜? 그걸 배낭 뒤에 매달아?"지난번에도 배낭 뒤에 매달았던 바람막이 옷이 사라져서 중간에 뒤 돌아 그 먼길을 되짚어갔었다.그때는 그 바람막이 옷이 아니라 딸이 사준 비싼 무선 이어폰 때문이었다.그 옷 주머니에 넣어 둔 이어폰이 마치 어린 딸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그래서정신없이 찾아 나선 발걸음에는 속상함보다는 부끄럼이 들어 있었다.그렇지 않았음 찾지도 않으려 했다."에이~"속상함에 화가 치민다.
'레테Lethe)'의 강을 건넜나?두 번이나.
내 것을 잃었다는 것은 '나'를 잃어버린 거다.속상함은 곧 소중함을 가리킨다.그 소중함에서 '나'가 툭툭 튀어나온다.그런'나'를 버리러 갔다가 '속상한 나' 하나를 더 달고 왔다.혹부리 영감처럼.버리려는 것도 욕심인가?'버림'을 생각하니다시 하산 길이 이어지는 작은 암자의 마당이 떠 오른다.거기 쉼터 의자와 탁자들 위를 살폈지만 모자는 없었다.돌계단 길을 다 내려서는데 처마 끝의 풍경소리가 울렸다.저기 좌정한 분이 석모니불일까? 아미타불일까?극락전이면 아미타불 일테고...죽어서 가고 싶다는 곳인극락도 여전히 인간계이다.이건 내 말이 아니라 그들의 종교 교리이다.인간계에서만 깨달은 자 곧 붓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그래서 그들은 '되고자'하여 버리는 수행을 한다. 버리고자 하는 것은 '아트만' 즉 고정 불변하는 '나'이다.그런 '나'는 없다(無我)는 것이다.즉 나는 연기적 존재라는 것으로 당시 인식론의 대 변화이었다.하지만 그 버리고자 함은 '연기하는 나'를 찾으려는 게 아니었다.내 욕망을 찾으려는 것이지.타인의 욕망 속에서...그냥 땅에 속한 철학적 인식의 전환일 뿐이었다.그러고 보니나의 소중함은 곧 부끄럼을 덮어 보려는 타인의 욕망이었다.욕망은 쫓겨남에 대한 반항이었고.버리려고 수행하는 그들 또한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그 증거가 선악과이다.즉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이 믿지 않음은 새 언약에서만 밝혀진다.다시 다짐을 한다."배낭 뒤에 절대 뭐든 매달지 말아야지"혹처럼?ㅋㅋㅋ웃는 얼굴이지만고개는 갸우뚱해진다.그래! 어쩌랴!버리지도 못할 짐들을 버리려는 혹을 매일 달고 사는걸.그러나그 짐을 버린 분!버림을 완성시키신 분!이 세상에 딱 한 분 계신다.십자가에서 죽으신 분!그래서 이 세상(인간계)은 선악세계이다.혹들을 달고 살게 하는 세계.십자가 앞에서 도망칠 곳은 없다.'안드로메다'도 종이처럼 불태워져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그럼 왜? '혹"을 달고 살게 하시는가? 이 혹이 주를 믿지 않는 것이라면 죽어 마땅하지 않은가?십자가에서.그래서 혹을 주신 것이면 '유구무언'."주여! 오시옵소서!"
그러면서도 우린 '혹' 달린 채로 여전히 세상에서 재잘거린다.그러나 오늘 잃어버린 모자처럼,
내 머리카락을 뽑아버리신 것은?정수리를 뜨겁게 하여 잃어버린 자임을 알게 하심이다.십자가를 밝히 보이게 하시려고."주여 감사합니다"2021. 10. 29.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