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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7장 38절 (신체 포기 각서) 211019a-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7장 38절 (신체 포기 각서) 211019a-이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 누가복음 7장 36절에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라고 되어있지요.

이 본문에서 핵심은 어디 있느냐 하면은 여기에 있어요. 뭐냐 하면은 이 여인의 사정과 형편이 온 동네에 다 알고 있다. 이 여인이 어느 정도로 악하냐 하는 것은 그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는 거에요. 거기에 비해서 바리새인들과 우리 일반인들은 사적인 사정이 감추어져있다. 감추어져있는 거에요. 자기 개인 사정이 남에게 들키지 않는 사람은 함부로 이 여인에 대해서 말 할 자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셔요. 이 여인이 그 동네에서 얼마나 악한 여인인 것을 다 아셔요. 이 여인의 사정이 그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것을 다 알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여인의 하는 것과 예수님이 하는 일, 복음 전파의 일에 이 여인이 딱 적합한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여인의 사정을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중심부’.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것.

그러면 자기 사람의 사정이 감추어져 있는 대부분의 모든 사람이죠. 뭐 안 들킬려고 난리를 하잖아요. 난리도 아주 부르스를 춰요. 안 들킬려고. 누가 이야기하면 원수지간 돼요. 네가 누구한테 이야기했어? 응? 네가 날 알아?! 막 이렇게 행패부리잖아요. 자기 사정을 꼬깃꼬깃 고이 감추고 평생을 두고도 감추고 계속 감추는 이 사람들을 저는 ‘주변부’라고 하겠습니다.

중심은 중심이라는 말은 뭐냐? 예수님의 하실 일의 그 취지와 가장 근접해있는 사람은 중심부에 있지요.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은 중심부에 있고 예수님하고 저 멀리 떨어진 쪽은 뭐냐 하면은 주변부가 되는 겁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 하면은 예수님과 가까이 있는 이 여인을 함으로서 이 여인은 예수님이 벌리시는 말씀의 현장이 돼요. 말씀의 현장. 말씀이 실제로 적용되는 현장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주변부에 있는 인간들은 자기 현장밖에 없어요. ‘자기 현장’. 이것은 내 영역이고 내 영역만 안 들키고 챙기고 추스르면 무탈하다. 아무 탈 없다. 남한테 계속해서 잘난 체할 수 있다. 나에게 여전히 내가 희망을 가져도 된다. 그런 식으로 자기 인생을 그런 식으로 계속 유지할려고 한다. 이게 주변부에요.

그런데 이 말씀의 현장에서 이 주변부들이 말씀의 현장에 있는 여인을 볼 때 어떻게 여인을 보느냐 하면은 악하다고 했어요. 악하다. 악하다는 말이 뭐냐? 참 안됐다. 참 불쌍하다. 가련하다. 또는 더 하면 못됐다 뭐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지요. 어쨌든 간에 이 여인의 취지가 내가 저 여인의 취지만큼 안 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천만다행.

구경꾼으로 주변부에 있으면서 지금 주체 파악을 못하고 있는 거에요. 주님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을 참 안됐다 불쌍하다 생각하는 거에요. 왜? 안 들켰으니까. 저 여자는 다 들켰으니까. 나는 안 들켰으니까 얼마나 다행스러우냐는 거에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 드라마에 한 컷 나오고 드라마 시작하자마자 초반에 죽어가지고 그 다음에 안 나오는 사람들 있잖아요. 초반에 나오자마자 10분 내에 죽어가지고 안 나오는 사람들. 그 사람이 드라마 내내 계속 주연하는 사람보고 참 안됐다. 불쌍하다. 혀를 차면서 끌끌끌 뭐 이럽니까? 안 그렇지요. 부러워죽겠다.

나는 언제 편당 1억 받지. 이런 식으로 하지요. 한 회에 나오면 1억씩 받고 나중에 16회 나오면 16억 받고 그 정도 초주연급 있잖아요. 초주연급. 그 사람이 계속 카메라 앞에 주연할 때 그걸 굉장히 측은하게 봅니까? 상당히 슬프게 봐요? 그렇지 않지요. 부럽지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 악한 여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향수를 예수님께 뿌리는걸 보고 그 악한여인과 자기의 입장을 연결 짓는데 내 입장에서 그 여자를 보는 거에요. 그 온 동네에 여자가 악하다는 것이 소문났기 때문에. 그러나 예수님께서 정작 필요한 사람은 악한 사람이 아니고 온 동네가 악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 필요한 거에요. 온 동네가.

온 동네가 다 악하니까 더 이상 그 여인은 이 여인은 손해 볼 게 없지요. 들통 다 났으니까. 전혀 손해 볼 게 없지요. 감출 게 없으니까 공포스럽지 않지요. 숨길 게 없으니까 두렵지 않지요. 까놓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까놓고 하는 거. 누구처럼.

지금 이 여인이 홀로 있는 게 아니에요. 여인이 중심부에 있다는 것은 여인의 죄가 진짜 칭찬할 만하다 그게 아니라 여기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사용하고 있다는 그 점이 중심부에 들어가 설 수 있는 그 조건이 된 거에요. 이 여인이. 온 오고 오는 모든 성도들에게 이 여인의 모습을 봐라 라고 주님께서 자랑할 만한 대상이 된 겁니다. 이 여인이. 그 뜻은 이 여인의 사정과 형편이 온 동네에 다 이미 들통 났기 때문에 다 알려졌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면 이런 사람들은 주변부 이런 사람들은 바리새인도 마찬가지고요 제자들도 마찬가지고 이런 사람들은 주님을 드러내는데 미흡한 거에요. 이런 사람과 관계해가지고는 제대로 주님이 주님 되심을 드러낼 수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이 여인의 사정과 형편이 온 동네 다 드러났기 때문에 이 여인은 거의 100% 주님의 일이 고스란히 그대로 노출되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이 주변의 인간들은 감추는 것이 왜 그리 많은지 뭐 감추고 있는 것들이 많아 가지고 그들에게 내보이는 것은 전부 자신의 위신과 자신의 의로움과 정당성과 체면 이런 잡것들이 욕하는 거 아니에요. 옳지 않은 것들이 하늘나라 받지도 않는 것들을 마치 복음인 냥 내놓게 돼요.

집에 쌀이 있는데 쌀에 모래를 집어넣은 것과 똑같은 거에요. 쌀의 가치가 죽지요. 모래의 가치가 더 강하니까. 나 이정도로 예수 잘 믿어. 이 정도로 하나님 잘 믿어 이런 소리가 나온다는 것은 자기 속에 따로 챙기고 있는 게 있다는 거에요. 꼬불치고 있는 게 있는 거에요. 뭔가.

그게 들키기 싫어서 나 교회 50년 다녔어. 나 목사야. 나 장로야 이러고 있어요. 뭔가 켕기는 게 있어요. 그걸 감추는 용도로 자기 의를 내세우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목사인데 이렇게 심방을 가게 되면 교인들이 심방을 오는 것을 안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요. 겉으로는 모르고 속으로 제가 내놓을만한 실적이 있을 때 오세요. 실적.

애가 공부를 잘한다든지 갑자기 뭐 집을 새로 인테리어를 했다든지 잘난 게 있을 때 그때 심방 오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믿음이 좋아졌다든지 이런 거요. 내세울게 있을 때 심방오라는 거에요. 이게 주변부에요. 주변부. 이거는 뭐 주님 생각 안하고 자기 과시, 자기 위신, 주님 앞에 자기 체면 자랑하는 것밖에 더 됩니까. 안되지요.

그냥 그런 거 따지지 마시고요 그냥 찾아갈께요. 이렇게 되게 되면 그들이 대부분 교인들이 거부합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은 그 교인들이 노는 교인들도 있지만 일하는 성도들은 어떻느냐 하면은 하루일과가 파절임 김치 알지요? 파절임 김치. 쭉 절여져버리면 사람이 퇴근하게 되면 중력에 의해서 완전히 바닥에 깔린다고 축 쳐져요. 축 쳐져버린다고요.

얼마나 피곤한지 손가락 까닥할 말 할 기운도 안나요. 말 할 기운도.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복음이고 뭐고 다 귀찮아. 다 귀찮아. 메시지 보내고 답변도 하기 다 귀찮아. 오늘 하루 일과가 힘들어 죽겠어. 힘들어 죽겠어. 자기 몸도 자기가 하나 건사 못하는 거에요. 생업이라는 게 그래요. 내가 이러다 죽겠다. 내가 지금 사는 건지 죽는 건지 내가 죽을라고 일하는 건지 살라고 일하는 건지 분간이 안돼요. 그 정도로 푹 쳐져있어요.

그런데 이참에 훅 목사가 들어온다. 신앙이 개코 신앙이 어딨어 신앙이. 짜증나 죽는데요. 신앙이 어디 있어요. 개인 사정이 개인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금방 다 들킨 거에요. 들켜버린 거에요. 이러면 내 실적, 내 자랑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게 돼요. 사정이 옴팡 다 드러났으니까요. 내가 정신차려가지고 뭐 성경이나 좀 읽고 딱 들어오실 때 성경 공부하는 티 나고 달달 외우고 뭐 이런 거 좀 해줘야 하는데 그냥 턱~.

나 못 일어날 거 같애. 오늘부로 내가 죽을 거 같애. 내 인생 그럴싸하게 산 어떤 흔적도 없이. 인간의 삶이란 것은 하루하루가 그렇습니다. 두 가지를 못하잖아요. 이제 은퇴해서 시간은 남아돌지 할 거 없지 그때는 복음이나 듣지. 지금은 힘든데 복음 들어오지도 않아. 아무것도 기억 안나요. 아무것도. 뭘 했는지 몰라요.

이 여인한테는 이 여인은 주님과 함께 함으로서 더 이상 상처받을 일이 없습니다. 이 여인은. 더 이상 상처받을. 소문났는데 뭐 상처받을 게 있어요. 내 배 째라는데 무슨 상처가 있겠어요. 그러나 여기 그걸 비난하는 이 바리새인들은 그들은 상처받을 게 가득 남아있습니다. 화날 게 남아 있고 분노할 게 남아있고. 원망할 게 남아있고 짜증날 게 남아있어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말씀의 현장에 예수님과 여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바리새인도 가담이 되야 이게 삼인이 한 조가 될 때 이게 말씀의 현장이라는 사실이에요. 바리새인이 빠지면 안돼요. 바리새인이 들어가야 돼요. 바리새인이 꼭 여기서 참관인으로 관람자로 들어가야 돼요. 그러니까 여인을 보고 욕을 해야 되고 예수님 보고 이들이 욕을 해야 돼요.

그 예수님의 거룩하고 예수님이 하늘에서 오신 분이라는데 저 여인의 그 더러운 율법에 위반된 더러운 여인의 행위에 대해서 바리새인들이 뭐 필요하겠어요. 예수님은 자기한테 껌뻑 죽으니까 그 여자가 괜찮은 여자인 줄 압니까.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은요 이걸 알아야 돼요. 왜 바리새인을 집어넣었는가.

바리새인의 말은 이게 맞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리새인이 여인 보고 39절에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이렇게 나오는데 바리새인들 말이 맞아요. 바리새인이 보기에 그 여인의 소문과 여인의 악행에 대해서 예수님은 분명히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바리새인 말이 맞습니다.

바리새인 하니까 무조건 나쁜 생각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뭐냐 하면은 바리새인은 이 여인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어요. 어느 정도로 알고 있느냐 하면은 우리가 상상하는 악함을 초과하는 여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 하면은 바리새인은 자기를 뭘로 보느냐 하면은 바리새인이 스승이거든요. 스승. 요즘말로 하면 목사 아닙니까. 목사에요. 목사.

목사들의 특징은 뭐냐 하면은 어떤 교인이나 성도에 대해서 본인이 나서서 교화할려고 합니다. 교화할려고 해요. 본인이. 왜? 이게 내가 받은 사명이기 때문에. 교화해버리면 여기서 무슨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은 심리학적으로 가스 라이팅이라고 하는데 효과가 있어요. 가스 라이팅. 우리 말로 가스등 맞지요? 가스등.

가스 라이트라는 영화 1944년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인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에 나오는 그 내용에 나오는 그 줄거리를 대충 제가 그 영화를 봤으니까요. 한 두 시간 가까이 되는데 대충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주인공 여자가 주인공 이름이 폴라인데요. 폴라라는 여자가 일찍이 어머니 돌아가시고 유명 성악가인 이모 밑에서 딸처럼 살았는데 이모는 유명 성악가라서 주변에서 많은 후원이 있었습니다.

이게 영국의 런던 이야기거든요. 프랑스 유명한 보석, 왕실에 있는 보석을 그 소프라노 노래 잘하니까 반해서 어떤 사람이 이 귀한 것을 선물로 줬어요. 주고나니까 이 보석이 그 집에 있긴 있는데 어디 있는지 몰랐단 말이죠. 그런데 여기에 그레고리라는 악한 인간이 남자가 이 이모를 죽였어요.

목 졸라 죽이고 보석을 찾다가 실패하고 그 조카인 딸처럼 키운 폴라가 나중에 크니까 폴라가 있으니까 그 폴라하고 접근해가지고 사랑을 핑계로 혼인을 하면서 이 폴라를 자기가 결혼한 아내를 정신병자로 몰아갑니다. 갑자기 가방에다가 뭘 해놓고 자기가 넣어놓고 자기 빼놓고 “내가 준거 내놔라.” “몰라.” “너 건망증 걸렸다.”

그 다음에 이렇게 지붕에 자기가 왔다 갔다 하면서 밤중에 소리 들린다. 너 정신병자다. 그 다음에 가스불 올렸다가 내렸다가 올렸다가 내렸다가 조절하는 거에요. 인간의 심리를 조절하듯이 가스불이 자꾸 올랐다 내렸다 네가 이상해. 여기 아무도 없는데 네가 했잖아. 자꾸 정신병해가지고 폴라를 자기 아내를 다른데 보내고 그 집을 뒤져 보물을 찾고자 시도했던 그 내용이에요. 그 내용인데 그 형사가 그걸 알고 나중에 이 사람을 체포하고 여자에게 당신은 정신병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그 대목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예수님한테 껌뻑 빠졌을 때에 바리새인 입장에서는 뭐냐 하면은 예수님이 하는 일이 사람을 교화시키고 천국 보내는 사람으로서 랍비로서 이해할 때에 여자가 왔는데 그 바리새인 보기에 예수라는 그 랍비는 그 여자 교화하는데 거기에 정신 팔려가지고 이 여자가 교화될 가치도 없고 그러한 자격도 안 되고 그런 마음이 없다는 것을 예수님이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이 바리새인들이.

왜냐하면 여자의 악행은 이미 바리새인들도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악이 너무 많이 때문에 그런 거에요. 여자가 악을 조금 지웠으면 바리새인이 나서서 “당신 하나님의 사람이 그러면 되겠어?” “아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충분히 될 수도 있는데 이 여인은 이미 소문났어요. 소문났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이 여자의 악행에 대해서 돌이킬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는 걸로 이미 확정이 나버린 겁니다.

가스 라이팅 효과라고 하는 것은 목사가 자기가 교화할 목적으로 그쪽의 정신을 가지고 쥐었다 풀었다 쥐었다 풀었다 하는 거에요. 그러면 이 교인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나는 너한테 교화받기 싫어. 나는 주님한테 직접 교화받고 싶어. 나는 새 사람 되고 싶어. 이렇게 나올 게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그런데 만약에 어느 교인이 어느 성도가 그렇게 나온다면 이 성도 또한 이게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가 돼요. 이 성도 또한.

뭐냐 하면은 내가 지금은 악하지만 나중에 예수님 만나서 또는 내가 성경 말씀 내가 새 사람 되겠다 하는 이런 마음 자체는 이런 것은요 전혀 지금 여기에 오늘 본문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악하다고 소문난 그 여자의 자리에 들어설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악하지만 선하게 되겠다는 것은 어디에 속하느냐 하면은 주변부에 속해요. 이게. 자기한테 희망을 가졌기 때문에.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 여인이 자기한테 희망을 가질 필요가 없음을 본인이 알고 있다는 거에요. 누구 좀 나를 교화시켜주시면 하나님이든 예수님이든 누구든 교화시켜주면 제가 향수고 뭐고 모든 걸 다 드리겠습니다 라고 나온다면 그 사람은 지금 이 여인하고 관계없어요. 그 사람은 바리새인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어떤 목사가 교인한테 다가서가지고 우리 다 죄인입니다 이렇게 시작하거든요. 우리 다 죄인입니다. 그러나 똑똑한 여자 성도가 뭐라고 하겠어요. 당신은 목사이기 때문에 나도 죄인이고 당신도 죄인입니다 하고 다가서는데 당신은 지금 무슨 수작을 하느냐 하면은 나는 죄인입니다 라는 말함으로서 나는 잃을 것 없는 의인이 된 거에요.

나 죄인이고 당신 죄인이니까 우리 죄인끼리 만납시다 할 때에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가만히 생각해봐야 돼요. 여자 쪽에서 혼자 패 다 깠어. 저쪽에서는 패를 감추고 있는데. 자기는 자기 가정 뭐 다 손톱만큼도 손해 안 보고 이쪽만 다 손해 보는 거에요. 이쪽만. 이거는 불공정 게임인데. 기울어진 운동장. 기울어진 운동장.

혼자 실컷 해놓고 난 병든 영혼 하나 구원했다. 이게 뭐에요. 이게. 이게 바리새인 체면 아닙니까. 위신. 난 목사 값했다 이 말 아닙니까. 결국은 이게 가스 라이팅 효과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심리적 효과. 심리적. 심리하고 하는 것은 인간의 철학에서 나왔지요. 철학의 모든 것은 뭐냐? 바리새인적입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개선된 나를 찾겠다는 것은 그걸 또 도와주겠다는 목사나 그런 혜택을 입겠다고 나 당신 말고 예수님에게 직접 교화받겠다는 그 인간이나 모조리 다 지금 여인과 예수님 사이에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잘 되겠다는 것. 그럼 이 여인의 위치는 뭐냐?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은 여인의 죄 사함은 여인에서 예수님 쪽으로 이동하는 겁니다. 이동. 이것 놓치면 완전히 다 놓친 거에요.

죄 사함의 원형은 여자가 아니고 예수님이에요. 예수님. 예수님이 죄에 퐁당! 퐁듀. 스위스 요리 있지요. 푹 소스에 푹 담갔다가 나오는 원형은 여인이 아니고 예수님 본인이 최초입니다. 죄 속에 들어갔다가 죄에서 벗어난 것은 아버지의 은혜로 아버지의 성령의 능력으로 사흘 만에 죄에서 벗어난 거에요. 죄 지은 것도 없지만 죄의 권세에서 부활의 권세로 나온 거에요.

그러면 이 여인은 뭐냐 하면은 예수님의 원형인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앞당겨 보여주는 거에요. 예수님의 십자가는요 예수님 어느 것도 다시 용서받을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의 가장 깊은 곳에 갔기 때문에 아버지의 영이 아니면 아버지의 약속이 아니면 예수님 스스로 몸부림친다고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따라서 이 여인은 좋은 스승 만나면 나도 개과천선해가지고 천국갈 수 있다 지금 이런 여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바리새인이 그걸 알고 있어요. 어지간한 여인 같으면 이쪽에서 다 나서서 무상으로 교화해줬어요. 교육해주고. 당신은 양심은 아직까지 깨끗합니다. 이래가지고 입바른 소리해가면서 잘 구슬려가지고 충실한 율법에 따르도록 바리새인 자기를 스승으로 따르도록 그렇게 가스 라이팅 분명히 했을 거에요. 쥐었다 폈다 쥐었다 폈다.

인간들 정신 가지고 갖고 놀고 이렇게 하면서 자기 원하는 걸 챙겼을 거에요. 그렇게 해서 바리새인은 자기의 의와 역시 나는 하나님 사자, 하나님의 종 맞아, 이렇게 했을 거에요. 그거 전혀 없습니다. 왜냐? 그 근거가 어디 있느냐? 이미 소문났기 때문에. 이미 소문나서 손도 못 댑니다. 뭐 여자 남자만 밝혔다. 창녀다 이 정도 죄도 아니에요 이거는.

그 당시 사람들이 혀를 두를 정도로의 죄라고 보면 돼요. 왜? 일말의 저 여자가 죄 용서받는다는 것은 이것은 창세 이후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전적인 죄인이에요. 예수님이 여자의 죄를 용서했다 죄 사함을 했다 이 말은 여자가 죄 사함 받은 게 초점이 아니고요. 주님 쪽에 보물이 있다는 것을 죄 사함이라는 그 껍데기를 벗겨볼 때 손도 못 대는 그런 지독한 죄 안에 인간들이 상상도 못하는 보물이 그 안에 들어있는 거에요. 보물이.

보석이 보석함에 들어있는 게 아니고 보석이 인간이 감히 아이고~ 나 안 해! 다가서기도 겁내는 그러한 죄 속에만 하나님이 숨겨놓은 보물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똑똑하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이 바리새인들이 감히 그 여자를 어떻게 해볼 생각 없고 다만 우리도 손도 못 댄 것을 예수님이 이렇게 그 여자와 상대해주니까 예수여 당신은 그 여자를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한참을 모릅니다. 이렇게 하겠지요.

그것을 왜 주님께서는 이 여인을 이렇게 사용하시는가.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누가복음 7장 41절에 한 단어 쓰겠어요. 예수님께서 왜 이 여인을 상대하느냐? 한 단어가 나옵니다. ‘빚’. 빚졌다 라는 이야기에요. 이 단어는 바리새인 세계에서 인간 세계에서 빚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있을 수가 없어요.

인간이 하나님께 빚졌다는 그러한 발상은요 나올 수 없습니다. 빚이란 인간 대 인간의 문제에요. 하나님 관여할 문제 아니에요. 왜냐하면 하나님 너무나 절대자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빚을 지우고 인간에게 빚이 져있고 하나님 인간에게 빚 달라고 독촉하고 그런 생각은 이것은 인간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어요. 하나님 상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빚졌다.

세상에 인간이 인간에게 빚을 져도 못 갚는 게 허다한데 하나님이 요구하는 레벨, 수준 그 빚을 언제 갚아요. 갚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빚을 갚는다는 것은 이것은 예상도 못하고 생각할 수가 없지요. 또 얼마나 착해야 그 빚을 갚겠어요. 안되잖아요. 그 안 된다는 그 취지를 바로 그 동네에 이미 개인적 사정이 다 까발려진 거에요.

아까 그 개인적 사정이 다 노출됐다는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인지 몰라요. 이거부터 들어가야 돼요. 왜냐? 모든 사람들은 꼬깃꼬깃 자기 비밀을 간직하고 살잖아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온전히 예수님께 자기를 내놓을 수가 없는 거에요. 헌신한 척이나 하고 헌금하고 전도하고 선교하는 척 하고 봉사하지만 결국은 마지막은 뭐냐 하면은 이 여인처럼 되기는 싫은 거에요. 이 여인처럼.

그럼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인간에게 빚이 있다면 결국 모든 인간은 이 여인처럼 그들의 개인 사정은 하나님이 이미 다 알고계시는 문제입니다. 여인의 자리에 들어서지 않는 네가 바로 네가 기회를 놓치는 거에요. 그게. 손도 못 댈 정도로 악한 어느 누구도 저 사람 인간 만들기 텄다 하는 그 자리가 반갑다 친구야 하고 우리 자신의 자리여야 돼요. 내가 내 식대로 내가 어떻게 손 쓸 수가 없는 그게 진짜 내 본 모습인 것을 여인을 통해서 알아야 돼요.

우리는 자꾸 여기서 여인이 죄 사함 받았고 용서됐다 하는데 죄 사함은 여인에 있지 않고 여인에서 어디로 이동했다 했습니까? 주님에게로 이동해서 주님에게 이동해가지고 주님한테 이동해서 다시 여인에게 와야 돼요. 뭐 요령부리고 “예수 믿습니다.” 하면 죄 용서받을 줄 알아요? 그런 식은 없어요. 막 인간이 통밥 굴리는 거에요. “나는 죄인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 땅에 용서하러 왔다.”

그래?!고뤠?! 예수님한테 잘 보여가지고 집에 향수 있는데 뿌려드릴까요? 울면서 내 죄가 너무 많아요. 흑흑흑 하면서 뿌리면 그래 네 죄가 사함 받았다. 어디 이런 통밥을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합니까. 그 짓거리는 바리새인들이나 하라고 하세요.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금식하고 금식할 때 왜 했습니까? 얼마나 바리새인들이 자기 회개합니까. 회개 왜 했어요? 좋은 실적 얻겠다고. 좋은 결과 얻겠다고.

그 결과가 뭡니까? 역시 나는 잘 되야 마땅해. 그거잖아요. 나는 무조건 잘돼야 돼. 그런데 그런 생각이 여인에게는 없다 이 말이죠. 주여 빼가세요. 주여 나의 손댈 수 없을 정도로 불가능한 이 죄 담당을 그냥 빚이라 여기시고 빼가세요. 저는 주님 앞에 빚 갚을 재주나 능력은 저한테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미리 정했습니다. 이건 안 바뀌고 싶어요. 제목을 6자. 제목은 ‘신체포기각서’.

가져가세요. 향수라는 것은 제일 비싼 거에요. 제일 값있는 거에요. 자기의 삶의 목표였어요. 내가 이것 때문에 삽니다를 계속해서 모아놓은 게 향수에요. 그걸 주님 앞에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그냥 허비했죠. 낭비했어요. 그냥 낭비한 거에요. 그러니까 얇은 그 유리병에 향수가 있다고 한다면 그게 얼마나 아슬아슬한 상황입니까. 툭 건드리면 깨지고 다 쏟아지거든요.

그 얇은 유리병 안에 향수 있는데 그 여인이 향수의 밑바닥을 그냥 깨트려버린 거에요. 깨트려 버리면 병 안의 향수가 밑으로 다 빠져나가겠지요. 그러면 여기서 나의 희망과 나의 애씀과 나의 기대 이것도 어떻게 됩니까? 다 땅으로 다 허비한 겁니다. 그걸 보고 바리새인들이 다 화가 난 거에요. 저 비싼 것을 저렇게 허비하다니 이렇게 되있거든요. 예수님한테 한 것을 허비한 걸로 본 거에요.

이거는 뭐냐? 바리새인들이 철저하게 무얼 생각하느냐 하면은 이익과 손실을 생각하는 겁니다. 내가 당신에게 주게 되면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이게 바리새인이에요. 손해 볼 수 없잖아. 항상 어떤 경우에도 손해 볼 수 없다. 손해 볼 수 없잖아. 철칙이죠. 삶의 철칙이에요. 제가 다시 이야기합니다. 이 말씀의 현장에서 여인이 어떻게 죄 용서받는가는 핵심이 아니고 그거는 전혀 정답이 아니고요. 말씀이 얼마나 이 세상을 이 곳을 현장화시키느냐가 핵심이에요. 말씀이.

여기에 죄인 있고 예수님이 있고 또 하나 있어야 돼요. 여기 누가 끼어들어야 됩니까? 바리새인이 꼭 끼어들어야 돼요. 바리새인이. 왜냐 하면은 우리는 바리새인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래요. 내 사정이 온 동네방네 다 알려지는 것 차라리 우리는 자살해버리지 그거 참을 수가 없어요. 얼레리 꼴레리 하면 그 다음부터는 다 죽어버려요.

검찰청 가서 얼굴 가지고 목소리 변조하고 이렇게 하면 이제 죽을 계획만 하고 있는 거에요. 어느 산에 가서 죽느냐 이거에요. 우사스러우니까. 우사스럽다는 말은 나는 우사스러우면 남에게 공개적으로 우사스러우면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계속 자기가 지키고 있는 거에요. 그걸 버티고 있는 거에요. 그걸 버티는 자가 이 말씀의 현장에서 뭐가 돼요? 하나의 관람객으로 참여가 되어있어야 돼요.

왜? 예수님에게 적이 필요하니까. 예수님에게 적이 필요하거든요. 예수님에게 십자가의 원수가 필요해요. 그 원수가 딴 게 뭐 있어요. 손해 볼 수 없잖아요. 손해 볼 수 없잖아. 내가 주님한테 하게 되면 주님 나한테 뭐 줄 겁니까? 이 정신이 바로 바리새인 정신이에요.

우린 알아요. 예수님을 죽인 자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것만 알면 안 되고 죄 있는 여인을 죽인 자도 살인자 된다는 사실을요. 바리새인을 죽인 자는 살인자가 안돼요. 그렇게 되어버리면 하나님이 살인자가 되어버려요. 하나님이 율법 위반자가 된다고요. 율법의 차원에서는 예수님 죽인 자만이 살인자가 돼요. 동시에.

예수님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이 여인을 죽인 자, 바로 형제를 죽인 자가 살인자가 되는 겁니다. 살인자의 새로운 규정이 생겨버린 거에요. 예수님과 함께 한 자를 건드리는 것은 곧 나를 건드린 것이다. 하나님을 건드린 거에요. 그렇게 하면 딱 끝나는데 예수님과 함께 있는 자? 나보고 하는 이야기네. 우리는 막 이러고 싶어요.

그러면 제가 묻지요. 왜 그러고 싶습니까? 구원받기 위해서 이렇게 하거든요. 구원받기 위해서 그게 바리새인인 거에요. 아직도 자기한테 희망을 걸고 있는 거에요. 내가 여인처럼 내 모든 것을 버리면 내가 주님 앞에 주면 주님 나한테 뭐 해 줄 겁니까? 이렇게 나오는 거에요. 이게 바로 바리새인의 사고방식에 딱 합치된 거죠. 더도 덜도 아니고 딱 맞는 거에요.

그래서 향수를 주님께 했다는 이것을 저는 이 단어로 표현할게요. ‘상실’. ‘잃어버린 것’. 여인은 자기 힘으로 구원이 안 되는 것을 알아요. 자기가 개과천선 안 되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이 여인이 찾고 있는 사람은 뭐냐? 나를 상실해도 되는 나를 그 분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내가 나로 있을 이유가 없음을 결정되는 그런 순간을 기다렸던 거에요. 예수님을 제대로 안 거에요.

예수님이 대신 나를 대신한다는 그 대신이라는 의미를 여인은 미리 알게 된 겁니다. 어떻게 알게 됐느냐? 그건 주님 소관이니까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여인은 나를 대신하는 분이에요. 대신하는 분에 더 이상 내가 나를 유지할 필요 조차도 없는 겁니다. 따라서 내가 내 죄가 세상만사에 공개적으로 웃음거리가 되고 놀림거리가 된다고 할지라도 나랑 아무 상관이 없는 이야기에요. 이 정도 여러분 실력 되십니까? 이게 실력에 관한 문제가 아니에요.

반면에 관람객 바리새인들은 자기를 상실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자기를 갖고 놉니다. 자기가 자기 가지고 장난치고 있어요. 내 인생 내 것이고 내 몸 내 것인데 내가 장난 좀 치면 어때? 맨날 이런 식이에요. 집에 화초가 있는데 아침마다 물 줍니다. 물 줄 때 이거는 주인이 그 화초보고 내가 물을 줄 테니까 맛있게 마셔라 하거든요.

그런데 정작 마시는 그 화초는 기분 나쁘고 주인이 내가 아니고 자기가 주인이면서 지 맘대로 키우는 거에요. 나의 신체, 나의 인생을 이게 내 것이라고 여기고 이 내 것이 내 것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내 것 가지고 뭐냐 하면은 예수님 찾다가 부처 찾다가 교회 봉사했다가 어디까지나 내 것이니까 내 맘대로 내가 해가지고 썩 내 마음에 드는 내 것 만들겠다는데 그게 뭐가 잘못이냐. 여기 손실과 이익을 계산하는 거에요.

주님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어? 이러고 있단 말이죠. 그래서 이것을 간단하게 표현하면 나는 나를 평생 장난감으로 여긴다. 평생 장난감으로 여긴다. 이게 바리새인입니다. 이게 주변부에 그 예수님과 여인이 있는 중심부의 둘러쳐있는 거에요. 관람객으로 쭉 있는 거에요. 있으면 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과 여인을 보고 뭐 참회하고 회개하고 하겠습니까?

그걸 보고 참회하고 회개하고 이런 거 없어요. 욕만 하죠. 뭐라고 욕하느냐?? 바리새인처럼 욕해요. 저 여자는 죄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 것을 예수님이 잘 모르시는 모양이야. 악해도 너무 악하기 때문에. 저런 여자를 용서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위신과 체면에 손상이 갈 텐데. 어떻게 예수님께서 아무리 교인 하나가 아쉽더라도 저런 여인을 받느냐. 저 여인이 향수 하나 얻기 위해서 무슨 짓을 했는지를 주님 알아요?! 주님 저 여자의 과거를 제대로 알아요?!

주님 뭐라고 하는 줄 압니까? 너는 네 과거를 알아? 이렇게 나와요. 우리는 우리 죄가 우리의 생각의 한도를 초과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자신은 모르고 있는 거에요. 우리가 몇 단계 거처 버리면 우리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는 거에요. 그저 코앞에 있는 나의 이익과 손실 그것만 자꾸 염두에 두지 우리는 우리 죄를 미처 모르면서 남의 인생이라고 그렇게 나쁘게 평가하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은 그래야 내 장난감이 얼추 손해 안 봤다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하나 예를 들게 되면 서울에 주로 못 사는 동네 주로 골짜기 산중턱이 많거든요. 산중턱에 집을 해질 때 되면 노을이 훤하게 보이는 집 알지요? 앞에 가리는 게 없이. 이런 집에 그야말로 피난촌 임시로 지은 집 같은. 사람 손으로 지어도 일주일 만에 다 짓는 집 있잖아요. 전문가 아니더라도. 그런 집.

밑에 집들 있는데 떨어져있어. 따라오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버스는 여기까지 오고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올라가야 돼. 여기에 아빠 50대 초반, 엄마 40대 중반, 딸 중학생 12살짜리 있다면 여러분 이게 얼마나 행복해 보입니까? 참 이게 행복해 보이겠죠? 행복해 보인다, 보인다는 말을 했어요. 그런데 막상 이 집에 들어가 살아보세요.

물도 이 밑에 가서 수돗물 들고 와야 되지요. 애는 중학생은 학교 마치고 여기서부터 헥헥 버스 내려가지고 헥헥헥 거리면서 와야 되고 여름 되면 땀 다 젖지요. 겨울 되면 찬바람 다 맞지요. 좋은 것은 아침에 해 뜰 때하고 해 질 때 노을 아름답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이익 되는 거 없어요. 빨리 아빠 우리 돈 벌어서 밑에 있는 여기 주택에 들어가 살아. 이게 소원일 거에요.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은 나보다 더 죄 있어 보이고 나 보다 더 못 살아 보일 때 그 쪽에는 어떤 행복이 없을 거라고 여기잖아요. 거기는. 행복이 없다고 여기는 그 자체가 내가 생각하는 내 죄 한도를 넘어선 거에요. 내가. 나쁜 짓해서 죄가 아니라 생각하는 기준, 삶의 기준, 그 기준이 하나님 보시기에 모자라면 그것은 함부로 남들을 정죄한 죄가 되고 이것은 하나님께 뭐가 되느냐 하면은 빚진 자가 되어버려요. 빚진 자. 주님 앞에 빚진 자가 된다고요. 빚을 지고 있다고요.

이거는 예수님이 이야기 안 하면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왔으니까 알려주는 거에요. 너희들은 남들하고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행복하면 뭐 인생 잘 살았다고 고개 끄덕이면서 자기를 갖고 노는데, 정작 시선은 뭐냐 하면은 이 바리새인 말고 예수님이 보는 시선과 그리고 예수님께 모든 것을 상실해버리면서 그게 너무 감격스러워서 우는 그 여인의 안목은 우리한테 없다면, 우리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우리는 엄청난 죄인입니다.

10분 쉬어야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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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9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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