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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서울의존강의20211014a 베드로후서1장 4절(문제없음)-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베드로후서

서울의존강의20211014a 베드로후서1장 4절(문제없음)-이 근호 목사

베드로후서 1장 4절-8절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여기에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라고 하는 그것은 우리 주님의 일방적인 주장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번 써볼게요. 주님의 일방적인 주장이라 하는 것은 이렇게 보시면 간편합니다. 천국과 지옥이 통하는 통로를 한쪽에서 파들어가는 거예요, 한쪽에서.

보통 터널 공사할 때는 양쪽에서 파들어가잖아요. 그런데 베드로 이야기는 뭐냐 하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너희에게 준 약속으로 인하여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4절에. “지극히 큰 약속”으로 말미암아 이 약속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 움직이는 거예요. 움직여서 천국과 이 세상이 막혀있는 것을, 터널을 뚫는 겁니다. 땅굴 파듯이 파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 입장에서는 ‘내가 너희들에게 접근해간다’ 이렇게 되어 있지만 땅에서는, 인간 쪽에서 접근하는 이런 것은 일체 하나님께서 안 받으니까 하나님께서 다가오고 접근한다는 낌새를 차리지 못하는 거예요, 인간 쪽에서. 인간은 본인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런 결과가 안 나온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파고 들어갈 때, 약속이라 했잖아요. 이걸 알기 쉽게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약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거예요. 약속의 내용이 뭐냐 하면 ‘아무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 이게 약속입니다. 왜냐하면 약속은 하나님 쪽에서 들이미는 것이기 때문에 이 약속의 내용에 대해서 하나님 쪽에서는 이미 문제없음이 드러난 거예요. 하자 없음이 드러난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성도라 치고 약속이 여러분들에게 도달되게 되면 여러분들은 느낄 때 ‘아무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 앞에다가 이걸 하나 추가하면 돼요, ‘(나는)’. 나는 아무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 이거 놀라운 배짱 아니에요, 이거? 배짱 또는 이걸 사자성어로 내 배 째라. 내가 뭘 하게 되면 이것은 하자덩어리에요. 문제덩어리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이 마르다 집에 오는 것과 마르다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쌍방 간에 그 의도한 바가 달랐어요. 예수님은 아무 문제없는 걸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마르다, 마리아는 자기 집에 문제 생겼다는 거예요. 멀쩡한 오빠가 죽었다는 거예요. 이게 문젯거리가 되고 문제된다고 본 거예요.

그런데 거기서 주님께서는 “너희 오빠 죽었잖아.” “예.” 죽었으니까 마리아는 “아프다가 죽었으니까 걱정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해요. “그게 문제가 되냐?” 오히려 반문하죠. “그게 왜 문제가 돼?” “아니, 오빠가 있다가 없으니까 문제가 되잖아요.” 이게 이제 마르다, 마리아의 주장이고 주님은 “내가 있잖아. 내가 있는데 그게 왜 문젯거리가 돼?” 그게 왜 문젯거리가 되느냐 이 말이에요.

마르다는 오빠 죽었다고 울고, 예수님은 문젯거리도 아닌데 문젯거리라고 우기면서 우는 것보고 우시고. 그걸 가지고 사고가 안 맞다. 생각이 서로 사맛디 아니할 새. 오늘 문자 막 나옵니다. “뭐가 문젠데?” “오빠가 죽었잖아요.” “그래서 뭐?” 중요한 것은 그 오빠를 내가 죽였다는 사실이란 말이에요. “내가 네 오빠 죽였어. 이래도 문제 되냐?”

“예수님이 죽이든 살리든 간에 멀쩡한 오빠가 죽었으니까 문제 되잖아요.” 예수님은 “그럼 나는 뭐고? 너네 집구석에서 나는 뭐야, 그러면? 네 오빠나 건강하게 해주는 시다바리가?” 여기서 시다바리라고 하는 것은 허드렛일 하는 일꾼을 말합니다. 내가 네 시다바리가? 마르다, 마리아 너는 나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라.

이것은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말씀인데 이게 누구보고 하는 이야기겠어요? 오늘날 우리보고 하는 이야기에요. 아무 문제없어요. 아휴, 내가 죄를 지었고... 그 죄 내가 짓게 했는데? 몸이 뭐 아프고... 그 아픈 거 내가 아프게 했는데? 이번 달 뭐 사고쳐가지고 이천 만원 물어준다고... 그 사고 내가 치게 했는데? 뭐가 문젠데? 애 공부가... 성적 내려가도록 내가 만들었는데? 이란 대표 팀이 한국 대표 팀과 축구 하는데 골대를 두 번인가 때렸어요. 알라신이 뭐 어떻고 저떻고 할 거예요. 주님이, 내가 했는데, 골대? 내가 골대 때려서 못 들어가게 했는데?

지금 아무 문제없는 것인데 마귀 쪽에서 문제를 자꾸 일으켜요. 일으켜서 심신이 약하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그걸 협박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협박이라 하는 것은 일어날 상황도 아닌데 일어날 상황에서 ‘너 어쩔래? 너 이제 큰일 났어.’ 라고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을 협박 또는 고급 용어로 말해서 겁박. 협박, 겁박. 옛날 조선시대에는 겁박이라 했거든요.

교회를 40년, 50년 다니고 뭐뭐 했는데 여전히 자기 자신에게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통로를 어디서 만든다고요? 한쪽에서 만든다고 하기보다는 말을 바꿔야겠다. 통로를 한쪽에서 뚫어요. 하늘나라에서 지상으로 뚫고 들어온다고요. 한쪽입니다, 한쪽. 우리 쪽에서 마중 나가는 게 아니에요. 한쪽에서 그냥 뚫어요. 뚫는데 뚫는 그 현장에 우리는 어떻게 참여되느냐 하면 새삼스럽게 약속이 주어진 형편에 대해서 확인 들어가는 겁니다. 어? 아무 문제없구나. 아무 문제없네.

그럼 나는 지금 누구한테 놀아난 거야? 아, 요거 마귀 봐라. 이거 못된 마귀 봐라. 아무 문제도 아닌데 마귀가 자꾸, 넌 큰일 났어. 넌 죽었어. 너 이제 어쩔래? 너 어떻게 수습할래? 이런 식으로 계속 흔들기에 악마가 아주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너 악하니까 더 착해야 되지 않아? 막 이런 식으로요.

특히 오늘 베드로후서 1장 4절부터 7절에 보면 거기 어떤 덕목의 리스트처럼 나와 있는 게 있죠.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 어떤 요소들을 장착해야 되느냐 하면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게 지금 몇 가지에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가지. 과목이 수능 과목보다 더 많은 것 같아, 내가 보기에는. 영어만 해서는 안 되고 영어, 수학, 무슨 탐구? 탐구, 탐구해서 거기다 체육까지 보태가지고 여덟 과목을 평균점 이상 되어야 60점 이상 돼야 천국에 합격되는 겁니까?

마귀는 이야기해요. 네가 덜 착하니까 더 착해야 되고 네가 온전하지 않기 때문에 더 온전해야 되고 네 가지 밖에 안했으니까 네 가지 더 보태야 되고 일곱 가지 했지만 한 가지 더 남아 있고. 이런 식으로 자꾸 하는데, 인간은 덜 착하고 더 착하고 이런 게 없습니다. 모두 한통속이에요.

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약속을 염두에 두면 어느 인간도 십자가 진 인간 없습니다. 그러면 모든 인간은 똑같아요. 이 세상은 십자가 지지 않는다, 에 대해서 사람들은 서로 화목하고 있습니다. 죽이 잘 맞는다 하죠. 죽이 잘 맞았어요. 십자가 져버리면 아무 문제없는데 인간들은 아무 문제없는 게 짜증 나. 왜냐하면 자기가 자기한테 평생 공들여왔잖아요. 공들여왔다고요.

서울대학 가려고 강남에 학원 보내고 수십만 원 과외해가지고 서울대학 가려고 다 준비해놨는데 그래서 모의고사도 잘 나오고 했는데 서울대학교에서 ‘이번 서울대학교 입학 전형은 뽑기로 합니다. 공부 더 잘하고 덜 잘하고 그런 거 일체 안 봅니다. 뽑기 그 자체가 문제없음을 인정하는 사람만 뽑힐 겁니다.’ 이렇게 나오면?

이것은 인간들로 하여금 내가 시도했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안 받는 거구나. 하나님이 뚫는 쪽에서 뚫는 통로하고 내 쪽에서 뚫는 통로가 맞아야 뭐 중간에서 거기 계십니까? 수고했습니다, 하는데 이게 안 맞아버리면 다 뚫었는데 보니까 지옥으로 가있어. 평생 실컷 뚫었는데 '여기서부터 지옥까지 약2km' 이런 푯말 나올 때... 아, 인생 기가 차죠.

악마는 알아요.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으로서 인간의 모든 차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악마가 알기 때문에 악마는 그것을 감추는데 급급해서 인간들로 하여금 ‘천국 가는 통로를 네 쪽에서 뚫어라’ 그런 아이디어를 베드로후서 1장 4절에서 7절까지 줬다는 거예요.

더하라, 더하라, 더하라, 더하라. 여덟 가지의 요소를 완전하게 장착해줘야 너는 합격되고 중간에 여섯 개하고 두 개 빠지면 이건 불합격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인간도 그런 악마의 해석에 의하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 아무도 없고요. 그리고 그들은 자기가 문제 있음의 그 공포감에 자기는 어쩔 줄을 몰라요. 그 두려움에 어쩔 줄을 모릅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에서 7절 괜히 봤어, 괜히 봤어. 난 십자가만 볼 건데 이거 괜히 봤어. 난 신의 성품에 참여 못 할 거 같애. 벌써 1단계 믿음에, 그다음에 덕을, 하는데 믿음도 지금 없는데 덕까지 추가할 자신감이 하나도 없네요. 왜 자신감이 없느냐 하면 회사 다니거든. 바빠, 지금. 경건 책을 읽을 시간도 없고 돈은 벌어야 되겠지, 이거 지금 믿음의 덕까지 쌓아야 되니까 봉사할 시간이 모자라요. 이거 지금 큰일 났어요. 걸음마에요, 걸음마. 그뿐 아니라 덕에 지식을...이거 뭐 조직신학, 성경신학 다 해야 돼요. 큰일 났어요.

이걸 이렇게 해석합니다. 믿음? 문제없는 믿음이 약속 안에 들어있다. 덕? 아무 문제없는 덕. 지식? 아무 문제없는 지식. 절제? 아무 문제없는 절제. 이것을 주께서는 하늘에서 뚫어서 우리에게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은 뭘 의미하느냐 하면 이미 인간 쪽에서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서 뭔가 시도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약속이 없는 상태에서 천국 가는 그 계단, 천로역정 계단 있잖아요, 그 계단과 비교해서 주님 쪽에서 내려오는 약속은 누구 일이냐 하면, 오늘 이게 결정적인데요, 이게 나의 일이 아닙니다. ‘나의 일이 아닙니다.’ 에 멈추면 안돼요. 더 결정적인 것은 ‘나의 일에 내가 끼어들면 안돼요.’ 안 된다. 끼어들면 문제없는 게 문제가 생겨버려요.

괜히 엄마가 한 잡채를 맛없다고 지가 요리하다가는 잡채 다 망치거든요. 엄마가 완전한 잡채의 맛을 냈는데 지가 손대가지고 엄마, 얼마나 맛있게요? 니나 먹어라, 이거! 난 안 먹는다. 요리는 주님이 하시고 먹기는 성도가 먹는 거예요. 성도가 요리하고 먹기는 주님이 하는 이런 건 없어요. 통로는 한쪽으로 뚫었기 때문에.

나의 일이 아닙니다. 주의 일입니다. 주의 일이기 때문에 주의 일의 필수 요건은 뭐냐 하면 주의 일에 네가 끼어들기 있기, 없기? 없기! 너의 일에 네가 끼어들기 있기, 없기? 없기! 그럼 저는 어떻게 삽니까? 시키는 대로 하게 되면 그게 믿음이고 시키는 대로 하면 그게 절제고 그게 덕이고 그게 형제우애고 그게 지식이에요. 그게 사랑이에요, 시키는 대로 하게 되면.

그럼 시키는 대로 했는지 안했는지 그걸 내가 알 길이 없지 않습니까? 라는 대꾸가 나올 수 있겠죠. 그런 대꾸가 나온다는 것은 지금 자기 형편이 주님 보시기에는 문제가 없는데 지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금 겁을 집어먹고 있는 거예요, 내 인생에 대해서. 내 인생에 대해서 내가 겁을 집어먹고 있는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느냐 하면 내 인생이 없어요. 주께서 만들어가거든요.

오늘 낮에 했던 그 안양강의의 테마를 다시 적어보겠어요. 물론 안양강의를 듣겠지만 또 직장 다니느라고 못 들으시는 분들을 위해서 하겠습니다. 진리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또는 구원은, 생명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거예요. 창조된다는 말은 너에게는 없고 예수님 내게만 있기 때문에 이미 만들어진 예수님이 없는 쪽에 예수님의 것을 여기다가 기지, 기지 알죠? 군대기지 또는 통신사에서 기지를 만들죠, 여기 성령을 파견해서 기지를 만드는 거예요.

그럼 기지를 만들면 그 공간은 내 공간입니까, 주님의 공간입니까? 주님의 공간이죠. 보통 망명할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망명한다고 하면 비행기타고 미국으로 가야합니까, 안 그러면 대사관 가면 돼요? 망명할 때 대사관 가면 되잖아요. 대사관 알려드려요? 광화문 그쪽에? 그 영토는 서울에 있지만 그 영토는 미국 영토에요. 이미 대사 협약할 때 협약되어 있습니다.

내 안에 주님이 기지국을 만든 거예요. 이 기지국이 와야 천국하고 핸드폰이 터집니다. 안테나가 막 네 개 다 차있어. 그 기지국에서 아까 요한복음 12장 말씀처럼 주님께서 문제없다고 찾아오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어려운데 뭐냐 하면 주께서 문제없다고 찾아올 때는 문제가 너무나 많은 곳에다가 주께서 기지국을 세운다는 겁니다. 그래서 문제없음이, 하나님의 약속이 찾아오게 되면 그때 인간은 내가 만족하는 믿음, 내가 만족하는 덕, 내가 만족하는 지식, 내가 만족하는 절제, 내가 만족하는 인내, 내가 만족하는 경건, 내가 만족하는 형제 우애, 내가 만족하는 사랑이 내가 평소에 어떤 것을 가지고 이러한 리스트로 만족했던가, 자기의 허점을 주께서는 노출시킵니다.

봐라. 네가 네 인생 하니까 온갖 문제투성이잖아. 그러니까 문제없음은 내 쪽에 문제없는 거야. 사람들은 이 본문을 보면서 신의 성품, 그런 것을 우리가 가지려고 해요. 이렇게 가져야 천국백성이 말씀대로 합치된다고 생각해서 가지려고 하거든요. 그 가지려는 것이 탐심입니다. 가지겠다는 것은 내게 없으니까 이런 걸 장착해서 내 쪽에서 하늘나라로 새로이 천국 가는 통로를 한번 개발해보겠다고 나서는 거예요. 루트 개발, 통로 개발, 새로운 등산로 개발하듯이.

그거 개발하면 결국 개발된 천국 가는 길은 누구 이름 붙이겠습니까? 주님 이름 붙이겠습니까, 자기 이름 붙이겠습니까? 그걸 가지고 간증 집회. 그게 간증집회에요. 모두다 간증 서너 개쯤은 다 갖고 있죠?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이러한 성경말씀을 가지려고 하는 그것을 탐심으로 규정하느냐 하면 인간은 죄 짓는 식으로만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목숨을 부지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인간은 모든 것이 죄가 되기 때문에 한시라도 죄 안 지을 때가 없기 때문에 죄는 죄대로 지으면서 탐은 나는 거예요, 하나님의 성품이. 그러니까 내 쪽에서 통로를 뚫는 그런 부질없는 시도를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 한번 정리해봅시다. 진리란 반대를 만나야 드러난다. 이게 주의 성경 전체에 나오는 원리에요.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느냐 하면, 나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라. 진리란 길이란 생명이란... 그냥 주님께서 나는 진리다! 이러고 돌아가셨습니까? 누구를 만났어요? 반대하는 힘과 마주하면서 진리가 진리답게 길이 길답게 생명이 생명답게 새롭게 창조된 그 통로가 드러나는 겁니다. 그게 주의 일이거든요.

그럼 제가 아까 그랬죠? 성도 안에 주의 일의 기지국이 있죠.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성도를, 신의 성품을 받은 사람 또는 약속을 받은 사람을 어디로 데려가겠어요? 반대가 되는, 반대를 맞닥뜨리는, 그 현장을 조성해주시는 겁니다, 반대.

반대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성도라면 반대되는 사람을 만난다는데 그 사람이 누구지? 이렇게 생각할 거죠. 구약은 그런 것 때문에 있는 거예요. 구약에서 반대되는 것을 두 자로 ‘우상’이라 합니다. 기드온 같은 경우에도 그런 예가 되는데요. 가만히 있는 기드온, 포도농사 짓는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우상을 부수어라’ 하고 시켜요.

한번 물어봅시다. 기드온이 평소에 우상 부수는 것을 자기의 삶의 어떤 사명감으로 목표로 삼았습니까, 아니면 포도농사로 사는 게 목표에요, 기드온은 평소에? 지 포도농사해서 자기 소유 챙기는 게 목표지, 우상 섬기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고 사사기 6장 성경에 보면 천사가 이야기하는 거예요. 하나님 쪽에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통로를 어디서 팝니까? 하나님 쪽에서 통로를 파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포도농사에 관심 있는 것 보고, 요새 뭐 새로운 품종이 나왔대요, 청포도 비슷한 비싼 거 나왔는데 그거 심어서 얼마 받겠노, 그거 신경 쓰는 사람한테 갑자기 나타나가지고 ‘나, 천사. 이제부터 지시 내린다. 너네 동네 마을 한복판에 있는 우상 그거 대낮에 부숴버려라. 그것도 대낮에 부숴버려라.’ 이런 지시를 내린 거예요.

천사의 지시니까 문제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무 문제없죠. 그 지시가 하나님 보시기에 천사는 시키는 대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 뜻에 문제 있을 리 없고 시키는 대로 하는 천사가 문제 있을 리 없고, 문제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드러나느냐? 지금 기드온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통해서 드러나는 거예요.

기드온은 그냥 소박하게 자기 포도농사 짓고 조용하게 살고 싶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나는 그 현장에 기드온을 가지고 강제로 합류시켜버립니다, 강제로. 그럼 기드온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포도농사는 내 일이지만 우상 부수는 것은 내 일이 아니고 주의 일이잖아요. 그렇게 할 만하겠죠? 실제로 그 뒤의 행동이 그러했어요. 내 일이 아니고 주의 일인데 왜 나보고 시키느냐.

그럼 주님께서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내가 너한테 시키는 게 문제 있냐? 없습니다. 그럼 네가 대든다면 문제는 하나님한테 있는 게 아니고 너한테 문제 있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상과 싸운다는 것은 지금 이 우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진리에 대적하는지에 대해서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무 관심이 없어요. 자기 일에 바빠가지고 관심이 없다고요.

여기 약속, 신의 성품, 믿음에 덕, 이거 다 관심 없어요. 믿음에 덕 가지면 얼마 주시렵니까? 우리는 돈에 관심 있는 거예요. 덕에 지식 가지면 나 넓은 아파트로 이사 가게 해주시겠습니까? 뭐 이렇게. 그런 데에 관심 있어요. 인간은 자기 일이 따로 있어요.

여동생하고 오빠하고 사는 거, 이거 마르다 자기 일이거든요. 자기 일인데 주님이 찾아와서 오빠 죽였잖아요. 죽여 놓고 뭐 문제 있나? 기분 나빠? 내가 보니 기분 많이 나쁜 것 같은데. 오빠 죽었는데 기분 안 나쁠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바로 네가 문제 있다.

진리라는 것은 문제 있음과 마주치는 것이 제대로 ‘아, 문제없음이 찾아들었구나.’ 하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집니다. 우리는 우리 일대로 바쁘다고 자꾸 핑계를 대는데요. 주님은 더 바빠요. 주님은 자기 백성 안 놓치기 위해서 주님은 더 바쁘게 일하신다고요.

자, 기드온이 포도농사 지었을 때 주님께서 우상을 부수라 했잖아요. 그러면 여기서 물어봅시다. 포도농사는 주께서 시키신 일입니까, 아니면 본인이 자기가 자기한테 시킨 일이에요? 어느 쪽입니까? 주님이 시킨 일입니까? 아니죠? 여기서 나온 결론은 주께서 시키지도 않는 일을 본인이 얼씨구나 좋다고 그 일을 하면서 그것을 사수하려고 하는 거예요.

한번 정리해봅시다. 우상이란 또는 죄란 무엇인가? 죄란 무엇인가? 같은 말로 우상이란 무엇인가? 내가 만들고 그 결과를 내가 지키는 것. 이게 죄고 이게 우상이에요. 내가 만들고 이걸 다른 말로 내가 나한테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 이게 바로 죄가 되고 우상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 보면서 신의 성품 나오니까 얼씨구나, 하고 나도 신의 성품 가지련다. 할 때 그게 탐심이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성경 말씀은 주님이 나서야 되지, 우리 쪽에서 통로를 뚫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우리 쪽에서 나서서 이루어지면 안돼요.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하죠. 그럼 목사님 말씀대로 하면 우리가 그냥 놀까요? 이렇게 하거든요. 평소에 안 놀았어요? 하여튼 주의 지시를 따를 생각은 안하고 지 편할 것만 생각하는 거예요.

자기는 놀고 주께서 시다바리처럼 다 하라 이 말아닙니까? 마당쇠처럼. 마당쇠 알아요? 마당에 있는 금속물질을 말하는 게 아니고 노비가 돼서 자기 양반집 빗자루 질 하는 게 마당쇠에요. 그 마당쇠, 노비가 그 일하면 그게 자기 일입니까, 주인님이 시킨 일이에요? 주인이 시킨 일이잖아요. 자기는 노비니까 종이니까. 일종의 재산이거든요. 그래서 주인도 노비를 함부로 안 죽여요. 자기 집 컴퓨터를 왜 깹니까? 하나의 기계인데요. 기계를 비싸게 돈 주고 사가지고 노예시장에서 사가지고 그걸 죽일 리가 있어요. 아끼고 아끼죠. 계속 노비로 써먹기 위해서.

바로 이 관계에 대해서 지금까지 강의한 것을 정리해보면 우리는 이러한 결론에 도달해야 됩니다. 주님, 내 일이라는 것은 아예 없네요. 주여, 내 일이라는 것은 아예 없네요. 이제 안 써도 되죠? 쓰면 시간만 낭비되고... “주여, 내 일은 없네요.” 그래서 주님께서 답변하기를, “그게 네가 지금 기분 나쁘다는 거야, 기분 좋다는 거야? 태도를 분명히 해.” “내 일은 없네요.” 하고 입이 툭 튀어나와가지고 “그럼 내 일은 없네요. 그럼 나는 무슨 재미로 사노? 아휴...” 한 숨 쉬는 거. 그럼 주님께서 “어이, 어이, 어이. 헤이. 지금 기분 나쁘다는 거야? 너 표정 보니까 기분 되게 나쁜 거 같은데?” “그게 아니고요. 주님 잘 하셨다 그 말입니다.” “아니, 잘 하셨다는 그 태도가, 톤이 상당히 듣기 기분 나쁜데?”

여러분들이 신앙생활하면서 왜 기쁨이 없고 왜 감사가 없습니까? 왜 입이 댓 발 나옵니까? 왜 나옵니까? 주님을 안 믿는다는 게 아니고 주님이 싫다는 게 아니에요. 왜 나는 나로 인한 보람을 허락 안 하냐, 이것 때문에 기분 나쁜 거예요. 나는 나로 인하여 즐겁고 싶어요.

크게 쓰겠습니다. 나는 나에게 감사하고 싶어요. 나는 나에게 감사하고 싶고 나는 나에게 고맙다는 소리 하고 싶어요. 고맙소~ 고맙소~내 나올 줄 알았어. 나는 나에게 고맙다 하고 싶어요. 오직, only, 난 그 생각뿐이야. 나는 나에게 감사하고 나에게 고맙고 내가 기특하고 내가 사랑스럽고 딱 그뿐이야. 뭐 복잡하게 할 거 없어. 딱 그뿐이야. 난 그 보람으로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경 이야기하면 입이 댓 발 나오는 거예요. 뭐 안 믿는다하면 또 지옥 갈까 싶어서 싫고 그렇다고 마음은 땡기지 않는 거예요. 고맙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는 거예요. 모든 정신이 나한테 고맙고 나한테 감사함으로 쏠리기에 온 혼신의 힘을 다하고 거기에 정신이 다 모여 있는데, 갑자기 오빠 죽여 버리니까 마르다, 마리아가 삐친 거예요. 삐쳤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2장 2절을 한번 봅시다. 제가 요한복음 이야기를 하는 것은 누구나 그 절차를 경과해야 된다는 겁니다. 12장 2절에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절에,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아주 퍼펙트한, 완벽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지금 마리아는요. 자기가 갖고 있던 그 귀한 향수를 그냥 낭비해버립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가 뭐라고 합니까? 바로 그 이야기했잖아요. 왜 그 비싼 것을 그렇게 허비하느냐 또는 낭비하느냐는 식으로 이야기하잖아요. 나사로 오빠가 죽었다가 살아난 뒤에 마리아가 알게 된 것은 내 것이 있는 한 그게 문제를 일으킨다는 거예요.

또 집안에 향수 다 뿌리라는 말이 아니고요. 마리아는 나한테 고맙고 내가 나한테 감사할 거리가 예수님이 하시는 일과 섞여 들어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요. 그러면 마리아의 결정은 뭐냐 하면 나의 일은 쫙- 삭제를 하는 거예요, 나의 일. 나의 일은 삭제를 한다. 사선을 긋는 거예요, 사선을.

사선을 긋는다니까 생각나는데 컴퓨터에서 한글 작업할 때 이런 게 있거든요. S자, 주체(主體, suhbject) 에다 사선 긋는, 이런 게 있어요. 그럼 이것을 한글에다 쳐야 되는데 이걸 어떻게 치느냔 말이죠. 문자표에 이게 안 나오는데. 그때는 편집하는 데에 들어가서 앞에 not 붙이고 S하게 되면 이게 나와요. 이건 팁이에요, 수식 편집.

S가 주체거든요. 마리아가 주님의 온전함을 어떻게 드러내느냐 하면 바로 나의 것에다가 사선을 그어버리는 겁니다, . 이것은 나의 것의 허비 또는 나의 것의 낭비인 동시에 나의 낭비, 나의 허비. 이 말은 나는 이제부터 낭비하는 인생을 살겠다, 아유 즐거워라. 아유, 즐거워라.

내가 하는 가치를 내가 솎아내서 뽑아내서 나 이정도 가치 있다, 라는 식으로 인생을 보람 있게 살겠다는 그 일을 나는 청산하겠다. 아이고, 내가 내 인생을 낭비하다니. 그것으로 즐거워하겠다는 거예요.

그럼 낭비를 어떻게 하느냐. 낭비는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낭비를 하게끔 주께서 일을 시킨 것이 돼요. 왜냐하면 여기 12장에 보면 아까도 얘기했지만 진리는 항상 무엇을 마주쳐야 나온다? 진리가 아닌 것과 마주칠 때에 진리가 등장하죠. 12장 4절에, 가룟 유다가 말하기를, 그것도 그냥 가룟 유다가 아니고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절에 보면 그 비싼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한테 주는 것이 보람 있는 일이고 이게 주님께서 원하는 뜻이라고 우기며 주장하는 거예요.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 가룟 유다의 생각이 오늘 우리가 하고자 하는 믿음에 덕을, 덕에 절제를, 하는 그 순환 구조에다가 그대로 집어넣으면 인간들은 그게 딱 맞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경건하냐. 그렇게 경건한 것은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가져야 그다음 단계가 경건이니까 도대체 이것은 계급이 이등병에서 일등병, 일등병에서 상병, 상병에서 병장, 병장에서 하사, 하사에서 중사, 중사에서 상사, 상사에서 원사, 특상사에서 원사, 그러려면 한 상사쯤 되는 그 정도로 성화된 거룩한 생활하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에게 자기를 팔아 나눠주는 일을 할 수 있다, 라는 아이디어가 예수님 팔아먹을 가룟 유다 쪽에서 이미 제시되고 있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주님 오시기 전에 아무도 십자가 진 사람이 없죠? 십자가 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은 우리가 그냥 텅텅 비어있는 것이 아니고 가룟 유다와 같은 사고방식으로 중무장되어 있다는 거예요. 꽉 차 있는 거예요. 내가 주의 성품이 되겠다는 탐심을 내고 내가 주의 성품이 되겠다는 그 목표와 목적의 집요함을 갖고 있는 이상은 우리는 내 쪽에서 통로를 뚫는 그 작업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한번 해보자. 어디까지 뚫었는지, 몇 층까지 뚫었는지. 삼층 천이 아니라 오층 천, 칠층 천까지 뚫을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한번 해보겠다는 거예요. 그게 바로 가룟 유다이고 열두 제자가 다 그렇게 살았어요. 베드로도 다 마찬가지에요.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은 지상에서 하늘로잖아요.

그런데 마리아의 방향은 뭡니까? 세상에, 그 방향과는 정반대되는 방향. 내 것을 다듬고 내 것을 훌륭하게 신의 성품이라고 여기게 되는 그러한 거룩하고 거룩한 성품을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게 아니고 지금 마리아가 보여주는 것은 졸지에 뭔가 하늘에 있다가 땅으로 뚝 떨어진 것 같아요.

다시 말해서 주님이 그 빌딩 옥상에 있다. 5층 옥상에 주님이 계시다. 그럼 제자들은 가룟 유다부터 해서 제자들은 그 힘든 계단을 올라가면서 1층, 헥헥, 2층, 3층, 4층 해서 한 층만 더 올라가면 이제 주님 만난다 생각하는데 4층에서 어떤 아줌마가 투신자살했어요. 저거는 주님 만나는 방향이 아니고 반대방향이죠. 왜 자기를 던져? 본인이 구원받아야 되는데. 본인을 왜 포기하느냐 이 말이죠. 도저히 납득이 안 되죠.

그래서 복음 설교나 강의에 대해서 납득이 안 된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제가 뭐 영어를 했습니까, 프랑스어를 했습니까. 한국말을 해도 또 한국말도 사투리 많다는 핑계를 대가지고 아예 녹취하시는 분들이 표준말로 녹취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대요. 표준말로 녹취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문법이 틀렸느냐? 틀린 것도 아니에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방향이 틀렸어요, 방향이. 가룟 유다적 사고방식이에요, 가룟 유다적 사고방식.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을 총동원해야 조금이라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신의 성품을 그 짜투리라도 얻을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소유하는 보람으로 예수를 믿어보겠다는 거예요. 주께서 좋은 아이디어를 줬으니까 그 아이디어를 따라서 신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주의 뜻이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나 주님은 내가 다 했으니까, 그것도 아무 하자 없이, 문제없이 다 했으니까 주님의 것은 문제없었다는 것을 네가 받아들일 때 그동안 네가 추구했던 모든 것에 대해서 너는 어떻게 처리할래? 내가 두고 볼 거야. 두고 볼 때 두고 보기는 뭘 두고 봐요. 두고 볼 때 어떻게 두고 봅니까? 그냥 낭비하는 거예요. 내 인생 자체를 낭비하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낭비하는 방식이, 마리아야, 내가 내 인생을 낭비하는 것을 네가 지금 반복하고 있다. 복제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게 예수님의 자기 장례식을 마리아가 미리 나보다 앞서서 마리아 자기 죽음으로, 자기 비싼 것까지 포기해서 난 이딴 거 내 인생에 이제 필요 없다, 난 이제 죽을래, 하는 포기, 자기 죽음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예수님의 장사, 십자가 죽으심을, 십자가에 함축된 그 의미를 마리아가 자기 인생을 통해서 그렇게 보여줬다는 거예요.

그러면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례식을 미리 알고 했습니까? 아니죠. 마리아는 그냥 하고 싶었어요. 자기가 비싼 그 향수를 주님의 발 앞에 같이 접촉하고 싶었어요. 결과적으로 돌아봐서 마리아는 주님께서 나중에 의미를 갖다 붙이는 것으로 봐서 이게 내 일이 아니고 주의 일인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의미 붙이는 당사자가 마리아 본인이 아니고 자기 하는 일에 주님이 의미를 붙였으니까 그 일을 주님이 자기 일이라고 회수해서 가져가버린 거예요. 마리아야, ‘멋진 일을 했다. 그래. 네가 한 일이 내가 이 땅에서 죽어야 될 그 취지, 바로 딱 그거야. 그 일에 네가 참여하게 된 거야.’ 라고 확인해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면 성도의 어떤 인생 가운데서 허비되는 시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없어요. 왜? 알뜰살뜰 주님께서 다 가져가니까. 그래, 필요했었어. 나를 증거 하는 데에 꼭 필수적이었어. 주님이 일방적인 의미를 갖다 붙이는데 우리는 다만 황송무지로소이다. 그저 부끄럽고 감사할 뿐이죠. 그러니까 인생이 무엇의 연속입니까? 감사와 주님께 고맙소와 연결될 뿐이죠.

내 인생 개떡 같은데 개떡 같은 그 일도 주님께서 잘했어, 잘했어. 이러고 있으니까... 뭐? 뭐 잘했는데? 잘한 게 있어야 잘했지. 그래, 너는 내가 시키는 일을 했구나. 주님 시킨 적 없는데? 이건 내가 했는데? 내가 해도 주님이 시킨 일로 전부다 의미 전환을 다 해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 첫째 시간의 제목은 뭐냐. 아무 문제없어요. 그런 노래 있죠? 뭐 꼭 불러야 됩니까? 아무 문제없어요. 이것은 충격적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평생을 해도 아무리 신학을 연구해도 알 수 없는 거예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무 일 없어요.

머리 길어서 미장원에 머리 깎으러 갔는데 미용사가 어제 야근해서 피곤했는지 한쪽은 짧게 깎고 반대쪽은 그냥 둬서 맞지를 않아요. 아줌마, 이게 뭡니까? 아줌마가 은혜 받아서 오, 아무 일 없네. 외국 사람처럼 어깨를 으쓱하면서 What's the matter? 이렇게. 아이고, 영어 방언 터지면 안 되는데. 무슨 일 있어? 아무런 문제없어요. 이게 문제 있지, 없습니까? 다음에 맞춰서 반대쪽 끊어줄게. 아무 문제없어.

주님한테 문제없으면 우리한테 문제없는 겁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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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9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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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