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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강의20210924a 민수기 25장 3절(이스라엘의 이질성)-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민수기

광주강의20210924a 민수기 25장 3절(이스라엘의 이질성)-이 근호 목사

211페이지 중간부터 ‘짐승’에 대해서 언급되어 있습니다, 짐승. 원래 창세기 1장에서 짐승은 인간들과 더불어 6일째 만들어졌고 인간하고 별로 관계없다고 여겼는데 창세기 2장에서 지혜로운 짐승 중 하나인 뱀이 인간의 운명에 결정타를 날리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과 짐승은 사이가 안 좋아지겠죠. 안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망가짐 속에 짐승의 관여가 포함되어 있어요. 그리고 여기 지금 우리가 하는 게 다니엘이잖아요. 다니엘에서는 ‘바다에서 온 짐승’에 대해서 또다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짐승이라는 의미는 ‘실체(實體, substance)’가 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실재(實在, reality)’다. 또 다른 말로는 ‘실제(實際, actuality)’로 있다. 진짜로 있다. 없는 게 아니고 진짜로 있다. 이 ‘실체, 실재, 실제’, 왜 이런 단어를 쓰는가.

‘실체(實體, substance)’는 누구한테 쓰느냐 하면 이 세상을 사는 인간들에게, 인간이 실체가 있다, 팔, 다리가 있다, 실체. 눈에 보이는 것 있죠, 물질 덩어리, 이것을 실체라고 합니다.

‘실재(實在, reality)’는 인간들이 모여 살며 거기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들을 묶어주는 뭔가가 있는 거예요, 묶어주는 것. 정(情) 또는 사랑 그리고 슬픔. 자, 슬프면 눈물 나죠. 눈물은 물방울이라는 실체가 있죠. 실체가 있는데 슬픔은 어디 있죠? 눈물은 있는데 슬픔은 어디 있죠? 그것은 실재한다고 하는 거예요.

‘실제(實際, actuality)’로 있다는 것은 여러분 다 알다시피 진짜 눈에 보이는 식으로 만지면 만져지는 식으로 거기에 있다. 이게 실제로 있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설명할 때 실체, 실재, 실제,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을 우리가 인정해야 됩니다. 받아들여야 됩니다.

짐승도 마찬가지죠. 짐승에는 실체가 있고 그러니까 욥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의 사자들이 여호와 앞에 섰을 때 누가 옵니까? 그때 마귀도 여호와의 회의장면에 그대로 참석하죠. 여호수아서에도 마찬가지로 여호수아가 있을 때 하나님과 함께 사탄이 있죠. 미가야 선지자 때도 하나님의 천상회의에 악마의 실체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실체는 어디 있느냐 하면 이 실제 세계에는 없고 실재 세계, 여기에 있어요. ‘실재’를 2번이라 하고 ‘실제’를 3번이라 하면 2번 세계에, 실재 세계에, 영어로 하면 reality가 되는데 실재 세계에 악마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을 안 본 사람은 ‘1번-실체’는 인정한다, ‘2번-실재’는 그냥 무시하고, ‘3번-실제’를 굉장히 믿습니다, 3번을. 예를 들어서 ‘돈이 있어야 산다’고 할 때 이 ‘산다’가 실재에요. 2번이에요. 그런데 돈은 1번과 3번입니다. 돈은 1번과 3번이죠.

집안에 형님들이 “통닭 사 온나. 내가 집에 가서 돈 줄게.” 그래서 통닭 맛있게 먹고 난 뒤에 집에 갔는데 돈 주던가요, 안 주던가요? 돈 안 주죠. 실제로 통닭 먹고 맛있었는데 ‘맛있다’하는 것은 실재거든요, 있었는데 이 3번, 실제 돈은 안 줘요. 아이고, 뭐 형제 간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잊어버리죠. 그 전에 내가 많이 샀잖아, 이런 식으로 잊어버리죠.

그래서 이렇게 구분하는 세 가지를 한꺼번에 이야기합시다. 한꺼번에 이야기하면 이것이 ‘있다’가 돼요. ‘있다’가 되니까 ‘있다’의 반대말은 뭐가 되겠어요? ‘없다’가 되죠. 그래서 인간은 이렇게 1번(실체), 2번(실재), 3번(실제)이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없다’에 대해서 감각이 없어요. ‘없다’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겁니다.

인간이 ‘있다’만 생각하다가 인간이 없을 때가 있어요. 언제 없어지느냐 하면......, 여러분 잘 아시겠죠? 인간이 없어질 때가 언제죠? 집사님, 인간이 없어질 때가 어떤 때죠? 죽을 때. 죽을 때 인간은 없는 거예요.

없는데 성경에서는 인간이 죽어도 3번(실제)은 없는데 2번(실재) 있고 그리고 죽고 난 뒤에 해와 같이 빛나니까 1번(실체)이 있는 거예요. 모세와 엘리야는 이미 죽은 사람들이거든요. 모세는 1400년 전에, 엘리야는 800년 전에 이미 죽은 사람인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과 함께 변화 산에 올라가니까 죽었다고 알았던 그 사람들이 예수님과 더불어 어떻게 되었어요? 뭐와 같이 빛난다, 얼굴이? 해같이 빛나요. 도대체 어떤 화장품을 써야 그 정도 빛납니까? 해같이 빛나요, 해같이.

그러니까 이것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을 실체로 보고 예수님이 실제로 있다고 봤는데 막상 예수님의 실재, 2번, 이것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도 몰랐던 거예요. 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못 봤느냐 하면 자기가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신앙인은 있다+없음, ‘없음’은 자기가 죽고 난 뒤에 생긴 거예요, 세상이 보기에 죽고 나니까 본인이 없잖아요. 있다+없음까지 볼 줄 아는 안목을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의 영을 통해서 부여받게 되는 겁니다.

장로님 어떻습니까? 이렇게 되니까 신앙이 있다는 것이 이것보다 더 큰 복은 없죠? 최고죠? 장로님한테 묻습니다. 어떻습니까? ‘있다’만 알던 인생, 70,80 인생보다 ‘없다’까지 아울러서 이것을 파악하니까 어때요? 이게 인생성공 아닙니까? 인간승리 아니에요? 그런 생각 좀 들죠?

그럼 이것이 인간승리라면, 우리 인생이 성공한 거라면 이 ‘있다’의 세계가 망해도 거기에 그렇게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과는 족히 비교도 안 되니까요.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평생을 눈치 보며 살아왔잖아요, 평생을. 집 안에 형님 눈치 봤죠. 아래 동생에 또 자식한테 눈치 보죠. 이웃 사람 눈치 보죠. 의사나 또는 의료계에 있다면 환자들 눈치 보죠.

평생을 눈치 보고 살아왔잖아요. 눈치 보면 볼수록 그 눈치 본 것에 대해서 그 사람들에게 내가 인정받으려고 얼마나 아등바등 헛짓들을 해왔습니까? 부질없는 짓들을 한 거예요. 나한테 눈치 주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온 근심과 걱정이 뭐냐? 남들의 요구에 맞춰주느라 생긴 거예요.

그런데 갈라디아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은 한방으로 정리해버려요.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면 그리스도 종이 아니다. 나는 반드시 ‘~가 아니다’로 나를 설명해야 돼요. 나는 ~가 아니다. 나는 아니다. 그렇게 설명해야 됩니다. ‘내가 너희들이 원하는 그런 인간 아니다’가 되려면 항상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그것이 우리의 있음의 바탕이 되어야 돼요.

그걸 어렵게 이야기해서 있음+없음인데 ‘없음’을 ‘있음’ 밑에 집어넣읍시다. 그러면 ‘없음’이 하나의 기초가 되어가지고 그 위에 ‘있음’으로 건물을 세우는 거예요. 이게 바로 마태복음 7장 끝에 나옵니다, 산상수훈 끝에.

둘다 삼층집이다 이 말이에요. 둘다 튼튼해 보이죠. 그런데 진짜 그 집이 무너질 집인지 안 무너질 집인지는 겉멋 든, 겉에 드러난 1층, 2층, 3층이 아니에요. 보이지 않는 것, 없어 보이는 것, 그 기초가 모래 위에 집은 집이냐 아니면 돌 위에 지은 집이냐, 그것으로 판정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초는 무시하고 그럴싸해보이게 남들에게 맞추려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려고 기초가 안 된데다가 무리하게 1층, 2층, 3층, 4층,... 계속해서 타인을 모방하면서 흉내 내는 인생을 그런 식으로 얼마나 살아왔습니까. 피곤하지도 않아요? 남 비위 맞춘다고 피곤하지도 않습니까?

남 눈치 보는 게 그렇게 피곤해요. 그런데 그걸 남 탓하지 마세요. 바로 우리 자신이 없음으로 자꾸 돌아가야 되는데 이게 안 돌아가니까 지나가는 개나 소, 귀신들이 다 집적거리는 거예요, 내 인생에 대해서. 물론 배후에 주께서 그렇게 하셨지만.

한번 정리해봅시다. 모든 걱정, 근심은 어디서 오는가. ‘모든 근심은 내가 보인다는 데서 온다.’ 내가 안 보이면 근심도 없는데 자꾸 내가 보여요. 내가 보인다는 말은 안 보이는 주님은 있으나 마나하다는 그런 식이거든요, 내가 보이니까. ‘내가 신경 많이 쓰인다’는 말은 ‘주님은 전혀 신경 안 쓰인다’ 그런 뜻이에요, 내가 보이니까. 보이니까 공격을 대비해서 지키기에 들어가죠. 방어에 들어가는 거예요, 방어에.

이강인이라는 축구 선수 알아요? 이강인. 나이는 어린데 잘 하는 선수 있어요. 이강인이라는 선수가 만약에 어제부로 죽었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이강인이 뛰는 프로 축구 못 볼 거예요. 그런데 이강인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니까, 얼마 전엔가 한 골 넣었거든요, 그러니까 이강인이 또 축구할 때 축구 좋아하는 사람은 중계방송 보겠어요, 안 보겠어요? 보겠죠. 그러면 열한 선수 있는데 누구에게 주목하겠습니까? 자기가 응원하는 이강인과 한 몸 되어가지고 자기를 방어하는 거예요. 자기를 방어하는 거예요.

만약 오늘 오전에 문재인이 죽었다면 또는 윤석열이 죽었다면, 또 한쪽 편만 든다고 하니까, 홍준표 죽었다면 그동안 홍준표, 홍준표 하던 사람들 어떻게 됩니까? 홍준표 죽으면 게임 끝나죠. 그러니까 홍준표나 윤석열이나 이재명이나 그런 사람을 응원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응원하는 게 아니고 내가 보이고 이 보이는 나를 지키고 싶은 거예요.

우리가 신앙생활 오래 하다보면 자꾸 놓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놓치는 것 중 하나가 예수님에 대해서요, 예수님은 대선후보가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왕이라고 해요, 왕. 대통령은 백성들이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왕은 왕이 백성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왕이 마음에 안 들잖아요? ‘저 놈 죽여라’ 하면 그냥 죽는 거예요. 이게 왕만이 누릴 수 있는 권한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대선후보입니까 아니면 왕이에요? 성경에 보면 그리스도는 기름 부은 자, 왕이거든요. 왕이 있는데 왜 백성이 걱정하느냐 이 말입니다. 이게 왕으로 생각하지 않고 대선후보로 생각해서 그런 거예요. 아, 우리 예수님, 정치 잘 해야 될 텐데. 쓸데없이...... 예수님은 정치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그냥 왕이라니까요, 왕!

인간은 국민이고 싶은 거예요, 국민. 국민의 특징은 대통령을 선택할 수 있는 표를 갖고 있다는 것. 국민이 주권을 갖고 있고 그 주권에 의해서 대통령이 4년 동안 행정하도록 선택할 권한이 있다는 게 국민이잖아요. 주님은 이 국민을 없애버리고 백성으로 바꾸기를 원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민주주의 현대사회를 너무 오래 살다보니 왕을 잊어버렸어요, 왕. 왕이 없으니까 뭐가 도드라지듯 특출나게 주장되느냐 하면 나의 주장이 등장하는 거예요, 나의 주장이. 나의 주장이 등장하고 예수님은 대선 후보이기 때문에 ‘나한테 잘해주면 당신에게 표 찍어줄게’ 이렇게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우리 집안 잘 되게 해주면 내가 교회 가 줄게’하고 똑같은 거거든요.

그러니까 신앙생활 오래하면 뭐 합니까? 성경에서 제일 기본 되는 것, 본인이 누구인지를 모르는데요. 본인은 국민이 아닙니다. 내 인생을 선택할 결정권이 국민에게는 있는데 백성에게는 이미 그것이 없어요.

빈자리를 좀(please) 만드세요. 여기 ‘좀’이라는 말은 please라고 되어 있지만 쪼옴~~~ 내 안에 내 중심 안을 비워 놓으세요. 내 안에 나로 꽉 채우지 마시고요. 비워 놔야 돼요. 빈 자리가 있어줘야 이게 국민이 아니고 백성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왕이신 예수님은 왜 우리를 백성으로 만들고자 하는가. 이미 우리 모든 인간에게는 왕이 있어요. 이 왕이 누구냐 하면 바로 짐승이고 우리는 짐승의 백성입니다. 이게 로마서 5장에서는 죄가 왕 노릇한다. 죄라는 것은 실재로 봐서는 죄이지만 실체로 봐서는 이게 악마거든요. 1번, 2번, 3번 했지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걱정거리와 근심이 있다는 것은 내가 보이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내가 나한테 의식이 돼서 그래요. 내가 실체적으로 혼자 있는 거예요. 실체적으로 혼자 있는 겁니다. 집 안에 네 식구가 있는데 세 명이 나갔다. 그럼 몇 명 남았습니까? 두 명 되어야죠. 하나는 왕 되신 주님과 그리고 백성 된 나. 관계가 견지, 유지되어야 되거든요. 그런데 4명 있다가 3명 빠지니까 나 혼자 있다는 거예요. 이번 추석 때 나 혼자 있다,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추석 때 혼자 있었습니까? 주님과 함께 있었죠.

이미 악마가 우리를 백성으로 다룹니다. 악마가 우리에게 의식을 줘요, 의식. ‘안다’고 할 때 정확하게는 인식인데 ‘인식’이라는 말이 더 어려우니까 ‘의식’을 주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계속 검사하고 자기 자신을 관찰하고 이런 거예요. 악마가 우리에게 의식을 줘버리면 이걸 ‘안다’고 해요, 안다. 선악을 안다, 이렇게 되거든요. 악마가 인간에게 의식을 줄 때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의식을 준 겁니다.

악마가 우리에게 의식을 주는데 그것을 선악의 체계, 구조로 줬어요. 악마가 우리에게 의식을 준 거예요. 의식을 줘가지고 뭘 한다고 했습니까? 관찰을 하게 되죠. 두리번 살피죠. 이번 추석에 누가 몇 명 왔다갔다 하느냐 또는 이번 아들 장가 보내는데 손님 누가 얼마 냈나, 이런 거요. 우리 장례식 하는데 누가 부조 얼마 냈고 관찰하잖아요. 이번 가을에 벌초하는데 우리 형제 가운데 누가 벌초했나, 이런 거. 관찰하는 거예요, 모든 게. 관찰이 무슨 뜻인지 아시죠? 아니까 보는 거예요.

관찰하니까 여기서 현실이 발생하는 겁니다. 누구의 현실입니까? 내가 관찰해서 만든 현실이잖아요, 내가 관찰해서 만든 현실.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유동성자금, 경제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유동성자금, 움직이는 자금. 이것은 미국의 은행 준비위원회에서 어떻게 이자율을 하느냐에 따라 유동성자금이 빠지고 들어오고 한다고요. 채권, 주식 다 포함되겠죠.

‘중국의 2대 부동산기업이 파산함으로 말미암아 유동성자금도 불안하다’고 뉴스의 아나운서가 멘트를 했을 때, 이 유동성자금과 중국의 대기업이 파산한 것과의 관련성을 우리가 모른다고 한다면 뉴스가 하는 말을 이해 못 하는 거예요. 중국기업이 파산하는데 왜 미국에서 기업에 주는 이자율을 더 높이려고 하느냐, 높이는 논리를 모르게 된다면, 지금 우리 배운대로, 어떤 사람이 전공분야가 아니라서 그걸 모른다고 한다면 그 사람 속에 유동성자금이라는 이 단어, 어휘가 그 현실 속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없으면 그 사람은 경제 분야에서 무식한 인간이 되는 거예요, 무식한 인간. 무식하게 되면 사기를 당해요, 결국은.

예를 들겠습니다. 열여섯 살 때 집에서 가출했습니다. 가출한 이유가, 엄마는 “내가 뼈 빠지게 돈 벌어 줄 테니까 학원 다니고 그래서 대학가라. 퇴학 당했지만 검정고시 쳐서 대학 들어가라.” 할 때 열여섯 살 먹은 애가 하는 말이 “엄마는 엄마 편한대로 살고 나는 나 편한대로 살겠다. 난 공부하기 싫어. 학원 가기 싫어. 나는 중국집에서 배달하고 이렇게 살래. 이게 편해.” 라고 이야기했다 이 말입니다.

그걸 한번 집어넣어보세요. 인간에게는 뭘 줬다? 의식을 줬다. 의식을 주면 관찰을 하죠. 관찰할 때는 뭐로 합니까? 선악으로 하죠. 그 가출한 애한테 선은 뭡니까? 지 몸 편한 거예요. 자기 행복이에요. 지 편한 거죠. 학원 가서 하기 싫은 공부하는 것보다도 그냥 배달해서 월급 받아가지고 나이트클럽가고 이런 게 더 편한 거예요. 이게 선이고 악은 엄마 잔소리가 악이 되겠죠. 며칠 전에, 게임한다고 자기 할머니 죽인 사람 있잖아요, 십대가. 의식해서 그 다음에 어디 재밌는 거 없는가, 관찰하겠죠. 가출해가지고. 똑같은 애들 만나서 관찰하면 현실이 발생되죠.

그 애의 현실 안에 유동성자금, 미국 준비은행, 그런 단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그럼 이건 무식한 게 되죠. 지금 뉴스에 나온다고요. 뉴스는 실체요, 실제요, 현실 그 자체에요, 9시 뉴스가. 눈에 보이는 세상이 돌아가잖아요. 그런데 얘는 그건 몰라도 난 행복할 수 있다 이 말 아닙니까? 그렇죠.

그런데 경제흐름이 섞여가지고 한국경제가 무너지게 되면 얘가 다니는 중국집이 문 닫아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지는 어디 가서 돈 법니까? 본인은 사기를 안 당했는데 결국은 뒷북치다가 중국집 주인이, 이거 전부다 지어낸 이야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야, 이거 인수하라고 할 때 중국집 주인은 아는 거예요. 주식 좀 하고 경제 좀 알다 보니까 아, 이 동네 공장이 확 빠지고, 공장 빠지면 중국집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고 부동산 안 되는 거 알죠. 그런데 그거 숨기고 애한테 ‘너희 엄마한테 돈 받아서 인수해라. 네가 너한테 권리금 안 받고 넘겨줄게.’ 애는 자기를 사랑하는 줄 알았죠. 왜? 유동성자금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중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 현실 속에 그런 게 없죠.

쉽게 말해서 무식한 거죠. 무식은 반드시 사회에서 그 사람을 그냥 둔다, 안 둔다? 무식한 사람에게 반드시 사기 치게 되어 있어요. 이 사회가 그런 사회입니다. 걔는요, 혼자 편한 게 행복이라 여겪죠, 혼자 편한 게. 세상이 죄의 왕 노릇 속에 같이 돌아갑니다.

또 하나 예를 들까요? 요새도 그런 방송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로또 생중계하는 방송 있었잖아요, 옛날에. SBS에서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할 때 그거 어떻게 뽑죠? 동그란 통 안에 36번, 18번, 25번, 7번,... 있죠. 저는 로또 한 번도 안 해봤어요. 바람 불어서 로또가 내 얼굴을 치지도 않았어요. 2번, 5번, 46번 있을 거 아닙니까. 자, 이 번호 볼을 넣어서 돌리죠. 돌릴 때 5번, 7번 바깥에 따로 있습니까? 같이 섞이죠. 섞입니다.

그런데 7번, 28번 개개인이 알고 있는 현실과 지식과 무식함의 정도는 같습니까, 달라요? 다 다르죠. 네가 경제학 박사가 되든 철학 박사가 되든 안 그러면 네가 농사 짓든 고기 잡든 관계없이 세상은 한데 섞여 돌아가는 거예요. 이렇게 섞일 때 섞이는 이 세상은 누가 관찰한 겁니까? 이건 바로 악마가 관찰한 세상, 악마가 만든 세상이에요, 악마가.

그래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좀 벌면 지가 재주 있어서 번 게 아니고 지식이 많아서 번 게 아니고 복불복이에요. 운빨이 되어서 그래요. 자기가 돈 버는 타이밍이 와서 돈 벌었을 뿐이에요. 아무런 실력은 없습니다. 이게 구약의 전도서에 나옵니다. 타이밍을 주님이 갖고 있지, 인간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울 때 있고 웃을 때 있고 춤출 때 있고 슬퍼할 때 있고 인간은 그 타이밍에 놀아나는 존재에요.

지금까지 제가 얘기한 그걸 한꺼번에 뭐라고 한다? 죄의 백성. 우리는 죄의 백성. 그것을 뭐로 바꿉니까? 의의 백성으로 바꾸는 거예요. 누가? 주님이. 아시겠습니까? 아시겠어요? 인간은 어떤 편에 서든 백성이 안 되는 경우는 있기, 없기? 어떤 경우도 백성이 안 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악마가 너는 이제 백성 아니야. 너는 자유자야. 네 인생은 네가 선택하는 거야. 네 운명은 네가 개척하는 거야. 초등학교 때부터 가훈, 교훈부터 훌륭한 인간이 되어라. 하는데 참 이게 초등학교 교훈도요. 진선미, 착하고 선하고 뭐 이런 구색 맞추기 하지 말고 노골적으로 딱 이야기하면 돈 버는 게 인간이다. 그렇게 하면 교육청에서 문제 될 거예요. 하여튼 돈 주면 교육청에서 입 닫고... 매사가 돈이에요.

아까 실체가 뭐라고 했습니까, 한 자로? 실체가 돈. 세상 움직이는 것은 돈입니다. 만약에 제가 담배 피우는 걸 싫어할 때 담배 피우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용납하는 순간이 올 거예요. 어떤 순간이냐? 나한테 10억 주는 사람이 10억 주고 담배 피울 때. 그래, 담배 피워, 피워, 피워. 돈만 준다면 피워, 피워. 괜찮아. 내가 참지 뭐. 10억 정도는 줘야 돼요. 10만원 같으면 나는 그렇게 안 합니다. 100만원 같으면 고민할지 모르겠지만.

모든 세상에다가 주님께서, 너는 죄의 종이다. 죄의 백성이다. 악마의 종이다, 라는 흔적을 계속 남겼던 거예요, 돈 가지고. 광야에서 예수님 시험할 때 악마가 제일 먼저 제시한 게 뭐에요? 떡이잖아요. 그 당시가 농경시대이기 때문에 떡은 곧 돈입니다, 돈. 그다음에 인기, 세상권력 이렇게 되는데 그게 악마의 카드에요. 악마가 쓰는 조커 카드에요, 에이스 카드라고요. 악마의 무기에요. 꼼짝 못하고 있어요. 우리는 꼼짝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런 분이에요. ‘주님은 모든 실패를 겪었던 분’. 주님은 실체요, 주님은 실재를 알고 주님은 실제로 오신 분입니다. 그 분이 이 땅에서 뭘 했습니까? 모든 실패를 겪었습니다. 히브리서 2장과 히브리서 5장에 나오는 거예요.

내가 너희 아픔을 안다. 왜? 내가 겪었으니까. 내가 너희 억울함도 안다. 왜? 내가 겪었으니까. 내가 너희의 서러움과 눈물을 안다. 왜? 내가 겪었으니까. 네가 겪는 세상에 나도 다녀갔기 때문에. 나는 능히 너희들을 구원하는 그 비법을 하늘에서가 아니라 직접 땅에 온 하나님으로서 그걸 다 익히 알고 있어요.

이제 우리가 알 것은 주께서 구원하시는 그 비법이라는 것, 그 방식. 궁금해요? 이것을 설명하는데 굉장히 좀 난해합니다마는 어째든 주님께서 이 방법을 아시니까 인간은 죄의 백성, 죄의 종에 있어서 왕의 위세를 당해낼 수가 없어요. 악마는 왕인데요.

악마는 의식을 주었다. 의식에서 선악체계를 주었고 그다음에 인간은 관찰을 해서 나름대로 자기만의 현실관을 가지고 결국은 죽죠. 이게 7번이고 8번이고 35번이고 이런데 전체를 몰라요, 인간은.

그런데 주님은 인간에게 무의식을 줘요. 무의식은 욕망이거든요. 욕망은 내가 나를 선택할 수가 없어요. 이게 무의식입니다. 무의식에다 무엇을 심느냐 하면 생명을 줘요. 생명을 줘버립니다. 생명을 줘버리면 내가 관찰하는 게 아니고 내 안에 계신 주님이 관찰해서 엘리야와 모세처럼 하나님 나라를 지금 현실화시키는 작업을 합니다. 현실화시키는 작업을 해요. 생명을 줘버려요, 생명을.

아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무엇을 겪었다? 예수님은 한두 명이 아니고 모든 인간의 실패를 다 겪었다. 이것을 생명에 집어넣어요. 그러니까 생명이란 어디서 오는가. 바로 나의 실패에서 오는 거예요, 나의 실패. 선악 의식을 갖고 있는 나의 실패에서 생명이 나오게 하는 거예요.

예수님은 왕이죠. 자기 택한 백성에게만 해당됩니다. 왕은 택하고 선택하고 뽑아낼 권한이 있어요. 자기 백성이기 때문에 자기의 마음을, 자기의 의식을, 자기의 요구를, 주님의 뜻, 아버지의 뜻을, 율법 완성을 생명에 심어놓는데 우리의 껍데기는 악마로부터 받은 선악의 껍데기잖아요. 선악관점에서 우리를 실패로 만드는 거예요, 실패로. 실패로 해서 죽은 자로 간주하는 거예요.

율법이 와서 율법대로 못 사니까 우리는 실패한 자에요. 율법대로 못 살면 실패한 자입니다, 율법대로 못 살면. 성경 한번 찾아봅시다. 마태복음 5장 한번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26절,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거기’라는 것은 옥(獄)이거든요, 감옥. 지옥입니다. 지옥에서 나오지 못하리라, 결단코.

그러니까 우리는 잘난 체해도 율법 앞에서 실패자죠. 실패자는 자기 목적이 없어야 돼요. 자기한테 기대 걸 게 없어야 돼요. 심지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 이런 실패한 경험까지 했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내 뜻대로. 이건 과거가 완전히 다 삭제되는 거죠. delete. 내 뜻대로 마옵시고.

자, 아버지에 대한 신앙이 예수님에게 없다고 칩시다. 그러면 아버지의 뜻이 없다고 여기고 ‘내 뜻대로 마옵시고’ 가 되어버리면 이것은 가룟유다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래, 내 뜻대로 안 되니까 내가 죽을게. 가룟유다가 사탄이죠. 가룟유다 보고 사탄이라 불렀다고요. 가룟유다라고 부를 수도 있는데 사탄이라고 불렀잖아요. 베드로보고도 그런 이야기했지만. 항상 주님께서는 그 실재를 보고 이야기한다고요.

“내 뜻대로 마옵시고” 그다음에 나온 말이 무슨 말이죠? 아버지의 뜻이죠. 우리도 그렇게 살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아버지의 뜻을 언급할 때는 반드시 무엇이 전제로 깔려야 돼요? ‘나는 성공해서는 안 됩니다’가 깔려 있어야 돼요. ‘나는, 내 뜻이, 내 의도와 내 기대와 목적이 성공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이것을 흔쾌히 내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돼요. 내 뜻을 접는다는 것은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아, 이거 진짜 너무 중요해서 크게 써야 돼요.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겠나이다.’ 내가 나를 남한테 내세울 게 없는 존재로 인정하겠나이다. 나는 미미한 존재. 미미 아시죠? 애들 갖고 노는 인형, 미미.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 존재. 나는 나를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미미한 존재, 있으나 마나한 존재기 때문에. 이걸 전제로 해야 그다음에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말만 그냥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면 되는 게 아니고.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내 쪽에서 남에게 나의 정당함을 내세울 게 있다, 없다? 내세울 게 없게 한 것을 홀가분하고 감사히 여기는 겁니다. 이걸 아까 이야기한대로 두 자로 한다면 백성. 네 자로 하면 백성다움. 일곱 자로 하면 주님의 백성다움. 왕의 백성다움. 이게 백성이에요. 왕이 계신데 내가 왕도 아닌데 내가 주제넘게 나서서 내 인생에 관여할 필요 없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살기를 율법으로 요구받았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디서 실패했느냐 하면 나 자체를 주인공으로 여겨서 나 잘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있다고 그렇게 오산을 한 겁니다. 오산을 한 거예요. 두 번째 시간에 그걸 중점적으로 할 거예요. 그래야 오늘 나오는 이 짐승의 정체가 밝혀집니다.

첫 번째 시간에 제가 이야기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어떤 식으로 악마의 백성에서 끄집어내느냐 하는 거예요. 그 방식이 뭐냐. 그 방식이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게 만드는 방식으로 사용하시는 겁니다. 내가 나에 대해서 일체 인정하지 않아요. 나는 이렇습니다. 자기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자기 방어가 우습죠. 자기 방어가 우스운 거예요.

한 가지 실례를 들면 이렇습니다. 퇴락한 한국, 옛날 한국에 어떤 다방이 하나 있다. 그 다방에 섬에 들어온 지 한 40년 지난 늙은 마담이 있다 합시다. 가만 이야기 들어보니 ‘낭만을 위해서’ 비슷하게 나오는 것 같죠. 그 마담이 평소대로 손님을 맞이한다고 입술 화장을 짙게 했다 합시다.

그럴 때 그 섬에 온 어떤 손님이 “아줌마, 화장을 좀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서울에서 패션 일에 관여하는데 화장을 이렇게 하고 다른 색깔, 톤으로 하면 좋겠는데.” 이야기하면 그 늙은 나이 60대 된 마담이 뭐라고 합니까? “내비 둬. 내비 둬. 나 이래 살래. 지금 이 나이에 화장 바꾸고......” 패턴대로 습관대로 화장은 하는데 그게 내가 나를 인정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내가. 내비 둬. 그냥 이래 살래. 이 나이에 뭐 화장 바꾼다고 쌍화탕 시키던 사람이 커피 시키겠어요?

우리의 선악체제에 의해서 자기를 잘난 존재로 자꾸 유지하고 싶은 거예요. 왜 그러느냐 하면... 이런 이야기가 좀 어려운데요. ‘나는 선하다’가 되어버리면 결국 ‘내가 사는 삶은 선하다’가 돼요. 나의 사는 삶은 아까 제가 한 용어로 그 사람이 보는 현실관이에요. 중국집 배달만 하는 현실관. 중국집 배달해서 월급 타는 그게 자기 세계의 전부에요.

유동성자금 그런 거 몰라도 돼. 경제, 과학 이런 거 몰라도 돼. 중국에서 뭐하든 아무 관계 없어. 그냥 짜장면 배달 잘 하고 월급만 받으면 그만이고 잠은 직원들 자는 방에서 같이 자면 되고. 그게 자기 현실이에요. 이게 아까 로또 번호의 8번이 되고 9번이 되고 42번이 되는 거예요. 이 말은 나라도 내가 나를 이런 식으로 인정하고 싶다는 거예요. 평생을 일궈온 세상이 이 세상밖에 없는데 이거 좀 안 건드릴 수 없나, 뭐 이런 식으로.

방금 이 이야기를 제가 쉽게 했는데요. 이제 어렵게 하겠습니다. 이걸 어렵게 해줘야 두 번째 강의가 돼요. 이해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밀어붙여요. 자기 조감. 조감(鳥瞰)이라 하는 것은 새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 풍경을 조감이라 해요. 조감도라고 하잖아요, 전체를 위에서 보는 것. 자기 조감=자기 이미지를 갖는 것. 그러니까 자기가 만든 세상이라 하는 것은 이게 세상이라 하지만 사실은 그 세상 속에서 나라는 인상, 나의 시그니쳐 있잖아요, 그걸 좋게 보이고 싶은 거예요.

사람이 자기 세계를 다듬는 것은 내가 남한테 흉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름 나는 괜찮은 존재인 것을 조립하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애들이 레고랜드 하잖아요. 아버지는 건축가고 엄마는 건축 설계사이고 하지만 애는 아버지가 건축가라도 자기 레고랜드 그게 더 중요한 거예요. 그거 함부로 밟고 지나가면 난리 납니다. 내가 정성스럽게 만든 나의 세계거든요. 이게 소꿉놀이지만 나의 세계라고요. 자기 이미지를 갖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착오입니다. 왜 착오냐 하면 나는 나의 이미지를 갖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스크린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는 우리가 영화를 본다 하잖아요. 그런데 세상은 영화관에서 영화 보듯 하는 게 아니고 너와 나를 다 포함하는 전체 세상 자체가 영화의 스크린이에요, 스크린.

스크린 중에 본인의 이미지가 거기서 약간 지금 꿈틀거리고 있는 거예요. 한 80년 동안 꿈틀거리다가 90년 되면 죽어버려요. 소멸해버려요. 세상 전체가 하나의 영화막이에요, 영화막. 스크린이라 했는데 어려운 용어로 이걸 지각장(perceptual field)라 해요. 내가 알고 있는, 지각하고 있는 장의 일부에요. 내가 아는 뭘 꽃다발처럼 끌어 모은 게 아니고 따지고 보면 이 세상 전체의 지각장 중에 내가 협조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악마가 펼친 짐승의 세계에요. 왜냐하면 악마는 인간을 가지고 자기를 지키기 위한 현실의 지각장을 실제로 펼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게 죄의 왕 노릇이에요. 악마 본인은 2번, 실재이기 때문에 안 보입니다. 안 보이는데 보이는 것은 뭐냐. 1번, 실체와 3번, 실제, 이건 보이는 거예요. 인간은 여기서 나름대로 각자 자기 현실이 따로 있고 아파트가 따로 있고 자기 집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데 전체를 합쳐보면 악마가 만든 지각장이에요, 지각장. 현실세계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이걸 주님께서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바다라 하는 것은 땅의 사람들에게 그동안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던, 부재의 세계로 남아있던 거예요. 바다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없다고 생각한 데에서 태고 적 실체가 올라온 거예요. ‘태고 적’이라는 말은 p.211 위에서 일곱 번째 줄에, “구약 성경 다니엘에서의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란, 국가 자체가 형성된 채 육지로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태고 적’의 힘들이 밀려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가 밀려오는 것이 아니고 태고 적 힘들이 밀려오면서 그 태고 적 힘에 의해서 땅에서 생기는 것이 국가라는 실체에요. 실체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땅의 국가가 아니고 여러 국가가 연달아 이어지지만 그걸 대표하는 이름은 바벨론. 219개의 모든 나라가 바벨론에서... 다니엘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지목한 금 신상에서 따로이 현실을 마련한 짐승은 없습니다. 모든 짐승은 그 짐승에서 분화된 거예요. 복제판입니다. 복제물들이에요. 지각장.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다 가짜였다는 것. 이것은 10분 쉬고 왜 그런지 이야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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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9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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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