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출 20: 13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2005년 1월 16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20:13
20:13 살인하지 말찌니라
왜 살인하면 안되나요? 우리가 살인할 때에 하나님에게 먼저 물어봅니까? "하나님 제가 지금 살인하려는데 해도 되나요?"라고 말입니다. 결코 그렇게 하지를 않습니다. 최초의 살인자 가인은 동생을 죽이면서 하나님에게 묻지 않고 했습니다.
그 행위를 죄로 규정한 자는 살인한 가인 본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설 때에 비로소 그 살인행위는 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죄라는 것은 하나님이 안 계신다면 성립되지 않는 겁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마음껏 살인하며 살아야 된다"고 하셨다면 살인하지 않고 사는 것이 죄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죄냐 아니냐 하는 것은 인간이 제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만약 하나님의 존재를 전면적으로 무시하고 거부한다면, 자신이 스스로 죄와 의라는 항목을 만들어내어야 하는 겁니다. 물론 그 중의 "살인해서는 안되"라는 것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살인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보기에 과하다 싶을 때만 써먹을 살인일 뿐입니다.
즉 가인은 항상 살인할 의사를 지니고 산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거의 충동적으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악의 지배에 의해서 살인을 하고 만 사람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동생을 못살게 굴고 동생이 죽이고 싶어 환장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살인하는 것과 자신은 상관없는 자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상관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4:7에 보면,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훤하게 보고 계십니다.
가인은 제사하면서 원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움을 받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가인을 노리는 게 바로 그런 사고방식, 즉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약속이 없이 의로워지려는 의도를 이용하는 세력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악이었습니다. 곧 악마였습니다.
쉽게 말해서 이렇습니다. 우리가 살인을 하든 아니하든 항상 약속과 상관없는 일을 하게 되면 그것이 곧 죄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약속 밖에 존재하는 자들은 약속으로부터 보호를 받지를 못하고 항상 죄의 하수인 노릇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비해서 아벨은 비록 자신의 목숨은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받지를 못했지만 죄와 상관없는 약속의 사람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는 약속의 보호를 받은 것입니다.
히브리서 11:4에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라고 되었습니다.
즉 인간이 어떻게 의인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는 결코 사람을 상대한 것이 아닙니다. 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했고 그 약속을 믿음으로서 의인이 된 것입니다.
즉 "살인하지 말라"의 성취는 '살인 안 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 '살인 안 함'의 완성이 되는 것일까요? 사람이란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킬 능력은 없습니다.
이미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약속을 증거하기 위해 존재하는 피조물입니다. 모든 것은 약속의 구현체 되시는 예수님을 위하여 그 분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태어난 자들입니다. 아담이라든지 하와라든지 모두 진작 죽어서야 되는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모형으로서 존속되어야 하는데 그들의 후손에는 두 계통의 인물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사실 그 두 계통의 관계를 통해서 약속은 그 본질을 지상에 펼치게 됩니다. 그 약속 안에는 악이 장악하고 있는 세력도 나오고, 의와 거룩에 속한 세력도 나옵니다. 이 두 세력의 다툼이 인간들을 통해서 보여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은 사실 하나님의 약속을 훼손하기 위한 살인을 이미 악마 쪽에서 작정하고 있음을 폭로시키는 말씀입니다. 그 어떤 인간도 살인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고의든 우발적이든 누구나 살인을 저지르고 자기 행위에 핑계와 변명으로 자신을 커버하려고 덤벼들게 됩니다.
살인에 대해서 그토록 분개하는 자도 막상 자기 자신이나 가까운 식구가 살인죄를 행하게 되면 두둔하는 쪽으로 태도가 달라집니다. 즉 사람은 자기 의를 목적으로 살아가는 본성이 항상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전적으로 인간 신체를 죽여서는 아니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에 위배했다는 이유만으로 죽어나갔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법이야말로 사실 모든 인간을 죽인다는 점을 명백하기 위함입니다.
살인 안한 자는 하나님을 만나 뵐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이 생각해 놓고 있는 선과 악의 기준은 하나님이 제시한 기준에 근처도 안 갔으며 도리어 하나님의 약속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주동자로 활약하고 있을 뿐입니다.
즉 '살인 안함', '죄 안 지었음'을 무기로 삼아서 하나님의 약속을 공격하고자 하는데 목적을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 차원에서의 '살인'이라는 사건이 발생됩니다.
즉 죽일 이유도 없는데 단순히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대상자를 살해하고 싶은 충동이 유발됩니다. 즉 "나처럼 스스로의 의로움으로 살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만 의지하느냐" 하면서 공격하는 겁니다.
예수님 당시나 초대 교회에서 사회적으로 죄인들의 무리라고 낙인 찍힌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해서 얼마나 많는 사람들이 그들이 비웃었는지 모릅니다. 단순히 예수님을 믿어서 의인 행세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해 선택 당한 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들 성도들이 내세우는 것은 '살인 안 했음'이 아니라 '주 예수님의 주신 약속을 사랑함'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적들이 하나님의 약속된 분을 살해하려고 노리고 있는 마당에서 이러한 살인 의지와는 정반대로 예수님을 사랑하겠다고 나서니 가인이 아니라 그 누구인들 이들이 밉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고,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다르니 이들은 또 다른 살인 충동의 희생물로서 세상에 연약하게 놓여 있게 됩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살해당함과 예수님의 살해당함을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스데반 집사님과 예수님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살해하면 안되도록 오로지 다른 세계에 대해서 증언하셨습니다. 이처럼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여인은 실은 벌써 사람들로부터 죽음을 당했던 여인에 해당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에게 속한 사람은 모두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죽음을 당할 대상자로 분류되는데 이로서 이 세상은 여전히 살인 의지로 충만한 세계인 것이 폭로된 겁니다. 유대인들은 십계명을 이런 살인 의지가 충만한 가운데 준수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허점을 놓치지 않고 지적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21-26에 보면,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보면 최종 재판관은 따로 계십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아직도 그 재판관이 누구시며 만나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 재판관은 살인이라는 십계명의 계명은 인간들이 해석하는 것과 달리 하고 계십니다. 즉 살인의 동기는 오직 하나, 재판관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데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재판관의 자리에 자신의 의로움으로 채워넣는다는 겁니다. 따라서 제대로 살인계명을 가지고 사람을 판정하기 위해, 인간들의 살인동기를 끄집어 낼만한 계기로서 하나님의 형제를 이 세상에 두게 하시는 방식을 사용하겠다는 겁니다. 이렇게해서 주의 형제에 대한 살인 행위가 곧 주님에 대한 공격임을 그 연관성을 들추어 내는 식으로 십계명을 활용하겠다는 겁니다.
즉 자기 의를 유지하는 한 그 인간은 반드시 형제를 공격하게 되고 그 끝에는 그런 형제를 두둔하는 주님에게 대한 직접 공격으로 이어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이 동네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느냐?"라고 묻는 물음입니다.
로마서 13:8-9에 보면,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찌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늘 살인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